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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부앙-! 부아아앙-!
거친 음색을 토해내며 잘빠진 흑표범이 시동이 걸린채 주인의 스타트 명령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 위에 타고 있는 시후가 눈을 부릅뜬다.
"안타고 뭐해?"
"..내려."
"..뭐?"
"...내가, 앞이다. 내려."
차갑게 굳은 얼굴로 단호히 말하는 화련의 모습에 시후는 얼이 빠질 수 밖에 없었다.
지금.. 그런걸 따질 상황이냐!! 하고 외치고 싶어도.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지 않는 한 그녀는 저 태도를 유지할것이다.
뜨거운 바람에 너울거리는 검은 블랙홀 같은 머리카락을 신경질 적으로 잡아 당겼으면 소원이 없겠다.
시후는 속으로만 가능한 조건을 궁시렁 거렸거고 그녀는 그가 비킨 자리에 당연스레 올라갔다.
부아아아아앙-!!!
화련이 탔다는 것을 아는지 잘빠진 우아한 흑색 오토바이는 그녀와 잘 어울렸다. 반짝이는 검은 머리카락과도.
반갑다는듯 거친 음을 토해내자 시후가 투덜거리며 그녀의 뒤에가 앉았다.
"..씨발!! 출발해!"
그의 말이 스타트가 되어 달구워진 아스팔트를 가로 질렀다.
한참을 드라이브 즐기다 그녀가 오토바이를 세웠다. 처음엔 어디로 가나 싶었는데.. 와본곳은..
"...한강엔 어쩐일이냐."
"그냥, 오고 싶었다."
오고 싶었다는 말에 시후는 고개를 끄덕였다. 오고 싶었다는데 어쩌겠냐? 오면 온거지.
앞서 느릿한 여유로운 발걸음으로 조금씩 해가 지고 있는 풍경을 바라보았다.
카페에 얼마 안 있었다고 생각했는데.. 꽤 많은 시간이 지나갔었나 보다.
곳곳에 보이는 여러 사람들을 피해 화련과 시후는 나란히 걸었다.
언듯 보기엔 다정다감한 두 사람을 산책 나온 시민들은 남여노소, 할것 없이
부러움과 시기의 눈동자로 그들을 바라보지만 정작 당사자들은 묵묵히 걸을 뿐이다.
"...영감이, 뭐래?"
"뻔한 스토리..아니야?"
뭘 묻느냐는 태도에 시후가 머쓱했는지 머리를 글쩍였다. 예상이 안되는 것도 아니였다.
"...거절했냐?"
"..그래."
대답할거라고 생각치 못했는데 나온 뜻밖의 대답에 시후는 심장이 크게 울리는 것을 느꼈다.
가슴 한 구석에서 우러나오는 은은한 기대감.
자신의 고백에 답이 없었던 그녀의 마음을.. 엿볼 수 있는 기회에 가슴이 떨렸다.
그녀는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고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5억 들고 왔더군."
"..응?"
"자존심 상한다. 고작... 5억이라니."
정말 짜증난다는듯 거칠게 머리를 쓰다듬는 그녀의 행동에 시후의 가슴은 실망으로 물들었다.
화련의 머리위로 물음표가 뿅! 하고 쏟는다.
마치 자신의 행동이 왜 그러는듯 묻는 표정에.. 시후는 한숨을 내쉬었다.
도대체 이 생물을 어찌하면 좋을까, 그래도.. 거절해줬다는 그것만으로도 시후는 웃을 수 있었다.
"쿠쿡-, 그래야. 너 답지. 진화련에게 고작 5억이라니."
"......"
"그래, 또 뭐라디?"
"그 아이가 화련양을 향한 마음이 진심이라고 생각하나?"
시후의 발걸음이.. 우뚝 멈춰섰다. 그녀가 서서히 뒤돌아 본다.
싸늘하게 빛나는 검은 눈동자가.. 이상하게 붉게 물든 바다 같았다.
"......"
"......"
"...그..래서, 뭐라고 했어?"
"대답 안했다."
"........그럼, 뭐라고 생각해."
"......"
평상시화 마찬가지로.. 그녀가 바라본다. 비겁하다.
