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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
커튼을 치지 않는 창문사이로 이른 아침의 햇살이 쏟아져 나온다.
짙은 검은 속눈썹이 잠시 파르르 떨리더니 탁해진 검푸른 바다를 들어낸다.
소리소문 없이 몸을 일으키자 시야에 잠시 어둠이 덮치듯 사라진다.
흐트러진 검디 검은 머리카락을 하얗고 가는 손으로 정리하며 조용히 옆을 바라본다.
일정한 호흡을 내며 불편하게 침대에 상체만 뉘인채 잠들어 있는 시후.
햇볓이 기분나쁜듯 눈을 가득 찡그리고 있는 모습에 화련은 저도 모르게 몸으로 그늘을 만들어 주었다.
그제서야 찡그린 인상을 피고 편안하다는 표정으로 잠들어 있는 시후.
그 모습이 아이 같아서 화련은 조심스럽게 손을 뻗어 머리카락을 쓰다듬었다.
부드러운 감촉이 손바닥 안에서 전해져 온다.
몇번 쓰다듬더니 미끄러지듯 하얀 손이 추락한다.
찡그렸던 미간을 스쳐지나가 미끄럼 타듯 오똑한 콧날을 지나서 입술 근처에서 멈칫-, 그리고는 화들짝 놀란듯 손을 땟다.
"...미쳤군, 진화련."
미친것이 틀림이 없다. 입술에.. 입술에.. 손을 대다니. 거기다 그의 입술이 스친 손끝이 뜨거운것만 같았다.
"이상한 놈."
손끝의 감촉을 없애기 위해 정리된 머리결을 쓰다듬자 부드러운 촉감이 손가락 사이를 빠져 나간다.
화련의 시선의 끝엔 자고 있는 시후가 들어왔다. 정말 이상한 놈이였다.
자신의 눈동자를 마주 하기란 힘들다는 것은 그 누구도 아닌 자신이 제일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마주하는 녀석, 어느 순간 자신이 그어 놓은 테두리를 넘은 녀석,
가끔은 신경쓰이게 만드는 녀석, 눈길을 끌게 만드는 녀석.
리온의 형이라는 작자에게 1인 병실을 따내고 필요도 없는 3일 입원이란 귀찮은 짓을 만드는 녀석.
자신에게 그늘막이를 시키는 녀석, 그럼에도 밉지 않는.. 이상한 녀석.
"...치워라, 내가 먹을 수 있다."
화련은 아침에 했던 생각을 정정해야 겠다고 생각했다.
밉지 않은 녀석이라니.. 아침이라 살짝 맛이 간것이 틀림이 없다.
어떻게 저렇게 귀찮고 밉상인 녀석을.. 그리 생각 할 수 있단 말인가.
"어허! 또 말!"
"......"
"빨리 입벌려!"
하아-, 하고 한숨을 내쉬기 무섭게 입안으로 들어온 혀에 화련의 인상이 와락- 구겨 졌다.
그 모습을 보고 씨익- 웃는 시후.
"..두손 두발 멀쩡하다, 가벼운 뇌진탕이라는 진단.. 못 들었나?"
"들었어, 그래도 해주고 싶다. 왜, 싫어?"
"불편하다."
싫다? 화련은 스스로에게 물었다. 싫은 건가? 불쾌한건가? 대답은 YES도 NO도 아니다.
그저 덤덤 했다. 다만 불편할 뿐이였다.
반짝반짝한 눈빛을 보자 화련은 자포자기 하는 심정으로 입을 달싹 거렸다.
불편? 그래, 불편 그리고 불편 속에서 피어오르는 부끄러움.
벌릴까 말까 고민하는 붉은 입술을 알아 차렸는지 시후가 밥을 떠 그 위에 반찬을 올려 놓는다.
'...이것 참, 죽도 아니고.'
스스로 생각해도 웃긴 상황이였지만.. 보람마저 느끼다는듯 웃는 그를 보니 입을 다물 수 없었다.
거의 자포자기 하는 심정으로 입술을 꾹 다물었다 벌렸다. 그러자 기다렸다는듯 들어오는 숟가락.
화련의 살벌한 눈동자에도 받아 먹는 그녀가 뿌듯하다는듯 그는 미소를 지우지 않았다.
"아, 묻었다."
묻었다는 말에 반사적으로 올라간 손. 방향을 잘 못잡았는지 매끈한 피부의 촉감만 느껴졌다.
그 모습에 시후가 큭- 하고 작게 웃자 화련이 인상을 찌푸렸다.
마치 알았어, 알았어~ 하듯 달래는 미소를 짓더니
그가 손을 뻗어 반대쪽 입술 살짝 아래 묻은 밥풀을 때어내어 자신의 입가로 가져가더니 씨익- 웃는다.
"맛있다."
화련이 멍- 하니 바라보자 그 모습마저 귀엽다는듯 씨익 웃는 그의 눈동자엔 따스함이 베여 있었다.
묘한 침묵속에 툭-, 데구르르~ 하는 소리에 시후와 화련의 시선이 동시에 소리가 난쪽으로 돌아갔다.
멍한 얼굴에서 무표정한 얼굴로 돌아간 화련과 달리 부드럽게 웃던 그의 얼굴이 창백해기 시작한다.
"...제기랄!"
욕설이라기 보다는 단말의 비명에 가까운 소리와 맞춰 울리는...
"화,화련아──!!!!!!"
유령의 고함소리. 문병온듯 바닥을 뒹구는 과일 바구니, 그리고 그의 뒤로 어색하게 웃으며 손을 흔드는 민석.
그 사이로 빼꼼히 고개를 내밀며 반갑다는듯
오두방정 떨며 손을 흔드는 강준과 리온 뒤로 꺼지라는 포스를 풍기고 있는 백의의 리안.
"...이, 이...!!!"
"자, 잠깐!! 령형!! 지금 이 상황엔 오해가 있는...!"
"닥쳐!! 저, 정시후!! 내가! 내가.. 너를 믿었건만!! 감히.. 감히.. 우리 화련이를!!!!"
"밥풀!! 밥풀 때준거야!!"
"그게 왜 니 입에 들어가는 거냐?!! 앙?!! 정시후! 이 개자식!!!"
"형!!!"
"우리 화련이는 못줘!!!!"
아수라장이 따로 없다.
다짜고짜 주먹을 날리는 유령과 죽자 살자 몸을 비틀어 피하면서도 잘만 짓걸이는 녀석들.
