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고 험준한 산, 치악산 – 황골,향로봉,남대봉,영원사
1. 향로봉 지난 치악주릉에서 바라본 백운산 북쪽 지능선
淸陰堂邃歇征鞍 청음당이라 집은 깊어 말을 쉬이고
雉嶽山高列碧巒 치악산은 높아 푸른 봉우리 늘어섰네
誰把彩屛千萬帖 누가 천만 첩의 화려한 병풍을 펼쳐
長敎人作畫圖看 오래도록 사람들에게 그림 감상하게 하였나
ⓒ 성균관대학교 대동문화연구원 | 이규필 (역) | 2014
―― 무명자 윤기(無名子 尹愭, 1741~1826), 「치악산을 보며 2절(對雉嶽山謾吟 二絶)」 중 제1절
주) 청음당(淸陰堂)은 강원도 감영 관아의 건물 가운데 하나였다는데 지금은 없다.
▶ 산행일시 : 2024년 6월 15일(토), 흐림, 미세먼지와 안개
▶ 산행인원 : 3명(악수, 메아리, 하운)
▶ 산행코스 : 황골탐방지원센터,949m봉,원통재,△969.6m봉,곧은재,향로봉,종주능선 전망대,남대봉,영원사,
금대분소,금대삼거리
▶ 산행거리 : 도상 17.3km(영원사에서 금대삼거리까지 포장대로 5.4km 포함)
▶ 산행시간 : 7시간 55분(08 : 35 ~ 16 : 30)
▶ 갈 때 : 청량리역에서 무궁화호 열차 타고 원주로 가서, 택시 타고 황골탐방지원센터로 감
▶ 올 때 : 금대삼거리에서 버스 타고 원주(판부농협)로 가서 저녁 먹고, 택시 타고 원주역으로 가서 KTX 열차
(입석) 타고 청량리역으로 옴
▶ 구간별 시간
06 : 50 – 청량리역 무궁화호 열차
08 : 05 – 원주
08 : 30 – 황골탐방지원센터( ~ 08 : 35)
09 : 53 – 치악주릉 949m봉, 이정표(곧은재 2.0km, 비로봉 2.8km)
10 : 30 - △969.6m봉
10 : 46 – 곧은재(866.8m)
11 : 26 – 향로봉(香爐峰, △1,041.5m)
11 : 37 – 안부, 헬기장, 점심( ~ 12 : 10)
12 : 31 – 1,115m봉
13 : 02 – 종주능선 전망대(1,145m봉), 휴식( ~ 13 : 10)
13 : 26 - 남대봉(南台峰, △1,180.0m), 휴식( ~ 14 : 35)
13 : 45 – 시명봉 갈림길
14 : 19 – 대문바위
15 : 12 – 영원사
15 : 50 – 금대분소
16 : 30 – 금대삼거리 버스승강장, 산행종료
16 : 40 – 원주시내(판부농협), 저녁
19 : 09 – 원주역, KTX 열차
19 : 55 – 청량리역
2.1. 향로봉(국토지리정보원 지형도, 안흥 1/25,000)
2.2. 남대봉(국토지리정보원 지형도, 안흥 1/25,000)
▶ 향로봉(香爐峰, △1,041.5m)
일기예보에 이번 주말에도 지난 주말처럼 적지 않은 비가 내릴 거라고 했다. 그렇다고 진작 계획한 산행을 포기할
수는 없는 일이다. 우장 갖추고 평일 출근시간(06시 15분)보다 30분 일찍 집을 나선다. 이때는 제법 굵은 비가 줄기
차게 내렸다. 우산을 쓰고 간다. 원주 가는 열차 창밖 풍경은 천산만학을 넘실거리는 운해의 파노라마다. 치악산
산정에서도 저럴까, 가슴 설렌다.
