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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전례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대희년인 2000년 부활 제2주일에, 하느님의 자비에 대한 신심이 매우 깊었던 폴란드 출신의 파우스티나 수녀를 시성하였다. 그 자리에서 교황은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특별히 하느님의 자비를 기릴 것을 당부하였다.
이에 따라 교회는 2001년부터 해마다 부활 제2주일을 ‘하느님의 자비 주일’로 지내고 있다. 외아드님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과 죽음과 부활로 우리를 구원해 주신 하느님의 크나큰 자비에 감사드리고자 하는 것이다.
본기도
영원히 자비로우신 하느님,
해마다 파스카 축제로 저희 믿음을 불타오르게 하시니
더욱 풍성한 은총을 베푸시어
물로 깨끗해지고 성령으로 새로 난 이들이
성자의 피로 얻은 구원의 신비를 더욱 깊이 깨닫게 하소서.
제1독서
<신자들은 모두 함께 지내며 모든 것을 공동으로 소유하였다.>
▥ 사도행전의 말씀입니다.2,42-47
형제들은 42 사도들의 가르침을 받고 친교를 이루며
빵을 떼어 나누고 기도하는 일에 전념하였다.
43 그리고 사도들을 통하여 많은 이적과 표징이 일어나므로
사람들은 저마다 두려움에 사로잡혔다.
44 신자들은 모두 함께 지내며 모든 것을 공동으로 소유하였다.
45 그리고 재산과 재물을 팔아
모든 사람에게 저마다 필요한 대로 나누어 주곤 하였다.
46 그들은 날마다 한마음으로 성전에 열심히 모이고
이 집 저 집에서 빵을 떼어 나누었으며,
즐겁고 순박한 마음으로 음식을 함께 먹고,
47 하느님을 찬미하며 온 백성에게서 호감을 얻었다.
주님께서는 날마다 그들의 모임에 구원받을 이들을 보태어 주셨다.
제2독서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새로 태어나게 하시어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다시 살아나신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로 우리에게 생생한 희망을 주셨습니다.>
▥ 베드로 1서의 말씀입니다.1,3-9
3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느님께서 찬미받으시기를 빕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크신 자비로 우리를 새로 태어나게 하시어,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다시 살아나신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로
우리에게 생생한 희망을 주셨고, 4 또한 썩지 않고 더러워지지 않고
시들지 않는 상속 재산을 얻게 하셨습니다.
이 상속 재산은 여러분을 위하여 하늘에 보존되어 있습니다.
5 여러분은 마지막 때에 나타날 준비가 되어 있는 구원을 얻도록,
여러분의 믿음을 통하여 하느님의 힘으로 보호를 받고 있습니다.
6 그러니 즐거워하십시오.
여러분이 지금 얼마 동안은
갖가지 시련을 겪으며 슬퍼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7 그러나 그것은 불로 단련을 받고도
결국 없어지고 마는 금보다 훨씬 값진 여러분의 믿음의 순수성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밝혀져,
여러분이 찬양과 영광과 영예를 얻게 하려는 것입니다.
8 여러분은 그리스도를 본 일이 없지만 그분을 사랑합니다.
여러분은 지금 그분을 보지 못하면서도 그분을 믿기에,
이루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기쁨 속에서 즐거워하고 있습니다.
9 여러분의 믿음의 목적인 영혼의 구원을 얻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부속가
<자유로이 할 수 있다.>
파스카 희생제물 우리모두 찬미하세.
그리스도 죄인들을 아버지께 화해시켜
무죄하신 어린양이 양떼들을 구하셨네
죽음생명 싸움에서 참혹하게 돌아가신
불사불멸 용사께서 다시살아 다스리네.
마리아 말하여라 무엇을 보았는지.
살아나신 주님무덤 부활하신 주님영광
목격자 천사들과 수의염포 난보았네.
그리스도 나의희망 죽음에서 부활했네.
너희보다 먼저앞서 갈릴래아 가시리라.
