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큐티 69] 사사기 13장-15장 묵상
★ 삼손을 블레셋에 넘긴 유다 지파(삿15장)
사사기 15장은 아내를 블레셋 사람들에게 빼앗긴 삼손의 보복 사건을 소개한다.
다툼에 의한 보복은 또 다른 보복을 낳는다.
앞선 삼손의 보복으로 인해 이제 보복의 순번이 블레셋에게로 넘어왔다.
그들은 삼손이 유다로 몸을 숨겼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유다땅으로 가서 진영을 정비하고 레히 지역으로 탐색대를 보낸다.
사사시대 최초의 지도자 옷니엘을 배출한 유다 지파는
한동안 성경에 언급되지 않다가 이제 다시 등장한다.
블레셋 사람들의 급습에 놀란 유다 지파는 자신들이
아무런 말썽도 일으키지 않고 다른 민족의 심기도 건드리지 않았는데,
왜 조용하게 살아가는 자신들을 찾아와서 불안에 떨게 만드냐는 질문이다.
하나님께서 유다 지파에게 맡기신 역할의 관점에서 보면
유다의 이러한 모습은 아쉬운 장면이다.
유다는 이스라엘 백성의 구원에 대해 다른 어떤 지파보다 더 절박해야 했다.
이는 성경의 예언을 따라 온 세상의 구원자가 바로 유다 지파를 통해 나오기 때문이다.
그런 지파가 이방 민족이 자신의 땅 한가운데로 들어와
자신의 백성과 지파를 위협하는 상황에서 그저 분쟁에 휘말리지 않으려고
몸을 사리며 자신의 안위만을 추구하는 모습은 여러 가지로 아쉬운 장면이다.
이를 영적인 관점으로 보았을 때
유다를 향한 블레셋의 느닷없는 기습은
유다의 영적인 태만을 일깨워주는 자명종과 같다.
유다는 블레셋의 침입에 대해 적들에게 따지기 이전에
먼저 하나님께 엎드려 이 상황에 맞는 자신들의 행동과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는 모습을 보였어야 했다.
블레셋의 군대가 유다에 온 이유는 유다 지파를 공격하기 위함이 아니라
삼손을 결박하여 삼손이 블레셋에 피해를 입힌 대로 되돌려 주기 위한 것이었다.
이러한 갈등의 상황이 되지 않기 위하여
하나님의 사람인 삼손의 역할과 유다 지파의 역할이 있을 것인데
영적으로 무뎌진 이스라엘 사람들은
이제 더 이상 하나님의 뜻과 말씀의 의미를 분별하지 못하였다.
블레셋의 목적이 삼손에게로 향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한 유다 지파는
삼손을 잡는 일을 돕기 위해 3,000명이나 되는 인원을 동원하여
삼손이 은둔해 있는 에담의 바위틈으로 내려갔다.
블레셋 사람이나 유다 지파나 삼손 한 명을 잡으려고
이 대규모 인원이 동원된 것으로 보아 그들 모두가
삼손의 막대한 힘을 인지하고 있었음을 알수있다.
유다는 블레셋이 삼손에게 저지른 일에 대해서는 반응하지 않다가
삼손이 블레셋 사람에게 행한 일에 대해서는 분노하고, 강하게 항의한다.
유다는 삼손과 블레셋의 생각이 서로를 향한 보복만 있음을 확인한 후
삼손을 블레셋 사람들의 손에 넘기기로 결정한다.
양측의 입장이 동일한 경우 유다에게 판단의 근거는
당연히 하나님의 뜻과 말씀이 기준이어야 했다.
이와같이 위기의 때에 하나님을 전혀 인정하지 않은 유다는
블레셋의 위협 때문에 블레셋의 뜻을 따르며
블레셋의 편에 서기로 결정한 것이다.
유다는 지금 이방인의 다스림을 받고 있었고
오늘에 대한 안락과 평안함을 하나님을 통해 찾으려 하지 않고
세상의 힘의 논리를 따라 유지되기를 원하였다.
블레셋의 통치가 지속됨에 따라 그것에 익숙해진 유다가
그만큼 하나님을 향한 신앙의 야성을 잃어버리고
세상에 길들여졌음을 보여주는 부분이다.
유다 사람들은 새 밧줄 두 개로 삼손을 결박했다.
이 밧줄은 한 번도 사용하지 않은 새 밧줄로 삼손을 결박할 때
새 밧줄이 끊어질 가능성은 상식적으로 없었다.
하지만 하나님으로부터 온 삼손의 힘을 감당할 수 있는 밧줄또한 세상에 없었다.
사람들의 생각은 참으로 단순하다.
자신이 아주 강한 밧줄이라고 생각하면,
하나님의 능력도 묶을 수 있다고 착각한다.
복수심에 사로잡힌 블레셋이 삼손을 보자
잡아 죽여야 한다는 분노의 목소리가 모이고 모여 거대한 함성이 되었다.
그때 여호와의 영이 삼손에게 갑자기 임하였다.
