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살 것인가? “품위있고 자유로운 복음적 삶”
2024.9.11.연중 제23주간 수요일 1코린7,25-31 루카6,20-26
교황님의 동티모르에서의 두 번째 날인 9월10일 어제는 동티므로 신자들에게 참 풍요로운 날이었습니다. 동티모르 민주공화국은 인구 134만에 98%가 가톨릭신자들이며 어제는 인구 절반에 해당되는 60만명이 야외 미사에 참여했습니다. 2002년 독립했으며 인구의 평균 연령은 20세라니 정말 젊은 국가입니다. 파푸아뉴기니에 이은 동티모르, 작고 가난한 나라지만 신자들은 순수한 복음적 삶을 살고 있음을 봅니다. 특히 교황님의 방문으로 가톨릭 젊은이들의 넘치는 기쁨은 상상을 초월합니다. 어제 교황님이 곳곳에서 주신 말씀 제목도 은혜로워 소개합니다.
“여러분들은 그리스도의 향기입니다.”
“복음의 중심은 지구의 변두리 여기입니다.”
“아이들은 우리에게 ‘작음’의 소중함을 보여 줍니다.”
“복음의 중심에 있는 나라, 동티모르입니다.”
“우리에게 배려하고 배려받아야 할 존재임을 깨우쳐준 어린이들에 감사합니다.”
“여러분의 문화와 역사를 바꾸려는 악어를 조심하십시오.”
“전통을 지키십시오. 여러분의 믿음이 여러분의 문화가 되도록 하십시오.”
파푸아뉴기니 신자들과 동티모르 신자들보다 교황님이 이들에게 받은 복음적 삶과 가치에 대한 충격이 상상을 초월한다 싶습니다. 아마도 이런 생생한 복음적 삶에 대한 체험은 교황님의 삶에 신선한 활력이 되리라 믿습니다. 참으로 품위있고 자유로운 복음적 삶은 가톨릭 신자들 누구나의 소망일 것입니다. 어떻게 품위있고 자유로운 복음적 삶을, 하느님의 자녀다운 삶을 살 수 있을까요? 바로 오늘 복음의 행복선언과 불행선언이 답을 줍니다.
“행복하여라, 가난한 사람들! 하느님의 나라가 너희 것이다.”
“행복하여라, 지금 굶주리는 사람들! 너희는 배부르게 될 것이다.”
“행복하여라, 지금 우는 사람들! 너희는 웃게 될 것이다.”
“행복하여라, 사람들이 너희를 미워하고, 사람의 아들 때문에 너희를 쫓아내고 모욕하고 중상하면 행복하다! 그날에 기뻐하고 뛰놀아라. 보라, 너희가 하늘에서 받을 상이 크다. 사실 그들의 조상들도 예언자들도 그렇게 대하였다.”
참으로 하늘 나라에, 하느님께 궁극의 희망을 두고 있기에 가난중에도, 굶주림중에도, 울음중에도 품위를 지키며 자유롭고 행복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하늘에서 받을 상을 내다보며 기뻐하고 뛰놀수 있는 것입니다. 물질적 욕구와 탐욕을 초월한 참으로 자유롭고 품위있는 고결한 복음적 삶, 이런 삶자체보다 더 좋은 복음 선포도 없을 것입니다.
행복선언에 이은 불행선언은 저주도 아니고 형벌의 선고도 아니고, 하나의 탄식이자 경고입니다. 회개하라는 엄한 부르심입니다. 지금 부유한 이들은 자족하기에 앞서 가난한 이들과 나누고, 지금 배부른 사람들은 굶주린 사람들과 나누고, 지금 웃는 사람들은 우는 사람들을 위로하고 함께 하라는 회개의 촉구입니다. 혼자가 아닌 더불어의 삶이 구원임을 깨달으라는 것입니다. 이래야 저주는 축복이 될 수 있고, 품위있고 자유로운 고결한 복음적 삶을 살 수 있습니다. 현실에 압도되지 않고 참으로 자유롭고 품위있는 복음적 삶에 바오로 사도가 결정적 답을 줍니다.
“때가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아내가 있는 사람은 아내가 없는 사람처럼,
우는 사람은 울지 않는 사람처럼,
기뻐하는 사람은 기뻐하지 않는 사람처럼,
물건을 산 사람은 그것을 가지고 있지 않은 사람처럼,
세상을 이용하는 이용하지 않는 사람처럼,
사십시오. 이 세상의 형태가 사라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위선이 아니라 고도로 자기를 절제하는 품위있고 자유로운 삶의 절정입니다. 세속적인 현실에 무관심하라는게 아니라 깨어 살라는 것이며, 세상에 빠져 살지 말고 자본주의에 역행하여 초연한 이탈의 자유로운 삶을 살라는 것입니다. 소유의 쾌락이 아니라 자발적 가난을, 존재의 기쁨을 살라는 것입니다. 늘 처음이자 마지막처럼 본질적 깊이의 삶을 살라는 것입니다. 이래야 기후위기도 해결되어 지구도 자연도 사람도 살 수 있고 희망의 미래도 가능할 것입니다. 녹색평론 2024년 가을호 머리말 끝부분을 나눕니다.
“다른 길이 없다. 에너지 소비를 절대적으로 줄이고, 경제성장을 그만두고, 인구의 과반수가 농촌으로 돌아가 농사를 짓고, 무기를 버리지 않고는 인류는 미래를 맞을 수 없다. 이 혁명은 민주주의 없이는 가능하지 않다. 모든 것이 거꾸로 된 지금의 상황에서는 불가능해 보이는 것을 꿈꾸는 것이 가장 현실적인 태도이다. 체념해서는, 희망을 버려서는 안된다.”
하느님이 궁극의 미래이자 희망이지만, 인간의 자발적 협조가 절대적입니다. 바로 자발적 가난과 절제, 품위있고 자유로운 복음적 삶의 회복으로 자본주의의 병폐를 극복함이 바로 진정한 영적혁명이요, 이 거룩한 미사은총이 결정적 도움을 줍니다. 언젠가 이런 자유롭고 품위있는 삶을 꿈꾸며 써놓은 시가 있어 나눕니다.
“나
이런 이를 알고 있다
밤 하늘 초롱초롱한 별빛 영혼으로
사는 이,
푸른 하늘에 흰 구름이 되어 님의 품안에
노니는 이,
떠오르는 태양 황홀한 사랑 동녘 향해 마냥 걷다가
사라진 이,
첫눈 내린 하얀길 마냥 걷다가 사라져
하얀 그리움이 된 이,
나
이런 이를 알고 있다”<1999.2.28.> 아멘.
- 이수철 신부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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