"안녕, 화련아. 아, 나 기억날려나? 김민석이라고 워낙 개성 강한 녀석들 사이에 있다 보니 잘 묻혀버리지."
잊고 싶어도 못 잊는것이 그녀의 기억력이다. 단합에서 시후의 옆에 앉은 사내였다.
"화련아~ 안녕! 몸은 어때?!"
"와우~ 역시 특실이라 좋긴 좋구나. 흑! 거기에 비하면 우리는 2인실..!"
화련이 앉아 있는 침대에 어느새 팔을 괴고 방긋방긋 웃는 리온과 우는 척 하는 강준.
그리고 검은 포스를 풍기고 들어온 백의의 의사, 리온의 형 리안.
"이것들아!! 병실에서 뭐 하는 짓 거리야!! 당장 안꺼져!!!"
투철한 직업 의식 속에서 나온 목소리는 이 시끄러운 소음사이에 묻혔다. 미간에 잡히는 내천(川)자.
화련은 한숨을 쉬며 아직도 '몸으로 대화해요~'가 끝나지 않는 령과 시후를 바라보았다.
요리조리 피한다 해도 좁은 공간이라 이미 몇대 얻어 맞은 시후가 이 악물고 피하고 있었다.
가는 손으로 머리를 쓸어 넘겼다. 침대에 아무렇게나 흩어져 있는 검은 폭포가 생동감 있게 율동친다.
그리고 옆 협탁위 과도를 손바닥 안으로 잡아 고정시켰다. 검은 폭포가 크게 너울거렸다.
휘익───!! 탁─!
눈깜짝할 사이에 시후의 멱살을 잡아 얼굴을 맞대고 있던 그 좁은 사이로 지나가 벽에 탁- 꽂힌다.
숨드리키는 소리와 함께 딱딱하게 굳은 령와 시후.
뻗뻗하게 굳은 고개로 벽에 꽂혀 파르르- 떨고 있는 과도를 돌아보고는 침을 꿀꺽 삼쳤다.
"시끄러워."
화련의 한 마디에 새파래진 얼굴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쪽을 향해 손을 뻗고 있는 그녀의 푸른 눈동자는 짜증을 담고 있었다.
신경질 적으로 머리를 쓸어 넘기고 베개 아래에서 책을 꺼내들었다.
편안하게 등을 기대고 책갈피를 끼워 둔 곳 부터
읽기 시작하는 그녀의 얼굴엔 조용한 분위기가 마음에 든듯 한것 부드럽게 풀려져 있었다.
"퇴출이다, 이 식충이 들아. 꺼져."
문쪽을 가리키는 리안의 말에 모두들 조용히 몸을 내빼기 시작한다.
혈육한테 망설임 없이 과도를 던지는 화련이나, 폭팔 직전의 리안이나.. 위험한 인물임은 두말할리 없었다.
모두가 나가자 리안은 한숨을 쉬었다.
소독 하고 머리에 난 상처를 확인할려고 온 것 치고는 저절로 두통이 느껴질 정도다.
리안은 침대로 옮기려던 발걸음을 멈췄다.
잠시.. 눈요기 하면서 스트레스를 푸는것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을 해본다.
'입 닳도록 자랑해던게 허언은 아니였군.'
창문 넘어로 들어오는 반짝 이는 햇살.
그 속에서도 고고한 어둠을 내뿜고 있는 검은 무명실은 밤하늘을 연상캐 했다.
검디 검은 머리색과 반대대는 진주 가루를 뿌려놓은듯 부드러운 피부.
긴 속눈썹이 가지런히 내려 음영을 만들어 냈다.
음영속에서도 조용히 흐르고 있는 푸른 바다는 깊이를 알 수 없을 만큼 고요했다.
바라보고 있으면 바다의 마력에 빠져 버릴것만 같은 위험한 끌임을 가지고 있는 눈동자.
날렵한 콧날을 따라 내려가면 단 하나의 단점이라 생각되는 미소 짓지 않는 붉은 입술이 눈에 들어온다.
18살이라는 것이 믿지기 않을 정도로 성숙한 그녀.
소녀라고 볼 수 없는 여인의 몸에 가까운 매력적인 라인이 병원 복장위에서도 고스란히 들어났다.
책을 읽고 있는 푸른 바다가, 검기 검은 무명실이 햇빛에 반짝이며 존재를 들어내는
초승달 문양의 귀걸이도 그 무엇 하나 그녀와 어색한 것이 없었다.
너희들과는 애초에 탄생 자체가 틀리다는듯 그녀는 주변을 앞도 하는 분위기를 가지고 있었다.
빛마저 흡수해버리는 검은 블랙홀 같은 머리카락을 하얀 손이 부드럽게 쓸어 넘긴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리안이 발걸음을 돌려 병실을 빠져 나갔다.
더 이상 보고 있다면.. 바다의 마력에 취해버릴것만 같다.
어쩐지 마음 한 구석에서 아쉬운 마음도 들었지만 자신의 세계로 빠져든 그녀의 모습은 아찔했다.
"..뭐야?"
도망치듯 벗아난 병실 앞에 퇴출 시킨 자들이 기다리고 있자 리안은 인상을 썼다.
'...빌어먹을, 점심은 물건너 갔군.'
"...원장실로 가지."
차기 원장이라고는 하지만 거의 확정과도 마찬가지 여서
원장 대신 병원의 총괄을 맞고 있는 그는 원장실을 사용하고 있었다.
병원 꼭대기 층 원장실로 들어가자 브라운 톤의 원목 가구들과 함께 벽한쪽을 차지하는 의학서적들.
그들은 그것에 신경을 쓰지도 않고 쇼파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가장 상석엔 늘 그랬듯 자연스럽게 유령이 앉았다.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거냐, 유령.
내가 아무리 병원에 쳐박혀 있다고는 하지만 요즘 실려오는 녀석들 너희 녀석들 아니냐?"
기다릴 필요도 없다는듯 리안이 말을 꺼냈다.
"...차 한 잔도 안주냐?"
"알아서 타 마셔. 이러는거 한두 이틀이냐?"
가차없다는 리안의 말에 유령은 어설픈 미소를 짓고는 한숨을 푹- 쉬고는 표정을 굳혔다.
리안이 이렇게 말을 꺼냈다면 돌아갈 필요는 없다.