순간 삼손의 팔을 결박하던 밧줄은 불탄 삼과 같이 맥없이 녹아 없어지고 말았다.
그렇게 풀려난 삼손은 나귀의 턱뼈를 발견하고
그것으로 1,000명의 블레셋 사람들의 목숨을 빼앗았다.
이 당시의 블레셋 사람들은 자신들의 가장 강력한 무기, 즉
철을 사용하여 스스로를 무장하였을 가능성이 높다.
이러한 강력한 무기와 대적하여 싸운 삼손의 무기가 나귀의 턱뼈였다는 것은 놀랍다.
이는 무기의 성능 때문에 삼손이 블레셋 사람을 제압한 것이 아니라
여호와의 능력과 은혜의 결과로 삼손이 이 전투에서 승리 할 수 있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삼손의 턱뼈만이 아니라
성경에는 홍해를 가른 ‘모세의 지팡이’,
거구 골리앗을 쓰러뜨린 ‘다윗의 물맷돌’,
오천 명을 먹인 ‘아이의 도시락’ 과 같이 비록 작고 초라하지만
하나님의 손에 붙들리어 기적의 도구로 쓰임을 받는 예가 많이 있다.
우리 개개인도 하나님께서 붙드시는 도구로 사용하신다면
연약하고 흠이 많다고 하여도
하나님의 위대한 도구로 쓰여질 수 있다는 사실을 명심하자.
“이르되 나귀의 턱뼈로 한 더미, 두 더미를 쌓았음이여
나귀의 턱뼈로 내가 천 명을 죽였도다 하니라
그가 말을 마치고 턱뼈를 자기 손에서 내던지고
그 곳을 라맛 레히라 이름하였더라”(삿15:16-17)
하나님의 은혜로 삼손은 큰 승리를 거두었음에도
여전히 그는 하나님에 대한 경외심이 턱없이 부족한 사사였다.
승리를 한 후 삼손이 부른 노래의 내용을 보면
어린아이와 같은 삼손의 모습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삼손은 턱뼈라는 상징적인 물건을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이 드러내는 도구로 이해하지 않았고
자기 자신의 위력을 과시하는 증거물로 제시하였다.
삼손의 생각에 자신의 승리는 여호와 하나님의 영과는 무관한 일이었다.
승리 후 삼손의 노래를 보면 처음부터 끝까지
이 승리의 주체가 ‘나였음을’ 강조하고 있다.
삼손이 그 이름을 지은 지역 ‘라맛 레히’의 뜻도
결국 ‘턱뼈의 높이’라는 이름으로 하나님의 은혜가 아닌
자신의 업적만을 드러내려는 삼손의 교만함이 드러난다.
이처럼 교만한 삼손이었지만
그에게도 가뭄에 콩 나듯 하나님을 찾는 경우가 있었다.
지금 삼손은 심히 목마르다.
나귀 턱뼈로 1,000명이나 되는 사람을 죽였으니
그 체력적인 소모가 엄청났을 것이다.
삼손은 극심한 갈증 앞에서 비로소 눈을 돌려 하나님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짧게나마 블레셋으로부터 얻은 승리가
삼손 자신의 승리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큰 구원을 베풀어 주신 것이라고 고백하게 되었다.
이는 형통한 인생을 살다 갑자기 곤고함이나 고통의 상황 속에서
많은 사람들이 보이는 반응과 비슷하다.
평소에는 하나님께 큰 관심을 가지고 있지 않다가
삶의 위기가 찾아오면 비로소 그 의식 속에서 하나님의 존재를 더듬는다.
삼손의 이러한 얄팍한 마음을 아시면서도
하나님께서는 삼손의 기도에 친히 응답해 주시는 선한 분이시다.
하나님께서는 레히의 한 우묵한 곳을 쪼개어 샘을 만드셨고,
그곳에서 물이 솟아나게 하셨다.
물을 마신 삼손은 정신이 회복되었고 기력이 살아났다.
삼손을 향한 이러한 은혜는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우리를 향한 변함이 없으신 하나님의 신실한 사랑을 보여주는 부분이다.
하나님께서는 진노를 향한 걸음은 더디시고,
은총을 허락하시려는 걸음은 빠르신 분이시다.
하나님께서 급하게 물을 주신 은혜를 기념하여 삼손은
그곳을 “엔학고레” 즉 “부르짖는 자의 샘”이라고 하였다.
그런데 이번에도 삼손의 작명에는 자기중심성이 반영되어 있다.
삼손이 참으로 하나님을 향한 신앙인이 되었다면,
“부르짖는 자의 샘”이 아니라
“응답하시는 분의 샘”이라고 그 이름을 지었을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삼손의 이러한 한계 속에서도
그를 이스라엘의 사사로 20년이나 사용하셨으며
하나님께서 자신의 일을 이 부족한 도구를 통해서도 이루셨다.
- 1년 1독 성경통독 학교, 꿀송이 보약 큐티#
남아공 노록수 선교사 <2025년3월13일,목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