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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엉신이는 나와 자신은 한 몸이라면서 내게 포기하지 말라고 한다. 그리고 난 슬픈 생각을 하고 있는데 어느새 내 오른 쪽
에 서있게 된 엉신이는 앞에 있는 조직의 두목을 눈에 힘을 주고 쳐다본다. 의비는 언제부터인지 조직의 두목이 있는 쪽으로 몸
을 돌려서 두목의 옆에 있다. 그리고 여전히 빛애는 멀리서 의비에게 총을 겨누고 두목은 나를 죽이기 위해서 내게 총을 겨눈다.
그런 두목의 행동에 엉신이는 나를 지키기 위해서 두목에게 똑같이 총을 겨눈다. 마지막으로 아까까지만 해도 두목에게 총을 겨
누던 의비는 이번에는 총을 엉신이에게 겨눈다. 복잡하게 얽혀버린 관계. 그리고 의비의 행동에 깜짝 놀라서 의비를 계속 바라
보고 있는데 의비는 애써 내 시선을 무시하고 엉신이만을 바라본다. 긴장감이 흐르는 가운데 동시에 방아쇠를 당기는 빛애와 엉
신이, 그리고 조직의 두목과 의비는 총을 잡은 손에 힘을 준다. 무섭다. 지켜보는 나도 무서운데 총을 잡고 쏘려는 당사자들은 얼
마나 무서울까.
슬프다. 나 때문에 얽혀버린 이들에게 미안해서……나 때문에 다쳐버린 이들에게 미안해서……너무 괴롭다. 죽을 것만 같다.
심장이 아픈 것은 이대로 내가 죽기라도 하면은 애타게 엉신이를 바라보고 좋아하던 마음을 엉신이에게 말할 수가 없게 되니까.
엉신이는 내 마음을 모르게 되는 거니까 가슴이 너무 아프다. 심장이 아파서 죽을 것만 같다. 내게 총을 겨눈 두목의 손이 방아쇠
를 거의 다 당겼을 쯤에 한 번 더 생각에 잠긴다. 엉신아, 비록 나 죽지만 그래도 너를 만나면서 아주 잠깐 이였지만 두근거렸던
심장하고 사랑이라는 감정을 알려줘서 고마워. 내게 나타나줘서 고마워. 기분이 나쁜 건 포기하려고 해도 포기를 할 수가 없다
는 거야. 이제는 이런 감정 없애자고 몇 번을 다짐해도 내 마음대로 될 수가 없다는 거야. 그건 바로 내가 사랑하는 게 너라는 거
바로 이거야.
그리고 동시에 들려오는 커다란 총의 소리들. 탕-탕-탕- 총알이 거세게……아주 빠르게 내 쪽으로 날아왔고 눈을 감고 눈물을
흘리고 있는데 어디선가 총알에 맞는 소리가 들려서 깜짝 놀라 눈을 떴다. 그리고 내가 고개를 들었을 때에는 내 몸을 자신의 몸
으로 가려버린 엉신이의 모습이 보인다. 그리고 피를 흘리는 엉신이다.
"엉신, 엉신아!"
"윽……."
엉신이는 세 개의 총알을 맞고 많은 피를 흘리면서 괴로워하고 있다. 그리고 점점 주저앉더니 가슴을 움켜쥔다.
"엉신아, 엉신아! 바보야! 왜! 왜……대신 맞은 거야? 흐. 왜 그랬어. 난……나는……."
눈물이 흘러서 말을 제대로 못하겠다. 무슨 말이라도 해야 하는데 말이 제대로 나오지가 않는다.
그렇게 얼굴은 눈물범벅이 되고 말도 못하고 입만 뻐끔거리고 있는데 엉신이가 힘겹게 눈을 뜨면서 말을 한다.
"……모르겠는데……하. 진짜……모르는데."
말하지 마. 아프잖아. 아프니까 말하지 마.
"그냥……지켜주고……싶……더라……."
"흐. 말하지 마. 더 이상 말하지 마! 엉신아, 미안해. 진짜 미안해. 나 때문에……하."
가슴을 꽈악 움켜쥐고 있는 엉신이의 손에다가 내 손을 올려놨다.
"후. 너 때문이……아냐. 내가 좋아……지금……행복해."
힘겹게 말을 하는 엉신이를 보니 눈물이 흐른다. 나 때문이 아니라고 말하는 엉신이를 보니 심장이 조여 온다.
죽으면서도 행복하다고 말하는 엉신이를 보니 가슴이 아프다. 정말 미치도록 눈물이 흐르는데 뒤에서 조직의
두목이 자신의 동료들에게 크게 말을 한다.
"경찰이 올지도 모른다! 빨리 저 여자를 데리고 여기를 빠져나가자!"
"네!"
그렇게 두목의 명령에 내 쪽으로 다가오는 수많은 조폭들은 여기에 남아있는 모든 사람들을
놔두고 오로지 나만 데리고 빠져나가려고 한다.
안 돼. 난 갈 수가 없어. 엉신이를 놔두고 갈 수가 없어. 차라리 여기서 죽고 말지. 끌려가서 죽기는 더더욱 싫어.
제발. 아직 하지 못한 말이 많이 남아있는데…….
나의 양팔을 잡고 있는 조폭들을 떼어놓기 위해서 다리를 흔들고 소리를 지르는 짓을 하는데 내가 그럴 때마다
욕만 하고 여전히 나를 세게 잡아서 공장을 빠져 나가는 조폭들이다.