그녀의 눈동자는 자신을 벌거벗기듯 속을 꿰뚤어 보는 기분을 가지게 만든다.
식은 땀이 흘렀다. 주먹쥔 손바닥이 축축했다. 그녀가 시선을 비튼다.
붉게 노을지고 있는 석양. 고요히 흐르는 한강위로 또 다른 석양이 비춰지고 있었다.
하늘은 이미 붉은색과 노란색, 주확색등이 뒤섞여 붉게 물들였고
그 붉은 장막뒤로 청보랗빛 하늘이 모습을 들어내고 있었다.
이제 곧 밤이 오겠지. 그녀가.. 좋아하는 밤이. 그리고 달이 뜰것이다. 달과 밤.
미치도록.. 그녀와 잘 어울리는 조화였다.
"...그것은. 진심이라고 생각했다."
붉은 석양을 바라보고 있는 와중에 귓가에 들려온 바람같은 말에 시후는 차마 대답할 수 없었다.
그녀에게 고백을 받은듯 크게 울리는 심장이 주체가 되지 않아서. 뒷목까지 화끈거리는 듯한 열기에..
시후는 그녀가 뒤돌아 보지 않기를 바랬다. 그런 바램을 들어주지 않고 그녀는 천천히 몸을 틀었다.
이 붉은빛 속에서도 그녀의 머리카락은 덧없이 검게 너울거렸다.
때마침 불어오는 바람에 자연스럽게 흘러오는 바람은..
그녀와 시후를 감쌓다.
바람이 그녀의 존재를 반기듯 검은 머리카락과 함께 너울거리며 그녀의 옷자락을 잡고 늘어진다.
붉은 빛을 받아 붉게 빛나는 초승달 모양의 귀걸이. 천천히 시선을 마주쳐 오는 그녀가 작게 미소짓는다.
그 미소에.. 시후는 숨이 멈춰버린듯 넋을 놓을 수 밖에 없었다.
그녀가.. 자신을 보며 웃었다는 작은 사실에.
시후도 씨익, 하고 마주 웃을 수 밖에 없었다.
".....여기서 세워라."
차가운 한마디에 검은 롤스로이가 매끄럽게 멈춰선다.
앞자석에 앉아 있던 진이 내려 문을 열어주자 그가 내린다.
후덥지근한 열기가 온 몸을 감싸돈다.
뒤따라 내리는 경호원들을 진이 손짓으로 저지 하고는 앞서가는 그를 따라갔다.
"..여기도 오랫만이군요."
검게 물든 하늘아래 검보랗빛 하늘을 담고 있는 한강을 바라보며 진이 그리움이 담긴 미소로 물어왔다.
"여기서.. 만났었죠."
그래, 여기서 만났었다. 그녀와. 수풀사이에 웅크리고 있는 그녀를 향해 손을 뻗었지. 장대비가 내리는 날이였다.
그가 대답하지 않자 진은 그저 피식- 하고 웃을 뿐이였다. 담배를 물자 불을 붙여주고는 한걸음 뒤로 물러났다.
아닌척 하지만, 보인다. 먼 회상에 젖어있음을.
밤하늘에 날리는 와인빛 부드러운 머리카락, 밀빛 피부는 그의 차가움을 더해준다.
고급 슈트로 몸을 감싸고 있는 그를 보면 마치 중세시대의 왕과 같은 위엄과 우아함을 자아낸다.
사소한 행동하나에도 기품이 묻어 있는 그는.
자신을 중심으로 주변을 다른세계로 만들어 버린다. 물과 기름처럼 이질감 마져 느껴져 경외감을 들게 만든다.
그의 검은 눈에는 점점 작아지고 있는 달이 보인다.
이제.. 몇일 후면 달마저 살아져 어둠이 도래할 초하룻밤이 찾아올것이다.
"....돌아가자."
"예."
망설임 없이 발걸음을 때던 순간 열기를 담고 있는 여름바람이 그의 몸에 거세게 부딪힌다.
사막한 냄새를 담고 있는 그 사이에 희미하게 느껴지는.. '달'의 냄새에 자신도 모르게 발걸음을 멈추고 만다.
