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은 정복하는 것이 아니다
-영화 ‘히말라야’를 감상하고-
하얀 눈에 덮인 설산을 가쁘게 오르는 거친 숨소리가 영화관의 스피커를 힘들게 한다. 세계의 지붕이라 불리는 히말라야. 만년설이 펼쳐져있는 그곳, 너무나도 아름다운 곳이지만 신들의 영역이라 불릴 정도로 인간의 발길을 쉽게 허락하지 않는 곳이다. 가파른 설산을 오르며 넘어지고 뒹굴며 안간힘을 쓰는 대원들. 때로는 천길 빙벽을 로프에 매달려 아이스바일(Eisbeil)을 들고 한 발 한 발 찍어가다가 허공에 매달려 허우적거리며 크램폰(crampons)을 착용한 발을 동당거릴 때는 소름이 돋았다. 옆에 있는 아내도 움찔한다. 가냘픈 로프가 끊기기라도 하는 날엔. 목숨을 담보로 이런 산행을 해야 하는 것인가. 따뜻한 방에서 가족과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TV를 즐겨도 좋으련만, 굳이 험난한 산을 오르는 이유를 알 수가 없다.
영화 히말라야는 실화를 바탕으로 연기 잘하는 배우들이 대거 출연한 영화다. 황정민(엄홍길 역), 정우(박무택 역), 김원해(박정복 역), 조성하(이동규 역), 라미란(조명애 역), 김인권(박정복 역), 이해영(장철구 역), 전배수(전배수 역) 등이 바로 그들이다. 현장감을 살리기 위해 국내 험한 돌산을 찾아다니며 로케이션 촬영을 했고, 네팔의 히말라야 3,800m, 프랑스의 몽블랑 3,000m 고지에서도 촬영했다고 한다. 그 주연인물로 엄홍길 대장을 다루는 영화인데, 엄 대장은 히말라야 14좌뿐만 아니라 로체샤르와 얄릉캉, 로체와 캉첸중가 위성봉까지 오른 세계 최초의 산악인으로, 22년 동안 무려 38번을 도전한 굉장한 사람이다. 불굴의 도전정신과 목적을 이룬 사람이기에 많은 이들에게 존경받고 있다.
‘엄홍길’ 대장과 후배 산악인 ‘박무택’은 2000년 칸첸중가, K2, 2001년 시샤팡마, 2002년 에베레스트까지 히말라야 4좌를 등반하며 생사고락을 함께한 동료이자 친형제와 다름없는 우애를 나눈 관계였다. 지난 2005년, ‘엄홍길’ 대장은 히말라야 에베레스트 등정 후 하산 도중 조난당해 생을 마감한 ‘박무택’의 시신을 거두기 위해 휴먼원정대를 꾸려 해발 8,750m 에베레스트 데스존으로 산악 역사상 시도된 적 없는 시신수습등반에 나선 영화다.
엄홍길과 박무택의 만남은 순탄치 않았다. 무택과 정복은 대학에서 산악회원으로 활동하다가 엄대장이 이끄는 히말라야 등정에 끼어달라고 애원한다. 히말라야가 어디 우리나라 산하고 같은가. 키는 멀대 같이 크고 허약해 보이는 박무택과 그 친구 박정복을 쉽게 받아들일 수 없어 거절했다. 두 사람은 집요하리만큼 애원하여 겨우 허락을 받았지만 고생은 이때부터였다. 히말라야 원정을 위해 국내의 험한 산에서 지옥훈련을 통과해야만 했다. 무거운 짐을 지고 가파른 산을 오르내리는 훈련에서부터 로프타기, 빙벽 오르기 등 힘든 훈련이 계속되었지만, 오로지 히말라야라는 거대한 산을 정복하겠다는 일념으로 극복해갔다.
맛있는 사과로 태어나기 위해서 나무거죽을 뚫고 새싹을 틔워야했고, 강한 흡인력으로 뿌리를 통해 양분을 흡수해야 한다. 때로는 비바람에 가지가 부러지고 잎이 찢겨지는 고통도 묵묵히 참아내며 강열한 햇볕에서도 의연하게 버텨내야 했다. 시도 때도 없이 달려드는 병과 벌레들에게 저항하며 인고의 세월을 거치는 동안 꽃도 피우고, 열매도 맺지 않던가. 물론 주인의 보살핌도 있지만, 강인한 생명력이 없다면 크고 달보드레한 사과를 얻을 수 있었겠는가. 사람들 역시 목적의식이 뚜렷한 사람은 도전에 대한 결과가 풍성하여 행복감에 젖는다. 하지만, 베짱이처럼 제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모르고 살아가는 인생이 즐겁기만 할 수 있을까?
