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3-15
주의 마음에 든 자 / 김철한 목사
솔로몬 하면 지혜의 왕으로 일컬어진다. 솔로몬 하면 영광이 얼마나 큰지 솔로몬의 영광이란 말이 있다. 그런데 솔로몬, 그의 일생은 이렇게 표현할 수 있다. 하나님의 마음에 드는 삶과 하나님의 마음에 들지 않는 삶이다. 하나님의 마음에 드는 삶은 그의 통치 초기를 말하고 하나님의 마음에 들지 않은 삶은 그의 통치 후기를 말한다. 사람의 생애에는 우여곡절이 있다. 처음에는 잘되고 나중에는 못되고 때론 처음에는 못되고 나중에는 잘되는 삶이 있다. 안타깝게도 솔로몬의 초기와 달리 솔로몬의 후기의 삶은 타락된 삶으로 미끄러지고 있다.
우리는 우리를 살펴야 한다. 지금 잘 나가고 있든지, 못 나가고 있든지 하나님의 마음에 드는 삶을 유지하고 있는가? 아니면 하나님의 마음에 벗어난 삶을 살고 있는지 돌아보아야 한다. 사실 다윗이 왕으로 세워지는 이야기를 보라. 사무엘이 하나님의 명을 받고 다윗을 찾아내어 기름을 붓는다. 다른 형제들은 다 지나게 하고 양치기를 하고 있던 다윗을 불러내어 그의 머리에 기름을 붓는 이야기를 행13:22은 이렇게 묘사한다. “내가 이새의 아들 다윗을 만나니 내 마음에 맞는 사람이라 내 뜻을 다 이루리라.”
다윗이 위대한 왕, 가장 강한 나라를 세우며 영토를 확장하는 왕의 된 것은 하나님의 마음에 들었기 때문이다. 그 아들 솔로몬의 통치 초기도 마음에 들기 때문이라고 하였으니 우리는 솔로몬의 지혜, 솔로몬의 영화라는 수식어가 생긴 이유가 바로 하나님의 마음에 드는 신앙의 왕이 되어 받은 축복임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러면 아버지 선왕처럼 솔로몬의 어떤 점이 하나님의 마음에 들었는가?
1. 드리기를 우선하였다. (왕상3:4)
솔로몬은 하나님을 사랑하였다. 아버지 다윗의 법도를 행하는 아들로서 신앙심이 있었다. 그래서 왕상3:4 “이에 왕이 제사하러 기브온으로 가니 거기는 산당이 큼이라 솔로몬이 그 제단에 일천 번제를 드렸더니...”라고 하였다.
솔로몬은 이때 여호와의 성전을 짓고 있었다. 아직 성전 대신 제사할 자리를 찾았는데 그곳이 기브온이었다. 기브온은 예루살렘 서북쪽 8Km 지점에 있는 넓은 구릉 지대로 여기가 후에 제사장 마을이 되었다. 여기에 임시 예배를 드릴 산당이 있었으므로 그곳에 가서 자신의 마음과 몸을 드리기를 작정하였다.
금번 올림픽의 유도 선수인 김재범, 그는 신실한 크리스챤으로서 11시 11분에 1등, 금메달을 위해 기도하였다. 11시 11분은 모두 다 1111로 되어 있다고 1에다 집중하는 기도를 드렸다는 것이다. Rise Up 서울 시청 대회에 이분의 간증을 담으려고 하는데 그의 유도 시합의 모습은 두 손 들고 기도하는 것이었다.
솔로몬은 이 산당에서 자신을 드린다는 믿음으로 일천번제를 드렸다. 사람들은 솔로몬이 한꺼번에 일천마리 짐승을 희생시켜 드린 것으로 말하는데 아니다. 영국 스네잇 교수의 주석은 한꺼번에 1,000마리의 양을 드린 것이 아니요, 시작부터 마지막까지의 횟수를 말함이라고 하였다. 번제는 희생으로 드리는 짐승 전체를 태워서 연기를 올려 드리는 불사르는 제사다. 솔로몬은 이렇게 1,000번의 제사를 드린 것이다. 일천번, 그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10번 나무를 찍으면 안 넘어갈 나무가 없다는 말이 있는데 10번의 10번이 아니고 10번이 100번이나 되는 횟수다. 믿음이 없으면 드릴 수 없다. 허공을 향해 드릴 수 없다. 그러나 받으시는 하나님, 들으시는 하나님의 계심을 믿기에 솔로몬은 믿음으로 불사르는 제사를 드렸다. 그것이 하나님의 마음에 드는 솔로몬의 마음이다. 하나님 사랑에서 나오는 마음이다.
우리도 도전해보라. 성경의 사람들이 어떻게 주님께 나아갔는가? 주님 마음에 드는 일을 어떻게 시작했는가? 흉내내고 결단해보라. 오목천교회는 후반부에 4가지 신앙 실천 운동을 선포했는데 그 중에 일천번 감사 운동을 작정해보라. 어떤 은혜가 나타나고 어떤 은혜를 맛보며 내가 어떤 것에 사로잡혀 있는가? 일천번제 시작은 우리 교회에서 어느 한 청년으로부터 시작되었다. 나는 이를 두고 구약의 산물이라며 관심을 갖지 않았다. 그런데 일천번의 번제, 일천번의 기도, 일천번의 예배를 묵상하다가 은혜가 되었다. 일천번의 감사! 그래서 일천번제를 했고 마친 후 현재의 교회 부지를 얻는 복을 받았다. 복보다 중요한 것은 내가 하나님 앞에 마음에 드는 일을 해보는 것이다.