"...화월님."
도진의 불음에도 들리지 않는것인지 그의 검은 눈동자는 크게 이완을 한채
바람이 불어오는 방향을 향해 천천히 몸을 틀었다.
거짓말 처럼.. 바람이 멈췄다. 눈에 보이는 검은 인형에. 그는 얼굴을 굳힐 뿐이다.
심장이.. 뛰기 시작한다.
「두근!」
거짓말처럼 다시 미친듯이 박동하는 심장은.. 바람속에 담긴 그녀의 향기에 반응하고 있었다.
동양인 누구라면 가지고 있는 검은 머리카락과 검은색 눈동자로 이쪽을 빤히 보고 있는 한 소년.
고등학교 교복을 입은채, 그는 영문도 모르고 그와 눈을 맞대고 있었다. 온 몸의 피가 들끓는다.
분명 처음 보는 사람이 틀림 없는데도 철천지 원수 보는듯한 시선으로 둘은 마주보았다.
마음에 안든다.
그는 저 소년이. 어째서.. 너따위 녀석이, 가질 수 없는, 손에 움켜질 수 없는.. '달'의 향기를.
그녀의 향기를 가지고 있는 것이냐.
".....아시는 분이십니까."
진의 물음에 그의 시선이 진을 향한다.
아는 사람이냐고? 그럴리 없지 않은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뛰고 있는 심장은..
저 소년의 주변에 머물고 있는 '달'의 향기에 반응하는것이다.
"....아니, 가지."
소년을 향해 싸늘한 눈초로 훑어 보는 그 순간까지, 소년도 그의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저 소년도 느끼고 있는 것이다. 필히, 서로가 서로 같은 느낌을 느꼈다는 것을.
'...한번..뿐인 우연은 아닐것 같군.'
한번 뿐인 우연이 아닌 그날이 기다려 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는.. 아니.
하서는 오래간만에 다시 뛰기 시작하는 자신의 심장박동수를 느끼며 시트에 몸을 뉘였다.
***
이상하다. 전화를 걸어도 받지 않는 유. 무슨 일이 생긴 것인가?
한바탕 뒤엎어 놓았으니, HJ그룹에서 뒷조사를 시작했을텐데.. 물론 해커인 '유'에 관해서도.
자기 관리는 철처한 편이니 꼬투리 잡히지는 않겠지만 혹시나 해서 연락할려고 했던 것인데 연락이 되지 않고 있다.
그날.. 정시후가 자신에게 고백했던 이후로.
"...역시 충격이였던건가."
'유'가 자신에게 해오는 행동이 비정상적이라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때로는 그림자, 가족이자 부모님. 형제이자, 친구이자.. 연인. 유와 자신은 그런 존재였다.
유가 느끼는 기분은, 어미의 애정이 딴곳으로 돌아가 심통난 아이의 기분이겠지.
만약 유에게 '연인'이 생긴다면.. 자신도 그런 기분이 들것만 같으니깐.
간단한 사항과 함께 HJ그룹을 주시해 달라는 내용을 첨부해서 문자를 보냈다. 조만간 연락이 닿겠지...
화련은 일어나 옷장안에서 몇가지 없는 옷을 챙겨 입었다. 깔끔하게 청바지와 T를 입은 그녀.
평범하기 짝이 없는 모습이지만 그것조차 누가 입느냐에 따라 이런 고고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어디가냐?"
"령이 불렀다."
"...형이?"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자 시후가 TV보던 시선을 돌려 그녀를 바라본다.
신발을 신고 있는 그녀의 검은 폭포수 같은 머리카락이 신발장 바닥을 쓸려도 그녀는 신경쓰지 않고 있다.
"진화련, 잠시만."
화련이 의아하기도 전에 방에 들어가더니 끈같은 것을 가져오는 그.
그리고 서있는 그녀의 뒤로 돌아가 머리를 잡는다.
가느다란 무명실 같은 부드러운 촉감이 손끝을 타고 들여오자 시후는 저도 모르게 긴장 됬다.
자신과 같은 샤워코롱의 냄새가 코끝을 간지럽히자 훕- 하고 숨을 들이마신채 손을 어설프게 움직였다.
