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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내용을 삭제하지 마세요!!
(아래 선 아래에 글을 올리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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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https://cafe.naver.com/sisa33/37449
출처: https://cafe.naver.com/sisa33/37446
출처: https://youtu.be/H8ZugeqcHGc
[주체섬유 비날론]역사상 2번째 합성섬유가 북에서 탄생? 주체섬유 비날론 돋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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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 2024. 6. 24. #비날론 #주체섬유 #28비날론련합기업소
전 세계 역사상 2번째 합성섬유가 북에서 만들어졌다는 사실 아시나요? 🤔 (첫번째는 그 유명한 나일론~~) 북의 국보급 과학자 리승기 박사가 만든 '비날론'이라고 하는데요, 독특하게도 석유가 아닌 석탄에서 섬유를 뽑아낸다는군요!! 과연 어떻게 만들어졌고, 공장모습은 어떤지 돋보기로 들여다봅니다 🧐🧐🧐 (2022.8.17. 북녘의하루 1화 中) #비날론 #주체섬유 #28비날론련합기업소 #통일TV #북녘의하루
출처: https://youtu.be/-2kBngewYEA?si=pkgdSo8PBbKD8bos
北 주체섬유 비날론은 무엇? 우리도 스포츠타월로 쓰고 있어
조회수 2.8천회 · 5년 전...더보기
한반도N
5.8만
출처:https://youtu.be/A470DqqBBhk
벨 통신 479, FAB-3000 전선 투입, 전쟁의 판도 바꾼다 // 다게스탄 테러 // 세바스토폴 ATACMS 공격 배후에 대한 러시아 보복 대응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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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 전
6/23, PEN TV 주간 종합 뉴스를 번역합니다. 다게스탄의 두 도시 데르벤트 와 마카츠칼라에서 테러가 발생했습니다, 이들은 경찰과 정교회, 유태인회당등을 공격하여 십여명 사망자를 발생시켰으며, 테러범 6명은 사살되었습니다. 다게스탄의 도시 마하츠칼라에 저녁 9시 테러범들은 정교회를 침입하였고 무차별 난사로 신부 1명이 사망하였으며, 신도들은 지하실에 집단 대피하는 소동이 있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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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https://youtu.be/9qyMfYtyL6s
美육참 “레바논戰 참전 불가"/ 이스라엘, 절대 무기 경고/ 후티에 쩔쩔맨 이유/ 글로벌호크 격추 루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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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 시청 중 최초 공개가 진행 중입니다. 3분 전에 시작했습니다. #houthi #이스라엘 #레바논
본 채널은 시청자님들의 후원으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출처: https://www.tongiltimes.com/news/articleView.html?idxno=2336
[류경완의 국제평화뉴스] 조‧러 정상회담 "제국주의 패권 짓부수고 평화로운 다극세계 건설"
* 조‧러 정상회담 "제국주의 패권 짓부수고 평화로운 다극세계 건설" * 주미 러 대사 "푸틴의 조선·베트남 방문, 미 정책 실패 보여줘" * 푸틴 "세계 힘 균형 위해 핵무기 계속 개발…유라시아 안보체계 제안" * 중 외교부 "SNS 조작해 타국 이미지 먹칠하는 건 미국의 일관된 방법" * "이후의 세계 : 중국이 서방에 불을 지르고 G7을 매장하다" * 뉴칼레도니아 분리독립 단체 대표, '소요 주동' 프랑스 본토 이송 * "헤즈볼라와 전면전 시 이스라엘 아이언돔 힘 못쓸 수도" * "붕괴 예측가능해졌다" 이스라엘 역사가·인권운동가 일란 파페 * 로동신문 "폭발 정세 치닫는 홍해 주변 정세...예멘, 미 항모 아이젠하워 공격" * 시모어 허쉬 "러시아와 미국 사이에 우크라 관련 비밀 협상 진행 중" * "5가지 이유로 젤렌스키 제거 결정"...푸틴 "내년 상반기 교체될 것" * 니제르, 프랑스 원전기업 오라노 우라늄 광산 운영면허 취소 * 이란, 철도로 카스피해~페르시아만 연결...국제북남운송회랑(INSTC) 1,468km 개통 * 라인야후 "네이버와 시스템분리 앞당길 것…일 서비스 위탁 종료" 저자: 류경완 코리아국제평화포럼 이사장 |
[류경완의 국제평화뉴스 24.06.24(651)]
출처: https://youtu.be/IM48SdLbsVQ
[자막뉴스] 북-러 조약 파장 현실화?…軍 최고 실세의 의미심장한 말 / YT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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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 2024. 6. 25. #YTN자막뉴스
북한 박정천 노동당 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이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공개한 담화입니다. 미국이 우크라이나가 러시아 본토를 공격할 때 미국산 무기를 사용할 수 있게 추가로 허용한 것을 강하게 비판했습니다. 미국이 반러시아 대결광의 진모를 드러냈다고 비판하며 러시아가 어떤 대응을 해도 정의의 행동이고 철저한 정당방위라며 옹호했습니다. 특히, 북한은 러시아 군대, 인민과 언제나 함께 있을 거라고 밝혀 주목됩니다. 이를 두고 유사시 군사 원조를 하기로 한 조약에 따라 북한군 파병 가능성을 시사한 것 아니냐는 해석도 나옵니다. 일각에선 공병부대와 북한제 무기를 운용할 전투병 파병 가능성을 예상하기도 합니다.
출처: https://youtu.be/LfVx9ie5_YQ
북한, 또 오물 풍선 살포‥올해 5번째 (2024.06.25 /뉴스투데이/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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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는 대한민국의 공영 방송 서비스입니다. 위키 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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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 어젯밤 또다시 남쪽으로 오물 풍선을 띄웠습니다. 지난 9일 이후 15일 만인데요. …
출처: https://www.youtube.com/live/Xhz8iI8dUCE?si=DE9j4UPSb7V0md7J
북한, 또 대남 오물풍선…22시 현재 서울 상공 진입 추정 / YTN
현재 370명 시청 중#북한 #오물풍선 #YTN실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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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https://youtu.be/Vi3bgmNb83M?si=sqgstXy_nyNexHvT
에이태큼스 발사 뒤 '혼비백산'…분노한 러시아, 보복 예고 / SBS 8뉴스
조회수 4.5천회 · 24분 전#우크라이나 #러시아 #탄도미사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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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 뉴스
433만
출처: https://youtu.be/piNoAJZUvqg?si=7OnYcenL8fPwPpIT
러 S-500, 어태큼스 80% 요격/영 언론, 2주 전 우크라 테러 준비 보도/러, 6월중 FAB 폭탄 2400발 투하/19세기로 돌아간 우크라이나/아레스토비치, 대선 출마 선언
조회수 138회 · 36분 전...더보기
지피지기
5.61만
출처:https://youtu.be/F3eUicyQYdo
[삐소장님] 남침을 비호하는 윤석열 #김태형 #ㅆㄷㄱ #남침 #오물풍선 #확성기 #군사분계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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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 전
ㅆㄷㄱ 특화 채널입니다. 많은 응원 부탁드립니다.
출처:https://www.youtube.com/live/icifu233v0M?si=EXHRwy7kGHXGK2B7
에디터픽] "아이언돔 못 버텨..전면전 시 지원" 美, 초유의 결정 / YTN
조회수 35만회 · 스트리밍 시간: 22시간 전#이스라엘 #헤즈볼라 #레바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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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TN
450만
출처: https://youtu.be/W2vD-q4HBy4?si=UhSaLJSAGTXYQp-2
트럼프가 보는 우크라이나 분쟁의 근본원인!/우크라이나 ATACMS로 민간인 살상!
조회수 3.1천회 · 4시간 전...더보기
월드 리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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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https://youtu.be/iznofgnA0ZA
중국, 타이완 지도부에 사형 협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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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 2024. 6. 24.
중국이 타이완 민진당 지도부에 대해 극도의 공포를 심고 있습니다. 6월 21일 중국의 國台辦은 공안부등 5부 합동 기자회견을 갖고 타이완 독립 분열 행위자를 엄벌하겠다면서 22개조로 구성된 법률문건을 발표했습니다. 분열국가행위에 대해서는 최고 사형, 분열선동자는 5년이상의 징역, 해외에서 독립에 관여하는 자에 대해서는 궐석 재판을 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중국사회과학원 타이완 연구소 연구원 천구이칭은 타이완 독립분열 집단 가운데 지위가 높은 분자들은 국가와 인민에 위해를 가하는 것으로 규정해 사형에 처하기로 했다고 해석합니다.
출처: https://youtu.be/iiinaAXvb8s?si=sPjOT3rBBQP0WXKW
글로벌 스트롱 리더들의 거국적 만남
조회수 11만회 · 2시간 전...더보기
슈카월드
325만
출처: https://youtu.be/ubuoSCDUY7A?si=kGphkyXMjeu8LF9L
지구상에 세 개의 앙마국이 있다! 미쿡 국무장관 면전에서 돌직구 꽂아 버린 용자 (이 정치인에겐 내일은 없다? ㅋㅋㅋ)
조회수 30회 · 10시간 전...더보기
오하이오통신
270
출처: https://www.tongiltimes.com/news/articleView.html?idxno=2334
[백철현의 맑스주의로 세상보기] 조러정상회담과 당랑거철 ㅡ 조러정상회담은 우리에게 무엇을 해야할지 보여주고 있다
현대제국주의는 미국을 우두머리로 하는 제국주의 질서이다. 다극화는 이 패권을 없애기 위한 반패권이다. 한미동맹과 조러동맹, 미일한 동맹과 조중러동맹 사이에서 중립적이고 양비론적 태도에 빠져 있는 것을 진보세력이라고 할 수 없다. 미일한동맹의 전쟁책동에 맞서 반미반제 평화애호를 내걸고 싸워야 한다. 중러 제국주의론의 허위와 여기에 기초한 양비론이 아니라 현대 제국주의의 최상위 우두머리인 미제국주의의 침략정책, 대북 적대정책에 맞서 대북적대 정책의 철회, 제재 철회와 미군철수 평화협정 체결을 위해 견결하게 투쟁해야 한다. 미제국주의를 등에 업고 일본 제국주의를 끌어들여 반북, 반중, 반러 적대를 일삼고 한반도와 동북아를 전쟁의 재앙으로 몰아가는 미일한 전쟁동맹체와 그 주구인 전쟁광 윤석열 정권을 하루빨리 퇴진시켜야 한다. 쇠퇴하는 미국의 자연쇠퇴를 기다리지 않고 제국주의의 소멸을 위해 투쟁해야 한다. 국제정세의 도도한 변화를 제대로 인식하여 진보적 실천을 해야 한다. 저자: 백철현. 통일시대연구원 연구위원. |
출처:https://www.tongiltimes.com/news/articleView.html?idxno=2331
[기고2]: 로씨야연방 뿌찐 대통령의 역사적인 2024조선방문에 대하여(Ⅱ)
정기열박사(21세기연구원 원장/제4언론 발행인겸편집인/조선대학교 객원교수) 2024조로조약체결은 ‘21세기 다극시대 새로운 국제질서수립과정에 천지개벽 같은 사건’ 2024조로조약체결은 조로 두나라는 물론 제국주의세력의 온갖 비법적.불법적.초법적 경제봉쇄제재에 시달리는 세상 모든 나라의 해방도 목적한다 2024조로조약체결은 조로는 물론 중국, 이란 같은 반제자주국가들에 대한 미영불 주도 핵침략전쟁시도들도 결정적으로 제어해내어 인류의 평화와 안전도 담보하게 될 것이다 |
정기열박사
II부
<조선과 러시아 사이 체결된 포괄적인 전략적 동반자 관계에 관한 조약>을 중심으로
로씨야연방 뿌찐 대통령의 역사적인 2024조선방문의 마지막을 장식한 대미는 주지하듯 24년 만에 결행된 두번째 조선공식방문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함께 <조선과 러시아 사이의 포괄적인 전략적 동반자 관계에 관한 조약>(Comprehensive Strategic Partnership Treaty: 이하, 2024조로조약체결, 2024조약체결, 혹은 2024조약)을 체결한 사건이다.