"리안의 말대로 습격을.. 받고 있지.
신일공고 한테, 갑자기 들이닥쳐서 병원에 실려갈 정도로 밟아 놓고 몸을 빼는
게릴라전으로 행동하니깐 꼬리를 밟기도 반격하기도 쉽지 않지.
하지만 의도야 뻔하지. 우리 수를 줄일려고 하는 거다."
"......"
"게다가 요즘 시내에서 활동하고 있는 조직 '月下'의 움직임도 무시할 수는 없지."
월하의 이름이 거론대자 한 층 내려앉은 분위기 속에서 유령이 무덤덤한 목소리로 말을 꺼낸다.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저번이 선전포구 라고 했으니.. 각자 자기 구역, 애들 확실히 관리 해라.
알고 있지? 신일상고와 우리 연합의 싸움. 조폭이.. 개입이 되여 있었다. 운 좋게 이긴것과 다름 없지.
이번에도 같은 운이 일어난다고 보장 할 수 없다."
"...그래서 '이번에도' 신일공고와 붙을 꺼냐."
이번에도 라는 말에 유령의 시선이 비릿한 비웃음을 짓고 있는 리안을 향했다.
저번 접전도 시후의 요청에 의해 시작된 싸움이였다.
"서울 연합은 가만히 있으면 피해가 없을 거라는 것을 알고도.. 유령 너는 '정시후' 하나때문에
이번에도 애들을 그곳으로 보낼꺼냐? 우리같은 애송이들이 무엇을 할 수 있다고!
상대는 조폭이란 말이다! 전문적인 싸움꿈들! 필요에 의해서는 사람도 죽이는!
그 곳에 또 끼어들자는 말이냐?!! 너는! 애꿎은 애들을 그곳에 넣자고? 하!"
"......"
"차라리 사자 아가리 속에 대가리를 쳐넣으라고 그러지 그러냐? 존경하다 마지 않는 '진령'님의 말씀이면
좋아라 들어갈 골빈 녀석들은 쌓여 있을 테니깐! 그런데 말이다, 유령. 그 골빈 녀석들도 철모르고 혈기 넘치던
앞가림 못하는 10대가 아니란 말이다. 대학교 다니고 사회에 어울리는 녀석들을 다시 끌고 들어오기엔..
네가 그녀석들 인생에 너무 깊은 참견을 하는게 아닌가 싶은데 말이다."
입꼬리를 끌어 올리며 리안은 유령을 비판하고 있었다. 이제 그만 앞을 바라보라며 말이다.
"시후는 내 '가족'이다."
비릿하게 웃던 리안이 표정하나 변하지 않고 내뺃는 유령의 말에 싸늘하게 굳었다.
"빌어먹을 그놈의 '가족!', 그 놈의 '여동생!' 그게 그렇게 소중하냐!! 니 인생을 받칠 정도로!!
몸도 생각치 않고 미친듯이 찾아 헤맨 동생이! 4년만에 찾은 동생의 저런 냉정한 표정에도!!
뭐가 좋다는듯 헤실거리는 네놈도! 피 한방울 안썩인 정시후를 '동생'이라고 감싸는 것도!!
정작 '정시후'의 혈육인 '정시혁'은 지 형 못 잡아 먹어서 으르렁 거리는 꼴도!!
아주 웃겨 죽을것 같다!! 유령!! 니 놈이 잊고 있는 것 같은데 말이다..
니 놈이 사자 아가리 속에 끌고 가는 녀석들도
네 녀석 처럼 다쳐서 들어오지 않을까 걱정하는 '가족'이 있단 말이다!
바로 나처럼!! 정시후 옆에 붙어 있는 칠칠치 못한 내 동생이 걱정되는 나 처럼 말이다!!!"
거친 숨을 토해내는 리안. 리안의 마지막 말에 유령의 시선이 크게 흔들렸다.
'가족', 잊고 있었다. '가족'은.. 자신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였다.
리안이 동생인 리온을 걱정하는것과 같은.. 자신이 화련과 시후를 걱정하는 것과 같은..
어쩐지.. 속이 울렁거린다. 토할것만 같았다. 들어나는 자신의 이기심에 짙은 경멸을 느낀다. 그래도..
"그럼, 너는 하지 않아도 좋아. 리온도 마찬가지야. 강준도, 민석도, 그 외에 원하지 않는 녀석들도 마찬가지야."
"유령!!"
"난, 할꺼다. 갈꺼다. 그리고 도울꺼다. 그게 내방식이야. 내게는 그래도 '가족'인 녀석들이다.
손 놓고 소중한 것을 잃는 것은 못 본다.
리안아.. 우리 화련이 그렇게 떠나가고 나를 보며 화내지도, 원망하지도, 미워하지도 않았다.
나를 껴안아 주면서.. 내 잘 못이 아니라고 말해줬어. 그것이.. 어떤 기분이 였을 것아..?"
"......"
"그동안 나를 괴롭힌 모든 것들이 거짓말 처럼 사라졌지.
추악하고 괴로운 지옥속에서 한 줄기 빛이 내려와 나를 구원해 주는 듯 했지
얼어 붙어 있던 심장이 다시 뛰기 시작하며 뜨거운 피가 혈관을 타고 나를 따뜻하게 감싸는 그런.. 느낌이였지.
우리 예쁜 화련이 좋아하는 시후도, 늘 무표정한 얼굴을 하고 있지만 정만은 화련이도..
내 옆을 지켜주는 민석이도, 지금 이렇게 나를 걱정해 주는 너도,
우리 시후 옆에서 시후 웃게 만들어 주는 강준도, 리온이도, 나는 포기 못한다. 리안아."
"......"
"...다 내 가족이야. 미안하다."
"...!!!... 제기랄!! 그래! 네 마음대로 해!!!"
유령의 씁쓸한 미소와 사과에 리안은 울컥- 쏟아지는 감정을 이기지 못하고 자리를 박차고 원장실을 나갔다.
"...민석아."
"'진령아'."
'유령'이 아닌 '진령'으로 불러주는 녀석의 태도에 웃음이 나왔다. 바뀐 이름.
그것에 익숙해 졌지만 '진령'이라고 불릴때가 정신적 위안같은 것을 많이 받을때가 있다. 지금 처럼.
"강제적으로 모으지 말고 원하는 녀석들로만 연락 되면 바로 움직일 수 있도록 해줘."
"그래."