한번도 해본적이 없는 그로써는 꽤 오랜 시간을 통해 몇번의 시행착오를 걸쳐 포니테일로 묶을 수 있었다.
"다 됐다. 이제야 좀 시원해 보이네."
애써 들어난 하얀 목덜미로 가는 시선을 막은 그가 붉어진 얼굴로 덤덤히 말했다.
화련의 눈동자가 자신을 향한다.
말할려는듯 우물쭈물 붉은 입술을 달싹 거리며 올려다 보는 포즈가.. 너무나 귀여워..
순식간에 토마토가 되어버린 얼굴을 가리기 위해 저도 모르게 그녀를 껴안고 만다.
들어난 새하얀 살내음이 너무나 선정적이다. 그녀의 향기가 베어나와 그를 감쌓다.
"...조, 조심히.. 갔다 와라.."
"......"
"...이, 일찍 들어오..고, 수, 술 마시지마!"
"...그래."
"..어, 어? 그, 그래야지."
어설픈 자신의 엄마 잔소리 같은 말에 화련은 진지하게 듣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의 등을 가로지를 단단한 두 팔에 안겨 가슴에 얼굴을 묻게된 그녀는 전에처럼 들려오는 강열한 심장소리에..
왠지 안심이 되는 느낌은 지울 수가 없었다. 왠지 모르게.. 그의 심장소리는 자신을 위로해 준다.
그것이 자신의 착각일 지라도, 자신은 분명 그의 심장소리에 위안받고 있었다.
"...다녀올께."
그의 집에 와서 처음으로 하는 인사. 시후의 표정이 멍- 해진다.
그 표정이 왠지 웃겨서 피식- 하고 웃고는 문을 닫고 나갔다.
화련이 나간지 한참이 지나도 움직일줄 몰랐던 시후가 꿈틀- 거린다.
"...읏-."
한쪽손으로 눈아래를 가려버린 시후는, 귀까지 빨개져 있었다. 코피가.. 흐를것만 같은 아찔한 항련.
'...그런 웃음은 반칙이야.'
못말리겠다고 웃는 그녀는.. 미치도록 귀여웠다.
S대 앞, 강의가 끝났는지 삼삼오오 모여 놀러가던 대학생들이 가던 발걸음을 멈추거나
혹은 곁눈질을 하며 한곳을 바라본다.
교문에 기대어 있는 빛마저 빨려들것만 같은 블랙홀을 닮은 검은 머리를 가지고 있는 아름다운 소녀.
포니테일로 묶여 가는 이목구비와 하얀 목덜미가 훤히 들어나 햇빛 아래에서 반짝이고 있었다.
내려깐 길다란 속눈썹 아래로 잔잔히 흐르고 있는 검은 바다.
오똑히 솓은 콧날 아래로 붉은 입술이 꾹- 닫힌채 허공을 응시하고 있었다.
스스로가 주변을 신경쓰지 않는듯, 가만히 있었도 무더운 폭염의 날씨에도 남들 흘리는
땀방울 하나 흘리지 않고 있는 그녀는..
마치 더위에 영향을 받지 않는듯 고고함을 내뿜으며 조용히 서 있을 뿐이였다.
간혹 작은 움직임에 흔들리는 초승달 모양의 은빛 귀걸이까지, 모든것이 신비로웠다.
다다다다다닥──!!
멍하니 허공을 응시하고 있던 화련의 예민한 청각이 다금하게 움직이는 발걸음을 잡아 냈다.
전부다 걷고 있는 이곳에서 저런 다급한 발자국을 낼 법한 사람은 화련이 예상하기에 한사람뿐이였다.
예전과 변함없는 듯한 광경에 입술이 저도 모르게 호선을 그리자 어디선가 감탄하는듯,
급하게 숨을 들이키는 소리가 들려온듯 싶지만 당사자는 무시.
점점 다가오는 발걸음 소리를 들으며 살며시 기대었던 몸을 때었다.
그녀의 행동에 햇살을 머금은 비단실 같은 검은 머리가 흔들린다.
"..어? 유령 선배! 가시는 거예요?!"
"밥사주세요, 선배!"