우리말에 ‘천지개벽’(天地開闢)이란 표현이 있다. “세상천지가 뒤집어질 정도의 참으로 큰 변화”를 뜻하는 말이다. “전대미문의 인류사적 사건”이라고 정의할 수 있는 “21세기 다극세계창설”과 동시에 “종말을 고한 500년 일극세상이 잃어버린 제국주의패권 되찾아보겠다며 오늘 인류의 공멸을 초래할 세계핵대전도 불사할 듯” 미쳐 마구 날뛰는 21세기 초 오늘의 첨예한 지구촌국제정세를 조감할 때 2024조로조약체결은 정녕 ‘천지개벽사건’, ‘천지개벽 같은 사건’, 혹은 ‘천지개벽이 발생한 것에 다름없는 “일대사변”이 아닐 수 없다.
2024조로조약체결은 ‘21세기 다극시대 새로운 국제질서수립과정에 천지개벽 같은 사건’
2024조로조약체결은 세상을 500년 일극지배하다 패망한 서양제국주의 관뚜껑에 마치 대못을 박은 것 같은 사건이다.
관 속의 누운 처지가 된 제국주의가 되살아날 꿈조차 아예 꾸지 못하게 커다란 대못을 박은 것 같은 사건이란 것이다. 왜, 그리고 무슨 근거에서 그리 해석하고 주장할 수 있나? 오래 전부터 ‘퇴물’ 취급 받으며 “늙은 제국”이라 불린 서양제국주의는 그러나 지난 2년 반 우크라이나에 대한 로씨야 “특수군사작전” 거치며 오늘은 아예 산송장 신세가 됐다.
그러나 그들은 오늘도 ‘워싱턴제국 서양좀비군단’으로 동원되어 우크라이나대리전에 직접 투입되거나 기시다, 윤처럼 미국핵무기 짊어진 채 ‘동양좀비군단’으로 워싱턴이 벌이는 핵전쟁 불장난질에 뛰어들려 하고 있다. 아마도 그런 등등의 모든 이유 때문일 것이다. 이미 오래 전 제국주의관에 산송장 상태로 누어 있던 그들 관뚜껑에 ‘조로동맹관계’란 이름의 ‘가장 강력한’ 대못이 박힌 이유가! 2024조약체결사건은 그러므로 이미 사망한 서양세력이 살아 돌아올 리도 없지만 만의 하나 제국주의 패잔병세력이 아직 어딘가 숨이 붙은 채 숨어 살아있더라도 그들이 다시는 제국주의에 대한 망상조차도 꿈꾸지 못하게 할 정도의 역할을 하게 될 것이 명약관화해 보인다.
2024조로조약체결은 조로 두나라는 물론 제국주의세력의 온갖 비법적.불법적.초법적 경제봉쇄제재에 시달리는 세상 모든 나라의 해방도 목적한다
2024조약체결은 먼저 경제적 측면에서 1990년대 초 소련방해체 뒤 30년 유엔조직 앞세워 조선에게 일방적으로 가한 미국 주도 “고립압살정권교체전략의 종말”을 목적한 것은 물론 2022년 2월 로씨야가 미국과 서방집단전체의 우크라이나대리전을 상대로 특수군사작전 전개한 뒤 그들 서방집단으로부터 무려 “2만여개 넘는 경제제재”를 받고 있는 로씨야에 대한 그들의 고립압살정권교체전략의 종말 또한 목적했다.
2024조약 전문에 기초하면 그리 해석하는 것이 틀리지 않다. 옳다. 따라서 천지개벽이 발생한 것에 다름없는 “중대한 사변”으로서 2024조약체결은 조로에 대한 미국 주도 경제침략전쟁이 머지않아 종말을 맞게 될 것을 또한 예고하고 있다. 그리 해석하는 것이 틀리지 않을 경우 향후 21세기 다극시대 새로운 국제질서수립은 세계적 범위에서 인류절대다수의 적극적 지지와 참여 속에 빠르게 진척될 것이 명약관화하다. 그리 믿어 의심치 않는다.
제국주의자들의 경제침략전쟁을 무력화시킨 뒤 더욱 활짝 꽃필 조선과 로씨야의 자립적 민족경제발전전략은 향후 인류사에 참으로 지대한 영향을 끼치게 될 것임은 물론 인류 절대다수의 운명을 바꾸고도 남을 정도로 위대한 인류문화유산으로 영원히 기록될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리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러므로 2024조약체결은 먼저 경제적 의미에서 조로에 대한 미국 주도 고립압살정권교체전략에 머지않아 결정적 “돌파구”가 마련될 것이 확실해 보인다. 2024조약체결은 따라서 조선에 대해 1950년 전쟁 때부터 가해진 하여 ‘무한대 [경제]제재체제’(indefinite regime) 같은 제국주의경제침략전쟁에 일종의 사망선고 혹은 폐기처분선고를 내린 것으로 해석해서 무리가 없다 믿는다.
2024조로조약체결은 조로는 물론 중국, 이란 같은 반제자주국가들에 대한 미영불 주도 핵침략전쟁시도들도 결정적으로 제어해내어 인류의 평화와 안전도 담보하게 될 것이다
실질적으로 ‘군사동맹관계’를 뜻하는 2024조약체결은 조로 자신은 물론 중국, 이란 같은 다른 반제자주국가들에게도 가해지고 있는 미국 주도 핵전쟁 불장난질에도 결국 제동이 걸리고 말 것을 또한 예고하고 있다. 경제적 분야에 이어 군사적 분야에서도 머지않아 현실화될 위에서 논한 그 모든 혁명적 변화와 결과들은 향후 ‘온 세상의 다극화’를 실현하는 인류사적 대업에도 지대한 영향을 끼치게 될 것이 분명하다.
무슨 근거에서 그리 예고하고 확실해 보인다 주장할 수 있나? 그리 해석하고 주장할 수 있는 근거는 2024조로조약(전문)이다. 조약 곳곳에서 어렵지 않게 근거들을 찾을 수 있다.
한편 아래 스푸트닉 6월 20일자 기사 또한 좋은 근거. 먼저 조약 제4조에 기초하면 2024조약은 군사적 의미에서 “군사동맹관계”를 뜻한다. 김 위원장이 조약체결 뒤 공동발표회장에서 협정체결을 두고 “중대한 사변”이라 정의한 이유가 아니었을까 싶다. ‘조로동맹관계’가 무엇을 뜻하는지 좀 더 깊이 이해할 수 있기 위해 위에 언급한 스푸트닉 20일자 기사를 의역 포함한 원문 그대로 번역, 소개한다:
“만약 로씨야가 나토국가들과 무력충돌(제국주의침략전쟁)에 직면할 경우 조선은 자동으로 참전하게 되며, 반대로 조선이 [서방.일본] 한국 앞세운 미국과의 제국주의침략전쟁에 직면할 경우 로씨야 또한 자동으로 참전하게 될 것이다”(The DPRK would be obliged to help Russia defend itself if Russia gets into a conflict with NATO countries; just as Russia would be obliged to help Pyongyang if North Korea enters into a conflict with the US and South Korea”.)
독자들 이해를 돕기 위해 2024조로조약 <제4조> 또한 참고로 소개한다:
제4 조:
“쌍방 중 어느 일방이 개별적인 국가 또는 여러 국가들로부터 무력침공을 받아 전쟁상태에 처하게 되는 경우 타방은 유엔헌장 제51조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 로씨야련방공화국 법에 준하여 지체없이 자기가 보유하고 있는 모든 수단으로 군사적 및 기타 원조를 제공한다.”
끝으로 [기고2]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2024조로조약에서 부분 발췌한 내용을 아래 소개한다. 참고가 되기 바란다.
부록
서문에서
출처:http://www.jajusibo.com/65169
[개벽예감 591] 새로운 반제동맹조약의 효력은 무기한, 위력은 무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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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호석 정세연구소 소장
기사입력 2024-06-24
<차례>
1. 중국과 로씨야가 새로운 반제동맹조약을 체결하지 못한 사연
2. 임박한 로씨야와 이란의 새로운 반제동맹조약 체결
3. 24년 전 반제공동행동 합의한 조선과 로씨야
4. 중대한 메시지와 워스또츠느이 정상회담
5. 새로운 반제동맹조약의 효력은 무기한, 위력은 무한정
1. 중국과 로씨야가 새로운 반제동맹조약을 체결하지 못한 사연
이 글의 출발점은 23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01년 7월 16일 울라지미르 뿌찐(Vladimir V. Putin) 로씨야 대통령은 장쩌민(江澤民) 당시 중국 국가주석을 모스크바로 초청해 정상회담을 진행하고, ‘로씨야연방과 중화인민공화국의 선린우호협력조약(Treaty of Good-Neighborliness and Friendly Cooperation Between the Russian Federation and the People’s Republic of China)‘을 체결했다. 중국에서는 이 조약을 ’중국-아라사 목린우호합작조약(中國-俄羅斯 睦鄰友好合作條約)‘이라고 부른다. 아라사(俄羅斯)는 중국식으로 표기한 로씨야 국호다. 중국과 로씨야는 이 조약의 유효기간을 5년마다 연장해왔는데, 2021년 6월 28일 유효기간을 5년 더 연장했다.
중국과 로씨야가 선린우호협력조약을 체결한 때로부터 23년이 지나는 동안 국제정세는 근본적인 변화를 겪었다. 이를테면, 23년 전에는 중국과 로씨야가 각각 미 제국을 상대로 대화와 교류를 추진하고 있었지만, 지금 중국과 로씨야는 각각 미 제국과 날카롭게 대립하고 있다. 로씨야의 시각에서 보면, 미 제국과 각각 대립하고 있는 로씨야와 중국이 기존 선린우호협력조약을 새로운 반제동맹조약으로 대체하는 것은 당면한 요구가 아닐 수 없다.
그래서 뿌찐 대통령은 2023년 10월 18일 중국 베이징에서 진행된 제3차 일대일로 정상회의에 참석한 직후 시진핑(習近平) 주석과 정상회담을 진행했다. 회담에서 뿌찐 대통령은 “로씨야는 (중략) 중국과 긴밀히 소통하고 협력하여 (중략) 공정하고 합리적인 세계 질서를 구축할 용의를 가지고 있다”라고 시진핑 주석에게 말했다. 중국과 협력하여 공정하고 합리적인 세계 질서를 구축할 용의가 있다는 뿌찐 대통령의 발언은 로씨야와 중국이 기존 선린우호협력조약을 새로운 반제동맹조약으로 대체하자는 제의로 해석되었다.
그런 중대한 문제를 시진핑 주석에게 제의한 뿌찐 대통령은 자신의 다섯 번째 임기가 시작된 날로부터 아흐레가 지난 2024년 5월 16일 중국 베이징을 국빈 방문해 시진핑 주석을 다시 만났다. 기존 선린우호협력조약을 새로운 반제동맹조약으로 대체하려고 한 것이다.
그런데 시진핑 주석은 기존 선린우호협력조약을 새로운 반제동맹조약으로 대체하자는 뿌찐 대통령의 제의를 정중히 사양했다. 두 정상은 2024년 5월 16일 정상회담에서 공동성명만 발표했다. 시진핑 주석과 뿌찐 대통령이 발표한 공동성명은 “중국과 로씨야의 수교 75주년에 즈음해 새 시대의 포괄적인 전략적 협조 동반자 관계를 심화하는 것에 관한 중화인민공화국과 로씨야연방 공동성명”이다.