"괜찮아, '가족'이 잖아."
령과 시선을 마추진 민석이 쑥쓰러운듯 씨익- 웃자 그제서야 유령이 웃는다.
"그래, 가족이지."
"리안 녀석 말은 저렇게 해도.."
"후후-, 툴툴 거리며 함께 할 녀석이지."
"솔직하지 못한 녀석이라니깐."
"...그래서 더 미안하다."
"그 녀석도 그런 네 모습에 반해서 네 옆에 있었고 그래서 '가족'이 된거야."
부드럽게 미소 지어주는 민석을 따라 미소 짓자 민석이 귀여운 녀석- 이라 중얼거리며
유령의 머리를 헝크려트리고는 원장실을 나간다.
지금부터 가장 바쁜 사람은 민석이 될것이다. 유령은 머리 카락을 정리하며 강준과 리온을 바라보고 있었다.
"알고 있지? 시후 뿐만 아니라 너희들도 내게는 소중해."
"그 중에 화련이가 1등이죠?"
"우리 화련이랑 너랑은 등급부터가 틀려! 임마! 어따 비교해!"
"어머어머! 유령형 너무해! 형한테 이를거야!"
"참아라, 리온아. 그러면 정말 리안이 메스 들고 쫒아올지도 몰라."
강준의 농담에 유령이 짐짓 심각한 표정을 리온의 협박에 얼굴을 헬쑥해진다. 필히.. 연기뿐만은 아닐것이다.
"...너희들도 내 말 잘들었지?"
"저희가 빠질거라고 생각하는 겁니까? 이래뵈도 이 녀석 친구인데."
"성질 더러운 시후랑 같이 있다보면 본의 아니게 더러워 지는 걸요!! 신일공고 녀석들한테 빚도 있구요~"
강준과 리온의 말에 굳은 시후의 모습이 한층 풀어지는 것을 보며 유령은 부드럽게 웃는다.
"그래, 몸 관리 잘하고."
"네~ 걱정 마세요!"
"이미 팔팔해요!!"
씩씩하게 대답하고는 원장실을 나가자 남아 있는 사람은 시후와 유령 밖에 없다.
"...형."
시후가 어렵게 운을 땟다. 리안의 말은 틀린것은 없었다. 피 한방울 섞이지 않는 이들이 '가족'이라며
감싸고 도와주고 있지만 실제로 반쪽이라도 피가 흐르고 있는
'정시혁'과는.. 잡아 먹지 못해 으르렁 거리는게 현실이다.
"우리에겐 약점이 하나 있지, 그렇지 않니 시후야?"
"......"
시후의 몸이 딱딱하게 굳는다. 그가 할려는 말이 무엇인지 알아 차렸다.
"「화련이」."
"......"
"....시후야."
"네."
유령이 몸을 일으켰다. 그녀와 마찬가지로 우아한 몸동작으로 그가 시후를 껴안았다.
느닷없는 행동에 시후도 살짝 당황한듯 보였지만 이내 그의 어깨에 편하게 기대었다.
자신에게 유령 형은 형이자 아버지며 가족이였다.
비록 피 한방울 섞이지 않았다 한들 그건 부정 할 수 없는 마음의 유대로 생긴 '가족'이였다.
"...부탁한다."
작은 목소리지만 뒤섞인 감정이 시후에게 똑똑히 전해져 왔다.
'우리.. 화련이를 지켜다오, 시후야.'
병실에 그녀가 없다. 그렇다면.. 뻔하다. 시후는 발걸음을 옮겨 병원 옥상으로 올라갔다.
이미 면회시간이 끝나 병원에 있으면 안되지만 빽이라는 것은 이럴때 아니면 언제 써먹겠는가.
단단한 철문을 열자 사막한 여름 바람이 그를 강타했다.
자연스럽게 쓰여진 인상이 펴지자 눈에 들어오는 검은 하늘.
강하게 펌프질 하는 심장, 눈을 돌려 찾지 않아도 존재만으로 아름답게 빛나는 그녀.
검은 하늘을 배경삼아 아름답게 빛나는 검은 무명실은 어둠마저 흡수해 버리며 바람에 너울거리고 있었다.
검디 검은 머리카락 사이로 희미해져 가는 달빛을 받아 시린 빛을 뿜어내는 초승달 모양의 귀걸이가 바람에 파르르- 떨린다.
희미해져 가는 달빛을 받아 하얗게 반짝이는 피부는 마치 사람이 아닌것 같았다.
연지를 찍어 바른 피가 흐를듯 붉은 입술이 색정적으로 다가왔다. 긴 속눈썹 아래 고요히 흐르고 있는 망망대해.
그 속에 담겨져 있는 검은 하늘과 오묘한 조화를 이루어 내고 있었다.
그 속에 가득 묻혀져 있는 그리움에 시후의 가슴은 아렸다. 어딜 보며.. 그런 표정을 짓고 있는 것이냐.
붉은 핏물을 뚝뚝- 흘리며 생체기를 만드는 가슴을 애써 가리며 시후는 웃어 보였다.
일부러 줄이지 않는 발걸음으로 걸어가 이제는 익숙해 졌지만 간담 서리게 위태롭게 난간에 앉아 있는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발 아래로는 어디 하나 딛을 것이 없이 곧장 바닥으로 이어져 있다.
시후는 화련의 옆모습을 바라보다 이내 등을 돌려 난간에 기대었다.
확인.. 하고 말았다. 보고 말았다. 검은 하늘을 바라보고 있는 것이 아니였다.
그저 바다에 비추는 하늘 일 뿐.
담고 있는 것은 가슴 아릴법한 그리움, 허공을 응시하고 있는 그녀는 어딘가를 보고 있었다.
자신이 아닌.. 그 어딘가를.. 미치도록 작아 보이는 그녀가 슬퍼 보여서 다가가기 위해, 잡기 위해 손을 뻗으면..
달빛에 위로 받고 있는 그녀에게 닿지 않는다. 아무리 손을 뻗고 외쳐도 들리지 않고 잡히지 않는다.
인간이 신에게 닿을 수 없는 것처럼 그녀는.. 저 밤하늘 위에 달처럼 고고한 빛을 뿜는채..
그렇게 외롭게, 고독하게 달빛과 함께 한다.
시후가 요즘들어 줄기 끊기 시작했던 담배를 하나 물었다. 후- 하고 내뺃은 회색 연기가 뿌옇게 사라진다.
