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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추홀장애인복지관 문혜진 선생님 주선으로
장애아동 어머니 책 모임을 진행했습니다.
지난달 2주에 한 번씩, 한 번에 두 시간, 그렇게 네 번을 만났습니다.
네 번에 걸쳐 <월평빌라 이야기 2>를 완독 했습니다.
모두 열두 명이 오셨습니다.
저와 문혜진 선생님까지 총 열네 명.
처음 제안받았을 때는 주저했습니다.
사회사업가 외에 주민을 만나 공부하거나 강의한 지가 십 년이 넘었습니다.
사회사업가와 공부는 재미있고, 잘 나눌 수 있지만
다른 공부는 조심스럽기도 하고, 제가 도움이 될지도 몰랐습니다.
(2013년, 구슬팀 학생 열 명과 서울시립대종합사회복지관에서 세 가지 사업을 맡아 활동했습니다.
그 가운데 한 사업이 장애바우처 사용 어머니 모임이었고, 학생들에게 본을 보이려고
첫 모임을 제가 직접 진행하였습니다. 그 뒤로 10년 만입니다.)
문혜진 선생님은 지난해 인천지역 장애인 사회사업 글쓰기 모임에서 함께 공부했습니다.
공부 뒤 <흔들려도 과녁을 향해>를 공저로 출판했습니다.
그때 공부가 좋았기에, 그 방식으로 나누면 어떨지 제안하셨습니다.
그 말씀에 용기 내어 열두 분과 부담 없이 읽고 나누기로 했습니다.
문혜진 선생님도 그동안 진행해 온 부모교육 방식을 다르게 해 보고 싶다셨습니다.
복지관 밖, 인천 지역 전체로 안내했는데, 생각보다 많은 분이 오셨습니다.
첫날 인천으로 가는 길이 긴장되었습니다.
첫 만남에서는 서로 인사하고, 공부 과정 소개하고, 책 내용도 간략히 안내했습니다.
읽기도 하지만 읽으며 와닿는 곳을 옮겨 적은 뒤 소감을 적고, 이를 모임 때 나누자고 했습니다.
그렇게 하면 이야기가 다른 길로 새지 않고, 누구나 한 번 이상 말할 수 있게 된다고 했습니다.
쓰는 가운데 생각도 정리하고, 다른 이의 소감도 엿볼 수 있는 유익이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책을 세 부분으로 나눴고, 이어지는 세 모임에서 모두 읽고 나눴습니다.
마지막 날은 완독을 축하하며 점심도 함께했습니다.
어느 어머니께서 수료 축하하며 장미도 선물해주셨습니다.
그동안 사회사업가들과 공부해 온 느낌과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우리 실천 방식은 당사자가 자기 삶을 살고, 둘레 사람과 어울리게 돕는 일입니다.
자기 삶을 살려면 당사자에게 설명하고, 도전하게 제안하며 부탁하고, 이를 거들어야 합니다.
그 과정에서 실패하기도 하고, 다시 힘을 내기도 합니다. 실수 실패 끝에 상처를 만나기도 합니다.
지원자로서는 위험을 감수하는 일이요, 시간이 오래 걸리는 일입니다.
어울리게 돕는 일도 마찬가지입니다.
어울려야 하니 지역사회로, 여느 사람이 사는 세상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그 가운데 마주하는 어려움이 적지 않습니다. 벽을 느끼고, 욕을 듣기도 하며, 존재를 부정당하는 아픔도 있습니다.
지원자로서는 당사자의 기능을 높이는 일처럼 당사자 쪽을 지원하는 일만으로는 한계가 있음을 느낍니다.
당사자가 어떠하든, 그를 품어주게 지역사회 변화가 함께해야 함을 깨닫는 시간이기도 하고,
당사자는 '내가 아니라 지역사회가 우리를 받아줄 준비가 되지 않았다'는 걸 알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런 도전 가운데 조금씩 힘이 생기고, 요령도 알고, 재미도 느낍니다.
서로가 변하고, 귀인을 만나기도 하고, 관계의 실마리를 찾기도 합니다.
그런 수고와 보람을 정리한 책이 <월평빌라 이야기 2>입니다.
이런 실천의 증거입니다.
구체적 지원 사례가 <마라톤 갑니다>, <당신이 월평입니다>, <조그만 거들면 됩니다>입니다.
이 책들은 마지막 날 선물로 드렸습니다.
자녀 나이가 6살에서 36살까지, 유치원생부터 초중고를 거쳐 성인까지.
다양한 자녀를 양육하는 어머니들과 읽고 나누는 가운데,
이런 실천이야말로 당신들이 바라고 지원이라고 한결같이 말씀해 주셨습니다.
당장 이런 사회사업가를 만날 수 없더라고, 이 세상 어딘가에 이렇게 생각하고 실천하는 이들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힘이 된다는 말씀에, 저도 힘을 얻고 마음이 뜨거워졌습니다.