"싫어. 놔. 제발 놔 줘. 죽을게. 고분고분하게 죽을 테니까. 제발! 제발 놔 줘. 나 말하고 싶어. 말하고 싶다고!"
결국 공장을 빠져나왔다. 공장 문이 또 다른 조폭들에 의해서 닫혀 지고 엉신이의 모습 또한 시야에서 사라진다.
진짜 나 엉신이에게 말하고 싶었어. 말하려고 했어. 내 마음을 표현하고 싶었어. 표현이 안 된다면 말이라도 하고 싶었어.
"고백하고 싶었다고! 정말 사랑한다고……미치도록 사랑한다고! 병신 같은 새끼가 병신을 좋아한다 이거야!
흐. 죽지 마. 제발. 하."
여전히 나를 무시하고 욕만 하면서 뛰어가는 조폭들은 나를 차의 트렁크 속에 가둬두고 차를 운행한다.
미안해. 정말 미안해. 진짜 바보 같다. 가까이 있는데 잡지도 못하고……. 진짜 병신 같다. 내가 너를 지킬 걸.
난 또 도움만 받고. 진짜……미쳤어. 이런 내가 너라는 사람을 사랑하게 되어버려서……
"사랑해. 엉신아. 정말 미치도록 사랑하니까. 내 목숨 바꿀 만큼 사랑하니까 제발……부탁이니까 살아줘. 살아있어야 해."
깜깜한 어둠 속에서 눈물을 흘리면서 조폭 놈들에게 밧줄로 두 손이 묶여버려 움직이지도 못한다.
이런 내 모습을 보고 있자니 비참해지는 기분과 아무것도 할 수가 없어서 속상한 마음이 너무 많이 든다.
아무것도 들을 수 없는 차의 트렁크 속은 그저 내게 불안감과 두려움 그리고 공허감을 줄 뿐이다.
"그런데 있지……. 엉신이 넌 살아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데 왜 정작 내 자신한테는 죽기를 바라는 걸까……?"
한심하다. 비참하다. 허무하다. 이 세 가지의 문장이 내 머릿속에 스쳐 지나간다. 그렇게 서서히 눈을 감아버린
나는 시간이 얼마 쯤 지나버린 걸까. 두 눈을 떴을 때는 트렁크 속이 아닌 고급스러운 소파 위에 누워있었다.
"일어난 건가? 애끼 아가씨. 아니 길거리의 쓰레기야……."
허리를 일으켜 세워서 내게 쓰레기라고 말을 하는 빼빼로 같이 마르고 얼굴에 뼈가 확연히 보이는 해골같이 생긴 남자를 바라보았다.
잔인하고 무섭게 썩은 미소를 날리는 그 남자는 내게 천천히 다가오더니 내 턱을 잡고 올린다.
더러워.
"하하하하. 천하의 새씨 가족이 멸망을 하는군. 너희 어미를 비롯해서 이제는 딸까지니 새씨 기분이 나쁘겠어. 하하하하."
나쁘다는 것은 알지만 꼭 저 입을 꿰매버리고 싶어.
"그럼 이제 새씨의 마지막 쓰레기를 어떻게 처리해줄까?"
징그럽게 입 꼬리를 살짝 올리더니 주위를 둘러보다가 소파 위에 놓여 진 권총 하나를 드는 남자다.
그리고 그 총을 내 머리에다가 겨누는 남자는 또 한 번 더 썩은 미소를 날린다.
"살려달라고 애원한다면 살려는 주지."
하지만 아무 반응을 보이지 않는 내 눈빛을 본 남자는 기분이 나빠진 건지 점점 인상을 쓰기 시작한다.
"빨리 말하라고. 안 그러면 진짜 쏴 죽인다. 어서 말해. 어서 말하란 말이야!"
생명을 가지고 노는 남자는 재수 없어.
"쏴."
"뭐라고?"
"쏴."
"다시 한 번 더……. 내 귀가 이상해진 것 같다."
"쏴."
"하하하하. 다시 한 번 더! 한 번 더! 더 말하란 말이다!"
두 눈을 부릅뜨고 나를 잡아먹을 듯이 노려보는 남자는 권총을 내려놓고 내게 계속 한 번 더 말을
하라면서 내 목을 조르기 시작한다.
"한 번 더 말하라고 이 쓰레기야!"
정말로 이제는 정신이 혼미해져간다.
"마지막……은 다르게."
엉신이를 사랑하는 유일한 마음으로……순수한 마음으로 지을래. 평소와는 다른 모습으로……그렇게 떠날래.
"씨발! 말하라고! 한 번 더 말하란 말이야!"
여전히 계속 내 목을 잡고 조르는 남자의 손에는 힘의 강도가 높아지기 시작했고 난 죽음을 더욱 더 가까이 앞두고 있게 되었다.
눈알이 튀어나올 듯이 눈을 크게 뜬 남자가 나를 죽일 것처럼 보였는지 남자에게로 달려드는 조직의 두목이 흐릿하게 보인다.
조직의 두목에 의해서 덕분에 남자의 손아귀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된 난 그만 지쳐버려서 쓰러지고 만다. 그리고 서서히 감기는 눈.
엉신아, 이 눈을 감으면 나 이 세상 사람이 아니면 어떡하지……? 좋아해야하는 건지……슬퍼해야하는 건지……잘 모르겠어.