이런 사정은 중국과 로씨야의 관계가 반제동맹 관계로 격상되지 못하고, 전략적 동반자 관계를 반제동맹 관계로 심화시키는 수준에 머무르게 되었음을 말해준다.
의문이 생긴다. 시진핑 주석은 선린우호협력관계를 반제동맹 관계로 격상시키자는 뿌찐 대통령의 제의를 왜 사양했을까? 의문에 대한 해답은 다음과 같은 맥락에서 찾을 수 있다.
만일 중국과 로씨야가 반제동맹조약을 체결했더라면, 미 제국은 극도로 반발하면서 포악한 도발을 서슴지 않았을 것이다. 중국을 제1적대국으로 규정해놓은 미 제국의 도발은 중국에 집중되었을 것이다. 미 제국의 포악한 도발이 중국에 집중되면, 중국은 미 제국의 도발을 무력으로 응징해야 한다. 이것은 중국이 반제전쟁을 피할 수 없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지금 로씨야는 우크라이나를 완충지대로 두고 미 제국과 간접적으로 싸우고 있지만, 중국은 완충지대 없이 미 제국과 직접적으로 교전해야 한다. 중국의 반제전쟁은 매우 격렬할 것이다.
그래서 중국은 여러 가지 조건을 면밀히 따져보고, 정세를 매우 신중하게 판단한 뒤에 전쟁을 결심해야 한다. 중국에는 미 제국의 포악한 도발에 대응하는 식의 피동적인 전쟁을 할 생각이 없다. 중국은 자기가 택한 결정적 시기에, 자기에게 가장 유리한 조건이 성숙했을 때 능동적으로 반제전쟁을 개시할 것이다. 이런 사정 때문에 시진핑 주석은 반제동맹조약을 체결하자는 뿌찐 대통령의 제의를 선뜻 받아들일 수 없었다.
2. 임박한 로씨야와 이란의 새로운 반제동맹조약 체결
지금으로부터 23년 전인 2001년 3월 12일 뿌찐 대통령은 모하메드 하타미(Mohammed Khatami) 당시 이란 대통령을 모스크바로 초청해 정상회담을 진행하고 ‘로씨야연방과 이란이슬람공화국 사이의 상호관계 기초 및 협력 원칙에 관한 조약(Treaty on the Basis for Mutual Relations and the Principles of Cooperation Between the Russian Federation and the Islamic Republic of Iran)’을 체결했다. 뿌찐 대통령은 장쩌민 주석과 함께 로씨야-중국 선린우호협력조약을 체결하기 4개월 전에 하타미 대통령과 함께 로씨야-이란 상호협력조약을 체결한 것이다.
뿌찐 대통령과 하타미 대통령이 로씨야-이란 상호협력조약을 체결한 날로부터 23년이 지나는 동안 국제정세는 근본적인 변화를 겪었다. 중동의 반제자주세력은 이스라엘을 무력 침공 돌격대로 앞세운 미 제국의 중동 지배 야욕에 맞서 싸우는 반제공동행동을 활발히 전개하였고, 이란은 중동의 반제공동행동을 이끄는 중추국으로 등장했다. 최근에는 팔레스타인 민중의 지지를 받는 하마스와 이슬라믹 지하드가 합동작전으로 이스라엘의 점령, 통치를 반대하는 반제전쟁을 일으켰다. 헤즈볼라, 안사르 알라 무장군, 그리고 이라크와 수리아에서 투쟁하는 반제민병대들이 하마스와 이슬라믹 지하드의 반제전쟁에 가세했다. 미 제국이 장악, 주도하는 제국주의 연합세력은 무력 침공 돌격대로 자처하는 이스라엘을 적극 지지, 후원하면서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살육작전을 장기화시키고 있다. 네타냐후 종미우익 정권은 이스라엘군을 내몰아 팔레스타인 민중을 학살하는 만행을 서슴지 않고 있으며, 접경지역인 레바논 남부와 수리아 동남부를 공습하는 전쟁범죄를 저지르고 있다.
이런 엄중한 상황에서 로씨야와 이란은 반제공동행동으로 함께 대응해야 할 요구를 절감했다. 로씨야의 시각에서 보면, 중동에서 반제공동행동을 함께 하는 가장 중요한 전략적 동반자는 이란이다. 그래서 로씨야와 이란은 2001년에 체결된 로씨야-이란 상호협력조약을 새로운 반제동맹조약으로 대체하기 위한 협상을 진행해왔다. 뿌찐 대통령은 쎄예드 에브라힘 라이씨(Sayyed Ebrahim Raisi) 이란 대통령을 2022년 1월 19일과 2023년 12월 7일 모스크바로 초청해 정상회담을 진행하고, 새로운 반제동맹조약을 체결하기로 합의했다. 뿌찐 대통령과 라이씨 대통령이 로씨야-이란 반제동맹조약을 체결하기 위한 모든 준비가 완료되었다.
그런데 뜻밖에 2024년 5월 19일 라이씨 이란 대통령이 헬리콥터 추락사고로 서거하였다. 라이씨 대통령의 서거로 로씨야와 이란의 반제동맹조약 체결은 잠정적으로 중지되었다. 머지않아 진행될 이란의 대통령 선거에서 후임 대통령이 선출되면, 뿌찐 대통령은 그를 만나 정상회담을 진행하고 로씨야-이란 반제동맹조약을 체결할 것으로 보인다.
3. 24년 전 반제공동행동 합의한 조선과 로씨야
로씨야의 시각에서 보면, 조선은 반제공동전선에서 매우 중요한 전략적 동반자다. 로씨야가 조선을 매우 중요한 전략적 동반자로 보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조선은 반제자주노선을 변함없이 견지해온 신흥 핵강국이다. 조선은 중국과 로씨야가 제국주의 연합세력의 전횡과 폭거에 맞서고 있는 반제공동전선에 제3핵강국으로 합류했다. 조선이 반제공동전선에 합류한 것으로 하여 반제핵강국은 3개국으로 늘었다. 이것은 미 제국에 커다란 정치적 타격을 입힌 것으로 된다.
둘째, 조선은 반제혁명에 전념해온 사회주의 국가다. 세계적 범위에서 전개된 반제공동전선의 역사를 보면, 반제혁명사상의 책원지도 조선이고, 반제공동행동의 중심지도 조선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조선이 반제혁명사상의 책원지라는 말은 무슨 뜻인가? 그것은 주체사상이 민족해방운동을 민족해방혁명으로 격상시키고 정식화했다는 뜻이다. 지난 시기 맑스-레닌주의는 자본주의가 발달되지 않은 식민지 농업국에서 일어난 민족해방운동을 자본주의가 발달된 산업국에서 일어난 계급해방혁명의 보조역량으로 보았지만, 주체사상은 민족해방운동을 계급해방혁명의 보조적 지위에서 혁명의 범주로 격상시켰고 민족해방혁명으로 정식화했다. 주체사상은 민족해방, 계급해방, 인간해방을 혁명의 3대 목표로 제시했다.
또한 조선이 반제공동행동의 중심지라는 말은 무슨 뜻인가? 그것은 반제공동전선이 사회주의 진영이 와해된 소용돌이에 말려든 1990년대 대격난 중에 조선은 반제공동전선을 단독으로 수호했다는 뜻이다. 돌이켜보면, 뿌찐 대통령이 하타미 대통령과 장쩌민 주석을 각각 모스크바로 초청해 조약을 체결하기 전에 조선은 로씨야와 친선선린협조조약을 먼저 체결했다. 2000년 2월 9일 백남순 당시 조선 외무상은 이고르 이와노브(Igor S. Ivanov) 당시 로씨야 외무상을 평양으로 초청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 로씨야련방 사이의 친선, 선린 및 협조에 관한 조약’을 체결했다. 2000년 7월 19일 김정일 총비서는 뿌찐 대통령을 평양으로 초청해 정상회담을 진행하고 반제자주화를 천명한 공동선언을 발표하였다.
2000년에 조선이 로씨야와 반제동맹조약을 체결하지 않고 친선선린협조조약을 체결한 것은 당시 조성된 정세와 관련된다. 김정일 총비서는 2000년 10월 9일부터 12일까지 조명록 조선인민군 총정치국장을 자신의 특사로 워싱턴에 파견해 빌 클린턴(William J. Clinton) 당시 미 제국 대통령에게 친서를 전했고, 조선과 미 제국은 2000년 10월 12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 미합중국 사이의 공동코뮈니케’를 발표했다. 2000년 10월 25일 김정일 총비서는 평양을 공식 방문한 매들린 올브라이트(Madeleine J. K. Albright) 당시 미 제국 국무부장관을 접견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김정일 총비서는 미 제국을 반대하는 반제동맹조약을 체결할 수 없었다.
2000년 7월 평양을 방문해 김정일 총비서와 회담하면서 조선과 로씨야의 반제공동행동을 합의한 뿌찐 대통령은, 2001년 3월 하타미 대통령을, 그리고 7월에는 장쩌민 주석을 모스크바로 초청해 선린우호협력조약과 상호협력조약을 각각 체결했다.
2002년 8월 4일 김정일 총비서는 모스크바를 방문해 뿌찐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진행하고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 로씨야련방의 모스크바 선언’을 발표하였다. 2002년 모스크바 공동선언에는 김정일 총비서의 반제혁명사상이 반영되었다.
위에 서술한 몇 가지 사실을 보면, 뿌찐 대통령은 반제공동전선이 무너지는 대격난을 단독으로 돌파하면서 반제자주노선을 수호해온 조선에게서 영향을 받고 반제공동행동에 나서게 되었음을 알 수 있다.
4. 중대한 메시지와 워스또츠느이 정상회담
지금으로부터 10년 전인 2014년 로씨야는 위기 상황에 직면했다. 미 제국의 배후 조종을 받는 우크라이나 종미우익세력이 2014년 1월 19일 대규모 폭동을 일으켰다. 폭동은 반제자주정책을 시행하던 야누꼬비치 정권을 전복시켰고, 종미우익 정권을 출현시켰다. 우크라이나 종미우익 정권은 우크라이나를 제국주의 연합세력의 전쟁 도구인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에 가입시키려고 광분하면서, 장차 제국주의 연합세력이 로씨야를 침공하면 우크라이나군이 돌격대로 나서겠다고 자처했다.
제국주의 연합세력이 이처럼 로씨야를 직접적으로 위협하는 상황에서 뿌찐 대통령은 반제전쟁을 결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하여 2022년 2월 24일 로씨야는 우크라이나를 사이에 두고 미 제국과 싸우는 반제전쟁에 돌입했다. 전쟁에서 로씨야가 얻은 것은 피의 교훈이다. 그것은 미 제국과의 정치 군사적 대결이 언젠가는 반제전쟁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으며, 반제전쟁에서 승리하는 결정적인 요인은 반제자주 국가들이 연대한 반제공동행동이라는 진리, 바로 그것이었다.
2023년 3월 31일 로씨야 외무성이 ‘로씨야연방의 대외정책 개념(Foreign Policy Concept of the Russian Federation)’이라는 제목의 국가전략문서를 발표했다. 이 국가전략문서는 로씨야가 반제전쟁의 불길 속에서 피로써 얻어낸 반제자주정책의 결정체다. 이 국가전략문서에는 방대한 내용이 수록되었는데, 그 내용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미 제국의 패권을 반대하는 로씨야가 반제자주 국가들과 연대해 “국제관계의 민주화”와 “주권적 평등”을 실현하는 반제자주정책이라고 말할 수 있다.
