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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쓰기를 위한 7가지 방법
첫째 장식 없는 시를 써라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것, 시적 공간만으로 전해 지는 것, 그것이 시의 매력이다. 시를 쓸때는 기성시인의 풍을 따르지 말고 남이 하지 않는 얘기를 하라. 주위의 모든 것은 소재가 될 수 있으며 시의 자료가 되는 느낌들을 많이 가지고 있게되면 시를 쓰는 어느날 그것이 튀어나온다. 하지만 시는 관념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관념이 구체화되고 형상화 되었을 때 시가 될 수 있다. 그러므로 묘사하는 연습을 많이 하라.
둘째 시는 감상이 아니라 경험임을 기억하라
시는 경험의 밑바탕에 있는 단단한 생각에서 나오는 것이다. 이때의 경험은 구체적 언어를 이끌어 내 준다. 단지 감상만 갖고서는 시가 될 수 없으며 좋은 시는 감상을 넘어서야 나올 수 있다. 시는 개인으로부터 시작했지만 개인을 넘어 서야 감동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감상적인 시만 계속해서 쓰면 '나'에 갇히게 된다.
그러므로 '나'를 넘어선 '나'의 시를 쓰라. 단, 시를 쓰는 일이란 끊임없이 누군가를 격려하는 일임도 기억해야 한다.
(예) "따뜻함" - 강은교
웅덩이 건너편 모개가/웅덩이 쪽 모래를 손짓하는 새/ 아침별이
저녁별을 손짓하는 새/햇빛 한 올이 제 동무 햇빛을 부르러 간 새
셋째 시가 처음 당신에게 다가왔던 때를 돌아보고 자신을, 자신이 시를 쓸 수 있다는 사실을 믿으라
'내가 정말로 시인이 될 수 있을까?'라고 의심하지 말고 신념을 갖고 시를 쓰라.
나의 시를 내가 맏지 않으면 누가 믿어 주겠으며 나의 시에 내가 감동하지 않으면 누가 감동해 주겠는가. 시가 어렵고 힘들게 느껴지는 순간엔 처음 마음으로 돌아가서 시가 처음 당신에게 다가왔던 때를 돌아보라. 문학 평론가 염무웅은 이렇게 충고한다. '세상의 하고 많은 일들 중에 왜 하필 당신은 시를 쓰려고 했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남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시를 쓰는가?'라고. 우리는 신념을 갖고 시를 쓰되 남이 이해할 수 있는 시를 써야 한다.
네 번째, 시의 힘에 대하여
좋은 시에는 전율을 주는 힘이 있다. 미국의 자연 사상가인 헨리 데이빗 소로우는 이렇게 말했다. '떠오르는 아침해를 보고 전율하지 않는 사람은 한물간 사람이다. 오래 살고 싶으면 일몰과 일출을 보는 습관을 가지라.' 그는 자연에서 생의 전율을느끼라고 충고한다. 우리의삶에서 가장 전율을 많이주는 것은 무엇일까? 연애가 주는 스파크, 음악 등이 아니겠는가. 허나 살다가 보면 이때의 전율도 잊어버리기 마련이다. 시는 정신적으로 전율을 느껴야만 나올 수 있다. 그러므로 시를 쓰려면 전율할 줄 아는 힘을 가져야 한다.
표현과 기교는 차차로 연습할 수 있지만 감동과 전율은 연습할 수 없는 부분이다. 우리에게 감동이 혹은 전율이 스무살때처럼 순수하게 올 수 있을까? 그 순수한 전율을 맛보기 위해서는 시인의 남다른 노력이 필요하다.
다섯 번째 자유로운 정신(Nomade)에 대해서
원래 '노마드(Nomade)' 란 정착을 싫어하는 유목민에서 나온 말이다. 이말은 무정부 상태, 틀을 깬 상태, 즉 완전한 자유를 의미한다. 예술의 힘, 시의 힘은 바로 이 노마드의 힘이 아닐까? 우리의 정신은 이미 어떤 틀에 사로잡혀 있는 국화빵의 틀에 이미 찍혀 있는 상태다. 그러므로 우리는 틀을 깨는 연습부터 해야한다.
흔히 문학을 하는 사람들 중에는 이 틀을 깨는 과정에서 술(알콜)의 힘을 빌어야 좋은 문장이 나온다고 믿는 사람들이 있는데 술을 도구로 하여 얻어지는상태가 과연 진짜 자유인가를 우리는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그건 자유를 빙자한 다른 이름일 수도 있지 않을까. 만약 술의 힘이 필요하다면 우리는 어떤 이데올로기도 그려지 있지 않은 순백의 캔버스를 끄집어 내기 위해서만 술을 마셔야 하지 않을까.
여섯 번째 '낯설게 하기'와 '침묵의 기법'을 읽히자
우리는 상투 언어에서 벗어나 '낯설게 하기' 기법을 익혀야 한다. 상투의 틀에 붙잡히지 말고 끊임없이 새로운 정신으로 긴장을 살려나가자. 감상적인 시는 분위기로밖에 남지 않으며 '시 자체'와 '시적인 것'은 확연히 구분되어야 한다. 시적은 것은 시의알맹이가 아니다. 시적인 것에만 너무 붙들려 있으면 시가나오지 않는다. 우리의시가 긴장하여 이데올로기의 자유를 성취하는 순간 깜짝 놀랄 구절이 나온다. 그러므로 우리는 현실에 사로잡히지 않는 자유정신을 지니자. 몸의 자유가 뭐 그리 중요한가?
또한 "침묵의 기술, 생략의 기술"도 익히자. 예를 들어 T.S. 엘리어트 의 황무지라는 시는 우리에게 침묵의 공간을 보여주고 있는 시다. 시와 유행가의 차이는 그것이 의미있는 침묵인가 아닌가의 차이이다. 시는 감상이 아니라 우리를 긴장시키는 힘이 있는 것인데, 만약 설명하려다 보면 감상의 넋두리로 떨어져 버리게 된다. 그러므로 우리는 침묵의 기술을 익혀야 한다. 보다 침묵하는 부분이 많을수록 그 시는 성공할 것이다. 말라르메는 말했다.
"바람이 분다. / 살아야겠다." 이 짧은 두 행의 사이에는 시인 자신이 말로 설명 하지 않은 수많은 말들이 소용돌이치고 있음이 보이는가?
그러나 침묵의 기술을 익히려면 많은 연습이 필요한 법. 우리는 많이 쓰고 또 그만큼 많이 지워야 한다. 시를 쓸때도 다른 모든 세상일처럼 피나는 연습이 필요하며 더욱이 말로 다 설명하지 않으면서 형상화하는데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일곱 번째 '소유'에 대한 시인의 마음가짐
시를 쓰고, 어느 정도의 성취를 맛보려면 약간의 결핍현상이 있어야 한다.
왜냐하면 매사 풍요한 상태에선 시가 나오기 힘들기 때문이다. 역설적으로 들리긴 하겠지만 시인이 되려는 사람은 너무 많은 것을 소유하려고 해선 안되지 않을까?
시 쓰기의 행 갈이와 리듬의 상관성
시를 처음 쓸 때 도대체 시의 행을 어떻게 구분해야 하는가가 참 난감했다. 누구나 그럴 것이다. 정형시 같은 경우는 형태가 정해져 있으니, 그 형태에 맞게 행을 배열하면 그만이지만, 자유시 같은 경우는 시를 쓰는 사람이 스스로 판단할 문제이다.
나는 이 문제에 고민을 많이 하다가 그래, 자유시이니까, 행갈이도 '자유'가 아닌가, 내 마음의 행로에 따라 구분하는 것이지, 뭐 별다른 구속이나 제약이 있을 수가 없는 것이 아닌가 하고 그 문제에서 벗어났다.
그러나 정말 자유로운가.
시행은 시의 리듬과 어떤 측면에서는 불가분의 관계에 놓여 있다. 그래서 일반적으로 시행은 운율적으로 짜여 있는 줄이라고 말한다.
문덕수의 <<오늘의 詩作法>>에 보면, 김소월의 <가는 길>의 행갈이와 리듬의 문제를 실감 있게 기술하고 있다. 참조할 필요가 있다.
그립다
말을 할까
하니 그리워
그냥 갈까
그래도
다시 더 한 번…
-- 김소월 <가는 길> 일부
위의 시를 다음과 같이 고쳐보면, 어떻게 변하는가를 살펴보자.
그립다 말을 할까 하니 그리워
그냥 갈까 그래도 다시 더 한 번
이처럼 <가는 길> 1연과 2연을 7․5조를 한 행으로 하여 1연으로 묶어버리면, 원래의 시에서 드러나는 이별의 현장에서 느끼는 실제적인 감정이 거의 죽어버린다. "그립다 말을 할까 하니 그리워"를 한 행으로 읽어버리면, 그만큼 사랑하는 님과의 이별현장에서 느끼는 심리적 갈등과 감정의 기복은 빠른 리듬 속에 묻혀 독자에게 전달되지 않는다.
그립다
말을 할까
하니 그리워
로 3행으로 끊어 읽어보면, 이별의 절절한 감정들이 행간 사이에서 현실적으로 살아난다. 「가는 길」의 행갈이는 단순한 시각상의 문제가 아니라, 리듬의 문제로써, 그 리듬의 완급이 시의 의미구조와 연관된다. "그립다"에서 리듬이 끊어지면 그 리듬의 감정이 한층 고조되어 "말을 할까"에서 리듬이 끊어지면 그런 의사를 드러내는 충동과 차마 그런 말을 하지 못하는 심리와의 갈등이 뒤얽히고, "하니 그리워"에서 리듬의 한 단위가 어루어지면 차마 복바치는 그리움으로 목이 메어 말을 못하는 심리와 갈등은 그 절정을 이룬다고 문덕수는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위와 같은 설명도 한 작품의 특정 리듬을 해명하는데, 불과하다. 위의 설명이 모든 자유시에 보편적으로 적용될 수가 없는 것이다. 분명히, 시의 리듬은 나름대로의 원리가 있지만, 그것은 특수한 원리에 국한되는 것이다. 자유시 백 편이 있으면, 배 가지의 원리가 있는 셈이다.
현대시의 리듬은 거의 내재율이기 때문에, 비슷한 소리의 규칙적인 반복으로써 리듬을 드러내는 압운이나 음수율, 음보율 같은 율격으로 규명할 수가 있는 것이 아니다. 흔히 운위되는 압운이나 율격은 대체로 정형시에 적용되는 것이다. 압운 같은 경우는 우리시보다 영시나 한시에 많이 나타난다.
나두야 간다
나의 이 젊은 나이를
눈물로야 보낼거냐
나두야 가련다
안윽한 이 항구-ㄴ들 손쉽게야 버릴거냐
안개같이 물어린 눈에도 비최나니
--박용철, <떠나가는 배> 에서
우리시에서도 인용작품처럼 특정 위치에 같은 음운이 반복됨으로써 리듬감을 드러내는 시도들이 있기는 하다. 그러나, 우리시의 경우는 영시나 한시처럼 음절의 강조가 없는 단순한 소리의 반복효과만 나타나기 때문에 진정한 의미의 압운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본다.
배부른 듯/ 아름다워라/
남을 것만/ 남은 기둥//
약한 곳은/ 패이고/
질긴 곳만/ 무늬로 남아//
몇 백 년/ 세월 밟은 자국/
하늘의 말/ 적혀 있다//
-이상범, <고졸경-부석사 배흘림 기둥>
위의 정형시는 시조로서 음보율은 4음보, 음수율은 대체로 3․4, 혹은 4․4조로 되어 있다. 한국정형시(시조)는 음수율이나 음보율로 어느 정도의 리듬을 해명할 수 있다.
그러나 자유시는 시의 리듬이 외형적으로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 시 자체의 호흡이요 언어가 자연적으로 형성하는 음성의 질서인 내재율이기 때문에 거듭 말하거니와 이를 과학적으로 입증하기가 매우 곤란하다.
시 쓰기의 6가지
1. 강렬한 느낌을 받도록 하라.
강렬한 느낌이 올 때까지 기다리지 말고 감수성을 키워야 해요.
감수성을 키우면 강렬한 느낌을 받게 되고 강렬한 느낌이 오면 좋은 글을 쓰는 기초를 마련하게 되는 겁니다.
2. 시의 싹을 키워 나가라.
글의 소재를 얻게 되거나, 좋은 구절을 하나 얻으면
잘 적어 두었다가 거기에 살을 붙여 나가야 해요.
3. 시의 향기인 상징과 비유로 쓸 것
구체적인 이미지를 보이려거든 좋는 표현 방법이 비유나 상징입니다. 표현이 멋져야 감동을 얻게 되지요.