마치 달이 사라지기 전 자신을 잊지 말아달라는 듯 모든 마력을 내뿜듯 유독 달이 밝았다.
그래서 였을 것이다..
"...나는 8살까지 내게 아버지가 있는 줄.. 몰랐어"
가슴 속에 묻어 두었던 아픔을 꺼낸것은..
"내 아버지라는 작자는 보다 싶히 HJ기업 회장이지.
뻔한 스토리야. 잘나고 잘나신 회장님께서 본처로 모잘라 첩 하나 두고
그 첩의 아들을 자신 호적이 올리자 본처와 본처의 자식의 눈에 아니꼽게 보이는.. 아주 뻔하고 뻔한 스토리지."
시후는 보랗빛 하늘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오로지 달만 떠 있는 저 하늘에서 무엇을 찾고 있었던 것일까.
"내 경우는.. 작은 예외가 있었다는 것 빼고는, 회장님은 본처와 결혼했다. 회사와 가문을 위해.
하지만 사랑하던 여인이 있었지. 우리 어머니 셨어.
두분이 서로 사랑했기에.. 첩으로 나마 옆에 남아 계셨던 거겠지..?"
깊게 빨아들인 담배의 씁쓸한 맛이 허파를 가득 메우고 나갔지만..
심장에 씁쓸한 맛이 남는 것은 어떻게 내보내야 하는 것일까.
"HJ기업으로 부터 원조를 받고 있었기에 부유 했지.
그렇지만 아버지가 없다는 사실은 어린 나이의 내게는 큰 상처였다.
사생아라 놀림받아도 사생아가 뭔지 몰라 어머니께 물어보면 웃으 셨다.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트리실듯."
그녀의 시선이 느껴진다.
바람이 분다-, 사야에 흔들리는 무명실이 달빛을 마저 빨아 들여버리는데.. 어떻게 반짝일 수 있을 것일까.
"그 뒤로 묻지 않았지. 사생아가 뭔지, 대신 그렇게 부르는 동네 꼬마녀석들을 죽도록 패줬다.
그럴때마다 허리를 숙이는것은 어머니였지.
억울 했었다. 아버지가 무엇이길래.. 이렇게 서럽게 살아야 하는 것이지..?
생전 꺼내지 않는 아버지 얘기를 꺼냈었다.
언제나 슬픈 미소를 짓고 계시는 어머니의 표정이 싫었는데..
그때는 유독 그게 더 서러워서.. 쿡- 엉엉 울며 아버지한테 데리고 가 달라고 했지.
한참을 나를 내려보시던.. 어머니가 고개를 끄덕이셨지. 웃으시면서 '그래, 아버지 만나러 가자 구나.'"
시후는 눈을 감았다. 아직도 생생한 기억, 그때는 몰랐다.
재미 없는 뉴스 에서 인형 같이 딱딱한 표정을 지은채
멋스러운 검은 옷을 입고 나오며 무표정하게 연설을 하는 남자를 애뜻하고 그리운 눈동자로 바라보시던 어머니.
어린 마음에 어머니를 뺏길 것 같은 불안감에 질투가 났어도..
그날 이면 더더욱 활짝 웃으시던 아름다운 어머니가
행복해 보였기에 아무것도 모르고.. 어머니와 함께 웃었었다.
"...아마, 50주년 창립 기념이였을 거야. 멀리서나마 사랑하는 사람의 얼굴을 볼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지고
그날 아침 어머니는 마치 첫사랑에 빠진 소녀가 첫데이트에 나가는 것처럼 잔뜩 들뜬채 예쁘게 차려입으셨어.
2개월 전만 해도.. 우리 어머니가 제일 이뻤었어. 2개월 전 누구를 만나기 전에는."
시후가 고개를 돌렸다.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망망대해에에 자신이 비추는 것을 보자 씨익- 웃어 보인다.
그 웃음이 아파보여 화련은 뻗어 나갈려는 손으로 난간을 움켜 잡았다.
"그저 아버지가 생긴다는 생각에 방방 떨던 나를 보며 웃으셨어. 그게.. 아마 마지막 웃음이였어.
초록 불로 횡단 보도가 바뀌자.. 앞서 뛰어나가 빨리 오라고 손을 흔들자 웃고 계시던 어머니의 표정이 일그러 졌었어.
멀뚱멀뚱 서 있던 나를 향해.. 어머니가 내 이름을 크게 부르시며 나를 밀치셨지."
아픈 기억이 아픔이 되어 몸을 죄여온다. 시야를 가득 메운 붉은 피. 코를 찌르는 피비릿내.
눈 앞에 피웅덩이 한 가운데 있는 사람은.. 방금 전까지 웃고 계시던.. 아름다운 나의 어머니.
"..교통사고 였다. 문자를 확인하던 운전사가 빨간 불로 바뀐 신호를 못 보았지. 어머닌 1톤 트럭 치여서 즉사.
횡단 보도만.. 건넜으면 HJ기업 축하 행사장이였는데..
아무도 없는 초라한 장례식에 뉴스에서 보던 남자가 어린 날 데리고 갔다.
그것은.. 사랑하는 여인이 살린 아이에 대한 처음이자 마지막 아버지의 의무.. 였다. 여인은 사랑했지만..
아이 대신 죽은 여인의 아들은.. 사랑 할 수 없었던거지."
검은 눈동자에 가득 스며든 아픔. 목소리에 베인 습기는 화련의 가슴속으로 파고 들었다.
아픔을 삼키며 말을 잇는 그에게 그만 하라는 말도,
뻗어서 보이지 않는 눈물을 닦아 줄 수 없는 자신이.. 원망스러웠다.
"10년이다, 진화련. 10년. 이게.. 무슨 소리인지 알아?"
아픈 녀석이.. 웃고 있었다. 눈을 감은 채 간간히 불어오는 바람에 몸을 맡긴채 조용히 미소를 짓고 있었다.
"아픈.. 기억이지, 평생을 가도 잊지 못 할거야. 잊을 수 없을 거다. 내 어머니.. 였다.
내 유일한 '가족' 이였지. 그런데.. 상처 입은 마음을 움켜 안고 웅크리고 있는
내게 다가와 문을 두드린채 활짝 웃은채 '이리와, 너도 내 가족이야.'하는 사람들이.. 생겨 났다.