원주. 우중충할 뿐 비는 내리지 않는다. 원주역사 앞 길게 줄을 선 맨 앞의 택시를 탄다. 치악산 곧은재로 갈 거라며
그곳 가까운 데로 가자고 주문한다. 우리 잘못도 없지는 않다. 도중에 확인해야 하는데 곧은재 가는 길을 조금도
의심하지 않았다. 택시 기사님은 우리가 입석대, 입석사로 갈 것으로 잘못 알았다. 황골탐방지원센터로 가고 말았
다. 우리가 곧은재를 얼른 올라 향로봉과 남대봉을 거쳐 시명봉으로 가려던 당초 계획이 다치게 생겼다.
미리 속단하기는 이르고 일단 남대봉에 가서 상황을 살펴보고 결정하기로 한다. 황골탐방지원센터 국공이 우리를
보고 오후에 비가 온다니 아무쪼록 안전산행하시라며 인사한다. 산에서 국공을 만나면 도로에서 운전하다 교통경찰
을 만날 때처럼 괜히 반갑지 않다. 입석사를 향한다. 약간 가파른 아스팔트 포장대로다. 걷기 따분하여 산비탈 숲속
에 풀꽃이 있을까 곁눈질한다. 개다래(Actinidia polygama (Siebold & Zucc.) Planch. ex Maxim.) 꽃을 본다.
줄기 잎에 흰 반점이 있어 알아보기 쉽다. 이 흰 반점은 개다래가 벌과 나비 등을 꽃인 듯 유혹하여 수분하기 위한
생존전략이라고 한다.
개다래 꽃을 직접 보기가 쉽지 않다. 개달래가 접근하기 어려운 깊은 골짜기의 울창한 숲속에 있을 뿐만 아니라 꽃
이 커다란 잎에 가려 잘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일부러 개다래 줄기 밑에서 위쪽으로 올려다보아야 한다. 입석사
가는 길에 우연히 그 꽃을 본다. 순백의 5엽 꽃이 무척 곱다. 지붕이 개망초 화단으로 변한 화장실을 지나고서다.
아까부터 지도를 열심히 들여다보던 메아리 님이 뜻밖의 제안을 한다. 이대로 치악주릉을 가기보다는 계곡 건너
지능선을 올라 곧은재로 곧장 질러가자는 것이다. 그러면 빈사상태인 시명봉이 살아날 수도 있다.
물론 1/25,000 오룩스 맵에는 인적이 없는 능선이다. 만장일치로 찬동한다. 계곡이 가까운 산모퉁이다. 살금살금
계곡으로 내리고 마른 너덜을 지나 지능선을 잡는다. 되게 가파른 오르막이다. 달달 긴다. 체감온도가 날씨보다 몇
배나 더 후덥지근하다. 한편, 은근히 기대했던 풀숲 식생상태의 관찰은 가망이 없어졌다. 북쪽 능선에다 하늘 가린
갈잎 숲속이니 낙엽만 수북할 뿐 풀 한 포기 보이지 않는다. 산죽마저 개화병(開花病, Anomalous flowering)으로
몰살당했다.
가도 가도 황량한 능선이다. 암벽과 맞닥뜨리면 그 오른쪽 사면의 수적(獸跡)을 쫓는다. 능선에 올라서면 바람이
일까 잡목 헤치고 머리 내밀지만 조용하다 못해 괴괴하다. 내 거친 숨소리와 심장박동이 치악산의 그것으로 들린다.
지도에는 다만 오르막의 연속이지만 우리의 눈에는 준봉인 883m봉에 올라 휴식한다. 입산주 탁주 분음한다. 한때
는 탁주 한 잔으로도 다리에 힘이 풀렸는데 이제는 도리어 다리에 힘이 붙는다. 주력(走力)이 곧 주력(酒力)이다.