4. 자연스럽게 운율을 맞추라
형식적인 면이지만 시는 음악성이 하나의 중요한 특성이므로
내재율이든 외재율이든 리듬을 타게끔 만들어 줘야 해요
5. 시에 군더덕이를 없애라 -함축미를 가져라
말이 길어지면 산문이 되기 쉽고, 시의 매력이 사라지고 맙니다.
시에서는 내포적인 의미가 있어 그 의미를 통해 독자는 다양한 상상을 하게 됩니다. 이것은 글로 표현할 수 있는 것 이상의 효과를 얻게 되지요.
6. 계속 다듬어라
표현하여 하나의 작품을 만들었다고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당장은 좋아 보일지 모르나 세월이 흘러가면 흠투성이 일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작품으로 발표하기 전에 2-3일 묵혀 두었다가 다시 고치고 또 고쳐서 이상이 없을 때 발표하여야 합니다.
마지막 다듬기 작업은 보다 좋은 명작을 만드는데
꼭 필요한 중요한 요소임을 명심해야합니다.
자연적 언어와 인위적 언어
한 때 시의 언어가 따로 있는 것으로 생각했던 적도 있었다.
즉 고전주의 문학이론에 의하면 시어(poetic diction)는 인위적, 미적인 것이며 따라서 비속한 일상어가 아니라, 일종의 아어(雅語)여야 한다는 주장이 강렬하게 일었었다.
이러한 고전주의적 주장에 대해 정면적으로 대립한 것이 낭만주의의 견해이다.
낭만주의의 주장은, 시어는 비속한 언어가 아니고 아어여야 한다는 고전주의 입장에 강한 비판을 가하면서 일어났다. 그리고 이와 더불어 새로 제기된 낭만주의적 시어의 문제가 본격적으로 논의의 대상이 되었다.
이 논의의 직접적인 단서가 된 것은 위리암 워즈워드(W.Wordsworth,1770-1850)와 사무엘 테일러 콜릿지(S.T.Coleridge,1772-1834)의 공동시집인 {서정민요집}(Lyrical Ballads, 1798)의 재판 서문이었다.
즉 워즈워드는 {서정민요집} 의 서문에서 시의 언어가 일상의 언어와 본질적으로 다를 것이 없음을 주장하였다. 그리고 시의 언어는 인습이 아니라는 것, 인간의 정서를 전달할 수 있는 것이라면 어떤 말로든지 시를 쓸 수 있다는 것을 시사하였다. 이러한 생각이 발전하여, 참된 시어는 자연적 언어요, 그릇된 시어는 인위적 언어라는 명제를 생산했다.
물론 시에는 적절한 어휘의 선정과 효과적인 배열에 대한 기술적인 문제를 지시하는 조사법이라는 것이 있지만 시창작에서도 지나친 손질은 자연스러움을 훼손할 수도 있는 것이다. 지나친 손질이란 지나친 인공적 수식을 말하는 것이며, 그 인공적인 것은 자연스러움을 훼손하고 자연스러움의 훼손은 곧 감동의 훼손을 가져 올 것임은 말할 것도 없다.
내 가슴 속에 가늘한 내음
애끈히 떠도는 내음
저녁해 고요히 지는 제
머언 山 허리에 슬리는 보랏빛
오! 그 수심 뜬 보랏 빛
내가 일흔 마음의 그림자
한 이틀 정녈에 뚝뚝 떠러진 모란의
깃든 향취가 이 가슴 놓고 갔을 줄이야
얼결에 여흰 봄 흐르는 마음
헛되히 차즈랴 허덕이는 날
뻘 우에 철석 갯물이 노이듯
일컥 니는 훗근한 내음
아! 훗근한 마음 내키다마는
서어한 가슴에 그늘이 도나니
수심뜨고 애끈하고 고요하기
山허리 슬니는 저녁 보랏 빛
- 김영랑 <가늘한 내음> 전문 -
김영랑은 1930년대에 이미 언어에 대한 미감이 어떤 것인가를 자각하고 그것을 실천한 시인이다. 그러나 위의 시를 주목하여 읽으면 그가 선택한 시어들이 평범하고 예사로운 것이 아니며 과도한 애정으로 수정한 시어임을 알 수 있다.
위의 시에서 '가늘한', '애끈히', '슬리는', '일컥', '서어한', '수심뜨고' 등의 어휘와 이런 어휘들의 집합인 '깃든 향취가 이 가슴 놓고 갔을 줄이야', '훗근한 마음 내키다마는', '서어한 가슴에 그늘이 도나니'등의 구절들은 독자로 하여금 주의력을 집중하여 해석하고 그 뉘앙스를 감지하는 데에 매달리게 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그것은 김영랑의 다른 시들, [모란이 피기까지는], [내 마음 아실 이], [끝없는 강물이 흐르네], [사행시], [오매 단풍들겄네] 등을 읽을 때의 감동과 비교할 때 확연히 구별되며, 된다. 그것은 이 시들이 인공적인 언어가 아닌 자연적인 언어로 구사되었기 때문인 것이다.
-전략-
수풀과 벌레는 자고 깨인 어린애
밤새어 빨고도 이슬은 남았다
남았거든 나를 주라
나는 이 청명에도 주리나니
방에 문을 달고 별을 향해 숨쉬지 않았느뇨
햇발이 처음 쏟아와
청명은 갑자기 으리으리한 관을 쓴다
그때에 토록하고 동백 한 알은 빠지나니
오! 그 빛남 그 고요함
간밤에 하늘을 쫓긴 별쌀의 흐름이 저러했다
-후략-
- 김영랑 <청명> 중에서-
'남았거든 나를 주라 / 나는 이 청명에도 주리나니' 이러한 표현에는 억지도 없고 꾸밈도 없다. <청명>의 언어들은 일상의 언어가 그대로 시의 언어로 채택한 예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언어가 자연스러우면 정서의 전달에 애로가 없으며, 정서의 전달이 제대로 되면 감동력은 따라서 커지는 것이다.
시인은 자신의 언어를 자신이 발명해 내지 않는다. 시인은 언어의 창조자가 아니라 가장 적절한 언어를 발견하는 사람이요, 가장 적절하게 운용하는 사람인 것이다. 시인은 자신의 밖에 있는 소재 가운데서 특수한 유연 관계를 발견해 내어서 시 가운데 언어를 통하여 이식한다.
언어는 공간과 시간의 변모와 요구에 부응하면서, 점진적으로 변천하는 역사성을 가진다. 그리고 언어의 역사성은 곧 시어 역시 변천한다는 말과 연결된다. 시어가 변천하는 것은 시간이 변하고 사회나 문화가 발전함에 따라 시적 소재가 달라진다는 외부적 이유도 있지만, 시인 스스로가 좀더 경이롭고 참신하며 감각적이고 생명력 있는 언어를 향해 끊임없는 시도와 탐색이 계속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한 것이다.
시는 산문을 앞서 나왔다고 하는 것이 일반적인 주장이다. 그렇다고 볼 때 시의 언어는 사람의 투박하고 절실한 정감을 토로하는 직정의 언어로서 인간의 생활에 밀착된 말이었으리라는 추정을 가능하게 한다. 많은 사람들에게 애송되며 선호도가 높은 시들은 대부분 생활에 밀착된 기초적 어휘로 되어 있다는 사실을 보여 주고 있다. 이 점은 주목할 만한 현상이다. 이러한 경향의 시의 대표적인 예로 김소월의 시를 들 수 있다.
봄가을 없이 밤마다 돋는 달도
예전엔 미처 몰랐어요.
달이 암만 밝아도 쳐다볼 줄을
예전엔 미처 몰랐어요.
이렇게 사무치게 그리울 줄도
예전엔 미처 몰랐어요.
이제금 저 달이 서름인 줄을
예전엔 미처 몰랐어요.
- 金素月 <예전엔 미처 몰랐어요> 전문 -
이 시에서 어렵거나 생소한 말은 단 한 마디도 찾아볼 수가 없다. 이제 말을 배우기 시작한 사람이 정성을 다해 자신의 속뜻을 내보이는 듯한 시이다. 봄가을, 밤마다, 예전, 몰랐어요, 이들은 모두 기층언어이며 성장의 초기 단계에 익힌 단어라는 사실에서 공통점을 갖는다. 유아기에 습득한 기층언어일수록 함축과 함의는 풍요하고 강렬하다.
기층언어는 사람이 가장 소박한 본능의 상태에 있을 때, 교양과 인공적 수식과 위선의 옷을 벗고 싶을 때, 위기 상황을 만났을 때, 터져나오는 개인적 차원의 방언이라고도 할 수 있다.
기층언어가 민족적인 단위로 나타날 때는 그 민족을 결속하는 하나의 모티브로 작용할 수도 있다. 개개인이 의식치 못하는 사이 민족의 감정과 태도의 방향을 결정하는 잠재력이 되기도 한다는 것이다. 외국의 거리에서 듣는 '아리랑' 민요가 애국심을 자극하기도 하고, 무심결에 터져 나오는 '에그머니나'하는 감탄사가 민족의식으로까지 발전하기도 한다. 타지에서 듣는 고향의 사투리가 친근감과 함께 향수를 느끼게 하는 것도 같은 차원의 것이다.
...이러한 개인적 기층언어가 동시에 겨레의 생활과 밀착된 토착어라는 사실은 중요하다. 교양체험의 축적과 함께 증가하는 후기 습득 언어가 토착어가 아니라는 사실은 후기 습득언어로 구성된 시의 호소력을 감퇴시키고 그 함축을 그만큼 불모화 시킨다고 할 수 있다. 생활과 유리되고 또 우리들의 잃어버린 낙원과의 거리가 그만큼 현격하기 때문이다. 시의 언어가 함축에 무겁게 의존하지만 그것만 가지고 시 언어가 탕진되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교양체험의 축적에 따라서 증폭하는 후기 습득 어휘 체계를 버릴 수도 떠날 수도 없는 처지에 있다.
유종호는 이상과 같이 지적하면서 후기 습득 언어로 많은 시를 발표한 시인의 예로 김광섭씨를 들었다. 김광섭씨의 시로서 호소력이 큰 작품들은 그의 후기 시들이며 그 후기란 바로 김광섭씨가 실어증으로 고생하던 시기의 작품이라는 것이다. 실어증은 시인으로 하여금 가장 원초적이며 기본적인 언어만을 남기고 모두 망각하게 하는 데에 기여했다는 것이다. 유종호가 지적한 것처럼 김광섭의 대표작 <성북동 비둘기>, <황혼이 울고 있다>, <山>등은 교육받은 언어로 시를 쓰려고 했던 초기의 실패를 극복한 후, 즉 실어증 이후의 시들인 것에 주목하게 된다.
비애의 언어를 쫓아내고
신념의 중세를 쫓아내고
시대의 고뇌를 쫓아낸 뒤
나의 체중이 경기구가 되어 난다.
나의 미래가 경쾌하게 상승한다.
그 다음엔 관모같이 나는 하늘지경에 가서 운다.
- 김광섭 <공막(空寞)> 전문 -
이 시에 보이는 '비애', '언어', '신념', '중세', '체중', '경기구','미래', '상승', '관모'등 대부분의 어휘들이 어릴 적에 익힌 기층언어가 아니라는 것이다. 모두 후기의 교육과 체험으로 습득한 언어이며, 더구나 관념적이고 추상적인 어휘들이어서 호소력이 약하다는 것이다.
시의 언어는 인간의 원초적 본능을 자극하는 것들이다. 삶을 바라보는 순진한 시선, 때로는 단조롭고 때로는 공포를 주며 또 때로는 불가사의한 신비로움을 느끼게 하는 우주의 섭리, 아름다운 계절의 변화와 순환을 우리는 기층언어로써 풍요롭게 표현할 수 있다. 우리는 기층언어만으로 삶의 직접적이고 구체적인 정서를 충분히 호소할 수 있다. 즐겨 애송되는 시들이 모두 모국어의 기처적인 언어로 구성되어 있는 이유를 여기서 발견해도 될 것이다.
한국의 시는 자연 속의 인간세계에서 차츰 도시문명 속으로 판도를 넓혀 왔으며 그러한 도시문명을 표현함에 있어서는 좀더 문명적인 후기의 언어로 표현하려는 시도가 이루어 졌다. 그러나 새로 기항한 도시와 문명도 시인이 안주하기에는 적당한 곳이 못되어서 다시 고향 같은 자연으로 돌아가 인간의 내면적인 생명을 찾으려고 하고 있다.
현대시에서는 비어와 속어가 대담하게 사용되고 있다.
