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길은 언제나 없던 문을 만든다
그리움이나 부끄러움은 아무 데서나 정거장의 푯말을 세우고
다시 펴보는 지도, 지도에는 사람이 표시되어 있지 않다
4
가지 않은 길은 잊어버리자
사람이 가지 않는 한 길은 길이 아니다
길의 속력은 오직 사람의 속력이다
줄지어 가는 길은 여간해서 기쁘지 않다
- 이문재 '길에 관한 독서' 부분
좁은 문이란 틈이 좁거나 높이가 낮은 문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 문 자체가 보이지 않을 때 그 문은 가장 좁다. 어디로든 갈 수 있는 광장에도, 몸만 돌리면 방향을 틀 수 있는 길가에도, 문이 있지만 우리는 그 문을 찾지 못한다. 길 없는 길을 걸으며 자기만의 문 하나를 발견하는 게 인생의 숙제가 아니던가.
시인은 그 문을 찾아내기까지 걸리는 시간조차 스스로의 속도, 스스로의 몫이라고 말한다. 우리는 길을 걸으며 없던 문을 생각하고, 그 문 밖으로 나가 두 번째 문을 찾아내야 한다. 누군가의 손을 잡고 이후의 광장으로, 다시 이후의 길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