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갑산(해발 561m).
칠갑산은 충남 청양군 대치면 대치리와 정산면 마치리에 걸쳐있는 지역 대표 명산이
다. 열악한 교통여건과 고원지대라는 지리적 특성 때문에 한때 ‘오지’로 분류됐지만
지금은 오히려 잘 보존된 자연환경 때문에 관광객들의 발길이 늘고 있다.
칠갑산의 높이는 해발 561m. 크고 작은 봉우리와 계곡이 어우러진 주변 경치가 한
폭의 동양화를 연상케 할 정도로 뛰어나다. “콩밭매는 아낙네야/ 배적삼이 흠뻑 젖는
다 무슨 설움 그리 많아 포기마다 눈물 심누나~”로 시작되는 가수 주병선의 ‘칠갑산’
이 유행하면서 일반인들에게는 친숙한 이미지로 남아있다.
1973년 도립공원으로 지정된 칠갑산의 면적은 32.542㎢로 인근 정산·대치면 등 4개
면에 걸쳐 산세가 이어진다. 특히 4계절의 변화가 뚜렷해 봄에는 산철쭉과 벚꽃이
만개한 ‘꽃대궐’을, 여름에는 울창한 천연림이 ‘하늘 그늘막’을 자랑한다. 가을에는
아흔아홉골에 단풍이 지면서 형형색색으로 물들인 산이 일품이고 겨울에는 마치
천상의 세계에 들어온 듯한 착각이 일 정도로 설경이 기막히다. 진달래와 철쭉·야생
벚나무가 만발하는 봄철이 가장 화려하다.
주요 명소로는 아흔아홉골·칠갑산장·장승공원·산정호수인 천장호·장곡사·정혜사·
자연휴양림·도림사지·냉천골 등이 있다. 칠갑산 남쪽 기슭에 자리잡고 있는 장곡사
(長谷寺)는 조계종 제6교구 본사인 마곡사의 말사로 850년(통일신라 문성왕 12년)
보조국사 지눌이 창건한 후 오랜 세월을 거치는 동안 증건·보수돼 지금에 이르렀다.
장곡사는 우리나라에서 대웅전을 2개 갖고 있는 유일한 사찰로 널리 알려져 있다.
칠갑산자연휴양림은 70ha의 울창한 천연림과 청정산림욕장이 으뜸이다. 90년
조성된 후 통나무집 7동, 원두막 4동, 야영장 2개소, 전망대 1동, 산책로·체력단련
시설·물놀이장 등의 시설을 갖췄다. 산 북동쪽에 자리해 계곡이 깊고 물이 얼음같이
찬 냉천골은 여름철 피서객들에게 인기가 높다.
칠갑산은 백제의 얼이 감긴 천년사적지로 불릴 만큼 문화재가 많고 그 유래가 깊다.
사적지를 찾아 이를 감상하는 기쁨은 산행에서 오는 즐거움 못지 않다. 산 끝자락이
백제의 옛 도읍지인 공주의 서쪽, 그리고 부여의 북쪽과 맞닿아 있는 것도 이채롭다.
옛 문헌에 따르면 백제는 이 산을 사비성 정북방의 진산(鎭山)으로 여겨 항상 이 곳
에서 제천의식을 행했다고 한다. 그래서 만물생성의 7대 근원 ‘칠(七)’자와 ‘싹이
난다’는 뜻의 ‘갑(甲)’자를 써 생명의 발원지 칠갑산이라 경칭해 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 금강 상류의 지천을 굽어보는 산세에 일곱 장수가 나올 명당이 있어 칠갑
산으로 불렸다는 설도 있다.칠갑산의 명칭은 원래 칠악산(七岳山)이었다고 한다.
설악·관악·월악산 등 우리나라의 명산 대부분이 이름에 ‘악(岳)’자가 들어 있다. 삼국
시대 시가(詩歌) 중 최초의 정형시로 알려진 신라 유리왕의 도솔가에 나오는 ‘칠악’이
바로 칠갑산이다. 산림청 산림휴양문화 포털 사이트인 ‘숲에on(www.foreston.go.kr)
’에서 자세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
칠갑산에는 모두 7개의 등산로가 있다. 출발지와 중간지점을 어떻게 잡느냐에 따라
산행시간이 크게 차이난다. 산장로·사찰로·휴양로·지천로·장곡로·천장로·도림로 등
계절별로 자신의 개성에 맞춰 코스를 택해 산행을 하는 것이 좋다. 코스 대부분이
평균 왕복 2~4시간 정도가 걸리지만 장곡로(5시간20분)와 휴양로(6시간20분)처럼
긴 코스도 있다.
산행 중 만나게 되는 장곡사는 희귀한 문화재가 많으므로 빠뜨려서는 안될 코스다.
보물 162호로 지정된 상대웅전을 필두로 내부에 철조약사여래좌상 부석조연화대좌
(국보 58호)·철조비로자나좌상 부석조대좌(보물 174호)·미륵 불탱화(국보 300호)·
금동약사여래불좌상(보물 337호)·설선당(유형문화재 273호) 등 볼거리가 많다.산행
뒤 여유시간을 활용해 인근에 위치한 가파마을·고운식물원 등을 들러보는 것도 추천
할 만하다. ‘아름다운 언덕’이란 이름만큼 빼어난 경치를 자랑하는 가파마을은 농촌
전통테마마을로 유명하다. 한때 방치됐던 폐교를 농촌 문화체험학교로 활용하면서
성공적인 모델로 자리잡았다.고운식물원은 식물의 보고다. 규모만으로도 중부권
최대시설이다. 2003년 문을 연 이곳은 12년간의 준비과정이 말해주듯 희귀 및 멸종
위기 15종을 포함한 6500여종의 식물이 11만평에서 자라고 있다.산행 뒤 청양 특산
물인 구기자를 넣어 만든 구기자한과와 충남 무형문화재 제30호인 구기자주·청양고
추장 등을 맛보는 것도 잊지 못할 추억으로 남는다.
칠갑산의 장곡사
칠갑산 남쪽 기슭에 자라잡고 있는 가람으로 신라 문성왕 12년(AD 850년) 보조법사 체징에 의해 창건된 것으로 전하여 진다고 한다. 다음은 장곡사 안내 표지판의 글이다.
장곡사는 청양 칠갑산 중턱에 있다. 이 절은 신라 문성왕 12년(850) 보조선사가 창건하였다고 전하나 그 연대에는 의문이 있다. 고려와 조선왕조를 거쳐 현재까지 많은 중수를 하여 지금의 가람을 보이고 있다. 경내에는 높고 낮은 담을 두고 위쪽에는 상대웅전(보물 162호), 아래쪽에는 하대웅전(보물 181호)이 향을 달리 하여 놓여 있다.
상대웅전 안에는 통일신라시대의 것으로 보이는 철조비로자나불좌상부석조대좌(보물 174호)와 금동약사여래좌상(보물 337호)등 지정 문화재가 있다.
이곳 장곡사 일원은 칠갑산과 작천, 지천을 포함하여 충청남도 도립공원으로 지정되어 있다.
상대웅전에서 바라 본 하대웅전과 가람들
칠갑산 561m
위치:충청남도 청양군 정산면-장평면-대치면 경계
코스:한치재-임도-정상-장곡사-장곡리 장곡리-장승공원-장곡사-사찰로-서릉-정상-자비정-한치재-대치리 교통편:서울(남부터미널)-청양(하루 17회운행, 요금 8800원 3시간 소요, 첫차 7시 20분) 청양-장곡사(시외버스 터미널에서 약 300미터 떨어진 곳에 시내버스(청양교통) 정류장-버스표구입후 탑승 요금 800원) 장곡리에서 하차. 청양-장곡리(시내버스 수시 운행. 첫차 6시-7시 40분까지 운행, 막차 8시 30분) 청양에서 대치리로 가려면 청양에서 공주-대전행 시외버스를 타고하고 가다가 터널전 칠갑산 주차장에서 하차. (15분간격운행. 첫차 6.30분 막차 5시 50분), 청양-정산 직행버스( 삼흥고속 버스 한치리까지 600원) 숙박 :(장곡리쪽)황소집민박(0454-42-6642), 장곡산채집(0454-43-1941), 장곡아래산장(장곡사 절에서 가장 가까움 43-0661) ,장곡산장(0454-42-6772) (대치리쪽)산호마을(43-4792), 시골밥상(43-2642), 대치가든(452-7147)
function BabyWin(Url){ win=window.open(Url,"sm_Win"," toolbar=yes,status=no,directory=no"); } menu1on = new Image(); menu1on.src = "graphic6.gif"; menu1off = new Image(); menu1off.src = "ssprotext3.gif"; function img_act(imgName) { imgOn = eval(imgName + "on.src"); document [imgName].src = imgOn; } function img_inact(imgName) { imgOff = eval(imgName + "off.src"); document [imgName].src = imgOff; } function imgFunc(imgDocID,imgObjName) { if (version=="n3") { document.images[imgDocID].src = eval(imgObjName + ".src"); } 오래전에 충청남도 도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교통이 불편하여 충남의 오지로 규정되었던 칠갑산은 공주에서 청양을 거쳐 대천으로 가는 36번도로가에 위치, 교통이 편리해져 찾기가 어렵지 않다. 칠갑산은 육산이면서도 산세가 수려하고 높이에 비해 숲이 울창하여 언제나 시원한 산행을 경험할 수 있는 산이다. 식생도 다양한 편이다. 칠갑산이 낮은 산인데도 이런 다양함을 갖게된 원인은 칠갑산을 중심으로 방사선으로 뻗은 5개의 능선이다. 능선 하나만 있는 산도 많은 터에 560m밖에 안되는 산이 이처럼 많은 능선을 뻗칠 수 있는 지형적 원인이 있을 터이지만 그 결과로 산세는 수려하고 능선이 오밀조밀하여 숲으로 울창한 능선이 중첩되어 보이거나 거기에 운무라도 설핏 오가면 갈데없는 수묵화가 되는 것이 칠갑산의 특징이다. 능선만 5개 오롯이 있는게 아니라 이들 능선이 또 여러갈래의 지능선을 거느리고 있어서 능선만 그려놓은 지도를 보면 칠갑산은 마치 공간공포에 부대낀 원시인들이 그린 그림같다. 빈틈이 없는 것이다.