로씨야 외무성은 국가전략문서를 발표한 직후인 2023년 4월 11일 로씨야의 반제행동 방침이 수록된 정책문서를 작성했다. 이 정책문서는 외부에 공개되지 않았는데, 유럽 어느 나라 정보기관을 통해 그것을 입수한 워싱턴포스트가 2024년 4월 17일 그 정책문서에 관한 보도기사를 내보냈다. 정책문서에는 로씨야가 2023년 3월 31일에 발표한 국가전략문서에 공개적으로 수록하기 힘든 구체적인 실행방침이 수록되었다. 정책문서에 의하면, “서방 나라들은 그들의 대결주의 정책과 패권주의 야망에 미래가 없다는 것을 깨닫고, 다극화된 세계의 복잡한 현실을 받아들여야 한다”라고 했다. 특히 정책문서에서 눈길을 끄는 것은 미 제국의 패권주의 질서를 무력화하기 위해 로씨야가 중국, 조선, 이란과 연대하여 세계 질서를 재편할 의지를 표명하였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미 제국이 장악, 주도하는 제국주의 연합세력과 맞서 싸우기 위해 로씨야가 중국, 조선, 이란과 연대하는 반제공동행동에 나선 뿌찐 대통령의 정치적 의지를 반영한 것이다.
뿌찐 대통령의 정치적 의지를 읽은 김정은 총비서는 2023년 8월 15일 “조선 해방 78돌에 즈음하여” 그에게 중대한 메시지를 보냈다. 김정은 총비서는 8월 15일 축전에서 “나는 선대수령들에 의하여 마련되고 력사의 검증 속에서 다져진 조로 사이의 친선단결이 새 시대의 요구에 부응하여 백년대계의 전략적 관계로 더욱 승화발전될 것”을 “굳게 확신”한다고 언명하였다. 이 메시지는 제국주의 연합세력과 맞서 싸우는 반제전쟁의 시대에 조선과 로씨야가 시대적 요구의 부응하여 백년대계의 동맹관계를 맺을 것으로 확신한다는 의미로 해석되었다.
같은 날, 뿌찐 대통령은 김정은 총비서에게 보낸 축전에서 “우리가 (중략) 조선반도와 동북아시아지역 전반의 안정과 안전을 공고히 하기 위하여 모든 분야에서의 쌍무 협조를 강화해나갈 것이라고 확신”한다고 화답했다. 일본 제국주의를 타도하기 위한 소련의 반일전쟁에서 조선인민혁명군이 소련군의 조선해방전쟁 선봉대로 싸웠던 8월 15일을 78번째로 맞이한 날, 김정은 총비서와 뿌찐 대통령은 반제공동행동의 전략적 가치를 교감하였다.
그 교감은 김정은 총비서와 뿌찐 대통령의 정상회담을 성사시킨 요인으로 되었다. 2023년 9월 13일 로씨야 아무르주에 있는 워스또츠느이 우주기지에서 김정은 총비서와 뿌찐 대통령의 정상회담이 진행되었다. 김정은 총비서는 정상회담 모두발언에서 “앞으로도 우리는 언제나 반제자주 전선에서 로씨야와 함께 있을 것임을 이 기회를 빌어서 다시 확언하는 바입니다”라고 말했다. 워스또츠느이 정상회담에서 김정은 총비서와 뿌찐 대통령은 “제국주의자들의 군사적 위협과 도발, 강권과 전횡을 짓부수기 위한 공동전선에서 두 나라 사이의 전략전술적 협동을 더욱 긴밀히 하고 강력히 지지 련대하면서 힘을 합쳐 국가의 주권과 발전리익, 지역과 세계의 평화와 안전, 국제적 정의를 수호해나가는 데서 나서는 중대한 문제들과 당면한 협조사항들을 허심탄회하게 토의”하고 “만족한 합의와 견해일치”를 보았다. 이런 사정은 김정은 총비서와 뿌찐 대통령이 2023년 9월 13일 워스또츠느이 정상회담에서 반제동맹조약을 체결하기로 이미 합의하였다는 것을 말해준다.
5. 새로운 반제동맹조약의 효력은 무기한, 위력은 무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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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6월 19일 김정은 총비서와 뿌찐 대통령은 평양에서 정상회담을 진행하였다. 정상회담에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 로씨야련방 사이의 포괄적인 전략적 동반자 관계에 관한 조약’이 체결되었다. 조약 본문에 나오는 표현을 빌리면, 이 조약은 미 제국의 “패권주의적 기도와 일극 세계 질서를 강요하려는 책동으로부터 국제적 정의를 수호하는” 조약이며, “정의롭고 다극화된 새로운 세계 질서를 수립”하기 위한 조약이다.
위의 인용구가 말해주는 것처럼, 이 조약은 미 제국이 주도하는 제국주의 연합세력의 전횡과 폭거를 저지, 파탄시킴으로써 자주적이고 정의로운 세계 질서를 수립하려는 반제혁명사상과 반제자주사상을 반영하고 있다. 여기서 말하는 반제혁명사상은 김정은 총비서의 반제혁명사상이고, 여기서 말하는 반제자주사상은 뿌찐 대통령의 반제자주사상이다.
이 조약의 공식 명칭에 들어있는 “전략적 동반자 관계”라는 개념은 전략적 동맹관계를 뜻한다. 그러므로 “전략적 동반자 관계에 관한 조약”은 반제혁명사상과 반제자주사상에 기초한 명실상부한 반제동맹조약이다. 이 글에서는 그 조약을 반제동맹조약으로 약칭한다. 또한 이 글에서는 그 조약을 1961년 조선과 소련이 체결한 반제동맹조약과 구분하기 위해 2024년 반제동맹조약으로 표기한다.
돌이켜보면, 1961년 정세는 너무도 험악했었다. 이를테면, 미 제국은 일본 오끼나와 가데나 공군기지와 한국 군산 공군기지에 각종 전술핵무기를 무더기로 쌓아놓고, 태평양전쟁의 전범으로 처형되었어야 할 기시 노부스께(岸信介) 당시 일본 수상을 우두머리로 하는 일본 군국주의세력의 재무장을 촉진시키기 위해 1960년 1월 19일 미일안보조약을 수정했고, 1961년 5월 16일에는 친일군부세력의 우두머리인 김종필과 박정희를 앞세운 우익군사 정변을 일으켜 군사파쇼 정권을 수립했다. 이런 험악한 상황은 미 제국이 침략전쟁을 도발할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김일성 주석은 그런 상황에 대처하여 1961년 7월 6일 모스크바에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 쏘베트사회주의공화국련방 간의 우호, 협조 및 호상 원조에 관한 조약’을 체결하였고, 1961년 7월 11일에는 베이징에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 중화인민공화국 간의 우호, 협조 및 호상 원조에 관한 조약’을 체결하였다.
그런데 1991년 12월 26일 소련이 해체된 이후 소련의 계승국으로 된 로씨야는 1995년 8월 7일 1961년 반제동맹조약을 더 이상 연장하지 않겠다고 조선에 통보했다. 그렇게 되어 1961년 반제동맹조약은 1996년 9월 10일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하나만 알고 둘을 모르는 정세분석가들은 2024년 반제동맹조약이 1961년 반제동맹조약을 복원한 조약이라느니 또는 2024년 반제동맹조약이 군사동맹에 준하는 조약이라느니 뭐니 하고 떠들어댔다. 하지만 그건 시끄러운 잡음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2024년 반제동맹조약은 1961년 반제동맹조약 수준을 능가하는 새로운 조약, 그리하여 사상 최고로 강력하고, 견고하고, 포괄적인 반제동맹조약인 것이다. 김정은 총비서는 2024년 6월 19일 정상회담 직후 뿌찐 대통령과 로씨야 정부 대표단을 초대한 국가연회에서 2024년 반제동맹조약을 가리켜 “조로친선관계에서 가장 강력하고 포괄적인 새로운 국가 간 조약”이라고 했다.
1) 2024년 반제동맹조약이 1961년 반제동맹조약 수준을 능가하는, 사상 최고로 강력한 조약으로 된 까닭은, 뿌찐 대통령이 1961년 반제동맹조약을 체결한 흐루쑈브와는 대비할 수 없을 만큼 강력한 반제투쟁 의지를 가졌기 때문이다. 흐루쑈브는 반제투쟁을 포기하고 미 제국과의 ‘평화 공존(peaceful coexistence)’을 뇌까렸던 사회주의 배신자, 우경투항주의자였다. 흐루쑈브는 김일성 주석의 요구를 차마 거절할 수 없어서 1961년 반제동맹조약에 서명했지만, 그 조약을 이행할 의지는 전혀 없었다.
흐루쑈브가 1961년 반제동맹조약을 이행할 의지를 전혀 갖지 않았다는 사실은 1962년 10월 14일 까리브해 위기(쿠바 미사일 위기)가 발생했을 때 드러났다. 흐루쑈브는 당시 미 제국 대통령 존 케네디(John F. Kennedy)가 핵공격으로 소련을 멸망시키겠다느니 뭐니 떠들어대면서 핵공갈을 늘어놓자 겁을 집어먹고 뒤로 물러섰다. 케네디는 핵공갈로 소련을 겁박하면서 허세를 부렸지만, 그도 흐루쑈브처럼 전쟁이 두려워 벌벌 떠는 겁쟁이였다.
그러나 흐루쑈브와는 정반대로, 뿌찐 대통령은 미 제국이 주도하는 제국주의 연합세력의 전횡과 폭거를 저지, 파탄시키기 위해서라면 반제투쟁은 물론 반제전쟁도 불사한다는 의사를 여러 차례 공개적으로 표명하였다. 그리고 지금 그는 반제전쟁을 지휘하고 있다.
2) 2024년 반제동맹조약 제3조는 제국주의세력이 조선이나 로씨야에 무력 침공을 감행하려는 “직접적인 위협이 조성되는 경우 (중략) 쌍무협상통로를 지체 없이 가동시킨다”라고 규정했다. 이 조항을 보면, 제국주의 연합세력의 무력 침공 위협에 대처하기 위한 조선과 로씨야의 쌍무협상통로가 곧 마련될 것이라는 점을 알 수 있다. 1961년 반제동맹조약에는 제국주의 연합세력의 무력 침공 위협에 대처하기 위해 쌍무협상통로를 마련한다는 규정이 없다.
3) 2024년 반제동맹조약 제4조는 조선이나 로씨야가 “전쟁상태에 처하게 되는 경우 (중략) 지체 없이 자기가 보유하고 있는 모든 수단으로 군사적 및 기타 원조를 제공한다”라고 규정했다. 1961년 반제동맹조약 제2조는 조선이나 로씨야가 “전쟁상태에 처하게 되는 경우에 (중략) 지체 없이 자기가 보유하고 있는 온갖 수단으로써 군사적 및 기타 원조를 제공한다”라고 규정했다. 이 조항은 서로 동일한 내용이다.
2024년 반제동맹조약 제4조에서 ‘전쟁상태’라는 용어는 반제전쟁이나 정벌전쟁을 의미하고, ‘군사적 원조’라는 용어는 파병을 의미한다. 다시 말해서, 이 조항은 조선이나 로씨야가 반제전쟁 또는 정벌전쟁을 하는 경우 지체 없이 파병한다고 규정한 것이다. 그런 점에서 2024년 반제동맹조약 제4조는 즉시 파병 조항이라고 말할 수 있다.
2024년 반제동맹조약 제4조에는 조선이나 로씨야가 “전쟁상태에 처하게 되는 경우 타방은 유엔헌장 제51조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 로씨야련방의 법에 준하여 지체 없이 자기가 보유하고 있는 모든 수단으로 군사적 및 기타 원조를 제공한다”라고 명시되었다.
유엔헌장(Charter of the United Nations)은 국제법이다. 유엔헌장 제51조는 ‘집단 자위권’을 유엔 회원국의 권리로 인정한다. 그러므로 유엔 회원국의 집단 자위권을 인정한 유엔헌장 제51조는 2024년 반제동맹조약의 파병 조항을 국제법적으로 뒷받침해준다고 말할 수 있다.
