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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브리서 4:12-16
믿는 도리를 굳게 잡으라
예수님을 사모하는 사람은
말씀의 발뒤꿈치에
무거운 납을 달고 있지 않습니다.
말씀의 능력으로 예수님이 좌정해 계시는
은혜의 보좌 앞에 나아가는 발걸음이
무척 가볍습니다.
참된 그리스도인은 이런 은혜로
믿는 도리를 굳게 잡고 사는 것입니다.
어린 자녀들이 부모를 의지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자신이 약한 존재라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부모 없이는 살 수가 없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어린아이들은 오직 부모만 바라보고 삽니다.
그렇다고 해서 이런 자식을 미워하거나
귀찮게 생각하는 부모가 있습니까?
한 명도 없습니다.
오히려 부모는 자신만 의지하는
어린 자녀를 더욱 깊이 사랑하고 보살펴 줍니다.
우리 하나님 아버지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버지 하나님도 우리가
자신의 연약함을 드러내어 놓고
오직 그분만 의지하고 기대며 살 때
기뻐하시고 책임 져 주십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힘으로는 구원받을 수도 없고,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도 없다는 것을 인정하며
은혜의 보좌로 나아오는 자를 구원해 주십니다.
며칠 전에 국회의원 선거가 있었습니다.
이번에 거뜬히 당선되어
뱃지를 달게 된 사람들이 얼마나 좋겠습니까?
아마 춤을 추며 기뻐한 사람들이
많았을 것입니다.
그리고 자기 지역구 사람들에게
너무나 고마웠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기쁨은 영원하지 않습니다.
언젠간 낙선하여 피눈물을
흘릴 때도 있을 것입니다.
언젠간 질병에 걸려 신음을 하다가
죽음의 늪으로 빠질 때도 있을 것입니다.
세상 것은 잠깐이고 영원하지도 않습니다.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만이 영원합니다(고후 4:18).
그래서 우리는 예수님만 붙잡아야 합니다.
세상 것을 내려놓고 오직 사랑의 예수님만
의지하다가 웃으면서 천국에 가야 합니다.
간절히 원합니다.
이 세상에 생명의 말씀으로 오신
예수님을 바라보십시오.
구원의 말씀 앞에
나를 내려놓는 길만이 영원히 사는 길입니다.
본문 12, 13절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 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나니 지으신 것이 하나도
그 앞에 나타나지 않음이 없고
우리의 결산을 받으실 이의 눈앞에
만물이 벌거벗은 것 같이 드러나느니라
인간의 몸속에 있는 내장은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두뇌도 안 보이고 심장도 안 보이고,
위장도 안 보이고, 대장, 소장도 안 보입니다.
그러나 모든 장기를 다 볼 수 있는 방법이
있습니다.
의사가 칼로 사람의 몸을 해부하면
숨겨진 모든 장기가 다 드러납니다.
저도 수술을 했을 때
제 몸의 잘라낸 장기 일부 컴퓨터 사진을
본 적이 있습니다.
의사 선생님이 그것마저도 보여주더군요.
여러분, 하나님의 말씀이 무엇입니까?
영혼을 해부하는 칼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의 혼과 영과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는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는
겉이나 속이나 아무것도 숨길 것이 없습니다.
모든 인간과 이 세상의 만물들은
벌거벗은 것처럼 드러납니다.
나의 생각, 나의 모든 행위 모두가
숨김없이 드러납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몸과 영혼은
말씀의 칼로 해부를 해야 치료를 받습니다.
우리는 연약합니다.
우리에게는 죄가 많습니다.
우리는 치명적인 약점이 많은 존재입니다.
우리는 나 자신의 삶을 뒤돌아볼 때
한숨과 신음으로 뒤범벅되어 있음을
자인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처럼 모든 인간은 실수와 실패를
많이 합니다.
그래서 주님이 필요한 것입니다.
예수님이 외로워서
내가 예수를 믿어 주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외로워서 예수를 믿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어떤 사람은
자신의 약점을 인정할 줄 모릅니다.
