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십천은 삼척시 도계읍 구사리 백산에서 원통골로 넘어가는 큰덕샘에서 발원하여 삼척 정상리에서 동해로 들어가는 59.5 킬로미터의 강이다. 《동국여지승람》에서는 “오십천은 부성 남쪽 105리에 있다. 수원水源이 우보현에 있으며, 죽서루 밑에 와서는 휘돌면서 못이 된다. 또 동쪽으 로 흘러 삼척포가 되어 바다로 들어간다. 부에서 수원까지 마흔일곱 번을 건너야 하므로 대충 헤아려서 오십천이라 일컫는다.”라고 하였다. 조선 중기의 문장가로 강원도 관찰사를 지낸 정구鄭逑는 죽서루를 다음과 같이 노래하였다.
겹으로 된 벼랑은 층층 누각을 버티었고 붉은 기와는 맑은 흐름을 굽어본다 여러 구렁은 서쪽을 따라 구불구불 백 굽이나 내려왔다 흰 돌 하얀 모래 깨끗하기에 홍진의 발을 씻고 싶구나 나는 여울은 돌다리에 뿌리고 급한 물결은 주옥(珠玉)을 뒤집는 듯하다 샘물이 달고 땅이 또 기름져 반곡(盤谷, 중국 태행산 남쪽에 있는 땅 이름으로 샘물이 달고 땅이 기름진 곳을 이름)에 왔는가 의심된다 산이 둘리고 초록이 우거졌고 길이 돌아서 간다는 것이 돌아오는 듯 여기에 오니 세상 뜻 적어져서 가려고 하다가 도로 묵는다
오십천이 휘돌아가는 깎아지른 절벽 위에 관동팔경 중 하나이며 보물 제213호로 지정된 죽서루가 있다. 《동국여지승람》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실려 있다.
“죽서루는 객관 서쪽에 있다. 절벽이 천 길이고 기이한 바위가 총총 섰다. 그 위에 날아갈 듯한 누를 지었는데 죽서루라 한다. 아래로 오십천에 임했고 냇물이 휘돌아서 못을 이루었다. 물이 맑아서 햇빛이 밑바닥까지 통하여 헤엄치는 물고기도 낱낱이 헤아릴 수 있어서 영동 절경이 된다” 공민왕 때 강릉에 안겸사로 왔던 정추는 다음과 같은 글을 남겼다.
죽서루 그림자 맑은 냇물에 일렁이며 못 위의 산 빛이 작은 누에 가득하다 가절(佳節)에 멀리 와 노니 느낌이 많아 석양에 가려다 다시 머뭇거린다 일찍이 황학루를 때려 부순 사람 있음을 들었더니 지금은 백구와 친한 사람 없음이 한스러워라 언덕을 끼고 붉은 도화 봄도 늙어가니 나팔 부는 소리는 진주(삼척의 옛 이름)를 찢으려 하네
죽서루는 고려 충렬왕 때 《제왕운기》를 지은 이승휴가 처음 지었다고 한다.
수많은 사람들이 오고 간 죽서루에 가을이 오고, 나뭇잎들이 형형색색으로 물들고 있는데, 잠시 머물다가 돌아갈 뿐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