그리스도 부활하심 저희굳게 믿사오니
승리하신 임금님 자비를 베푸소서.
복음
<여드레 뒤에 예수님께서 오셨다.>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20,19-31
19 그날 곧 주간 첫날 저녁이 되자,
제자들은 유다인들이 두려워 문을 모두 잠가 놓고 있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오시어 가운데에 서시며,
“평화가 너희와 함께!” 하고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20 이렇게 말씀하시고 나서 당신의 두 손과 옆구리를 그들에게 보여 주셨다.
제자들은 주님을 뵙고 기뻐하였다.
21 예수님께서 다시 그들에게 이르셨다.
“평화가 너희와 함께!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처럼 나도 너희를 보낸다.”
22 이렇게 이르시고 나서 그들에게 숨을 불어넣으며 말씀하셨다.
“성령을 받아라.
23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용서해 주면 그가 용서를 받을 것이고,
그대로 두면 그대로 남아 있을 것이다.”
24 열두 제자 가운데 하나로서 ‘쌍둥이’라고 불리는 토마스는
예수님께서 오셨을 때에 그들과 함께 있지 않았다.
25 그래서 다른 제자들이 그에게 “우리는 주님을 뵈었소.” 하고 말하였다.
그러나 토마스는 그들에게, “나는 그분의 손에 있는 못 자국을 직접 보고
그 못 자국에 내 손가락을 넣어 보고 또 그분 옆구리에 내 손을 넣어 보지 않고는
결코 믿지 못하겠소.” 하고 말하였다.
26 여드레 뒤에 제자들이 다시 집 안에 모여 있었는데 토마스도 그들과 함께 있었다.
문이 다 잠겨 있었는데도 예수님께서 오시어 가운데에 서시며,
“평화가 너희와 함께!” 하고 말씀하셨다.
27 그러고 나서 토마스에게 이르셨다.
“네 손가락을 여기 대 보고 내 손을 보아라.
네 손을 뻗어 내 옆구리에 넣어 보아라. 그리고 의심을 버리고 믿어라.”
28 토마스가 예수님께 대답하였다. “저의 주님, 저의 하느님!”
29 그러자 예수님께서 토마스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나를 보고서야 믿느냐? 보지 않고도 믿는 사람은 행복하다.”
30 예수님께서는 이 책에 기록되지 않은 다른 많은 표징도
제자들 앞에서 일으키셨다.
31 이것들을 기록한 목적은 예수님께서 메시아시며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여러분이 믿고,
또 그렇게 믿어서 그분의 이름으로 생명을 얻게 하려는 것이다.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평소 우리 감정이 부활에 대한 믿음을 증명한다.
오늘 복음은 예수님께서 부활하시어 사도들에게 첫 번째, 두 번째 나타나신 이야기입니다. 특별히 토마스 사도는 첫 번째 발현 때는 함께 있지 못했고 두 번째는 함께 있어서 그리스도를 만납니다.
우리가 여기서 집중해야 하는 것은 ‘감정’의 변화입니다. 복음은 제자들이 두려워 문을 걸어 잠그고 있다가 기쁨과 평화가 넘치게 되었다고 말하고 예수님은 당신의 부활을 보지 않고도 믿는 이들은 행복할 것이라고 하십니다. 다시 말해 행복하지 않으면 부활을 믿지 못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부활은 어떤 고통도 이겨낼 수 있는 사건에 대한 믿음이기 때문입니다. 결국 우리가 부활하여 하느님 나라에 가면 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어느 공동체나 그 공동체를 유지하게 만드는 힘이 있습니다. 이 결속력은 결국 ‘믿음’입니다. 만약 예수님 부활에 대한 믿음이 없었다면 교회는 금방 해체되었을 것입니다. 따라서 믿고 싶으면 토마스처럼 그 공동체에 속하여 일정 기간을 버티어내면 됩니다.
