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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주 챌린저스 소속으로 프로팀 육성군과의 경기에서 144km의 구속을 찍었던 한선태. 야구를 제대로 배우지 않고 독학으로 독립리그까지 진출한 그에게 최근 KBO가 비선수 출신한테도 2차지명 참가 신청을 허용한다는 깜짝 뉴스가 전해졌다.(사진=이영미)>
KBO 장윤호 신임 사무총장과 류대환 KBOP 대표이사의 선임 발표가 있었던 1월 30일. KBO는 이사회를 통해 일부 규약이 개정됐음을 공지했다. 임원 선출 관련 뉴스에 묻혔지만 비선수 출신들한테 매우 반가운 소식이었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학생 야구 선수로 등록된 사실이 없는 선수에게 프로 입단의 길을 열어주기 위해 규약 제 110조(2차 지명)에 ‘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에 등록되지 않은 자 중 KBO가 정한 시행 세칙에 따라 참가 자격을 갖춘 선수가 구단에 입단하고자 하는 경우 2차 지명 30일 전까지 KBO에 2차 지명 참가를 신청해야한다’는 조항을 신설하기로 하였다.’
그동안 KBO는 학생 야구 선수로 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에 6년간 등록이 되지 않은 선수들에게 드래프트 자격을 부여하지 않았다. 즉 야구에 대한 재능과 열정이 있는 비선수 출신들의 KBO리그 도전 자체가 불가능했다. 그런데 KBO 이사회에서 규약 개정을 통해 비선수 출신들에게 프로 무대에 도전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 것이다.
지난 시즌까지 파주 챌린저스에서 활약했던 투수 한선태(24)는 비선수 출신이다. 중·고등학교 야구부에서 선수로 뛴 경험이 없다. 하지만 야구에 대한 열정과 의지는 프로 선수 못지않았다. 독학으로 야구를 배웠고, 자신과 비슷한 처지의 친구들과 함께 훈련하며 실력을 쌓았다. 고교 1학년 시절 인근 고등학교 야구부를 찾아가 입단 테스트를 받은 적이 있지만 기존의 선수들 훈련량을 따라오기 어렵다며 거절당한 경험도 있다.
스물한 살에 군에 입대했고, 제대한 다음에는 독립리그 팀인 파주 챌린저스에 입단하게 된다. 지난 시즌 그가 찍은 최고 구속이 144km. 파주 챌린저스 소속으로 상대했던 SK 2.5군 선수들과의 연습 경기에서였다. 이후 한선태는 몇몇 프로팀으로부터 입단 문의를 받았지만 비선수 출신이란 문턱을 넘기 어려웠다.
그의 유일한 목표는 프로팀 입단이다. 개정 전 KBO의 규약대로라면 비선수 출신이 드래프트를 신청하는 건 불가능했기 때문에 여러 차례 야구를 포기할 뻔했던 위기도 있었지만 미련과 아쉬움으로 야구를 놓지 못했다. 국가인권위원회를 찾아가 비선수 출신이 KBO리그 드래프트에 참여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달라고 문의했을 정도이다. 마침내 KBO 이사회의 규약 개정으로 비선수 출신한테도 프로에 입단할 수 있는 문이 열렸다. 그런데 한선태는 지난 12월, 이미 일본 독립리그 진출을 결정했다고 한다. 경기도 부천에서 한선태를 만났다.
2월 3일 토요일 오전 부천시민운동장. 일반인들이 운동장 트랙을 따라 걷고 있는 가운데 한 젊은이가 귀에 이어폰을 낀 채 열심히 뛰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한선태의 얼굴을 알지 못한 터라 청년의 움직임을 유심히 지켜봤다. 기자 앞을 지나가는 그에게 “혹시 한선태 선수인가요?”라고 물었더니 환한 미소를 보이며 “네”라고 대답한다. 기자와의 약속을 앞두고 1시간 일찍 나와 러닝을 하고 있었다고 한다. 매서운 추위였음에도 그는 벌겋게 상기된 얼굴로 연신 땀을 흘렸다. 인터뷰를 위해 운동장 인근의 한 카페로 장소를 옮겼다. 순수 청년, 한선태와의 인터뷰를 대화 형식으로 정리한다.
KBO에서 학생 야구선수로 등록된 적이 없는 선수도 드래프트에 참가할 수 있게끔 규약을 개정했어요. 한선태 선수한테는 굉장히 반가운 소식이었을 것 같은데요.