3. 개다래
7. 치악주릉 오르는 지능선
9. 꿀풀
10. 큰뱀무
12. 민백미
치악주릉에 가까워지자 넙데데한 능선에 사초 풀숲이 끝없이 펼쳐진다. 주릉 등로는 그 사초에 춘향이 가르마처럼
났다. 이정표에 949m봉이고, 곧은재 2km, 비로봉 2.8km이다. 입석사 등로를 오르는 것에 비해 2.2km를 절약했
다. 배낭 벗어놓고 잠시 숨을 고르고 나서 곧은재를 향한다. 한 차례 완만하게 내린 야트막한 안부는 원통재인데 알
아보지 못하고 지나쳤다. 잘난 등로 따라 주변 풀숲을 기웃거리며 △969.6m봉(삼각점은 ‘안흥 447, 99.5 재설’이다)
을 오른다. 이 봉우리 북서릉은 석경사와 운곡 원천석(耘谷 元天錫, 1330 ~ ?)의 묘역을 오간다.
△969.6m봉에서 1km 정도 남진하여 뚝 떨어진 ╋자 갈림길 안부가 곧은재(直峙)다. 곧은재는 치악산 산행교통의
요충지다. 서쪽은 행구동, 동쪽은 부곡리를 오가며, 당일 산행으로 비로봉 또는 남대봉을 오르기에 적당한 지점이
다. 양쪽에 많은 산행표지기들이 안내한다. ‘곧은재’라는 지명은 아마 양쪽 마을에서 곧게 뻗어 오른 고개라서 이다.
부곡리에 곧은골(直谷) 마을이 있는데 국토정보플랫폼의 지명사전은 ‘곧은재 아래에 위치한 마을이라 하여 곧은
골’이라 한다.
곧은재에서 가파른 1km 긴 한 피 오르면 향로봉이다. 원주 시내를 한 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데크전망대가 마련
되어 있다. 그러나 날씨가 올 때와는 다르게 미세먼지 혹은 안개가 심하여 무망이다. 향로봉 남서쪽 능선의 등로가
아니라는 표지판과 금줄은 그쪽도 꽤 괜찮은 등로라는 다른 말이기도 하다. 그래서일까. 향로봉 바로 아래 국공초소
가 있다. 오늘은 비었다. 우리는 3년 전 꼭 이맘때 관설동에서 길아재를 거쳐 향로봉을 올랐다.
▶ 남대봉(南台峰, △1,180.0m)
향로봉 그 옆 봉우리에 삼각점과 돌탑이 있다. 삼각점은 ‘안흥 458, 1989 재설’이다. 향로봉을 기점으로 고도는 당분
간 1,000m 이상을 유지한다. 완만하게 내린 안부는 헬기장이다. 숲 그늘에 들어 이른 점심밥 먹는다. 아무래도 산행
이 일찍 끝날 것 같아 저녁을 맛있게 먹으려면 뱃속이 비게끔 시간을 벌어야 한다. 봉봉을 넘고 넘는다. 안개 속이라
조망은 없다. 예전의 험로는 모조리 데크계단으로 덮어버렸다. 1,145m봉은 능선종주전망대다. 날이 좋으면 온길
갈길 말고도 멀리 백운산 연봉과 그 너머 삼봉산도 보이는 일대 경점이다.
능선 살짝 비킨 암릉을 데크계단으로 오르고 울창한 숲속 길을 조금 더 가면 남대봉이다. 삼각점은 ‘안흥 27, 1989
재설’이다. 국공초소는 비었다. 국공초소 뒤쪽 능선은 비지정탐방로라고 막았다. 그리로는 매봉과 영춘기맥을 가는
장릉이다. 결단의 시간이 점점 다가온다. 시명봉을 갈까 말까 망설이는데 하늘이 가지 말라고 붙든다. 갑자기 금방
이라도 비가 쏟아질 듯 사방이 어둑해지고 안개가 자욱하게 밀려온다. 이래서는 시명봉을 가더라도 아무런 의미가
없다.
남대봉을 0.7km 지난 ╋자 갈림길 안부에서 아쉽지만 오른쪽 영원사로 내린다. 가파른 내리막이다. 너덜과 데크계
단을 번갈아 내린다. 대문바위는 대협곡이다. 낙석을 염려해서 철조망을 길게 둘렀다. 여기도 가물었다. 계류는
바닥을 드러낸다. 이 골 저 골 모아 계류 잴잴 흐르고 오가는 사람이 없으니 알탕 생각이 간절하다. 뛰어든다. 물이
엄청 차다. 불과 몇 초를 버티지 못하고 뛰쳐나온다. 다시 들어가고 금방 뛰쳐나오고.