거기다 장곡사와 같은 고찰이 있고 산록 부근에 역사의 유물이 산재하여 산의 품격을 높여준다. 면암 최익현이 칠갑산을 의지하여 의병활동을 한 것도 칠갑산의 복잡한 지형을 십분이용할 수 있었던데 이유가 있었을 법하다. 삼일운동때도 칠갑산일대의 운동열기가 타지보다 격열했으며 멀리 백제가 멸망할 당시 백제부흥군의 역공세가 한시기를 풍미했던 것도 칠갑산의 오지적 위치와 산세에 있다고 할 수 있을 듯하다. 칠갑산의 산행은 주로 장곡사에서 시작하여 칠갑산 서릉을 통하여 정상에 올라선 뒤 남진하여 남릉을 통해 삼형제봉(주민들은 작은 칠갑산으로 부른다)을 지나 서릉으로 들어서서 지천리로 내려오는 코스를 잡거나, 산의 북쪽인 대치터널앞 칠갑산장에서 북릉을 따라 칠갑산으로 남진한 뒤 서진하여 장곡사로 내려가는 코스를 주로 이용한다. 지금 대치터널이 뚫친 한치고개는 보통고개가 아니다. 이 고개는 칠갑산 북쪽 그러니까 한치고개 북쪽에서 금북정맥과 만난뒤 국사봉(489m)을 차령을 지나 멀리 안성 칠현산으로 이어지는 산줄기를 형성하고 있다. 이 산줄기가 호서를 동서로 갈라놓았던 장본으로 문화적 변경선이 된 줄기인 것이다. 문화적 분수령의 작용으로 산의 동쪽은 호남에 가깝고 산의 서쪽은 기호지방에 가까운 문화적 성향을 보인다. 새국도를 버리고 옛국도를 따라 올라가면 아름드리 벚나무가 가로에 늘어선 길이 나온다. 봄철에는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는 곳이다. 한치고개에 올라가면 마루에 칠갑산장이 있다. 부근에 최익현선생의 의병활동을 기리는 동상이 있다. 정상으로 올라가는 길은 임도도 있고 하여 쉬운 길의 연속이고 오래 잊혀져 있던 산의 원시림이 시원하다. 정상이 가까워지면 임도를 버리고 오솔길로 정상으로 접근한다. 정상직전은 급경사이다. 정상에 오르면 우선 서쪽으로 높직하게 솟은 오서산과 오서산이 거느린 긴 능선이 시야에 들어오고 그 남쪽에 솟은 보령의 성주산도 높다. 다섯골짜기를 하나하나 짚어가면서 내려다보면 그곳에서 올라오는 시원한 숲향기가 어느산보다도 향기롭고 시원하다. 장곡사는 정상에서 서쪽 능선을 타고 가다가 왼쪽 된비알아래로 내려가면 나온다. 주봉이 방사선으로 뻗었듯 능선의 지능선도 방사선으로 뻗은데가 적지 않은데 장곡사는 그런 지능선 사이에 갇힌듯 깊숙이 들어앉은 절이다. 이 절은 신라 문성왕 때 보조국사(고려조의 보조국사가 아님)가 창건한 절. 절의 당우들은 산사면의 구배를 이용하여 계단을 형성한 터에 세워졌다. 장곡사의 큰 특징은 대웅전이 두개라는 점.. 철조좌상은 통일신라대, 금동약사여래좌상은 고려말에 주조된 부처상인데 금동여래좌상에서는 고려경전이 많이 나온 바 있다. 하대웅전은 보물 181호로 지정되어 있고 여기에는 가로 2m의 큰북이 있다.
2000년 2월10일 새산행기
칠갑산 서울 남부터미널에서 10시 5분차(요금 8800원)를 타고 고속도로를 타고 천안-온양-예산-예당저수지를 거치며 청양에 도착한 것은 12시 50분쯤. 온양, 도고등 온천지대와 아산 현충사, 추사고택, 맹사성고택, 외암리 민속마을, 광덕산과 광덕사, 솔뫼성지, 예당저수지등 기라성같은 관광지를 지나온다. 서울서 청양까지의 158km중 천안에서 청양까지의 74km남짓한 거리 주변에는 이렇게 선인들의 다양한 유적과 문화유산에다 온천과 저수지등 관광지가 수두룩하니 여행하는 사람으로서는 정신없이 눈이 돌아갈 수밖에 없다. 그러나 오늘은 칠갑산 가는 날, 다른 데에 신경 쓸 겨를이 없다. 칠갑산 자체만해도 장곡사의 불교문화유산과 면암 최익현선생의 동상이며, 장승축제등 볼 것이 적지 않은데다 산세도 뛰어나 정해진 시간내에 계곡과 능선을 두루 살필 수나 있을지 모르겠다. 청양에서 장곡사로 가는 차는 1시 5분에 떠나는 버스편이었다. 오전중에 읍내로 나왔다가 장을 보거나, 만날 사람 만나고 보따리들을 하나씩 갖고 집으로 돌아가는 농민풍의 승객들이 대부분이었다. 충청도의 삼수갑산쯤으로 생각하고 왔는데 이 고장에서는 청양은 갈데 없는 대처다. 칠갑산이란 가요에 나오는 아낙네의 모습을 찾아내기란 힘들다. 모두 표정이 밝고 순박하여 삶의 무게에 짓눌려 근근히 하루하루를 버텨내는 듯한 몰골을 발견하기는 힘들다. 딸아이가 전문학교에 들어갔다고 기뻐하는 아주머니를 둘러싸고 얘기꽃을 피우는 모습은 이 맘때쯤이면 우리나라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풍경 그대로다. 80순이 훨씬 넘은 듯 보이는 자그마한 체구의 할머니 한분이 머리를 곱게 빗어 뒤꼭지에서 마무리 한 거며 두꺼운 안경너머로 너무도 초롱초롱한 눈망울을 굴리며 앞자리에 앉아 가는 표정이 앳되고 곱고 순박해 보여 그의 장수의 토양이 된 청양의 물과 공기가 금방 큰 친화력을 가지고 피부에 접근해온다. 청양에서 장곡사로 가는 길은 칠갑산 산자락을 일부 타고 넘고 골짜기를 내려가곤 하는 길인데 며칠전 내린 눈으로 산그림자 때문에 녹지않은 길바닥이 군데군데 도사리고 있다. 그러나 경기지방에 비해 계절풍탓에 눈이 오는 날이 적지 않은 이곳 칠갑산에 적설량이 신통하지 않은 이유를 알 수가 없다. 그 원인은 서울에서 이곳에 내려오면 뭔가 훈훈해지는 기온차이 때문이 아닐까 쉽다. 이날은 장곡사로 가는 사람은 나밖에 없어 길을 물어보았더니 꼼꼼하게 챙겨주는 초로의 아저씨도 표정이 순박하다. 장곡리 버스 정류장에서 내려 산록에 보이는 장곡사까지는 일부 자료에 1시간 30분이라고 되어 있어서 은근히 걱정이 되었지만 이 아저씨나, 버스에서 함께 내린 학생풍의 젊은이에게 물어보아도 모두가 한가지로 30분이면 갈 수 있다고 한다. 왜 1시간이란 시간차가 나는 것일까? 시골사람들이 대충말한대로 거리를 잡았다간 낭패보기 일쑤라는 말이 산꾼들 사이에서 일반론으로 통하고 있다. 그런데 도시적 감각일 수밖에 없는 나의 눈에는 적어도 1시간 정도는 걸릴 거리로 보였다. 그 자료를 기록한 사람도 아마 그렇게 생각하여 1시간 30분이 걸린다고 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장곡사 일주문 아래의 장승공원에서 사진을 찍으며 몇분을 더 소비했는데도 장곡사까지는 30분이 조금 더 걸렸을 뿐이어서 나는 속으로 은근히 놀랐다. 도시적 감각은 시골에서는 과장된 결과를 낳게 한다는 것을 실증하게 된 셈이다. 장곡리마을을 걸어 들어가면 널찍한 광장이 나타나는데 광장의 한쪽은 장승공원이 차지하고 있다. 기기묘묘한 모습에다 크기도 다양한 장승들이 갖가지 표정으로 한데 모여 있는 독특한 공원이다. 세워져있는 장승들은 전래된 장승들이 아니라 새로운 상상력으로 조형해낸 현대식 장승들이 많다. 칠갑산에 장승공원이 들어서게 된 내력은 칠갑산 주변 10여개 마을에서 오랫동안 옛날그대로의 장승축제가 이어져온 데 기인한다. 최고의 장승문화 보존 지역으로서 이름을 얻은 청양군이 군의 대표적인 산인 칠갑산 입구에 장승공원을 설립하게 된 배경이다. 이 공원은 99년에 설치되었다. 공원을 지나 넓은 공터를 횡단하면 장곡사 일주문이다. 칠갑산 정상에서 서북쪽으로 뻗은 능선은 칠갑산을 남북으로 분할하는 역할을 할 정도로 뚜렷한 능선이다. 이 능선의 남쪽이 장곡리, 북쪽이 광대리이다. 장곡사로 올라가는 길에서 본 칠갑산 능선은 능선주변에 소나무숲이 울창하고 산록에도 소나무와 활엽수가 뒤섞여있어서 정갈한 느낌을 주지만 높은 산이라는 느낌을 주지는 않는다. 그리고 포근한 햇살이 비쳐선지 눈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 이곳 산들에 의외로 적설량이 적은 것은 지형적으로 눈이 내리는 날은 많지만 본격적으로 눈이 내린 날은 적다는 의미로 여겨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저기압에 의한 강설) 경기도 지방에 금년에 내린 눈은 응달엔 거의 30cm가량이 쌓여있는 것을 감안하면 이곳 산의 적설량은 너무 적었다. 산의 고도차와 관계없이 눈자체가 적게 온 것이 분명해보인다. 장곡사에 닿기전 좌측 능선과 지계곡이 올려다보이는 공터노천에 무수히 많은 독이 모여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관광객을 상대로 된장,간장,청국장을 파는 노천 가게이다. 1됫박에 10000원꼴. 칠갑산의 청정한 물과 대기, 태양으로 빚어선지 구수한 냄새가 주위를 진동시킨다.