엄 대장과 함께 히말라야 4좌 등정에 성공하고 2005년 캉첸중가 등정에 박무택 대원이 대장으로 나서게 된다. 엄 대장이 앞장서야했지만, 앞선 산행에서 얻은 발목뼈가 이상이 새겼다. 본인은 기어코 가야한다고 우겨댔지만 의사의 절대적인 만류와 다른 때 보이지 않던 아내의 가정을 지켜달라는 말에 주저앉고 만다. 한번 등정에 나서면 한 달 이상을 산에서 살다가 돌아오는 남편이지만, 지금까지는 반대하지 않고 엄 대장의 뒷바라지를 해주었다. 함께 가지 못하고 앉아서 기다려야하는 엄 대장의 심정이 오죽했을까. 아니나 다를까. 대장 무택은 조난당한 대원을 찾으러 내려오던 길을 다시 올라가 찾아 헤매다가 대원도, 친구 박정복도, 자신도 설산에서 얼어붙은 것이다.
조난당한 소식을 접한 엄홍길 대장, 갓 결혼해서 신혼의 단꿈을 꾸어야하는 박무택의 꽃다운 아내의 심정이 어땠을까.
“여자는 산이야, 산은 정복하는 게 아니야, 살살 달래줘야지.”
라며 같은 대학 여자 산악회원을 아내로 맞아들이기 위한 전략을 중얼거렸던 무택이 캉첸중가에서 얼음으로 누워있다니. 아내로서는 이런 청천벽력이 또 어디 있겠는가. 이 산도 엄 대장이 회복되어 함께 갔으면 어땠을까? 살살 정복하지 않고 조급하게 오른 것이 화로 돌아오진 않았는지.
매일같이 조난당한 대원들의 시신을 수습해야 한다며 대원들을 모으려고 했지만 모두들 고개를 저었다. 히말라야의 일기가 좋지 않은 점도 선뜻 나서기 어려웠지만, 그들을 그곳에 두고 와야 했던 죄책감이 더 컸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고 했던가. 엄 대장의 의지에 감동한 대원들이 다시 모여 하나가 되었다. 베이스캠프를 차려 이동규가 진두지휘하고 대원들은 엄 대장과 함께 시신수습에 나섰다. 폭설, 갑작스레 쏟아지는 설빙과 싸우며 시신을 찾았으나 일기 악화로 수습대원들조차 위험상황이었다. 현장상황을 전해들은 무택의 아내는
“대장님, 무택이가 산이 좋아 친구들과 더 누워 있고 싶은가 봐요. 그의 뜻대로 해주세요.”
참으로 놀라지 않을 수 없는 말이 아닌가. 물론 시신을 수습해서 함께 하산하다가는 모두 변을 당할 위험한 순간이라는 것을 이해되지만, 사랑하는 남편을 두고 오라고 누구나 할 수 있는 말은 아닌 것 같다. 기어이 후배대원을 데려오겠다는 엄 대장. 남편의 시신 때문에 다른 대원들이 변을 당할 수도 있겠다는 사려 깊은 아내의 용단은 더 이상의 희생을 막았다. 박무택이 죽기 전에 아내를 사랑한다는 쪽지와 함께 지갑에 넣고 다녔던 아내의 사진을 가슴에 안고 잠들었다는 상황을 들려주며 건네주었다. 쪽지와 사진을 받아든 아내는 눈물을 흘렸지만, 환한 얼굴이었다. 그러면서 추워서 어떻게 얼음이 되었느냐며 남편의 사랑에 울먹거렸다. 내 눈에도 옆자리에서도 훌쩍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등반은 인간이 산을 정복한 게 아니라, 잠시 쉬다 갈 수 있도록, 산의 정상에 머물다 갈 수 있도록 신이 잠시 허락한 것 뿐이다.”
라며 자연의 순리를 거스르지 말자며 겸손한 엄홍길 대장은 불굴의 의지로 세계 최초 히말라야 16좌 등정에 자신이 세운 목적을 기어이 달성 했다. 병이 악화되면 다시는 다리를 쓸 수 없는 각박한 상황에서도 후배의 시신을 수습하기 위해 나선 뜨거운 동료애를 개인적 이기주의가 난무한 요즘 사람들이 가슴에 새겨야할 교훈이 아닌가 싶다. 역동적인 장면을 담아내기 위해 빙벽, 절벽촬영까지 감행했지만 광활하고 멋진 광경을 카메라에 담겨졌을 때의 기쁨은 오로지 그들만의 것이었다. 이석훈 감독을 비롯한 제작진의 치밀한 계획과 사전 리허설, 배우들의 몸을 아끼지 않은 연기력이 대작을 만들어낸 것이다. 해야 할 일을 무서워하고, 두려워하는 이들에게 주어질 선물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해준 영화였다.
‘산악인은 무궁한 세계를 탐색한다. 목적지에 이르기까지 정열과 협동으로 온갖 고난을 극복할 뿐 언제나 절망도 포기도 없다.’ 라는 산악인의 선서가 내 가슴에 와 닿는다.
(2016. 2.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