피가 섞이지 않아도.. 성이 달랐어도, 그 무엇 하나 닮은 구석이 없으면서도
비슷한 우리는.. 그렇게 '가족'이 되었어. 그렇기에.. 외롭지도, 아프지도 않아.
그저.. 아픔이 그리움이 되었을 뿐이야."
그녀를 향해 씨익- 웃는 정시후는. 강한 녀석이였다.
아픔이 거짓말 처럼 사라진 눈에는 사랑하는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이 넘칠듯 가득 차 있었다.
화련은 시선을 돌려 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사라질듯 가느다란 달. 내일은.. 초하루다. 밤이 사라지는 날.
사라질듯 위태롭기 짝이 없음애도.. 찬란한 은빛의 빛을 내뿜는 달의 여명에 취해버렸다.
"...검은 머리카락과 파란 눈동자를 가진 소녀가 있었다."
그녀의 하얀 귀에서 빛나고 있는 은빛 귀걸이가 작게 흔들린다.
"감정 변화가 없어 가족의 걱정과 사랑을 독차지 하던.. 행복한 소녀였지.
가족도 소녀를 사랑했고 소녀도 가족을 사랑했었다."
시후의 커다래진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자세하지 않은 대략적인 내용의 유령을 통해 알고 있었다.
하지만.. 알고 있다 한들 '누가'말해주냐의 차이는 커다란 것이였다.
"소녀에게는 오빠가 있었지. 4살이나 많았지. 어버이날, 생신에 멋진 선물을 하는 오빠가 부러웠다. 소녀는.
소녀에게는 동생이 있었지. 3살이나 적은. 사랑스러운 동생은 부모님의 얼굴에 웃음을 피우게 할 수 있는 애교가 부러웠다. 소녀는."
부러웠었다. '우리 큰아들 다컸네!'하시며 엉덩이를 두들겨 주시면 하지 말라며
얼굴을 붉히면서도 싫지 않다는 표정을 짓는 령도,
사랑스러운 애교로 활짝 웃는 부모님이 귀여워 죽겠다는듯
막내 성이를 꼭 껴안아 주시면 마주 안으며 얼굴을 묻을 수 있는 품이.
"질투가.. 났다. 형제에게. 오빠에게, 동생에게, 소녀는. 그리고 원망했다.
언제나 무표정밖에 지을 수 없는 자신이.
부모님이 좋아하실 선물도, 기뻐하실 애교도 할 수 없는 자신이 싫었다. 소녀는 돈을 모으기 시작했다.
12살에.. 주식에 손을 댈 정도로 소녀는 머리가 좋았지.
어버이날엔 카네이션 한 송이. 생신에는 좋아하시던 장미를 한 송이.
선물하면서 소녀는 돈을 모았다. 그리고 다 모았지.
2년후 소녀는.. 어머니 생신날 해외 여행 티켓을 선물해 드렸지.
언젠가 어머니가 가보고 싶다 했던 곳이였지. 기뻐 하셨다.
꼭 껴안아 주시던 그 품이 너무 따스해서 소녀는 기뻣다.
머리를 쓰다듬어 주시며 칭찬해 주는 그 음성이 부드러워서 소녀는 행복했다.
모든게 완벽했다.
부모님은 소녀가 드린 티켓을 들고 가서 아이를 키우면서 포기했던 자유를 잠시나마 즐기고 오시면..
모든게 끝나는 거였지. 소녀는 해피 엔딩을 바랬었다."
마치 동화를 들려주는듯 조용하고 나긋나긋한 음성에 시후는 마음이 편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끊겨진 음성에.. 화련을 응시하는 시후의 눈에 파르르- 떨리는 그녀의 아랫입술이 눈에 들어온다.
"...비행기가 추락하지만 않았다면..."
'비행기 추락 사고로 돌아가셨어..'
씁쓸한듯 말하는 기억속의 령. 무표정한 얼굴로 말을 잇는 화련. 하지만.. 그녀의 바다는 탁해지고 있었다.
"즐겁게 돌아오시며 두 팔을 벌리며 '다녀왔단다!'하실 부모님을 기다리던 아이들에겐.. 청천벽력같은 소리였지.
모든 것은.. 엇갈렸다. 깨저버렸지. 소녀의 어리석은 질투에.. 실은 소녀도 알고 있었다.
무정한 얼굴로 또래 아이들과 어울리지 못하는 소녀를 위해
소녀의 오빠와 동생에게 소녀와 함께 언제나 함께 있어주렴.
말하는 부드러운 음성을, 소녀가 작게 웃을 때면 세상 다 가진듯 기뻐하며 웃어 주시던 부모님을
백점짜리 시험지를 들고 오면 동네 떠나가라 자랑하러 다니시던 어머니와 아버지를.
소녀는.. 알고 있었다."
그녀가 웃음을 짓는다. 어딘가 자조적인 미소에 시후가 인상을 찌푸렸다.
"...소녀는 장례식장에도 들어가지 못했다. 들어 갈수도 없었지만.. 소녀의 오빠가 소녀를 허락하지 않았다.
부모님의 영정사진 앞에서 눈물 한 방울 보이지 않는 사람 같지 않는 자신이 미웠다.
소녀는 대신 부모님 장례시장 문앞에서 문이 닫힐때까지 서 있있었다. 손가락질 받으면서, 그렇게..
감정이라곤 없는 아이라고, 울지도 않는 아이라고, 징그러운 아이라며.. 그렇게."
시후의 눈이 크게 검은 눈동자가 흔들렸다.
"장례식이 끝나고 부모님과 함께 살던 집을 팔고 유산이 있었기에 사는 것은 당장은 문제 없었지만
미래를 생각한다면 턱 없이 부족한 금액이였다. 소녀의 오빠도 아직 고등학생이였다.
그리고.. 모든 것이 삐뚤어 지기 시작했다. 방에 박혀서 나오지 않는 소녀의 동생.
술과 싸움에 찌든 소녀의 오빠. 바닥으로 치닿는 성적. 소녀는 학교를 갔다 오면 요리를 시작했다.
인기척이란 없는 집에서 처음드는 식칼에 손이 베여도 뜨거운 후라이팬에 손이 디여도,
아무도.. 먹어주지 않는 요리를 했었다."
어떻게든 동생 성이도, 오빠인 령이도 원래대로 돌리고 싶었다.
충격에 헤어나오지 못하는 두명을 보며 자신이라도 정신 차리자고 생각했지만.. 힘들었다.