상대웅전 마당에서 내려다 보니 하대웅전 일대의 당우들이 마치 글공부하는 아이들이 머리를 맞대고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차랑차랑한 햇볕이 지붕의 기왓골 마다에 내리부어지고 있는데 주위엔 느티나무거목들이 낙엽을 떨구고 절주위의 분위기를 투명하게 하는데 한목 거들고 있다. 이러한 분위기는 지난번 광덕사에서도 느낀 것이지만 한기 속에 찾는 겨울 산사(山寺)의 진정한 매력이 아닐 수 없다. 절구경을 끝내고 녹다 남은 눈이 그대로 덮여있는 경삿길로 내려가서 물한잔을 마신 뒤 산행을 위해 송림이 우거진 능선으로 올라선다. 노송이 울창한 능선길은 운치도 있고 바람소리도 신선한데다가 간혹 은은한 송진냄새도 나서 기분이 좋아진다. 절에서 정상까지는 4.7km쯤 된다. 주능선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주능선과 합류한 뒤에도 간혹 활엽수림이 끼여들긴 하지만 전체적으로 송림은 계속되고 능선은 완만한 길과 은근한 경삿길을 가면서 정상에 이를 때까지 줄곧 상승의 지속적인 곡선을 그린다. 작은 산임에 비해 능선은 꽤 길고 완만하면서도 그런대로 굴곡은 다양하여 지루한 감이 조금도 들지 않는다. 깊숙이 패어든 광대리쪽 골짜기가 나목숲 사이로 내려다 보이거나 장곡리계곡이 급경사 산록 아래로 어림되거나 하면 눈이 살짝 덮인 경삿길이 나타나곤 한다. 경사진 곳엔 대개 계단을 만들어놓은 것이 대부분이다. 상당히 급한 경삿길과 두드러지게 뾰죽한 능선봉이 없는 것은 아니다. 정상이 건너다 보이는 송림우거진 봉우리가 그것이다. 그러나 봉우리를 올라가지 않고 옆을 타고 횡단한다. 이 봉우리에서 내려서서 안부로 나온뒤 다시 작은 봉우리 아래로 난 평탄한 길로 나오면 마치 겨울이 끝나버린 듯이 바람도 자고 햇볕이 유난히 포근한 곳이다. 급경사 산록엔 키큰 떡깔나무 숲이 울창하고 작은 칠갑산에서 장곡리로 뻗은 능선이 이내속에 희미해질 때까지 긴 파고를 서서히 누그러뜨리는 사이로 아름다운 골짜기가 전개되지만 여름철에는 이런 조망을 즐길 수는 없을 것이다. 나목 사이로 깊이 패인 계곡이 내려다보이는 식의 조망을 여름에 기대할 수는 없을 것 아닌가? 먼 능선, 가까운 산록과의 사이엔 파르스럼한 이내가 농담을 더해가다가 마지막엔 서쪽의 하얀 광망의 바다속에 용해되어 버리고 만다. 그쪽에 높은 산봉우리가 희미하게 보이는데 아마 성주산(680m)과 성태산624m)이 아닐까 싶다. 오후 4시를 지나고 있는 이 시간 칠갑산의 정적은 간혹 하늘을 찢을 듯 날카로운 소리를 내며 날아가는 제트기의 굉음이 있을 뿐 너무도 고요하다. 칠갑산 계곡은 복잡하다. 하나의 산에서 7개의 계곡이 나뉘는 것은 칠갑산 말고는 별로 없을 듯하다. 높은 산이라면 혹시 그럴 수도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채 600m가 안되는 산에 계곡이 일곱이나 되기는 어려울 것이다. 장곡리계곡, 광대리계곡, 냉천골, 지천골계곡, 작천골계곡, 적곡리계곡, 천장리계곡등이다. 바위가 많은 눈이 덮인 능선길을 지난 다음 드디어 널찍한 헬기장인 있는 정상에 도착한다. 정상의 조망은 광활하다. 표고차이가 230m나 되는 오서산의 조망과 별차이가 없는 듯하다. 서쪽 오서산 방향에서 부터 가로로 중첩하여 물결치는 산맥들이 이내로하여 멀어질수록 하나의 산줄기가 하나의 파장과 파고를 길게 거느리며 강열하게 몸부림치며 뿔뿔이 달아나려고 했다. 갑자기 정지용의 "바다2"가 생각난 것은 산줄기들의 파도가 바다의 파고를 연상시켰기 때문이다. "바다는 뿔뿔이 달아나려고 했다. 푸른 도마뱀떼같이 재재발렀다. 꼬리가 이루 잡히지 않았다."는 싯구가 연상시키는 이미지들이 거기 칠갑산 서쪽에 펼쳐지고 있었다. 561m의 산봉우리에서도 이렇게 장대한 조망이 가능할 수 있구나 싶다. 1시30분에 산행을 시작하여 4시 38분에 정상도착. 이것은 장곡사에서 촬영하느라 많은 시간을 보냈기 때문에 늦어진 것. 보통 1시간 20분 정도 걸린다. 정상에서도 꽤 오랜시간동안 촬영, 메모등 시간을 보내다가 5시를 조금 넘어 대치리로 뻗은 능선으로 내려선다. 정상에서 북릉으로 내려서면 비로소 칠갑산도 겨울산의 모습을 보인다. 유일하게 내리막길 내내 눈이 깔려 있었다. 급경사엔 로프줄이 매어져 있어서 미끄러질 염려는 없다. 이곳외에도 상당부분 눈이 깔리고 다져져서 꽤 미끄러웠으나 송림이 계속되고 산길도 꽤 넓어 신작로로 가는 기분이 든다. 그렇게 20분가까이 오니 자비정이란 정자가 서 있는 숲속이다. 천장호가 보이고 조망이 좋다는 "자비정기"가 옛날 누각처럼 누각 안쪽에 붙어 있지만 콘크리트 건물로 지어져 영 분위기가 어울리지 않고 주위엔 울창한 숲이 둘러싸고 있어서 조망이 좋을 것 같지도 않다. 이곳에서부터는 임도가 닦여져 있어서 산행은 끝난 듯한 느낌이 들지만 길은 꽤 멀어 한치리 고개까지 나오는데 시간이 좀 걸린다. 한치고개에 이르면 충혼탑이며, 콩밭매는 아낙네상, 조선조말 칠갑산 일대에서 의병활동을 했던 면암 최익현상 등 칠갑산에 의지하여 살다간 인물상들이 여기저기 보인다. 칠갑산의 내력을 오석에 깊이 새긴 명문비도 보인다. 한치고개아래 거대한 주차장이 있는 이유를 알 것 같다. 말하자면 청양정신의 고향이 바로 이곳이라는 느낌이 온다. 청양의 정신적인 유산이 만만치 않음을 보여주는 듯하다. 특히 면암의 곧곧한 인상이 서릿발처럼 매섭다. 그의 고고한 정절이 아니었더라면 나라가 숫제 넘어가는 험악한 시절을 후대에 들어 그냥 단지 잊어버리고만 싶은 세월로 간주해버렸을지도 모른다. 이러한 거인들이 있었기에 오늘의 우리가 가능해진 것이아닐까. 정상에서 여기까지 오는데 50분 가까이 걸렸다. 고개에서 도로를 따라 내려오면 주차장 가는 길이라는 이정표가 보인다. 이길은 계곡 아래로 나 있는데 10여분 걸으면 대형 주차장에 당도한다. 주차장에서 5분정도 내려오면 한치 마을이다. 6시 10분쯤 삼흥고속의 정산면에서 청양으로 오는 직행버스가 당도한다. 요금은 600원이었다. 청양에서 남서울터미널행 직행버스에 탑승한 것은 6시 50분이었고 서울에는 9시20분에 도착했다.
칠갑산 561 m [도] 충남 청양군 대치면 정산면 장평면
대중가요 `칠갑산'으로 일반에게 더욱 친숙한 칠갑산은 충남 청양군 대치면, 정산면, 장평면 등 3개면에 걸쳐 있는 높이 561m의 나지막한 산이다. 차령산맥에 솟아 있으며, 주위에대덕봉(472m) 명덕봉(320m)정혜산(355m) 등이 있다. '충남의 알프스'라 불릴 정도로 산세가 험하여 전사면이 급경사를 이룬다. 동남쪽의 잉화달천, 동북쪽의 잉화천, 서남쪽의 장곡천과 지천천, 서북쪽의 대치천 등이 흘러 금강의 상류로 유입한다. 수림이 울창하며, 머루·다래·자생란 등이 많다
칠갑산은 크고 작은 봉우리와 계곡을 지닌 명산으로 자연 그대로의 울창한 숲을 지니고 있다. 특히 칠갑산은 계절의 변화가 뚜렷하여 봄에는 산철쭉과 벚꽃으로 단장, 우아한 자태를 뽐내고 여름에는 울창한 천연림으로 현대인들의 지친 몸과 마음을 달래준다.또 가을에는 울긋불긋한 단풍으로 어우러져 금강산이 부럽지 않고, 겨울의 설경은 천상의 세계에 들어온 듯한 느낌으로 다가와 사시사철 등산객들에게 독특한 묘미를 전해준다. 백제가 사비(지금의 부여)로 천도하면서 사비성 정북방에 있는 칠갑산을 진산으로 여겨 제천의식을 행하였다. 그래서 산 이름을 만물생성의 7대 근원 七자 와 싹이 난다는 뜻의 甲자로 생명의 시원(始源)인 `칠갑산(七甲山)'이라 칭한 것으로 알려져있다.또 원래 칠악산(七岳山)에서 붙여진 이름이라는 설과, 금강 상류의 지천을 굽어보는 일곱장수가 나올 甲자형의 일곱자리 명당이 있어 칠갑산이라 불렀다는 설도 있다.지난 1973년 3월 도립공원으로 지정돼 오늘에 이르고 있다. 원시림을 보존하고 있으며, 명승지와 문화유적 등이 조화를 이루어 일대가 1973년 3월 총면적 32㎢의 칠갑산도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지천천과 잉화달천의 지류들에 의해 형성된 맑은 계곡이 주위의 기암들과 어울려 지천9곡(之川九曲)의 경승지를 이루었다. 산정에서 내려다보이는 거대한 수림이 장관을 이루며, 특히 봄의 벚꽃과 진달래가 아름답다. 고갯마루에는 면암 최익현의 동상과 칠갑정이라는 전망대가 있으며, 장곡천골짜기·냉천·새양바위·삼형제봉 등의 명소가 있다. 경치가 수려한 장곡천 골짜기의 절벽 위에는 청양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장곡사(長谷寺)가 있으며, 주변에 도고온천 등이 있다. 장곡사 경내에는 장곡사상대웅전(보물 제162호)·장곡사하대웅전(보물 제181호)·장곡사철조여래약사좌상부석조대좌(국보 제58호)·장곡사금동약사여래좌상(보물 제337호)·장곡사철조비로자나불좌상(보물 제174호) 등이 있다. 한치고개-정상-장곡사-송골에 이르는 6.9㎞ 코스와 율내동-정상-광대리-주정교에 이르는 등산로가 있다. 산정에서 내려다보이는 천장호 일대의 경치가 아름다우며, 천장호는 정산면·장평면·목면·청남면에 농업용수를 공급하고 있다. 북쪽 사면에 있는 대치(大峙)는 한치고개라고도 하는데, 산세가 험준하여 겨울철에 통제되는 경우가 많다. 1983년 개통된 대치 터널은 길이 455m, 너비 9.4m, 높이 6.65m의 2차선으로 터널이 개통됨에 따라 공주-청양 간 교통이 원활해졌다. 여관을 비롯한 숙박시설과 주차장·식당 등 편의시설이 갖추어져 있다. 북쪽에는 공주-청양을 연결하는 국도가, 서쪽에는 지방도가 각각 지나고 있다
대중교통 ) 서울남부터미널에서 1시간 간격으로 청양행 직행버스 운행 2) 칠갑광장(주차장)에서 장곡광장까지 운행하는 버스(10:30, 12:40, 15:30, 청양시내버스터미널 출발시간) 3) 청양에서 정산까지 시내버스 12회 운행, 20분 소요 (첫차 07:00, 막차 19:50,1시간마다 있음) 4) 청양에서 공주, 대전방면 직행버스를 타고 칠갑산 입구에서 하차 (* 시외버스터미널 : 041-943-2681, 시내버스터미널 : 041-942-2788)
서정리 구층석탑 청양군 정산면 서정리에 소재한 서정리 구층석탑은 보물제18호로 지정 관리되고 있는 탑으로 구조, 양식을 비추어 고려시대의 전형적인 탑이다. 현재는 절은 손실되고 탑만이 남아있지만 탑의 규모를 토대로 사찰의 규모는 9층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석탑은 지대석위에 아래층기단이 놓였는데 중간석 각면에는 2개씩의 유려한 안상이 배치되었다. 특히 제1층은 거대하나 제2층 이상은 감축되어 9층에 이르는 다층탑의 균형을 잘 잡은 모습과 창곡에 준발한 장관이 훌륭하다.
