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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방지훈(義方之訓)
의로운 방법의 가르침이라는 뜻으로, 부모의 자식에 대한 교육, 바른 인간이 되도록 옳은 방향으로 가르치고 이끌어야 한다는 말이다.
義 : 옳을 의(羊/7)
方 : 방법 방(方/0)
之 : 어조사 지(丿/3)
訓 : 가르칠 훈(言/3)
출전 :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 은공(隱公) 3년
의로운 방법의 가르침이라는 뜻으로, 올바른 길로 들도록 가르친다는 말로 주로 부모의 자식 교육을 의미한다. 바른 인간이 되도록 옳은 방향으로 가르치고 이끌어야 한다는 말이다.
춘추좌씨전 은공(隱公) 3년 조에 다음과 같은 구절이 나온다. 위장공(衛莊公)이 적자(嫡子) 주우(州吁)를 매우 총애하여 그가 전쟁과 무예에 심취해 있는데도 금하지 않았다. 이에 현명한 대부(大夫) 석작(石碏)이 간언하기를,
臣聞愛子, 教之以義方, 弗納於邪.
신이 듣건대 ‘자식을 사랑하되 의로운 방법으로 가르쳐서 사악한 길에 들어가지 않게 한다’고 하였습니다.
驕奢淫泆, 所自邪也, 四者之來, 寵祿過也.
교만함과 사치함, 방탕함과 방자함은 간사함의 원인이니, 이 네 가지 감정이 드는 것은 총애가 지나치기 때문입니다.
將立州吁, 乃定之矣.
주우를 세우고자 하신다면 그를 태자로 정하십시오.
若猶未也, 階之爲禍.
만약 그리 하시지 않는다면 주우는 총애를 발판 삼아 화를 일으킬 것입니다.
夫寵而不驕, 驕而能降,
총애를 받으면서도 교만하지 않으며, 교만하면서도 스스로를 낮추며,
降而不憾, 憾而能眕者, 鮮矣.
스스로를 낮추면서도 원한을 품지 않으며, 원한을 품고서도 언행을 진중하게 하는 자는 드뭅니다.
이와 같은 석작의 간언에도 장공은 주우를 내버려 두었다. 석작의 아들 석후(石厚)마저 주유와 어울리더니 아버지의 만류도 듣지 않았다. 후에 주우가 위 환공(衛桓公)을 시해하고 스스로 군주로 등극하여 백성을 다스리려 하였다.
석후가 군주의 지위를 안정시킬 방법에 대해 아버지에게 묻자 석작은 들어주는 척 하면서 진 환공(陳桓公)을 통해 일을 도모하였고, 결국 대의(大義)를 위해 주우를 처형하고 한통속인 자기 아들 석후까지 죽이는 선택을 하였다. 춘추좌씨전에서는 이 같은 석작의 결정을 두고 ‘대의멸친(大義滅親)’이라고 칭송하였다.
의방지훈(義方之訓)은 위 고사에서 유래한다. 의로운 방법의 가르침, 올바른 길로 들도록 가르친다는 뜻으로 주로 부모의 자식 교육을 의미한다. 자식이라고 해서 지나치게 사랑하고 아끼기만 하면 나쁜 길로 들어가기 쉽다. 인간으로서 지켜 마땅한 도리를 가르쳐 바른 사람이 되도록 인도하는 것이 진정으로 자식을 사랑하는 것이다.
의방지훈(義方之訓)
연민(淵民) 이가원(李家源) 선생이 한문학(漢文學)의 대가인 것은 다 안다. 학문뿐만 아니라 덕행(德行)에 있어서도 배울 것이 너무나 많다.
선생은 제자나 손아래 사람은 물론이고 친구 심지어 손위 사람까지도 잘못하는 것이 있으면, 반드시 지적하여 바로잡았다. 때로 심하게 화를 낸다. 그러자 사람들은 그 정신은 안 보고 화내는 것만 확대하여 “성질이 못 됐다.” “퇴계 후손이라고 안하무인(眼下無人)이다.” 등등의 이야기만 퍼뜨려, ‘퇴계 후손이고 글 좀 한다고 잘난 채하고 사람 이가원’으로 이미지를 만들어갔다. 그렇게 믿는 사람이 대단히 많다.
자신을 바르게 처신하고 누구에게나 당당하게 대했다. 나무라는 말씀은 모두 바른 사람 되라는 데 있는데 꾸지람을 한두 번 들으면 그만 발길을 돌렸다. 선생이 가장 싫어하는 것이 시간 어기는 것과 어떤 모임에 자주 빠지는 사람이나 일이 있다고 중간에 나가는 사람 등이다.
1982년 연세대학교를 정년퇴임하고 방대한 ‘조선문학사(朝鮮文學史)’ 저술을 위해서 연구회를 만들었다. 회원들은 주로 국문학, 한문학을 전공하는 교수로 자료 수집과 번역을 도와주기로 했다. 토요일 선생 댁에 모여 자료를 취사선택하고 강독을 했다. 회원들에게는 선생이 베껴 모은 한문학 연구 자료 ‘실학지자(實學之資)’ 복사본과 자작 친필 병풍 한 폭씩을 나눠 주었다.
매주 10여 명의 교수들이 모여서 강독회를 하는데 한 교수가 사전 해명 없이 연속 2주를 빠졌다. 선생이 화를 내며 “모 교수는 왜 안 나오나?”라고 물었다. 그러자 어떤 교수가 “집 보러 다닙니다”고 대답했다. 실제 그 교수는 이사하기 위해서 부인과 함께 집을 구하러 다니고 있었고, 시간이 토요일 일요일 밖에 안 나 강독회에 나올 수가 없었다.
선생이 노기(怒氣)가 등등하여 “말세는 말세다. 교수가 공부는 안 하고 부동산이나 보러 다니니 뭐가 되겠노? 교수는 집이 두 채면 안 돼!”라고 말했다. 대답한 교수가 기에 질려 “이사하기 위해서”라는 말을 감히 보충하지 못 했다. 그러자 선생은 “그런 교수는 우리 연구회에 필요 없어”라고 잘라 버렸다.
약속시간에 1분만 늦어도 선생은 행사 자체를 아예 취소해 버린다. 만년에 중국에서 저명한 교수가 와서 찾아 뵙고 다음 날 낮 12시 식사하기로 약속했다. 다음날 길이 막혀 5분 정도 늦었다. 들어서니 벌써 분위기가 싸늘했다. “식사하러 가시지요.” “안 간다.” “길이 좀 막혀서….” “길 막히는 일이 어제 오늘 새로 생긴 일이가? 미리 감안해야지.” 하시고는 끝내 안 가셨다.
필자도 여러 번 야속한 생각이 들었지만 큰 교훈을 얻었다. 그래서 필자도 어떤 모임에 가입 안 했으면 몰라도 가입했으면 반드시 출석하고, 출석했으면 중간에 안 나오고, 시간을 철저히 지키려고 노력하고 있다. 워낙 엄하게 가르침을 받아 가슴 깊이 가르침이 확실히 남아 있다.
부모가 자식을 가르치는 방법
최고의 스승은 부모
예부터 '최고의 스승은 부모'라는 말이 있다. 그만큼 가정 내의 가르침이 중요하다는 뜻이다. 동서고금(東西古今)을 막론하고, 자식을 누구보다 훌륭하게 가르치고 싶은 것이 부모의 마음이다. 그러나 부모 입장에서 자식을 가르치는 것보다 더 어려운 일은 없다. 오죽했으면 남의 자식은 가르쳐도 내 자식은 못 가르친다고 했겠는가?
고전(古典) 속에는, 부모가 자식들을 가르치는 데 귀중한 실마리를 제공해주는 글들이 많이 남아 있다. 여기에서는 안씨가훈(顔氏家訓), 가범(家範), 소학(小學) 등에 실려 있는 기록들을 통해, '부모가 어떻게 자식을 가르쳐야 하는가?'에 대해 살펴본다.
자애롭되 위엄(威嚴)을 갖추어야 한다.
총명한 사람은 가르치지 않아도 성공한다. 어리석은 사람은 아무리 가르쳐도 나아지지 않는다. 그러나 보통의 사람은 가르치지 않으면 깨닫지 못한다. 옛날 성왕(聖王)들은 태교법(胎敎法)이 있었다. 아이를 임신한 지 3개월이 지나면 따로 별궁(別宮)에 거처했다. 눈으로는 사악(邪惡)한 것을 보지 않고, 귀로는 망령된 것을 듣지 않고, 예절(禮節)로써 음악과 음식을 삼갔다. 이와 같은 내용을 옥판(玉版)에 기록하고, 금궤(金櫃)에 보관해 소중하게 간직했다. 아이가 세상에 나와 3개월이 지나 웃게 되면, 어린아이를 교육시키는 일을 담당하는 관리인 사보(師保)는 효(孝)와 예(禮)와 의(義)를 밝히고, 이것들을 습관과 성격이 되도록 가르친다.
일반 백성들은 이렇게까지 할 수는 없다. 그러나 아이가 사람의 얼굴을 알아보고 다른 사람의 기쁨과 성냄을 깨달을 때가 되면 즉시 하라는 것은 하고 못하게 하는 것은 하지 않도록 가르쳐야 한다. 다시 몇 살을 더 먹게 되면 회초리와 꾸지람이 어떤 뜻을 담고 있는지 깨닫게 해야 한다. 부모가 자애(慈愛)롭되 위엄(威嚴)을 갖추게 되면 자식들은 두려워 행동을 삼가면서도 효성스런 마음을 지니게 된다.
