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는 78살 되신 형수님과 74살 되신 형수님이 계신다. 두 분 나이로 보아 형수님은 어머니나 다름없는 분들이다. 공교롭게도 형님들이 일찍 돌아가시는 바람에 두 분 다 미망인이 되어 조카들과 함께 살고 계신다. 두 형수님은 형제중 막내인 나를 지극히 잘 돌보아 주셨고, 지금도 내일이라면 나이를 생각하기 않으시고 나서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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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이드신 두 분 형수님의 손맛이 가미된 올해 김장은 특별한 맛이 있을 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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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김장은 두 분 형수님의 도움으로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 아내가 감기몸살로 김장을 하기가 무척 어려운 상태여서 연락을 드렸더니 이곳 연천까지 먼 길을 마다 않고 서울에서 전철을 타고 달려 오셨다. 김장을 한다는 소식을 듣고 이번 네팔 봉사를 함께 다녀왔던 정 선생님도 자기 일을 제쳐놓고 서울에서 연천까지 왔다. 세상은 이래서 또 살맛이 나는 모양이다.
네팔 봉사활동으로 집은 비운 뒤 거의 한 달 만에 집에 돌아와 보니 썰렁한 기운이 느껴진다. 집은 역시 사람이 살아야 온기가 있다. 더구나 심야전기를 사용하는 보일러인지라 보일러를 가동시키려면 밤 11이후에나 가능하여 실내 기온은 한 겨울이다. 우리는 두꺼운 옷을 껴입고 김장 준비를 시작하였다.
그래도 친구 응규가 두 번이나 집을 방문해서 화초에 물을 주어 화초들이 생생하게 살아 있다. 콩은 꺾어서 묶어 세워놓고 비닐을 덮어 두었는데, 콩이 튀여서 이리저리 나뒹굴고 있다. 무는 부직포와 비닐을 덮어 씌워두어 어는 것을 방지해 놓고 있었다. 또 김장김치를 묻을 원두막에 볏짚마람을 엮어 덮어두기까지 했다.
언제나 고마운 친구다! 그가 아니면 누가 이 최전방까지 와서 이런 일을 해주겠는가? 100명의 술친구보다 한 명의 진실한 친구가 있다는 것은 행복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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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농약을 치지않아 절반은 벌레가 먹어 겉은 구멍이 숭숭 ?려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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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겨울 추위이 살짝 얼어 배추가 상해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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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추 밭에 가보니 더욱 가관이다. 절반은 벌레가 먹어 구멍이 뻥뻥 뚫려있고 살짝 얼기까지 해서 겉이 상해 있다. 영하 3~5도나 되는 추위를 이겨내느라 고통을 한 자국이 선연하다. 조금 더 늦으면 아예 모두 상해 버릴 것 같다. 더구나 내일은 영하 5도까지 내려간다고 하지 않는가? 벌레 먹은 곳과 언 잎을 벗기고 나니 정작 알맹이는 절반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농부가 집을 비우고 직무유기(?)를 한 대가를 톡톡히 치르고 있는 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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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벌레 먹은 부위와 언 잎를 벗기고나니 배추폭 절반으로 줄어 들고 말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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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배추를 부지런히 뽑아 나르고 두 분 형수님은 배추를 정성스럽게 씻어내기 시작했다. 감기몸살을 앓고 있는 아내는 실내에서 양념 준비를 했다. 청소와 정리의 달인인 정 선생님은 어질어진 방안과 쓰레기를 금방금방 정리정돈하며 수시로 청소를 했다. 말 그대로 손발이 척척 맞아들어가니 일을 해도 힘든 줄을 모르겠다. 일이란 이렇게 손발이 맞으면 재미도 있고 힘도 훨씬 덜 들어간다.
첫날(11월 17일)은 배추와 무를 뽑아 나르고, 씻고, 절이는 일을 했다. 총각무와 갓, 당근도 뽑아서 담글 준비를 했다. 농약과 화학비료를 치지 않고 기른 농작물이라 비록 포기가 작고 밑이 작게 들었지만 나름대로 자랄 대로 자라나 풍성한 수확을 안겨주고 있다. 다만 무는 위로 튀어나온 부분이 살짝 얼어있다. 아마 친구가 덮어두지 않았더라면 완전히 얼고 말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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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 분 형수님이 정성스럽게 싯어 쌓아올린 김장배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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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날 아침에 일어나니 서리가 눈처럼 하얗게 내려 앉아 있었다. 아침 최저기온이 영하 4도라고 했다. 밖에 나가 보니 체감온도는 훨씬 더 춥게 느껴진다. 어제 배추를 뽑지 않았더라면 얼어서 많이 상했으리라.