장곡사 칠갑산 남쪽 기슭에 자리 잡고 있는 가람으로 신라 문성왕 12년 (AD850년) 보조선사 체징에 의해 창건된 것으로 전하여 지며 이후 오랜 세월을 거치며여러차례 중수를 거듭했다. 국보 58호 장곡사철조약사여래좌상부석조대좌, 국보 300호 장곡사미륵불괘불탱화, 보물 162호, 181호인 상·하대웅전, 보물 174호 장곡사철조비로자나좌상부석조대좌, 보물 337호 금동약사여래불좌상, 유형문화재 273호 설선당등 전국적으로 보기드문 많은 문화재를 간직하고 있다.또한 장곡사는 다른 가람에서는 찾아볼수 없는 상·하대웅전을 가지고 있는것이 특징이며 약사여래기도 도량으로 유명하다. 귀중한 문화재를 많이 소장하고 있는 천년고찰로 전국에서 신도들과 관광객들이 많이 찾고 있다.
칠갑산 자연휴양림 칠갑산의 울창하고 아름다운 천연림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 청정한 삼림욕장으로 난방, 취사, 샤워가 가능한 통나무집 10동(100명 수용), 원두막 4동, 야영장 2개소(100명 수용), 강의실 1동, 전망대 1동 등을 갖추고 있으며 잔디광장, 산책로, 체력단련시설, 물놀이장 등의 편의시설을 갖추고 있다. 041-940-2429
모덕사 조선 후기 애국지사인 면암 최익현 선생의 영정을 모신 사우로 1914년에 건립되었다. 선생이 살았던 고택에 마련된 사우로 많은 장서를 보존하고 있는 장서각과 유물을 전시하는 전시관이 있다. 041-942-9222
다락골 줄무덤 화성면 농암리 다락골에 있는 천주교 신자들의 순교자 묘지. 대원군 집정 이후 천주교에 대한 탄압이 심할 때 당시 홍주감옥에서 순교한 신자들이 많았는데 그 친척들이 야간을 틈타 이곳으로 운구 암장한 것이라 한다. 한 분묘에 여러 사람을 줄줄이 모셨기 때문에 줄묘 또는 줄무덤이라 한다. 041-943-8123
561
충남 청양군 대치면
♣ 칠갑산(561m)은 크고 작은 봉우리와 계곡을 지닌 명산으로 자연 그대로의 울창한 숲을 지니고 있다. 1973년 3월 6일에 도립공원으로 지정되었고 면적은 32.542㎢으로 3개면에 걸쳐 있으며 주요 명소로는 정상, 아흔아홉골, 칠갑산장(최익현동상, 칠갑산노래 조각품등), 장승공원, 천장호, 장곡사, 정혜사, 자연휴양림, 도림사지, 두률성 등이 있다. 특히 칠갑산은 계절의 변화가 뚜렷하여 봄에는 산철쭉과 벚꽃으로 단장하여 우아한 자태를 자랑하고 여름에는 울창한 천연림이 현대인들의 심신을 안정시켜주며, 또한 가을에는 울긋불긋한 단풍으로 어우러지며, 겨울의 설경은 천상의 세계에 들어온 듯한 느낌으로 다가와 사시사철 등산객들에게 독특한 묘미를 전해주는 명산이다. 칠갑산은 7개의 등산로가 개발되어 있으며 각각 특성을 자랑하고 있어 각자에 맞게 등산코스를 선택할 수 있어 꾸준히 관광객이 늘고 있고, 대중가요 '칠갑산' 노래로 일반인들에게 친숙하다.
▶ 칠갑산의 유래 우리겨례는 옛부터 하늘과 산악을 숭앙하여 왔다. 백제는 이 산을 사비성 정북방의 진산(鎭山)으로 성스럽게 여겨 제천의식을 행하였다. 그래서 산 이름을 만물생성의 7대근원 七자와 싹이 난다는 뜻의 甲자로 생명의 시원(始源) 七甲山이라 경칭하여 왔다. 또 일곱 장수가 나올 명당이 있는 산이라고도 전한다. 충남 중앙에 자리잡은 칠갑산은 동쪽의 두솔성지(자비성)와 도림사지, 남쪽의 금강사지와 천장대, 남서쪽의 정혜사, 서쪽의 장곡사가 모두 연대된 백제인의 얼이 담긴 천년사적지이다. 시원한 계곡을 이루는 냉천골은 바위가 기묘하고 절묘한 수석과 자연 난을 감상할 수 있다. 칠갑산에서 발원해 들판에 나오기까지의 지천은 지천구곡을 이룬다. 지천구곡의 부여 낙화암에서는 멸종 위기에 처해있는 고란초도 볼 수 있다. 이밖에 국보 1점과 보물 4점을 지니고 있는 천년 고찰 장곡사는 칠갑산에 모여 있는 7개 기운의 중심이라고 소개되곤 한다. 칠갑산은 사철 뚜렷한 자기 색을 지니고 있지만 그 중에서도 봄에 보는 산이 유명하다. 산 전체에 야생 벚나무와 진달래가 지천으로 널려 있어 해마다 봄이 되면 온 산이 희고 붉은 빛으로 뒤덮인다.
비록 칠갑산의 산세가 험준하다고는 하지만 정상 바로 근처인 산장휴게소까지 차편이 준비되어있어 휴게소에서 정상까지 가벼운 마음으로 보행할 수 있으며 등산로가 마련돼 있어 가족단위 등산객에게도 적당하다. 정산면, 목면, 천남면 등 인근 지역에 농업용수를 공급하기 위해 만들어진 천장호는 칠갑산 허리에 만들어진 인공호수로 최근 관광휴양지로 각광받고 있다.
▶칠갑산의 진달래 군락은 장곡산장을 출발해 사거리 안부에서 정상으로 오르는 구간에 펼쳐진다. 이곳의 남쪽 사면에 방대한 군락을 이루고 있다. 산행기점은 청양읍 장곡리의 장곡산장과 정산면과 청양읍을 가르는 한치고개다. 봄철 진달래 산행에는 장곡리에서 출발, 버스편이 많은 한치고개를 하산지점으로 삼는게 좋다. 청양에서 군내버스를 이용하면, 15분만에 장곡리 장곡산장에 이른다. 이곳에서 식수를 보충하고 산장 뒤로 나있는 오솔길을 오르면 장곡사에 이른다. 신라 문성왕 12년 보조선사가 창건했다는 장곡사에는 대웅전을 포함해 세점의 보물이 남아있다. 산행은 대웅전 아래의 작은 계류에서 시작한다. 계류를 따라 5분여를 올라서면 잡목지대를 지나 진달래가 군락을 이룬 주능선에 올라붙게 된다. 주능선에는 제법 널찍한 길이 이어지며 이내 465봉 아래의 북쪽 사면을 타고 이어진다. 진달래가 믾은 465봉 남쪽 사면에서 정상까지는 마냥 꽃길을 걷는 느낌이다. 이 능선길을 따라 30분 정도 올라서면 정상과 544봉인 삼형제봉을 잇는 안부 전의 삼거리에 이르는데 왼편(동쪽)의 급한 오르막이 안부에 닿는 길이다. 안부에서 왼편(북쪽)길은 칠갑산 정상에 오르는 길로 다소 경사가 급해, 비가온 후에는 안전사고에 주의해야 한다. 5분 정도 오르면 평평한 공터같은 정상에 이른다. 잔디가 깔린 정상은 주변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다. 북쪽으로는 대덕봉(472m)이 들어오고 용틀임하듯 굽이치며 지천천이 백마강에 흘러든다. 동남쪽은 부여평야이며 청양읍의 시가가 북동쪽의 남산 아래로 이어진다. 서쪽으로는 오서산(791m)이 눈에 들어오고 천수만이 뿌연 하늘아래 그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하산은 교통이 편한 한치고개 쪽으로 한다. 잠시 내리막을 내려서면 완만한 능선길이 이어지고 10여분만에 우측으로 내리막길이 나타난다. 이 길은 천장호가 있는 천장마을로 하산하는 길이다. 433봉으로 가려면 계속 북쪽 능선을 따라야 한다. 길은 능선을 따라 가다 이내 왼편의 서쪽 사면으로 평평하게 이어진다. 서쪽 사면을 가르며 이어지던 하산로는 정상을 떠난 지 15분만에 왼편의 널울마을로 하산하는 길이 갈라지고 북쪽으로 방향을 튼다. 이 우회로는 잠시 계곡으로 내려서는 듯하다 325봉으로 이어지는 능선을 넘어 435봉 전의 임도로 떨어지게 된다. 이 임도는 널울마을과 율내동을 연결하는 것으로 다시 고개로 올라, 능선을 쫒는 것이 길을 잃지 않고 한치고개로 내려서기에 좋다. 완만한 능선을 따라가다 보면 평평한 공터같은 433봉에 올라서는 데 발아래 청양과 공주를 잇는 36번 국도가 펼쳐진다. 433봉에서 한치고개까지는 완만한 내리막이며 꿈틀꿈틀 휘어지는 도로를 30분 정도 내려서면 한치고개에 이른다. 장곡리 장곡산장 앞 주차장에서 465봉에 오른 후 정상을 거쳐 한치고개로 하산하는 데는 3시간에서 3시간 반이면 충분하다.