자신의 약한 모습이 드러나는 것을
죽기보다 싫어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사람은
하루하루 살아가기 힘듭니다.
또한 진정으로 강한 사람도 아닙니다.
정말 강한 사람은 자신의 약함을 실토하고
그 약함을 감싸 주시는
예수님께 나아오는 사람입니다.
누구든지 자신의 연약한 마음 그릇에
주님의 은혜를 채워야
인생의 포만감을 누리며 살아갑니다.
철학자 파스칼이 말했습니다.
"모든 사람의 마음속에는
하나님이 비워 둔 공백이 있다.
이 공백은 예수님을 모시기까지는
그 누구도 메울 수가 없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을 굳게 잡고 사는 사람만이
텅 빈 공백 인생이 되지 않습니다.
여러분, 믿는 도리를 굳게 잡고 사십시오.
늘 말씀을 묵상하며 사십시오.
하나님의 말씀은
설명을 주기보다 믿음을 줍니다.
누가복음 5:5입니다.
말씀을 마치시고 시몬에게 이르시되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
시몬이 대답하여 이르되
선생님 우리들이 밤이 새도록 수고하였으되
잡은 것이 없지마는 말씀에 의지하여
내가 그물을 내리리이다 하고
그렇게 하니 고기를 잡은 것이 심히 많아
그물이 찢어지는지라
빈 그물을 씻고 있는 베드로였지만
예수님이 말씀을 마치시고
그의 그물이 찢어질 만큼
물고기를 많이 잡게 해 주십니다.
그가 예수님께 고백하는 내용이 무엇입니까?
“말씀에 의지하여 그물을 내리리이다.”
이것은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그물을 내리겠다는 표현이었습니다.
바로 말씀 순종의 능력입니다.
많은 사람이 어려움을 당하면
'어떻게 이 문제를 해결할까?'를 고민합니다.
‘어떻게 이 상황에서 탈출할까?'에 골몰합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말씀에 대한 믿음입니다.
말씀에 순종하는 자세입니다.
십자가를 앞에 둔 예수님도 그 상황에서
탈출을 시도하지 않았습니다.
십자가의 죽음에서 빠져나가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오직 아버지 하나님의 뜻에
묵묵히 순종하셨습니다.
그래서 십자가 고난의 잔을 드셨고
인류의 구원을 완성해 내셨습니다.
여러분, 우리도 죽기까지 순종해야 합니다.
모든 것을 다 잃어도
순종하고 또 순종해야 합니다.
누구라도 순종의 마차를 타야
은혜의 보좌로 들어갈 수가 있습니다.
우리 부부가 주님 앞에서 회개할 내용이
있습니다.
다른 교회 치유 간증 전도 집회에 가면
대개 사례비를 받습니다.
물론 가끔 환경이 어려워
사례비를 못 주는 곳도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까지 13개 교회를 다녔지만
제가 받은 사례비를
모두 교회 재정에 넣었습니다.
아마 이렇게 다른 교회 사례비마저
본 교회 재정에 넣는 경우는
많지 않을 것입니다.
그렇다고 주머니가 두둑해서
그런 것도 아닙니다.
사실 우리 가정은
매월 200만 원의 생활비를 받아
근근하게 지내고 있습니다.
심지어 우리 아파트까지
매달 50만 원의 주택 연금에
가입되어 있습니다.
그렇다고 성도님들이
이 사실을 알아달라는 것도 아닙니다.
이런 상황 가운데서
잠깐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른 교회 집회 사례비까지
교회 재정에 넣어야 하나?
상여금도 없이 박봉에 불과한 생활비로
겨우 살아가고 있는데...‘
그래도 우리 가정은 최선을 다해
하나님께 헌금을 드려왔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우리 가정에 아주 직접적인 교훈을 주셨습니다.
우리 부부가 ’다른 교회 사례비마저
우리 교회 재정에 넣어야 하나?‘라는 말을
두 번했는데 두 번 다 교통사고가 나서
정확히 제가 받은 사례비 30만 원씩
60만 원의 보험료를 지불해야 했던 것입니다.