또한 2024년 반제동맹조약 제4조는 조선이나 로씨야가 반제전쟁 또는 정벌전쟁을 하는 경우 조선의 국내법에 준하여 또는 로씨야의 국내법에 준하여 지체 없이 파병한다고 규정했다. 이것은 조선과 로씨야가 동맹국의 전쟁에 파병한다고 규정한 국내법을 각각 제정하였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그러므로 2024년 반제동맹조약의 즉시 파병 조항은 조선의 국내법과 로씨야의 국내법에 의해 각각 안받침된다고 말할 수 있다.
2024년 1월 초 김정은 총비서는 ‘한국정벌전쟁’을 공식적으로 예고하였는데, 2024년 반제동맹조약 제4조에 의하면 조선이 ‘한국정벌전쟁’을 개시하는 경우 로씨야는 지체 없이 파병해야 한다. 또한 1961년에 체결된 반제동맹조약 제2조에 의하면, 조선이 ‘한국정벌전쟁’을 개시하는 경우 중국은 지체 없이 파병해야 한다. 이런 맥락을 이해하면, 김정은 총비서가 예고한 ‘한국정벌전쟁’은 조선-중국-로씨야 3자 동맹군 한미연합군을 공격하는 양상으로 전개될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상상일 뿐이다. 실제 상황은 전혀 다를 것이다. 조선은 ‘한국정벌전쟁’을 단독으로 수행할 충분한 작전 능력을 가졌기 때문에 동맹국들의 파병을 일절 요구하지 않을 것이다. 조선은 원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한국정벌전쟁’에 대한 동맹국들의 정치적 지지다. 또한 조선이 ‘한국정벌전쟁’을 개시하는 경우, 조선은 중국과 로씨야로부터 실시간 위성정찰정보를 원할 수 있고, 중국인민해방군과 로씨야군이 한(조선)반도 근해에서 미일동맹군의 접근을 가로막는 차단작전도 원할 수 있지만, 동맹국들의 파병은 원하지 않을 것이다.
우크라이나를 사이에 두고 제국주의 연합세력과 맞서 싸우는 로씨야의 ‘특별군사작전’도 반제전쟁이므로, 2024년 반제동맹조약 제4조에 의하면 조선은 로씨야의 ‘특별군사작전’에 파병해야 한다. 지금까지 조선은 로씨야의 반제전쟁에 포탄과 군사 장비를 대규모로 지원해주었는데, 2024년 반제동맹조약이 체결된 이후에는 조선인민군을 파병하게 되었다.
4) 2024년 반제동맹조약 제8조는 조선과 로씨야가 “방위능력을 강화할 목적 밑에 공동조치들을 취하기 위한 제도들을 마련한다”라고 규정하였다. 이 조항은 조선과 로씨야가 합동군사기구를 내오기로 합의하였다는 것을 말해준다. 조선과 로씨야가 합동군사기구를 내오면, 두 나라는 반제전쟁을 처음부터 함께 준비하고, 끝까지 함께 싸우게 된다. 그러므로 이 조항이야말로 조선과 로씨야가 가장 강력한 군사동맹조약을 체결했다는 것을 말해준다. 핵강국들인 조선과 로씨야가 합동군사기구를 수립하는 것은 세계 정치사를 변화시킬 대격변이며, 상상을 초월한 상승효과(synergy effects)를 불러일으킬 대사변이다.
5) 2024년 반제동맹조약 제23조는 이 조약이 무기한 효력을 가진다고 규정하였다. 1961년 반제동맹조약 제6조는 그 조약이 10년 효력을 가진다고 규정하였다. 2024년 반제동맹조약 제23조는 조선과 로씨야의 반제동맹조약이 무기한 유효할 것이고, 그에 따라 조선과 로씨야의 반제공동행동이 무한정 지속될 것임을 예고했다. 다시 말해서, 조선과 로씨야의 반제동맹조약은 제국주의 연합세력을 제압하는 날까지 유효할 것이고, 조선과 로씨야의 반제공동행동은 제국주의 연합세력을 제압하는 날까지 지속될 것임을 예고한 것이다.
출처: https://www.tongiltimes.com/news/articleView.html?idxno=2337
조헌정(전 향린교회 목사·615남측위공동상임대표) [목차] 1. 들어가면서 2. 왜 6월 25일인가? 3. 군사1급기밀에 해당하는 에치슨선언은 왜 했던 것일까? 4. 왜 스탈린과 모택동은 처음부터 도와주지 않았는가? 5. 왜 인민군은 서울 점령 후 전쟁을 멈추었을까? 6. 또 하나의 가정 7. 정전협정 작성에 2년이나 걸린 이유 8. 결국 전쟁의 혜택은 누가 입었나? 9. 나가면서 (이 글은 소통과 혁신연구소 카페의 글을 함께 게재한 것입니다. 편집자) |
조헌정목사
1. 들어가면서
올해 우리는 한국전쟁 발발 74년 그리고 휴전 71년째를 맞이하고 있다. 전쟁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 이는 인류 역사상 동족 간 가장 긴 전쟁일지도 모른다. 남한은 지난 10년 이상 세계 최고의 자살율 국가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이 수치는 OECD 국가 평균 두 배 이상임으로 앞으로 10년 동안은 이 지위가 변하지 않을 것이다. 여기에 세계 최저의 출산율과 최고의 소득 불평등지수를 가진 매우 열악한 국가이다. 동시에 남한은 세계 13위의 경제대국, 7위의 군사대국이다,
이 상반된 수치는 정상적인 국가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결과이다. 그 원인은 여러 가지로 설명될 수 있지만, 자살률 2위 국가가 또 하나의 분단국인 키프러스공화국임을 감안할 때, 가장 큰 요인으로 분단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동족을 향한 극도의 적대감은 생명경시 현상을 낳고 이는 부메랑이 되어 자신에게로 돌아온다는 것이 필자의 주장이다.
오백만 명의 사상자와 천만 명의 이산가족을 낳은 3년간의 치열한 전쟁이 없었더라면 설사 미국의 동아시아 패권 지배정책(Divide and Conquer)에 의해 분단이 지속되었다 할지라도 남북 간 오늘날과 같은 뿌리 깊은 반목과 질시가 계속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비록 정권에 따라 약간의 부침은 있을망정 과거 서독과 동독이 그러했듯이 남북 교류는 끊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지구촌 세계화 시대를 맞아 지난 20년 동안 몇 번의 남북정상회담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현직 대통령이 북조선을 향해 주적이라는 단어를 공개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이유는 바로 전쟁으로 인한 증오심이 국민 마음속에 여전히 살아 움직이고 있기 때문이다.
냉정하게 말해 남북통일은 요원하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대화조차도 끊어진 상황에서 평화통일은 하나의 신기루에 불과한 얘기이고, 무력통일 또한 핵무기를 비롯한 가공할만한 수많은 신무기가 쌍방에 존재하는 이상 민족 전체의 죽음을 전제하지 않고서는 결코 가능하지 않다.
따라서 우리가 지금 통일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우리 마음속 분단의 장벽을 허무는 일 외에는 없고, 이 마음속 분단의 장벽을 허무는 일은 한국전쟁에 대한 바른 이해를 갖는 일에서부터 시작하여야 한다. 개인의 상처는 시간이 가면서 점차 잊혀가겠지만, 역사 인식이 잘못됨으로 인한 미움은 쉽게 사라지지 않고 오히려 집단 기억을 통해 더 증폭되어가기 때문이다. 작년 6월 25일에는 유치원생들이 국군묘지에 가서 ‘결코 잊지 않겠다’는 현수막 아래 헌화하는 사진을 언론을 통해 보았다. 철모르는 아이들에게조차 증오심을 키워주고 있는 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한국전쟁에 대한 가장 큰 오해는 첫째, CNN, BBC 등등의 방송에서 코리아 관련 뉴스를 보도할 때, 한국전쟁이 남북분단으로 인해 생겨난 전쟁이 아닌, 한국전쟁으로 인해 남북분단이 생겨났다고 하는 전제를 갖고 논평을 할 때가 많다. 둘째, 1945년 8월 15일 일제의 패망과 함께 일어난 남북분단을 미소 냉전의 결과라고 교과서에서는 말하지만, 정확하게 말해 미국이 제안한 것을 소련이 받아들인 것이다. 소련은 본래 일본을 분할 점령하기를 원했다. 셋째, 남한사람들의 친미/종미적인 경향은 한국전쟁시에 목숨을 걸고 남한을 지켜주었다고 하는 고마운 생각에서 출발한다.
그러나 이는 병 주고 약 주기식의 제국의 교활함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 몰역사성에 있다. 미국이 남한사람을 좋아해서 지켜준 것이 아니라, 당시 소련 공산주의 진영과의 대결 과정에서 코리아반도에서의 패배는 미국의 세계 패권 전략에 결정적인 타격이 되기 때문이다. 코리아반도가 소련의 영향권에 들어간다면 일본이 이에 들어가는 것은 시간문제요 그렇게 되면 미국은 태평양과 인도양의 통제권을 상실하기 때문이다. 미국에게 있어 코리아반도는 세계패권유지에 있어 결정적인 요충지가 되는 것이다.
넷째, 한국전쟁은 1950년 6월 25일 일요일 새벽 4시 김일성정권에 의해 일방적으로 시작되었다는 것이 남한사람 절대 다수의 생각이다. 그래서 남한에서는 6.25전쟁이라고 부른다. 6월 25일 새벽 김일성정권이 남침을 시작하였다는 것은 맞는 이야기이지만, 삼 일 전인 6월 22일 서부전선에서 국군의 해주 침공이 있었고, 멀리는 1948년 8월 15일과 9월 9일 남과 북에 각각의 단독정부가 수립된 이후 1950년 6월 25일까지 약 1년 반이라는 기간 38선을 사이에 두고 남북 간에는 400번 이상의 크고 작은 전투가 있었음을 기억해야 한다. 이 기간 남한에서만 10만 명 이상의 사람들이 분단으로 인해 희생이 되었다.
38선은 물론이요 제주와 여수, 순천, 대구 등등 여러 지역에서 일어난 수많은 분쟁으로 말미암아 엄청난 생명이 희생되었던 것이다. 한국전쟁의 시작을 단순히 1950년 6월 25일로 보는 견해는 너무나도 안이한 역사 인식이다.
해방분단 이후 지난 79년 동안 남북은 서로에 대한 비난만을 일삼아 왔으며 이로 인한 역사 왜곡은 심각한 문제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오늘도 남한 국민들은 새벽 잠을 자고 있는 동안 남한정부가 보낸 비상문자를 모두 받았다. 북에서 오물풍선을 보냈다는 문자였다. 이 또한 남쪽에서 먼저 삐라풍선을 보냈기 때문에 북에서 보복차원에서 일어난 것임을 언론은 감추고 있다. 또 하나의 예를 들면 남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14년 전 천안함침몰사건을 북조선의 어뢰공격으로 알고 있지만, 당시 민주당 추천 조사위원으로 참가했던 신상철대표는 처음부터 북한의 어뢰공격이 아닌 좌초에 의한 침몰을 주장해 왔고, 이 때문에 조사위원 박탈은 물론 12년간의 재판을 받았지만, 2022년 대법원에서 무죄선고를 받았다. 어뢰설을 부정하지는 않았지만, 침몰설에 하자가 없다는 판결을 내린 것이다. 그러나 언론은 이에 대해 보도를 전혀 하지 않았다. 곧 남북문제에는 언제나 두 개의 진리가 존재하는 모순된 사회에서 우리는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국제법에 따르면 대한민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별개의 독립된 국가이지만, 남한 국내법에 따르면 북조선은 남한의 영토를 불법으로 차지하고 있는 <반국가단체>에 불과하다. 이에 따라 국내 언론은 물론 해외 언론 또한 객관적인 보도를 하지 않고 미국이 조종하는 북 악마화에 열심을 내고 있을 따름이다.