▶ 진달래 포인트 칠갑산의 진달래는 장곡산장에서 465봉을 거쳐 정상에 이르는 구간에 큰 군락을 이루고 있다. 이 능선의 남북쪽 사면을 채우고 있는 진달래는 아흔아홉계곡을 오르며 볼 수도 있지만 이보다는 정상이나 삼형제봉에서 능선을 뒤덮은 진달래를 감상하는게 칠갑산 진달래 산행의 지름길이다.
▶ 산장로 코스 대치터널 위 칠갑사장에서 산정에 이르는 산장로는 가벼운 가족산행 코스로 인기 높다. 칠갑산장이 해발 310m. 정상이 560m로 3km 거리에 표고차가 고작 250m에 불과하므로 매우 완만한 경사다. 게다가 3분의 2 지점의 자비정까지 널찍한 임도로 연결되고, 그후 1km는 운치 좋은 아름드리 송림이나 부드러운 파스텔톤의 잿빛 줄기를 가진 굴참나무 숲길이다. 마지막 약 100m 구간은 밧줄이 매어진 급경사 바위 섞인 길로서 약간의 드릴과 위기감으로 가족간 손을 저절로 잡게 되는 매력이 있다. 정상까지 올랐다가 내려오는 데는 넉넉잡아서 2시간30분이면 충분하다. 여러가지로 가족산행에 안성마춤인 셈이다. 이 코스는 봄 산행이 특히 권할 만하다. 대치터널 위의 옛 도로변을 따라 70 - 80년생 아르드리 벚나무가 일제히 꽃을 피워 벚꽃 터널을 이루기 때문이다. 차를 타고 보아도, 걸어 보아도 좋다. 또한 산정에 이르는 임도변을 따라서도 10 - 20년생의 벚나무가 서서 벚꽃길을 이룬다. 등산로 입구는 칠갑산장 왼쪽 옆이다. 칠갑산장을 떠난 지 40분쯤 되면 이도가 끝나고 자비정이란 노란 페인트 칠을 한 2층 정자각이 나선다. 2년 전에 세운 것인데, 숲속에 지어서 정자각 위에 올라도 주변 조망은 그리 신통치 못하다. 자비정에서 송림과 굴참나무 숲길에 이어 밧줄이 매어진 급경사 길을 지나면 곧 정상이다. 칠갑산장에서 천천히 걸어도 1시간 20분 이내에 정상에 이를 수 있다. 칠갑산 정상에서는 맑은 날이면 멀리 동쪽으로는 계룡산,서쪽으로는 오서산 모습이 어슴푸레하게 보인다. 청양의 등산꾼들은 산장로가 너무 번잡하여 그들만의 은밀한 루트로 오르는데, 바로 감나무가든(0454-943-0892)에서 시작하는 능선길이 그것이다. 대치터널 서쪽 약 2km 지점의 도로 남쪽에 있다. 주차공간이 널찍하고 산에 놓아 키우는 닭요리의 맛도 좋은 편이다. ▶ 칠갑산 등산로 전체를 통틀어 가장 가파른 길이다. 때문에 이 길은 기존의 코스에 싫증이 난 칠갑산 팬들이 하산길로 애용한다. 칠갑산 정상 공터 서쪽에 보면 각 코스별 거리를 적은 안내팻말이 있다. 이 팻말 왼쪽 옆의 내리막길이 장곡로 및 사찰로, 휴양로의 초입부다. 이 길로 접어들어 작은 봉을 지난 뒤 200m쯤 내려가면 삼거리. 여기서 왼쪽 아래 공터가 바라뵈는 길이 삼형제봉으로 가는 길이다(안내팻말 참조). 안부에 이어 긴 오르막을 지나 봉우리를 하나 넘으면 삼형제봉(혹은 작은칠갑산) 정상. 헬기장이 닦여 있고 '정상 1.3km, 장곡리 3.7km, 지천리 2.6km'라고 쓰인 안내팻말도 서 있다. 팻말 옆으로 난 길로 내려서면 곧 상당한 급경사 길이 시작된다. 10분 내려가면 지천리 갈림길목을 알리는 팻말이 선 곳에 이른다. 이곳이 이를테면 장곡로와 지천로가 나뉘는 지점이다. 가파른 내리막길은 그후로도 20분쯤 계속된다. 완경사로 길이 바뀐 지 30분쯤 지나면 울창한 송림 가운데의 작은 봉 위애 다다른다. 직진로를 굵은 나무 등으로 막아놓은 이곳에서 오른쪽으로 새로 낸 길이 보인다. 그러나 새로 낸 길이어선지 해동기가 되며 신발이 흙두갑을 이루는 한편, 겉은 녹고 속은 얼어붙은 상태여서 매우 미끄럽다. 이 길을 다 내려오면 표고재배막. 비닐하우스 사이로 하여 장승공원에 다다른다. 도로변에 이 장곡로의 초입을 알리는 팻말('정상 5km. 등산로 입구 →')이 서 있다. 이 장골로 하산에는 1시간30분 - 2시간 소요된다.
▶ 휴양로 - 천장로 휴양로 출발점은 칠갑산 자연휴양림이다. 우선 휴양림 들목을 잘 찾아야 한다. 대치터널 서쪽 끝에서 청양쪽으로 4.5km 달리면 신설중인 도로의 대형 교량 아래로 휴양림 입구임을 알려주는 작은 팻말이 도로 왼쪽에 뵌다. 비포장도로를 타고 1km 남짓 들어가면 자연휴양림이다. 직진 도로는 차단돼 있으며, 왼쪽 아래쪽의 대형 주차장으로 내려가면 된다. 주차장 건너편의 청소년수련원도 자연휴양림 시설의 일부로서, 이 건물 안에 휴양림관리사무실이 있다. 입산료는 받지 않으나 주차료는 3,000원씩 받는다. 수련원 앞을 지나 체육시설지구 끝까지 가면 작은 풀장이 있는데, 이 풀장 왼쪽으로 돌아 계곡으로 드는 길이 나 있다. 일단 계곡 안에 들어 좌우로 물줄기를 두어 번 건넌 뒤 낙엽송 숲속을 지나 골 오른쪽 비탈로 비스듬히 질러 오르게 된다. 수련원에서 20분쯤 걸은 뒤 다다른 안부에는 작은 스테인리스팻말이 서 있다. 그후 줄곧 능선 등날을 따라 길이 나 있다. 안부를 떠나 30분 뒤 다다르게 되는 봉 위에는 돌무지가 쌓여 있는데, 이는 작년 제1회 칠갑산산악마라톤 대회시 표지삼아 쌓아둔 것이다. 이 봉으로 다가간 방향이나 경사로 보아 직진 방향의 완경사 능선이 제 길인 것같지만, 아니다. 왼쪽의 직각방향으로, 급경사로 내리달린 길이 정상으로 가는 길이다. 20여 분 뒤 만나는 네 갈래 길목에서 오른쪽은 장곡사 길. 그러나 그후 300m쯤 더 가면 임도처럼 널찍한 장곡사 길을 만나게 된다. 휴양로의 상부를 이루는 사찰로가 시작되는 것이다. 물론 정상은 이곳에서 왼쪽 방향이다. 이곳 휴양로 끝지점까지의 송림은 좀 키가 작지만 이후부터 사찰로는 아름드리의 시원한 송림길이다. 칠갑산 전체를 통틀어 등산로가 운치 있기로는 이 사찰로가 최고라 할 것이다. 정상 약 250m 전의 삼거리에서 오른쪽 길은 삼형제봉 길. 오른쪽 50m 아래에는 널찍한 공터가 있어 늘 점심 도시락을 푼 등산인들 모습이 보인다. 경사가 다소 급하고 바위가 좀 드러난 능선길을 오르면 이윽고 칠갑산 정상. 평일이라도 반드시 다른 등산인들의 모습이 보이는 곳이다. 널찍한 헬기장이 닦인 정상 공터 주변은 나무를 쳐내 조망을 좋게 했고 커다란 등산로 안내판, 벤치,산불감시초소 등이 있다. 정상에서 청양 등산꾼들이 애용하는 제일 하산로인 천장로는 동쪽 산불감시초소 옆으로 이어진다. 30m 아래의 무덤 옆 작은 평지는 늘 그늘이 져서 여름철 휴식처로 그만이다. 이곳 평지에서 오른쪽 길이 도림저수지로 가는 도림로, 경사 급한 직진 코스가 천장로 초입이다. 완경사와 급경사의 오르내리막길이 반복되는 천장로의 중간중간 갈림길목마다에는 안내팻말이 서 있으므로 별로 헷갈릴 염려가 없다. 설혹 능선을 벗어났다고 해도 20 - 30분 이내에 36번 국도변, 아니면 천장리 계곡의 임도를 만나게 될 터이니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길은 능선 끄트머리에 이르며 다소 복잡해진다. 잘 가꾼 합장묘를 지나면 별다른 표지가 없는 갈림길목이 나오는데, 나중에 만나는 길이다. 능선 따라 직진하도록 낸 길은 그늘막까지 갖춘 벤치 시설이 능선 끄트머리에 돼 있기 때문이다. 이곳에서 천장호를 바라보는 멋이 그런대로 좋다. 이곳에서 10분 뒤 또 다시 사거리가 나선다. 이곳에도 팻말이 서 있으며, 그 5분 뒤에는 비석과 큼직한 제단, 석주까지 갖춘 큰 무덤이 나온다. 이 묘에 다다르기 50m 전의 길가에는 산신에게 먼저 고하는 제단이 등산로 옆에 마련돼 있어 흥미를 끈다. 이 무덤을 지나면 길은 더욱 갈래가 많아진다. 천장호 푸른 수면을 내려다보며 호수의 방죽으로 바로 떨어지고 싶으면 왼쪽 길만 택하면 된다. 이곳 천장호 안까지 총 10km에 4시간이면 된다. 도중에 샘은 없으므로 식수를 챙겨간다. 천장호 방죽의 서쪽 끝에는 지금은 사용하지 않는 흰색 폐 건물이 한 동 서 있으며, 그 왼쪽 옆으로 등산로 입구임을 알려주는 팻말이 있다. 지금까지의 코스를 역으로 올라도 된다.