그러나 내(안지추)가 볼 때, 세상 사람들은 그렇게 행동하지 않는다. 자식들에게 무작정 사랑만 베풀기 때문이다. 자기 하고 싶은 대로 음식을 먹고 행동을 해도 내버려두고, 마땅히 가르쳐야 할 것은 오히려 격려하고, 꾸짖어야 할 것은 웃어넘겨 버린다. 그리하여 자식이 자라 나름대로 식견이 생길 때, 모든 일을 평소 해오던 대로 하면 되는 줄 알게 된다. 이제 부모가 제재(制裁)를 가하고 죽도록 매질을 한다고 해도 이미 교만함이 몸에 밴 자식에게 위엄이 설 리가 없다. 오히려 부모에 대한 분노와 원망만 날로 키워 성장해서는 끝내 패륜(悖倫)을 저지른다.
그래서 공자(孔子)는 "어려서 형성된 습관은 천성과 같다. 습관에 따라 형성된 것은 자연스럽게 배어나온다"고 말씀하셨다. 또한 속담에서는 "며느리는 처음 맞아들였을 때 가르쳐야 하고, 아이들은 갓난아이였을 때 가르쳐야 한다"고 했다. 진실로 옳은 말이다. - 안지추(顔之推), 안씨가훈(顔氏家訓) 교자(敎子)편
한(漢)나라 시대, 만석군(萬石君) 석분(石奮)은 많이 배우지는 못했으나 누구도 따라오지 못할 정도로 공손하고 몸가짐을 조심했다. 석분(石奮)에게는 네 아들이 있었는데, 맏아들은 건(建), 둘째 아들은 갑(甲), 셋째 아들은 을(乙), 막내아들은 경(慶)이었다. 모두 선행(善行)과 효도(孝道)로 몸을 삼가 벼슬과 녹봉(祿俸)이 2,000석(石)에 달했다. 이 때문에 한(漢)나라의 경제(景帝)가 "석분(石奮)과 그 아들 넷은 모두 2천 석(石)의 녹봉(祿俸)을 받았다. 모든 사람들이 석분(石奮)을 높이고, 그의 집안을 칭찬한다. 석분(石奮)은 만석군(萬石君)이다."라고 말했다.
경제(景帝) 통치 말기에 석분(石奮)은 상대부(上大夫) 벼슬에서 물러나, 집에서 노년(老年)을 보냈다. 자식들이 작은 벼슬자리에라도 나아간 후, 일을 끝마치고 집에 돌아와 찾아오면 석분(石奮)은 반드시 조정에서 입는 관복(官服)을 입고 맞았다. 또 그 자식의 이름을 부르지 않았다. 석분(石奮)은 자식이 잘못을 범하면 말로 꾸짖지 않고, 자신의 방에 들어가 앉아 음식을 먹지 않았다. 자식들이 서로의 잘못을 나무라고 나이가 제일 많은 자식이 사죄의 뜻으로 윗옷을 벗고 진심으로 용서를 빌면 비로소 용서하였다.
자손(子孫)들 중 관(冠)을 쓸 나이가 된 사람이 곁에 있을 때는 비록 할 일없이 한가하게 지낼 때라도 반드시 관(冠)을 쓰고 점잖게 행동하도록 했다. 만석군(萬石君) 석분(石奮)은 상(喪)을 지낼 때 매우 심하게 슬퍼했다. 이에 자손들이 그 가르침에 따르고 석분(石奮)처럼 행동했다. 석분(石奮) 집안의 효성(孝誠)과 공손함은 전국 방방곡곡에 알려졌다. 비록 예(禮)를 숭상하는 제(齊)나라나 노(魯)나라의 선비라도 행실을 삼가는 것은 모두 석분(石奮)의 집안에 미치지 못한다고 생각했다.
한(漢)나라 무제(武帝) 건원(建元) 2년에, 낭중령(郎中令) 왕장(王臧)이 글을 써 황태후(皇太后)에게 죄를 지었다. 황태후(皇太后)는 "선비라는 자들은 학문과 글은 뛰어나지만 본바탕은 부족하다. 지금 만석군(萬石君) 집안의 사람들은 말하지 않으면서 몸소 실천한다"고 말했다. 이에 석분(石奮)의 맏아들 건(建)은 낭중령(郎中令)이 되고, 막내아들 경(慶)은 내사(內史)에 올랐다.
맏아들 건(建)이 늙어 백발이 되었지만, 석분(石奮)은 아무 탈 없이 지냈다. 건(建)은 5일마다 목욕하고 돌아와 아버지를 뵙고, 친히 침실 곁의 작은 방으로 들어가 석분(石奮)의 시중을 드는 사람에게 가만히 부탁하곤 했다. 그것은 석분(石奮)의 속옷과 변 묻은 옷을 달라는 것이었다. 건(建)은 그 옷들을 몸소 빨았다. 그리고 깨끗하게 세탁한 옷을 시중드는 사람에게 돌려주면서, 항상 만석군(萬石君)이 그 일을 알지 못하도록 했다. 건(建)은 그러한 일을 일상적으로 했다.
만석군(萬石君)이 거처를 능리(陵里)로 옮긴 후, 하루는 내사(內史)인 막내아들 경(慶)이 술에 취해 돌아오면서, 마을 바깥문을 들어올 때 수레에서 내리지 않았다. 만석군(萬石君)은 그 일을 전해 듣고 음식을 먹지 않았다. 경(慶)이 당황하고 두려워 윗옷을 벗고 사죄했지만, 만석군(萬石君)은 용서하지 않았다. 온 집안 식구들이 모두 용서를 빌고, 맏아들 건(建)이 윗옷을 벗고 용서를 빌자 만석군(萬石君)은 꾸짖어 말했다. "내사(內史)의 직책에 있는 사람은 귀하고 높은 사람이다. 그 사람이 마을 문으로 들어오면, 어른이나 노인은 두려워 모두 달아나 숨는다. 내사(內史)가 수레 안에 태연하게 앉아 있는 것은 참으로 당연하다."
만석군(萬石君)의 말은 우회적으로 경(慶)의 잘못을 크게 나무란 것이었다. 석분(石奮)은 떠들썩하게 경(慶)이 저지른 잘못을 사죄하게 한 후, 용서하고 물러가게 했다. 이 일이 있은 후부터, 경(慶)를 비롯한 석분(石奮)의 자손들은 마을 문을 들어설 때 수레에서 내려 종종걸음으로 집에 들어갔다.
만석군(萬石君)은 한(漢)나라 무제(武帝) 원삭(元朔) 5년에 죽었다. 맏아들 건(建)은 늙은 몸이었지만 통곡하고 슬퍼하며, 지팡이를 짚고 장지(葬地)까지 따라갔다. 그 뒤 두어해 만에 건(建)도 역시 죽었다. 모든 자손들이 만석군(萬石君)에게 효도를 다 했으나, 그 중에서도 맏아들 건(建)이 제일 효자였다. - 사마광(司馬光), 가범(家範) 치가(治家)
회초리는 어쩔 수 없을 때만 들어야 한다
보통 사람이 자식들을 가르치지 못하는 것은 자신의 자식이 죄악에 빠져도 괜찮기 때문은 아닐 것이다. 다만 꾸짖고 화를 내면 자식이 얼굴을 찌푸릴까 염려하거나 또는 회초리로 때려 가르치면 자식이 마음에 상처를 입을까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질병을 치료하는 일에 비교하자면, 탕약(湯藥)이 쓰다고 혹은 침(針)과 뜸이 아프다고 사용하지 않으면서 어떻게 병을 나을 수 있겠는가? 부모가 근면함을 생각하게 하고 배움을 격려하는 일이 어찌 자신의 피와 살로 이루어진 자식을 가혹하게 학대하기 위해서이겠는가? 참으로 어쩔 수 없기 때문일 뿐이다. - 안지추(顔之推), 안씨가훈(顔氏家訓) 교자(敎子)
꾸짖는 것과 감싸 안는 것을 함께 해야 한다
집 안에서 회초리를 드는 것과 화를 내 꾸짖는 일이 사라지면 자녀의 잘못된 행실이 즉각 나타난다. 형벌(刑罰)이 제대로 집행되지 않으면 백성들은 수족(手足)을 둘 곳이 없다. 집안을 다스리는 데 있어서 관대하고 엄격한 것은 나라를 다스리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 안지추(顔之推), 안씨가훈(顔氏家訓) 치가(治家)
자식에 대한 무조건적인 사랑은 재앙을 부르는 씨앗이다
왕대사마(王大司馬)의 벼슬을 지낸 왕승변(王僧辯)의 어머니는 위부인(魏夫人)이라고 한다. 왕승변(王僧辯)이 분성(湓城)이라는 곳에 있을 때, 병사 3,000여 명을 지휘하는 장수였고 나이 또한 40세의 중년이었다. 그러나 위부인(魏夫人)은 왕승변(王僧辯)이 조금이라도 올바른 뜻을 어겨 잘못을 범하면 몸소 회초리를 들어 아들을 가르쳤다. 그 때문에 왕승변(王僧辯)은 공훈(功勳)과 업적(業績)을 이룰 수 있었다.