“만감이 교차했습니다. 지난해 비선수 출신한테도 KBO의 문을 열어 달라고 여러 차례 문의했지만 그때마다 ‘안 된다’는 대답을 들었거든요. 늦었지만 이제라도 규약이 개정됐다고 하니 감회가 새롭습니다. 저처럼 비선수 출신한테 기회가 생긴 거잖아요. 프로에서 뛸 수 있는 기회가요. 물론 실력부터 인정받아야 하겠지만요.”
그렇다면 올시즌에도 파주 챌린저스에서 뛰며 2차 드래프트에 참가할 예정인가요?
“올시즌에는 일본 독립리그에서 뛰기로 했어요. 지난 12월에 계약이 마무리 됐습니다. 일본에서 야구하다 KBO리그 2차 드래프트 신청서를 제출할 예정입니다.”
일본 독립리그의 어느 팀인가요?
“혹시 김무영 코치님 아세요? 일본 독립리그에서 뛰다 소프트뱅크에 입단했던 선수 출신이요.”
당연히 알죠. 지금은 일본 독립리그 신생팀인 BC리그 토치기 팀 투수 코치로 활약 중이잖아요(기사 참조-김무영 코치 인터뷰).
“제가 그 팀에서 뛰게 됐습니다. 지난 11월 오사카에서 BC리그 팀들이 합동 트라이아웃을 열었는데 그곳에서 테스트를 봤어요. 10월에도 경기도 용인에서 일본 독립리그 트라이아웃이 열렸는데 비선수 출신이라 정교함이 부족하다는 지적을 받고 떨어졌거든요. 변화구 던질 때의 팔 각도와 세트 포지션에 문제가 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런 지적을 받은 게 처음이라 지적받고 더 기뻐했습니다. 문제점을 알게 됐으니까요. 한 달 동안 문제점을 보완해가며 연습한 끝에 오사카의 트라이아웃에 참가했고 이후 김무영 코치님이 계시는 토치기 팀에 합격한 것이죠.”
지난 시즌까지 파주 챌린저스에서 활약하다 일본 독립리그로 방향을 돌린 이유가 무엇인가요.
“일단 한국의 독립리그는 회비를 내야 해요. 한 달에 훈련비 숙식비 등을 합치면 100만 원이 훌쩍 넘었어요. 부모님으로부터 돈을 받아서 회비를 내는 게 큰 부담이었죠. 일본 독립리그는 월급을 받거든요. 큰돈은 아니지만 제가 돈을 내고 야구하는 게 아니고 리그가 안정적으로 운영되고 있어 야구하는데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일본 독립리그에선 어느 정도의 월급을 받나요?
“15만 엔(한화 148만 원) 정도 돼요. 그걸로 집 렌트비 내고 공과금 내면 남는 돈이 거의 없을 거예요.”
일본에서 생활할 집은 구했어요?
“네. 김무영 코치님이 도와주셨어요. 8평정도 된다고 하시더라고요. 집이 좋지는 않지만 생활하기엔 문제없을 거라고 들었어요.”
처음 야구를 좋아하게 된 배경이 무엇인지 궁금해요. 야구의 어떤 점 때문에 이토록 미치듯이 야구만 파고 살았는지 알고 싶어요.
“처음에는 다른 아이들처럼 야구를 놀이 삼아 했었죠. 중학교 때까지 친구랑 캐치볼 하는 게 전부였습니다. 부천공고 1학년 재학 중일 때 친구와 함께 부천고 야구부 감독님을 찾아갔습니다. 야구를 정식으로 배우고 싶다며 테스트받게 해달라고 부탁드렸었죠. 감독님은 너무 늦게 야구를 시작하면 기존 선수들의 훈련을 따라가지 못할 거라며 거절하셨어요. 테스트도 형식적으로만 보셨고요. 고교 졸업 후 대전으로 내려갔습니다. 야구를 배우고 싶어서 한 아카데미를 찾아갔어요. 거기서 투구폼 등을 배운 후 친구와 함께 고양 원더스의 입단 테스트를 받았습니다.”
테스트 보려고요? 당시 김성근 감독한테요?
“네. 그런데 친구는 합격하고 전 떨어졌어요. 친구가 정말 부럽더라고요. 문제는 나중에 그 친구도 원더스에서 나올 수밖에 없었다는 겁니다. 비선수 출신이란 사실 때문에요.”
