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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을 따라 예수님의 길을 배우다 (눅 3-72)
2025년 2월 17일 (월요일)
찬양 : 나는 믿네
본문 : 눅 9:51-56절
☞ https://youtu.be/Y07y9RknNM8?si=cymB33bRAbSBSxb9
한 주간을 시작하는 날이다. 아직은 몸이 내 맘처럼 움직이지 못한다. 속도 조절이 필요함을 많이 느낀다. 조금씩 회복하고 있지만 완전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확실히 알게 되었다. 주님께 내 육체를 어루만져 주시기를 기도한다.
오늘도 예정된 일정을 취소하고 최소한의 활동으로 육체를 돌보는 시간을 가져야 하겠다. 내 맘처럼 움직일 수 없는 답답함이 나를 힘들게 하지만, 겸손히 주님을 신뢰하며 주님의 속도에 나를 맞춘다.
이날 주님은 어떤 말씀으로 인도하실까?
본문에는 예수님께서 승천하실 기약이 차서 예루살렘으로 가는 길에 사마리아를 지나서 가시게 되면서 벌어진 사건이다. 51절
‘예수께서 승천하실 기약이 차가매 예루살렘을 향하여 올라가기로 굳게 결심하시고’
<승천하실 기약이 차가매>
예수님께서 공생애를 마무리하시고, 십자가와 부활을 거쳐 승천하실 때가 되었다. 하나님의 정하신 때가 온 것이다.
<굳게 결심하시고>
오늘 말씀에서 이 부분이 매우 중요한 해석 포인트라 생각된다. 정하신 때를 향하여 가시는데 왜 굳게 결심하셔야 했는가? 여기 굳게 결심한다는 헬라어 단어의 의미는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을 향한 길을 변함없이 결단하셨음을 말한다. 아주 단호한 태도로 예루살렘을 향하신 것이다.
예수님은 십자가의 고난을 피하지 않고, 하나님의 구원 계획을 이루기 위해 당당히 나아가셨다. 그것은 하나님의 뜻에 대한 철저한 순종(요 6:38)이었고, 죄인을 위해 자신을 내어주시는 사랑의 결심(요 10:11)이셨다.
이렇게 마지막까지 위대한 결단으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가시는 길이니 아무 문제가 없어야 하지 않겠는가? 그런데 오늘 본문은 놀랍게도 그 길에 거절을 당하심을 보여준다. 52-53절
‘사자들을 앞서 보내시매 그들이 가서 예수를 위하여 준비하려고 사마리아인의 한 마을에 들어갔더니 예수께서 예루살렘을 향하여 가시기 때문에 그들이 받아들이지 아니하는지라’
<사마리아인의 한 마을>
<예루살렘을 향하여 가시기 때문에>
<받아들이지 아니하는지라>
사마리아인과 유대인은 오랫동안 적대적이었다. 유대인은 예루살렘에서, 사마리아인은 그리심 산에서 예배하며 갈등이 깊어졌다. 그런 가운데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으로 가신다는 이야기를 들으니 반감을 갖고 거절했던 것 같다.
당대 유대인들은 이런 사마리아 사람들을 피해 요단 동편 길로 다니곤 했다. 그런데 예수님은 지금 일부러 사마리아를 지나가는 길을 선택하신 것이다. 왜 그러셨을까?
사마리아인들도 하나님의 구원의 대상임을 마지막까지 분명하게 보여주신 것이다. 수가성 여인을 찾아 구원의 메시지를 전달하셨던 예수님,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를 통해 사마리아인의 아름다움을 말씀하신 예수님, 열 명의 나병 환자 중 유일하게 돌아와 감사한 사람이 사마리아인이라 말씀하시며 그들을 향한 구원의 길을 열어주신 예수님을 묵상하게 된다.
이런 사마리아 사람들인데 거절당한 것이다. 물론 예수님은 사마리아 사람들에게만 거절당한 것이 아니다. 예루살렘에서도 자신의 민족 유대인들에게도 거절을 당했다. 그러므로 사마리아에서의 거절은 예수님의 십자가 여정의 시작을 알리는 싸인이었던 것이다.
이런 거대한 구원의 파노라마를 이해하지 못한 제자들은 예수님의 사역을 알고 있기에 화가나서 외친다. 54절
‘제자 야고보와 요한이 이를 보고 이르되 주여 우리가 불을 명하여 하늘로부터 내려 저들을 멸하라 하기를 원하시나이까’
이 외침에 베드로가 빠진 것이 이상하긴 하지만 아마도 제자들 모두가 이런 의견이었을 것이다. 그때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신다. 55-56절
‘예수께서 돌아보시며 꾸짖으시고 함께 다른 마을로 가시니라’
<꾸짖으시고>
불을 내려 심판하자는 제자들을 예수님은 돌아보시며 꾸짖으셨다고 한다. 세상적 가치로 볼 때 제자들의 반응은 당연한 반응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오히려 제자들을 꾸짖으셨다.