헝가리인인 ‘라즐로 폴가’는 천재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가정 공동체나 누군가가 믿어주면 자녀가 그 믿음대로 천재가 되는 것임을 증명하고 싶어서 자신의 딸 셋을 그렇게 키웠습니다. 정말 딸 셋은 다 세계적인 체스 기사들이 되었습니다.
왜 우리나라에서는 노벨상이 거의 나오지 않고 유태인들은 많은 노벨상을 탈까요? 그것은 믿음에 기인합니다. 우리나라 교육이 주는 믿음이 다르고 유태인들 교육이 주는 믿음이 다른 것입니다. 유태인들은 이미 태어날 때부터 하느님께 바쳐진 백성으로 바다도 가를 수 있고 광야에서 40년을 아무것도 없이 버틸 수 있는 존재들이라 믿습니다. 하지만 우리나라 학생들은 공부를 열심히 안 하면 가난할 수밖에 없다는 무신론적 믿음을 줍니다. 그리고 믿는 대로 되는 것입니다.
영국에서 태어나 세계적 싱어송라이터가 된 에드 시런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는 어렸을 때 눈 주위의 커다란 점을 수술하였는데 마취 하는 것을 잊어버려 청각 장애, 사시 현상, 심지어 말더듬증 현상까지 생겼습니다. 하지만 아버지는 평생 말더듬증으로 살아야 한다는 그의 생각을 바꿔버렸습니다. 아버지는 래퍼 에미넴의 음반을 선물해 주었습니다. 에드 시런은 아버지의 뜻대로 1년 동안 그의 음악을 달달 외우고 따라 하며 말더듬증을 고쳤습니다.
아버지는 유명 가수들을 만나게 해주고 그가 가수가 될 꿈을 가지게 하였습니다. 에드 시런은 길거리 가수부터 시작하여 미국으로 무작정 건너가 자신을 믿어주는 사람을 찾았습니다. 그 사람이 제이미 폭스였습니다. 제이미 폭스는 자신의 공연에 무명인 에드 시런을 참여시켜 주었고 첫 앨범을 내는 것을 도와주었습니다.
그렇게 유명해진 에드 시런은 이제 더 클 수 있음을 믿어주는 톱스타 테일러 스위프트를 만납니다. 그녀는 자신의 어린 시절과 비슷한 처지를 살아온 에드 시런을 자신처럼 세계적 스타가 되게 해줍니다. 에드 시런은 잠시 활동을 중단하고 자신이 사랑하는 여인과 여행을 다닙니다. 이때 애인 체리 시븐으로부터 무엇을 얻었겠습니까? 더 큰 믿음이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새롭게 낸 앨범은 경이로울 정도의 인기와 상을 가져다주었습니다.
우리는 많은 어려움을 겪어나가며 살아갑니다. 그 어려움을 겪을 힘은 바로 언젠가 부활할 것이란 믿음입니다. 그러한 공동체에 속해야 합니다. 그러면 부활을 맛보고 힘든 중에서도 기쁨과 평화를 유지할 수 있습니다.
두 팔이 없고 한 다리는 30cm밖에 안 되는 중증 장애인인 레나 마리아는 장애인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땄고 노래와 그림 실력은 프로급이며 인기 도서 작가이기도 합니다. 이 모든 것을 오로지 발 하나로 합니다. 하지만 그녀도 “엄마, 난 친구가 없어요!”라고 한탄한 적이 있습니다. 엄마는 “왜 친구가 없어. 예수님이 네 안에 계시잖아!”라고 말해주었지만, 그녀는 믿을 수 없었습니다. 엄마니까 그렇게 말했을 것으로 여겼습니다. 그즈음 전화 한 통이 그녀를 바꾸어 놓습니다. “레나 마리아 씨죠? 저를 모르실 것입니다. 하지만 제가 기도 중에 예수님께서 당신에게 전화하라고 하셨어요. 많은 사람이 응원하고 있고 기도하고 있음을 알려주라고 하셨어요!”