그저 두렵고 무서운 건 네가 나처럼 죽을까봐. 살아있는 모습을 보고 싶을 뿐이야. 그래서 너의 품에 포근히 안기고 싶을 뿐이야.
욕심이 너무 지나친 걸까……?
그렇게 혼자서 쓸쓸히 눈을 감아버린다. 주변의 어두운 색채만이 나를 반기는 듯 했고 그 속에 내가 있는 기분이 드는 게
왠지 모르는 이상한 기분이 든다. 그리고 어째서 어두운 길거리를 해매고 있는 내 모습이 내게서 보이는 건지 모르겠다.
꿈을 꾸고 있는 건가……?
혼자서 난처한 표정을 짓고 있는 내게로 난 가까이 다가가면서 손을 뻗었다.
그러자 갑자기 표정이 확 바뀌면서 얼굴도 무섭게 일그러지더니 다른 사람으로 변하는 내 분신. 내 모습이다.
"뭐, 뭐야."
내 분신은 그만 세상에서 하나뿐인 나의 엄마로 변신을 해버렸고 난 뻗고 있던 손을 감추고 뒤로 주춤거릴 뿐이다.
"애끼야, 내 딸 애끼야. 엄마의 손을 잡거라. 엄마와 함께 지독한 이곳을 떠나자구나. 이리 온……."
그렇게 내게 손을 건네는 엄마의 손은 점점 크게 변하더니 나를 잡아먹을 것처럼 날카롭게 변하기 시작한다.
동시에 그 손과 함께 살인을 저지를 미소를 짓는 엄마는 내게 천천히 다가온다.
"애끼야. 이리 온. 너도 이곳이 싫은 게 아니었니? 이리로 와. 엄마가 안아줄게."
싫어. 이상하게 싫은 기분이 든다. 매일같이 그리워하던 사람이 내 눈앞에 나타났는데도.
매일같이 좋아하는 사람이 내 눈앞에 나타났는데도 기분이 묘한 게 너무 싫다.
"어서. 빨리. 엄마에게로 오라고. 뒤로 발뺌하지 말고. 얼른 오라고. 오란 말이야."
약간은 협박처럼 들려오는 엄마의 목소리가 내 귓가를 울린다. 아니면 정말로 협박인 걸지도 모른다.
마치 엄마가 아니라 다른 누군가가 엄마의 몸을 빌려서 엄마행세를 하는 그런 기분이 드는 게 매우 불쾌하다.
"자, 엄마의 손을 잡거라. 우리 애끼."
"내가 잡을 것 같아?"
엄마의 탈을 쓰고 있는 사악한 누군가에게 홀리고 싶은 마음이 없어서 반항을 했다.
내가 반항을 하자마자 갑자기 표정이 확 구겨지더니 다시 선하게 변하는 그 누군가는 아까처럼 또 다시 엄마행세를 한다.
"반항은 못 쓰는 거야. 우리 애끼는 엄마한테 착한 딸 아니었니?"
"아직 말길을 알아듣지 못한 것 같은데 제발 좀 꺼. 져. 줄. 래? 넌 엄마가 아니라 사악한 악마잖아."
확실하다는 듯이 말을 한다면 그 누군가는 정체를 밝히겠지 라는 생각을 하고 싸늘하게 대답을 했다.
하지만 정작 내게로 돌아오는 것은 슬픈 표정을 짓고 있는 엄마의 얼굴이다. 엄마가 우는 모습만큼은
어렸을 때부터 정말로 보기가 싫었는데 그만 보고 말았다. 가슴이 무너지는 기분을 또 한 번 느낀다.
"그래. 우리 애끼가 엄마를 그렇게 싫어한다니 어쩔 수가 없구나. 잘 가거라. 이 지독한 세상으로."
그리고 엄마는 연기처럼 사라지고 난 그저 엄마행세를 하는 누군가가 이렇게까지 연기를 잘 할 거라고는
생각을 못했는데 너무 잘해서 감탄을 했다.
"처음에는 속았는데 이제야 확실해졌어. 엄마는 내가 어렸을 때부터 웃지를 않았어. 웃음이 없으신 분이였거든……
근데 넌 웃고 있었어. 그래서 확실해진 거야. 내게 속일 것을 속여야지……."
그렇게 나 또한 그 어두운 공간에서 서서히 사라져갔고 밝은 빛이 보이기 시작한다.
"일어났나?"
"……?"
죽은 줄만 알았는데 이렇게 다시 살아나게 되어서 왠지 기쁘면서도 허무하고 좋지도 않은 기분이 든다.
또한 내가 눈을 감기 직전에 조직의 두목이 나를 도와주었던 이유 때문인가 내가 정말 싫어하는 두목이 내 눈앞에 있다.
"그렇게 눈을 감으면 섭섭하지. 아직 할 일이 많은……"
"꺼져."
엉신이에게 총을 쏜 놈의 목소리는 듣고 싶지 않아.
"이런, 날카로운데?"
"꺼져."
머릿속에 엉신이가 총에 맞는 것 밖에는 생각이 나지를 않아.
"이래도 날카로울까?"
"꺼져. 꺼지라고. 꺼져!"
놈의 말을 듣고 싶지가 않아서 인정사정 보지도 않고 귀를 막고 꺼지라고 연신 소리를 질러댔다.
그리고 약간 당황하는 놈은 갑자기 내게 얼굴을 들이대더니 손으로 귀를 막고 있던 내 손을 내려놓고 속삭인다.