위진남북조 시대 양(梁)나라의 원제(元帝) 때, 아주 총명하고 민첩하며 재주가 뛰어난 한 학사(學士)가 있었다. 그러나 그는 아버지로부터 지나치게 총애(寵愛)를 받아 그만 의(義)로움을 배울 시기를 놓치고 말았다. 그의 아버지는 그 아들이 간혹 옳은 말이라도 한마디 하면, 온 거리를 돌아다니며 한 해가 다 가도 아들 자랑만 했다. 또 그 아들이 잘못된 행동을 해도 감싸주고 꾸며대기만 했다. 그러면서 아들이 스스로 잘 알아서 고칠 것이라고만 생각했다. 그러나 그 아들은 나이가 들고 장가를 들어 벼슬을 할 때가 된 후에, 오히려 포악하고 교만함이 날이 갈수록 심해졌을 뿐이다. 결국 말을 아낄 줄 모르다가 주적(周逖)이라는 사람에게 처참한 몰골로 죽임을 당하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 안지추(顔之推), 안씨가훈(顔氏家訓) 교자(敎子)
양(梁)나라 원제(元帝) 때, 어떤 학사(學士)가 있었다. 그는 총명하고 재주가 뛰어나 어려서부터 아버지에게서 사랑만 받았을 뿐, 제대로 가르침을 받지 못했다. 그가 옳은 말을 한 마디라도 하면, 그 아버지는 1년 내내 온 길거리를 돌아다니며 자식 자랑을 했다. 아버지는 그가 한 가지 행동이라도 잘못하면 문장을 꾸며 감추면서 스스로 고치기만을 기다렸다. 그 학사(學士)가 나이가 들어 장가들고 벼슬까지 하였으나, 난폭함과 게으름은 날이 갈수록 심해졌다. 마침내 말도 제대로 가려서 하지 못할 지경이 되어, 아무 곳에서나 "장(腸: 창자)을 빼내 북을 만들겠다"고 떠들었다.
이와 같은 사실로 볼 때, 자식을 사랑만 하고 가르치지 않으면 결국 자식에게 피해만 있을 뿐이다. 전해 오는 말에 "비둘기가 새끼를 기를 때, 아침에는 위에서 밑으로 내리는 것을 따르고 저녁에는 아래에서 위로 오르는 것을 따른다. 그 공평하기가 똑같다"고 했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렇지가 못하다.
어떤 기록에는 "아버지가 자식에게, 어진 사람은 친하게 대하고 능력 없는 사람은 하대(下待)하라"고 했는데, 그 아버지가 친하게 지내는 사람이 현명하고 또 하대(下待)하는 사람이 능력 없는 사람이라면 좋은 일이다. 그러나 사사로운 사랑에 빠져 간혹 능력 없는 사람과도 친하게 지내고 어진 사람을 하대(下待)하면 자식에게 생기는 재앙은 이 때문에 일어나게 된다. - 사마광(司馬光), 가범(家範) 부(父)
사람이 치우침이 없도록 자식을 사랑하는 일은 아주 어려운 것이다. 예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이 때문에 생겨나는 폐단이 많다. 어질고 자질이 뛰어난 자는 저절로 칭찬과 사랑을 받는다. 따라서 완고하고 노둔한 자라도 마땅히 불쌍하고 가엾게 생각해야 한다. 부모의 편애(偏愛)란 자식에 대한 사랑을 더욱 간절하게 표현한 것이지만, 다시 생각해보면 그 때문에 자식은 재앙을 입게 된다.
공숙단(共叔段)의 죽음은 사실은 그 어머니가 편애(偏愛)했기 때문이다. 한(漢)나라 때 조왕(趙王)이 죽임을 당한 것은 아버지 고조(高祖: 유방)가 다른 자식들보다 조왕(趙王)을 편애(偏愛)했기 때문이다. 후한(後漢) 말기에 유표(劉表)의 일가친척이 멸족(滅族)당한 사건이나, 원소(袁紹)가 자식에게 땅을 나누어주다가 병력을 잃고 멸망한 일도 영귀명감(靈龜明鑑: 신령스런 거북점과 맑은 거울)으로 삼을 만하다. - 안씨가훈(顔氏家訓) 교자(敎子)
어머니가 된 사람은 자식에게 자애(慈愛)롭지 못한 것을 근심하지 말고, 사랑할 줄만 알고 가르치지 못할 것을 근심해야 한다. 옛 사람들은 "인자(仁慈)한 어머니에게서 패륜아(悖倫兒)가 나온다"고 말했다. 사랑만 하고 가르치지 않으면 어질지 못한 곳에 물들며, 큰 악(惡)에 빠져 형벌을 받아 몸을 망치게 된다. 다른 사람이 그 자식을 망친 것이 아니라 어머니가 자신이 낳은 자식을 망친 것이다. 예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이와 같은 사람이 너무 많아 그 수를 헤아리기조차 어려울 지경이다. - 사마광(司馬光), 가범(家範) 모(母)
자식을 사랑하되 표 나게 사랑하지 않는다
군자(君子)는 자식을 사랑하지만 얼굴에 나타내지 않는다. 자식에게 일을 시킬 때 안쓰러워하는 표정을 보이지 않는다. 도리(道理)를 따르게 하되 강압적인 말로 대하지 않는다. 마음속으로는 사랑하더라도 밖으로 나타내지 않는다. 항상 위엄 있고 근엄한 태도로 대하고 얼굴에는 기뻐하는 빛을 보이지 않는다. 도리(道理)를 따르도록 하지 않는 것은 자식을 망치는 짓이다. 그러나 강압적으로 하면 부모의 은혜를 곡해할 수 있으니, 어루만져 시간이 지나면 차츰 변하도록 해야 한다. - 사마광(司馬光), 가범(家範) 부(父)
자식은 어렸을 때부터 가르쳐야 한다
자식을 사랑하면 의(義)로움으로 가르치고, 사특(邪慝)한 곳에 빠지지 않도록 해야 한다. 교만하고 사치하고 음란하고 방탕한 태도는 스스로 사특(邪慝)한 곳에 빠지는 일이다. 이 네 가지는 부모의 자식에 대한 총애가 지나치고, 용돈을 너무 많이 주기 때문에 발생하는 현상이다.
예부터 자식을 사랑할 줄만 알고 가르칠 줄을 몰라, 위태롭고 욕되고 혼란스러워져 멸망에 이른 자가 셀 수도 없이 많다. 자식을 사랑한다면 반드시 가르쳐서 사람답게 만들어야 한다. 사랑하면서 위태롭고 욕되고 혼란스러워 멸망하는 데까지 이르게 된다면 어찌 자식을 사랑한다고 할 수 있겠는가?
자식을 사랑하는 부모들은 항상 "아직 어려서 알지 못하는 것이다. 성장하기를 기다렸다가 가르치면 된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 말은 쓸모없는 나무의 싹을 기르는 것과 같은 일이다. 나무가 한 아름이나 자라도록 기다렸다가 베어 없애려면 많은 힘을 들여야 하지 않겠는가.
또 새장을 열어 새를 놓아 주었다가 다시 잡으려고 하는 것이나, 고삐를 풀어 말을 놓아 먹이다가 잡아 가두는 일과 마찬가지이다. 어떻게 처음부터 새를 놓아주지 않고 말을 풀어 놓지 않는 것과 같이 쉬운 일이라고 하겠는가. - 사마광(司馬光), 가범(家範) 부(父)
사람은 어릴 때에는 오로지 정신을 가다듬어 예리하지만, 나이가 들면 생각이 흩어지고 둔해진다. 그래서 일찍부터 가르쳐 배움의 기회를 놓치지 말아야 한다. 나(안지추)는 나이 일곱 살에 동한(東漢)의 왕연수(王延壽)가 지은 '영광전부(靈光殿賦)'를 외웠는데, 지금까지 10년에 단 한번만 보아도 잊지 않고 기억할 정도이다. 그러나 스무 살이 넘어 외운 경서(經書)는 단 한 달만 보지 않아도 곧바로 기억이 나지 않는다.
사람들 가운데에는 사는 처지가 곤궁해 한창 배워야 할 때 배우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그렇다 하더라도 늦게라도 배워야 한다. 스스로 포기해서는 안 된다. 공자(孔子)는 "나이 50에 '역(易)'을 배웠는데, 가히 큰 과실(過失)이 없었다"고 했다. 위(魏)나라 무제(武帝)와 원유(袁遺)는 늙은 후에도 더욱 돈독(敦篤)하고 성실했다. 이것은 모두 어렸을 때부터 배우고, 늙어서도 배움에 싫증을 내지 않는 사례라고 할 수 있다.
공자(孔子)의 제자인 증자(曾子)는 17살에 비로소 배우기 시작했다. 그러나 천하에 이름을 날려 뛰어난 유학자(儒學者)가 되었다. 공손홍(公孫弘)은 나이 40이 넘어 비로소 '춘추(春秋)'를 배웠다. 이 때문에 마침내 승상(丞相)의 자리에까지 오를 수 있었다. 주운(朱雲) 또한 나이 40에 비로소 '역(易: 역경)'과 '논어(論語)'를 배우기 시작했다. 황보밀(皇甫謐)은 20세에 비로소 '효경(孝經)'과 '논어(論語)'를 배웠다. 그런데 이들은 모두 큰 학자가 되었다. 이들은 모두 어려서는 비록 미혹(迷惑)했으나 만년에 깨달은 사람들이다.
세상 사람들은 관혼(冠婚)의 예(禮)를 갖출 나이가 되도록 아직 배우지 못하면, 이미 배우기에 늦었다는 인습(因習)에 젖어 담장을 마주한 채 무식하게 살아간다. 또한 어리석은 일이다. 어려서 배우는 것은 해가 떠오를 때의 찬란한 빛과 같고, 늙어서 배우는 것은 밤에 촛불을 잡고 길을 걷는 것과 같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고 해도 까막눈에 아무것도 볼 수 없는 것보다는 오히려 나을 것이다. - 안지추(顔之推), 안씨가훈(顔氏家訓) 면학(勉學)
자식 교육은 바꾸어서 하는 것이 좋다
아버지와 아들은 허물없이 마구 대해서는 안 된다. 또 부모 자식 간의 사랑은 소홀하게 해서는 안 된다. 사랑이 소홀하면 부모의 자애(慈愛)와 자식의 효도(孝道)는 끊어지게 되고, 허물없이 마구 대하면 부모는 나태해지고 자식은 교만해진다.