지난 79년 동안 남한에서는 조금이라도 북조선에 대한 긍정적인 발언을 하는 순간 그는 빨갱이로 낙인이 찍혀 국가보안법에 의해 피해를 당해 왔다. 이영희교수나 강정구교수와 같이 학문에 기초한 객관적인 사실 이야기를 하더라도 ‘북한찬양’이라고 하는 올가미에 씌워 온갖 핍박을 가하고 있는 것이 남한의 정치 현실이다.
다섯째, 북조선에서는 한국전쟁을 ‘조선해방전쟁’으로 부르고 있다. 북조선(NK)에서는 국가의 출발을 1932년 김일성의 게릴라 항일투쟁에 두고 있다. 따라서 북조선(NK)에서는 일본을 대신한 미국이라는 외세를 코리아의 영토에서 몰아내는 일을 최우선 과제로 삼을 수밖에 없다. 항일투쟁이 항미투쟁으로 그 이름만 바뀐 것이다. 바로 이 이유 때문에 남한과는 달리 북조선에서는 종전선언에 그렇게 적극적인 태도를 보이지 않았다. 한국전쟁에 대한 이러한 입장 차이를 이해하지 못하는 한, 남북대화는 언제나 제자리에서 맴돌 수밖에 없다!
그리하여 필자는 역사학자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남북화해와 통일을 위해 힘써 온 목사로서 한국전쟁에 관해 그간 잘 알려지지 않았던 이야기를 중심으로 글을 써야겠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신학에서 역사적 예수에 대한 새로운 책들이 계속 나오면서 성서를 새롭게 읽게 되었고, 예수에 대한 생각이 근본적으로 바뀌게 되었다.
마찬가지로 다음의 책들이 나에게 새로운 시각을 제공하였다. 1. 『부르스 커밍스의 한국전쟁: 전쟁의 기억과 분단의 미래』 (The Korean War: A History, 현실문화, 2010. 이하‘Cummings’) 2. 아브람스(A.B.Abrams)의 『끝나지 않은 전쟁: 북-미 대결 70년사 I, II』 (Immovable Object: North Korea’s 70 Years at War With American Power, 민플러스. 2022. 이하 ‘Abrams’) 3. 오로지의 『두 얼굴의 미국과 한국전쟁』 (휴엔스토리, 2021. 이하 ‘오로지’) 저자 오로지는 역사가는 아니지만, 필자와 같은 시각에서 한국전쟁에 관한 풀리지 않는 문제에 대해 여러 학자들의 자료를 인용하고 있다.
이중 그가 자주 인용한 죤 메릴(John Merill) 교수는 미국무성에서 30년을 일한 사람으로 제주43항쟁을 주제로 석사논문을 한국전쟁을 주제로 박사논문을 쓴 학자이다. 7년 전 워싱톤에서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 대표 20여 명의 목사들과 대담을 한 적이 있는데, 이때 그는 ‘미국 의회에 와서 증언하는 탈북자들은 모두 거짓말을 하고 있다. 증언을 확인해 보면, 맞는 게 하나도 없다.’라고 발언을 하기도 했으며, 1949년 말 남한의 해군이 해주 인근의 북조선 해안중대를 기습하여 초토화시킨 사실을 은퇴한 남한 해군장성을 캘리포니아의 집까지 직접 찾아가서 확인한 바 있다고 우리에게 말한 바 있다.
2. 왜 6월 25일인가?
필자는 철책선에서 졸병으로 군생활을 했는데, 하루는 군사학 장교가 이런 말을 했다. ‘북한이 6.25전쟁에서 패배한 이유 중의 하나는 그 시기를 잘못 정했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6월 말은 아직 들판에 곡식이나 열매가 무르익지 않았을 때이기에 식량 조달에 어려움이 있고 보병전 위주의 재래식 전투에서 6월 말은 더위는 물론 장마가 시작하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그렇다! 이건 일반인이 생각해도 전쟁을 시작하기에 적절한 시기가 아니다. 굳이 해야 한다면 가을철이 적기이다. 그래서 남한에서는 6월 25일이 선택된 이유로 군인들의 외출이 많은 ‘일요일’이었음을 강조하고 있는데, 일요일은 일 년에 50번이 넘는다.
당시 남과 북은 상대의 정보를 캐내기 위해 많은 첩보원들을 보냈는데, 1950년 5월이 되면 북조선은 군대를 전방으로 이동한 상태였기에 남한 군부에서는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었고, 북조선 또한 침략을 위한 그 시기를 고려하고 있었다. 이미 4월에는 구체적인 날짜와 함께 남침에 대한 미정보부의 경고도 한 차례 있었다. 6월 25일 당시 북조선 후방에 있던 전 인민군의 3분지 1의 군인들은 전쟁이 시작되었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있었다. 이는 6월 25일은 예정된 날이 아니라 급작스럽게 잡힌 날이었음을 뜻한다. 그렇다면 이렇게 급한 결정을 내리게 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필자 또한 자라면서 여러 경로로 6월 25일 며칠 전에 서부전선에서 국군이 38선을 넘어 해주를 공격했다는 이야기는 몇 차례 들은 바가 있었지만, 워낙 6월 25일 새벽 4시 남침을 굳건히 믿고 있었기에 이런 이야기에 별로 귀를 기우지 않고 있었다. 그러다 10여 년 전 김종필전총리(당시 육군본부 정보장교, 국가정보원의 전신인 초대 정보부장 역임)가 신동아에서 같은 주장을 한 것을 직접 읽어본 적이 있었다. 당시에는 언론에도 대서 특별 되었었다. 그래서 정확한 날짜를 확인코자 인터넷을 뒤져보니 이런 인터뷰가 아예 없었다는 주장부터 이 주장을 ‘치매’로 돌리는 등 가짜뉴스로 도배가 되어 있는 것을 발견했다.
필자 또한 당시에는 커밍스의 책을 읽기 전이었기에 이 인터뷰 기사를 읽으면서 이 분이 치매가 걸린 것은 아닌가 하는 의심을 하기도 했었다. 그러나 커밍스 또한 이런 전투가 있었다고 말하고 있고(39-40쪽), 아브람스(Abrams)는 보다 정확한 자료를 제시하고 있는데, 6월 25일 북조선방송에서 남한군이 해주를 침략했음을 보도했고, 같은 날 남한 방송 또한 같은 내용을 방송했다.(98쪽 이하) 물론 지금 남한 당국이나 언론은 이런 사실을 모두 부정하고 있다.
당시 38분단선은 도로에는 금이 그어져 있고 양쪽 군인들이 경계를 서고 있어 그 경계가 분명했지만, 그 외 들판과 산, 강, 바다는 그 경계가 분명치 않았고, 설사 도로라 하더라도 부분 전투를 통해 금을 새로 그으면 그게 바로 새로운 38분단선이 되었다. 그리고 서로 싸워서 분단이 된 것이 아니라 외세에 의해 분단이 되었기에 양 정부는 모두 통일을 국시(國是)로 선택할 수밖에 없었으며, 각각 미국과 소련의 지원 속에서 서로 다른 정치사회경제 체제를 갖고 있었기에 무력으로 상대를 점령하는 길 외에 통일의 다른 가능성은 전혀 없었다. 그리고 원론적으로 말하면 무력에 의한 통일 시도는 김일성정권 보다는 이승만정권이 훨씬 더 절실했다.
“이승만은 협상의 가능성을 ‘양보’라거나 ‘재앙으로 가는 길’이라며 일축하고 무력통일을 강하게 주장했다. 1950년 6월 7일 김일성은 8월에 전국적인 선거를 실시하자며 이를 논의하기 위해 6월 15일에서 17일까지 해주에서 회의를 개최하자고 요구했다. 이 요구는 이승만과 미국이 모두 강경하게 반대하여 거부되었다. 그러자 나흘 후 북조선 정부는 통일에 관한 회의를 시작하자는 평화 의식으로 대표 3인을 남측에 파견했지만, 이 또한 이승만에 의해 즉각 거부되었다.
당시 이승만 정부는 제대로 감당할 수 없는 군사력 증가를 우선시했고, 1949년 여름에는 군 병력 규모를 10만 명으로 증강하여 북조선에 대해 수적 우세를 확보했다. 이대통령과 대한민국(ROK)의 군부 지도자들은 북조선(NK)를 상대로 분쟁을 개시하려는 의도를 갖고 38선을 넘어 빈번히 도발을 감행한 사실이 서방 및 국제 관측자들의 보고서에서 확인되고 있다.” (Abrams, 62쪽)
당시 주한미군 군사고문단 단장 윌리엄 로버츠장군은 “거의 모든 접전은 38선 북쪽으로 돌출한 지점에 주둔한 남한 소부대가 야기한 것이었다. 남한부대들은 북쪽으로 자주 침공했다.”(63쪽) 일본군 포병장교 출신인 김석원준장이 이끄는 서부전선의 남한군 수천 명이 수시로 38선을 넘어 공격을 개시했다. 북의 군사력이 점차 증강하자 남쪽의 일부 정치인들과 군인들은 선수를 쳐서 평양 정권을 무너뜨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민심을 점점 잃어가고 있던 이승만정권은 전쟁만이 자신을 구원할 도구였다.
1948년 5월 UN의 감독하에 치러진 남한만의 단독선거를 통해 입법부가 구성되었는데, 당시 투표권은 도시의 지주와 납세자에 한정되었고, 농촌에서는 원로들이 다른 사람을 대신하여 투표했고, 무장경찰과 우익청년단체들이 투표소 주변을 장악했다.(커밍스, 172쪽) 당시 남한에서는 미군정이 후원하는 과격한 청년단체 특히 서북청년단의 암살과 협박 거기에 일제의 부역자들이 그대로 경찰이나 군인으로 복무하는 상황에서 민중이 갖는 실망과 반감은 엄청 컸다.
이로 인한 군인들의 반란은 여순항쟁에서만 일어났던 일이 아니었다. 1949년에는 남한군 2개 대대 전 병력과 전함 1척이 월북한 사건도 있었다.(아브람스, 103쪽) 미군정이 후원한 이승만정권이 얼마나 인기가 없었는지는 총선 결과가 말해주는데, 불과 전쟁 한 달 전인 1950년 5월에 실시된 2대 총선에서 이승만의 집권당인 자유당이 얻은 결과는 210석 중 22석에 불과했다. 이 또한 불법적으로 관권이 수없이 개입한 결과였다. 이는 미군정청이 친일부역자들 곧 일본왕을 위해 죽겠다고 혈서로 맹세한 조선 출신 일본군 장교들과 독립군을 처형한 순사들을 중용함으로 인해 국민들의 반감을 살 수밖에 없었다. 이들은 자신들의 과오를 감추기 위해 미군정의 손과 발이 되어 멀쩡한 사람도 공산주의자로 몰아세워 무자비하게 처단했다. 그리고 당시에는 미국 또한 맥카시즘이라는 반공 빨갱이 선풍이 몰아치고 있던 시기였다.
반면 북조선이라는 국가의 두드러진 특성은 모스크바의 인위적인 창조물이 아닌 코리아 민족주의 운동의 계승이었다.(아브람스, 42쪽) 이는 동유럽에서의 통치와는 다른 방식이었다. 남한 학자 김남식은 “북한의 인민정권은 해방 이후 자발적으로 조직된 인민위원회들을 기반으로 삼았다. 인민위원회는 중앙이 아니라 아래로부터 조직이 되었다.”(42쪽) 오히려 소련 군정 아래에서 평양 정권은 소련 친화적인 인사들을 숙청하였다. 본래 소련은 조만식장로를 정부 수반으로 생각하고 있다가 김일성장군에 대한 평양 인민의 열화같은 지지와 신탁통치에 대한 조만식장로의 완강한 태도를 보고 생각을 바꾸었다.