"시끄럽게……. 소리를 더 지르면 입을 막아버리는 수가 있어. 나 상당히 쪽팔림 받는 타입이거든."
서서히 얼굴을 내게서 멀리 떨어뜨리는 놈은 내게 조폭 두 명을 남겨놓고 나머지를 데리고 밖으로 나간다.
순간 놈의 행동에 얼굴이 화끈거린 나는 그런 내 모습이 한심해서 이불에 얼굴을 묻을 뿐이다.
새애끼, 너 방금 위험했어. 아니, 위험했지. 어떻게……어떻게 그 상황에서 얼굴이 화끈거리는 거야? 빨개지는 거야?
바보 아냐? 새애끼 너한테는 엉신이가 있다고. 그 사실을 알면서도 빨개지는 거야? 정말이지. 한심하다.
그렇게 행동하는 네가 나라는 사실이 너무 한심해서 비참하고 괴로워…….
마음속으로 혼잣말을 하면서 내 자신에게 채찍질을 하고 있는 난 이대로는 더 이상 있을 수가 없어서 고개를 들었고 내 얼굴에
는 피 같은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그 눈물에 당황하는 조폭 두 명은 내게 괜찮냐고 물어보려는 듯이 천천히 다가오는데 그것을
기회라고 여긴 나는 재빨리 일어나서 아까 조직의 두목이 나간 문을 향해서 달려들었다. 다행히 열리는 문에 의해서 문을 열고
조폭 두 명한테서 멀어지기 위해서 열심히 달렸다. 최대한 건물 밖으로 나가기 위해서 아래층으로 내려가면서 말이다.
"저기 엘리베이터가!"
정신없이 주위를 둘러보면서 멀리 있는 엘리베이터를 발견한 나는 뒤를 돌아서 나를 쫓아오는 조폭 두 명을 바라보고 더 빨리
엘리베이터를 향해서 뛰었다. 무슨 우연 이였는지 내가 엘리베이터에 도착하자마자 문이 열리는 엘리베이터라서 그 안에 빨리
들어간 나는 엘리베이터의 닫기 버튼을 여러 번 눌렀다. 그리고 엘리베이터 안에는 사람이 딱 한명만 있었기에 그리 신경을 쓰지도 않았다.
"너……새애끼냐?"
하지만 무섭고 듣기 싫은 목소리를 가진 남자의 목소리가 내 뒤로 들리고 위험한 기분이 내 몸을 감싸 돌았고
난 그만 뒤를 돌아보았다. 내가 뒤를 돌아보자마자 표정이 확 구겨지는 조직의 두목인 놈은 갑자기 엘리베이터를
발로 세게 찬다. 덕분에 쾅하는 커다란 소리가 들리면서 흔들리는 엘리베이터는 그 자리에서 멈추게 되었다.
"뭐하는 짓이야?"
"너야말로 여기서 뭐하는 짓이냐……?"
서서히 손을 재킷 안에 가져다대는 놈은 역시나 권총 하나를 손에 쥐고는 내게 가리킨다.
"조금이나마 살려두려고 했지만 계속 날뛰니 원……죽여 달라는데 죽여줘야지."
그리고 총을 내 머리에 가져다대면서 서서히 방아쇠를 당기는 놈은 알 수 없는 미소를 날린다.
토할 것 같아. 저런 놈 때문에 한순간 얼굴이 붉어진 내가 한심해…….
역시 난 엉신이 뿐인데……이대로 죽으면 엉신이의 얼굴을 볼 수가 없잖아. 엉신이는 살아있을 테니까…….
"안 돼. 쏘지 마."
엉신이를 생각하니까 머릿속에서는 여기서 죽으면 안 된다는 신호가 자꾸 울리고 입은 살고 싶다는 듯이 죽이지 말라고 한다.
"호오. 싫은데?"
비꼬는 사악한 놈의 목소리다.
"쏘지 말고 나 좀 보내줘. 미안해. 아빠가 지키지 못한 약속해서 미안해. 내가 사과할게. 그러니까 제발 살려줘."
점점 비참해지는 나의 모습이 놈의 목소리의 뒤를 따른다.
"그래도 싫어."
이 상황을 즐기는 놈의 웃음이 섞인 목소리에 더 비참해진다.
"제발……내가 뭘 어떻게 하면 보내줄 거야? 정말로……하라는 대로 다 할 테니까 제발."
한 남자 때문에 이렇게까지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이 처음이라 많이 어색하면서도 내가 많이 변한 것 같아서 기쁘면서도
오히려 비참해지는 모습이 많아져서 슬프다. 이런 내 마음을 모르는 놈은 기분이 좋은 듯이 그저 실실 쪼갠다.
"하라는 대로 다 한다고? 피식. 그럼 우리……."
왠지 나를 돌려보내주겠다는 말로 내게 들려와서 기쁜 나머지 놈의 행동을 지켜보는데 놈은 점점 내게 가까이 오더니
내 턱을 잡고 자신의 얼굴을 가까이 가져다댄다.
잠깐, 이건…….
"뭐, 뭐하자는 건데?"
"……키스하자."
뭐, 뭐? 키스?
깜짝 놀라서 눈을 동그랗게 뜨고 놈을 밀쳐내었다.
다행히 내게서 조금 떨어지게 된 놈은 총을 재킷 안에 넣더니 이내 폭소를 해댄다.