사회적 신분이 명사(命士) 이상인 집안의 아버지와 아들은 서로 다른 곳에서 거처했다. 이것은 아버지와 아들은 허물없이 마구 대하지 않는다는 것을 가르치기 위해서였다. 부모자식은 가렵고 아픈 곳을 긁어 주고 주물러주며 이불을 펴고 베개를 정리해준다. 이것은 부모와 자식은 서로 소홀히 대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가르치기 위해서였다.
어떤 사람이 "진항(陳亢: 공자의 제자)은 군자(君子: 공자)가 그 아들(백어)을 멀리한 것을 듣고 기뻐하였다고 하는데, 무슨 뜻입니까?"라고 질문했다.
이 질문에 대해 나(안지추)는 이렇게 대답했다. "그와 같은 기록이 있다. 아마 군자(君子)는 직접 자신의 자식을 가르치지 않는다는 뜻일 것이다. 이에 대해서는 시경(詩經)에도 풍자시(諷刺詩)가 있고, 예기(禮記)에는 의심받을 일을 경계하라는 내용이 있고, 서경(書經)에는 골육상쟁(骨肉相爭)의 사건이 기록되어 있다. 또한 춘추(春秋)에서는 사악하고 편협한 사건들을 업신여겨 희롱했고, 역경(易經: 주역)에는 모든 사물이 갖추어지는 상징에 대한 이야기가 있다. 이것은 모두 부모 자식 사이에는 서로 직접 의사소통할 수 없는 것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부모는 자식을 직접 가르치지 않는 것이다." - 안지추(顔之推), 안씨가훈(顔氏家訓) 교자(敎子)
좋은 습관을 기르도록 가르쳐야 한다
옛날 훌륭한 정치를 한 왕자(王者)들은 태자(太子)가 태어나면 예(禮)를 갖춰 키웠다. 선비에게 업어 기르게 하되 궐문(闕門)을 지날 때는 내리게 했고, 종묘(宗廟) 앞을 지날 때는 빠른 걸음으로 지나가게 해 효자(孝子)의 도리(道理)로써 가르쳤다. 진실로 몸소 실천하도록 어린 아들을 가르쳤다.
어린 아이가 방긋방긋 웃을 때, 곧 주변 사물을 알기 시작할 때 삼공(三公)과 삼소(三少)에게 효(孝)와 인(仁)과 예(禮)와 의(義)를 밝히도록 한다. 도리(道理)로써 습관을 기르도록 하고, 사특(邪慝)한 사람들을 내쫓아 나쁜 행동을 배우지 못하도록 했다.
또 세상 곳곳에서 품행이 단정하고, 부모에게 효도하고, 형제 간에 우애가 있고, 널리 듣고 배운 사람을 뽑아 어린 아들을 보호하고 돕게 했다. 이들에게 태자(太子)와 더불어 숙식(宿食)과 출입(出入)을 함께 하도록 했다. 태자(太子)가 태어나서부터 올바른 일만 보고, 올바른 말만 듣고, 올바른 길만 가도록 했다. 전후(前後) 좌우(左右) 모두 올바른 사람만 가까이 있게 했다.
말과 행동이 올바른 사람과 함께 살면 습관적으로 올바르게 된다. 이것은 제(齊)나라에서 태어나 성장한 사람이 당연히 제(齊)나라의 말을 하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또한 말과 행동이 올바르지 못한 사람과 함께 살면 습관적으로 올바르지 못한 말과 행동을 하게 된다. 이것은 초(楚)나라에서 태어나 자란 사람이 자연스럽게 초(楚)나라 말을 하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 사마광(司馬光), 가범(家範) 부(父)
맹가(孟軻: 맹자)의 어머니는 무덤 근처에서 살았다. 당시 어린 맹자(孟子)는 무덤 쓰는 일을 흉내 내고, 무덤을 파고 애통해하며 시체를 묻고 무덤을 쌓는 일을 놀이 삼아 지냈다. 맹자의 어머니는 "여기는 아들과 살만한 곳이 못 된다"고 말하며, 시장 근처로 이사를 갔다. 그 뒤 어린 맹자는 장사꾼을 흉내 내어 물건을 흥정하고 사고파는 일을 놀이 삼아 지냈다. 맹자의 어머니는 "여기도 아들과 살만한 곳이 못 된다"고 말하고서, 학교(學校) 근처로 이사를 갔다. 이곳에서 어린 맹자는 제기(祭器)를 늘어놓고서 읍(揖)하고 사양하며, 나아가고 물러나는 일을 놀이삼아 지냈다. 맹자의 어머니는 "여기야말로 아들과 함께 살만한 곳이다"고 말하며, 드디어 그곳에 정착해 살았다.
맹자가 어린 아이였을 때 "동쪽의 어떤 집에서 돼지를 잡는데 무엇 때문입니까?"라고 어머니에게 물은 적이 있다. 이때 맹자의 어머니는 "너를 먹이려고 잡는 것이다."라고 농담을 했다. 그러나 그의 어머니는 곧 뉘우쳐 "내가 듣기에, 아이를 임신하면 뱃속에서부터 가르친다고 했다. 지금 이 아이는 지각이 있는 나이다. 내가 이 아이를 속인다면 불신(不信)을 가르치는 꼴이 된다"고 생각했다. 이에 돼지고기를 사와 맹자에게 먹였다.
맹자(孟子)는 장성해서 큰 선비가 되었다. 맹자의 어머니는 비록 어린 자식인데도, 몸소 맹자가 불신(不信)을 습관화 할까봐 행동을 삼갔다. 이미 장성한 자식들에게는 두말 할 필요도 없다. - 사마광(司馬光), 가범(家範) 모(母)
이익과 출세를 좇지 말고 큰 뜻을 품도록 가르쳐야 한다
제(齊)나라의 한 사대부(士大夫)가 "내게 자식이 하나 있는데 나이가 이미 일곱 살입니다. 글과 문장에도 제법 밝고, 선비족(鮮卑族)의 말도 할 줄 알며, 비파(琵琶) 연주도 합니다. 이제 점차 능숙해져 그 재주로 공경(公卿)을 섬기도록 하고 싶습니다. 자식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 있겠습니까만, 역시 이와 같은 일이 중요하겠지요."라고 말했다.
나는 당시 그 사대부(士大夫)의 말에 대답하지 않고 고개만 숙이고 있었다. 그 사람의 자식 교육이 참으로 이상했기 때문이다. 만약 그 같은 가르침을 받아 스스로 고관대작(高官大爵)이 된다 하더라도, 나는 내 자손(子孫)들이 그렇게 되기를 원하지 않을 것이다. - 안지추(顔之推), 안씨가훈(顔氏家訓) 교자(敎子)
강절소(康節邵) 선생이 자신의 자손(子孫)들에게 말했다. "다른 사람에게 가르침을 받지 않고도 좋은 길을 알고 실천하는 사람은 가장 훌륭한 사람이다. 가르침을 받은 후 좋은 일을 알고 실천하는 사람은 보통 사람이다. 그러나 아무리 가르쳐도 좋은 일을 알지 못하고 실천하지 않는 사람은 사람이라고 할 수 없다.
가르침을 받지 않고도 착한 행동을 하는 사람은 성인(聖人)이라고 할 수 있다. 또 가르침을 받고 난 후 좋은 일을 알고 실천하는 사람은 현인(賢人)이다. 그러나 가르침을 받고 난 후에도 좋은 일을 알지 못하고 실천도 하지 않는 사람은 어리석은 바보라고 할 수 있다. 선(善)하다는 길(吉)하다는 뜻이다. 선(善)하지 않다는 것은 흉악(凶惡)하다는 뜻이다.
길(吉)한 사람은 예의(禮儀)에 벗어나는 행동을 하지 않고, 예의(禮儀)에 벗어난 말은 입에 담지 않고, 예의에 벗어나는 행동을 하는 사람이 사는 땅은 밟지 않는다. 어질지 못한 사람과는 사귀지 않고, 옳지 않은 물건은 내 것으로 만들지 않는다. 도덕과 재주와 능력이 뛰어난 현인(賢人)은 지초(芝草)와 난초(蘭草)같은 향기로운 풀을 가까이 하듯 가깝게 사귀며, 착한 일이라고는 알지 못하는 흉악한 사람은 뱀과 전갈을 두려워하듯 멀리 피한다.
흉악한 사람은 교묘한 말로 다른 사람을 속이고 물질적·정신적으로 피해를 입힌다. 성격이 사납고, 잘못된 일은 감추며, 자신의 이익만을 즐겨 좇는다. 음란한 행동을 즐기고, 다른 사람이 예기치 않은 일을 당해 괴로워하는 모습을 좋아한다. 착한 사람들을 원수를 대하듯 미워하고, 법에 어긋나는 행동을 밥 먹듯이 해 범법자로 살아간다. 이와 같은 일들은 좁게는 자신의 몸을 망치고 목숨을 잃게 하고, 넓게는 일족(一族)을 뒤엎고 자손(子孫)이 끊어지게 한다. 혹 누가 이와 같은 흉악한 사람이 아니라고 말한다고 해도 나는 믿지 않을 것이다.