"지금 우리 아이가 여섯 살이에요, 초등학교를 가고 성인이 될 때쯤에는
선생님께서 이런 공부를 사회복지사들과 많이 하실 테니, 우리가 그런 사회복지사를 만날 확률이 더 커지겠지요?
다행이다 싶어요."
나눠주신 말씀 기억하겠습니다.
장애인 사회사업 현장에서 일하는 사회사업가들과 공부할 때마다 이 말씀 전하겠습니다.
최 OO 선생님
장애자녀를 가진 엄마들이 월평빌라 이야기를 읽으면 아마도 다들 비슷한 얘기를 할 것 같다.
“우리 아이도 이런 곳에서 살아갔으면 좋겠다.”
월평빌라의 주민들은 모두가 자기 삶의 ‘주인’이다.
손님이 아닌 주인, 객체가 아니라 주체, 복지의 대상자나 수혜자가 아니라, 불쌍한 장애인이 아니라,
그냥 아주머니, 어르신, 주영 씨, 우영이, 인성이... 그냥 사람
자세히 살피고 몇 번을 물어서라도 이야기를 들을, 존중받을 가치가 있는 사람...
사람을 사람으로 대하는 사람들이 너무나 고마워서, 따뜻해서 눈물이 났다.
나는 2014년 이후로 ‘가만히 있으라’라는 문장을 만날 때마다 불현듯 정신이 번쩍 든다.
그 순간에 오히려 절대 가만히 있지 않겠다고 다짐하게 된다.
생각해 보면 가만히 있으란 말은 늘 약자에게만 하는 말이다.
더 이상 우리 아이들에게 가만히 있으라고 하지 않는 세상이기를 바란다.
‘바람과 비와 햇살과 눈을’ 맞을 그 모든 기회가 주어지기를, 배제당하지 않기를 바란다.
임 OO 선생님
가족 챕터를 넘기고 '취미, 여가' 학교에 대한 챕터에선 책의 메시지가 분명하게 보인다.
내가 이 책을 처음에 낯설고 불편해했듯, 사람들 또한 '장애인'들이 나의 세상에 등장했을 때
낯설고 불편할 뿐.. 계속 마주하면 익숙해지고 배려하는 방법을 찾게 된다는 것.
내 아이를 보호하기 위해 나는 나의 둥지 안에서 알속에 아이를 가둬두려 하고 있다.
'안전'이라는 미명아래..
책에서 얘기하듯 한 아이를 키우기 위해 온 동네가 필요하다고
장애여부와 관계없이 세상은 서로 돕고 의지하며 살게 마련인데..
누군가에게 혹여나 피해를 줄까 싶어 또는 내가 피해를 입을까 싶어
점점 스스로를 고립하며 살아가고 있다. 당장 바뀌긴 어렵겠지만..
스스로 치유할 수 있는 힘을 기르며.. 세상에 나갈 준비를 해야겠다.
김 OO 선생님
내 아이를 키우기 전까지는 장애라는 걸 관심도 없었고 간혹 주변에서 보더라도 나의 세상 하고는 상관없다고 생각했던 나였다
지금에서야 돌이켜 보면 그땐 난 너무 안 밖으로 무지 했구나 할 정도로
지금에 나는 내 아이를 키우면서 더 넓은 세상을 바라보며 살아가고 있다는 것에 감사했습니다.
내가 이속에 들어와 보니 보이고 찾게 되고 고심하며 더 깊게 이 세상을 바라보게 되었던 것처럼
처음부터 많은걸 바라지 말고 그들이 설사 우리 아이를 바라보는 첫 시선이 따갑더라도
그 안에 있다 보면 더불어 사는 세상이 언젠가는 이뤄 살아갈 날을 기대해 봅니다.
(그러긴 위해선 우리 장애부모님들이 더 용기를 내야겠지요. 저부터가)
한 OO 선생님
월평빌라 이야기를 읽고 ‘시설’에 대한 나의 고정관념이 있었음을 알았습니다.
시설은 보통 성인 장애인이 갈 수 있는 곳, 성인이 아니라면 부모가 없거나 부모역할이 힘들어
부모와 단절된 아이들이 가는 곳이라 생각했습니다.
월평빌라와 같이 자기 삶을 살 수 있는 시설이라면 꼭 ‘탈시설’ 하지 않아도 될 것 같습니다.
저 또한 안전을 위해 우리 아이가 훗날 시설에 사는 것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래도 시설보다는 아이가 독립을 한다면 아이가 자기가 익숙한 지역에서 살면서, 일을 할 수 있다면 일을 하고,
좋아하는 취미생활을 하는, 그런 생활을 하면 이상적이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시설에서 그런 생활을 한다면 오히려 가장 이상적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시설에 산다면 부모가 없을 때라고 생각했고, 그 시설 안에서만 살고 고립되는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시설에 살아도 부모, 형제와 여전히 보통의 가족처럼 살아야 한다는 것도 너무 당연한데도 생각하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어디에 살던 각자의 생활을 하고, 만나고, 자기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을 장애라는 이유로 어렵게 생각했습니다.
