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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 구원을 얻는 길 말씀/ 이사야 28:1-31:9 요절/ 이사야 30:15 | 2023. 7. 16 | |
이사야 제 10 강 |
“주 여호와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가 이같이 말씀하시되 너희가 돌이켜 조용히 있어야 구원을 얻을 것이요
잠잠하고 신뢰하여야 힘을 얻을 것이거늘 너희가 원하지 아니하고”
오늘 본문에는 화가 있을진저 라는 선언이 반복됩니다. 어떤 자들에게 화가 있습니까? 화의 노래만 있다면 희망을 갖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화의 선언과 함께 복의 노래도 간간히 들려주고 있습니다. 어떤 자들에게 복이 있습니까? 오늘 말씀을 통하여 우리 자신을 돌아보고 하나님께 돌아감으로 구원을 얻고 복의 노래를 부르는 자들이 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28장은 남왕국 유다의 죄에 대한 책망과 심판을 경고하고 있습니다. 1-6절은 먼저 유다의 형제 나라인 북이스라엘이 왜 화를 피할 수 없게 되었는지를 말하고 있습니다. 1절을 보십시오. “에브라임의 술취한 자들의 교만한 면류관은 화 있을진저 술에 빠진 성 곧 영화로운 관 같이 기름진 골짜기 꼭대기에 세운 성이여 쇠잔해 가는 꽃 같으니 화 있을진저.” 에브라임은 북이스라엘을 가리킵니다. 북이스라엘의 수도는 사마리아였습니다. 사마리아 성은 한 때 잘 나갔습니다. 경제적으로 풍요로웠고 군사적으로도 남왕국 유다에게 밀리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부요해지고 강해지자 마음이 높아졌습니다. 그리고 술취함과 방탕에 빠졌습니다. 사마리아가 면류관이야 하면서 교만과 파티에 빠져 있는 그들에게 이사야는 화를 선언합니다. 그들의 부귀영화는 오래가지 못할 것입니다. 그들은 쇠잔해 가는 꽃과 같습니다. 장미꽃이 화려하지만 그 아름다움과 영광은 오래가지 않습니다. 교만과 방탕에 빠진 북이스라엘을 하나님께서 심판하십니다. 이사야는 보라고 하면서 그들에게 임하게 될 심판을 경고합니다. 주께 있는 강하고 힘 있는 자가 쏟아지는 우박 같이, 파괴하는 광풍 같이, 큰 물이 넘침 같이 손으로 그 면류관을 땅에 던질 것입니다. 주께 있는 강하고 힘 있는 자는 누구입니까? 앗수르입니다. 하나님은 앗수르를 진노의 막대기로 쓰셔서 교만과 방탕에 빠진 사마리아와 북이스라엘을 멸망시킬 것입니다. 그들의 교만한 면류관이 앗수르에 의해 발에 밟힐 것입니다. 여름 전에 처음 익은 무화과를 먼저 보는 자가 얼른 따서 먹는 것처럼 호시탐탐 노리고 있는 앗수르에 의해 북이스라엘은 재빠르게 먹히고 말 것입니다.
우리도 경제적으로 잘 나갈 때 교만해지기 쉽습니다. 교만과 함께 따라오는 것은 술취함과 방탕입니다. 가진 것이 많으면 하나님께 감사를 표현하고 어려운 사람들을 돕고 섬겨야 하는데 그렇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쾌락을 즐기고 자기 만족을 얻는 데 돈을 물 쓰듯 합니다. 이런 자들에게 화가 있습니다. 부와 성공과 권력은 영원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쇠잔해 가는 꽃과 같은 것입니다. 내가 가진 것들을 삼키고자 하는 사람들이 우리 주변에는 참으로 많습니다. 돈을 벌고 성공하고 높은 자리에 올라가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그보다 더 어려운 것은 그것을 계속 지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지켜 주실 때는 우리가 그것을 누릴 수 있지만 하나님께서 지켜 주시지 않으면 금새 잃어버리게 됩니다. 우리가 가진 것들은 내 것이 아닙니다. 그것들은 하나님이 주신 것이며 소유권은 하나님께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물질과 시간과 은사와 재능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그리고 이웃을 사랑하고 섬기는 데 사용해야 합니다.