2. 자신의 위치를 은혜로 받은 것으로 알고 있다. (왕상3:6)
솔로몬은 꿈에서 하나님을 만난다. 번제를 드렸더니 “너는 구하라”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다. 그때 솔로몬은 자신이 왕으로 세워진 자리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임을 고백한다. 왕상3:6을 보면 다윗이 훌륭한 선왕이 된 것은 하나님께서 주신 큰 은혜의 덕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다윗을 생각하다가 아들된 자신을 왕에 오르게 하셨다고 고백한다. 솔로몬은 자신의 왕됨이 자신의 능력이나 리더십이나 잘난 재능 덕이라 말하지 않는다. 오직 은혜다. 아버지가 믿음 고백을 잘한 은혜 때문에 임한 은혜의 열매임을 말한다. 솔로몬은 겸손하다. 일부러 그렇게 고백하는 것이 아니다. 은혜로 주어진 것으로 알고 있기에 왕의 자리를 잘 감당하게 해달라고 구한다.
우리는 교회에서나 사회 생활에서나 내가 나 된 것, 내 실적으로 자랑하면 안된다. 그는 교만한 자다. 바울이 나의 나된 것이 하나님의 은혜라 함과 같이 내가 장로되고, 목사되고, 선생되고, 교수된 것은 다 은혜로 된 것임을 고백해야 한다. 하나님의 마음에 드는 삶의 태도는 하나님의 덕분이라는 생각이다. 부모님 덕분, 이웃의 덕분에 되었다는 생각이다. 이런 사람은 하나님과 사람의 마음에 들지 않을 수 없다.
3. 책임감을 짊어진 태도가 바른 자이다. (왕상3:7~8)
솔로몬은 고백한다. 다윗 왕을 대신하여 왕이 되었다. 그것도 왕이 되게 하시므로 밧세바의 아들인 자기가 왕이 되었다. 다윗 왕과 그 아들들의 이력을 보면(삼하3:2~5) 솔로몬은 기묘한 어머니의 자식으로 태어난 것이다. 나라를 다스려야 한다는 것을 생각하면 자신이 너무 무능해보였다. 왕상3:7에서 자신을 “종”이라고 칭했다. 그리고 작은 아이라고 칭했다. 덧붙여 출입할 줄을 알지 못하는 자라 칭했다. 왕이라고 해서 다 왕이 아니다. 보좌에는 앉아있지만 백성을 사랑하는 통치자로서 그는 올바른 태도를 가졌다.
백성을 배부르게, 백성을 따뜻하게, 백성을 공평하게 이끌어가려면 자신은 정말 무능하다. 왕상3:8을 보라. “그들은 큰 백성이라 수효가 많아서 셀 수도 없고 기록할 수도 없사오니...” 자신은 작은 아이로서 이 많은 백성을, 이 큰 백성을 어떻게 섬길 것인가? 이 책임을 지려는 마음이 주님의 마음에 드는 태도였다.
덜된 집권자들을 보라. 조금 모자라는 지도자들을 보라. 자기가 크다고 자기가 위대하고 자기 자신이 남을 괴롭히는 폭군이요 가시나무이면서 달콤한 열매를 주는 무화과라고 자처한다. 자신이 종이 아니라 주인인줄 알고 위협하고 무소불위 주먹을 휘두르는 사람은 쓰여질 수 없다. 이 땅에 나라와 교회, 회사라도 잘 섬기려는 책임감의 사람이 요구된다. 그런 사람은 하나님이 놓치지 않으시고 사용하시며 도와주신다.
4. 기도 제목이 특별한 자다. (왕상3:9~10)
솔로몬은 ‘백성을 재판할 수 있도록 통치자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일까?’ 하며 그것을 기도 제목으로 정하였다.
주시는 하나님이라면 듣는 마음을 종에게 달라고 구하였다. 듣는 마음이란 잘 이해한다는 뜻이다. 우리는 무엇을 해달라는 기도 중에서 최고로 소중한 것이 듣는 마음이다. 하나님이 나를 돕는 음성을 말씀해 주실 때 듣는 마음이 우선이다. 많은 백성들이 사건의 문제를 가지고 와서 호소할 때 옳고 그름을 판단하기 전 듣는 마음이 우선이다. 억울한 것, 누명을 쓴 것 등을 이해하려는 마음, 그것이 듣는 마음이다.
듣는 마음은 지혜와 쌍둥이다. 듣는 마음이 없다면 지혜도 없고 지혜가 없다면 듣는 마음도 없다. 그래서 하나님은 왕상3:11에 듣는 마음을 구한 솔로몬을 향해 “지혜를 구하였다”고 말씀하셨다.
사람들은 대개 자기를 위하여 수와 부를 구하는 법인데 솔로몬은 오직 백성을 위해 필요한 듣는 마음, 지혜를 구했던 것이다. 바로 이것이 주의 마음에 드는 솔로몬의 모습이다.
우리는 오늘 이 아침에 어떻게 신앙 생활을 하는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하나님 앞에 나를 드리는데 있어서 예배가 우선인가? 나중인가?
자신의 삶의 위치는 은혜로 받았는가? 내 실력인가?
맡겨진 일에 삶의 책임감을 느끼는 태도가 있는가? 흐리멍텅하여 아무런 태도도 없는가?
끝으로 만인을 위한 기도 제목이 있는가? 나만을 위한 미신적 기도만 있는가?
내가 주님의 마음에 드는 신앙인으로 서 있는가? 아니면 주님 마음에 성실함이 있는 신앙으로 서 있는가?
솔로몬을 통해 배우자. 일천번제의 도전과 결단으로 우리의 삶이 하나님의 마음에 든 자가 되자. 주의 마음에 든 자가 된다면, 주의 마음에 든 교회가 된다면, 주의 마음에 든 이 나라가 된다면 지혜와 영광의 사람이란 수식어가 뒤따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