모든 것을 배척하는 성이와 자신을 보면 언제나 눈물을 흘리며 부모님의 죽음을 괴로워 하는 령.
그래서.. 깨달았다.
"...그리고 어느 순간, 소녀는 깨달았다. 자신이.. 있으면 안된다고."
팔을 당겨오는 단단한 손아귀, 마치 지금 당장 떠나는 그녀를 잡으려는듯 강한 악력에 화련은 그저 작게 웃었다.
마주 닿은 살로 감정이 고스란히 전해져 왔다. '가지마.'
"소녀의 일상을 평상시와 같았다. 등교거부 하고 있는 소녀의 동생을 위해 밥을 차려 방문앞에 가져다 놓고
술에 취해 늦게 들어올 소녀의 오빠를 위해 밥을 차려 놓고 방에 이불을 깔고 바로 잘 수 있게 만들었지.
그리고.. 가방을 꺼내 들었다. 그리고 옷 몇벌을 챙겼지 그게 끝이 였다.
여전히 표정없는 눈으로.. 집에 있을 소녀의 동생의 방문을 노크 하며 작게 동생의 이름을 불러보았지만
동생은 대답이 없었다. 옷 몇가지를 빼면, 돈도 사진도 아무것도 없이.. 소녀는 집을 나갔다.
그렇게.. 매정하게, 사람들이 손가락질 하는 것처럼 피도 눈물도 없이 가족을.. 그렇게 버렸다."
[...너때문이야! 네가.. 네가.. 죽였어!!]
[..제발, 내 눈앞에서 사라져. 제발.. 널 보면 화가나! 널 보면 돌아가신 부모님 얼굴이 떠올라!
그때마다.. 그때마다.. 숨이 막히고 괴로워! 피를 뒤집어쓴 부모님이 왜 너희들은 멀쩡히 살아 있냐고
내게 울부짖어..! 차라리.. 차라리... 화련아, 니가 죽지.. 네가 사라지지..]
차라리.. 그렇게 나를 원망했으면 그것이 더 편했을 것이다.
술이 깨는 아침이면 언제나 아프게 자신을 바라보는 눈동자.
곧은 눈동자는 사라지고 흔들리는 시선으로 똑바로 마주 하지 못하는 령.
가끔 자신에게 손찌검을 날리는 날이 였다면.. 령은 몇일 동안 집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래서.. 그게 더 괴로워서, 그렇게.. 등을 돌렸다. 자신은.. 도망친것이였다.
"...아니야, 그런게.. 그런게 아니야."
"알고 있다. 그런게 아니지. 소녀의 오빠도, 소녀도, 소녀의 동생도, 모든것이 힘들었던 시기 였으니깐."
"....진화련.."
자신을 부르는 은은한 목소리에 화련은 다시 입을 열었다. 이것은 그 뒤의 뒷이야기.
소녀의 오빠도, 소녀의 동생도 모르는 소녀의 이야기.
"소녀는 그렇게 이곳저것 정체 없이 걸었지. 비가.. 오고 있었다. 장마 철인 여름이였다.
폭우속에서 갈 곳 없는 소녀는.. 한강을 바라보며 서 있었지 그리고.. 소녀 앞에 아름다운 사내가 나타났지."
"...아..."
"'나와 가지 않겠나.' 소녀 앞에 벌린 하얀 손. 그 손을.. 소녀는 잡았다."
또 다른 의미로 커지는 눈동자. 그 모습이 한 줌의 모래바람 같아서 시후는 저도 모르게 팔을 잡아 당기고 말았다.
난간 안쪽으로 기우는 몸이 떨어지는 것을 막기 위해 손을 뻗자 마자 그의 팔을 잡아당기는 하얀 손.
하얀 손에 의해 시후는 떨어지는 그녀의 몸을 받아야 했다.
꽤 큰 소리가 났는데도 아픈 기색 없이 고요한 눈으로 시후는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뒤에서 빛나고 있는 하얀 달.
마치.. 그녀와 같은 존재인것 같다. 손을 뻗을래야 닿을 수 없는.
"...우리는,"
자신의 위에서 내려다 보고 있는 푸른 바다가 고요히 흘러간다. 시후의 양 옆으로 쳐지는 검은 무명실로 짠 커튼.
"...비슷하되, 비슷하지 않는것 같구나."
또다, 그때 그의 집 옥상에서 노래를 부른 후의 표정이다. 그런 표정은.. 반칙이다.
몸을 일으키는 화련의 허리를 다짜고짜 껴안았다.
그녀는 등을 난간에 기댄채 품에는 시후를 안고 있는 꼴이 되었다.
잠시 멍- 하다가 작게 웃어버리고 마는 그녀.
"...넌 이상한 녀석이야, 알고 있어? 진화련."
"내가 할 소리를 하는 구나."
"......"
"......"
시후가 상체를 좀 더 끌어 올려 그녀의 가슴에 고개를 묻었다.
움찔 하는 기색 없는 화련은 조용히 있을 뿐이였다.
조심스럽게 그녀의 왼쪽 가슴에 고개를 기대는 시후.
안정감 있는 심장소리가 시후의 마음을 편하게 만든다.
"..그 소녀는."
심장 소리에 귀 기울리던 시후가 운을 때었다.
"....지금, 행복 할까-?"
뜬금 없는 질문에 검보랗빛 하늘에 닿은 시선이 추락한다. 마치 대답을 듣기 무서워 하는 아이처럼
시후는 고개를 들지 않은 채 그녀의 가슴에 기대에 심장소리를 들으며 눈을 감고 있다.
"....그렇다면.. 그 어린 소년은,"
"......"
"..행복 하더냐-?"
화련의 되묻는 말에 시후의 몸이 움찔인다.
단단한 팔뚝이 가는 허리를 죄여오지만 화련은 그저 시후를 내려다 보고 있었다.
잠시 후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리는 하는 소리에 화련은 저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주변마저 환하게 바꿔버릴 미소를 시후는 보지 못했다. 금새 얼굴을 무표정을 바꾼 화련은 손을 들어올렸다.
하얗고 가는 손이 시후의 머리위와 등위로 올려지자 아까보다 더더욱 움찔- 거리는 몸.
화련은 소리 죽여 쿡- 하고 웃지만 울림때문인지 시후가 불만스러운듯 허리를 다시 죄여왔다.