그 날에 만군의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의 남은 자에게 영화로운 면류관이 되시며 아름다운 화관이 되실 것입니다. 이사야는 북이스라엘에 대한 화를 선언하는 가운데서도 희망의 메시지를 전합니다. 그 날에 다시 말해 하나님이 정하신 때가 되면 북이스라엘 가운데서도 하나님께 돌아올 자들이 있을 겁니다. 그 남은 자들에게 하나님은 영화로운 면류관이 되시고 아름다운 화관이 되십니다. 진정한 면류관과 화관은 사마리아가 아니라 영원히 시들지 않는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는 어디에 소망을 두고 있습니까? 세상입니까? 하나님입니까? 영원히 시들지 않는 면류관이신 하나님께 소망을 두는 사람들은 어떤 환경에서도 결코 실망하지 않습니다. 그런 사람들을 하나님께서 눈동자 같이 지켜주시고 아름다운 인생으로 축복해 주시기 때문입니다.
7절부터는 유다 백성에 대한 경고입니다. 유다 백성은 북이스라엘의 길을 따라가서는 안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북이스라엘의 멸망을 보고서도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북이스라엘과 같이 포도주와 독주를 마시고 파티를 즐겼습니다. 백성들의 좋은 본이 되어야 할 제사장과 선지자도 술에 취해 비틀거리며 환상을 잘못 풀며 재판할 때에 실수했습니다. 모든 상에는 토한 것, 더러운 것이 가득했습니다. 무엇보다 그들은 교만했습니다. 이사야 선지자가 전하는 말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이사야의 가르침을 젖을 뗀 어린 아이에게나 적용되는 유치한 것으로 여기고 비난하고 조롱했습니다. 그들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대저 경계에 경계를 더하며 경계에 경계를 더하며 교훈에 교훈을 더하며 교훈에 교훈을 더하되 여기서도 조금, 저기서도 조금 하는구나.” 그들은 다 안다고 하면서 이사야로부터 배우고자 하지 않았고 잔소리 좀 그만하라고 하면서 그를 무시하고 함부로 대하였습니다. 그러므로 더듬는 입술과 다른 방언으로 하나님께서 이 백성에게 말씀하실 것입니다. 이사야를 통해 주신 말씀을 안 받아들이고 자기고집을 부릴 때 하나님은 그 백성에게 더듬는 입술과 다른 방언으로 말씀하실 것입니다. 더듬는 입술과 다른 방언은 심판을 가리킵니다. 끝까지 하나님의 말씀을 안 받아들이면 하나님은 심판하십니다. 하나님이 그들에게 주고자 하는 것은 안식이요 상쾌함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듣지 아니하였으므로 그들이 가다가 뒤로 넘어져 부러지며 걸리며 붙잡히게 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예루살렘에서 이 백성을 다스리는 정치지도자들에게 말씀하십니다. 그들을 향하여서도 너희 오만한 자라고 하시면서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라고 하십니다. 그들은 얼마나 오만했습니까? 그들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는 사망과 언약하였고 스올과 맹약하였은즉 넘치는 재앙이 밀려올지라도 우리에게 미치지 못하리니 우리는 거짓을 우리의 피난처로 삼았고 허위 아래에 우리를 숨겼음이라.” 유다 왕과 고관들은 앗수르의 침공을 대비하여 애굽과 동맹을 맺었습니다. 그들은 온갖 술수를 동원하여 그 동맹을 맺었고 이제는 어떤 재앙도 죽음도 우리에게 미치지 못한다며 큰 소리를 쳤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한 돌을 시온에 두십니다. 