시만 쓰면 다냐
살림이 기우는데
시만 쓰면 다냐
공자 말씀에 토나 달고 앉아서
술잔에 코를 박고 졸기나 하고
남들이 술값 낼 때
구두끈만 매면 다냐
나라가 꼬이면
말이 어지럽고
말이 헷갈리면
넋도 달아나느니
네 넋은 늬집 개가 물어가서
거렁뱅이 맨발로 떠도느냐
헷갈리지 마라, 아무리 생각해도
확실하지 않은 것은 한국어가 아니다.
- 정희성 <넋두리> 전문 -
비천함이나 세속성으로 친다면 그 정도가 별로 심한 편이 아니다. 아무런 저항도 제약도 받지 않은 자연적인 언어로 된 시이다. 따라서 독자들이 읽는 데에도 부담이 없다. 이는 긍정적인 눈으로 볼 때 詩語의 영역이 확대된 것이라 볼 수 있겠다. 그러나 앞으로 무한정 확대된다면 그만큼 부작용도 증가된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시인이 그의 작품 속에서 어떤 언어를 선택하여 사용하는가가 중요한 것이 아니요, 시인이 선택한 언어가 그의 시정신을 어떻게 가다듬고 응결시키는가 하는 것이 중요한 과제인 것이다.
문장 만들기
꽃-피다 / 새-날다 / 눈-보다 / 귀-듣다
어떤 분은 제2강의 '문장 만들기 연습'이란 제목을 보면서 자존심 상해 하실 분도 계실 것입니다. 그러나 나는 모든 글의 기본은 언어이며, 언어로 이루어진 문장 만들기는 모든 글 쓰기의 기본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말인데 그걸 모를 사람이 어디 있느냐?'고 항의하실 분이 있다면, 내게 많이도 말고 단 열 줄의 문장만 지어 가지고 제출해 주십시오. 만약 거기서 한 군데도 잘못된 부분이 발견되지 않는다면 그 분은 대단한 문장의 실력가이십니다.
우리는 영어의 문장 5형식은 잘 알아도 우리 글의 문장 구조는 잘 모릅니다.
영어로 'I am boy.'나 'I am girl.'이라고 했다면 'a'를 빠뜨렸다며 무식하다는 소리를 하거나 들으면서도 '역전앞'이니 '초가집'이니 하는 소리를 하면서는 부끄러운 줄을 모릅니다.
얘기 하나 해 볼까요?
옛날 어느 출판사 현관 입구에 들어서면 마주 보이는 벽 한 면 전체를 거의 덮은 커다란 사진과 함께 거기 이런 글이 적혀 있었습니다.
ㅡ 지혜의 샘은 책 속에 흐른다.
어디가 이상합니까? 아니면 잘못된 표현이 없습니까? 얼른 보면 이 문장에는 잘못된 부분이 없는 것같이 보입니다. 그러나 자세히 다시 한 번 읽어 보십시오.
'샘'과 '흐른다'는 맞지 않습니다. '샘'이 어떻게 흐릅니까? '흐르는 것'은 '샘이 아니라 '샘물'입니다. 따라서 이 문장이 제대로 되려면 '지혜의 샘물은 책 속에 흐른다.'라고 하거나, 아니면 '지혜의 샘물은 책에서 솟는다.'라고 표현하는 것이 가장 적확한 표현입니다.
우리말이 우리 글이 쉬운 것 같아도 이렇게 어렵습니다.
예로 농담 같은 얘기 하나 더 해 볼까요?
한 바람둥이 남자가 여러 명의 여자와 번갈아 가며 바람을 피웠는데, 그는 만나는 여자들 모두에게 항상 '나는 너를 사랑한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그가 실수를 하는 바람에 그만 한 자리에서 그 여자들이 모두 만나 버리게 되었던 것입니다. 여자들은 흥분하여 남자에게 달려들며 이구 동성으로 소리를 지르고 악을 썼습니다.
'어떻게 나를 사랑한다고 해 놓고 다른 여자를 사랑할 수 있느냐!, 그것도 한 명도 아니고 여러 명을?'
그런데 남자는 태연하게 말했습니다.
"그래, 나는 분명히 모두에게 사랑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내가 어느 누구에게도 '너만을 사랑한다.'고 말한 적은 없지 않느냐?"라고.
이 남자의 말에는 한 치의 오류도 없습니다. 이 남자가 모두에게 '사랑한다.'고 말했지만, 그의 말처럼 어느 누구에게도 '너만을 사랑한다.'고 한 적은 없기 때문입니다.
물론 이것은 언어의 유희입니다. 그러나 여기서 우리는 단독 보조사인 '만'자 한 자가 있고 없고에 따라 그 내용이 얼마나 달라지는가를 배워야 하겠습니다.
이래서 문장 만들기 연습이 필요합니다.
1. 꽃-피다
'꽃'은 명사이고 '피다'는 동사라는 것은 다 알고 계실 테니, 여기서는 군더더기 말은 다 빼고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겠습니다.
'꽃'과 '피다'라는 단어를 기본으로 하여 문장을 만들어 나가는 연습을 해 봅시다.
조사 '이'를 넣어서 '주어+서술어'의 '꽃이 피다.'를 기본 문장으로 하여 한 번에 한 낱말씩 더 넣어 나가되, 먼저 넣은 낱말을 그대로 사용하면서 한 낱말씩을 추가해서 문장을 늘려 나가야 합니다.
◆ 기본 어휘 : 꽃-피다.
1) 꽃이 피다.
2) 꽃이 피었다.
3) 장미 꽃이 피었다.
4) 장미 꽃이 아름답게 피었다.
5) 장미 꽃이 매우 아름답게 피었다.
6) 검은 장미 꽃이 매우 아름답게 피었다.
7) 검은 장미 꽃이 울타리에 매우 아름답게 피었다.
8) 검은 장미 꽃이 싸리나무 울타리에 매우 아름답게 피었다.
9) 핏빛처럼 검은 장미 꽃이 싸리나무 울타리에 매우 아름답게 피었다.
10) 핏빛처럼 검은 장미 꽃이 썩은 싸리나무 울타리에 매우 아름답게 피었다.
11) 핏빛처럼 검붉은 장미 꽃이 썩은 싸리나무 울타리에 매우 아름답게 피었다.
12) 핏빛처럼 검붉은 장미 꽃이 썩은 싸리나무 울타리에 매우 아름답게 피어 웃었다.
13) 핏빛처럼 검붉은 덩굴장미 꽃이 썩은 싸리나무 울타리에 매우 아름답게 피어 웃었다.
14) 핏빛처럼 검붉은 덩굴장미 꽃들이 썩은 싸리나무 울타리에 매우 아름답게 피어 웃었다.
15) ......
이런 식으로 낱말들을 늘려 나갈 때 여러분들은 과연 몇 개의 낱말을 한 문장 안에 담아 표현할 수 있을까요?
한 문장 안에 담을 수 있는 낱말의 수는 바로 여러분들 각자의 어휘 능력이나 문장 실력에 따라 많은 차이가 날 것입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지금 얼마나 많은 낱말을 한 문장 안에 담을 수 있느냐가 아니라, 앞으로 이러한 문장 만들기 연습을 누가 얼마나 끊기 있게 열심히 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생명력 있는 시를 쓰려면
1. 시인은 명확하고 힘있게 말하는 사람
영국의 계관시인 워드워즈가 친구인 코울리지와 함께 서정시집을 냈습니다. 18세기 초에 나온 초판에서는 이런 말을 안했고, 재판을 내면서 그 서문(序文)에서 '시인이란 무엇인가?'라는 화두에 대해서 언급했습니다.
그에 따르면 '시란 결국 남에게 하는 얘기다. 다만 남에게 명확하고 힘있게 말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사람이 시인이다.'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시인하고 보통 사람하고 다른 점이라면, 보통 사람은 남에게 명확하고 힘있게 얘기할 수 없지만, 시인은 명확하고 힘있게 얘기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명확하다'는 말에는 '간단하고 짧게'라는 뉘앙스가 깃들어 있습니다.
또 '힘있게'라는 말에는 감동을 준다는 뉘앙스가 들어 있죠. 분명하고 짧게, 그렇지만 남한테 힘있고 감동적으로 얘기를 하는 사람이 시인이고 그 결집체가 곧 시라는 말이 되겠는데, 제가 처음에 시를 쓰기 시작한 때를 생각해 봐도 이 말은 맞는 것 같습니다.
저도 누군가에게 얘기를 듣고 싶어서 시를 읽기 시작했고, 또 힘있고 명확하게 하는 얘기를 좋아했습니다. 제가 시를 쓰기 시작할 무렵은 워드워즈를 읽기 전이었지만, 막연하게나마 남에게 명확하고 힘있게 얘기를 해야겠다고 마음먹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젊을 때 시를 쓰고 늙으면 시를 못 쓴다는 말은 워드워즈 때문에 생겼습니다. 워드워즈는 젊을 때에는 굉장히 좋은 시를 쓴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산업혁명기에 시의 언어를 새롭게 발견한 시인이었습니다. 이른바 '민중 언어'를 발견한 사람이지요. 그 이전에는 모두 문어(文語) 즉, 상류층에서만 쓰는 어려운 말로 시를 썼는데 워드워즈부터 비로소 평민들이 쓰는 구어(口語)로 시가 씌어지기 시작했으므로 세계시사에서 아주 혁명적인 사람입니다.
그런데 이 사람의 시력(詩歷)에는 문제가 좀 있습니다. 젊은 날에는 근사한 시를 쓰고 생각도 진보적이었는데, 나이가 들어 집안의 유산을 챙기고 나서는 생각이 크게 달라졌습니다. 젊었을 때 쓴 시는 민중 언어로써 참 훌륭하게 씌어진 것들이 적지 않은데, 나이 들어서 쓴 시들은 이른바 쓰레기가 된 것이 많습니다.
이를 두고 가리켜서 로버트 브라우닝 같은 사람은 "워드워즈는 39세까지만 살다가 죽었어야 할 사람"이라고 혹평을 하기도 했습니다.
'일년은 봄/봄은 아침/아침은 7시/하늘엔 종달새가 날고'(The year's at the spring,/And day's at the morn;/Morning's at seven;/The hill-side's dew-pearl'd;/The lark's on the wing;/the snail's on the thorn;/God's in His heaven--/All's right with the world!) 하는 「비파의 노래(Pippa's Song)」라는 시를 쓴 사람이지요. 그는 자기 시보다도 워드워즈를 욕해서 더 유명해질 정도였습니다. '워드워즈는 30세까지만 살았어야 된다. 괜히 팔십 넘게 살아서 시인 모두를 망신시켰다'고 하였는데, 그 사람 때문에 나온 소리입니다.
사실 외국에는 나이 들어서도 좋은 시를 쓰는 사람들이 많은데, 우리나라에도 워드워즈를 닮은 시인들이 적지 않아서 걱정입니다.
저는 이렇듯 처음에는 남과 대화한다는 생각으로 시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시도 마음 속에 있는 것을 분명하고 힘있게 들려주는 시들이었습니다.
그 때 좋아했던 시인 가운데 하나가 해방 후 월북을 해서 한동안 잊혀졌던 이용악입니다. 그의 시를 읽었다는 이유로 잡혀가서 몇 달씩 고생한 사람이 한둘이 아니지만 지금은 읽어도 아무 일 없습니다. 민주화가 된 덕분에 다시 우리 문학사 속에서 복권된 아주 훌륭한 시인이지요. 제가 어릴 때 좋아했던 시 중에 그의 「북쪽」이 있습니다.
"북쪽은 고향
그 북쪽은 여인이 팔려간 나라
머언 산맥에 바람이 얼어붙을 때
다시 풀릴 때
시름 많은 북쪽 하늘에
마음은 눈감을 줄 모르다"
제가 이것을 읽은 것은 고등학교 2, 3학년 무렵이었습니다. 읽으면서 가슴 속으로 찡하는 울림 같은 것을 받았습니다. 그 때는 이용악 시인이 월북을 했는지조차 전혀 몰랐습니다. 다만 헌책방을 돌아다니며 그분의 시집을 구해, 시집 맨 앞에 실려 있던 이 시를 읽고서 큰 감동을 받았지요.
이걸 읽으면서 저는 우리나라가 어떤 나라인가 곰곰이 생각에 잠겼습니다. 여인이 팔려가고, 외국한테도 쩔쩔매고, 가난하게 살고…. 이런 것을 깨닫게 해준 계기가 된 바로 이용악의 「북쪽」이었습니다.
얼마 뒤 대학교 2학년이 되어 문단에 나왔습니다. 「갈대」라는 시로 「문학예술」지의 추천을 받아서입니다. 제가 문단에 나와서 굉장히 실망한 것이 있었습니다. 선배나 동료 시인들을 만나서 굉장히 실망했습니다. 모두들 당대의 시만 읽을 뿐 10년이나 15년 전의 시조차 잘 읽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당장 문예지에 발표되어 여러 평론가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시들만 읽고서, 마치 그것이 문학의 전부인 것처럼 얘기를 해요. 이만저만 실망스러운 것이 아니었습니다.