이승만정권의 경제정책은 실패했고 부패가 극심했다. 당시 국가 예산의 3분지 1이 미국의 보조금이었는데, 대부분의 돈이 개인의 주머니로 들어갔다. 그리고 북조선의 소작인 농부들은 토지개혁 후 토지를 소유하게 되고 수확의 25%를 세금으로 내는 것으로 그쳤지만, 남한은 여전히 거의 대부분이 소작농이었고 수확의 70%를 지주가 가져갔다.
게다가 미군을 상대로 한 매춘을 장려하여 외화 수입의 25%가 여기에서 나왔다. 그로 인해 두 국가 간 경제 격차는 점점 벌어졌으며 시간이 흐르면서 남쪽의 민심은 점점 북쪽으로 기울어져 가고 있었다. 당시 동아일보 여론조사에 의하면, 남한사람들의 70% 이상이 북쪽 사회주의를 선호하고 있었다. 게다가 남쪽에서는 민중 폭동도 자주 일어났다. 제주43항쟁, 대구항쟁, 여순항쟁등이 대표적이었다. 그러자 미국은 남북이 평화적으로 통합하게 되면 원조를 철회하겠다고 협박하고 1950년 2월 의회를 통해 대한원조법안을 통과시켰다.(아브람스. 61쪽)
어떻게 보더라도 미국의 한국 점령은 실패라고 볼 수밖에 없다. 미국은 30여 년간의 잔인한 식민 통치로부터 막 벗어난 코리아반도에서 비극적인 분단을 고착화시켰으며, 인민위원회 등을 통하여 나타난 주민의 자유스러운 정치 참여를 막았으며, 경찰과 관료들을 장악하고 있던 우익세력의 입지를 강화시켜 주었다. 또한 미국의 정책은 좌우익 간의 대립을 심화시켜 결국 5년 후 한국전쟁으로 치닫게 했다.(오로지, 225쪽 재인용 존 메릴, 『한국전쟁의 기원과 진실』)
3. 군사 1급기밀에 해당하는 에치슨선언은 왜 했던 것일까?
지금까지의 얘기는 한국전쟁을 남북 간 내전으로 보았을 때이다. 이제는 국제전의 입장에서 그 원인을 살펴본다. 우선 한국전쟁과 관련한 직접적인 원인은 소위 말하는 에치슨선언이다. 1950년 1월 12일 미국무장관 에치슨은 워싱톤 프레스센터에서 ‘코리아반도가 미국의 태평양방어선에서 제외되었다’는 공개선언을 한다. 북조선이 남침을 준비하는 그 시기에 이 발언의 의도는 도대체 무엇인가? 당시 미국은 미군을 남한 땅에서 철수시키고 군사고문단 500명만 남겨놓은 상태였으며, 이승만의 간절한 소망에도 불구하고 한미방위조약 체결을 거부한 상태였다. 북조선의 입장에서 무력 통일을 시도할 때, 관건은 미국이 참전할 것인가 아닌가에 달려있었다. 당시 미국은 일제를 굴복시킨 가공할만한 원자폭탄을 500기나 갖고 있었다. 따라서 미국의 참전이 전제된 상황에서 북조선은 결코 전쟁을 시작할 수가 없었다. 그런데 미국이 애치슨선언을 통해 코리아반도의 내전에 참전하지 않겠다고 하는 선언이 나온 이후, 스탈린이나 모택동은 김일성에게 전쟁물자 지원을 약속하지는 않았지만, 자신들 또한 내전 혁명을 통해 정권을 잡았기에 전쟁을 반대할 명목은 없어지고 말았다.
그런데 미국은 에치슨 선언과는 달리 유엔을 통해 3일 만에 전쟁 참여를 한다. 딘 애치슨 국무장관은 전쟁 얘기를 듣자 “한국전쟁이 우리를 구원했다.”고 말했다.(70쪽) 북조선의 전면 남침은 미국의 계략에 넘어간 것이라고 볼 수 있다. 필자는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화해통일위원장 시절 미국무성의 소위 북한인권대사라고 불리는 로버트 킹(Amb. Robert King)을 세 번 만난 적이 있다. 한 번은 김영주목사(NCCK총무), 노정선목사(연세대명예교수) 그리고 짐 윈클러(Jim Winkler)목사(미연합감리교 사회부 총무, 이후 미국교회협의회 회장 역임)과 함께 면담을 한 적이 있다. 이때 킹대사가 한국전쟁에 대한 북조선의 책임을 묻는 얘기를 꺼내자 필자는 에치슨선언 얘기를 하면서 이건 미국의 계략이 아니었던가? 하고 반문을 하였다. 그러자 곧 바로 킹대사는 “It was a mistake.”라는 발언을 연이어 세 번이나 한 적이 있다.(지금도 노련한 정치인이 왜 이렇게 솔직한 답변을 했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 아마도 몰몬교 신자로서 목사 네 명 앞에서 거짓을 말하기에는 양심에 가책이 크지 않았을까 하고 추측하고 있다.)
1950년 6월 18일 남한 언론에는 공화당 국무부장관 후보인 덜레스가 38분단선을 방문하고 망원경으로 북쪽을 바라다보는 사진을 대서특필한다. 북쪽의 입장에서는 남쪽으로부터의 공격이 곧 있을 것 같은 징후를 느낀다. 그리고 6월 22일 서부전선에서는 국군이 해주를 공격하여 이를 점령하였다. 게다가 그 이전에는 전혀 없었던 일인데, 24일과 25일에 걸쳐 남한군 절반의 군인을 대거 휴가와 외출로 내보낸다. 북조선의 침략이 예상되는 일촉즉발 위기의 순간이었고 당시에는 군 비상경계령이 내려져 있던 상황에서 과연 있을 수 있는 일인가? 여기에 더하여 24일 저녁에는 공개적으로 미군과 고위 한국군 장교들을 위한 거대한 파티를 연다. 인민군의 입장에서 보면 25일은 두 번 다시 오지 않을 절호의 기회였다. 당시 남한군은 지금도 그러하지만, 철저하게 미 군사고문단의 지휘 아래에 있었던 시절이었다.
4. 왜 스탈린과 모택동은 돕지 않았는가?
한국전쟁은 이승만정권의 생존 보장에 중요하게 작용하면서 동시에 이미 아이젠하워대통령이퇴임국회연설에서 지적한 바 당시 미국의 산업은 두 번의 세계전쟁을 통해 군수산업이 주류를 이루고 있었다. 결국 한국전쟁은 미국에 경제적으로 크게 기여를 한다.
반면, 모스크바와 베이징에는 엄청난 난관을 초래했다. 채 1년이 되지 않은 신생 중화인민공화국은 한국전쟁으로 인해 국민당이 장악한 대만을 탈환해 내전을 끝낼 기회의 창이 닫히는 것을 뼈아프게 지켜봐야 했다.”(아브람스, 77쪽) 만약 이때 중국공산당이 대만을 점령하였다면, 모택동정부는 장개석정부에 이어 유엔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 자리를 바로 꿰찰 수 있었으며, 소련 또한 미국이 오키나와를 이용했던 것처럼 대만을 이용할 수 있었다. 소련 또한 한국전쟁으로 인해 중국보다 더 큰 손해를 보았다. 당시 미국은 경제불황에 들어갔지만, 오히려 소련의 사회주의 국가경제는 더 나아지고 있었기에 세계 경제에 더 큰 영향력을 주고 있었고, 세계 평화유지를 원했다. 그러기에 김일성의 끈질긴 군사지원 요구에도 불구하고 스탈린은 전혀 응하지 않았던 것이다.
5. 왜 인민군은 서울 점령 후 전쟁을 멈추었을까?
인민군은 6월 28일 서울(당시 북조선 헌법에 따르면 서울이 수도)을 점령한 후, 최소 3일에서 7일간을 서울에 그대로 멈춰 있었다. 탱크가 한강을 건넌 날짜는 7월 5일이었다. 서울에서 진격을 멈춘 것이다. 이에 대한 해석으로는 김일성은 이승만에게 통일에 관한 대화를 제안하고 기다렸다는 주장과 강원도쪽에서 내려오는 인민군이 국군의 저항에 부딪혀 늦게 합류했기 때문이라는 주장 그리고 한강철교가 끊어졌기 때문에 이를 복구하기 위해서라는 주장이 있다. 그런데, 한강에 부교를 띄우는데, 한 주간 이상이나 걸린다고 하는 것 또한 비상식적이고, 대전이나 부산을 가기 위해 꼭 한강을 건너야만 갈 수 있던 것도 아니었다. 우회하는 길은 얼마든지 있었다. 그렇다면 이 기간 중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추측컨데 김일성은 박헌영의 주장대로 서울만 점령하면 민중혁명이 일어나 저절로 통일이 될 것으로 기대했을 것이다. 무력통일보다는 남쪽인민혁명에 의한 자주적인 통일이 더 떳떳한 통일의 방식이었고 그렇게 된다면 미국의 참전은 그 정당성을 상실하게 되기 때문이다. 역사에 가정은 없지만, 만약 이때 인민군이 서울에서 멈추지 않았더라면 전쟁의 양상은 크게 달라졌을 것이다. 28일 서울 점령 당시 미국은 유엔을 통해 참전을 결정한다.
6. 또 하나의 가정
1948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서자 소련군은 퇴각하면서 여러 무기들을 남겨두고 갔다. 인민군은 이를 기반으로 전쟁을 준비했다. 그런데 전쟁 중에 무기 제공이 있었는가? 지금까지의 결론은 인민군이 소지한 무기는 2차세계대전 중에 사용되던 무기들이었으며 그 이후에 소련에서 개발한 신식 무기들은 발견되지 않았다.
스탈린은 애초부터 미국의 참전을 염려하여 전쟁을 반대했다가, 애치슨선언과 1950년 4월 원자폭탄을 개발하고 비록 소수에 불과했지만 원자폭탄을 소유하면서 비록 미국이 참전하더라도 원자폭탄 사용을 자제하리라고 여겨 김일성의 남침 요구에 마지 못해 동의를 하면서도 전쟁 중에는 어떤 물자도 제공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면서 모택동의 지원을 받으라고 말했다. 그러나 모택동 또한 대만 점령에 목표를 갖고 있었기에 애초부터 전쟁에 대해 반대를 했으며, 미군이 압록강까지 밀고 올라오자 방어 차원에서 전쟁에 참여를 한 것이지, 처음부터 전쟁 참여를 한 것은 아니었다.
그리고 낙동강전선에서 인민군이 멈춘 이유는 국군과 유엔군의 반격 때문이 아니라 병참 조달에 문제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만약 이 두 나라 중 한 나라만이라도 처음부터 인민군의 전력에 도움을 주었더라면 전황은 크게 달라졌을 것이다. 맥아더 또한 만약 중국이 1.4 후퇴 시기가 아니라 그 이전에 보다 적극적으로 북을 지원했더라면, 전쟁은 미군 개입 이전에 끝났을 것이라고 얘기한 바 있다.
7. 정전협정에 2년이나 걸린 이유?
14후퇴 이후 전선은 이전의 38분단선에서 정체가 되었다. 그리고 정전협정이 시작되었다. 3주 안에 끝날 것으로 여겨졌던 협정은 2년이나 질질 끌게 되는데, 그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 것인가? 이 기간동안 미군 폭격기는 하루도 빠짐없이 북조선의 모든 도시와 마을들을 공격하여 초토화시키고 말았다.