그 돌은 어떤 돌입니까? 16절을 보십시오. “그러므로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이르시되 보라 내가 한 돌을 시온에 두어 기초를 삼았노니 곧 시험한 돌이요 귀하고 견고한 기촛돌이라. 그것을 믿는 이는 다급하게 되지 아니하리로다.” 그 돌은 건물의 기초가 되는 기촛돌입니다. 기촛돌을 잘 놓아야 건물이 튼튼하고 비바람에 견딜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시온에 두신 기촛돌은 무엇을 가리킵니까? 하나님의 말씀이요 말씀의 핵심인 메시아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킵니다. 그 돌은 시험한 돌입니다. 그것은 시험을 거친 검증된 돌입니다. 또한 그 돌을 믿는냐 믿지 않느냐에 따라서 구원이냐 심판이냐가 결정된다는 점에서 시험하는 돌입니다. 그것을 믿는 이는 다급하게 되지 아니합니다. 다시 말해 모든 환난으로부터 구원받고 견고하게 서게 됩니다. 하지만 그것을 믿지 않는 이는 환난 앞에서 그 인생의 집이 무너지고 맙니다. 하나님은 정의를 측량줄로 삼고 공의를 저울추로 삼으시기에 우박이 거짓의 피난처를 소탕하며 물이 그 숨는 곳에 넘칠 것입니다. 유다가 애굽과 맺은 언약은 정의의 기준에 맞지 않기 때문에 견고하지 못하고 넘치는 재앙이 밀려올 때에 유다 백성은 그것에게 밟힘을 당할 것입니다. 애굽과 맺은 언약은 위기의 때에 유다 백성을 구원해 주지 못합니다. 그것은 침상이 짧아서 능히 몸을 펴지 못하는 것과 같고 이불이 좁아서 능히 몸을 싸지 못함 같습니다. 그러므로 오만한 자가 되지 말아야 합니다. 인간의 지혜를 자랑하지 말아야 합니다.
23-29절은 농사 비유를 통해 자연만물을 경영하시는 하나님의 지혜가 얼마나 크고 놀라운가를 깨우쳐 줍니다. 파종하려고 밭을 가는 자가 쉬지 않고 갈기만 하겠습니까? 지면을 이미 평평히 하였으면 소회향을 뿌리며 대회향을 뿌리며 밀과 보리와 귀리를 심지 않겠습니까? 이렇게 밭을 갈고 평평하게 하고 여러 씨를 뿌리는 것은 그의 하나님이 그에게 지혜를 주셨기 때문입니다. 또한 수확할 때도 소회향은 작대기로 떨고 대회향은 막대기로 떨며 어떤 것은 수레바퀴를 굴리고 어떤 것은 말굽으로 밟게 합니다. 이것도 만군의 여호와께로부터 나온 지혜입니다. 하나님의 경영은 기묘하며 하나님의 지혜는 광대합니다. 삶의 모든 영역에서 하나님의 경영하심을 믿고 그의 말씀을 따르는 자야말로 참으로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29장은 예루살렘에 대한 애가입니다. 1절을 보십시오. “슬프다 아리엘이여 아리엘이여 다윗이 진 친 성읍이여 해마다 절기가 돌아오려니와” 아리엘은 예루살렘을 가리킵니다. 예루살렘은 왜 슬픔과 고통에 빠지게 됩니까? 하나님께서 예루살렘을 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만군의 여호와께서 우레와 지진과 큰 소리와 회오리바람과 폭풍과 맹렬한 불꽃으로 그들을 징벌하실 것입니다. 그들이 불순종과 교만의 길로 갔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들을 쳐서 곤고하게 하는 모든 열방의 무리도 꿈 같이, 밤의 환상 같이 될 것입니다. 주린 자가 꿈에 먹었을지라도 깨면 그 속은 여전히 비고, 목마른 자가 꿈에 마셨을지라도 깨면 갈증이 있는 것 같이 시온 산을 치는 열방의 무리도 그와 같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유다 백성의 징벌의 도구로 쓰셨던 앗수르가 교만해졌을 때 바벨론을 통해 앗수르를 사라지게 하셨고, 바벨론이 교만해졌을 때 페르시아를 통해 바벨론을 멸망시키셨습니다.