어디에 살건 자기 삶을 살 수 있는 인간으로 우리 아이가 살 수 있었으면 합니다.
나도 나중에 요양원에서 죽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생각하지만 어떤 사정이 생길지 모르니…
그런 상황이 생기더라도 가족의 역할을 다하고 버려진 마음이 들지 않기를 바랍니다.
이 OO 선생님
"허락받았어요?"
왜 하필 우리 반이야. 다른 반으로 옮길까 하는 마음은 아니었을까요?
저 사람은 나와 상관없어. 강사가 알아서 하고 사무실에서 알아서 하겠지. 하지는 않았을까요?
그들이 살던 세상에서 만나지 못했던 약자를 그들이 사는 세상에서 만났기 때문입니다.
제 마당, 제 삶터. 그 한가운데서 대면하면 어떻게 말을 걸고 어떻게 어울리는지 자연히 알게 됩니다.
약자가 살만한 세상, 약자도 살만한 세상, 약자와 더불어 사는 세상을 보았습니다.
미장원에서 아이가 장애가 있는데 머리 자를 수 있을까요?
아이가 장난이 심한데 택시 타도 되나요?
결혼식이나 친척집 방문, 버스나 지하철, 가도 될까? 민폐일까?
얼마나 고민을 했는지.. 어릴 적 생각이 많이 나서 추억이 생각나기도 하고 슬프기도 하고
나도 남들에게 피해는 가지 않게 조심해야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배려해 주는 세상으로 바뀌어가는 것을 보니 다행이다... 하는 생각이 들고... 좀 더 조금만 더..
좋은 세상이 오기를 바라봅니다.
양 OO 선생님
장애를 가진 자녀를 시설에 맡기는 부모의 마음은 복잡하고 깊은 감정으로 가득합니다.
이러한 결정은 자녀에 대한 사랑과 돌봄의 책임, 그리고 현실적인 어려움 사이에서 이루어질 거라 생각합니다.
부모의 심정과 경험. 죄책감과 슬픔, 사회적 지원의 부족, 경제적 부담과 미래에 대한 불안 등으로 인할 것입니다.
사회적 시선과 지원의 필요성. 부모들은 자녀를 시설에 맡기는 결정이
사회적으로 부정적 시선으로 비칠까 두려워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결정은 부모의 이기심이 아닌, 자녀에게 더 나은 환경과 돌봄을 제공하려는 노력의 일환입니다.
따라서 사회는 이러한 부모들의 마음을 이해하고, 장애인과 그 가족을 위한 지원 체계를 강화해야 합니다.
장애를 가진 자녀를 시설에 맡기는 부모의 마음은 복잡하고 고통스럽습니다.
이러한 결정일 이해하고 지원하는 사회적 분위기와 제도적 뒷받침이 필요합니다.
이를 통해 부모들은 자녀에 대한 사랑과 책임을 지키면서, 자신들의 삶을 유지할 수 균형을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박 OO 선생님
아이들과 집 앞 학교, 집 앞 학원, 도서관, 공연장 등에 다니며
장애가 아니었으면 하지 않았을 물어보고 확인하는 일을 얼마나 많이 했는지,
은근한 거부는 얼마나 많았는지 기억하지 않을 만큼 많다.
평생 살며 나 개인으로 받은 거절보다 아이들의 10대에 오기까지 받은 거절이 몇 배는 많다.
사회와 나 혹은 아이들 사이에서 충격을 덜어줄 에어백 같은 누군가가 있었다면 경험하지 않는 것이 더 많았을 일들.
어쩌면 어쩌다 한 번은 내가 그 에어백이 될 수 있지도 않을까, 안내문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첫댓글 [그 과정에서 실패하기도 하고, 다시 힘을 내기도 합니다. 실수 실패 끝에 상처를 만나기도 합니다.
지원자로서는 위험을 감수하는 일이요, 시간이 오래 걸리는 일입니다.]
이 문장에 눈물이 핑 돌았습니다. 그 상처가 생각보다 아프고, 그 시간을 지나고 있어서인지..
[당장 이런 사회사업가를 만날 수 없더라고, 이 세상 어딘가에 이렇게 생각하고 실천하는 이들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힘이 된다는 말씀에, 저도 힘을 얻고 마음이 뜨거워졌습니다.]
글을 읽어 내려가며 만난 문장에 저도 마음이 뜨거워졌습니다. 아프더라도 그 시간을 견디어내야 하는 이유를 다시 새깁니다.
시설사회사업가로서 현장에 있어야 하는 이유...덕분에...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