고등학생 시절에 좋은 선생님을 한 분 만났습니다. 국어 선생님이셨는데, 수업 시간에 제가 이용악 시인에 대해서 묻곤 할 때마다, 당시에는 그것이 금기시 될 때였는데도 불구하고 선생님께서는 이용악 시인에 대해서 자세한 얘기를 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 사람의 이러이러한 시도 있으니까 그것들도 한번 읽어보라고 권해 주셨습니다.
그 덕에 저는 좋은 시들을 참 많이 읽었습니다. 다른 학생들이 읽을 수 없는 시들을 많이 읽었습니다. 지금 연세대 교수이자 문학 평론가인 유종호씨의 아버지인데, 저는 그런 면에서 참 행운아였지요.
그런데 서울에 와서 동료 문인들이나 선배들을 만나 이용악 얘기를 하면, 그 사람은 벌써 옛날 시인이고 지금은 그 사람의 시는 읽을 필요가 없다고 얘기하는 것이었습니다. 백석의 시도 좋아했는데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소설도 마찬가지로, 홍명희의 「임꺽정」 얘기를 하면 아무도 귀기울여 주지 않았습니다.
그 때 저하고 술자리에서 얘기가 유일하게 통할 수 있는 사이가 작고한 천상병과 유종호였습니다. 저하고 천상병과는 여섯 살쯤 차이가 납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천상병이 저를 어린애 취급을 하고 상대를 잘 안해 주려고 하다가, 내가 현덕의 소설을 읽었다는 소리를 하니까 그제서야 이 사람이 술을 먹다가 깜짝 놀라 바라보았습니다. "야! 임마 니가 어떻게 현덕을 읽었어?" 하는 천상병의 말에, 저는 "내가 왜 못 읽어!" 하면서 현덕의 소설 한 대목을 암송해 주었지요. 그랬더니 "진짜로구나!" 하면서 백석 시 이야기로 번지고 하면서 친해졌지요. 인사동에 나오면 르네상스 다방을 찾아 천상병을 만났던 기억이 납니다.
천상병은 원래 돈이 없는 사람이니까 술 얻어먹을 희망은 전혀 없었지만, 그래도 제가 그를 찾아가는 것은 옛날 소설을 읽은 동지로서 유일하게 인정해줬기 때문입니다.
한때 문학을 포기할 생각도 했었습니다. 그 때 실망한 것과 관계가 있는 거지요. 시를 쓸 마음도 안 생기고, 동료나 선배 문인들을 만나면 아무 재미가 없었습니다. 1956년이면 한국전쟁이 끝난 지 겨우 3년밖에 안 되었을 때입니다. 길거리에 팔다리 없는 상이군인이 허다하고, 버스를 타면 옆에 와서 껌 사달라고 생떼 쓰는 상이군인들 때문에 불편할 정도였지요. 그냥은 못 갔습니다. 수없이 사줘야 되고, 돈 없으면 욕도 먹어야 했고, 거리마다 무너진 집, 폭탄 맞아서 쓰러진 집들이 복구되지 못한 판이었습니다.
그런데도 그때 당시에 시인들이 쓰는 시라는 것은 신이 어떠니, 까뮈가 어떠니 사르트르가 어떠니 하는 관념적인 소리뿐이었습니다. 그게 아니면 옛날식으로 꽃이 어떻고 님이 어떻고 고향이 어떻고 하는 타령들뿐이었습니다.
저는 자연히 시를 쓰는 데 흥미를 잃었지만 그것 때문에 문학을 그만두려고 한 건 아니었습니다. 제가 만나는 친구들 중에 우연히 사회과학하는 사람들이 있어서 그들과 함께 어울렸습니다. 수요회 같은 것을 만들어 가지고 수요일마다 모여서 술도 먹고 했는데, 그런 사람들과 교유하면서 제가 어떻게 보면 세상에 대해서 새롭게 눈을 뜨게 되었다고 얘기할 수 있습니다. 수요일 날 만나면 일주일 동안 읽은 책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야 됩니다. 일주일 동안 무엇에 대해서 읽었는지 한 마디 제대로 못하면 병신이 되니까 얘기를 해야 했습니다.
그래서 열심히 헌책방 찾아다니면서 책을 한 권씩 구해 읽었습니다. 남들이 거의 안 읽었을 책을 구해 읽은 다음 모임에 나가 감동적으로 발표를 하면, 그날의 대장이 됩니다. 돈을 추렴해서 술값을 내는데, 그 사람은 술값을 안 내도 됩니다. 3차 4차를 가도 그냥 먹는 거지요.
한번은 이런 일도 있었습니다. 헌책방을 돌아다니다가 영문판 「공산당 선언」을 구했습니다. 그것 참 신기하대요. 그 책 자체가 신기한데다가 그런 것이 있다는 소리만 들었지 처음 읽어보는 거였으니까요. 그래서 이틀 밤을 새워서 앞에서 4페이지나 5페이지 정도를 사전을 다 찾아가면서 열심히 읽었지요. 전부 읽을 힘도 없고 영어 실력도 부족했지만, 4, 5페이지는 거의 다 외울 정도가 되었어요.
술 먹는 날 다른 사람들이 다 한 마디씩 얘기를 할 때 가소롭다는 듯이 뒷짐 진 채 웃고 있다가, 마지막으로 내가 이런 얘기를 하겠다고 하면서 공산당 선언을 영문으로 한 10분쯤 외우니까 사람들이 기가 안 죽을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저는 세 번쯤을 술값을 안내고 거저 먹은 일이 있습니다. 그 모임에서 제가 얻은 것도 참 많았습니다. 많은 사람을 사귀고 배웠습니다.
우스운 얘기를 하면, 그 때 사귄 사람 중의 하나가 무슨 일로 감옥에 들어갔다가 얼마 뒤에 죽었습니다. 1980년에 모종의 사건에 연루되어 잠깐 감옥에 들어갔을 때 옆방에 젊은 사람이 있었어요. 재판을 같이 받게 되었는데 그 젊은 사람이 나한테 "혹시 신 누구 아니시냐?"고 물어요. 그렇다고 했더니 이름을 대며 정 아무개를 아느냐고 그래요. 이름은 들어본 것 같다고 했더니, "옛날에 충무로에서 학생 때 함께 공부했던 키가 꽤 크고 안경 쓴 사람이 생각이 안 나느냐?" 묻더군요. 가만히 생각하니까 충남 예산 사람이라는 생각이 났습니다. "그 사람은 왜 묻느냐?" 했더니 "사실은 제가 그 사람의 아들입니다." 하더군요. 옛날 친구의 아들하고 같이 감옥을 산 거지요. 세상은 그런 겁니다.
2. 시를 던지고 10년 동안 시골에 박혀 지내다
제가 문학을 포기하기로 마음먹은 동기는 사실 단순합니다. 그 동안 저하고 함께 책을 읽던 선배가 진보당 사건으로 잡혀 들어갔어요. 죽산 조봉암 선생은 50년대에 우리나라 최초로 남북통일은 평화적으로 해야 한다고 주장한 분입니다. 그 때까지만 해도 모든 사람들이 다 북진통일을 주장했었습니다.
그 때 북진통일을 주장했던 사람들이 지금 관계에서 한 자리씩을 하고 있습니다만, 당시에는 총칼로 다 뒤집어엎고 평양까지 가서 북한에 있는 사람 다 때려 죽여야지 통일이 되지, 그렇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 지배적인 정서였습니다.
그 때 유일하게 조봉암 선생만이 "그래서는 안 된다. 북한도 같은 동포인데 싸우면 되느냐? 평화적으로 해야 한다. 평화적으로 하지 않고 전쟁으로 한다고 생각하면 이건 백년 천년이 가도 절대 통일이 안 된다. 소련이라는 나라도 약하지 않고 미국도 약하지 않은데 누가 양보하겠느냐?"고 주장했습니다. 참 합리적인 소린데 그런 소리를 했다고 해서 이 사람을 잡아다 죽였습니다.
이승만 정권 말기 때 일인데, 그 사건에 선배가 끌려 들어갔어요. 저는 겁이 많은데다 당장 맨 날 누가 잡으러 오는 것 같아서 견딜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시골로 도망을 갔지요. 시골로 도망갔다고 못 잡으러 올 리는 없지만, 일단 시골로 가면 마음은 편하지 않습니까?
박혀 살다 보니까 점점 문학에 대한 정열도 식고, 문학이라는 게 무슨 의미가 있는가 하는 회의도 생겼습니다. 저는 시골에서 여러 가지 고생도 해봤습니다. 광산에서 일도 해보고, 노동판에도 가보고 농사도 지어보고 장사도 하면서 여러 부류의 사람들과 어울려 살면서 '과연 문학 가지고 무엇을 할 수 있는가? 문학이란 무슨 의미가 있는가?' 따위의 갖가지 회의가 일었습니다. '일단 문학을 관둬 버리자. 무얼 할 것인가는 다음에 생각하고 일단 관둬 버리자'는 생각을 했습니다.
거의 10년을 시골에 박혀서 살았습니다. 제가 그 때 깨달은 것 가운데 하나는, 지금도 그것만은 진실이라고 생각하는데, 사람은 결코 혼자서는 살 수 없다는 것입니다. 남과 함께 살아가는 것이고 물론 사람은 개인이라는 게 중요하지요.
결국은 마지막 책임은 자기가 지는 것이지요. 그러나 결코 남과 함께 살지 않는 삶이라는 건 이 세상에 있을 수 없다는 것을 그 때 깨달았지요. 정리하면 이렇게 되는 것 같아요. 사람은 더불어 혼자 산다. 말이 이상한 얘기지만 남과 더불어 혼자 산다. 남과 더불어 살지만 결국 혼자 책임지니까 혼자 산다. 그러나 이 더불어 혼자 산다는 것이 아주 중요하다는 생각을 했고, 그 때 제가 막연하게 생각한 것은 앞으로 시를 쓸 기회가 다시 온다면 나는 이제 나 혼자만 사는 것, 나 혼자만의 생각, 혼자만의 뜻, 이런 것에만 매달리지 말고 더불어 사는 정서, 더불어 사는 어떤 아름다움, 더불어 사는 의미들을 시로써 표현해야 되겠다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명확한 건 아니고 막연하게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그 당시만 해도 다시 저한테 글을 쓸 기회가 온다는 생각을 못했습니다. '이렇게 시골서 영원히 떠돌다가 끝나겠지.' '어쩌다 시 한두 편 써 놓으면 누군가가 앤솔로지 따위에 발표 해주면 얼마나 다행이겠는가.' 하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예컨대 「해바라기의 비명」을 쓴 함형수가 있지 않습니까? 한 편밖에 남긴 것이 없지만 오늘날 한국에서 나온 사화집(詞華集) 가운데서 「해바라기의 비명」을 뺀 건 하나도 없습니다. 어떤 사화집에라도 다 들어가 있지요. 수만 편의 시를 쓰고서도 한 편도 건질 수 없는 사람이 있습니다. '함형수처럼 한 편을 쓰고서도 우리 문학사에 남는 사람이 되면 얼마나 다행이겠는가.' 하는 생각을 했었지요.
그러다가 제가 다시 시를 쓰게 된 것은 시인 김관식을 우연히 길에서 만났는데, 그가 술김에 "야, 서울에 올라가자." 하고 잡아끄는 통에 둘이서 서울에 올라옴으로 해서였습니다. 김관식의 집은 홍은동에 있었습니다. 산중턱에 무허가로 집을 크게 짓고 살았습니다. 자기 마누라도 있고 애들도 있는데도 불구하고, 방 한 칸을 무조건 비워 주었습니다. "이 방은 앞으로 신경림이가 쓸 거니까 그렇게 알아라." 하며, 공짜로 방을 내주었습니다. 그래서 서울살이를 시작하게 된 거죠.
처음에는 술김에 올라와서 같이 술먹고 놀았지만, 그 때 제가 결혼한 몸이어서 혼자 살 수는 없었습니다. 시골 가서 색시를 불러서 같이 왔지요. 그 집에 데려다 놓았는데 한심한 거죠. 김관식이 우선 쌀을 다섯 말을 주고 김치도 주고 해서 생활을 시작했지요. 그래서 다시 시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시를 한 10여 년 안 썼다고 하지만 무척 시를 쓰고 싶을 때가 있었습니다. 속에서 뭔가 북받쳐 올라 시를 안 쓰면 못 견딜 때가 있었습니다. 시골 사람들은 돈벌이가 없으니까 양귀비를 재배했습니다. 그걸 집에서 조금씩 만들면 상당한 돈벌이가 되었습니다. 그걸 수집하러 다니는 사람이 있었어요. 제가 수집하러 다니는 사람의 길 안내를 맡은 일이 있습니다. 길 안내를 해주면 돈을 주었습니다. 제가 원래 돌아다니기를 좋아하는 성미인데다, 공짜로 먹고 돈까지 주니까 얼마나 좋습니까.