"하아-, 하아, 나중에."
"..어라? 령! 너 아까 나가지 않았어?!"
"신경꺼."
잠시 달려오는 소리가 멈췄다. 학교 다닐떄도 한 인기 끌었던 그의 경력은 여기서도 변하지 않는듯.
무심한 눈동자로 주변을 쓸어 보자 얼굴을 붉히며 꺅-꺄- 거리고 있는 여대생들이 보인다.
"헉..헉! 비켜봐, 나 바쁜몸이다."
"바쁜게 문제가 아니야! 지금 교문앞에서 끝내주는 미인이 서 있어!"
"내말이! 완전 끝내줘! 아주.. 뻑가-!
건들 수 없는 포스를 풍기며 30분 내내 같은자리에 있는거 보니 누구를 기다리고 있던 모양인데?"
"완전 복에 겨운 놈이지. 저런 얼짱 미인을 기다리게해? 나 같으면 신주단지 모시듯 모셨을텐데."
"그러게 말이다. 완전 부럽다. 부러워."
왠만한 사람이라면 듣기 힘든 소리인데도 화련의 귀에는 똑똑히 들렸다.
분명.. 입이 또 헤벌쭉- 해져서 고개를 끄덕이고 있겠지.
화련은 남몰래 한숨을 쉬면서 몸을 틀었다.
아무래도 저 시콤(시스터콤플렉스)는 모른척 하면서 저 이야기를 끝까지 듣고 있을 위인이다.
화련이 몸을 움직이자 힐끔힐끔 쳐다보던 시선들이 이젠 대놓고 쳐다본다.
단순한 걷는것 뿐인데도.. 그 존재만으로 주변을 압도해 버렸다.
단지 걷는것 뿐인데도 넋을 놓을 정도로 시선을 사로잡아 버리는 매력.
"...야, 야.."
"왜!"
"....이쪽으로 오고 있어, 오~ 할렐루야."
"뭔 헛..."
령을 둘러싼 사내들 중 한사람이 화련의 존재를 알아 차리고 멍- 한 시선으로 친구에게 존재를 알렸다.
그의 말에 뒤돌아서서 너울거리는 검디 검은 머릿결에 마치 보호받듯 당당하게 이쪽으로 걸어오고 있는
화재의 미녀에게 시선을 빼앗긴채 멍- 하니 서 있을 수 밖에 없었다.
한걸음, 두걸음 다가 올수록 거세게 뛰는 심장에 사내들의 얼굴은 붉어졌고
그와 반대로 령의 얼굴엔 굵직한 땀방울이 맺혀 있었다.
어딘가 모르게 향긋한 냄새를 풍기고 온 그녀는 사내들 앞에 섰다.
주변을 사로잡은 매력적인 존재 앞에서 사내는 얼굴을 시뻘개 진채 황홀하다는듯 쳐다보고 있었다.
화련이 가벼이 머리를 쓸어 넘기자 어디선가 쓰러지는 소리가 들려오는듯 한 환청이 들렸다.
하얗고 가는 손가락 사이에 몇가닥이 얽혀 있었다.
그 손을 보던 화련이 피식- 웃는다. 사람들이 미처 탄성을 내뺃기도 전에..
휘웅-!!! 타악───!!!
믿기 힘든 눈앞의 광경. 눈깜짝할 새에 이뤄진 일이였다.
검디 검은 머리카락이 잠시 휘날리듯 싶더니 초승달 귀걸이가 파르르 떨렸다.
쭉- 뻗어져 있는 매끈한 다리.
그리고 전공 서적으로 그녀의 발차기를 막은 S대 쿨가이로 한 인기 얻고 게시는 령은 충격에 밀려 있는 상태였다.
헉-! 하고 주변의 상황을 인식한 일동들이 입을 떡- 벌린채
지금 일어난 상황을 믿을 수 없다는 경악어린 눈동자로 바라보았다.
저.. 저..S대 경영학과 유령이 누구던가! 고교 시절부터 화려한 소문이 대학생이 된 지금 거의 전설수준이며
좀(?) 놀았다는 소문과 달리 완벽한 자기 관리에 성적은 언제나 톱!
