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정치 포스팅만 많이 해서 역사얘기 좀 해볼까 합니다.^^;;;
김재관 박사를 아시나요?
대한민국의 역사를 잘 가르치지 않다보니 생기는 편견 가운데 하나가
이승만 대통령은 외교는 '귀신', 경제는 '등신'이란 말입니다.
그런데, 전 세계가 인정할 정도의 외교천재,
동양인 최초의 조지워싱턴, 하바드, 프린스턴 박사
미국도 쩔쩔매는 외교실력으로 한미상호방위조약(일방적으로 한국이 유리한)을 만든 분의 경제철학이 뒤처질 가능성이 있을까요?
먼저 알아야 할 것은 대한민국이 본격적인 중화학 공업국가로 발전할 수 있었던 발판이 된 포항제철의 설립입니다.
1968년 세워진 포항제철은 철강산업은 모든 공업의 씨앗이란 말처럼, 대한민국의 중화학 공업을 일으켜 세우는 결정적 역할을 합니다.
포항제철은 흔히 박정희 대통령의 부탁으로, 일본의 신일본철주금에서 전폭적으로 기술지원을 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반은 맞고, 반은 틀린 말입니다.
포항제철 설립의 가장 큰 공은 김재관 박사님입니다.
서독 뮌헨공대 금속(기계재료)연구소 연구원으로 근무하던 김재관 박사는 박정희 대통령의 부름을 받고, 귀국 포항제철 설립의 기획과 설계를 맡아 전체 사업을 지휘했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김재관 박사는 어떻게 뮌헨공대의 연구원이 될 수 있었을까요?
바로 이승만 대통령이 김재관 박사를 독일에 유학보냈던 것입니다.
이승만 대통령은 일찌감치, 전후 대한민국을 복구하기 위해 경제를 살리려면, 중공업을 부흥시켜야 한다고 생각하셨고,
이를 위해 1953년 4월 4일
"전쟁이 끝나면 하루 빨리 부흥사업을 펼쳐야 할 것이니, 그 기초가 되는 철강산업 진흥책을 마련하라. 특히 주택건설사업을 위한 함석.철판 등의 공급을 담당할 제강사업 건설계획을 우선적으로 강력히 추진하라"
는 특별지시를 내립니다.
이에 따라 인천에 대한중공업공사(현 인천제철)이 설립계획이 수립되고, 자금 마련을 위해 미국 원조기관에 지원을 요청합니다.
그러나 미국은 철강공장 건설 지원을 거절했고(여기에는 이승만 정부를 견제하려는 정치적 의도가 ㅜ,.ㅜ) 이에 이승만 대통령은
"미국이 돈을 못 낸다면 우리 정부가 보유한 달러로 공장을 짓자"
며 당시로는 어마어마한 거액인 140만 달러라는 거액을 투자키로 결정합니다.
그리고, 당시 부산에 있던 서독 적십자 병원의 후버박사에게
"우리가 철강공장을 지으려는데 서독에서 기술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부탁합니다.
그렇게 서독의 데마그사는 1954년 실시된 국제입찰에 참가 미국과 스위스를 제치고 사업권을 획득합니다.
이 때의 인연으로 이승만 대통령은 국내에 있던 뛰어난 인재 20명을 향후 대한민국 중공업의 핵심인력으로 키우기 위해 독일로 유학보내게 되는데, 이 분들 중 한 사람이 김재관 박사였던 것입니다.
일본과의 담판을 통해 포항제철을 만든 박정희 대통령도 훌륭하지만, 철강산업의 중요성을 일찌기 깨달아 핵심인재를 양성했던 이승만 대통령 덕에 포항제철 건립에는 김재관 박사 등 대한민국의 인재들이 활약 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승만 대통령은 외교에서 만이 아니라 경제에 있어서도 탁월한 식견을 갖고 계신 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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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부사진 : 김재관 박사님, 저희 펜앤드마이크 김용삼 대기자의 이승만 대통령 경제사가 담긴 책 '이승만과 기업가시대', 그리고 이용훈 교수님의 이승만 대통령이 보낸 서독 유학생 들
<최대현님 페북 펌>
https://www.facebook.com/100003137300443/posts/423062152371904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