어느 겨울이었습니다. 술을 좋아해서 주막에 들르면 일단 술 먼저 먹는 걸 생애 제일의 뜻으로 삼고 있을 때여서 잔뜩 취해서 잤습니다. 눈이 며칠 동안 퍼부어 길을 다닐 수가 없을 정도가 되어, 한 주막에서 사흘 동안 매일 술을 먹었던 것 같습니다. 원래 그 집 주인이라는 사람은 남로당이라고 총 맞아 죽었고, 여자가 혼자 술집을 하는데 농담을 잘하고 걸직한 소리를 잘했습니다. 매일같이 동무해서 술 먹고 그랬는데, 어느 날 새벽에 일어나 보니 눈이 다 그쳤어요. 울타리가 없는 시골 뒷간에서 일을 보고 있는데, 하늘에 주먹만한 별들이 달려 있고 머리 위에서는 하얀 눈이 내리고 있었습니다. 한참 밑에는 공사장이 있었던 것 같은데, 그 공사장에서 불빛이 비쳐요. 그래서 마음이 얼마나 슬픈지 시를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 때는 필기도구를 안 가지고 다녔으니까 일단 속으로 시를 썼지요. 그것을 나중에 조금 정리해서 발표한 게 「눈길」이라는 시입니다.
말하자면 시를 쓰고 싶은 욕망 같은 것은 어쩔 수 없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제가 10년 동안에 쓴 시가 그거하고 「그날」이라는 시입니다. 「그날」은 조봉암 선생이 사형당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의 절망적인 마음을 은유적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시집 「농무」 속의 작품들은 거의 서울에서 썼지만 머리 속에는 메모가 되어 있었던 셈입니다. 메모가 되어 있던 것을 서울에 와서 옮겨놨을 뿐이지요.
「농무」를 두고서 어떤 이들은 농민의 저항 의식 등을 쓴 거라고만 생각합니다. 하지만 저는 그런 게 아니고 농촌에 살면서 농민들이 갖는 어떤 농촌적인 정서, 개인적인 문제가 아닌 더불어 사는 삶, 남과 함께 하는 삶… 이런 것들을 시로써 한번 표현해 보고자 했습니다.
제가 첫번째 얘기한 것은 시라는 것은 누군가에게 하는 대화라는 겁니다. 따라서 명확하고 힘이 있어야 된다는 것과 두번째, 삶이라는 건 혼자 꾸려가는 건 있을 수 없고 더불어 사는 삶, 이것이 내게는 중요한 것으로 여겨졌습니다.
물론 자기의 개인적인 삶이라는 것도 중요한 것이지요. 결국 책임은 자기한테 있는 거니까. 혼자 생각하는만큼 혼자 책임지는 것을 우리가 간과해서는 안 되겠지만, 나 혼자의 생각만 시로 다 표현한다면 시가 너무 왜소해지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그 때 했던 것 같습니다.
또 앞으로 내가 시를 쓸 기회가 생긴다면 더불어 사는 삶 쪽에 역점을 두는 시를 쓰겠다고 하는 생각도 그 때 했던 것 같습니다.
3. 시는 독자에게 읽는 즐거움을 주어야
사실 시라는 건 뭡니까? 예술 아닙니까? 말이라는 것을 소재로 한 것, 그림이라는 것이 색하고 선을 제재로 한다면 음악이라는 것이 음하고 리듬이라는 것을 율하고 격을 제재로 한다면, 문학이라는 건 말을 제재로 하고 있습니다.
예술이라는 것은 일단 첫번째로 읽는 사람들한테 즐거움을 주어야 한다고 봅니다. 읽는 재미가 없으면 아무리 훌륭한 뜻을 담고 있어도 쓰레기통에 집어넣어도 괜찮다는 얘기지요. 다른 말로 하면 독자들한테 즐거움을 주지 않아서는 안 된다는 겁니다.
1920년대 말에서 30년대에 걸쳐 풍미한 프롤레타리아 시가 있지 않습니까. 프로문학파 시인들이 가졌던 생각은 참 훌륭했습니다. 그리고 당시의 시인들처럼 민족 해방에 대해서 그렇게 치열하고 또 진지하게 생각하는 사람은 시인들 가운데서 많지 않습니다. 당시 일제 시대에 민족주의에 앞서서 독립을 쟁취하고 평등을 이룩할 수 있는 수단이 사회주의라고 생각한다고 해서, 제대로 정신이 박힌 사람이라면 누구도 이상하게 생각지 않을 겁니다. 그렇지만 그 프롤레타리아 시, 즉 카프 시들 가운데서 오늘날 우리가 읽을 만한 게 몇 편이나 됩니까. 실제로 그다지 많지 않습니다.
아마 「현해탄」「3월이 온다」를 쓴 임화, 권환, 월북하여 「김일성 장군의 노래」를 작사한 이찬, 김상훈, 박세영 등 몇몇밖에 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이들에게는 시는 말로 된 예술이라는 인식이 모자라지 않았던가 생각합니다.
시는 예술이니까 예술이 갖는 재미가 있어야 합니다. 시를 읽는 즐거움이 있어야지, 그것이 없으면, 아무도 읽어 주지 않는다는 것을 생각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그냥 '내가 생각하는 옳은 것, 이것을 나만 열심히 하면 훌륭한 시가 되고, 누군가 언젠가는 다 읽어줄 것이다.' 따위의 잘못된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은 아닌가 생각합니다.
말하자면 말에 대한 인식이 좀 모자랐다는 거지요. 그런데 어떻습니까. 이 사람에 대한 시가 기억되지 않는 대신, 오늘날까지 그 행적을 두고 말이 많은 서정주의 시는 여러분들이 좋아하지 않습니까.
해와 하늘빛이
문둥이는 서러워
보리밭에 달 뜨면
애기 하나 먹고
꽃처럼 붉은 울음을 밤새 울었다.
-서정주의 「문둥이」 전문
이 시는 오늘날에도 남아 있지 않습니까. 그것은 이 시를 읽으면 뭔가 와 닿는 것이 있고 즐거움이 있기 때문입니다. 개그맨이 떠들어서 주는 즐거움하고 예술로서의 시가 주는 즐거움하고는 본질적으로 다릅니다. 그런 즐거움이 있어야 되는데, 그렇지 못한 탓으로 카프 시 가운데 오늘날 지금 문학사에 남은 시가 많지 않다는 것은 우리에게 중요한 교훈이 되어야 합니다. 아직도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7, 80년대에는 적지 않았습니다.
7, 80년대 민중시 중에는 좋은 시가 많았지만 개중에는 예술 인식, 말에 대한 인식이 모자랐기 때문에 결코 좋은 시로 남지 못한 경우가 너무 많지 않았던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하고 싶은 말을 시로써 잘하는 사람이 좋은 시인이라고 했던 워드워즈의 말처럼, 말을 잘하는가 못하는가가 시를 판가름한다고 봅니다. 한마디로 시를 잘 쓰는 사람은 말을 잘 다루는 사람입니다. 렝보, 말라르메와 함께 20세기 초에 프랑스 상징주의를 주도한 바 있는 드가의 에피소드를 빌리죠.
"내 머리 속에는 시가 가득한데 왜 시가 안 써지는지 모르겠어?" 하고 드가가 묻자, 말라르메가 말하기를 "시는 언어를 가지고 쓰는 것이기 때문이지"라고 했다고 합니다. 시는 성적순이 아니며, 말을 잘 다루는 사람이 잘 쓰는 것이라는 말에 다름 아닙니다. 말에 대한 인식이 모자라서, 이삼십 년대 프로문학이 우리 문학사에서 보잘것없는 대접을 받게 되었고, 7, 80년대의 민중시에도 일부 그런 경향이 없지 않다고 봅니다.
저도 민중시 계열 시인 중의 한 사람입니다만, 아무리 좋은 생각을 가지고 있어도 좋은 내용의 시를 썼다 하더라도 그것이 언어로써 좋은 시가 되지 않으면 좋은 시가 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시를 쓰는 이상 힘있고 좋은 살아 있는 말을 쓰려는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아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면서 죽 시를 써왔습니다. 제가 시를 쓰는 신조 중의 으뜸은 '말을 결코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한 마디 한 마디 말이 바로 시의 생명력이 되는 것이므로, 생명력 있는 말 하나하나를 끄집어내어 쓰는 것이죠. 아무리 좋은 생활 체험도 말에 의해서 다시 체험될 때에만 좋은 시가 될 수 있다는 원칙하에서 시를 써왔다고 생각합니다.
시는 사유가 아니라 직관에서 쓴다고 합니다. 체 게바라 전기 중에 이런 대목이 있습니다. 칸트의 얘기를 빌어 '개념은 없는 직관은 맹목이다'라고 되어 있더군요. 이것은 칸트가 예술 이야기를 하면서 한 얘기죠. 예술이라는 것은 사유나 합리적인 사고보다는 직관에 의해서 더 많이 좌우된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개념 즉, 이데올로기가 없어서는 안 된다는 얘기지요.
이 말처럼 시에서는 직관이 아주 중요하지만, 직관의 배경에는 어떤 이데올로기가 있어야 된다는 얘기와 다름 아닙니다. 이데올로기는 다른 말로 옮기면 '시적 지향'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어떻게 사는 것이 바르게 사는 것인가, 어느 길이 옳은 길인가 생각하는 태도는 누구에게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시적 지향이 없을 때에는 좋은 시인이 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것이 전부는 아닙니다. 제가 좋아하는 시 중에 유치환의 '낮달'이 있습니다. 유치환은 여느 시인들과는 달리 위선이 없는 연애시를 쓴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늘에 숨어 있는 낮달을 애인과 헤어진 뒤에 가슴 속에 남은 상처에 견주어 쓴 시입니다.
'쉬 잊으리라 그러나 잊히지 않으리라/가다 오다 돌아보는 어깨 너머로/그날 밤 보다 남은 연민의 조각/지워도 지지 않는 마음의 여로'
아주 짧지만 감동적인 연애시입니다. 여기에 무슨 이데올로기는 없습니다. 이런 시도 좋지만, 이데올로기가 있는 시가 좋을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른 말로 말하면, 시란 메타포 즉 은유(隱喩)입니다. 좋은 시라는 건 결국 비유를 잘한 시입니다. 네루다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 「일 포스티노」에 이런 대목이 나옵니다. 젊은 우체부가 찾아와 '시란 무엇입니까?' 하고 묻자, 네루다는 '시란 메타포다.'라고 대답하지요. 두 사람이 바닷가를 걷는데, 파도가 밀려오는 걸 보고 젊은 우체부가 '파도가 걸어옵니다'하고 말하자, 네루다는 '이 순간부터 너는 시인이다. 바로 비유를 할 수 있는 사람은 시인이다'라고 말하지요.
한 가지 사물을 다른 사물을 들어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시인이라는 거죠. 제 생각으로도 우리나라에서 좋은 시인은 비유를 잘하는 사람인 것 같습니다. 비유를 썩 잘 할수록 좋은 시인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병철의 시에 이런 게 있습니다.
'은하 푸른 물에 머리 좀 감아 빗고/달 뜨걸랑 나는 가련다/목숨 수(壽)자 박힌 정한그릇으로 체할라 버들잎 띄워 물 좀 먹고/달 뜨걸랑 나는 가련다/삽살개 앞세운 정 좀 쓸쓸하다만/고운 밤에 딸그락 딸그락 나는 가련다'
무슨 뜻인지 처음에는 잘 다가오지 않을 겁니다. '나막신'이라는 제목의 짧은 시이지만 사람살이가 은유로 잘 배어 있습니다. 이 시에는 오늘날에도 우리가 깊이 새겨들어야 할 은유가 있다고 느꼈고, 아직도 독자들에게 읽히는 까닭을 알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결국 메타포가 있기 때문에 읽히는 겁니다.
시는 교훈이 있기 때문이 아니라 그냥 존재하기 때문에 읽히는 겁니다. 그 '존재'를 통해서 우리의 모습을 깨닫는다면 얼마나 좋은 일이겠습니까. 시의 존재가 우리로 하여금 뭔가를 깨닫게 해주는 메타포를 가졌을 때, 뛰어난 시가 될 수 있다고 봅니다.