준수한 외모와 달리 차가운 이미지를 굳건하게 지키고 있으며
남여 노소 할것 없이 그는 경외이자 동경의 대상이였다. 그런.. 그런... 유령에게! 저 소녀는..?!!!
"...화, 화련아.."
방금전 일도 믿기지 않은 것인데.
더더욱 놀라운것은 유령의 애교 섞인 목소리 전공서적 뒤로 빼꼼히 내민 얼굴은
비 맞은 처량한 강아지만 같아서 꼬옥- 껴안아 주고 싶은 충동을 느낀 여대생들이 얼굴을 붉혔다.
"...죽고 싶어, 령."
그에 마찬가지로 무더운 주변의 온도를 단번에 낮춰버리는 싸늘한 미성의 주인공.
"...그, 그게.. 교수님에게 잡히는 바람에."
"..닥쳐."
"응."
화련이 신경질 적으로 머리를 쓸어 넘겼다.
자신의 눈치를 보는 유령을 알고 있었지만 이런 땡볕에서 기다리는걸
질색으로 알고 있는 그녀인 만큼, 짜증은 짜증대로 났다. 눈치를 보다가 슬그머니 자신 옆에 서서는
어깨에 매고 있는 가방 안에 전공 서적을 넣고는 모자를 꺼내어 그녀의 머리위에 조심스럽게 씌여준다.
화련이 그를 바라보는것을 알고 있는지 령이 수줍은 미소를 지은채..
쪽──!
"...꺄악-!!!"
"어머어머!!!"
난리도 이런 날리가 없다. 어디선가 넘어가는 소리와 함께 까아-가 남발되는 이 상황.
재빠르게 그녀의 볼에 입을 맞추고 바보같은 우헤헤헤~ 표정을 짓고 있는 령.
화련이 한심하다는듯 바라본 뒤 소란을 뒤로한채 S대를 벗어난다.
"..어, 어? 화련아아아아-!! 같이가아아아아아-!!!"
어디선가.. 또 다시 여자들이 쓰러지는 소리가 들려오는 것은 환청일려나.
"많이 기다렸어?"
"별로."
"몇분?"
"30분."
"미안."
"그래."
"모자 시원하지?"
"그래."
따라온 령이 화련 옆에 서서 끊임 없이 재잘 거렸다.
비록 단답형 대답이였지만 그것만으로도 령은 화사한 미소를 지의며 고개를 끄덕인다.
"...오늘 왜 불렀어."
문득 정처 없이 길가던 화련이 물었다.
주변에 여자들이 힐끔- 거리며 그를 바라본채 얼굴을 붉히며 자신을 부러워하는 눈초리다.
그만큼, 령은 매력있는 존재였다.
화련의 물음에 령이 그녀의 하얀 볼을 장난스레 툭툭 치고는 입꼬리를 끌어 올린다.
"사랑하는 동생님과 밥한끼 먹을까 해서."
햇살같이 화사한 웃음은, 닿을 수 없을 태양처럼 멀게만 느껴진다.
"...더워?"
무표정한 그녀의 상태를 령은 금방 알아 차린다.
예전부터 무표정한 얼굴로 속내를 알 수 없는 동생이지만 가족에게는 예외였다.
사사로운 하나하나의 동작으로 자신의 상태를 금방 알린다. 특히 여름에 약한 그녀는.. 더위에 약하다.
"..조금."
오늘 최고 기온이 40도 까지 올라간다는 뉴스를 기억해 냈다.
그런날은.. 화련은 외출을 안 할정도니 이런 날을 잡은 자신이 미안해 졌다.
어디 들어가 햇볕을 피할 곳이 있나 살폈다.
예약해놓은 레스토랑까진 거리가 있으니..
"아, 화련아. 아이스커피 마실래?"
령의 질문에 화련이 스타벅스로 시선을 옮겼다. 가게 내에 자리는 모두 앉아 여유를 즐기고 있었다.
더위를 피하기 위해 커피를 들고 가며 마시는 사람들도 꽤 많이 보였다.
"그럼 갔다 올께, 여기서 기다려."