"푸하하하. 장난 이였는데 그렇게 과민반응을 보이니까 정말로 하고 싶어지잖아. 안 그래? 새애끼."
"……아가씨라고 불러. 너 같은 놈이랑 동등하고 싶지는 않으니까."
오히려 다행이지만 날 갖고 놀았다는 점은 정말로 불쾌하다.
"피식, 어쩌냐? 새씨 가문은 이미 망했는데……."
팔짱을 끼면서 엘리베이터 벽에 기대고 입 꼬리를 살짝 올리면서 내가 비참해질 말을 계속 하는 놈은
내가 고개를 숙이고 있자 재미가 없는지 내 어깨를 툭툭 건드린다.
"말 좀 해봐. 내가 하라는 말만 하면 널 보내줄 수 있어. 하지만 그 말을 했을 경우지."
어째서 이렇게 된 걸까? 내가 어째서 이런 놈의 손아귀에서 벗어날 수가 없게 된 거지?
"나한테 사랑한다는 말을 해봐."
어이없는 놈의 발언에 난 기가 막혀서 내 어깨를 건드리는 놈의 손을 치고는 놈을 째려보았다.
"어서 해봐. 재밌을 것 같은데?"
내게 치인 손을 흔들더니 다시 팔짱을 끼는 놈은 자존심이 상하지도 않는지 계속 웃어댄다.
"안 말해? 그러면 못 보내주고."
너무 싫어.
"엘리베이터를 또 한 번 쳐야하는 건가? 이제는 떨어지겠지?"
정말 싫어.
"표정을 보니 썩은 표정인데? 이봐, 지금 자존심을 지키고 있을 때가 아니라고."
점점 표정이 굳어지는 놈은 심각한 분위기를 만들려고 하는 건지 심각하게 말을 한다.
"정말로 말 안 할 건가?"
쓰레기.
"사랑해. 됐니?"
어금니를 꽉 깨물고 놈을 째려보고 증오를 가득 담으면서 아무렇지 않게 사랑한다는 말을 내뱉었다.
내 말에 심각했던 표정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소름이 끼칠 정도로 무섭게 미소를 짓는 놈은 엘리베이터의 비상벨을 누른다.
"너한테 그런 소리를 들으니 기분이 묘하다."
"네가 시킨 거잖아. 내가 하고 싶어서 한 말처럼 말하지 마……."
심각한 내 목소리와는 다르게 기분이 좋다는 듯이 말하는 놈의 목소리를 들으니 뭔가가 불안하다.
"원하는 게 뭐야?"
"네가 탈출하는 거……그리고 네가 나한테 사랑한다고 말을 하는 거……지금 이 순간 원하는 거야."
놈이 갑자기 내 어깨에 손을 올려놓고 진지하게 알 수 없는 말을 해서 온 몸에서 땀이 흘러내린다. 그리고 내가 무슨 말을 하려고
할 때 엘리베이터의 문이 활짝 열리고 밖에서 사람들이 내게 구원의 손을 내민다. 또한 사람들 속에는 아까 나를 감시하던 조폭
두 명 역시 있었다. 그들은 싸늘한 표정을 짓고 나를 무섭게 바라보더니 이내 옆에 있는 자신들의 두목을 보았는지 꼬리를 내린다.
"그 말을 들어서 한 동안은 참을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니 이젠 가봐."
혼자서 엘리베이터를 빠져나가더니 내게 이해를 할 수가 없는 말을 하고는 조폭 두 명을 데리고 내 눈에서 사라지는 놈이다.
뭐야, 이거……갑자기 왜 착해진 건데……. 정말로 내게 사랑한다는 거짓된 말을 들어서 그런 거야……?
보면 볼수록 이해할 수가 없는 놈이야…….
몸에 균형을 제대로 잡고 엘리베이터에서 빠져나왔다. 그리고 뒤를 돌아보지 않고 앞만 보고 당당히 걸어 나갔다.
이제 내가 갈 곳은 하나. 그 곳은 내게 있어서 소중한 곳. 내게 있어서 아름다운 곳. 바로 그 곳을 향해서 걸어갈 거야.
그 곳에는 내가 원하는 것도 있으니까……. 바로 벼엉신 너 말이야…….
처음에는 꿈이 아닌가하고 천천히 앞만 보고 걸어갔고 조금씩 내 입술이 미소를 되찾아 가는 것과 동시에
발걸음도 빨라지기 시작한다.
건물에 나오자 비가 내리는 날씨임에도 불구하고 미친 듯이 뛰었다. 만나지 못함이 얼마나 괴롭고 슬픈 건지 난 잘 알아.
그래서 만날 수 없는 상황에서 만나게 된 지금의 나 자신이 너무 행복해.
길거리를 걷고 있는 사람들의 대부분은 한 번씩 바보같이 웃으면서 길거리를 뛰어다니는 나를 경계하면서 걷거나 쳐다본다.
