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불
그대 슬픈 밤에는 등불을 켜요
고요히 타오르는 장미의 눈물
하얀 외로움에 그대 불을 밝히고
회상의 먼바다에 그대 배를 띄워요
창가에 홀로앉아 등불을 켜면
살며시 피어나는 무지개 추억
그대 슬픈 밤에는 등불을 켜요
정답게 피어나는 밀감빛 안개
황홀한 그리움에 그대 불을 밝히고
회상의 종소리를 그대 들어보아요
창가에 홀로앉아 등불을 켜면
조용히 들려오는 님의 목소리
님의 목소리...님의 목소리...
밴드 영사운드의 리더 안치행은 1970년대 중반부터 1980년대 중반까지 조용필, 윤수일, 최헌, 주현미, 문희옥, 박남정 등 스타 가수들을 키워낸 음반 제작자 겸 작곡가.
1942년 전라남도 진도 옆의 작은 섬 가사도에서 태어났다.
이리농고 2학년 때 황해악극단이 단원 실습생을 모집하자, 그는 대범하게도 집에서 운영했던 제과점에서 돈을 훔쳐 악극단을 따라 가출했다.
안치행은 책가방을 들고 다닌 적이 없던 문제아였다.
어느 날 길거리에서 들은 <타향살이>의 가락에 마음을 빼앗겨 독학으로 기타를 치기 시작해 7개월 후에는 기타 학원을 열었다.
그는 전북 이리, 군산을 비롯해 각 읍면에서 노래자랑대회를 개최하며 사업 수완을 발휘했다.
하지만 학비를 모아 김제에 천막 극장을 차린 뒤 영화 「홀쭉이와 뚱뚱이」의 필름을 걸었다가 쫄딱 망하고 말았다.
1966년 기타를 정식으로 배워볼 생각에 서울 을지로에 있던 이인성음악학원을 찾아갔다.
테스트를 받은 후 ‘서영춘과 그 일행’이 활약하던 악극단 20세기 컨츄리 쇼의 기타리스트로 활동했다.
밴드 영사운드의 결성 과정
별명이 ‘조로’ 인 친구가 록 밴드 결성을 제안하자, 안치행은 베이스 기타를 맡은 오덕기와 함께 3인조로 서울 남산 팔각정 근처에 방을 얻어 2달간 연습했다.
보컬 조로가 그만두자 드러머와 보컬 유영춘, 오르간 장현종 3명을 영입, 5인조 록 밴드 '실버코인스'를 결성했다.
1967년 미8군 쇼 업체 화양과 9만 원에 계약한 이들은 인기 가수 김계자와 무용수를 영입해 45분짜리 패키지 쇼 팀을 구성하고 전국 미군기지 순회공연을 시작했다.
당시 안치행은 기타 솔로 패키지 쇼에서 터키행진곡을 연주해 미군들에게 “웨스 몽고메리 스타일의 재즈 기타리스트”로 불리며 인기를 모았다.
그러나 그는 1967년 12월 30일 동두천 공연 후 귀경길에 사고를 당했다.
음주운전을 한 미군 운전수가 눈길에 세 차례 충돌사고를 내면서 안치행은 이마를 14바늘 꿰맸고, 조수 1명이 사망한 대형 사고였다.
5년 정도 미8군 무대에서 활동한 이들은 1970년 조선호텔 옥상에 생긴 나이트클럽 출연이 성사되자, 밴드 이름을 젊은 소리란 뜻의 영사운드로 변경했다.
영사운드는 리드 기타 안치행, 보컬 유영춘, 키보드 장현종, 올갠 장성현, 그리고 탈퇴한 베이스 기타 오덕기를 대신해 장대현과 드럼 박동수를 영입하면서 6인조밴드가 되었다.
TBC 동양방송 「신가요 박람회」로 데뷔
밴드 영사운드의 대표곡 <달무리>는 당시 새로운 시스템을 도입했던 TBC 동양방송의 음악프로그램 「신가요 박람회」의 입상곡이었다.
이 프로그램은 응모로 당선된 작사가 김주명의 가사에 작곡가 3명이 경합해 입상곡을 결정하는 독특한 방식으로 진행했다.
1971년 라이브클럽 포시즌에서 사회자로 활동한 박광희 동양방송 PD의 소개로, 안치행은 자신이 최초로 작곡한 데뷔곡 <달무리>로 「신가요 박람회」에 출연했다. 이후 안치행은 이 프로그램에 계속 참여하기 위해 <고향의 벗>, <등불>을 연이어 작곡했다.
1972년에는 명동장 연예 상무 이종범과 인연을 맺고 서울 명동 오비스 캐빈과 소공동의 생음악 살롱 포시즌 양쪽을 주 무대로 삼아 활동했다.
방송과 클럽 무대를 통해 청년층에게 인기를 얻으면서 이들에게 데뷔 음반을 제작하자는 제안이 들어왔다.
밴드 영사운드의 데뷔 앨범
1972년 오아시스레코드에서 밴드 영사운드의 데뷔 음반 「영싸운드 히트 퍼레이드」를 발매했다.
라틴 계열의 조용한 음악을 추구했던 이들의 노래는 앨범 발매 이후 다운타운을 중심으로 상당한 인기를 얻기 시작했다.
수록곡들은 TBC 동양방송의 음악 프로그램 「신가요 박람회」에서 이미 알려진 밴드 영사운드의 리더 안치행의 창작곡 5곡, 당시 이들이 라이브클럽에서 즐겨 부른 팝송 레퍼토리 4곡, 그리고 작곡가 정풍송의 <파도의 추억>까지 총 10곡으로 구성했다.
구성진 느낌의 잔잔한 수록곡 중 타이틀곡 <달무리>와 <등불> 이 청년층 사이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보였다.
이듬해인 1973년에는 TBC 신인 여가수상을 수상했던 인기 가수 장미리와 함께 스플릿 앨범을 발매했다.
또한 쇼 연출의 귀재였던 조용호 PD가 제작·연출한 동양방송의 인기 프로그램 「오라 오라 오라」의 전속 밴드가 되었다.
폭발적인 인기를 모았던 이 프로그램의 MC는 포크가수 서유석과 양희은이었다.
1970년대 가장 인기 많았던 밴드의 히트곡
영사운드의 대표곡 <등불>과 <달무리>는 1970년대에 대중적으로 가장 각광받은 밴드 음악을 대표하는 노래가 되었다.
영사운드는 외국 곡 연주가 주류를 이뤘던 당시, 록 발라드 계열의 창작 레퍼토리로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다는 점에서 특별하다.
이들은 딕 패밀리와 더불어 대중적으로 가장 인기가 많았던 1970년대 밴드였다.
-네이버 블로그, 음악과 시간여행-
첫댓글 영상과 음악이 멋지게 편집되었네요 쌩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