○ 천안논산간고속도로 탄천IC - 40번 국도 - 625번 지방도로 - 645번 지방도로 - 칠갑산도립공원 ○ 경부고속도로 천안I.C - 온양 - 예산 - 청양(대치터널 좌측) 칠갑산 대치터널 입구에서 좌화전하여 정상근처인 한치고개로 오른다. 차 한두대가 겨우 스쳐 지나갈 정도로 좁은 산길로 한참
칠갑산 자연휴양림
위치 : 충청남도 청양군 대치면 광대리 관리사무소 041-943-4510
개요
칠갑산 자연휴양림은 칠갑산 서쪽에 위치해 있다. 산막은 별로 볼게 없지만 숲이 울창하며, 특히 체육시설이 잘 갖추어져 있다. 울창한 송림숲을 따라 칠갑산 정상까지 오르는 등산로가 있으며, 숲속 곳곳에는 원두막이 세워져 있어 시원하게 휴식을 즐길 수 있다.
시설물
산막 : 10평형(보통 3동), 10평형(특실 3동), 13평형(1동), 20평형(1동), 24평형(1동), 25평형(1동). 침구류·샤워시설·가스렌지·냉장고·TV·220V 콘센트 구비. 취사도구 없음. 산막 앞에 차를 댈 수 없음. 야영장 : 2개소 매점 : 청소년수련원 내에 매점과 식당이 있음. 개점시간은 10:00∼22:00. 체육시설 : 미니축구, 배구, 농구, 족구, 테니스, 배드민턴, 게이트볼, 200석 규모의 관람석 캠프파이어 : 미리 화목을 준비해 가야 함. 기타시설 : 물놀이장(샤워실·탈의장 없음), 어린이놀이터, 정자(2동), 조류사육장
교통
승용차편 경부고속도로 천안 인터체이지→아산시→유구읍→천장호→대치터널→청양 방면 4.5㎞→대형 교량 →휴양림입구 작은 팻말→비포장도로→약 1㎞→자연휴양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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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곡사는 충남 청양 칠갑산에 있는 사찰로 신라 후기 보조국사가 세웠다고 한다. 자세한 연혁은 전하지 않으나 조선 정조 1년(1777) 고쳐 짓고 고종 3년(1866)과 1906년, 1960년에 크게 고쳐지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 절은 지형을 따라 위아래에 2개의 대웅전이 있는 특이한 배치를 하고 있다. 상·하 대웅전은 서로 엇갈리게 배치되었는데, 상대웅전은 하대웅전보다 훨씬 높은 곳에 자리잡고 있다.
상대웅전은 앞면 3칸·옆면 2칸 크기이며, 지붕은 옆면이 사람 인(人)자 모양인 맞배지붕이다.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장식하여 만든 공포가 기둥 위와 기둥 사이에도 있는 다포 양식으로 특이한 양식을 보이고 있다. 건물 안쪽 바닥에는 전돌을 깔았으며, 그 중에는 통일신라 때 것으로 보이는 잎이 8개인 연꽃무늬를 새긴 것도 섞여 있다.
지붕 처마를 받치는 부재들의 짜임수법이 특이하여 건축사 연구에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으며, 장곡사철조약사여래좌상부석조대좌(국보 제58호)와 장곡사철조비로자나불좌상부석조대좌(보물 제174호) 등 귀중한 문화재를 보관하고 있다.
장곡사에는 특별함이 있다. 다른 절에서는 도저히 찾을 수 없는, 유래가 어찌 되었는지 절에 계시는 스님도 잘 모르는 그런 특별함이 있다. 바로 대웅전이 둘이라는 것인데, 그 대웅전도 사실 대웅전이라고 하기에 좀 난감한 면이 없지 않아 있다. 아래 있어 하대웅전이라고, 그보다 높은 곳에 있어 상대웅전이라고 부르지만 이상하게도 두 대웅전 모두 석가모니불을 모신 게 아니라 하대웅전에는 금동약사여래불을 상대웅전에는 철조비로자나불과 철조약사여래불과 소조아미타불을 모셨다. 사실 장곡사를 찾는 이유 중 중요한 것이 바로 이 대웅전 때문일 것이다.
상대웅전에서 내려다 본 장곡사 전경
칠갑산 등산로에서 바라 본 장곡사전경
장곡사 일주문
운학루는 옛날 삼곡사(마곡사, 장곡사, 운곡사)의 하나인 운곡사에서 옮겨온 것이라고 한다. 운곡사는 지금 폐사되었다.
운학루 예전엔 천왕문으로 사용
장곡사 상대웅전 전경
상대웅전
보물 제162호 고려시대 목조건물
장곡사 경내의 언덕 위에 있는 고려시대 목조건물. 보물 제162호. 평면구조는 앞면 3칸, 옆면 2칸으로 맞배지붕의 건물이나 근세에 들어와 개수했기 때문에 많이 변형된 것으로 짐작된다. 높은 돌기단 위에는 자연석의 원형 초석을 바탕으로 배흘림이 뚜렷한 기둥을 세웠다. 기둥 위에는 주두(柱頭)를 얹고 포작(包作)을 짜올렸으며 기둥과 기둥 사이에는 평방(平枋) 없이 창방(昌枋)만 설치하고 그 가운데에 공간포(空間包)를 하나씩 배치하여 주심포(柱心包)와 다포(多包)가 절충된 양식을 보여준다. 공포는 외일출목(外一出目)이며 특히 굽받침이 달린 주료(柱料)와 첨차(
遮) 형식은 고려시대 주심포 계통의 건물에서 보이는 고식이지만 쇠서[牛舌] 위에 연꽃을 조각한 것과 보아지[樑奉] 형식은 조선 중기 이후의 목조건축에서 보이는 수법이다. 건물의 앞면에는 가운데 칸에 3짝의 살문을 달고, 양 옆 칸에는 2짝의 정(井)자 살문을 달았으며 다른 면은 회벽으로 막았다. 내부에는 고주(高柱)가 없고 다만 대들보 위에 동자주(童子柱)를 세워서 종보와 종도리를 받치고 있으며, 중앙 및 동북쪽에는 통일신라시대의 철조약사불좌상과 철조비로자나불좌상이 안치되어 있다. 천장은 판자로 짠 우물천장으로, 후대에 가설한 것으로 보인다. 바닥에는 방전(方塼)을 깔았는데 신라시대에 제작된 것으로 보이는 연화문전(蓮花紋塼)도 섞여 있다.
상대웅전 배흘림기둥
상대웅전 처마와 공포
장곡사 상대웅전 어칸문
장곡사 상대웅전 창방 + 주두 (오목굽)
상대웅전 가구 연등천정이다
칠갑산 장곡사 상대웅전의 方塼 (연화문)
상대웅전에는 부처님이 세 분 계신다. 사진의 왼쪽에 계신 분이 비로자나불이고 오른쪽이 약사불이다. 왼쪽의 아미타불은 사진에 나와있지 않다. 사진의 두 부처님은 모두 철불이신데 지금은 완전히 금을 씌워서 재료가 무엇인지 육안으로는 잘 구분이 되지 않는다.
장곡사 상대웅전 철조비로자나불좌상부석조대좌 보물 제 174호
장곡사 상대웅전에 철조약사불좌상부석조대좌와 함께 봉안되어 있는 통일신라말 또는 고려초의 철불좌상. 보물 제174호. 높이 불신 61cm, 대좌 165cm. 이 불상은 높은 대좌 위에 결가부좌한 자세로 앉아 있는데 하체에 비해 상체가 약간 긴 편이어서 다소 어색한 느낌을 주며, 전체적으로 짙은 호분(胡粉)이 칠해져 있어 세부표현이 명확하지 않다. 나발로 표현된 머리 위에는 낮은 육계가 얹어져 있고, 얼굴은 거의 3각형으로 눈이 작고 아래로 약간 처져 있어 순진한 인상을 주지만 생동감이 전혀 없다. 불신도 마찬가지로 각이 진 어깨와 밋밋하게 처리된 가슴과 허리, 꼿꼿하게 앉아 있는 경직된 자세, 형식화된 우견편단(右肩偏袒)의 옷주름 표현 등에서 위축되고 빈약한 느낌을 준다. 두 손은 지권인(智拳印)을 하고 있어 비로자나불임을 알 수 있다. 대좌는 가늘고 긴 간주석(竿柱石)이 있는 석조대좌로 원래는 석등대석(石燈臺石)이었던 것을 후대에 대좌로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 목조광배는 철조약사불좌상부석조대좌와 마찬가지로 전신을 감싸고 있는 주형거신광배로 후대에 만들어졌으며 색채가 아름답게 남아 있다.
칠갑산 장곡사 상대웅전 철조비로자나불좌상부석조대좌 보물 제 174호 ( 대좌는 석등의 ! )
철조약사여래좌상부 석조대좌
국보 제58호. 통일시라시대. 쇠로 만들어짐
충청남도 청양군 칠갑산에 자리잡은 장곡사 상대웅전(보물 제162호) 안에 모셔져 있는 철불좌상으로, 목조광배와 석조대좌를 갖춘 특이한 불상으로 현재 왼쪽 무릎과 양 손의 일부가 보수되었으며 전체적으로 호분이 두껍게 입혀져 원래의 모습에서 많이 변형되었다.
머리 위에는
상투 모양의 머리(육계)가 아담하게 표현되어 있고, 얼굴은 둥글고 단아한 모습이다. 신체는 건장하고 당당한 편이지만 양감이 풍부하지 않고 탄력적인 부피감도 줄어 들어 9세기 후반에 만들어진 불상임을 알 수 있다. 오른손은 손끝이 땅을 향하도록 하고 있으며, 무릎 위에 놓인 왼손에는 약항아리가 얹혀 있었다고 하지만 지금은 없다. 오른쪽 어깨를 드러내고 왼쪽 어깨만을 감싼 옷은 느슨하게 처리되었고, 옷주름 또한 드문드문 표현되었다.
법의는 우견편단으로 걸쳤는데, 얕은 선각으로 처리된 옷주름은 몸에 밀착되면서 흘러내려 결가부좌한 두 다리 사이에서 부채꼴 모양의 주름으로 마무리되었다. 이러한 옷주름 표현은 8세기 중엽의 석굴암 본존불을 비롯한 통일신라시대 불상에 많이 나타나는 특징을 형식적으로 따른 것이다. 오른손은 무릎 밑으로 내리고 왼손은 다리 한가운데에 올려놓은 항마촉지인(降魔觸地印)을 하고 있으나, 이전에는 왼손에 약합이 놓여져 있어 약사불이라고도 불렀다.