유다 백성의 문제는 무엇입니까? 영적 맹인이 된 것입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실상을 보지 못하고 포도주와 독주에 취해 있었습니다. 그들은 이사야를 통해 줄기차게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지만 귀를 막아버렸습니다. 똥고집을 부리며 하나님께로 돌이키지 않았을 때 하나님은 깊이 잠들게 하는 영을 그들에게 부어주사 그들의 눈을 감기셨습니다. 그러므로 모든 계시가 그들에게는 봉한 책의 말처럼 되었습니다. 성경이 열린 책이 아니라 닫힌 책이 되고 만 것입니다. 글을 아는 자들은 이를 읽으라고 했을 때 그것이 봉해졌으니 나는 못 읽겠노라고 대답했습니다. 또 글을 모르는 자들은 나는 글을 모른다 할 것입니다. 이러니 구원역사가 일어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은 그들을 이렇게 진단하십니다. 13절을 보십시오. “주께서 이르시되 이 백성이 입으로는 나를 가까이 하며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나 그들의 마음은 내게서 멀리 떠났나니 그들이 나를 경외함은 사람의 계명으로 가르침을 받았을 뿐이라.” 그들은 입술로는 하나님을 공경하지만 마음은 하나님에게서 멀리 떠났습니다. 그들은 입만 살아 있는 구신자였습니다. 마음은 하나님에게서 떠났고 영혼 없는 신앙생활을 했습니다.
또 어떤 자들에게 화가 있습니까? 자기의 계획을 하나님께 깊이 숨기려 하는 자들은 화가 있습니다. 그들은 은밀하게 나쁜 짓을 하면서 누가 우리를 보랴 누가 우리를 알랴 하였습니다. 그들의 패역함이 심하였습니다. 토기장이를 어찌 진흙 같이 여기겠습니까? 지음 받은 물건이 어찌 자기를 지은 이에게 그가 나를 짓지 아니하였다고 할 수 있습니까? 유다 백성은 창조주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고 자기가 주인인양 자기 계획과 자기 원대로 살았습니다. 하나님을 피조물 취급하고 하나님을 자기 맘대로 조정하고자 했습니다. 이런 자들에게 화가 있습니다.
하지만 그 날에 못 듣는 사람이 책의 말을 들을 것이며 어둡고 캄캄한 데에서 맹인의 눈이 볼 것입니다. 무엇보다 겸손한 자에게 여호와로 말미암아 기쁨이 더하겠고 사람 중 가난한 자가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로 말미암아 즐거워할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이는 강포한 자가 소멸되었으며 오만한 자가 그쳤으며 죄악의 기회를 엿보던 자가 다 끊어졌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낮추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십니다. 하나님은 유대인과 이방인을 차별하지 않으십니다. 혈통이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가난해도, 사회적 지위가 높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능력이 못 미쳐도 괜찮습니다. 겸손한 자,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는 자는 이제는 부끄러워하지 아니하겠고 그의 얼굴이 이제는 창백해지지 아니할 것입니다. 그의 자손은 하나님의 손이 그 가운데에서 행한 것을 볼 때에 하나님의 이름을 거룩하다 하며 야곱의 거룩한 이를 거룩하다 하며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경외할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높이고 예배하는 삶을 살 뿐 아니라 우리의 자녀들과 후손들도 하나님을 창조주와 구속주로 믿고 예배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30:1-7은 유다가 애굽과 맺은 맹약이 얼마나 헛된 것인가를 보여줍니다. 패역한 자식들은 화가 있습니다. 그들은 어떤 자들입니까? 하나님을 떠나 애굽과 맹약을 맺은 자들입니다. 유다 백성은 바로의 세력 안에서 스스로 강하려 하며 애굽의 그늘에 피하려 하여 애굽으로 내려갔습니다. 그들은 국가적 위기 앞에서 하나님께 묻지 않고 강대국을 의지했습니다. 그러므로 바로의 세력이 그들의 수치가 되며 애굽의 그늘에 피함이 그들의 수욕이 될 것입니다. 애굽의 도움은 헛되고 무익합니다. 하나님은 애굽을 가만히 앉은 라합이라고 하십니다. 애굽은 무력한 존재라는 것입니다. 애굽은 유다 나라를 앗수르에서 건져내지 못할 것입니다.