워낙 단백한 맛을 좋아하는지라 특별한 레시피는 없다. 나는 불을 지피고 죽을 쑤었다. 당근과 무를 잘게 썰어서 고춧가루와 버무려 양념을 만들었다. 두 분 형수님은 추이를 무릅쓰고 손을 호호 불어가며 김장김치를 비벼가기 시작했다. 두 형수님의 손맛이 가미된 김장김치가 하나 둘 만들어져 갔다. 버무린 김치를 한 잎 북 찢어 입에 넣고 움질움질 씹어 먹어보니 맛이 그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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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장에 넣을 죽을 주걱으로 저으며 쑤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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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겨울에 손을 호호 불어가며 한 포기씩 꺼내먹을 생각을 하니 입에 군침이...
역시 경험이 많으신 분들의 손맛은 다르다! 두 분 형수님이 비벼주신 김장김치를 씹어 먹다 보니 문득 어머님의 손맛이 떠올랐다. 어머님의 손맛은 언제나 내 입에 따 맞는 기가 막힌 맛이었다.
'손맛'은 말 그대로 오랜 경험에서 얻은 '감'에서 오는 맛이다. 그것은 정성의 맛, 마음의 맛이다. 한국요리에서 자장 중요한 요소로 꼽는 것이 바로 이 손맛이다. 우리나라 요리는 정확한 계량보다는 오랜 경험에서 우러나온 '감'에 의해서 양이나 시간을 재는 손맛에서 나온다. 이 손맛을 가장 잘 내는 사람은 역시 어머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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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추를 요리저리 뒤집으며 양념을 버무리는 두 형수님의 손맛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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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두 분 형수님이 담근 김장김치에서 그 옛날 어머님의 손맛이 느껴진다. 아마 어머님이 살아계실 때 시집살이를 하며 전수를 받은 탓도 있을 것이다. 김치를 비빌 때 손으로 배추를 요리저리 돌려가며 정성스럽게 무치고, 또 손의 온도가 배추 잎에 전달되어 양념이 골고루 잘 버무려 지는 것 같다. 또 배추를 손바닥에 넣고 손가락으로 오무락조무락하며 압력을 가하는 것도 손맛을 한층 더해주는 요소가 될 것이다.
김치는 바로 이 손 맛에서부터 발효되기 시작하는 것이 아닐까? 우리나라 요리 중에서 발효식품의 대명사인 김치는 배추를 오무락조무락하며 양념을 버무리는 바로 이 손맛에서부터 온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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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땅속에 묻은 김장독에서 겨우내 곰삭아갈 김장배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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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년 김장배추는 두 형수님의 손맛이 물씬 담겨져 한층 더 맛이 있을 것 같다. 아내와 나는 두 형수님이 버무려 주신 김장배추를 땅속에 묻은 김장독에 차곡차곡 담기 시작했다.
김장배추는 땅속 김장독에서 겨우내 숨을 쉬며 맛있게 곰삭아갈 것이다. 흰 눈이 폭폭 내리는 날 손을 호호 불어가며 김장배추를 한 포기씩 꺼내 먹을 생각을 하니 벌써 입에 군침이 물씬 돌기 시작한다.
*함께 농사를 지은 응규 아우에게 줄 김장배추와 무는 따로 창고에 보관했다.
그가 출타중이어서 금년에는 함께 김장을 하지 못해서 얼기전에 뽑아 창고에 보관했다.
* 두 형수님과 함께 한 2014 김장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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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금년이면 두변째 보는 김장김치독 온두막엔 형수님들과 응규형님의 사랑이 듬뿍담겨있군요.
내일처럼 달려와 돕는다는것이 그것도 서울에서 임진강변까지 힘드실텐데...
올 겨울도 잘 나십시요
황토님 오시면 꺼내어 김치찌게 끓여 쇠주 한잔 크~~ 하지요 ㅋㅋ
우선 침 부터 납니다. 찰라님 농장은 주인이 아주 많은거 같아요. 많은 사람들의 사랑이 듬뿍 담긴 농장이라 주인이 출타 중이라도 농산물도, 화초도 잘 자라나 봅니다. 겨울양식이 가득해서 벌써 부터 마음이 따뜻하시지요?
ㅎㅎ 아녜스님도 한몫 거들고 계시죠
날마다 카페에 출근을 하시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