전해 내려오는 말에 '길(吉)한 사람은 하루 종일 좋은 일을 실천해도 부족하다고 여긴다. 그러나 흉악한 사람은 하루 종일 나쁜 일을 하면서도 오히려 부족하다고 여긴다'고 했다. 너희들은 길(吉)한 사람이 되겠느냐 아니면 흉악(凶惡)한 사람이 되겠느냐?" - 주희(朱熹), 소학(小學) 가언(嘉言)
학문을 배우는 어린 아이에게는 무엇보다 먼저 인품(人品)의 높고 낮은 것을 분별할 줄 아는 능력을 가르쳐야 한다. 어떤 일이 성인(聖人)이나 인자(仁者: 어진 사람)가 하는 일이고, 또 어떤 일이 어리석은 사람이 하는 일인가를 가릴 줄 알아야 한다. 이에 좋은 것을 따르고 나쁜 것을 버리는 능력을 당연히 먼저 가르쳐야 한다. 어린 아이들은 좋은 것과 나쁜 것을 분별하지 못하므로 어른들의 말과 행동을 보고 듣는 그대로 따라 하려는 본능(本能)이 있다. 그러므로 배울 때 좋은 것과 나쁜 것을 분명하게 가릴 줄 아는 능력을 무엇보다 우선해서 길러 주어야 한다.
만약 높은 뜻을 세우지 않으면, 배운다고 해도 보통 사람에 그칠 뿐이다. 안연(顔淵: 공자의 수제자)이나 맹자(孟子)와 같은 성인(聖人)이나 인자(仁者 : 어진 사람)의 일에 대해 이야기하는데도 감히 감당할 수 없다고 여겨, 마음속으로 "나는 어린 아이다. 어찌 감히 그 분들을 배울 수 있겠는가?"라고 생각한다. 이렇게 생각하는 아이는 뛰어난 인물이 될 수 없다. - 주희(朱熹), 소학(小學) 가언(嘉言)
옛날의 학문하는 사람들은 자신을 위해 부족한 지식을 채웠다. 그러나 오늘날 학문하는 사람들은 다른 사람에게 보이기 위해 오직 입으로 떠드는 일에만 능숙하다. 옛날의 학문하는 사람들이 다른 사람을 위해 배웠다는 말은, 도리(道理)를 실천하여 세상을 이롭게 했다는 뜻이다.
오늘날 학문하는 사람들이 자신을 위한다는 말은, 자기 한 몸만을 닦아 세상에서 크게 출세하려고 한다는 뜻이다. 무릇 배운다는 것은 나무를 심는 것과 같다. 봄에는 그 꽃을 즐기고, 가을에는 그 열매를 거둔다. 문장(文章)을 강의하고 의론한다는 것은 봄의 꽃이고, 자신을 닦아 이로운 행동을 한다는 것은 가을의 열매라고 할 수 있다. -안지추(顔之推), 안씨가훈(顔氏家訓) 면학(勉學)
독서하고 고전(古典)과 고사(古事)를 익히는 습관을 가르쳐야 한다
육경(六經)의 가르침에 밝고 제자백가(諸子百家)의 책을 모두 본 후, 마땅히 덕행(德行)에 힘쓰고 풍속(風俗)을 교화하지 못한다고 해도 한 가지 기예(技藝)를 가지고 자신의 자질로 삼아 살아 갈 수는 있다. 부모형제가 살아 있다고 해도 언제나 그들에게 의지할 수는 없다. 고을이나 나라도 항상 자신을 보호해주지는 못한다.
하루아침에 길거리에 내팽개쳐져 보호해줄 사람 하나 없게 되면, 마땅히 스스로 자기 자신을 보호해야 한다. 속담에 "천만금의 재산을 쌓아 놓아도 자신이 가진 하찮은 재주만 못하다"고 했다. 그 재주 가운데 쉽게 익힐 수 있으면서도 가히 귀(貴)한 것으로는 독서(讀書)만한 것이 없다.
세상에서는 지혜로운 사람이거나 어리석은 사람을 가리지 않고, 모두 많은 사람들을 알고 견문(見聞)을 넓히는 것이 중요하다고 떠든다. 그러면서도 오히려 독서를 즐겨하지 않는다. 이것은 배부르기를 바라면서 음식을 만드는 일에는 게으르고, 따뜻하게 지내고 싶어하면서 옷을 짓는 일에는 게으른 것과 마찬가지이다.
무릇 독서하는 사람은 복희(伏羲)와 신농(神農)의 태고(太古) 시대 이후 세상에 등장한 인물과 발생한 사건을 모두 알 수 있고 볼 수 있다. 일반 백성들의 성공과 실패, 좋고 나쁜 것은 새삼스럽게 말할 필요조차 없다. 천지(天地)와 귀신(鬼神)이 숨긴다고 숨길 수 있는 것이 아니다. - 안지추(顔之推), 안씨가훈(顔氏家訓) 면학(勉學)
독서를 하고 학문(學問)을 하는 이유는 본래 마음을 열고, 눈을 밝게 해 듣고 행동하는 데 이롭게 하기 위해서이다. 부모를 봉양할 줄 모르는 자가, 옛 사람들이 먼저 부모의 마음을 살펴 그 얼굴빛에 따라 행동하고, 부드러운 소리로 기운을 낮추고, 힘들고 어려운 일을 꺼려하지 않고, 맛있는 고기를 대접하면서도 안타깝게 생각해 부끄러워하고 두려워했다는 것을 알게 되면, 일어나 이것을 실천하려고 할 것이다.
또 군주(君主)를 섬길 줄 모르는 자가, 옛 사람들이 직분(職分)을 지켜 다른 일을 침범하지 않고 위험을 보면서도 목숨을 내던지고 성실하게 간언(諫言)하는 것을 잊지 않아 사직(社稷)을 이롭게 하면서도 스스로 모자란다고 생각해 염려한 것을 보게 되면, 이것을 본받으려고 생각할 것이다.
또한 평소 거만하고 사치스러운 자가, 옛날 사람들이 공손하고 검소하며 절약하며 스스로를 낮추어 자신을 수양하고 예(禮)를 가르침의 근본으로 삼고 공경을 자신의 기본으로 하면서도 스스로 잘못을 범하지 않을까 두려워한 것을 알게 되면, 몸가짐을 가다듬고 욕망을 억제하려고 할 것이다.
평소 비루(鄙陋)하고 인색(吝嗇)한 자가, 옛날 사람들이 의(義)로움을 귀하게 여기고 재물을 가볍게 대했으며 자신은 적게 가지고 욕심을 줄이고 가득 채우는 것을 꺼리고 싫어하며 궁색하고 가난한 사람을 구휼(救恤)하면서도 얼굴이 붉어지도록 후회하고 부끄러워했다는 것을 보게 되면, 마땅히 모은 재물을 나누어 주려고 할 것이다.
또 평소 포악하고 못된 짓만 하는 자가, 옛날 사람들이 조심하여 자신을 낮추고 이가 부러져도 혀만 있으면 된다고 하고 더러운 몸으로 병(病)을 지녔다고 해도 현인(賢人)을 존경하고 뭇 사람들을 받아들이면서도 의기(義氣)가 모자란다고 상심한 것을 알게 되면, 자신이 입고 있는 의복(衣服)조차 이길 수 없을 것처럼 행동하게 될 것이다.
또한 평소 겁이 많고 나약한 자가, 옛날 사람들이 삶을 달관(達觀)하고 목숨을 맡겨 강직하고 정직하여 약속한 말은 반드시 지키고 자신의 행복을 찾고자 되돌아오지 않고 더욱 분발하여 힘썼다는 것을 보게 되면, 두려움과 공포를 느끼지 못할 것이다.
위에서 이야기한 몇 가지 외에도 모든 행동의 이치가 똑같다. 비록 완전하게 할 수는 없다고 해도 지나친 것은 없앨 수 있다. 배워서 안다면 통하지 못할 것이다. 세상의 독서하는 사람들 중 단지 말로만 할 뿐 실천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그 때문에 충성(忠誠)과 효도(孝道)를 한 사람에 대한 소문도 들을 수 없고, 인의(仁義)를 실천했다는 사람에 대한 소문도 들을 수가 없다.
또 한 가지 사건의 재판을 판단할 때도 반드시 거기에 적용할 법의 이치를 모두 터득했다고 할 수 없다. 그에게 천호(千戶)의 현(縣)을 맡기면 백성들을 이치에 따라 다스렸다고 할 수 없고, 집 짓는 일에 대해 물으면 문미(門楣)는 가로로, 또 기둥은 세로로 세워야 한다는 것을 모두 아는 것도 아니고, 농사일에 대해 물으면 피는 일찍 자라고 기장은 늦게 자란다는 사실을 모두 알고 있지도 못하다.
이러한 사람은 마냥 읊조리고 휘파람 불며 헛된 말장난이나 할 뿐이다. 사부(辭賦)를 외우고 읊을 뿐 일은 나 몰라라 한가하게 노닐며 어리석은 말과 논쟁만 보탤 뿐이다. 나라를 다스리고 군대를 지휘하는 경륜은 써먹을 곳이 없다. 무인(武人)과 말단 관리들까지 비웃는 것은 진실로 그 때문이다. - 안지추(顔之推), 안씨가훈(顔氏家訓) 면학(勉學)
다른 사람에게 묻는 것을 좋아하도록 가르쳐야 한다
서경(書經)에는 "다른 사람에게 묻는 것을 좋아하면 부유해진다"는 말이 있다. 예기(禮記)에서는 "혼자 공부해 친구가 없으면 고루(孤陋)해져 견문이 좁아진다"고 했다. 대체로 갈고 닦아 서로 명확하게 깨달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내가 볼 때, 문을 걸어 닫고 독서에 열중해 자신의 마음이 가는 곳이 곧 스승이라고 생각하다가, 여러 사람들과 모여 앉아 토론하면 잘못과 착오를 드러내는 자가 많다.
