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님
2024.8.14.수요일
성 막시밀리아노 마리아 콜베 사제 순교자(1894-1941) 기념일
에제9,1-7;10,18-22 마태18,15-20
우리 교회 공동체의 영원한 스승
“그리스도 주 예수님”
“찬양하라, 주님을 섬기는 자들아,
주님의 이름을 찬양하라
이제부터 영원까지 찬미하라, 주의 이름”(시편113,1-2)
오늘 화답송 시편이 좋습니다. 하느님 찬양으로 하루를 시작함이 축복입니다.
오늘 역시 옛 어른의 말씀부터 소개합니다.
“배움이란 눈으로 읽어 머리에 채우는 것이 아니라, 몸으로 전해 받아 삶에 새기는 것이다.”<다산>
“스승의 가르침에 제자는 공손한 태도와 겸허한 마음으로 극진하게 배워야 한다.
선한 것을 보면 따르고 의로운 일을 들으면 실행해야 한다.”<관자>
우리의 평생 삶에 보고 배울 스승이 얼마나 결정적으로 중요한지 깨닫습니다.
참으로 감사하게도 우리에게는 영원한 평생 스승이자 주님이신 그리스도 예수님이 계십니다.
저역시 날마다 평생 스승이자 주님이신 예수님으로부터 겸손히 배우는 마음으로 강론을 씁니다.
늘 우리와 함께 계신 주님이자 스승이신 주님이신 예수님은 그날 말씀을 중심으로
우리에게 가르침과 깨우침을 주십니다.
평생교육에 매일미사보다 더 좋고 유익한 수행은 없다는 것이 우리 가톨릭신자들의 자랑입니다.
또 우리가 배울 분들은 무궁무진 합니다.
영원한 스승이자 주님을 따르고 배웠던 교회 역사상 모든 성인들 역시 우리의 스승이 됩니다.
평생 영원한 스승이신 주님을 따르는데 이정표가 되고 삶의 좌표가 되는 성인들입니다.
또 깨어 눈만 열리면 삶의 스승은 곳곳에서 만납니다.
저에게는 요즘 저녁부터 밤새 피었다 다음날 오전 해뜰 때 까지 만개한 들꽃 달맞이꽃들도
삶의 스승이 됩니다.
“밤새 깨어 님 기다리던 달맞이꽃 청초한 사랑!
축복인사 받으시고 오늘도 힘내시고 건강하시고 행복하세요!”
이른 새벽 수도원 산책하며 기도중 찍은 활짝 핀 달맞이꽃 사진과 함께 지인에게 보낸 메시지의 내용입니다.
밤에도 깨어 살라는 가르침을 주는 달맞이꽃들입니다.
아주 오래전 써놨던 시 두편도 떠오릅니다.
“당신께 맺혀있는 이슬방울되어
영롱하게 깨어 살다가
흔적없이 사라지는 인생이고 싶다”<2000.8.6.>
“풀잎들 밤새 별꿈 꾸며
뒤척이며 잠못 이루더니
아침 풀잎마다 맺힌 영롱한 별무리 이슬방울들”<2000.10.1.>
24년전 여기 수도원 산책중 깨달음과 더불어 선물처럼 주어진 시입니다.
평범한 일상의 자연도 저에게는 참 좋은 삶의 스승이 됩니다.
오늘은 1941년 8월14일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순교한, 만47세로 삶을 마감한 성 막시밀리아노 마리아
콜베 사제 기념일입니다. 생전에
“성모승천대축일이 죽고 싶다.”라고 말했던 그의 소원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죄수번호 16670 숫자가 적힌 죄수복을 입은 그의 순교 직전의 일화는 늘 들어도 감동입니다.
한명의 죄수가 탈출함으로 이에 대한 벌로 차출되어 죽게 되자 폴란드 출신의 병사
‘프란치셰코 가조우니체크’는 “내 아내, 내 아이들, 그들은 어떻게 될까?” 울부짖을 때
콜베 사제가 나선 것입니다.
“나는 가톨릭 사제이다. 나는 그사람을 위해 죽고 싶다. 나는 늙었다; 그는 부인과 아이들이 있다.”