예수님은 심판이 아닌 구원의 길을 열러 오셨고, 은혜와 용서를 가르치셨다.
언젠가 이곳에 복음이 받아들일 기회가 열릴 것을 암시하는 사건일 뿐이셨다. 그리고 실제로 훗날 빌립 집사를 통해 하나님은 이곳에 복음이 전파되게 하셨다.
하나님 나라는 인간적인 생각으로는 도저히 이해될 수 없는 곳임을 다시금 깊이 묵상하게 된다. 예수님의 사마리아 여정은 빨리 가기 위해 선택한 길이 아니라 모든 민족을 향한 복음의 시작이며, 아울러 십자가의 길을 예표하는 첫 사건임을 알게 된다.
오늘 주님은 내게 무엇을 말씀하시는 것일까?
야고보와 요한처럼 마지막이기에 더 화날 수 있는 상황이다. 또 그렇게까지 예수님이 사마리아를 존대했는데 어떻게 이럴 수 있어! 하며 화낼 상황이 맞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님 나라가 아니라 세상 나라의 방식이다.
성령의 조명을 받지 않고 인간적인 상식으로 살면 결국 주님의 꾸짖음을 받는 인생일 수밖에 없다. 또한 성령 없이 인간적인 생각만 따르면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게 될 수 있음을 깨닫는다.
예수님은 이 순간 아무 일도,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다른 마을로 가신다. 이것이 하나님 나라의 방식이다. 아버지께 순종하여 그 길을 가신 것으로 그곳을 향하신 하나님의 뜻을 다 이룬 것이다. 예수님의 능력으로 사마리아인을 설득하지도 않았고, 화를 내지도 않으시고 오히려 제자들을 꾸짖으셨다.
그 이유는 성령 안에서 이 사건을 이해하셨기 때문이다.
오늘이란 시간을 세상 가운데 살면 화낼 일들이 부지기수다. 나는 야고보와 요한처럼 엄청 화를 내면서 인생을 살았다. 돌아보면 아무 유익이 없음을 발견한다. 성령의 조명 없이 행동하면 하나님의 뜻을 이룰 수 없음을 깨닫는다.
만일 이 순간 제자들이 성령의 조명안에서 예수님이 이곳에 오신 이유와 그들의 반응의 한계를 이해했다면 어떠했을까? 제자들의 반응은 완전히 달라졌을 것이다.
진실로 주님 앞에 결단하기는 성령의 조명하심을 따라 행동하는 자가 되기를 다짐한다. 물론 앞으로 다짐함에도 불쑥 튀어나오는 화로 실패할 때가 많을 것이지만, 이 다짐을 기억하며 성령의 조명을 따라 행하는 자로 세워져 갈 것이다.
주님 회개합니다. 내 생각과 세상적 습관에 지배된 지난 삶을 돌이키기 원합니다. 이시간 성령으로 충만하게 하사 성령의 조명 아래 하나님 나라의 방식으로 살아가게 하소서.
중보기도 제목을 위해 기도해 주세요! : 여러분의 기도가 필요합니다.
1. 웨이브리즈 플랫폼의 콘텐츠 제작이 원활하게 이루어져 정상화되도록
2. 목회사관학교 12기생 20명이 모집되게 하소서.
3. 30억의 재정공급을 통해 선교회 사역이 새로운 옷을 입도록
4. 라마나욧선교회 행정 시스템이 섬김을 위한 최적의 구조를 찾도록
5. 스페이스 알 사역을 통해 다음 세대를 위한 우리만의 방식을 세워가도록
6. 틴케이스가 2025년 세운 계획들이 세워져 가도록
7. 작은교회가 건강하게 세워져 가도록 구체적 대안을 제시하도록
8. 충주 라마나욧이 구체적인 사역 방향을 정하여 세워지도록
9. 박정제목사를 비롯한 팀원들 모두가 성령안에서 충만하도록
삶에 적용하기 : 다음 질문을 통해 스스로 점검해 보십시오.
나는 예수님처럼 하나님의 뜻을 향해 굳게 결심하고 있는가? 내 삶의 어떤 부분에서 결단이 필요한가?
2. 내가 사마리아인처럼 예수님을 거부하는 부분은 없는가? 또한, 다른 사람들에게 거절당할 때 나는 어떻게 반응하는가?
3. 나는 야고보와 요한처럼 세상의 방식(분노, 심판)으로 반응하는가, 아니면 예수님처럼 하나님의 방식(인내, 은혜)으로 반응하는가?
4. 나는 성령의 조명 아래 살아가고 있는가? 화를 내거나 실망할 때, 성령의 도우심을 구하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