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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양을 먹이라(2024년 4월 7일 오후 예배)
성 경 : 요한복음 21:15-25(신약 185)
지난주는 부활절이었고 지난주 오후에는 디베랴 호수에게 고기 잡이 하던 제자들에게 예수님께서 찾아오셔서 배 오른편에 그물을 던지라 하시매 그물을 던지매 153마리의 고기가 잡혔다는 이야기와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먹을 준비해 주셨고 와서 조반 먹으라 하시매 제자들이 예수님이 준비해 주신 아침 식사를 했다는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위해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아시고 미리 준비해 주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보다 우리를 잘 아시고,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준비해 주시면서 힘들고 지쳐 있을 때에 와서 먹으라, 내게로 와서 쉬라고 말씀하십니다.
주님 안에서 참된 안식과 평안과 만족함과 풍요로움을 누리게 되기를 축원합니다.
예수님께서 고기잡이에 실패한 베드로와 제자들에게 배 오른편에 그물을 던지라고 하셔서 153마리의 물고기를 잡게 하신 것을 통해서 베드로 다시 한 번 자신의 힘으로 무엇인가를 하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것인가를 깨달았습니다.
그런 베드로에게 예수님은 나를 사랑하느냐 그러면 내 양을 먹이라고 목양을 부탁하셨습니다. 베드로는 실수도 자주 하고, 급하게 행동하기도 하지만 예수님은 그런 베드로는 성령으로 변화시키셔서 주님의 나라를 위한 일꾼으로 삼으시고 죽어가는 많은 영혼들을 돌보는 영혼의 목자로 세우시겠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유능한 사람, 능력 있는 사람, 부족함이 없는 사람을 택하셔서 주님의 일꾼이 되게 하신 것이 아니라 부족하고, 연약하고 실수도 자주 하는 사람들을 부르셔서 성령을 부어주셔서 하나님의 방법에 의해서 주님의 나라를 위해서 일하게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오늘 이 시대 우리를 통해서, 그리고 참빛교회를 통해서 놀라운 일들을 이루실 것을 믿습니다. 우리가 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을 하게 하시고, 우리가 감당할 수 없는 일들을 능히 감당할 힘과 능력과 재물을 주셔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을 하게 하실 것을 믿습니다.
오늘 말씀은 식사를 마치신 후에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말씀하신 이야기가 중심 내용입니다.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고 물으셨고 베드로는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님께서 아십니다. 라고 고백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내 양을 먹이라는 의미의 말씀을 세 번 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나를 따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오늘 말씀을 중심으로 해서 “내 양을 먹이라” 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려고 합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우리가 발견할 수 있는 것은
1.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예수님은 부활하신 후에 제자들과 함께 계시지 않고 가끔씩 나타나셨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세 번째로 제자들에게 나타나셔서 조반을 준비해 주셔서 함께 아침 식사를 했습니다. 그리고 나서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말씀하셨는데
예수님께서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고 물으셨습니다. 15절을 보면 “그들이 조반 먹은 후에 예수께서 시몬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하시니 이르되 주님 그러하나이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이르시되 내 어린 양을 먹이라 하시고”
베드로의 원래 이름은 시몬이지요. 예수님께서 시몬에게 베드로라는 이름을 주셨는데 베드로라는 말은 반석이란 뜻입니다. 예수님께서 시몬에게 베드로(반석)라고 부르셨습니다. 그래서 여기서는 베드로라고 하시지 않고 시몬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시몬의 아버지는 요한이라고 되어 있고 시몬의 형제는 안드레입니다. 예수님께서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이 사람들보다 더 사랑하느냐고 물으셨는데 여기서 이 사람들이란 단어는 사람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성경의 난해주에 기록된 것처럼 이것들이란 의미도 있습니다.
이 질문은 세 가지 가능성이 있습니다.
(1) ‘네가 다른 사람들이 나를 사랑하는 것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2) ‘네가 이 사람들(함께 있던 제자들)을 사랑하는 것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3) ‘네가 이것들(배와 기타 물고기 잡는 도구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이 세 가지 의미가 다 포함한 질문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우리가 주님을 사랑하는데 있어서는 예수님을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보다, 그리고 함께 신앙 생활하는 공동체 보다, 그리고 세상의 모든 것들보다 더 주님을 사랑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부르는 ’주 예수보다 더 귀한 것은 없네‘ 라는 찬양은 이 질문에 대한 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예수님보다 더 귀한 것이 없고, 예수님보다 더 사랑할 것이 없습니다.
예수님의 질문에 대해서 시몬 베드로는 “주님 그러하나이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님께서 아십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15절을 다시 보면 “그들이 조반 먹은 후에 예수께서 시몬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하시니 이르되 주님 그러하나이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이르시되 내 어린 양을 먹이라 하시고”
예수님께서 시몬 베드로에게 ‘사랑하느냐?’고 물으셨을 때 사용한 단어는 ‘아가파오’이었는데 베드로는 ‘필레오’ 로 대답했습니다. ‘아가파오’는 ‘하나님의 사랑, 신적인 사랑, 숭고하고 헌신적인 사랑, 완전히 이타적인 사랑’ 이란 의미로 사용된다고 볼 수 있습니다.