사람들의 시선 같은 것은 지금 내 마음 속을 사로잡을 만한 것이 아니기에 신경을 쓰지 않고 그저 열심히 달린다. 그렇게 열심히
달리다가 숨이 차서 헥헥 거리고 잠시 멈추고 뛰어가는 것을 반복한다. 어느 샌가 빗물이 내 온 몸을 적셨고 내 얼굴에 흐르는
빗물은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는 흔히 눈물이라고 생각을 하기도 한다. 하늘을 바라보니 구름은 온통 검은 먹을 칠한 듯 하고
가끔은 천둥소리와 함께 천둥이 보이기도 한다. 천둥소리에 길거리를 걷고 있는 커플들은 소리를 지르면서 서로 껴안기에 바쁘고
다른 사람들의 발걸음은 점점 빨라진다. 서두르는 이들을 바라보니 나 또한 서두르게 되는 이상한 행동과 이상한 기운에 불길함까지
겹쳐져서 숨이 차서 죽을 것만 같아도 쉬지 않고 달렸다. 그러고 나니 내 눈앞에 보이는 곳은 내가 그리워하던 우리 아빠의 집이
보인다. 흔들리지 않고 그 자리에 계속 보인다. 집 앞에는 검은색의 차들이 많이 모여 있었지만 신경을 쓰지 않고 대문을 힘차게
열어서 현관문을 크게 두드렸다.
쾅쾅쾅.
초인종을 누르면 될 것을 마음이 급한 난 그만 울음이 섞인 목소리와 함께 현관문을 두드린다.
"아빠! 아빠! 엉신아! 빛애야! 문 좀 열어줘. 나 돌아왔단 말이야……."
입을 여는 순간, 눈물이 흐르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집에 돌아와서 행복하니까 흘리는 눈물일까 아니면 집에 돌아왔는데 내 소중한 사람들이 없을까봐 불안해서 흘리는 눈물일까.
쾅쾅쾅.
제발. 제발 문 좀 열어줘요. 누구든 나 좀 살려줘요.
가슴이 너무 답답해서 심장이 너무 뛰어서 숨조차 쉬기가 힘든데 지금 이 순간 가장 필요한건 소중한 사람들의 얼굴이에요.
그러니까 누구든지 문 좀 열어줘……제발.
"흐……."
아무리 문을 두드려도 아무리 소리를 질러보아도 열리지 않는 문이 나와 그들의 사이를 가로막는 벽처럼 느껴져서 야속하게 느껴진다.
무섭고 외로운 곳에서부터 자신을 지키고 이곳에 다시 돌아왔는데 반겨주는 것은 오직 커다란 현관문이라서 가슴이 아파진다.
"아무도……아무도 모르는 거야? 나 신경 안 쓰는 거야? 그런 거야? 제발 말 좀 해봐! 이 나쁜……!"
쾅.
문을 열어주지 않는 건 집 안에 있는 사람들일 텐데 바보같이 현관문에게 화풀이를 하는 나를 보니 한심하다.
정말로 내 목소리가 들리지 않은 거라서 문을 열어주지 않는 것이라면 다행이지만 어째서 내 머릿속과 마음은
일부러 문을 열어주지 않는 것이라고 여기는 건지. 매번 거부를 해보아도 계속 거기에 머무르는 것인지. 어째서 그런 것인지.
"정말 모든 것들이 나를 힘들게 하는구나. 나를 방해하는구나. 괴로워. 미치겠어.
엉신아, 나 이대로 가기 싫어. 이대로 이곳에서 묻혀 지고 싶지 않아……."
사람들 앞에서는 그렇게 당당한 나였는데 고작 현관문 하나로 무너지니 그 동안 강한 척 한 것들이 모두 물거품이 되는 것만 같다.
그리고 슬픔에 잠겨서 바닥에 주저앉아버리는 나다.
하늘이 내게 준 운명이 이런 거라면 나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는 거겠지? 하늘이 내게 준 운명이 이런 거라면 나 반항할 수도 없는 거겠지?
그렇다면 나 하늘이 내게 준 운명 받아 들일거야. 하지만 한 가지만 물을 거야. 어째서 나한테 이런 운명을 주었냐고…….
괴롭다고……. 힘들다고……. 미치겠다고…….
가슴이 너무 답답하고 온 몸이 추위에 견디지 못해서 떨린다. 그리고 또 다시 흐려지는 시야에 견디지 못하는 난 눈물을 더 흘린다.
여기서 또 쓰러지는구나. 언제나 약하게 쓰러지는 나를 보면 바보 같고 한심하게 느껴져.
내 의도는 아니지만 그래도 매번 쓰러지는 나를 보면 괴롭고 암울해. 난 언제나 이런 역할인 걸까……?
털썩.
주저앉아 버린 상태에서 그대로 바닥에 쓰러져버린 난 이제는 편하게 눈을 먼저 감는다.
이제는 편하게 살고 싶어.
이대로 계속 불행의 연속이 내게 다가온다면 차라리 여기서 끝내는 게 좋을 것만 같아…….
그렇게 눈을 감아버리고 뒤에는 커다란 자동차 소리가 내게 가까워짐과 동시에 멈춘다.
그리고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리고 대문을 열더니 나를 발견한 한 사람은 깜짝 놀라고 내게 가까이 온다.
"애끼야, 애끼야! 정신 좀 차려봐. 어떡해……."
귓가에는 슬픔에 잠긴 목소리와 걱정에 잠긴 목소리가 섞여버린 목소리가 흐릿하게 들린다.
그리고 그 목소리 뒤로는 다른 목소리가 들린다.
"아가씨인…… 겁니까?"
시간이 조금 흐르고 어느새 코끝에는 익숙한 향기가 나자 편안한 마음에 천천히 눈을 떴다. 이마 위에는 땀이 흘러서 찝찝한
기분을 뒤로하고 그 위로는 하얀 수건이 올려 있는 것에 흐릿한 시야를 애써 옆으로 옮기니 나를 간호하다가 잠이 든 빛애의
뒷모습이 보인다.