당시 투하한 폭탄의 양은 63만 톤으로, 이는 5년간에 걸친 태평양전쟁에 투하한 50만 톤보다 많았으며 이로 인해 북조선은 '달의 표면'처럼 변하였다. 22개 주요 도시 중 18개 도시는 최소한 50%가 흔적도 없이 사라졌으며, 모든 도시와 마을은 40∼90%가 파괴되었다. 당시 미 국방부 검열관들이 폭격의 끔찍한 현실을 미국 국민이 모르도록 감추었으며 이 폭격으로 인해 북조선은 일종의 '유격대 국가'로 변해갔다.(커밍스)
필자가 본 한국전쟁 기록영화에도 평양시를 내려다본 미군 폭격기 조종사가 관제탑에 이렇게 말한다. “There is no more target, Roger.(목표물이 더 이상 없다)” 평양의 모든 건물이 파괴되어 있었기에 가지고 간 폭탄을 어디에 투하해야 할지를 몰랐던 것이다. 한 미군 장성은 말하기를 북조선은 구석기 시대로 돌아갔으며 복구에 100년 이상 걸릴 것이라고 말했다. 고려대 최장집 교수는 "한국전쟁의 가장 큰 피해자는 북녘 인민들이었다."고 말한 바 있으며 피카소는 '조선에서의 학살 (The Massacre in Korea)' 이란 제목의 게르니카 벽화를 통해 미군들이 황해남도 신천 군민 4분의 1에 달하는 무고한 양민을 잔인하게 죽인 사실을 고발하였다.
미국의 무차별 폭격이 가져온 또 다른 이야기이다. 희대의 이중간첩이라는 별명을 지닌 조지 블레이크(George Blake)의 이야기이다. 그는 1948년 11월 서울에 온 영국 부영사이다. 러시아어를 전공한 탓에 영국 정보국에 발탁이 되었다. 파송 당시 상관이 코리아에 곧 전쟁이 일어날 것이라고 말한다. 이에 가지 않겠다고 하자 영국은 미국과 소련 어디에도 속하지 않은 중립국이라 전쟁이 일어나도 외교관 신분으로 곧 풀려날 것이라고 말한다. 그래서 전쟁이 발발하자 미국의 외교관들은 다 피했지만, 서울에 머물던 영국 외교관들은 피하지 않고 있다가 갑자기 영국이 유엔연합군의 일원으로 참여하자 졸지에 포로가 되어 3년간의 포로생활을 하였다.
하루는 북조선 북단의 아주 작은 마을에 있었는데, 당시 마을에는 젊은 사람들은 모두 전쟁터에 나가고 노인들과 여성들밖에 없었는데, 미군폭격기로 인한 극심한 참상을 보고 자신이 잘못된 진영에 속해 있음을 깨닫고 비밀리에 소련군의 첩자가 될 것을 약속한다. 전쟁 후 석방이 되고 얼마 있지 않아 베를린에 영국정보원으로 파견이 되었는데, 이때부터 오랜기간동안 이중첩자의 역할을 하다 반역죄로 선고를 받고 감옥에 있다 영국인 양심수의 도움을 받아 탈옥하여 영국에 6개월을 숨어 있다가, 러시아로 탈출하여 영웅 대접을 받았다. 2020년 12월 24일에 사망하였다.
8. 결국 전쟁의 혜택은 누가 입었나?
마틴 워커(Martin Walker)라는 영국 기자는 한국전쟁(Korean War)을 가리켜 “유럽에서 백인들 간의 싸움으로 시작된 냉전의 대가를 갈색, 검은색, 노란색 피부를 가진 제3세계 사람들이 치른” 것이라고 했다.(오로지 148쪽) 1952년 밴 플리트장군은 한국전쟁에 대해 다음과 같이 요약한다.
“한국전쟁은 미국 입장에서는 축복이다. 코리아가 아니라면 또 다른 지역에서 한국전쟁과 같은 전쟁이 있어야 했다.”(오로지 225쪽) 당시 미국은 2차세계대전 직후 군수공장들이 문을 닫게 되어 실업률이 높아져 경제불황에 빠져 있었는데, 이를 다시 활성화시킴으로 경제가 살아나기 시작했다. 군사비 지출은 전년도에 비해 4배가 넘었고, 징병제를 실시함으로, 이는 결국 베트남전쟁으로 이어지는 계기가 되었고, 유럽에 나토군사동맹이 결성되는 계기를 마련했다. 미국의 산업은 최소 3분지 1 이상이 군수산업이다. 곧 전쟁으로 먹고사는 괴물국가이다. 오죽했으면 카터 전대통령 또한 미국 역사 242년 동안 전쟁을 하지 않는 기간은 불과 16년에 불과하다고 자탄을 했을까.
결론으로 한국전쟁은 미국 경제살리기가 주요 목적이었다. 작금의 우크라이나 전쟁 또한 이 관점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다. 미국과 러시아는 오래된 탱크와 재래식 미사일과 유효기간이 지난 포탄의 소비처를 필요로 하고 있었고, 이에 미국은 젤렌스키로 하여금 나토가입을 유인하고 국경 근처의 친러그룹을 핍박함으로 인해 러시아의 침략을 야기시켰다. 프란체스코 교황이 말했듯이 이는 오래전부터 예견된 일이었다.
지금 미국이 우크라이나에 원조하는 것은 재래식 무기이지 최신식무기가 아니다. 러시아 또한 최신식무기를 사용하지 않고 있다. 민간인 지역을 포함 논밭이나 숲속 엉뚱한 곳에 미사일이 떨어지는 것은 유효기간이 지난 고물들이기 때문이다. 두 나라 모두 전쟁을 오래 끌기 위한 전략이 숨어 있다. 구식무기들이 모두 소비된 후에야 정전협정이 시작할 것이다.
미국은 베트남전쟁에서 2차세계대전에서 쓰인 폭탄보다 더 많은 양을 투하했으며, 심지어 라오스에도 폭탄 투하를 하였는데, 지금 라오스 전 국토 99% 지역에는 8천만 발의 포탄이 땅속에 박혀 있어 매년 3백 명 이상의 희생자를 낳고 있다. 도대체 이 많은 포탄들은 왜 터지지 않았던 것일까? 그건 유효기간이 지난 것을 쓰레기로 처리하였기 때문이다. 물론 미국만 한국전쟁으로 덕을 본 것은 아니다. 영국을 비롯한 유럽국가들 그리고 태평양전쟁으로 폐허가 되었던 일본이 경제대국으로 일어설 수 있었던 것은 한국전쟁시 병참기지로서의 역할을 하였기 때문이다.
남과 북의 국민들이 세계 패권국가들의 이러한 전략을 알아채고 평화의 길로 나아가지 않는 한 불필요한 희생은 계속될 수밖에 없다. 현재 미국 군사무기 수출의 절반을 남한과 일본, 대만 이 세 나라가 차지하고 있다. 코리아반도에 평화의 기운이 돌면 이 세 나라의 무기 수입은 급격히 줄어들 수밖에 없다. 지금도 북악마화로 인해 미국은 엄청난 이득을 보고 있으며 그 희생은 결국 남한사람들이다. 국방비 예산의 절반만이라도 민간복지로 돌릴 수 있다면 국민기본소득의 확대는 물론 전국민교육무상화 정책까지 실현할 수가 있을 것이다.
9. 나가면서
지금 세계는 미국식 자본주의가 지배하는 가운데 여기에 저항하는 중국, 러시아, 중동의 이슬람국가, 쿠바, 베네주엘라, 북조선 등등의 사회주의 정책을 실시하는 국가들이 존재하고 있다. 현재 남미는 거의 모든 나라에 사회주의 정책을 실현하려는 좌파 정권들이 실권을 잡았다. 북유럽나라들의 경우는 복지형 사회주의 국가들로 미국식 자본주의와는 판이하게 다르다. 미국식 시장금융 자본주의는 개인의 자유를 극도로 허용하여 부의 불평등이 너무 높아 자칫하면 민중폭동을 불러일으키기 쉽다. 현재 미국에서 일어나는 매년 수천 건의 총기난사는 이러한 불만들이 분출되는 사회적 현상이다.
여기에는 인종차별까지 연계되어 있다. 흑인들이 백인들에 비해 4배 이상 살해당할 위험이 높다. 이는 마치 히틀러가 백인우월감을 부추겨 유대인들을 학살한 것과 비슷하다. 트럼프전대통령은 3년 전 대선결과에 불복하여 민중폭동을 획책하였고, 지금도 인종차별은 물론 극단적인 언어들을 통해 보수공화당원들을 집결시켜 다음 대선을 준비하고 있다. 이것이 과연 언론자유의 국가인가?
반면 소련식 공산사회주의는 개인의 재산 소유를 금지한다는 것이 약점이다. 이는 소련 공산주의의 몰락을 통해 증명이 된 바 있다. 따라서 개인 자유와 집단 평등의 가치가 균형을 맞춘 경제제도가 앞으로 인류가 지향해야 할 체제이고 현재는 북유럽국가들이 대표적이다. 다만 북유럽국가들의 경우는 인구가 작고 자원이 풍부한 나라들로 제3세계의 가난한 나라들과는 상황이 전혀 다르다.
미국 펜실베니아대학의 사회학과 샘 리처드(Sam Richard) 교수는 본래는 남미 역사와 문화 전공이지만, 지난 몇 년 동안 한국문화에 심취하고 이에 관련한 유튜브 동영상이 몇 개 있다. 2022년 그는 ‘세계기후위기를 해결할 첫 번째 주자로 남한을 언급하면서 다음과 같이 4가지 이유를 들었다. 1. 공동체중심사회(Community well-being uplifts individuals) 2. 효율적인 교육시스템(Efficient system of educating youth) 3. 공익을 위한 규칙 준수(Willingness to follow rules that benefit the collective) 4. 세계적인 소프트파워(Soft power and the global stage)
리처드교수는 북조선에 대한 이해가 전혀 없을뿐더러 관심도 없고, 그의 동영상을 여러 개 보았지만, 분단 혹은 통일이란 단어 또한 한 번도 언급하지 않는다. 그런데 리처드교수가 언급한 네 개의 장점은 남과 북을 원론적인 의미에서 비교하자면 1, 2, 3번은 모두 북조선이 앞선 분야이고, 4번 또한 일정 분야에 있어서 세계적인 수준을 갖고 있다. 자체의 인공위성 발사와 핵무기 개발을 이미 10년 전에 완성한 국가이다. 그것도 80년 가까이 미국으로부터 극도의 군사경제 제재를 받고 있는 최악의 상황에서 이룩한 일이다.
남과 북은 오 천년의 역사를 공유한 하나의 민족공동체로서, 작금의 세계를 양분하고 있는 자본주의와 사회주의라는 서로 다른 체제를 하나로 엮어낼 때 그 시너지 효과는 상상을 초월할 것이고, 바로 이러한 새 역사를 바라보면서 함석헌선생은 『뜻으로 본 한국역사』 그 마지막 문장에서 한/조선의 미래를 이렇게 노래했다.
“거기서 이 수난의 비렁뱅이는 영원의 문전에서 나사로같이 과거의 모든 고통과 업신여김에서 벗어나 위로와 존경을 받을 것이다. 거기서 지난날 큰 길가에 앉아 있던 갈보는 그 받은 고난으로 정화되어 여왕이 될 것이다.”
(이 글은 소통과 혁신연구소 카페의 글을 함께 게재한 것입니다. 편집자)
첫댓글 미국과 나토가 3차대전을 시도할 모양세라서
푸틴이 매우 바빠진 모양이다.
3차대전은 제일 먼저 이스라엘을 점령하는 거고 그게 핵을 사용하면
더욱 더 빨라질 거로 보여진다.
그다음에 중국이 대만을 쉽게 점령할 거로 보여진다.
대만지도부를 암살할 거로 보여지고 그게 안되면 내부혁명이 일어날 가능성이다.
동북아는 북한이 전쟁을 막아줄 것인데 핵으로 응전하면 한반도인구가
10%정도 만 안전할까 싶다.이건 해외 탈출자이다.
유럽전선은 맨 마지막에 연합군이 진격하여 끝장낼 거로 보여진다.
아마 브릭스연합군이 진군하리라 보여진다........
어디까지나 가상이지 꼭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도발에는 보복과 응징의 댓가가 따르는 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