반면에 시몬 베드로가 대답한 ‘필레오(필로)’는 ‘인간적인 사랑, 조건적인 사랑, 친근하고 우정에 가까운 사랑’으로 해석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아가파오 라고 질문하셨는데 시몬 베드로는 필레오라고 대답을 했습니다.
이 부문에 대해서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에게 헌신적이고 무조건적인 사랑을 물으셨는데 베드로는 자신이 실패한 경험도 있고 해서 자신 있게 그렇다고 말할 수 없었고 단지 그보다는 다소 차원이 낮은 사랑 즉 인간적인 우정의 관계를 나타내는 말로 대답했다고 해석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반면에 다른 학자는 요한이 그의 복음서에 두 단어를 구별하지 않고 하나님의 사랑과 인간의 사랑을 표현하고 있다는 것을 지적하면서(3:16, 5:20, 14:21, 16:27) 여기에서도 마찬가지라고 해석을 합니다.
이렇게 보는 또 하나의 이유는 베드로가 예수의 물음에 대해 ‘주님 그러하나이다.’라고 대답함으로써 예수님의 질문에 대해 변경된 대답을 하지 않고 있다는 해석한 것입니다.
두 해석 모두 가능한 해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어떤 하나의 해석이 전적으로 옳고 다른 하나의 해석은 전적으로 틀린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본 절에서 적어도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베드로가 비록 실패를 하기 했지만 아직도 예수님에 대한 애정과 열심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시몬의 대답을 들으신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내 어린양을 먹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15절을 다시 보면 “그들이 조반 먹은 후에 예수께서 시몬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하시니 이르되 주님 그러하나이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이르시되 내 어린 양을 먹이라 하시고”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내 어린 양을 먹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승천하신 이후로 교회의 지도자로서 성도들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양육하라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내 어린 양이라고 말씀하셨는데 모든 성도는 예수님의 양이란 의미이고 어린 양이란 말은 예수님을 영접한 성도들은 하나님 앞에서 어린양과 같은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모두 주님 앞에서 어린양과 같은 존재입니다.
또 한편으로 어린 양을 돌보는 것은 많이 힘들고 어렵다는 암시가 포함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복음을 전하고, 교회를 세우고, 성도를 양육하는 것은 어린 양을 돌보는 것처럼 힘들고 어려운 일들일 수 있다는 것을 암시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2. 나를 사랑하느냐? 내 양을 치라
예수님의 첫 번째 질문과 내 양을 먹이라는 말씀에 이어서 예수님은 두 번째로 베드로에게 질문을 하시고 내 양을 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의 두 번째 질문은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입니다. 16절을 보면 “또 두 번째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니 이르되 주님 그러하나이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이르시되 내 양을 치라 하시고”
예수님께서 두 번째 하신 질문은 첫 번째 하신 질문에서 “이 사람들 보다” 라는 말은 생략하시고,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라고 물으셨습니다. 여기서 사용된 사랑이란 단어도 첫 번째 질문과 같이 아가파오를 사용하셨습니다.
첫 번째 질문에서 베드로 주님을 사랑합니다. 라고 대답했는데 또 다시 물으신 것은 베드로가 주님을 사랑하는 것을 다시 깨우쳐주시기 위한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첫 번째 질문에 대한 대답을 들으시고 그래 네가 나를 사랑하는구나 하고 넘어가신 것이 아니라 재차 질문을 함으로 예수님에 대한 진실한 사랑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신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오늘 이 시대를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에게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고 질문하시는데 그 질문은 한 번으로 끝나지 않고 계속해서 우리의 마음에 하십니다. 우리의 믿음이 곁길로 가려고 할 때 하나님 보다 세상을 더 사랑하려고 할 때 성령님께서 우리의 마음에 나를 사랑하느냐라고 질문하십니다.
두 번째 질문에 대해서 베드로는 첫 번째와 같이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라고 대답했습니다. 16절을 다시 보면 “또 두 번째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니 이르되 주님 그러하나이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이르시되 내 양을 치라 하시고”
두 번째 질문에 대해서 대답하면서 베드로는 여전히 필레오로 대답을 했습니다. 베드로는 이 시간 매우 진지하고 솔직하게 그리고 과장 없이 대답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베드로의 대답은 세 번 모두에 걸쳐 ‘주께서 아시나이다’라고 고백했습니다.
이것은 주님 앞에서 우리의 마음을 숨길 수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지금 내 마음이 어떤지를 주님께서 아십니다. 라는 고백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나는 지금 진실한 마음으로 주님을 사랑합니다. 내가 가진 그런 마음을 주님은 아십니다. 라고 고백한 것입니다.