이번에도 바보같이 약해빠진 생각만한 나를 위해서 간호를 해주는 빛애야. 이래서는 미안한 마음이 커질 수밖에 없잖아.
이래서는 나를 속여서 집사역할을 했다고 해도 이해할 수밖에 없잖아. 미안하다는 말을 들을 필요도 없잖아.
내가 더 미안하니까……. 사과를 들을 필요 또한 없잖아. 내가 사과를 해야 하니까…….
침대에 누워있는 상태에서 천천히 허리를 일으켜 세우고 가만히 빛애를 응시하는데 이마 위에 놓여있던 하얀 수건이 내가
일어서는 것과 동시에 빛애 쪽으로 떨어져서 빛애가 눈을 비비면서 일어난다. 눈을 비비다가 어느새 벽에 기대어 서있는
나를 발견한 빛애는 손을 내려놓더니 눈에는 눈물을 머금고 나를 껴안는다.
"바보야. 어디에 있었어? 걱정했잖아. 무사한 거야? 어디 다친 곳은 없어? 문 앞에는 왜 또 쓰러져있는 거야?"
"그게……."
"바보! 멍청이! 정말이지. 넌 혼자두면 안 된다니까. 내가 널 지키려고 얼마나……얼마나 강해왔는데!"
"……."
나를 너무 걱정하는 빛애의 목소리와 빛애의 마음에 미안하면서도 고마워서 무슨 말을 해줘야 할지 몰라서 가만히
빛애만 바라보는데 빛애는 그런 나를 바라보면서 그저 희미하게 웃는다.
"그래도 무사히 돌아왔으니까 다행이야. 이제는……슬퍼하지 않을래. 그렇지, 애끼야?"
약간은 불안한 듯이 말하는 빛애의 목소리가 나를 지켜주기 위한 빛애의 마음이 담겨져 있어서 나 또한
마음이 편안해지는 반면 불안해지기도 한다.
빛애 너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도 슬퍼하지 않을게. 빛애 너한테 더 큰 아픔을 주는 것은 싫어."
빛애가 원하는 대답을 해줘서 빛애의 표정은 여전히 눈물 속에 머물고 있었지만 그래도 희미하게 밝아지는 웃음에 다행이라고
여기는 난 오히려 빛애를 더 세게 껴안는다. 내가 빛애를 생각하는 마음이 빛애에게 전해졌는지 빛애는 아까보다 더욱 더 심하게 울기 시작한다.
"애끼야, 애끼야……. 어떡하니? 정말 어떡하니……? 하……."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괜히 나도 불안해진다.
“흐……애끼야. 미안해. 정말로 미안. 네가 소중히 여기는……그 사람을. 몰랐었어. 몰랐는데…….”
말을 뒤죽박죽 말하는 빛애를 보니 조급해지는 내 마음에 어쩔 수 없는 난 그저 더욱 더 세게 빛애를 껴안는다.
"그 사람을 살릴 수가 없었어. 몰랐어. 정말로……. 그렇게 될 줄은 몰랐었어. 그래서 이렇게 되어버렸어……. 정말로 미안."
처음에는 빛애가 어째서 내게 미안하다고 사과를 하는 건지 의문이 가기도 했지만 그래도 내게 사과를 하는 빛애때문에 불안한
감정을 느끼게 되었고 그 불안한 감정이 이제는 점점 더 커져만 가고 내가 설마 하던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그 사람이라면……?
순간 멍해져버린 난 빛애를 껴안고 있던 손을 내려놓고 그저 앞만을 계속 바라보았다.
"……그래. 빙빙 돌리지 않을게. 그 사람이 죽었어. 경호원 엉신이가……그 멍청한 경호원이 죽었어. 하……."
가슴에 커다란 돌덩이 같은 무언가가 내려앉는 기분이 든다.
그래서 가슴이 답답하고 죽을 것만 같아서 눈물이 흐르고 숨도 제대로 못 쉬는가보다.
"그럼……그러면 아까 내가 쓰러지기 직전의 다른 사람의 목소리는 누구야……?
엉신이가 아니라면! 내게 아가씨라고 말해주는 그런 사람이 누구냐고!"
나만큼이나 슬퍼하는 빛애에게 같이 위로를 해주지는 못할망정 엉신이를 향한 마음에 그만 빛애에게 소리를 지르고 상처를 주고 말았다.
빛애는 나의 커다란 반응에 약간은 놀라더니 이내 자신이 잘못한 것이라면서 죄책감에 빠진다.
"미안해. 그 때 1분만 더 빨리 전화를 했다면 이런 일은 없었을 텐데……내가 죽을죄를 지었어. 흐……."
아니야. 이건 빛애의 잘못이 아니야. 어째서 그 상황에서 빛애만 전화를 했어야하는 건데?
전화의 몫이 빛애에게만 있는 것이 아닌데 왜 네가 내게 사과를 하는 거야?
그리고 엉신이의 죽음에 빛애에게 상처를 주는 내 마음은 뭔데. 행동은 뭔데?
오히려 내가 더 바보 같잖아. 오히려 내가 더 죄책감에 빠져야하는 거잖아.
"아니. 내 잘못이야. 빛애야, 네 잘못이 아니야. 나 때문에 엉신이가 왔던 거고 그래서 죽은 거잖아.