<파주 챌린저스 시절의 한선태. 한선태는 챌린저스에서 만난 박종대 코치를 야구인생의 은인으로 삼고 있었다.(사진=한선태 제공)>
그래서 세종대 야구부에 들어간 건가요?
“세종대 야구부는 비선수 출신도 입학이 가능하다고 해서 들어갔는데 막상 해보니 제가 기대했던 방향과 차이가 있었어요. 전 투수를 하고 싶었는데 코치님은 타격 훈련과 외야 수비를 보게 하시더라고요. 한 학기 다니다 휴학하고 군 입대를 신청했습니다. 그때가 스물 한 살이었어요. 강원도 철원의 최전방 수색대에서 근무를 했었죠. 제대 후에도 야구를 손에서 놓지 못하겠더라고요. 머리에선 비선수 출신으로 한계가 있으니 야구를 접고 돈이나 벌자는 생각이 들었는데 가슴이 움직이질 않았어요. 그때 파주 챌린저스가 창단과 함께 선수 테스트를 보더라고요. 비선수 출신도 테스트를 받을 수 있느냐고 문의한 다음에 들어갔습니다.”
독립구단이지만 처음으로 구단 선수가 돼 유니폼을 입고 활약한 설렘도 컸겠어요.
“처음에는 어리벙벙했어요. 프로 출신 선수도 있어 엄청 신기해했었죠. 사실 제가 야구를 제대로 못 배웠잖아요. 공만 던질 줄 알았지 수비 훈련 경험이 없어 처음엔 혼도 많이 났어요. 베이스 커버하는 것, 견제 동작, 백업 수비 등을 배운 적이 없었으니까요. 더그아웃의 사인을 파악하고 작전을 수행하는 능력도 부족했었죠. 매일 매일이 새로움의 연속이었어요. 선배들이 많이 도와주셨어요. 코치님한테 혼이 나도 행복했습니다. 야구를 배우면서 혼나는 건 하나도 두렵지 않았어요.”
원래는 언더스로우 유형의 투수였다면서요?
“네. 그런데 평가가 그리 좋지는 않았어요. 제가 공 던지는 걸 처음 본 사람들은 야구를 배우지 않은 것치곤 잘 던지는 편이라고 말하지만 구속이 늘지 않아 답답함이 있었죠. 그때 파주에서 만난 멘토, 박종대 코치님(고양 위너스)이 팔을 올려서 던져보라고 권유하셨어요. 처음에 제구가 잡히지 않더라고요. 대신 구속이 좋았어요. 그러다 점점 구속이 오르면서 제구도 안정을 찾아갔죠.”
SK, KIA 등 육성군과도 경기를 치렀다고 들었어요. 결과가 어떠했나요.
“SK전에서는 2이닝 동안 1실점 4삼진을 잡았어요. 1,2,3번 타자들을 모두 삼진 잡고 다음 이닝에서 첫 타자에게 홈런을 맞았었죠. 홈런 맞은 후 내야 플라이볼과 땅볼 등으로 이닝을 마무리했습니다. 재미있는 건 제가 시합 때 잘 보이고 싶은 마음에 전력 투구하면 투구폼이 흐트러지면서 밸런스가 무너지더라고요. 박종대 코치님이 ‘선태야, 가서 놀고 와. 마운드를 놀이터라고 생각해’라고 말씀해주신 후에는 연습 투구부터 142km를 찍었어요. 박종대 코치님은 제 야구인생에 엄청난 변화를 안겨주신 분이에요. 파주 챌린저스에서 그 분을 만난 게 행운이었습니다.”
그러다 파주 챌린저스를 그만두게 되었어요. 앞에서 언급했던 회비 부담 때문이었죠?
“부모님한테 죄송한 마음도 있었고, 비선수 출신은 프로에 갈 수 없다는 사실을 다시 확인한 후에 팀을 나오게 된 거죠.”
어떤 방법을 통해 확인한 건가요?
“코치님이 KBO 운영팀에 직접 전화해보셨어요. 비선수 출신은 안 된다는 사실을 거듭 확인하신 거죠. 8월 19일이 회비 만료일이에요. 구단에 그때까지만 뛰겠다고 말씀드린 후 KIA 함평 원정 경기에 등판했어요. 형들이 마지막 경기니까 던지고 싶은 대로 던져보라며 격려해주시더라고요. 그때 143km가 나왔어요. 최고 구속을 경신했던 거죠. 당시 KIA 2군 감독님께서 제게 관심을 나타내셨다고 하더라고요. 비선수 출신이라 영입할 수 없다는 걸 알고 단념하셨다는 얘기도 전해 들었어요. 파주 챌린저스 단장님이 제 상황을 너무 안타깝게 여기셨어요. 저도 계속 구속이 좋아지니까 욕심이 났었고요. 결국 혼자 국가인권위원회를 찾았습니다.”