곡량전(穀梁傳)에 공자우(公子友)와 거나(莒拏)가 서로 다투자, 주변 사람들이 '맹로(孟勞)'라는 말을 공자우(公子友)에게 일러 주었다. 맹로(孟勞)는 노(魯)나라의 보도(寶刀)로 '광아(廣雅)'에도 나온다. 그런데 최근 제(齊)나라의 강중악(姜仲岳)이라는 사람이 "맹로(孟勞)는 공자(孔子)를 모신 측근으로 성은 맹씨(孟氏), 이름은 로(勞)이다. 힘이 센 사람으로 나라의 보배로 여겨졌다"고 주장했다.
나(안지추)는 그와 괴로운 논쟁을 벌여야 했다. 당시 청하군수(淸河郡守)로 형치(邢峙)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당대의 석학(碩學)이었는데, 나를 도와주어 그 사실을 증명해 주었다. 강중악(姜仲岳)은 얼굴이 붉어진 채 굴복했다.
또 '삼보결록(三輔決錄)'에, "한(漢)나라 영제(靈帝)가 궁전 기둥에 '당당하도다! 자장(子張)이여, 경조(京兆)의 전랑(田郞)이 그와 같구나!'라고 썼다"는 기록이 나온다. 논어(論語)를 인용하여 4언(四言)으로 짝을 맞추어 경조(京兆) 사람인 전봉(田鳳)을 평가한 것이다. 그런데 어떤 재사(才士)가 이것을 두고, "당시 장경조(張京兆)와 전랑(田郞) 두 사람만이 당당했을 뿐이다."라고 주장했다. 그는 처음 내 해석을 듣고 크게 놀라더니, 나중에는 부끄러워 어쩔 줄을 몰라 했다.
강남(江南)의 한 권문세족(權門勢族)이 잘못된 판본의 촉도부(蜀都賦) 주(注)를 읽고, '준치(蹲鴟)는 토란(芋)이다'에서 우(芋)가 양(羊)인 줄 알았다. 그래서 어떤 사람이 그에게 양(羊) 고기를 보내자, 답장에 "준치(蹲鴟)를 나누어 주신 은혜"라고 썼다. 온 조정이 모두 그 답장의 내용에 놀랐지만, 그 뜻을 알 수가 없었다. 한참이 지난 뒤에, 그 일의 내용을 찾아보고 나서야 깨달을 수 있었다.
북위(北魏) 시대 낙양(洛陽)에 있을 때 뛰어난 학자인 어떤 중신(重臣)이 새로이 '사기음(史記音)'이라는 책을 얻은 적이 있다. 이 책에는 잘못된 내용이 제법 많았다. 그래서 '전욱(顓頊)'이라는 글자 중에 욱(頊)은 당연히 '許錄反'이어야 하는데 잘못 되어 '許緣反'으로 되어 있었다. 결국 조정의 선비가 "예전에는 전욱(專頊)이라고 잘못 읽어 왔으나, 이제는 전현(專翾)이라고 읽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사람은 높은 명성을 얻고 있어 모두 망설이지 않고 믿고 따르게 되었다. 그러나 1년이 지나 또 다른 고명한 유학자(儒學者)가 어렵게 연구해본 결과 비로소 잘못되었음을 알 수 있었다.
한서(漢書) 왕망전(王莽傳) 찬(讚)에는 "자색(紫色)을 정색(正色)으로 하고, 음성(淫聲)을 정성(正聲)으로 하며, 윤달을 정위(正位)로 했다"고 하여, 거짓으로 진실을 혼란스럽게 할 뿐임을 말하였다. 예전에 내가 여러 사람과 이 책에 대해 토론하면서, 왕망(王莽)의 용모에 대해서까지 이야기한 적이 있다. 그때 스스로 사학(史學)에 대해 자신감이 있고 명성도 매우 높은 어떤 한 뛰어난 선비가 "왕망(王莽)은 생김새는 올빼미 눈에 호랑이의 입 모양을 갖추었고, 보랏빛 피부에 목소리는 개구리 울음과 같다고 했다."라고 풀이했다.
또 예악지(禮樂志)의 '급태관동마주(級太官挏馬酒)'라는 구절에 이기(李奇)는 "말의 젖으로 빚은 술이다. 종동(揰挏)하여 만든다"라고 주(注)를 달았다. 여기에서 '종동(揰專)' 두 글자는 모두 수(手)를 따르고 있다. '종동(揰專)'은 당도정동(撞擣挺挏)하는 작업을 말하는데, 오늘날 낙주(酪酒)를 만들 때 또한 이처럼 한다. 그런데 지난날 학사(學士)들은 오동나무를 심을 때 태관(太官)이 마주(馬酒)를 담가 숙성시키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학문의 고루(孤陋)함이 여기에까지 이른 것이다. - 안지추(顔之推), 안씨가훈(顔氏家訓) 면학(勉學)
스스로 노력해 깨우치도록 가르쳐야 한다
양(梁)나라의 원제(元帝)께서 일찍이 내게 다음과 같은 말을 해주셨다. "지난날 내(元帝)가 회계(會稽)에 있을 때, 12살이었는데 배우는 일을 좋아했다. 때마침 옴이 올라 손은 주먹을 쥘 수 없고 무릎은 구부릴 수가 없게 되었다. 그래서 조용한 재실(齋室)에 칡넝쿨로 만든 휘장을 치고 파리를 막은 후, 은 항아리에 산음(山陰)의 첨주(甛酒) 담아 놓고 홀로 앉아 홀짝홀짝 마시면서 통증을 이겨냈다. 그리고 마음이 가는대로 스스로 사서(史書)를 읽었는데 하루 20권을 보았다. 그러나 스승의 가르침을 받지 못해 혹 한 글자를 모르거나 한 구절을 해석하지 못하면, 스스로 읽고 또 읽으면서도 싫증은커녕 권태로움도 느끼지 못했다." 원제(元帝)는 황제(皇帝)의 아들이라는 고귀한 지위에 있고 놀기 좋아하는 어린 아이 때인데도 오히려 이처럼 열심히 배웠다. - 안지추顔之推, 안씨가훈(顔氏家訓) 면학(勉學)
옛 사람들은 배울 때 부지런해, 손에 송곳을 쥐고 잠을 쫓고 도끼를 던져 점을 쳤다. 흰 눈에 비추어 책을 읽고 반딧불을 모아 공부한 사람도 있다. 김을 매는 중에도 경전(經典)을 허리띠에 차고 양(羊)을 치면서도 부들(蒲)을 잘라 간편(簡編)을 만들어 글씨를 쓴 사람도 있다. 모두 부지런하고 독실(篤實)하게 배운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양(梁)나라 때 팽성(彭城)의 유기(劉綺)는 교주자사(交州刺史)를 지낸 유발(劉勃)의 손자이다. 그는 어려서 고아가 되어 집이 가난했다. 그래서 촛불조차 구하기 어려워 항상 갈대 줄기를 사가지고, 이것을 마디마디 끊어 태워가면서 밤에 불을 밝혀 글을 읽었다. 효원제(孝元帝)가 회계(會稽) 태수의 임무를 맡아 나가서 관리(官吏)를 선발할 때, 유기(劉綺)는 출중한 재능을 인정받아 상시겸기실(常侍兼記室)이라는 관직에 올라 특별한 예우를 입었다. 그는 금자광록(金紫光錄)으로 벼슬을 마쳤다.
의양(義陽)의 주첨(朱詹)은 집안 대대로 강릉(江陵)에서 살았다. 그러다가 후에 양도(攘都)로 나왔는데, 배우기를 좋아했다. 그러나 집이 가난해 먹을 것조차 없었다. 며칠동안 밥 지을 불조차 지피지 못했고, 때때로 종이를 삼켜 배를 채워야 할 정도였다. 겨울에는 깔고 덮을 이불도 없어 개를 껴안고 자기도 했다. 개 또한 허기를 견디지 못해 밖으로 도망쳐 먹을 것을 훔쳤다. 주첨(朱詹)이 아무리 소리쳐 불러도 개는 돌아오지 않았다. 그 부르는 소리가 하도 구슬퍼 이웃 사람들을 감동시켰다. 그러나 끝내 학업(學業)을 포기하지 않았고, 결국 학사(學士)가 되어 진남록사참군(鎭南祿事參軍)이라는 벼슬에까지 올랐다. 그는 효원제(孝元帝)로부터 특별한 예우를 받았다. 이것은 사람으로서 능히 해내기 힘든 일이다. 또한 부지런히 공부한 사람 중의 하나라고 할 수 있다.