그러기에 이병철의 시는 우리 문학사에서 기억되지 않으면 안될 훌륭한 시인 것입니다.
4. 잠수함 속의 토끼처럼 먼저 외쳐야
사또 한 가지만 더 말씀드리겠습니다.
「25시」를 쓴 게오르규가 한국을 찾았을 때의 일입니다. 그가 우리나라를 방문한 1975년도에는 김지하 시인이 사형 언도를 받고 투옥되어 있을 때입니다. '박정희 대통령이 김지하는 꼭 죽인다고 여러 사람 앞에서 죽인다고 언명을 했다. 그러니 그 사람은 꼭 죽을 것이다.'라는 소문이 돌 때였습니다. 그럴 때 게오르규가 정부 초청으로 한국에 왔습니다. 세계적인 명작을 쓴 작가가, 그런 상황 속에서 정부 초청으로 우리나라에 온 걸 보고 뜻 있는 이들은 크게 분개했습니다.
그가 지금의 세종문화회관 자리인 시공관에서 '시인의 사명'이라는 제목으로 강연을 했습니다. 그에 따르면 '잠수함이 바다 밑으로 들어갈 때는 토기를 가지고 들어간다. 왜냐하면 토끼가 수압에 가장 민감하기 때문이다. 사람이 못 견딜 수압이 되면 토끼가 먼저 소리를 지릅니다.'
즉 게오르규는 정치적으로 억압 상황, 사람이 살 수 없는 환경 등 사람이 살 수 없게 되었을 때, 못 살겠다고 가장 먼저 소리를 지르는 사람이 곧 시인이라고 은연중에 말했습니다. 한국이라는 상황은 얘기하지 않고 말한 겁니다. 비록 정부의 초청으로 왔지만 마음먹고 한 마디 하는구나 하는 걸 느꼈습니다.
어느 일본 시인은 '시에는 본질적으로 절규성'이 있다고 표현하기도 했습니다. 정치적으로 못 살게 되었을 때, 환경이 나빠졌을 때, 도덕적 타락 현상이 만연되었을 때 못살겠다고 큰 소리를 지르는 것이 시인이라는 건데, 그때 저는 크게 공감했습니다. 절규성이 있음으로 해서 그 시는 역동성을 띠고 생명력을 가질 수 있다고 봅니다.
그런데 한가지 도덕성의 경우에는 곧이곧대로 오늘의 잣대만을 들이대서는 안 된다고 봅니다. 스웨덴 같은 데서는 호적제도가 크게 바뀌어 아이들의 반수 이상이 어머니의 성을 따른다고 합니다. 가장 큰 이유는 아버지가 누군지 분명치 않기 때문입니다. 전세계적으로 가족제도가 바뀌어 가는 추세 속에서는 시대적 흐름을 반영해야지, 틀에 박힌 잣대를 들이대서는 안 됩니다.
결국 시라는 것은 남에게 하는 대화이되, 그것이 명확하고 힘이 있어야 합니다.
두 번째로 역시 언어라는 것은 남하고 함께 사는 데서 생긴 만큼, 시는 남과 더불어 사는 정서를 담는 것이 중요하다. 이것이 중요시되지 않으면 시는 난쟁이처럼 작아진다.
세 번째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말을 소재로 하는 만큼 말이 주는 즐거움을 소홀히 해서는 좋은 시를 낳을 수 없다.
그러나 시는 본질적으로 절규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 등을 재삼 강조하고 싶습니다. 또한 도덕적인 면을 지나치게 강조해서는 그 시는 생명력을 갖기 어렸습니다. 이런 것들이 시를 쓰는 저의 몇 가지 중요한 태도입니다.
시 창작 교육의 과제와 이론
Ⅰ.
우리의 문학 교실에서의 시 학습에 대하여 생각해 보기로 하자. 시를 교수 학습하면서 우리가 옛날에 그랬던 것처럼, 시인의 행적이나 시적 성향에 대해서 알아보고, 시의 운율, 주제, 제재, 비유, 이미지에 대하여 개념들을 외우고, 이렇게 학습한 개념들을 텍스트로 제시된 시작품에서 확인하는 활동을 지금도 반복하고 있을까?
나는 현재의 문학 교실은 그렇지 않을 것이라는 희망적인 생각과 이 같은 일이 있다고 하더라도 아주 부분적인 현상일 뿐이라는 소박한 진단을 내리고 싶다.
예전처럼 시와 관련된 지식을 암기하는 단계는 이미 지났고, 많은 문학 교사들에 의하여 다양한 방법으로 시 학습이 풍요롭게 이루어지고 있다는 생각이다. 여기서는 우리의 문학 교사들이 교실 현장에서 시를 재미있게 가르치고, 학생들은 재미있게 시를 배울 수 있는 방법들에 대해서 알아보고자 한다. 즉 교수 학습이 이루어지는 현장에서 고급스런 예술 자료로서의 문학 작품인 시가 아니라 일상 생활에서 흔히 만날 수 있는 언어 자료로서 시의 속성들을 활용할 수 있는 방법과 가능성을 탐색하고자 한다.
이 같은 방법적 모색은 주로 교수․학습의 전략 차원에 해당하는 것으로, 그동안 암기의 대상이었던 문학 지식에 대한 학습이 문학의 이해와 표현 또는 수용과 창작에 적극 활용될 수 있으며, 이 과정에는 인간의 창의력이나 사고력이 다양하게 나타날 수 있음을 전제로 한다. 즉 문학의 이해와 표현 단계는 학습자의 각기 다른 특성이 창조적으로 발현되는 과정이며, 우리의 문학 교육에서 주도적인 활동이었던 문학 작품에 대한 이해를 넘어서, 학습자 자신들의 생각을 적극적으로 말하거나 쓸 수 있어야 한다는 표현의 차원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목표를 설정하는 것이다.
그리고 문학교육의 목표를 위한 교수․학습의 전략들을 실제 예를 중심으로 접근할 것이다. 예를 들면 위에서 제시한 이해를 넘어 표현으로 전환하는 학습 전략으로 '시의 제목만으로 시의 내용을 표현하기'라는 학습을 생각할 수 있다.(반대로는 제목 없는 시에 제목 붙이기도 생각할 수 있다.) 이런 학습 활동은 교과서에 수록된 시는 물론 수록되지 않은 시에 대한 구체적인 학습에 들어가기 전에 시의 제목을 학습자에게 제시하여, 표현이 가능한 시의 내용을 발표하게 하는 방법이다. 이 과정에서 추상적인 시의 제목은 물론 보다 구체적인 시의 제목이 각기 어떻게 작용하는가를 알 수 있으며, 학습자의 수준에 맞는 다양한 관점의 내용이 제시될 수 있다.
이같이 학습이 이루어질 때, 문학교육이 문학 작품을 이해하는 것이라는 단선성(單線性)을 극복할 수 있다. 즉 수용을 넘어 보다 적극적인 관점에서 문학을 표현하는 단계에서의 활동에 대하여 사고할 수 있게 된다. 특히 이 방법은 상상력을 중심으로 작동하는 문학 작품의 형상화 과정을 확인할 수 있다. 아울러 이같은 활동은 그동안 교과서에 수록된 정전 중심의 시 이해 교육을 학습자인 중심의 시 표현 교육으로 전환시킬 수 있으며, 학습자의 정서나 이해 수준과 유리(遊離)된 기성 시인들의 시작품을 중심으로 교수․학습 활동이 이루어지는 시 교육의 한계도 극복할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될 때, 문학 작품의 교수․학습은 학습자의 감상을 중심으로 하는 표현 능력은 물론 창의력이나 사고력을 확인할 수 있으며, 부수적으로는 다른 어떤 갈래보다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시의 제목에 대해서도 바르게 이해할 수 있는 효과도 얻을 수 있다. 즉 문학에 대한 제반 지식을 암기하는 것이 아니라 문학의 속성을 이해하여 이를 언어 생활에서 활용하고, 문학 학습이 결코 우리의 일상 생활과 별개의 특별한 것이 아니라 우리 주변의 이야기를 표현하는 활동이라는 사실을 실천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Ⅱ.
5차와 6차 교육 과정에서는 문학 작품의 이해와 감상을 문학교육의 중요 목표로 하고 있다. 물론 이같은 목표 제시에는 두 가지 전제가 암묵적으로 작용하고 있다. 그 하나는 5차 교육 과정에서부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심리학 기반의 국어교육관, 즉 국어 활동을 언어 사용이라는 면에서만 접근한 교육관이다. 따라서 국어 활동의 각 영역인 말하기/듣기, 쓰기, 읽기가 국어 교육의 중심이고, 언어 지식이나 문학은 이같은 국어 활동에 기초적인 지식으로 작용한다는 관점이다. 아울러 이 관점은 국어 활동의 또다른 영역인 문화적 기능을 배제하는 견해이기도 하다.
다른 하나는 이같은 국어 교육관이 도입되어 그동안 절대적인 영향력을 가지고 있던 문학교육의 위상이 재검토되면서, 학습자를 문학교육의 중심에 놓고자 하는 관점이다. 달리 말하면, 문학교육은 문학 작품을 이해하고 감상하는 학습자의 편차를 존중하여야 하며, 여기서 나타나는 학습자의 개별성이나 차별성을 인정하여야 한다는 주장이다. 그리고 이런 관점에는 1980년대 후반에 소개된 수용 미학 또는 독자 반응 이론이라는 문학관이 암묵적으로 작용하여, 작가나 텍스트 중심에서 수용자 중심으로 문학교육의 초점을 전환시키고 있다.
그러나 이 와중에도 언어 사용 능력 신장을 목표로 하는 국어 교육관에 대한 비판과 반성이 활발히 제기되었다. 그래서 국어 활동의 영역을 언어 사용 능력 외에도 문화 능력을 설정하기에 이르렀으며, 7차 교육 과정에서는 '문학 작품의 창작과 수용'이라는 문학 교육 목표를 설정하기에 이른다. 여기서 '수용'이라는 목표는 기왕의 이해와 감상을 아우르는 개념으로, 별다른 이견이 있을 수 없다. 이에 비하여 '창작'이라는 목표는, 창작이라는 용어가 근본적으로 전문적인 작가의 창조 행위와 관련된 개념으로, 국어교육이나 문학교육의 목표로 일반화될 수 없는 사항이다.
이같은 점을 고려한다면, 창작이라는 용어 대신 좀더 포괄적인 표현이라는 용어로 대체하여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즉 문학교육의 목표를 창작 교육이 아니라 표현 교육으로 설정할 수 있다는 말이다. 이 경우 표현 교육에는 두 가지 범주를 설정할 수 있을 것이다. 그 하나는 기왕에 보편적으로 인정되는 창작 교육이라는 영역이다. 시를 쓰거나 수필을 쓰는 행위, 또는 학습자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는 제반 활동이 여기에 속하는 것으로, 일기문이나 기행문 쓰기와 같은 창조적 글쓰기, 말하기 등의 활동을 말한다.
이에 비하여 다른 하나는, 문학 작품에 대한 이해와 감상을 기초로 한 표현 행위를 설정할 수 있을 것이다. 이 개념은 학습자나 독자가 문학 작품을 이해하거나 감상이 전적으로 자기 내면화나 자기 이해의 수준에 그칠 수 있지만, 이와는 달리 이해나 감상을 다른 사람에게 전달하려고 하는 경우에는 표현하는 활동을 말한다. 즉 비평적인 감상문이나 비평적 에세이 쓰기나 말하기 활동이라는 표현 활동을 통하여, 다른 사람에게 전달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학습자들이 나타낼 수 있는 문학 작품에 대한 정서적, 사상적 가치 판단이 글이나 말로 표현될 수 있다. 그리고 모든 교육이 평가를 고려하여야 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같은 표현 활동은 문학교육 평가의 내용이자 대상의 역할도 하게 된다.
따라서 우리의 문학교육이나 시교육은 창작이라는 용어에 매달리기보다는 표현이라는 용어 개념으로 확장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이렇게 넓은 의미에서 문학교육 활동을 생각할 때, 국어교육의 제반 활동, 즉 말하기/듣기, 읽기, 쓰기의 활동을 통합하는 국어 활동을 수행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이같은 국어 활동과 문학 작품을 통합하여 교육하는 방향성도 실천할 수 있게 된다. 즉 창작 교육을 포괄하는 표현 교육이라는 관점에서 문학교육의 영역을 확대할 수 있어야 한다.
Ⅲ.