1원도 틀림이 없이
정확하게 나가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살짝 말씀드리면
이 사고는 아내가 낸 것이었습니다.
큰 사고는 아니고 살짝 스치는 사고였지요.
물론 아내는 자기 잘못이 아니었다며
억울하다고 하는데
엄연한 교통사고 처리법이기 때문에
할 수 없이 수리비 일부를 지불해야만 했습니다.
사례비를 하나님께 안 드린 것도 아니고
말만 그렇게 하고
교회 재정에 모두 넣었고 넣을 예정이었지만
하나님은 잠깐의 이런 생각마저
허락하지 않으셨습니다.
우리는 참으로 신기했습니다.
그리고 이 일로 인해 하나님께서
우리 가정에, 우리 교회에
얼마나 큰 관심을 가지고 계시는지
절감하게 되었습니다.
앞으로도 모든 재정은
하나님이 책임지실 테니
살아갈 걱정은 하지 말라는
메시지로 다가와서 감사했습니다.
그래도 제가 밥을 굶지 않고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지요.
신도시 교회도 마찬가집니다.
성도들의 헌금으로 지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보상금으로 지을 수 있는 줄 믿습니다.
하나님은 이미 모든 건축비를
준비해 주셨습니다.
여러분, 인간의 생사화복은
오직 하나님께 달려있다는 것을 믿는 것이
참된 믿음입니다.
마태복음 6:30-34입니다.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져지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보냐 믿음이 작은 자들아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이 염려할 것이요
한 날의 괴로움은 그 날로 족하니라
본문 14절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큰 대제사장이 계시니
승천하신 이 곧 하나님의 아들 예수시라
우리가 믿는 도리를 굳게 잡을지어다
하나님은 우리가 담대한 믿음으로
믿는 도리를 굳게 잡고 살기를 원하십니다.
우리의 믿는 도리,
예수 그리스도를 굳게 잡고 살기를 바라십니다.
그래야 구원받습니다.
그래야 은혜받고 복 받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면서도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해 주시고
우리를 위해 자신을 희생 제물로 드리셨습니다.
이 은혜로운 대제사장으로부터
힘을 얻고 살아갈 때
우리는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하게 나아갈 수 있습니다.
나에게 아픈 문제들이 있습니까?
나에게 실망과 고통과 신음이 있습니까?
나의 연약함으로 인해 늘 절망하고 쓰러집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을 의지하십시오.
예수 그리스도를 힘입어
담대히 은혜의 보좌로 나아가십시오.
네 손가락 피아니스트 이희아 양의 고백입니다.
"나는 장애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한다.
만일 내가 다시 태어난다면
지금의 나의 모습으로 태어나고 싶다.
아주 작은 키와 네 손가락을 가지고
태어나고 싶다. 나는 지금이 행복하기 때문이다.
나는 손가락이 네 개 있음을
슬퍼해 본 적이 없다.
오히려 네 개를 주신 하나님께 늘 감사했다.
나는 두 발이 없는 점을 슬퍼하지 않는다.
오히려 어디든 달려갈 수 있는
열정과 의지력을 주심에 감사한다.
장애는 극복하는 것이 아니고
장애와 더불어 살 때 행복해진다.
미래를 걱정하는 일만큼 어리석은 일은 없다.
지금 주어진 시간이 얼마나 소중한가.
나는 과거에도 현재도
내게 남겨진 부분을
최대한으로 극대화하는 일에
시간을 소중히 사용했다.
지금 주어진 삶을
열심히 살아가는 장애인의 모습은
경이롭도록 아름답다."
손가락이 네 개밖에 없는 이희아 양의 고백,
이 얼마나 아름답고 귀합니까?
자신의 인생을 저주하지 않고,
자기에게 장애를 주신 하나님 앞에서
토라지지 않고 오히려 감사하며 살고 있는
이희아 양의 고백이
우리의 고백이 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주님은 우리에게 한량없는 은혜를 주십니다.
