졸업 50주년 축전에
낙동강 흘러들고
팔공과 비슬이 감싸는
달구벌 옛 터전 한 복판
대구시 대봉동 60번지에 우뚝한 배움의 전당 있으니
세인(世人)들은 부고(附高)라 부르고
우리는 모교(母校)라고 부른다
영남의 도시와 산골 곳곳에서 수재들이 모여
하늘색 교모를 쓰고 이상에 불타던 그 때가 50년 전
담쟁이 뒤덮은 붉은 벽돌교사에 밤늦도록 불 밝히던
어리고, 순진하고, 치열하던, 그 시절을 마치고
남포(南浦)의 뱃전에서 벗과 이별한 게 몇 년 전인가
양관(陽關)의 성문을 나와 낯선 세상 첫걸음 내 디딘지
얼마만인가
나뭇가지를 스쳐 지나가는 달빛처럼
세월은 그리도 쉬이 지나가고,
우리도 어느덧 예순이 훌쩍 지나더니 이제 칠순이
되어 버렸네.
십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다섯 번 강산이 변하는 동안
솜털 수염 여드름 소년들이
이마엔 깊은 주름 귓가엔 흰 서리가 내렸구나
그래도 오십년 전 기억으로 다시 보는 얼굴들
세월의 간격이 이내 사라지네
우리가 공유하는 기억들
세종대왕 이래 가장 위대한 박정희 대통령이
학창 시절을 보냈던 교실과 운동장
햇살 따뜻하던 낡은 목조건물 남료와
복도를 지나 들어가던 생물실과 그 표본실
3학년 때 모의고사 성적이 발표되던 공포의 흑판
걸레가 되어있던 정시호 선생님의 출석부
300명의 담임선생 노랑대구 선생님
분필을 휘날리시던 오명근 선생님
고문(古文)을 인수분해 하시던 유길룡 선생님
수학의 신 신태균 선생님을 위시하여
우리나라에서 제일 훌륭하신, 존경하는 은사들
김재복 선생님께 배우던 국제시장 불난 노래
수성못 돌아오는 10km 마라톤
야간열차로 밤새 달려 올라간 설악산 울산바위
강당 메트리스에서 울려 퍼지던 유도 낙법의 함성
경주 졸업여행의 달콤한 추억이던 황남빵
그 때의 그 젊음, 그 때의 그 우정 새삼 그리워라
아, 아무렴 큰 강이 아무 의미없이 흐르고 있으랴
몇 겹 전생의 업과 현생의 인연으로 이 세상에서
질풍노도의 시절을 함께한 것이 어찌
바닷가 모래톱의 물거품처럼
덧없고 가벼울 수 있으랴
광대무변 우주에서 우리 서로 알게 되어
늘 보고 싶어 한 것이
어찌 밤하늘 별들이 반짝이는 것에 버금가는
크나큰 의미가 아니랴
때로 삶이 힘겹고 지칠 때
잠시 멈춰 서서 내가 서 있는 자리
내가 걸어온 길을 한번 돌아보라
편하고 쉽게만 왔었다면
과연 이만큼 올 수 있었겠는지
치열하게 자기의 삶을 개척하며 여기까지 온
동기 모두들 참 대견하게 잘 살아왔다
가난하고 힘들었던 우리를 잘 도와주신 어부인들 고맙구나
먼저 간 동기들도 언젠간 다시 만나겠지
저마다의 빛깔로 반짝이는 별
함께 모인
이 밤의 군성(群星)은 더 아름답구나
동기들아
다 함께 잔을 들자
소중한 오늘의 재회, 그리고
남은 날들의 건승을 위하여,
함께 늙어가는 할매들을 위하여,
고마운 은사들을 위하여,
영원한 우리 모교 부고(附高)를 위하여,
/愚谷 拙詩
*南浦는 실제 地名이 아니라 굴원(屈原)의 구가(九家)라는 詩 이후 으레 文人들이 離別의 代名詞로 쓰는 場所.
*陽關(양관)은 오늘날 中國 감숙성 돈황현에 있다. 이 關門을 나선다는 것은 간단히 말해 세상 밖으로 나감을 의미한다.
첫댓글 올 아침에 여러 번을 읽었다.
길이 기억될 한 편의 뜻 깊은 시적 서사!
학창시절과 이후 반 백년의 삶에 대한 우리들의 이마고,
그립고 자랑스럽고 아쉽고 고맙고 가슴아리고...
감동어린 하나의 큰 아름다움이 되어 우리의 축전을 뜻 깊게 빛내 주었다.
"나뭇가지를 스쳐 지나가는 달빛처럼
세월은 그리도 쉬이 지나가고..."
<승무>의 시간 이미지가 풍겨나오는 이 아름다운 시어!
역시 우곡의 시혼 한 자락은 다분히 조지훈적일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