4각형의 대좌는 불상보다 훨씬 장엄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상·중·하 3단 형태의 이 대좌는 하대가 넓고 높은 반면에 중대와 상대는 상대적으로 낮고 작은 편이다. 바닥돌은 매우 넓은 편인데, 사방 모서리에 기둥을 세운 흔적이 있어 불상을 모시던 공간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하대에는 엎어 놓은 연꽃무늬를 새기고 각 모서리에는 귀꽃을 큼직하게 조각하였다. 중대의 각면에는 큼직한 눈모양의 안상(眼象)을 새기고, 상대에는 활짝 핀 연꽃무늬를 조각하였다.
중대석은 각형과 호형(弧形)의 5단 받침 위에 놓여 있고 각 면에는 큼직한 안상이 2개씩 새겨져 있다. 상대석은 중대와 하대에 비해 현저하게 낮으며 앙련과 복련이 받치고 있다. 목조광배는 불신 전체를 감싸고 있는 주형거신광배(舟形擧身光背)로 나중에 만들어진 것이며 연꽃무늬와 불꽃무늬 등에 색채가 선명하게 남아 있다. 이 불상은 근엄한 얼굴표정이나 비교적 당당한 체구, 부채꼴 모양의 옷주름 표현 등에서 전성기 통일신라시대의 불상양식을 이어받은 통일신라 말기 또는 고려 초기의 조각으로 추정된다.
광배는 원래 돌로 되었을 것이나 파손되어 조선시대에 나무광배로 대체한 것 같다. 광배 중심부에는 꽃무늬를, 테두리에는 불꽃무늬를 새기고 있어 신라말과 고려초에 유행하던 광배를 모방하여 만든 것으로 여겨진다.
이 불상은 특이한 탑 모양의 대좌와 감실형의 구조, 그리고 단아한 철불양식을 보여주는 9세기 말 양식을 계승한 10세기 초의 뛰어난 불상으로 평가된다.
화강암으로 된 사각형 대좌의 네 귀퉁이에는 기둥을 세웠던 둥근 자리가 있다.
3단의지대석 위에 있는 상대는 위로 핀 연꽃. 하대는 엎어진 연꽃으로 꾸몄고 하대석의 네 귀둥이에는 다시귀꽃으로 장식하였다.
불상은 좌대에 비해 작은 편이나 단정하고 인간적인 모습을 하고 있다. 오른손은 무릎 위에놓고
왼손에는 질병과 무시를 고쳐준다는 약사여래에서 볼 수 있는 약단지를 들고 있다.
불상 뒤에 있는 광배는 나무로 된 배 모양인데 연꽃과 모란과 장식한 두광과 신광의 주변을
불꽃문양으로 꾸몄다.
칠갑산 장곡사 상대웅전 철조약사여래좌상부석조대좌 국보 제 58호
우리나라에서 현존하는 석조대좌의 최고의 걸작품.
상대웅전 철조약사여래 석조대좌 중대석의 정면 쌍 안상
장곡사 상대웅전 석조좌대 중대석의 측면 홑안상
장곡사 상대웅전 소조아미타여래좌상부 석조대좌 (탑의부재로 옥개석은 거꾸로 놓여져 있다 ! )
사각형의 얼굴에 소라형의 육계이며, 비교적 넓어 보이는 어깨에는 우견편단으로 걸치고 있는데 허리는 잘록하고 하체가 빈약. 수인(手印)은 아미타정인. 佛身 높이는 61cm,
▲ 하대웅전이며 좌측이 설선당 드리고 위쪽으로 점화실이 보인다.
하대웅전 처마
하대웅전
보물 제181호 조선중기 건립
장곡사 상대웅전 아래에 위치한 조선 중기의 목조건물. 보물 제181호. 평면구조는 앞면 3칸, 옆면 2칸이며 맞배지붕의 건물로 높은 축단 위에 세워져 있다. 기둥은 민흘림이며 기둥 사이에 공포를 짜올린 다포계(多包系) 양식으로 되어 있는데, 건물의 좌우 옆면에도 창방과 평방을 마련하고 공포를 배치한 점이 특이하다. 공포는 내외2출목(內外二出目)으로 되어 있으며 앞면에는 가운데에 공간포를 2개씩 배치한 데 비해 옆면 기둥 사이에는 1개씩 두었다. 바깥 공포에는 밖을 향한 쇠서가 달려 있고, 안에는 들보를 받치고 있는 맨 위의 살미첨차가 보아지와 같은 형태이고 건물 앞면 가운데 칸에는 사분합(四分閤)의 정(井)자 살문을, 양 옆 칸에는 이분합문(二分閤門)을 달았으며 서쪽 옆면에만 1개의 출입구가 있다. 천장은 우물천장이며, 내부 바닥에는 우물마루를 깔았고 그 위에 석가여래를 주존으로 모시는 것이 보통이나 고려시대의 금동약사불좌상이 안치되어 있다.
장곡사 하대웅전 창방과 + 평방 + 공포 (주간포)
금동약사여래좌상
보물 제 337호 고려시대
장곡사 하대웅전의 주존불로 봉안되어 있는 고려시대 금동불좌상. 보물 제337호. 높이 88cm. 이 불상은 1955년 복장유물 조사에서 여러 경전과 함께 "至正六年丙戌六月十六日誌"라는 묵서명이 발견되어 1346년(충목왕 2)에 조성되었음이 밝혀졌다. 현재 광배와 대좌는 없고 불신(佛身)만 남아 있는데 보존상태가 좋은 편이며 처음부터 이 전각에 있었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머리와 조그만한 육계(肉
)는 나발(螺髮)로 표현되었으며 그 사이에 둥근 계주(
珠)가 장식되어 있다. 얼굴은 갸름한 편으로 눈·코·입이 단정하고 작게 표현되었다. 어깨는 둥글게 처리되었으며, 어깨에 비해 결가부좌한 다리의 폭이 넓어 안정된 비례를 보여준다. 통견(通肩)의 법의는 두꺼워 신체의 곡선이 전혀 드러나지 않았지만 옷주름은 부드러운 곡선을 이루면서 비교적 사실적으로 표현되었다. 또한 많이 드러난 가슴 위로는 군의(裙衣)와 띠매듭, 꽃무늬가 장식된 마름모꼴의 금구(金具) 장식이 보이는데 이러한 착의 형식은 고려 후기의 불·보살상에 많이 나타나는 특징이다. 오른손은 어깨 위로 올려서 엄지손가락과 가운뎃손가락을 맞대었으며 왼손은 가슴 앞에서 손가락을 약간 구부린 채 약합(藥盒)을 들고 있다. 이 불상에 보이는 온화한 얼굴 표정, 균형잡힌 신체, 간략하고 부드러운 옷주름 표현 등은 충청남도 서산에 있는 문수사금동아미타불좌상(1346)과 양식적으로 유사하다. 고려 후기 불상양식의 대표적인 예로 고려조각의 연구에 중요한 자료이다.
설선당
유형문화제 제 151호 조선중시시대 목조건물
강설과 참선을 하던 선방건물로 건축된 선설당은 하대웅전과 거의 같은 연대건물로 추정된다.
설선당은 민간주택 구조를 취한 요사채로 지금은 장곡사 총무원으로 사용하며 승방으로 사용한다.
장곡사 설선당 : 강설과 참선을 하던 선방건물로 조선 중기에 지어진 것이란다. 본래 일자형 건물이었으나 건물의 남,서쪽에 승방을 증축하여 현재는 'ㄱ'자형 구조이다. 공양간(부엌)으로 쓰고 있는 남쪽 1칸은 맞배지붕 부분을 고쳐지은 것인데 공양간에 잇대어 동서로 승방 3칸을 늘려 지었다. 공양간은 마치 민가의 부엌을 보는 듯 하다.
범종각
응진전
칠갑산 장곡사 염화실
염화실(拈花室)은 염화미소(拈花微笑)에서 온 말로 염화미소(拈花微笑)는 불교의 대표적인 화두 가운데 하나이고 삼처전심의 하나이다 염화시중(拈花示衆)의 미소라고도 한다. 염화미소(拈花微笑)에 대해서는 아래에서 설명을 보기로 하고 염화실이란 절에서 조실스님이나 방장스님이 거처하시는 방을 가리키는 말이다 즉 조실스님이나 방장스님이 계시는 방을 염화실이라고 한다 조실스님이나 방장스님은 참선을 지도하시는 스님이시고 염화미소는 이 참선의 기원이 되는 故事이기 때문에 그 방을 염화실로 부르는 것이다
선종에서 선(禪)의 기원을 설명하기 위해 전하는 이야기로서 《대범천왕문불결의경(大梵天王問佛決疑經)》에 기록되어 있다.
영산(靈山)에서 범왕(梵王)이 석가에게 설법을 청하며 연꽃을 바치자, 석가가 연꽃을 들어 대중들에게 보였다. 사람들은 그것이 무슨 뜻인지 깨닫지 못하였으나, 가섭(迦葉)만은 참뜻을 깨닫고 미소를 지었고 이에 석가는 가섭에게 정법안장(正法眼藏:사람이 본래 갖추고 있는 마음의 묘한 덕)과 열반묘심(涅槃妙心:번뇌와 미망에서 벗어나 진리를 깨닫는 마음), 실상무상(實相無相:생멸계를 떠난 불변의 진리), 미묘법문(微妙法門:진리를 깨닫는 마음) 등의 불교 진리를 전해 주었다. 즉 말을 하지 않고도 마음과 마음이 통하여 깨달음을 얻게 된다는 뜻으로, 선 수행의 근거와 방향을 제시하는 중요한 화두이다.
장곡사미륵불괘불탱(長谷寺彌勒佛掛佛幀)
용화수가지를 들고 있는 미륵불을 그린 괘불이다. 괘불이란 야외에서 큰 법회나 의식을 진행할 때 법당 앞뜰에 걸어놓고 예배를 드리던 대형 불교그림을 말한다.
장곡사에 있는 이 그림은 가로 5.99m, 세로 8.69m로 미륵불을 화면 중심에 두고 6대 여래, 6대 보살 등 여러 인물들로 화면을 가득 채우고 있다. 인간세계에 내려와 중생을 구제한다는 부처인 미륵불은 사각형의 얼굴에 머리에 4구의 작은 불상이 있는 화려한 보관을 쓰고, 풍만하고 살찐 모습으로 유난히 긴 팔과 커다란 상체를 가지고 있다.