8-26절은 패역한 유다 백성에 대한 심판을 언급하며 구원을 얻는 길에 대해 알려 주십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을 반역하고 불순종의 길로 간 유다를 무너뜨리실 것입니다. 토기장이가 그릇을 깨뜨림 같이 아낌없이 부수실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심판 가운데서 어떻게 구원을 얻을 수 있는지를 알려 주십니다. 15절을 보십시오. “주 여호와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가 이같이 말씀하시되 너희가 돌이켜 조용히 있어야 구원을 얻을 것이요 잠잠하고 신뢰하여야 힘을 얻을 것이거늘 너희가 원하지 아니하고” 구원을 얻는 길은 돌이켜 조용히 있는 것이며, 잠잠하고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입니다. 위기가 닥칠 때는 먼저 자신을 돌아보아야 합니다. 회개 없이는 구원에 이르지 못합니다. 가슴을 치며 상하고 통회하는 심정으로 주님께 나아가야 합니다. 교만과 불순종, 이기심과 탐욕, 술취함과 방탕, 미움과 분노, 운명주의, 패배주의를 진실되게 고백하며 하나님의 용서를 구해야 합니다. 그리고 조용히 있어야 합니다. 조용히 있는 것은 마음을 진정시키고 문제와 자기를 바라보던 데서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무엇보다 잠잠하고 하나님을 신뢰하라고 했습니다. 적들을 두려워하지 않고 하나님께 집중하고 말씀에 집중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원망과 불평, 의심을 내려놓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신뢰하고 하나님의 능력을 신뢰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언약을 신뢰해야 합니다. 참 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갈 때 하나님께서 만나주시고 놀라운 구원을 주시고 힘을 주시고 기쁨과 희망을 주십니다.
우리가 시끄러운 삶의 현장을 떠나 2023년 여름수양회에 와서 조용히 하나님과 말씀에 집중했을 때 죄와 어둠으로부터 구원을 받고 기쁨과 희망으로 채워졌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생명을 주실 뿐 아니라 풍성한 삶을 주시기 위해서 이 땅에 오셨고 죽으시고 부활하시고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습니다. 우리가 구원과 생명을 얻을 뿐 아니라 풍성한 삶을 얻기 위해서는 주님과의 교제의 시간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일과 사람들 속에 파묻혀 있으면 마음이 시끄럽고 혼랍스럽고 어둡습니다. 하루 첫 시간을 주님과 함께 시작하고 매순간 주님을 바라보고 주님의 음성을 듣고 교제할 때 우리의 삶은 풍성해지고 하나님 나라를 구현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유다 백성은 위기의 때에 잠잠하고 하나님을 신뢰하기 보다는 말을 타고 도망가고자 했습니다. 하지만 그들을 쫓는 자들이 더 빠를 것입니다. 어디에도 안전한 데는 없습니다. 하나님은 반복해서 배반하고 도망 다니기 잘하는 우리를 기다리십니다. 이는 은혜를 베풀려 하심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땅에 뿌린 종자에 비를 주사 땅이 먹을 것을 내며 곡식이 풍성하고 기름지게 하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의 상처를 싸매시며 그들의 맞은 자리를 고치시는 날에는 달빛은 햇빛 같겠고 햇빛은 일곱 배가 되어 일곱 날의 빛과 같을 것입니다.
우리 가운데 육체의 질병과 마음의 병으로 고통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죄사함의 은혜를 주실 뿐 아니라 우리의 몸도 돌보시고 전인적으로 치유해주시는 선한 목자이십니다. 우리가 질병과 인생의 환난 가운데 있을지라도 요동하지 않고 두려워하지 않고 잠잠하고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함으로서 치유 받고 건강하고 힘찬 청년의 삶을 살아갈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31장은 애굽으로 내려가는 자들에게 화가 있다고 분명하게 말씀하십니다. 그들이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군대를 의지하고 강대국을 의지하였기 때문입니다. 애굽은 사람이요 신이 아닙니다. 그들의 말들은 육체요 영이 아닙니다. 여호와께서 손을 펴시면 돕는 자 애굽도 넘어지고 도움을 받는 자 유다도 엎드려지고 다 함께 멸망합니다. 그런 가운데서도 새가 날개 치며 그 새끼를 보호함 같이 만군의 여호와가 예루살렘을 보호할 것이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은 앗수르로부터 예루살렘을 보호해주시겠다고 약속하셨고 이 약속은 그대로 성취되었습니다.
구원을 얻는 길은 잠잠하고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을 신뢰하는 데 있습니다. 내 인생은 내거야 하면서 내가 주인 행세하지 않고 하루의 시작과 함께 조용히 주님을 바라보며 주님과 교제하는 시간을 가짐으로 구원을 얻을 뿐 아니라 풍성한 삶을 살아갈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