우리의 일상 언어 속에는 많은 문학 표현들이 알게 모르게 활용되고 있다. 직접적으로 표현하기 어렵거나 보다 사실적으로 표현하기 위하여, 돌려서 말하기 또는 빗대어 말하기의 방식이나 비유하거나 상징적 표현을 빌어 말하는 방식을 쓴다. 또한 강조하거나 강하게 긍정 또는 부정하기 위하여 역설적이거나 반어적 말하기를 활용한다. 때로는 의문을 제기하여 자신이 옳다는 사실을 강조하기도 한다.
이처럼 우리는 시작품이 아니라도 일상의 언어에서 다양한 시적 표현들을 접할 수 있다. '토정비결'과 같은 점쾌가 그렇고, 속담이나 격언 역시 비유나 상징과 같은 시적 표현을 많이 쓴다. 현대 사회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광고의 카피 역시 그렇다.
이같은 언어 활동은 문학의 속성을 활용하는 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 문학 작품이라는 구체적인 실상을 중심으로 예술인 문학을 교수․학습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언어 활동에 나타나는 문학의 속성을 교수․학습하여 일상의 언어 생활에 적용하는 것이다. 즉 문학 또는 시의 본질적 속성이라고 할 수 있는 요소들을 일상의 언어 생활에서 다양하게 찾는 방식으로, 결코 문학이 고급스런 예술 활동만이 아니라 일상의 언어 자료로 훌륭하게 활용될 수 있다는 사실이다.
실제로 이런 문학 교수․학습 전략은 우리의 문학 교실에서 널리 활용될 수 있는 것으로, 시를 학습하면서 시에 대한 지식 학습은 물론 생활과 관련하여 시의 속성이 활용되는 실제를 확인할 수 있으며, 이를 통하여 학습자의 생활과 유리되지 않은 재미있는 시 학습을 유도할 수 있는 방식이다. 이같은 교수․학습 방법은 문학 학습을 통하여 문학교육의 지향점을 전환함은 물론 일상의 언어 활동이라는 측면에서 문학을 학습하는 문학 활동의 폭도 확대시킬 수 있다.
구체적인 예로 먼저 이야기를 가지고 있는 시의 내용을 이야기로 표현하는 활동을 들 수 있다. 김소월의 [접동새]나 백석의 [여승]과 같이 이야기를 시적으로 형상화한 작품을 다시 학습자의 수준에서 이야기로 재구(再構)함으로써, 서사인 이야기 문학과 개인의 정서 표현인 서정 문학의 차이를 이해하고, 서정적 표현을 위해 시인이 표현의 단계에서 고려할 수 있는 바를 학습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방식은 패로디 시 쓰기나 습작 시 쓰기와 더불어 우리의 문학 교실에서 창작 교육이 그 원래의 개념 수준에서 비교적 충실하게 수행할 수 있는 방식이며, 문학 교수․학습하는 실용적 효과도 극대화할 수 있는 방안이다.
아울러 이같은 시 학습 방법은 시교육을 표현론의 측면에서 접근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줄 수 있으며, 이야기 양식과 노래하기 양식의 차이가 단순한 암기되어야 하는 지식의 차원이 아니라 교수․학습 활동을 통해 인지되는 활용 가능한 지식으로 자리를 잡을 수 있다. 이 방법에서는 시인이 시적 형상화를 위해서 구사한 표현 의도도 중요할 수 있지만, 바람직한 학습 활동은 학습자가 그 표현을 어떻게 활용하느냐는 활동을 중심에 놓아야 한다. 따라서 학습자들이 각기 다르게 표현하는 활동의 의미를 존중하면서, 이렇게 표현한 의도를 되묻는 활동을 통하여 표현 교육을 적극적으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다음으로 위의 방식과는 다른 차원에서 시를 산문으로, 산문을 시로 표현하는 학습이 있을 수 있다. 이 경우에는 시의 언어와 산문의 언어, 문학의 언어와 일상의 언어가 가지는 특성을 이해하고, 이를 적극적으로 표현 활동에 활용할 수 있게 된다. 특히 시어의 함축성, 간결성, 비유나 상징 등을 활용하는 특성을 바르게 이해하여, 일상의 말하기나 글쓰기와의 차별성을 인식하여 표현 활동에 활용할 수 있다. 나아가서는 각 표현 매체에 따른 언어 표현의 차별성을 활동 차원에서는 물론 지식 차원에서 재구성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와 같은 문학 교수․학습 활동은 문학적 언어의 다양한 표현 특성을 학습자 스스로 체득(體得)할 수 있게 하며, 나아가서는 이런 특성을 활용하는 말하기나 글쓰기로 전이(轉移)시킬 수 있다. 즉 일상의 언어에 가까운 산문의 언어가 어떤 특성 때문에 시적 언어와 다른가를 인식할 수 있으며, 이 과정에서 시적 언어가 활용하는 시의 표현 기교와 그 효과를 학습할 수 있다. 궁극적으로는 시적 언어 역시 일상의 언어를 기반으로 하는 활동이지만, 시적 자유가 보다 널리 허용되는 표현 방식임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또 시의 화자나 주인공에게 편지 쓰기라는 활동을 통하여, 시의 화자에 대한 학습을 할 수 있다. 김소월의 [진달래꽃]이라는 시의 화자에게 편지 쓰기라는 활동을 통하여 시를 화자 중심으로 감상하는 효과뿐만 아니라, 시의 화자를 옹호하거나 비판하는 말하기나 글쓰기 활동을 통하여 학습자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는 적극적인 활동을 유도할 수 있다. 이런 시 학습 방법은 시에 대한 이해 또는 시에 대한 지식 학습을 넘어 문학적 표현 -- 창작과는 다른 측면에서 이해를 통한 표현 활동을 같이 학습하는 방안으로, 최근에 문학 교사들이 우리의 문학 교실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시도하는 예의 하나일 뿐이다.
시를 쓰려거든 뼛속까지 내려가서 써라
'첫 생각'을 놓치지 말라
* 손을 계속 움직이라. 방금 쓴 글을 읽기 위해 손을 멈추지 말라. 그렇게 되면 지금 쓰는 글을 조절하려고 머뭇거리게 된다.
* 편집하려 들지 말라. 설사 쓸 의도가 없는 글을 쓰고 있더라도 그대로 밀고 나가라.
* 철자법이나 구두점 등 문법에 얽매이지 말라. 여백을 남기고 종이에 그려진 줄에 맞출려고 애쓸 필요 없다.
* 마음을 통제하지 말라. 마음 가는대로 내버려 두어라.
* 생각하려 들지 말라. 논리적 사고는 버려라.
* 더 깊은 핏줄로 자꾸 파고들라. 두려움이나 벌거벗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도 무조건 더 깊이 뛰어들라. 거기에 바로 에너지가 있다.
멈추지 말고 계속 써라
자기 내면의 목소리를 믿는 것을 배운 다음 글을 쓰게 되면 그 글에 힘이 실리게 된다. 자신의 깊은 자아를 믿게 되면, 이제 그곳에는 글쓰기를 회피하려는 목소리가 설 자리는 자연스럽게 없어진다. 나에게는 세상에서 가장 쓸모없는 졸작을 쓸 권리가 있다. 지금 당신의 마음이 달려가는 곳이 있다면, 그것이 무엇이든지 그대로 적어 내려가라. 제발 어떤 기준에 의해 글을 조절하지는 말라.
습작을 위한 이야깃거리를 묶어 보자
1. 방 창문을 뚫고 들어오는 빛의 성질에 대해 써 보자. 10분, 15분, 30분, 시간을 정해 놓고 멈추지 말고 계속 적어가라.
2. '기억이 난다'라는 문장으로 시작해 보자. 아주 작고 사소한 기억이라도 머릿속에 떠오르는 대로 모두 적어본다. 그러다가 중요한 기억이나 선명한 기억이 떠오르면 바로 그것을 구체적으로 적어 내려간다. 만약 막히면 '기억이 난다'라는 첫 구절로 다시 돌아가 계속 적어보라.
3. 긍정적인 것이든 부정적인 것이든 아주 강력한 감정을 불러일으킨 것을 하나 골라서 아주 사랑하는 것처럼 적어보라. 다음에는 같은 것을 두고 싫어하는 시각으로 새롭게 써보라. 그런 다음 이번에는 완전히 중립적인 관점에서 새롭게 글을 써보라.
4. 한 가지 색만을 생각하며 15분 동안 산책해 보자. 산책하는 동안 주변의 자연과 사물에서 그 색을 발견할 수 있는지 주의 깊게 관찰하자. 그리고 이제 노트를 펼치고 15분 동안 적어보라.
5. 오늘 아침 당신의 모습을 적어 보라. 아침 식사로 뭘 먹었는지, 잠에서 깨어날 때 기분이 어땠는지, 버스 정류장까지 걸어가는 길에 무엇을 보았는지 등등 가능한 구체적으로 서술하라.
6. 당신이 진정으로 아끼고 사랑하는 장소를 시각화시켜 보자. 그곳은 주로 어떤 색으로 채워져 있는가? 무슨 소리가 들려오는가? 또 어떤 냄새가 나는가?
7. '떠남'에 대해 써보자. 내용은 어떤 것이라도 상관이 없으며 단지 당신이 원하는 방식으로 접근하는 것이 중요하다.
8. 당신의 어린 시절로 거슬러 올라가 보자. 기억할 수 있는 최초의 기억은 무엇인가?
9. 당신이 사랑했던 사람들은 누구였는가?
10. 당신이 몸담고 있는 도시에 대해 써보라.
11. 당신의 할아버지, 할머니에 대해 묘사해 보라.
12. 다음과 같은 것들에 대해 적어 보라. 모호하고 추상적인 표현은 금물이다. 실제로 있는 그대로 적어라. 솔직하고 상세하게 접근해야 한다.(수영하기, 하늘에 떠있는 별, 당신이 경험했던 가장 무서웠던 일, 초록빛으로 기억되는 장소, 性에 대한 의식이 생기게 된 동기 혹은 최초의 성 경험, 신의 존재나 자연의 위대함을 깨달았던 개인적 체험, 당신의 인생을 바꾼 책이나 문구, 육체가 가진 한계와 인내, 당신이 스승으로 섬기는 인물)
13. 시집 한 권을 꺼낸다. 아무 데나 책장을 열고, 마음에 드는 한 줄을 골라 적은 다음, 거기서부터 계속 이어서 글을 써보자. 쓰다가 막히면 첫 줄을 다시 적은 다음 새로 이어서 쓴다. 다시 쓰는 글은 좀전에 썼던 글과 완전히 방향이 다른 새로운 시각으로 써본다.
14. 당신이 동물이 되었다고 상상해보라. 당신은 어떤 동물인가?
나태함과의 싸움
텅 빈 노트 또한 에고가 끊임없이 싸우고 있음을 보여주는 또 다른 모습이다. 당신 속에서 싸움을 원하는 마음이 있다면 싸우도록 내버려 두라. 말할 때는 오로지 말 속으로 들어가라. 걸을 때는 걷는 그 자체가 되어라. 죽을 때는 죽음이 되어라. 밑도 끝도 없는 죄의식과 회피, 무력감에 사로잡혀 있는 것은 쓸데없는 시간 낭비다.
편집자의 목소리를 무시하라
만약 당신이 열심히 창조적 목소리를 내려는데 편집자가 성가시게 달라붙는 느낌이 들어 작업을 진행시키기 힘들다면 편집자 입에서 나올 법한 소리를 한번 적어보라. 편집자를 정확히 알면 알수록 편집자를 무시해 버리기도 한결 수월해진다.
바로 당신 앞에 있는 것에서부터 출발하라
만일 내가 겁을 낸다면, 내가 쓰는 글도 왜곡되어 진실이 무엇인지 밝히지 못하게 된다. 작가는 작품을 쓸 때 모든 것을 항상 처음 대하는 기분으로 바라볼 줄 알아야 한다. 당신 앞에 있는 것이 무엇이든지 바로 거기서부터 출발하라.
내면의 잠재능력에 가 닿아라
자신의 목소리를 스스로 믿을 수 있게 되었을 때, 그 목소리가 이끄는 곳으로 곧장 나가라. 시의 온기에서는 발을 떼고 시에 '대하여' 말하는 데만 열을 올리는 어리석은 짓은 하지 말자.
시인과 시는 다르다
우리가 쓰는 글은 순간이 만들어낸 작품이다. 내가 만들어낸 시는 그 시를 쓰고 있을 때의 내 생각, 내 손, 나를 둘러싼 공간과 내가 느낀 감정들일 뿐이다. 당신은 좋은 시를 쓰고, 그 시에서 떠나라. 시에 들어가 있는 단어는 당신이 아니다. 당신 몸을 빌어 밖으로 표출되었던 '위대한 순간'이다.