그럼 국가인권위원회에서 한선태 선수의 신분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된 건가요?
“조사 담당자 배정을 받기 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리더라고요. 인권위원회의 도움을 받아 KBO에 비선수 출신의 프로 입문 관련해서 공문을 보냈고 나중에 답변을 받았는데 역시 ‘안 된다’였습니다. 대한민국은 직업의 자유가 있고, 터무니없는 꿈을 꾸는 것도 아니고, 제게 관심을 표명한 팀도 있는데 프로 무대에 도전할 수 있는 기회조차 허용되지 않는다는 사실에 좌절을 느끼고 삶의 의욕을 잃기도 했습니다. 함평 KIA전 이후 SK와의 경기에 한 번 더 등판했었어요. 그때는 144km가 나왔습니다. 그 경기를 끝으로 짐을 싸서 팀을 나오는데 형들이 그러더라고요. ‘144km까지 나왔는데 왜 프로에 못 가느냐’라고. 선수 출신인 어떤 형은 ‘선태야, 내 이름을 갖고 네가 프로 가라’는 말씀도 해주셨어요. 그 마음만이라도 감사했죠. 보다 못한 코치님이 제게 일본 독립야구로 향할 수 있는 길을 가이드해주셨어요. 그래서 오사카 트라이아웃에 참가했던 거고요. 일본은 비선수 출신도 야구를 잘하면 NPB에 진출할 수 있다고 들었어요.”
KBO리그에서 뛰고 싶은 마음은 없어요?
“당연히 있죠. 그러나 토치기 팀과 이미 계약한 상태라 일단 일본으로 갈 수밖에 없어요. 일본에서 야구하다 KBO 2차 드래프트가 공지되면 그때 참가 신청하려고요.”
부모님의 지원이 없었다면 지금까지 야구할 수 없었겠어요.
“항상 고맙고 죄송한 마음뿐입니다. 제가 부모님한테 뭘 요구하거나 해달라고 한 적이 한 번도 없었는데 야구만큼은 욕심을 냈거든요. 지금까지 단 한 번도 그만두라고 말씀하신 적이 없어요.”
사회인 야구에서도 활약했다고 들었어요.
“마운드 경험을 더 쌓고 싶었어요. 사회인야구에선 약간의 해프닝도 있었어요. 비선수 출신이란 사람의 구속이 높게 나오니까 생활기록부를 떼어 오라고 하더라고요. 혹시 선수 출신이 아닌가 해서요. 학교를 보니 죄다 야구부 없는 학교만 다녔다는 게 증명이 됐죠.”
한선태가 가장 좋아하는 선수는 임창용이다. 혼자서 야구할 때는 임창용의 경기 영상을 보며 투구폼을 따라했다고 말한다. 그의 목표는 분명하다. 비선수 출신 최초로 프로팀 유니폼을 입는 것이다. 그 유니폼에 그는 자신의 인생을 걸었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느냐고 물었다. 한선태는 의미있고 소박한 바람을 내비쳤다.
“‘비선수’ 출신이 아닌 ‘선수’로 마운드에 오르고 싶어요. 그리고 부모님께 적은 돈이라도 월급을 보내드리는 게 소원입니다.”
<비선수 출신인 한선태가 과연 프로팀 유니폼을 입을 수 있을까? 프로의 문턱을 넘기 위해 고군분투했던 한선태에게 진심을 담아 응원의 박수를 보낸다.(사진=이영미)>
한편 KBO 박근찬 운영팀장은 제110조 규약 개정과 관련해서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비선수 출신도 KBO리그에서 뛸 수 있도록 길은 열었지만 자격이나 실력이 없는 선수에게 모두 기회가 주어지는 건 아니다. 프로에 입단할 정도의 실력을 갖춰야만 한다. 10개 구단 스카우트 등 전문가들의 의견을 참고해서 시행 세칙을 만들 예정이다. 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에 등록되지 않았고, 드래프트에 참가한 이력이 없는 선수들 중 프로에서 뛸 정도의 실력을 갖춘 선수들에게 자격이 주어질 것이다. 관련된 시행 세칙은 추후에 발표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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