동관(東筦)의 장봉세(臧逢世)라는 사람은 나이 20살이 넘어 반고(班固)가 쓴 한서(漢書)를 읽고 싶었으나, 남에게 빌려온 책을 오래 지니고 있을 수 없었다. 그래서 매형인 유완(劉緩)에게 다른 사람에게서 받은 명함이나 편지의 여백을 구걸하여 직접 한서(漢書) 한 권을 모두 베꼈다. 군부(軍府)에서 장봉세(臧逢世)의 고상한 뜻에 감동하였고, 그는 결국 한서(漢書) 연구의 대가(大家)로 크게 이름을 떨쳤다. - 안지추(顔之推), 안씨가훈(顔氏家訓) 면학(勉學)
어린 아이가 태만한 것은 그 부모의 잘못이다
어렸을 때 물이나 불과 같은 재앙을 당한 것은 어머니의 잘못이고, 15세가 되었는데도 스승을 만나지 못해 글과 학문을 배우지 않았다면 아버지의 잘못이다. 스승을 만났는데도 학문에 뜻을 두지 못하고 방향을 정하지 못했다면 자신의 잘못이고, 이미 학문의 방향을 잡고 뜻을 얻었음에도 그 이름이 세상에 알려지지 않았다면 친구의 잘못이다. 그 이름이 이미 세상에 알려졌는데도 임금에게 추천하지 않았다면 벼슬하는 관리의 잘못이며, 관리가 이미 추천했는데도 나라의 부름을 받지 못했다면 임금의 잘못이다. - 공양고(公羊高), 춘추공양전(春秋公羊傳)
자식이 어려서 태만한 것은 그 어미의 잘못이고, 성장해서 순종하지 않는 것은 그 아비의 잘못이다. - 유향(劉向), 열녀전 조불힐모(趙佛肹母)
▶️ 義(옳을 의)는 ❶회의문자이나 형성문자로 보는 견해도 있다. 义(의)는 통자(通字), 义(의)는 간자(簡字)이다. 나(我)의 마음 씀을 양(羊)처럼 착하고 의리있게 가진다는 뜻을 합(合)하여 옳다를 뜻한다. 羊(양)은 신에게 바치는 희생의 양으로 양을 바쳐 신에게 비는 의식(儀式)이 나중에 바르다, 의로운 일의 뜻이 되었다. ❷회의문자로 義자는 '옳다'나 '의롭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義자는 羊(양 양)자와 我(나 아)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我자는 삼지창을 그린 것이다. 義자의 갑골문을 보면 창 위에 양 머리를 매달아 놓은 모습이 그려져 있었다. 이것은 양 머리를 장식으로 한 의장용 창을 그린 것이다. 이러한 창은 권위나 권력을 상징했다. 상서로움을 뜻하는 양 머리를 창에 꽂아 권위의 상징으로 삼은 것이다. 義자는 종족 내부를 결속하기 위한 권력자들의 역할을 표현한 것이기 때문에 '옳다'나 '의롭다', '바르다'라는 뜻을 갖게 되었다. 그래서 義(의)는 (1)사람으로서 지켜야 할 떳떳하고 정당한 도리(道理). 오상(五常)의 하나임 (2)남과 골육(骨肉)과 같은 관계를 맺음 (3)글이나 글자의 뜻. 의미(意味) (4)경서의 뜻을 해석시키던, 과거(科擧)를 보일 때의 문제 종류의 한 가지 등의 뜻으로 ①옳다, 의롭다 ②바르다 ③선량하다, 착하다 ④순응하다 ⑤맺다 ⑥해 넣다 ⑦섞다, 혼합하다 ⑧간사하다(마음이 바르지 않다), 옳지 않다 ⑨의(義), 정의(正義), 올바른 도리(道理) ⑩의리(義理), 우의(友誼) ⑪뜻, 의미(意味), 의의(意義) ⑫거둥(擧動: 임금의 나들이), 예절(禮節), 의식(儀式) ⑬정의에 합당한 행동, 의로운 일 ⑭명분(名分) ⑮법도(法道) ⑯용모(容貌), 행동거지(行動擧止: 몸을 움직여 하는 모든 짓) ⑰의로 맺은 친족 관계, 의리(義理)의 관계 ⑱공적인 것, 공익을 위한 것 ⑲인공적인 것 ⑳가짜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옳을 가(可), 옳을 시(是)이다. 용례로는 의로운 사람을 의인(義人), 義로 맺은 형제를 의형제(義兄弟), 반드시 실행해야 하는 일을 의무(義務), 정의를 위하여 거사함을 의거(義擧), 수양 아버지를 의부(義父), 글이나 학설의 뜻을 설명하여 가르침을 강의(講義), 굳게 지키는 일정한 방침을 주의(主義), 진리에 맞는 올바른 도리를 정의(正義), 믿음과 의리를 신의(信義), 표의 문자에서 글자의 뜻을 자의(字義), 같은 뜻나 같은 의미를 동의(同義), 사람이 마땅히 행해야 할 도덕 상의 의리를 도의(道義), 갚아야 할 의리와 은혜를 은의(恩義), 의리나 정의에 어긋나는 일을 불의(不義), 어진 것과 의로운 것을 인의(仁義), 아버지가 아들에게 하는 교훈을 이르는 말을 의방지훈(義方之訓), 의기에 불타 일어나는 용맹을 일컫는 말을 의기지용(義氣之勇), 사람으로서 지켜야 할 도리에 당연함을 이르는 말을 의리당연(義理當然), 의가 있는 사람은 어버이를 거역하지 않음을 일컫는 말을 의불배친(義不背親), 의로써 이利의 근본을 삼음을 이르는 말을 의이건리(義以建利), 의는 바다와 같고 은혜는 산과 같다는 뜻으로 은의恩義가 대단히 크고 깊음을 이르는 말을 의해은산(義海恩山), 목숨을 버리고 의리를 좇음의 뜻으로 비록 목숨을 버릴지언정 옳은 일을 함을 일컫는 말을 사생취의(捨生取義), 눈앞에 이익을 보거든 먼저 그것을 취함이 의리에 합당한 지를 생각하라는 말을 견리사의(見利思義), 도원에서 의형제를 맺다는 뜻으로 의형제를 맺음 또는 서로 다른 사람들이 사욕을 버리고 목적을 향해 합심할 것을 결의함을 이르는 말을 도원결의(桃園結義), 봉건시대 여자가 지켜야 할 세 가지 도리 곧 어려서는 아버지를 좇고 시집가서는 남편을 좇고 남편이 죽은 뒤에는 아들을 좇음을 이르는 말을 삼종지의(三從之義), 남남끼리 의리로써 형제 관계를 맺음 또는 그런 형제를 일컫는 말을 결의형제(結義兄弟), 사람으로서 갖추어야 할 네 가지 마음가짐 곧 어짊과 의로움과 예의와 지혜를 이르는 말을 인의예지(仁義禮智), 큰 의리를 위해서는 혈육의 친함도 저버린다는 뜻으로 큰 의리를 위해서는 사사로운 정의를 버림을 일컫는 말을 대의멸친(大義滅親), 임금과 신하 사이에 의리가 있어야 함을 일컫는 말을 군신유의(君臣有義), 눈앞의 이익을 보면 탐내어 의리를 저버림을 일컫는 말을 견리망의(見利忘義), 남의 시문 중에서 전체의 뜻과는 관계없이 자기가 필요한 부분만을 따서 마음대로 해석하여 씀을 일컫는 말을 단장취의(斷章取義), 예절과 의리와 청렴한 마음과 부끄러워하는 태도를 일컫는 말을 예의염치(禮義廉恥) 등에 쓰인다.
▶️ 方(모 방/본뜰 방, 괴물 망)은 ❶상형문자로 양쪽에 손잡이가 달린 쟁기의 모양이다. 두 사람이 가지고 갈기 때문에 '좌우(左右)', '한 줄로 늘어 놓다', '비교하다'의 뜻에서 다시 '방향(方向)', '방위', '방법(方法)' 등 여러 가지 뜻으로 변하였다. 方(방)자의 기원(起源)은 통나무배 두 척을 나란히 한 모양이라고도 하며, 또 십자가에 못박은 모양이라고도 일컬어진다. 그러나 하여간 方(방)과 万(만)이 붙는 글자와의 뜻에는 좌우(左右)로 넓어진다는 점이 닮았다. ❷상형문자로 方자는 '네모'나 '방위', '방향', '두루'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方자는 소가 끄는 쟁기를 그린 것으로 방향을 조절하는 손잡이와 봇줄이 함께 그려져 있다. 밭을 갈 때는 소가 일정한 방향으로 나아가기 때문에 方자는 '방향'이라는 뜻을 갖게 되었고 밭이 사각형이었기 때문에 '네모'라는 뜻도 파생되어 있다. 주의해야 할 점은 方자가 부수로 쓰일 때는 우측 변에 위치한다는 것이다. 만약 좌측 변에 方자가 있다면 이것은 '깃발'을 그린 㫃(나부낄 언)자가 생략된 것이다. 상용한자에서 方자가 부수로 지정된 글자들은 대부분이 㫃자가 생략된 것이다. 그래서 方(방, 망)은 (1)일부 명사(名詞)에 붙이어 방위(方位)를 나타나낸 말 (2)편지에서 어떤 사람 이름 아래 붙이어, 그 집에 거처하고 있음을 가리키는 말 (3)성(姓)의 하나 등의 뜻으로 ①모, 네모 ②방위(方位), 방향(方向) ③나라, 국가(國家) ④곳, 장소(場所) ⑤도리(道理), 의리(義理) ⑥방법(方法), 수단(手段) ⑦술법(術法), 방술(方術) ⑧처방, 약방문 ⑨법(法), 규정(規定) ⑩쪽, 상대방 ⑪목판(木板) ⑫둘레 ⑬바야흐로, 장차(將次) ⑭두루, 널리 ⑮모두, 함께 ⑯본뜨다, 모방하다 ⑰바르다 ⑱견주다(어떠한 차이가 있는지 알기 위하여 서로 대어 보다), 비교하다 ⑲대등하다, 동등하다 ⑳나란히 하다 ㉑떳떳하다 ㉒이삭이 패다 ㉓차지하다 ㉔헐뜯다 ㉕거스르다, 거역하다 그리고 ⓐ괴물(怪物)(망) 따위의 뜻이 있다.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둥글 원(圓)이다. 용례로는 일을 처리해 나갈 방법에 관한 일을 방안(方案), 앞으로 일을 치러 나갈 방향과 계획을 방침(方針), 어떤 곳을 향한 쪽을 방향(方向), 일이나 연구 등을 해나가는 길이나 수단을 방법(方法), 일정한 방법이나 형식을 방식(方式), 어떤 지역이 있는 방향을 방면(方面), 사방을 기본으로 하여 나타내는 그 어느 쪽의 위치를 방위(方位), 그때그때의 경우에 따라 일을 쉽고 편하게 치를 수 있는 수단과 방법을 방편(方便), 방법과 꾀를 아울러 이르는 말을 방책(方策), 일에 대한 방법과 도리를 방도(方道), 일을 해 나갈 방법과 계략을 방략(方略), 바로 이제나 지금을 방금(方今), 모난 것과 둥근 것을 방원(方圓), 어느 방면의 땅을 지방(地方), 병의 증세에 따라 약재를 배합하는 방법을 처방(處方), 나라의 경계가 되는 변두리 땅을 변방(邊方), 중심의 뒤쪽을 후방(後方), 이제 방금이나 지금 막을 금방(今方), 가까운 곳을 근방(近方), 사람이 어디로 갔는지 어디에 있는지에 대한 사실을 행방(行方), 예로부터 우리나라에서 발달한 의술의 방법을 한방(韓方), 온갖 방법이나 갖은 방법을 백방(百方), 공평하고 올바름을 공방(公方), 네모난 자루에 둥근 구멍이라는 뜻으로 사물이 서로 맞지 않음을 이르는 말을 방예원조(方枘圓鑿), 바닥이 네모난 그릇에 둥근 뚜껑이라는 뜻으로 일이 어긋나고 맞지 않음을 비유해 이르는 말을 방저원개(方底圓蓋), 한창 자라는 나무는 꺾지 않는다는 뜻으로 앞길이 창창한 사람을 박해하지 말라는 말을 방장부절(方長不折), 방형에나 원형에나 다 잘 들어맞다는 뜻으로 갖가지 재능이 있어서 어떤 일에도 적합함을 이르는 말을 방원가시(方圓可施) 등에 쓰인다.