마치 어린 아이 달래듯 머리를 쓰다듬던 손으로 툭툭- 두어번
두드리자 그제서야 시선을 들어올리는 시후를 향해 고개를 숙였다.
놀란듯 굳어버린 그의 귓가에 뜨거움 숨을 불어넣자 솜털이 바짝 선다.
"...사라져 가는 달빛에 취했다고.. 변명해두지, 정시후."
그녀가 고개를 다시 들어올리자 그제서야 의아한듯 시선을 마주하는 시후를 힐끔 본뒤 그녀가 난간에 고개를 기대었다.
숨을 크게 들이쉬고 내뺃는 숨과 함께 울리는 고요한 그녀의 아름다운 미성.
검보랗빛 창공을 누비는 아름다운 노랫소리에 달빛 마저 반한듯 그녀의 주변은 시린 빛을 내려준다.
The milkyway upon the heaven
Is twinkling just for you
And Mr. moon he came by
To say good-night to you
I'll sing for you I'll sing for mother
Praying for the world
And for the people everywhere
Gonna show them all we care
<하늘 위에선 은하수가
널 위해 반짝거리고
잘자라는 말을 전하려고
달님도 들렀단다.
난 널 위해 노래할 거야.
엄마를 위해서도
우린 세상을 위해 기도하고 있어.
세상 모든 사람들을 위해서도
모두에게 우리가 걱정하고 있다는 걸 보여줄거야.>
Oh my sleeping child the world 's so wild
but you build your own paradise
That's one reason why i'll cover you sleeping child
<얘야! 세상은 참 험하단다!
근데도 넌 정말 행복하게 잠들어 있구나!
그래서 내가 널
보호해 주려는 거야.>
If all the people around the world
They had a mind like yours
We'd have no fighting and no wars
There would be lasting peace on earth
If all the kings and all the leaders
Could see you here this way
They would hold the earth in their arms
They would learn to watch you play
<만약 세상 모든 사람들이
너같은 마음을 가졌다면,
싸움도 전쟁도 없을 테고,
세상엔 평화가 계속될텐데...
만약 모든 왕과 지도자들이
여기 있는 네 모습을 본다면,
세상을 자기 품에 안고,
네가 노는 걸 지켜보게 될텐데...
(지켜보게 될텐데...)>
Oh my sleeping child the world 's so wild
but you build your own paradise
That's one reason why i'll cover you sleeping child
<얘야! 세상은 참 험하단다!
근데도 넌 정말 행복하게 잠들어 있구나!
그래서 내가 널
보호해 주려는 거야.>
I'm gonna cover my sleeping child
Keep you away from the world so wild
<난 너를 보호해 줄 거야.
너무도 험한 세상으로부터 널 지켜줄거야.>
<Michael Learns To Rock - Sleeping child>
...시후의 심장이 공명하기 시작했다.
음에 맞추어 부드럽게 뛰던 그녀의 심장소리에 맞춰 시후의 심장도 거샌 박동으로 자신을 존재를 알렸다.
지금 이 순간만큼은 행복하다는듯 가는 미성안에 가득 감겨 있는 따스함이 시후의 몸을 감쌓다.
마치.. 엄마처럼, 이제는 기억나지 않는 그 손길을 대신 하는듯 등과 머리를 쓰다듬는 손길에 시후는.. 눈물이 날것 만 같았다.
가슴 한 구석을 치고 올라오는 따스함에 그녀 답지 않는 모습에 무방비한 자신에게 짓궃은 장난을 치듯..
그녀는 너무 쉽게 마음에 벽을 넘어서.. 대책도 없이 파고 들었다.
파고들어서.. 파고 들어서 이제는 뺄 수도 없이 그렇게..
자신의 커다란 일부로 자리 잡아 간다. 차갑지만.. 누구보다 따뜻한 체온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엄마,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야.'
서서히 밀려오는 어둠 속에서 시후는 조용히 눈을 감았다.
"...너와 잘 어울리지 않더냐, '잠자는 아이'라니.."
평소의 시니컬한 표정을 어디 갔는지 정말로 엄마 품에서
편안한 안식을 취하는 아이 같은 모습에 화련은 미소를 짓고 말았다.
어른인 척 해도 녀석은 어린 아이였다.
사람의 체온을 갈구하는.. 그것은 어쩌면 자신도 마찬가지 그렇기에 그의 존재를 인식했다.
기분이 좋았다. 한국에 와서 달을 보던 그 순간 마다 혼자라는 생각을 떨칠 수 없었는데..
"...이상한 놈."
오늘은 '하나'가 아닌 '둘'이 되었음을 느껴버렸다. 그것은 아마..
'...소년은, 소녀를 만나서 행복이란것 알게 됐어.'
그의 중얼거리는듯한 작은 대답 때문이겠지.
주저리) 아... 친구에게 끌려 갔다 왔습니다-_-.
전화를 받았지요, 잠시 나오라기에.. 트레이닝 복 차림 그대로 입고.. 나가서, 노래방 갔지요-_-
단 한치의 말한마디도 허용하지 않고.. 한쪽시 팔짱을 끼더니 하는말 '가자-!!'
무서운것들...아, 목아파ㅜㅜ
첫댓글 잼있어 담편이 기대되
안녕하세요, 시노모토 사쿠님. 즐거운 주말이랍니다(샤방샤방-) 하루도 빠짐없이 댓글! 정말 기쁘어요'ㅂ'!! 집에서 방콕 하고 있다가 이제야 인소닷에 발자국 찍습니다, 즐거운 주말되시구요~ 다음편도 꼭! 읽어주세요(싱긋-)
언제... 하서가 나오나여?? ㅜㅡㅜ 만약나온다면 삼각관계가 형성되나요???
그, 글쎄요.. 우리 하서 언제 나올까요-_-...후후후훗- 나온다면 삼각 관계라.. 저는 그저 삼각관계라는 복잡한 관계는..(쿨럭-!) 되도록 피하고픈 마음이지만.. 하하! 어찌 될지는 저도 모릅니다(싱긋-)<퍽! 이런 무책임한..!!
삼각관계 형성하지 말고 시후와화련이 이어주세요
..그, 글쎄요-? 시후와, 화련이.. 아, 웃긴 커플이 될것 같으면서도 상당히 잘 어울리지만.. 저는 시후 보다는 하서♥(뭐지.. 이 검은 하트는?!)가 좋은 1人입니다(싱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