논리를 뛰어넘어 모든 것을 수용하라
우리 마음은 모든 것을 게걸스럽게 먹어치울 정도로 수용적이어야 한다. 개미 한 마리와 코끼리 한 마리 안에서 공통된 다른 하나를 볼 수 있는 폭넓고 열린 시각을 가져야 하며 그것을 거리낌없이 표현할 수 있는 용기를 지녀야 한다. 우리 모두는 서로 연결되어 있다. 은유는 이러한 진실을 반영한 것이기에 종교적이다.
글쓰기는 맥도날드 햄버거가 아니다
글을 쓸 때 모든 것을 풀어주라. 글쓰기는 자신의 에고를 남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대로 연출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하나의 인간 존재임을 드러내보이는 것이다. 바보가 되어 시작하라. 고통에 울부짖는 짐승처럼 볼썽사나운 모습으로 시작하라.
강박증의 힘을 이용하라
작가란 종국에는 자신의 강박증을 쓰게 되어있다. 당신을 가장 괴롭히는 강박증에는 힘이 있다. 그 힘을 거부하지 말고 이용하라. 창작에 대한 강박증은 무언가 가치있는 길을 찾아 우리를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에너지를 가지고 있다. 술을 마시는 것은 문제와 정면으로 맞서는 것이 아닌 일종의 회피이고 게으름이다.
그들의 이름을 불러주라
우리의 삶 모든 순간순간이 귀하다. 이것을 알리는 일이 바로 작가가 해야 할 일이다. 한 모금의 물, 식탁에 묻어있는 커피 얼룩에 대해서까지 "그래!"하고 긍정적으로 답할 수 있어야 한다. 세부묘사는 우리가 만나는 세상 모든 것들, 모든 순간들에 이름을 붙여주고 그 이름을 불러주고 기억하는 것과 같다.
케이크를 구우려면
당신 마음에서 나오는 열과 에너지를 첨가하라. 강에 대해 쓰고 있다면 그 강에 온몸을 적시라. 글이 글을 쓰도록 하라. 당신은 사라진다. 에너지를 분산시키지 말라. 열을 가하다 중단한다면 그것은 죽도 밥도 되지 않는다.
글쓰기는 듣기에서 시작된다
만약 당신이 사물의 이치를 잡아낼 수만 있다면, 그것으로 시를 쓰는 데 필요한 모든 것을 얻은 것이다. 좋은 작가가 되려면 기본적으로 다음 세 가지가 필요하다. 많이 읽고, 열심히 들어주고, 많이 써보는 것이다. 그리고 너무 많이 생각하지는 말아야 한다.
파리와 결혼하지 말라
문학의 책임은 사람들을 깨어있게 하고, 현재에 충실하게 하고, 살아 숨쉬도록 하는 것이다. 글을 쓸 때는 마음 속에 무수한 길들이 열리는 법이다. 하지만 너무 멀리 떨어져 있는 들판으로 달려가서는 안 된다. 파리의 존재를 인식하고, 더 나아가 원한다면 파리를 사랑할 수도 있겠지만, 파리와 결혼하지는 말라는 것이다.
글쓰기는 사랑을 얻기 위한 도구가 아니다
자신이 글 쓰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자기 체면을 올리고 다른 사람들의 관심과 사랑을 받기 위한 방편이나 도구로 이용하는 사람이 있다. 누군가 자신의 재능에 대해, 작품에 대해 보내는 칭찬에 기대 살아가는 한 그 작가는 다른 이들의 비평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그보다는 우리의 근원적인 원조자에 대해 아는 편이 작품성을 높이는 데 훨씬 도움이 된다.
당신의 깊은 꿈은 무엇인가?
소망들을 글로 적는 것은 우리 인식의 한가운데에 그 소망을 각인시킬 수 있는 좋은 기회이다. 꿈은 우리가 삶 속으로 관통해 들어가게 만드는 하나의 방법이다.
때론 문장 구조에서 자유로울 필요가 있다
우리의 사고 방식은 문장 구조에 맞추어져 있고 사물을 보는 관점도 그 안에서 제한된다. 당신이 결국에는 인간이 만든 언어 체계 속으로 돌아가겠지만, 당신과 이 세상을 이루고 지탱하며 관통하고 아우르는 그 근원적인 큰 흐름을 알고 있어야 한다.
말하지 말고 보여달라
독자들에게 당신의 감정을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상황 속에서 생생하게 살아있는 감정의 모습을 보여주어야 한다. 자신의 작가라는 사실을 잊고 비판적인 편집자 행세를 할 필요는 없다.
그냥 꽃이 아니라 그 꽃의 이름을 불러주라
사물의 이름을 불러주어 그 사물의 존엄성을 지켜주라. 사물의 이름을 알고 있을 때, 우리는 근원에 훨씬 가까이 다가갈 수 있다. '꽃' 대신 '제라늄'을 말할 때 당신은 현재 속으로 더 깊게 뚫고 들어가게 된다.
평범과 비범
우리는 세부묘사를 대단하지 않게 여기거나 개미나 파리같은 것에만 사용하는 것으로 잘못 알고 있다. 우리는 모든 것이 이미 평범함과 비범함을 가지고 있음을 놓쳐서는 안 된다. 세부묘사와 우주는 서로를 변화시켜 준다.
이야기 친구를 만들라
작가는 모든 소문과 지나가는 이야기를 귀담아 들을 책임이 있다. 작가는 어떤 사건에 대해 그냥 '말하는 것'이 아니라 '보여주기'를 원한다.
작가들은 위대한 애인이다
우리는 앞서 있었던 모든 작가들의 짐을 나르고 있다. 작가들은 다른 작가들과 사랑에 빠진다. 다른 사람이 쓴 글을 사랑하게 되는 능력이 당신 안에 있는 능력을 흔들어 깨운다. 그들도 훌륭하고 나도 훌륭하다. 예술가는 외롭고 고통받는 존재라는 생각 같은 것은 떨쳐버려라.
동물적인 감각으로
고양이는 아무 소리도 내지 않으면서 동시에 모든 감각을 동원해서 보고, 듣고, 냄새를 맡는다. 길을 잃어버릴까 하는 두려움이 바로 항상 길을 잃어버리는 이유인 것이다. 언어가 배꼽에서부터 올라오는 것을 느끼라. 머리를 위 속으로 끌어내리고 소화시키라. 정맥에서부터 곧장 펜을 통해 종이 위에 토해 놓게 만들라. 제일 좋은 글은 당신의 안에 들어있는 모든 것이 실린 글이다.
자기 마음을 믿어라
자신의 마음을 믿고 자신의 사고 속에 똑바로 서 있는 훈련이 따라야 한다. 자신의 만들어낸 질문에는 스스로 대답할 수 있어야 한다. 종이 위에 안개를 옮겨 놓지 말라.
변덕스러운 마음을 길들이는 법
글을 쓰려고 할 때마다 이 작업보다 훨씬 재미있는 일들이 백 가지도 넘게 나를 유혹하는 것을 항상 느낀다. 마음은 항상 일과 집중력에 대해 저항하려 든다. '오, 그건 그냥 게으름일 뿐입니다. 어서 가서 일하세요.' 많은 사람들이 있는 곳이 오히려 당신을 혼자가 될 수 있게 해준다.
성, 그 거창한 주제에 대하여
우리는 먼저 긴장을 풀어야 한다. 화제에 대한 사전적 정의가 아니라, 당신과 그 화제와의 관계를 발견하라. '에로티시즘'이라는 단어를 다루기가 벅차다면, 이렇게 해보라.
* 무엇이 당신 몸을 뜨겁게 만드는가?
* 성과 관련된 과일 이름을 아는대로 모두 적어보라.
* 당신이 사랑에 빠졌을 때 먹는 음식은 무엇인가?
* 당신의 신체 중에서 가장 성적인 곳은 어디인가?
* 당신이 맨 처음 성애를 느꼈던 기억은?
글쓰기의 심장 속으로 들어가라
그렇다. 그냥 쓰라. "그래! 좋아!"라고 외치고, 정신을 흔들어 깨우라. 살아 있으라. 쓰라. 그냥 쓰라. 그냥 쓰기만 하라. 우리가 글쓰기의 심장 안에 있다면 장소 따위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앞으로, 더 멀리
당신이 끝까지 도달했다고 생각하고 멈추었던 곳에서 조금 더 멀리 나갔을 때 제어할 수 없는 아주 강한 감정과 만나게 될 것이다. 나는 최고의 글을 쓰고 있을 때 가슴이 미어지는 것을 느낀다. 충분히 자신을 밀고 나갔고 철저하게 에고가 깨졌다고 느낄 때조차도 조금 더 앞으로 밀고 나가라.
인생에 대한 연민
우리에게 두려움이 중요한 이유는 자신의 꿈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이 두려움을 극복해야만 하기 때문이다. 무지와 암흑의 장소에서 출발한 글쓰기가 결국에는 우리를 깨우치게 할 것이다.
나는 왜 글을 쓰는가?
사물은 그냥 있는 것이다. 당신이 글을 쓰기 원한다는 사실을 아는 것만으로도 이미 충분하라. 그러니 계속 쓰라. "나는 왜 글을 쓰는가?" 또는 "나는 왜 글을 쓰고 싶어하는가?"라고 묻되, 깊이 생각하지는 말라.
작가로서 살아남는 길
작가로서는 강하고 용감하지만 한 인간으로 돌아오면 한없이 무기력하다. 세상에 대한 우리의 위대한 사랑과 생활인으로서 우리 등에 달라붙은 불명예 사이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종이에는 멋진 시를 적지만 자기의 삶에는 침을 뱉거나, 자동차를 저주하거나, 고속도로를 이용하는 사람들을 매도하지 말라. 책상에서 시를 치우고 부엌으로 돌아가라.
자신이 쓴 글을 완전히 떠나보내라
자기가 만들어낸 작품에 대한 집착을 버려야 한다. 즉흥 글쓰기 창구는 바로 이러한 위대한 전사가 될 수 있는 기회이다. 자신이 쓴 글을 완전히 떠나보내는 것, 그럴 수 있을 때 작가로서 완전하게 설 수 있다.
방랑을 위해 들판으로 나가라
한번쯤은 입에 거품을 물 정도로 분별력을 놓아버린 천치가 되고 낯선 들판을 헤매는 방랑자가 되기를. 당신이 말을 겁내는 사람이라면, 말 한 마리를 사서 말과 친구가 되어라. 스스로에게 방황할 수 있는 큰 공간을 허용하라.
시간이 작가를 만드는 것은 아니다
글을 쓰기 위해 자리에 앉을 때는 목숨 전체를 기꺼이 그 글 속에 집어넣어야 한다. 말하지 않으면 병이 날 것 같을 때까지 기다리라. 법에 얽매이기보다는 살아있는 존재를 향해 친구가 되는 것이 더 중요하다. 심장 전체로 글을 쓰라. 종이에서부터 걸어나와 우리의 인생 전체로 들어가는 것이다.
더 이상 갈 곳이 없을 때
예정되어진 운명이 글쓰기라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할 때, 이제는 더 이상 도망갈 곳이 없게 된다. 중요한 것은 수많은 전술의 변화와 상관없이 무슨 일이 있어도 글쓰기와의 관계를 포기하지 않는 것이다.
외로움을 이용하라
익숙해서가 아니라 그 속에 서 있을 수 있는 법을 배우기 위해 고독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당신의 글이 또 다른 외로운 영혼에게 닿을 수 있도록 손을 뻗으라.
더 큰 자유를 위해 집으로 돌아가라
당신이 내면 깊이 들어가면 갈수록 당신은 당신으로 된다. 당신이 집에 가는 이유는, 더 큰 자유를 얻기 위해서다. 뿌리로 돌아가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그 뿌리에 고착되어서는 안 된다. 우리의 뿌리가 묻힌 곳에서 발견되는 고통을 견디기 싫어서 그것을 외면하는 가장 쉬운 방법으로 도망치려 한다. 단 한 사람과 접촉하고 교제하면서도 인간 전체에 대한 연민을 배울 수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독자에게 당신 심장 더 깊은 속으로 들어오는 기회를 만들어 주라.
사무라이가 되어 글을 쓰라
만약 그 시에 한 줄이라도 에너지가 있다면, 그 한 줄만 빼고 나머지는 모두 잘라버려도 좋다. 우리의 글이 계속 타들어가 환한 빛을 내는 지점이 결국 하나의 시와 산문이 된다. 미적지근한 글은 사람을 잠들게 만든다.
다시 읽기와 고쳐 쓰기
산만한 정신을 뚫고 지속적으로 글쓰기를 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훈련이다. 지금 이 순간 마음에 떠오르지 않는 것은 무엇이든지 잘라버릴 수 있는 용기를 지닌 전사, 사무라이가 되어야 한다.
스크랩 원문 : I love 안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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