인정하기 싫지만 죽은 거잖아. 그 사실은 변하지 않는데 어떡해……. 내가 어떻게 거부를 해.
가슴이 아프고 찢어져서 죽을 것만 같아도 사실은 변하지가 않잖아…….
오히려 그의 죽음에서 네게 상처를 주는 내가 더 미안해."
내 말에 눈을 동그랗게 뜨더니 내게서 떨어지는 빛애는 몸을 떨더니 천천히 일어나고 뒤로 주춤거린다.
"빛……애야?"
"말하지 마……넌, 넌 도대체 누구야? 애끼가 아니야……."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은빛애…….
빛애의 예상치 못한 대답과 행동에 당황하는 나는 아픈 몸을 이끌고 빛애에게 다가간다.
"다가오지 마!"
울음 섞인 빛애의 목소리에 걸음을 멈추는 나다.
"내가 아는 애끼가 아니야. 너……변했어."
변하다니……도대체 어디가……? 얼굴도 그대로고……성격도 그대로인데 뭐가 변했다는 거야?
이해를 할 수가 없는 빛애의 말과 행동에 멍하니 빛애를 바라볼 수밖에 없는 난 가만히 서있기만 한다.
빛애는 그런 내 모습을 바라보고는 뭐가 불만인건지 이번에는 머리를 잡고 소리를 지른다.
"악! 빨리 가! 가라고! 너! 사라져! 애끼가 아니야. 넌 도대체……! 아악!"
"빛, 빛애야!"
더 이상은 무섭게 발악을 하는 빛애를 혼자 내버려 둘 수가 없어서 난 빛애에게 다가가 빛애를 안정시키려고 손을 잡았는데
내 손을 뿌리치는 빛애는 무섭게 나를 째려본다. 순간 무서워서 빛애에게서 약간 떨어진 난 빛애의 이상한 행동에 놀라서 그저
빛애의 이름만 반복해서 부른다. 내가 자신의 이름을 계속 부르니까 기분이 나쁜 건지 이름을 부를 때마다 소리를 지르는 빛애
때문에 아무 말도 할 수가 없게 된 난 입을 다물고 평상시의 빛애가 아니라는 사실에 눈물이 맺혀진다.
빛애야, 정말로 무슨 일이 있는 거야? 너에게 충격을 준 아주 커다란 사건이……. 있으면 그 사건을 내가 만든 거니?
엉신이의 죽음도……그리고 또 다른 사건도. 너의 마음속의 상처도 내가 낸 거니?
가슴에 얼마나 큰 상처가 있어서 안 본 사이에 그렇게 변한 거야?
정말로 매번 미안했는데 이번에도 미안한 일을 만드네. 난 참 바보야…….
눈에 맺혀진 하얀 방울이 이슬처럼 볼을 타고 내려오고 그 눈물을 본 빛애는 더욱더 발악을 하면서
내게 다가오더니 손으로 내 볼을 세게 때린다. 찰싹하는 커다란 소리가 방안 가득히 울려 퍼지고 볼에
느껴지는 따가움이 더 진하게 느껴질 때 눈물도 더 많이 흐른다. 그리고 내가 빛애를 이렇게 만들어
버린 것만 같은 느낌에 가슴까지 쓰라린 아픔이 전해져 온다.
"아……애끼야……."
내게 뺨을 때린 손바닥과 고개가 돌아간 내 얼굴을 여러 번 바라보는 빛애는 나를 때렸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는지 자해를 하기 시작한다.
갑자기 빛애가 자신의 머리를 때리고 자해를 해서 오히려 바라보는 입장인 내가 더 충격을 받고 말려야겠다는
생각에 빛애를 말리는데 계속 말려도 나를 뿌리치고 자해를 하는 빛애때문에 너무 괴로워서 눈물을 더 흘리는 나다.
"바보……은빛애……! 정신 차려. 제발……미안해. 정말로 미안해. 그러니까 그만 때려. 아프잖아. 너 많이 아프잖아!"
많이 아프면서도 자신을 때려서 더 고통스럽게 하는 바보 같은 빛애의 행동에 가슴이 아프다.
"그만 좀 해……나도…나도……나도 힘들다고! 힘들어서 미칠 것만 같은데……너까지 왜 그래. 제발……그만해……!"
참을 수 없을 만큼 밀려오는 괴로움과 슬픔은 눈물을 계속 흘려도 나아지지가 않고 빛애의 계속되는 이상한 행동에 답답해서
소리를 지르는 난 너무 힘들고 지쳐서 그만 침대에 얼굴을 묻는다. 눈을 가리면 아무것도 보이지 않으니까 괜히 마음이 편해질 것만
같은 느낌에 한 행동이지만 오히려 무거워지는 마음에 더 슬퍼진다.
"아악! 아아악! 악!"
어째서 빛애 너까지 망가지는 거야……나 하나로도 되는데 어째서……!
"그만하라고! 그만해! 씨발……!"
쾅-
문이 세게 열리는 소리가 들리자 순간 조용해진 분위기에 의해서 빛애가 정신을 차린 줄 알고 고개를 들어서 빛애를 바라보았다.
그러나 내 눈에 포착된 장면은 문 앞에 있는 정장을 입은 의비에게 눈물을 흘리면서 포옹을 하고 있는 빛애의 모습이다.
"의비야……애끼가 나보고 씨발이래……. 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