이것이 믿음 공동체의 힘입니다. 부활을 믿느냐는 질문에 레나 마리아는 이렇게 대답합니다. “만약 예수님이 부활하셨다는 사실과 그분이 지금도 우리와 함께 계심을 증명하라고 한다면, 나는 나약한 저의 육신과 날마다 주님을 찬양하는 제 입술을 당당히 보여주겠습니다.”
유튜브 묵상 동영상
아기 예수의 성녀 데레사의 글을 읽다가 감명받은 구절이 있어서 소개해봅니다.
“우아한 장밋빛을 띠고 향이 달콤해 인간의 기술로는 그런 과즙을 만들어낼 수 없는 아름다운 복숭아를 생각해 봐. 하느님께서 그렇게 아름다운 빛깔을 만드시고, 그렇게 부드러운 벨벳 같은 껍질을 만드신 것이 복숭아 자체를 위한 것일까? 그것을 그렇게 달콤하게 만든 것은 복숭아를 위한 것일까? 아니야. 그건 우리를 위해서야. 복숭아 자체이고, 그 존재에 본질적인 것은 씨앗뿐이고 그 외에는 아무것도 없어.”
이 글을 읽고서 많은 묵상을 하게 되었습니다. 복숭아를 사람으로 대체하면 어떨까요? 아주 멋지고 아름다운 사람, 많은 능력과 재주를 가지고 있는 사람, 이 사람을 자체를 위해서 하느님께서 그렇게 만드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보다는 함께 사는 우리를 위해서이고, 결국 하느님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러나 자기만족에만 그치는 사람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 자기만족은 항상 부족함을 느낄 수밖에 없습니다. ‘행복=소유/욕망’이라는 도식을 보십시오. 자기만족은 소유에 해당할 것입니다. 그런데 소유가 크면 클수록 동시에 늘어나는 것이 욕망입니다. 결국 아무리 자기만족을 위해 노력한들 행복은 커지지 않게 됩니다.
하느님께서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이라는 계명을 주셨습니다. 하느님과 이웃을 바라보면 자연스럽게 욕망은 줄어듭니다. 소유가 적어도 행복해질 수 있게 됩니다. 자기만족보다 하느님의 뜻을 먼저 살필 수 있어야 합니다. 그토록 갖고 싶던 행복이 멀리에 있지 않음을 깨달을 수 있게 될 것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평화가 너희와 함께!”라고 말씀하시면서 나타나셨습니다. 제자들은 주님을 뵙고 기뻐했지요. 그런데 그 자리에 토마스 사도가 없었습니다. 다른 제자들과 함께하지 못했던 토마스 사도는 제자들의 주님 부활에 대한 증언을 믿지 못합니다. 자기가 직접 예수님의 손에 있는 못 자국을 보고, 그 못 자국에 손가락을 넣어 보고, 또 그분 옆구리에 자기 손을 넣어 보지 않고서는 결코 믿지 못한다고 합니다. 자기만족만을 이야기하고 있으니 믿을 수 없는 것입니다.
여드레 뒤에 토마스도 함께 있던 자리에 다시 예수님께서 나타나십니다. 그리고 토마스를 향해 “네 손가락을 여기 대 보고 내 손을 보아라. 네 손을 뻗어 내 옆구리에 넣어 보아라. 그리고 의심을 버리고 믿어라.”라고 말씀하십니다.
함께함을 통해 자기의 부족한 믿음을 채울 수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많은 이들이 혼자 생각하고 혼자 판단하면서 자기만족만을 추구합니다. 이로 인해서 더욱더 불신의 세계로 들어갑니다. 이제는 그 세계에서 나와야 할 때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혼자의 삶이 함께 어우러지는 ‘함께’의 삶을 선택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평화가 너희와 함께”라고 말씀하셨지, “평화가 너와 함께”라고 말씀하시지 않으셨습니다.
친절한 말은 마치 봄볕처럼 따사롭다(러시아 속담).
여드레 뒤에 예수님께서 오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