대답대신 근처 그늘진 밴츠에 앉자 령이 화사히 웃어준뒤 얼른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줄을 서 있는 령이 창문 넘어로 앉아 있는 화련을 발견하고 폴삭- 폴삭- 손을 흔든다.
"...정신 사나워, 령."
작은 중얼거림을 알아 들었는지 령이 손을 내리고 방긋- 웃는다.
그 모습이 또 귀여워서 화련도 살폿이 미소 짓고 말았다.
잠시 시선을 돌려 나뭇잎 사이로 눈부신 햇살을 바라보았다.
찌푸려진 눈가 사이로 내려오는 햇살은.. 눈 부셨다. 더웠다. 내색은 안했지만..
요즘 잦은 더위로 인해 기력이 딸린다는 것을 느끼고 있다는 중일까나..
보통 여름이 되면 활동은 오히려 저조해졌다.
한쪽 다리를 밴츠 위로 올려 끌어 안고 머리카락을 조금 쥐고 입가를 살살 간지럽 혔다.
아까부터 거슬렸는데...
"...무슨 용건 이지?"
그녀의 싸늘한 목소리에 뒤로 다가오던 인형이 몸을 움찔 거리는게 잡혔다.
"다시 묻지, 무슨 용건이냐."
"...정진고의 진화련, 맞으십니까?"
"......"
"......조용히 따라와 주실 수 있으십니까?"
그의 말에 화련의 바다가 서서히 얼어 붙는다. 짜증나는 일이지만 어쩔 수 없다.
지금 이 곳을 주시하고 있는 자들은 한 둘이 아니다. 다만.. 그 기운이 어설픈 것으로 봐서는 프로는 아닌듯.
'월하'가 아니라는 사실은 다행이지만.. 분명 령의 뒷쪽으로 줄을 서 있는 사내는 화련과 눈이 마주쳤다.
"...한패인가."
"......"
주문을 하고 있는 령의 뒷모습을 눈동자에 담은 화련이 조용히 몸을 일으켜 정체모를 자들을 따라갔다.
"...련아..?"
양손에 이슬이 맺힌 아이스커피를 들고 있던 령은
그녀 대신 그가 씌워준 모자만 놓여있는 밴츠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시후는 초조하게 시계를 바라보았다. 그녀가 나간지 2시간이 채 지나지 않았지만.. 왜이렇게 초조한 것일까?
왜 이렇게 못견디게 불안하지..? 왜 이렇게.. 미치도록 보고 싶은 것이냐 말이다.
"...빌어먹을, 정시후 너도 정말 중증이다."
그래, 그녀는 마약이였다.
거대한 망망대해에 자신이 담겨져 있음을 확인 했을때 어느 순간에도 느껴보지 못한.. 희열감.
그 감각은 잊을래야 잊을 수가 없는.. 강한 중독을 가진 바다의 마력.
"후-, 형이랑 있을 텐데.. 무슨 걱정이야."
맞아, 령이 형과 있을 것이다. 그러니깐.. 진정하란 말이다.
'...다녀올께.' 그 무뚝뚝한 녀석이... 다녀올께, 라고 했단 말이다. 다녀온다고.. 다녀온다고,
다시 돌아온다고 했단 말이다. 이제야.. 이제야 제대로 자기 감정을 보이는 녀석인데..
"...후-, 미치겠네."
쓸대 없는 생각이라며 고개를 흔들고는 시후는 커피잔을 들어 올렸다.
쨍그랑-!!!
"...아..."
손잡이가 떨어진 커피잔은..
뜨거운 커피를 시후의 허벅지에 쏟아 붓고는 바닥에 추락해 커다란 파편으로 나뉘어 졌다.
허벅지가 뜨거운 고통에 비명을 질렀지만 시후는 멍-하니 깨어진 잔 손잡이를 바라보았다.
이.. 컵, 하얀 배경에 은은한 푸른 빛이 들어간 이 컵은, 그녀가.. 즐겨 사용하던 컵이다.