우리가 주님을 의지하고 살면
천국에서의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되고
그로 말미암아 행복하고
만족한 삶을 누리게 됩니다.
본문 15, 16절입니다.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실 이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신 이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그러므로 우리는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
우리 예수님은 동정이 많으신 분이십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연약함을 아시고
늘 우리를 동정해 주십니다.
예수님이 우리처럼 인간의 몸을 입고
이 세상에 오셨기 때문입니다.
우리 예수님도 인간이 겪는 시험과
고난을 다 겪으셨습니다.
단지 죄만 없으셨을 뿐입니다.
고생해 본 사람이
고생하는 사람의 심정을
안다는 말이 있습니다.
예수님도 이 세상에 오셔서
온갖 고난을 다 경험하셨기 때문에
고생하는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고
긍휼히 여겨 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을 의지하며
담대히 은혜의 보좌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담대히 나아갈 수 있는 이유는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주시는
예수 그리스도 때문입니다.
히브리서 2:18입니다.
그가 시험을 받아 고난을 당하셨은즉
시험받는 자들을 능히 도우실 수 있느니라
이사야 41:10입니다.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함이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오래전에 MBC 방송국에서 한 동안
「절망은 없다」라는 프로그램을
방영한 적이 있습니다.
이 프로그램은 바닥까지 실패했다가
다시 일어나 성공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루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이 있습니다.
<절망은 없다>의 주인공 가운데 80% 이상이
기독교인들이라는 것입니다.
이들이 어떻게 해서 실패의 늪에서 빠져나와
성공할 수가 있었습니까?
예수님이 함께 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일어서게 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지난주에 우리 수원 노회
안교성 목사님이라는 분이
췌장암으로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별세 소식을 듣는 순간 저는 그분이 부럽더군요.
‘어떻게 그렇게 세상을 떠나셨지?
너무나 안 되었네.’하는 생각보다는
‘지금 천국에 가셔서 얼마나 행복하실까?’
하는 생각이 더 앞섰습니다.
그분이 이 세상에서 사명을 감당하시다가
무사히 천국에 가셨기 때문입니다.
구원받은 자라면 일찍 천국에 가는 것이
더 복된지도 모릅니다.
외람되지만 저는 췌장암의 고난을 딛고 일어나
아직 쓰임 받는 인생을 살고 있습니다.
그래도 지금은 오직 천국만 생각하며
살고 있습니다.
‘천국에 빨리 갈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리고 제가 건강할 때는
오직 우리 교회 목회만 전념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우리 교회는 물론
많은 사람에게 감동을 주는 인물이 되었습니다.
췌장암에서 살아난 자,
전도를 열심히 하는 자로서
사명을 감당하고 있습니다.
이는 제가 이렇게 되고 싶어서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저를 이렇게 만들어주셨습니다.
이런 일꾼이 되기까지는
열심히 기도했기 때문입니다.
열심히 전도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사명 때문에 저를 살려주셨습니다.
여러분, 오직 나를 도우시는
예수님만 의지하십시오.
나와 함께 하시는 예수님만 믿고
그분과 함께 걸어가십시오.
분명히 우리는 성공하게 될 것입니다.
믿음으로 승리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설교 성시를 묵상하시겠습니다.
<예수님의 품>
살아 있는 하나님의 말씀
신비하게 영혼을 지배하는 그분의 말씀
내 혼과 영과 관절과 골수
내 마음과 생각과 뜻
날 꼭 싸안은 생명의 말씀
말씀은 곧 예수님
말씀은 곧 믿는 도리
결코 버릴 수 없는 인생 지침
다 버린 들 멸망의 늪으로 빠지는걸
말씀을 떠나면 지옥으로 들어가는걸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시는 예수
시험은 받아도 죄는 없으신 예수
그래서 은혜의 보좌
봄바람 타고 훨훨 날아
예수님 사랑의 품으로 안기고만 싶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