좌우에 있는 비로자나불과 노사나불은 머리에 둥근 두광이 있고 각각 두 손을 맞잡은 손모양과 어깨높이까지 두손을 들어 올려 설법하는 손모양을 하고 있다. 그 밖의 다른 여래와 보살들은 각기 상징하는 물건들을 들고 있으며 10대 제자는 두손을 모아 합장한 자세로 방향이나 표현을 달리해 변화를 주고 있다. 그림 아래에는 부처를 수호하는 사천왕과 그 권속들이 자리잡고 있다. 전체적인 채색은 붉은 색을 주로 사용하고 녹색, 연록색, 주황 등의 중간 색조를 사용하여 밝은 화면을 보여 준다.
이 그림은 조선 현종 14년(1673) 철학(哲學)을 비롯한 5명의 승려화가가 왕과 왕비, 세자의 만수무강을 기원하기 위해 그린 것이다. 미래불인 미륵을 본존으로 삼고 있지만 그림의 내용은 현세불인 석가가 영축산에서 설법하는 영산회상도와 비슷한 것으로 등장인물들과 배치구도가 독특한 작품이며 경전의 내용과도 다른 점이 있어 앞으로 연구할 가치가 많은 작품이다.
충남 청양 七甲山 長谷寺
조계종 제 6교구 마곡사의 말사로서.신라 문성왕 12년(850년) 보조선사 체징이 창건 하였다고
전하며 조선 정조원년(丁酉 1777)에 중수,고종 43년(1906) 및 1960년에 중수,
1995년 상진주지스님이 지장전과 심검당을 증축 하였으며. 일주문.운학루.범종루.봉향각.
염화실..심검당.설선당.지장전.응진전.상,하대웅전등의 전각으로 아담하게 이루어져 있다.
콩밭 매는 아낙네야 베적삼이 흠뻑 젖는다 /무슨 설움 그리많아 포기마다 눈물 심누나 /
홀어머니두고 시집가던 날 칠갑산 산마루에 / 울어주던 산새 소리만 텅 빈 가슴속을 태웠소.
이 노래는 처음 윤상일이란 가수가 불렀으나 별 반응이 없어...다시 88년 대학가요제 수상자인
주병선에게 주어 다시 부르게 했으나 역시 ! ? 그후 주부가요대회에 한 주부가 불러주목을
받게 되자 뒤늦게 히트를 ... 국민 가요로 되었다고 한다.
☎ 상대웅전 보물 제 162호 정면 3칸, 측면 2칸의 겹처마 단층 맞배지붕이다. 엔타시스가 뚜렸한 기둥과 기둥사이 창방 위에는 평방을 두지 않았으며,공간포는 1개씩을 드문 드문 배치하여 주심포집과 같은 인상을 받게 한다. 특히 굽받침을 둔 곡주두(曲柱頭)와 첨차의 양식은 우리나라 주심포계 건물에서 볼 수 있는 古式을 보이고 있지만, 쇠서 위에서 연꽃을 조각한 것과 내부에서 보여지는 형식은 조선 중기 이후의 수법을 나타내고 있다. 정면은 중앙 칸에 세 짝의 살문을 달고 양쪽 협칸은 두 짝의 정자(井)살문을 하고 있다. 바닦에 方塼이 깔려 있는데 이 중에는 신라 때의 연화문전도 있다.☆상대웅전 앞에는 수령이 850년쯤 되었다는 느티나무가 있어 고찰의 분위기를 한층 더해주고 있다
☎ 철조약사여래좌상과 석조대좌 국보 제58호 나말 려초에 조성된 철불좌상으로 높이는 91cm, 석조대좌(石造臺座)의 높이는 약 140 cm이다. 사각형의 석조대좌는 그 깔끔하고 단아함이 우리나라 현존하는 최고의 걸작품으로 알려져 있다. 불상이 대좌에 비하여 작게 느껴질 정도로 대좌의 조작이나 비례 등이 뛰어난데 양질의 화강암으로 만들어진 대좌는 상,중,하, 3단으로 구성되어 하대가 넓고 중대 상대는 작은 편이다 지대석 네 모서리에 기둥을 세운 자리가 있어 원래 불상이 목조 공간안에 봉안 되어 있었음을 알수있다,불상은 대좌에 비하여 작은편이나 얼굴은 단정하며 이목구비도 단아하여 전체적으로 당시 선사들의 모습을 적절하게 나타내고 있다. 한쪽을 드러낸 어깨와 젖가슴은 자연스러우면서도 약간 딱딱한 느낌을 준다. 수인은 항마촉지인을 짓고 있는데, 왼손에 약합을 들고 있어 약사불로 통칭되어 왔다. 석조광배 였을 것이나 조선시대에 목조광배로 대체한 것으로 보인다. . 주형광배로 중심부에 꽃무늬, 테두리에 불꽃무늬를 표현하여 나말 려초 양식을 따르고 있다.
☎ 철조 비로불좌상 및 석조대좌 보물 제174호 고려 전기의 불상과 대좌로 불신높이 61cm,대좌높이 165cm이다.이 불상은 높은 석등대좌 위에 결가부좌로 앉아 있는데, 삼각형에 가까운 작은 얼굴, 긴 눈썹과 가는 눈,작은 코와 입, 가슴과 배는 밋밋하며, 어깨 역시 수평일 뿐만 아니라 허리와 가슴이 일직선으로 굴곡없이 처리되어 있고 반듯한 사각형적인 특징을 나타내고 있다. 우견편단의 법의, 두 손은 지권인을 짓고 있다,
☎ 소조 아미타불좌상 사각형의 얼굴에 소라형의 육계이며, 비교적 넓어 보이는 어깨에는 우견편단으로 걸치고 있는데 허리는 잘록하고 하체가 빈약. 수인(手印)은 아미타정인. 佛身 높이는 61cm,
☎하대웅전 (下大雄殿) 보물 제181호 정면 3칸, 측면 3칸의 단층 맞배지붕인데도 다포계 형식이고 평방위에 공포를 배치한것이 특색이다.민흘림 기둥으로 圓柱이다.다포계 맞배지붕 형식의 건축은 임진왜란 이후에 유행한 건축양식이다.
☎ 하대웅전 금동약사여래좌상 보물 제337호 고려시대의 금동불좌상으로 佛身의 높이가 88 cm. 왼손에 약 그릇을 ,머리카락은 나형,갸름한 타원형의 얼굴에 반달모양의 눈썹, 오똑한 코,예쁜 입, 근엄한 얼굴 표정이 나타나 있다. 1959년에 복장품(腹臟品)에서 至定6년(충목왕2년, 1346)의 축원문이 발견되었다..
結跏趺坐 즉 책상다리를 하고 앉아 발등을 각각 반대쪽 허벅다리 위에 얹고 발바닥이 위를 보이도록한 자세를 말하는데 이때 먼저 오른발을 꺽고 그 위에 왼발을 얹는것을 항마좌降魔坐 ,그 반대이면 길상좌吉祥坐라고 한다. 또한 왼발이 오른발 밑에 숨어 오른쪽 발바닥만 보이는 모양을 半跏趺坐라 한다
☎彌勒掛佛幀 국보 제300호 5.99*8.69 m
☎설선당 (說禪堂) 유형문화재 제151호 건물 앞 오른쪽 3칸은 기둥,창방,도리,공포가 정교한 구조와 양식을 보이어 당초 건물임을 알수 있고 남쪽 2칸은 후보 개축한것으로 보인다.
☎운학루 대법고 (雲鶴樓 大法鼓) 코끼리 가죽으로 만든 양쪽의 당면(撞面)은 185cm*135cm로 원형이 아닌 타원형에 가깝다. 이 법고에는 흑서명문에 충청우도 덕산에 사는 한성문이 다녀간 기념으로 기록한 것이다.
☎木槽 (구유) 통나무로 만든 이 구유는 옛날 장곡사 승려들이 밥통 대신 사용하던 생활 도구로 전해지고 있다. 길이 7m, 폭 1m, 두께 0.1m.
장곡사의 가람 배치
장곡사는 칠갑산 자락에 절을 조성하였는데 현재는 크게 3개의 영역으로 나눌 수 있다. 장곡사의 중심불전이 있는 하대웅전 영역은 칠갑산 해발 150m 지점에 터를 닦고 대웅전을 배치하였다.
대웅전 전면에는 마당을 두었고 마당을 마주보고 설선당과 봉향각이 자리 잡고 있다. 대웅전과 마주보는 자리에 누각인 운학루를 배치하여 중정중심의 가람배치를 취한 셈이다. 운학루 좌측으로 종루와 공양간을, 대웅전 우측에는 지장전을 두었다. 현재 주출입은 누각 하부 보다는 누각 우측으로 난 길을 주로 이용하고 있다.
이 같은 중심영역 뒤로 보다 높은 지대에 또 다른 불전영역을 조성하고 있는데 이른바 상대웅전 영역이다. 여기에는 상대웅전과 그 오른쪽에 응진당을 두었는데 아래쪽 불전 영역과는 축을 달리하였다. 하대웅전 영역과 상대웅전 영역은 가파른 계단으로 연결되어 있다.
하대웅전 오른쪽 산기슭에는 찻집으로 사용하는 슈쟈타 건물을 짓고, 그 뒤로 좀더 높은 곳에는 삼성각을 지었다. 이쪽 출입은 하대웅전 오른쪽으로 열린 도로를 이용해서 출입할 수 있으며, 상대웅전 쪽에서도 연결 도로가 나 있다. 이밖에 하대웅전에서 상대웅전으로 올라가는 도로 왼쪽에는 염화실 현판을 건 요사 1동이 자리 잡고 있다.
장곡사 가람배치의 특성은 무엇보다 지형에 따라 상, 하 두 곳에 대웅전을 형성했다는 점이다. 즉 사역(寺域)의 북단인 상부에 동남향으로 자리 잡은 상대웅전과 응진전 일곽을 조성하였고, 그 서남쪽 기슭에 조금 넓은 도량을 일구어 하대웅전과 설선당 및 승방, 봉향각 운
이처럼 상하로 대웅전을 경영한 것은 지형적인 조건을 활용하여 『화엄경』에 나온 천상(天上)에서의 설법을 상징하는 공간으로 상대웅전을 조성하고, 지상에서의 설법을 상징하는 공간으로 하대웅전을 지은 것이 아닌가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