讓寧大君의 祠堂 지덕사(至德祠)와 묘소(墓所) 지정번호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11호 (1972년8월30일)위치서울트결시 동작구 상도4동 산65번지 42호 재단법인 지덕사소재지 : 서우특별시 동작구 노량진2동 310-99전화: 02) 824-0775 812-5953~4 FAX 824-0777 서울특별시유형문화재 제11호인 이곳은 양영대군과 부인이신 수성부부인(隨城府夫人)광산김씨의 신주를 모신 사당과 묘소이다. 양영대군(1394~1462)은 조선조 제3대왕이신 태종대왕의 맏아들로 송경(松京:개성)에서 태어나셨다. 대군은 11세이던 1404년에 세자에 책봉되어 14년 동안 게시다가 25세이던1418년에 세자의 자리를 셋째인 동생忠寧大君에게 무려주었는데 이 왕이 한국 역사상 최고의 성군으로 칭송받는 세종대왕이시다.양영대군은 문과 무에 두루 뛰어나시어 장차 왕위를 계승할 훌융한 자질과 재능을 갖추었음에도 불고하고 이를 사양하고 동생에게 세자의 자리를 물여줌으로써 우리나라 역사에 가장 위대한 성군정치의 시대를 열었다. 이사양의 큰덕을 몸소 실천한 대군을 가리켜 세상사람들은 동방의 泰伯이라 부르며 至德이라 칭송했다.지덕이란 말은 孔子가 논어에서 지극한 덕을 실천한 고대 중국 주나라의 태백에게 붙여준 최고 도덕적 찬사였다.1675년 조선조 제19대왕인 숙종대왕은 대군의 큰덕을 기리기위해 왕명으로 사당을 다시 짓게 하고 지덕사란 이름을 내리셨다. 대군의 사당은 봉래 숭례문 밖 도저동(지금의 후암동)에 있었는데 1912년에 이곳으로 옮기었다. 지덕사 扁額은 1789년 조선조 제22대왕 정조대왕이 하사 하셨고 글씨는 어명을 받들어 知中樞府事 尹東暹이 썼다. 사당안에는 양영대군의 친필인 後赤壁賦八幅屛風과 그 초서체목각판 숭례문현판탁본과 조선조22대정조대왕께서 친이 지으시고 영의정 채재공이 어명을 받을어 쓴 金字扁額의 어제지덕사기 외후손 우의정 許穆의 지덕사기,奉祀孫 趾光의 至德遺蹟등 귀중한 유물들이보관되어 있다. 경내에는 이외에도 재실과 연못 대군의 역사적 발자취를 엿볼 수 있는 각종 조형물들이 세워져 있다.
양명문(讓名門) 묘역의 정문.2004년 양영대군 탄신610주년을 맞아 성역화사업의 일환으로 세운것이다.
도광재(韜光齋) 齋室.
재실내부 그1.
그2.
옆으로 본 양명문.양영대군이 지은 시
양영대군이 지은 시.
위 비문에 대한 설명은 아래를.....
위 비의 내용은 아래에서 설명문을...
묘소 입구.
양영대군과 부인 수성부부인 광산김씨의 묘.
[출처] 지덕사(至德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