젊은 병사를 대신하여 성인은 순교했고, 기사 회생한 가조우니체크는 1995년 3월 13일 사망합니다.
그러니까 콜베 성인이 순교후 53년 동안 살다가 95세 천수를 누리고 산 것입니다.
그는 살아서 1982년 10월10일 교황 성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한 성인의 시성식에 참석하였고,
그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전해집니다.
“나는 폐에 숨이 붙어있는 한, 막시밀리안 콜베의 영웅적 사랑의 행위에 대해 사람들에게 전하는 것을
자신의 의무로 여기고 살아 왔고 또 그렇게 살 것이다.”
오늘 주님께서 주시는 말씀도 좋은 깨우침이 됩니다.
제1독서 에제키엘서 9장과 10장은 참 좋은 대조를 이룹니다.
9장이 우상숭배자들의 비참한 죽음을 소개하는 반면 10장은 주님의 영광이 예루살렘 성전을
떠나는 장면입니다.
에제키엘 예언자가 환시를 통해 본 것입니다.
참으로 우리가 회개하지 않고 죄중에 살아갈 때 주님의 영광도 떠날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주님이 떠난, 희망도 빛도 평화도 사라진 그 자리는 그대로 지옥일 것입니다.
새삼 주님을 삶의 중심에 모신 기도와 회개의 삶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게 됩니다.
끊임없는 기도와 함께 가는 끊임없는 회개입니다.
기도와 회개는 끝이 없습니다.
살아 있는 그날까지, 죽는 그날까지 계속되어야 할 기도와 회개의 삶입니다.
혼자서의 기도보다 더 중요한 것이 공동체의 기도입니다.
공동체가 얼마나 중요한지 요즘 시찰을 앞둔 설문지만 봐도 담박 드러납니다.
“1.공동체 생활, 2.공동체의 리더쉽, 3.공동체의 일, 4.공동체의 미래”에 따른 모든 항목들마다
공동체가 반드시 붙습니다.
새삼 우리의 삶은 ‘더불어의 여정’임을 깨닫게 됩니다.
‘빨리 가려면 혼자가고 멀리 가려면 함께 가라’는 말에 전적으로 공감합니다.
교회 공동체와 함께 할 때 제일 안전하고 튼튼하며 또 멀리 갈 수 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주님은 고마운 가르침을 주십니다.
“내가 또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 가운데 두 사람이 이 땅에서 마음을 모아 무엇이든 청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이루어 주실 것이다.
두 사람이나 세 사람이라도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함께 있기 때문이다.”
함께 마음을 모아 기도하면 아버지께서 들어주신다 합니다.
이렇게 기도하는 공동체일 때 앞서 복음에서처럼 죄를 지은 형제의 교정도 훨씬 수월해 질 것입니다.
형제가 죄를 지었을 경우 공동체의 배려가 참 섬세합니다.
끝까지 화해와 치유를 위해 온갖 최선의 노력을 다 할 수 있음도 공동기도의 위력임을 봅니다.
아주 예전 ‘교정이 없는 공동체는 약한 공동체’라는 장상의 말도 있지 못합니다.
기도하는 땅의 공동체는 하늘에 그대로 연결되었음을 봅니다.
‘너희’가 가리키는 바 교회 공동체입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고, 너희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릴 것이다.”
눈들면 기도하라 하늘이요 땅과 하늘을 하나로 연결하는 것이 기도입니다.
하늘과 땅은 교회 공동체의 기도를 통해 하나로 연결되었음을 봅니다.
땅의 교회 공동체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여 있을 것이고, 땅의 교회 공동체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린다 하니 한마음으로 땅에서 바치는 교회 공동체의 기도가 공동체의 화해와 일치,
그리고 하늘과 땅의 소통에 얼마나 절대적인지 깨닫습니다.
사실 이런 공동 전례기도은총없이 교회공동체의 일치는 불가능합니다.
날마다의 이 거룩한 미사은총으로 살아가는 우리 교회 공동체요 우리 각자의 인생입니다.
“해 뜨는 데서부터 해 지는 데까지,
주님의 이름은 찬미받으소서.”(시편113,3). 아멘.
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님
가톨릭사랑방 catholicsb
첫댓글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