언제나 이 자리에 앉아, 창문 열어 둔채 커튼이 만들어 내는 하얀 물결이 나폴거리는 거실에서
그녀는 커피향을 즐긴다. 때론 잔잔한 미소를 짓고 상념에 감겨 있는 그녀는.. 마치 한폭의 그림과도 같아서
자신 마저 넋일 잃고 바라보는 푸른 눈동자는.. 눈부시게 아름다웠었다.
─한 걸음 뒤엔 항상 내가 있었는데..
그녀와 같은.. 벨소리. 이상하게.. 어울리지 않던 그 벨소리는
─그대 영원히 내 모습 볼 수 없나요..
그녀의 푸른 슬픔과 잘 어울렸다면.. 그것은 모순일까.
─나를 바라보면 내게 손짓하면 언제나 사랑할텐데..
"...아, 여, 여보세요!! 진화련?!!"
뿌연 어둠이 잠식한 시후이 흐릿한 눈동자가 다시 반짝이기 시작했다.
상대를 확인할 겨를 도 없이 받아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수화기 안쪽에서 들리는 거친 숨소리.
"여보세요!! 진화련!!"
[..하아-, 하아.. 시후야..]
"...령..형..?"
[..우리, 우리... 화련이.. 거기 있니...?]
스치는 검은 불안속에서 그녀를 찾고 있는 유령의 목소리는 물기를 머금고 있었다.
[..우리.. 우리, 이쁜.. 예쁜, 화련이.. 없어..]
"..형, 그게 무슨 소리야!!"
[어, 어떻하지..? 시후야..? 화, 화련이.. 그때처럼... 그냥.. 그렇게....]
"......"
[..이제야.. 이제야.. 만났는데.. 이제야.. 우리 이쁜... 동생, 동생이라고... 남들에게 말 할 수 있는데...]
물기가 섞인 목소리는 두려움에 젖어 있었다. 시후는 아랫입술을 꽉- 깨물었다.
그녀가.. 아무리 무심해도, 시후는 알고 있었다. 적어도 '가족'인 유령에게는 이렇게 갑자기 사라질리 없다.
분명히.. 령이 불렀다고 나갔다 온다고 말했던 그녀가.
다녀오겠다고 말했던 그녀가.
노을 빛에서 웃던 그녀가.
"...아..."
섬광처럼 스치는 하나의 기억.
'시후야, 조심해라. 신일공고가 움직임이 수상해,
화련이를 데리고 있는 이상 너는 지금보다 두배는 위험에 노출된거야.'
그리고 검은 불안속에서 빛나는 회색빛의 확신. 불안한.. 확신.
시후의 검은 눈동자가 앞을 가름하기 힘들정도로 검게 변했다. 위험하게 반짝이는 눈동자.
"형, 진정해. 연락해. 서울 연합에게, 그리고.. 찾아."
대답은 듣지 않고 끊고는 시후는 강준에게 연락했다.
"나다, 애들 풀어. 진화련이 ....실종됐다."
주저리) 날씨가 추워지고 있습니다..-_-, 싫어요.. 흑-!! 추운건...
벌써 전기 장판 꺼냈다고 혼났습니다... 후-, 세상 외이리 사막한지....(먼산-)
첫댓글 선플!
요즘 날씨가 진짜 추워요..ㅜㅜ 몇일전 산속에서 수련회를 갔다가 동사 하는 줄...ㄷㄷ 화련이를 무사히 해 놔야 살수 있을텐데.. .뭐.. 그전에 화련이 한테 먼저 죽겠지만...ㅋㅋ담편 기대하고 있을께요~><
네, 얼어 죽을 것 같아요-_- 워낙 추위를 잘타서.. 친구들이 화장실 간다고 해도 무시하는 1人 이랍니다. 아주 오래 살것 같아요. 친구들이 뒤에서 나쁜 년이라며 욕을..;; 다음편도 즐겁게 읽어 주세요~
혹시... 시후네아빠가 움직이는 건가여??
쿠, 쿨럭! 시후네 아빠라..-_-, 실은 시후네 아부지는 그리 큰 비중을 차지 하고 있지 않는 캐릭터 라서.. 그저 엑스트라?!
잼있어 담편이 기대되
키노모토 사쿠님 매번 리플 감사드려요ㅜㅜ, 내일만 학교가면 주 5일제 예요! 모두 힘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