14. 백운산 북쪽 지능선, 아래 동네는 관설동
15. 천남성
16. 금마타리
17. 함박꽃
18. 종주능선 전망대(1,145m봉)에서 바라본 남대봉 방향
19. 금마타리
20. 남대봉 정상에서
22. 미나리아재비
등로에서 약간 벗어난 영원사를 들른다. 신라 문무왕 16년(676년)에 창건했다니 천년이 훨씬 넘은 고찰인데 중건
중수 중창을 반복하다 보니 신찰로 보인다.
서하 이민서(西河 李敏敍, 1633~~1688)가 이 절을 찾았을 때도 그다지 볼품이 없었다. 주변 경치가 한 몫 했다.
서하의 「영원사(鴒原寺)」라는 시다.
小寺荒涼僧兩三 황량한 작은 절에 중은 두세 명
滿山秋色雜楓枏 단풍나무 녹나무 뒤섞여 온 산 가을빛일세
峯回不復知深淺 봉우리 돌고 돌아 얼마나 깊은지 더 모르고
境黑誰能辨北南 지경이 컴컴하니 누가 남북 분별하랴
淨界自然生道性 고요한 경계라 절로 도성 생기니
淸宵仍喜接禪談 맑은 밤에 반갑게 선담 접한다오
樓前獨坐閑成醉 누 앞에 홀로 앉아 한가로이 취하나니
白月無心照古潭 밝은 달 무심히 옛 못을 비추는구나
ⓒ 전주대학교 한국고전학연구소ㆍ한국고전문화연구원 | 장성덕 전형윤 이주형 (공역) | 2018
영원사에서 금대분소까지 2.4km, 거기서 금대삼거리까지 3.0km 전부 포장도로다. 비로소 오늘 산행의 험로가
시작된다. 산꾼에게 산이 아닌 평지는 험로다. 서하도 영원사 가는 길이 ‘봉우리 돌고 돌아 얼마나 깊은지 더 모르고
(峯回不復知深淺)’라고 했다. 여기 거리와 비슷한 백담계곡과 무주구천동은 계곡미가 아름다워 일부러라도 걷는데
여기 원주천(이름조차 삭막하다)은 옥계반석과는 거리가 멀다. 그래도 펜션 앞 물을 가두어 놓은 천변에는 하동(夏
童)들이 즐겁다.
엊그제 텔레비전에서 유료로 시청한 이탈리아와 벨기에 합작영화인 「여덟개의 산(Le Otto Montagne)」(2022)의
알프스 몬테로사가 생각난다. 그 너덜을 오랜만에 찾은 피에트로가 나는 듯이 뛰어오르는 장면과 음악이 애틋하다.
당신은 먼 곳을 바라보고 있었죠
출구를 찾는 사람처럼
오늘 하늘도 맑고 푸른데
당신은 더 이상 곁에 없어요
나는 당신을 계속 생각해요
거의 매일
당신은 그때 무엇을 보았나요
그래서 떠나갔나요
당신은 먼 곳을 바라보고 있었죠
출구를 찾는 사람처럼
You were looking into the blue
Like there was a door
Today's been cold, clear, and blue
and now you look no more
I've been thinking of you
Alomost every day
And I wonder if there is more
Cause when you went away
You were looking into the blue
Like there was a door
나는 얼마나 다행인가! 그리고 얼마나 즐거운가! 주말이면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내가 가고 싶은 산에 가고,
산에서 내려오면 이렇게 악우들과 미주가효를 곁들여 정담을 나누니.
23. 큰뱀무
24. 영원사 가는 길
31. 수풀 우거진 계곡에서 바라본 하늘
32. 개회나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