우리가 겉과 속이 다른 신앙생활을 하는 것이 아니라 겉과 속이 같은 진실한 신앙으로 진실한 마음으로 주님을 사랑하는 성도의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베드로의 대답을 들으신 예수님은 내 양을 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16절을 다시 보면 “또 두 번째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니 이르되 주님 그러하나이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이르시되 내 양을 치라 하시고”
첫 번째와 세 번째 질문에 대한 베드로의 고백을 들으신 다음에는 내 양을 먹이라고 하셨는데 두 번째 질문에 대한 대답을 들으신 다음에는 내 양을 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양을 치라는 말은 양들을 돌보라는 말입니다. 양을 돌본다는 것은 먹이를 주는 것을 포함해서 양을 지켜주시고 보호해주고 양들이 살아가는데 필요한 것들을 적절하고 제공해 주고 또한 안전한 곳으로 인도해 주는 것을 포함해서 양을 위한 모든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우리보다 믿음이 약한 사람들을 돌본다는 것은 단순히 교회에 데리고 와서 예배에 참석하게 하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양을 치는 목자의 심정으로 인도하고 돌보아 주어야 한다는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3. 근심하여 이르되
두 번의 질문과 두 번의 대답 드리고 내 양을 먹이라고 하시고 내 양을 치라고 하셨는데 예수님은 한 번 더 베드로에게 물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세 번째로 내가 나를 사랑하느냐고 물으셨습니다. 17절을 보면 “세 번째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니 주께서 세 번째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므로 베드로가 근심하여 이르되 주님 모든 것을 아시오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 양을 먹이라”
첫 번째 두 번째에 이어서 예수님께서 내가 나를 사랑하느냐고 물으셨는데 여기서는 헬라오 아가파오가 아니라 필레오라는 단어를 사용하셨습니다. 일부 영어 성경에서는 이 구절을 “너는 나의 진정한 친구냐?” 라고 번역했습니다.
필레오를 우정의 의미라고 해석을 한 것입니다. 일부에서는 예수님이 아가파오로 물으셨는데 베드로가 계속 필레오로 대답을 하니까 예수님께서도 필레오라고 질문하신 것이라고 해석을 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굳이 그렇게 해석할 필요는 없습니다.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진정으로 나를 사랑하느냐고 물으시기 위해서 이렇게 세 번이나 질문한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질문에 대해서 베드로는 “주께서 세 번째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므로 베드로가 근심하여 이르되” 17절을 다시 보면 “세 번째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니 주께서 세 번째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므로 베드로가 근심하여 이르되 주님 모든 것을 아시오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 양을 먹이라”
베드로는 예수님의 세 번째 질문을 받고는 근심에 빠졌습니다. 베드로가 근심하게 된 이유는 ‘사랑하느냐’ 는 질문을 세 번 반복해서 들었기 때문인데 왜 예수님께서 세 번이나 반복해서 같은 질문을 하신 것일까? 이런 생각을 하면서 근심하게 된 것입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해석을 합니다.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세 번이나 같은 질문을 하신 것은 대제사장의 뜰에 예수님을 모른다고 세 번 부인한 것에 대해 늘 마음의 짐을 가지고 있었던 베드로에게 이제 괜찮다고 말씀하시는 의미라고 해석을 합니다.
베드로의 마음 안에 예수님을 세 번 부인한 것이 늘 있는데 예수님은 세 번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라고 물으심으로 세 번 부인한 것을 마음에서 씻어주시려고 한 것이라고 보는 것입니다.
베드로는 세 번째 질문하시는 말씀을 듣고 그 날의 상황을 머리에 떠 올렸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근심했습니다. 다르게 말하면 그날 자신이 한 행동에 대해서 뼈저리게 잘못한 것을 깨닫고, 호언장담했던 자신의 어리석었던 것들을 다 깨닫고 주님 앞에 내려놓는 근심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베드로는 계속해서 주님 모든 것을 아시오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님께서 아십니다. 라고 고백했습니다. 17절을 다시 보면 “세 번째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니 주께서 세 번째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므로 베드로가 근심하여 이르되 주님 모든 것을 아시오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 양을 먹이라”
베드로는 허위가 아니라 진정으로 예수님을 사랑하고 있다는 고백을 한 것입니다. ‘모든 것을 아시오매’ 이말 속에는 예수님께서 사람의 마음속을 꿰뚫어 보는 신적 통찰력을 갖고 계시다는 고백이 들어 있습니다.
베드로는 이것을 알고 있고 그런 만큼 그분 앞에서는 오직 진심을 이야기해야 함을 알고 있다는 고백입니다. 베드로는 비록 근심으로 떨리는 마음을 가지고 대답을 했지만 예수님을 사랑하는 자신의 마음을 인정받을 수 있음을 확신하고 있으며 그것을 담대하게 고백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그런 베드로에게 다시 한 번 내 양을 먹이라고 말씀하심으로 앞으로 있을 베드로 사도의 사역에 대해서 말씀하시면서 끝까지 목양의 의무를 다하라고 말씀하고 격려하신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너는 나를 사랑하느냐고 물으신 것처럼 우리에게도 질문하십니다. 너는 나를 사랑하느냐 우리는 베드로처럼 진실된 마음으로 주님 내가 주님을 사랑합니다. 라고 고백할 수 있는 성도가 되고 내 양을 먹이라는 주님의 말씀을 삶에서 실천하며 살아가는 삶이 되시길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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