▶️ 之(갈 지/어조사 지)는 ❶상형문자로 㞢(지)는 고자(古字)이다. 대지에서 풀이 자라는 모양으로 전(轉)하여 간다는 뜻이 되었다. 음(音)을 빌어 대명사(代名詞)나 어조사(語助辭)로 차용(借用)한다. ❷상형문자로 之자는 '가다'나 '~의', '~에'와 같은 뜻으로 쓰이는 글자이다. 之자는 사람의 발을 그린 것이다. 之자의 갑골문을 보면 발을 뜻하는 止(발 지)자가 그려져 있었다. 그리고 발아래에는 획이 하나 그어져 있었는데, 이것은 발이 움직이는 지점을 뜻하는 것이다. 그래서 之자의 본래 의미는 '가다'나 '도착하다'였다. 다만 지금은 止자나 去(갈 거)자가 '가다'라는 뜻으로 쓰이고 之자는 주로 문장을 연결하는 어조사 역할만을 하고 있다. 그래서 之(지)는 ①가다 ②영향을 끼치다 ③쓰다, 사용하다 ④이르다(어떤 장소나 시간에 닿다), 도달하다 ⑤어조사 ⑥가, 이(是) ⑦~의 ⑧에, ~에 있어서 ⑨와, ~과 ⑩이에, 이곳에⑪을 ⑫그리고 ⑬만일, 만약 따위의 뜻이 있다. 용례로는 이 아이라는 지자(之子), 之자 모양으로 꼬불꼬불한 치받잇 길을 지자로(之字路), 다음이나 버금을 지차(之次), 풍수 지리에서 내룡이 입수하려는 데서 꾸불거리는 현상을 지현(之玄), 딸이 시집가는 일을 일컫는 말을 지자우귀(之子于歸), 남쪽으로도 가고 북쪽으로도 간다는 뜻으로 어떤 일에 주견이 없이 갈팡질팡 함을 이르는 말을 지남지북(之南之北), 주머니 속에 있는 송곳이란 뜻으로 재능이 아주 빼어난 사람은 숨어 있어도 저절로 남의 눈에 드러난다는 비유적 의미의 말을 낭중지추(囊中之錐), 나라를 기울일 만한 여자라는 뜻으로 첫눈에 반할 만큼 매우 아름다운 여자 또는 나라를 위태롭게 한다는 말을 경국지색(傾國之色), 일을 맺은 사람이 풀어야 한다는 뜻으로 일을 저지른 사람이 그 일을 해결해야 한다는 말을 결자해지(結者解之), 알을 쌓아 놓은 듯한 위태로움이라는 뜻으로 매우 위태로운 형세를 이르는 말을 누란지위(累卵之危), 어부의 이익이라는 뜻으로 둘이 다투는 틈을 타서 엉뚱한 제3자가 이익을 가로챔을 이르는 말을 어부지리(漁夫之利), 반딧불과 눈빛으로 이룬 공이라는 뜻으로 가난을 이겨내며 반딧불과 눈빛으로 글을 읽어가며 고생 속에서 공부하여 이룬 공을 일컫는 말을 형설지공(螢雪之功), 처지를 서로 바꾸어 생각함이란 뜻으로 상대방의 처지에서 생각해 봄을 이르는 말을 역지사지(易地思之), 한단에서 꾼 꿈이라는 뜻으로 인생의 부귀영화는 일장춘몽과 같이 허무함을 이르는 말을 한단지몽(邯鄲之夢), 도요새가 조개와 다투다가 다 같이 어부에게 잡히고 말았다는 뜻으로 제3자만 이롭게 하는 다툼을 이르는 말을 방휼지쟁(蚌鷸之爭), 부모에게 효도를 다하려고 생각할 때에는 이미 돌아가셔서 그 뜻을 이룰 수 없음을 이르는 말을 풍수지탄(風樹之歎), 아주 바뀐 다른 세상이 된 것 같은 느낌 또는 딴 세대와 같이 많은 변화가 있었음을 비유하는 말을 격세지감(隔世之感), 쇠라도 자를 수 있는 굳고 단단한 사귐이란 뜻으로 친구의 정의가 매우 두터움을 이르는 말을 단금지교(斷金之交), 때늦은 한탄이라는 뜻으로 시기가 늦어 기회를 놓친 것이 원통해서 탄식함을 이르는 말을 만시지탄(晩時之歎), 위정자가 나무 옮기기로 백성을 믿게 한다는 뜻으로 신용을 지킴을 이르는 말을 이목지신(移木之信), 검단 노새의 재주라는 뜻으로 겉치례 뿐이고 실속이 보잘것없는 솜씨를 이르는 말을 검려지기(黔驢之技), 푸른 바다가 뽕밭이 되듯이 시절의 변화가 무상함을 이르는 말을 창상지변(滄桑之變), 호랑이를 타고 달리는 기세라는 뜻으로 범을 타고 달리는 사람이 도중에서 내릴 수 없는 것처럼 도중에서 그만두거나 물러설 수 없는 형세를 이르는 말을 기호지세(騎虎之勢), 어머니가 아들이 돌아오기를 문에 의지하고서 기다린다는 뜻으로 자녀가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어머니의 마음을 이르는 말을 의문지망(倚門之望), 앞의 수레가 뒤집히는 것을 보고 뒤의 수레는 미리 경계한다는 뜻으로 앞사람의 실패를 본보기로 하여 뒷사람이 똑같은 실패를 하지 않도록 조심함을 이르는 말을 복거지계(覆車之戒) 등에 쓰인다.
▶️ 訓(가르칠 훈, 길 순)은 ❶형성문자로 训(훈)은 간자(簡字)이다. 뜻을 나타내는 말씀 언(言; 말씀)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川(천, 훈)으로 이루어졌다. 바른말(言)로 가르친다는 뜻을 합(合)하여 '가르치다'를 뜻한다. 순서 있게 가르치다, 알아듣게 이야기하다의 뜻이 있다. ❷회의문자로 訓자는 ‘가르치다’나 ‘타이르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訓자는 言(말씀 언)자와 川(내 천)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川자는 시냇물이 흘러가는 모습을 그린 것이다. 물은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 것이 당연한 이치이고 그 흐름은 자연스러워야 한다. 그러니 訓자는 말(言)의 흐름(川)이 자연스럽다는 뜻으로 만들어졌다 할 수 있다. 여기에서 말하는 자연스럽다는 것은 ‘이치에 맞다’라는 뜻이다. 아무리 좋은 말이나 훈계라도 이치에 어긋나면 안 된다. 그래서 訓자는 마치 물이 흐르듯이 조리 있게 얘기한다는 의미에서 ‘가르치다’나 ‘타이르다’라는 뜻을 갖게 되었다. 그래서 訓(훈, 순)은 (1)한자(漢字)의 뜻의 새김. 海를 바다 해라고 할 때의 바다를 가르킴. (2)성(姓)의 하나, 등의 뜻으로 ①가르치다 ②타이르다 ③이끌다 ④인도(引導)하다 ⑤새기다 ⑥주내다 ⑦가르침 ⑧훈계(訓戒) ⑨모범(模範) ⑩표준(標準) ⑪준칙(準則) 그리고 ⓐ길(순)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인도할 도(導), 가르칠 교(敎), 가르칠 회(誨),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닦을 수(修), 배울 학(學), 익힐 련(練), 익힐 습(習)이다. 용례로는 무예나 기술 등을 실지로 활용할 수 있도록 되풀이하여 연습하는 일을 훈련(訓鍊), 타일러서 경계함을 훈계(訓戒), 남이 하는 일 특히 바둑이나 장기 따위에서 좋은 수나 방법을 알려 줌을 훈수(訓手), 글방의 스승으로 교사의 낮은 말을 훈장(訓長), 알아듣도록 깨우치고 타이름을 훈고(訓告), 가르치어 훈계하는 말을 훈언(訓言), 한자의 뜻을 새기어 읽음을 훈독(訓讀), 교훈 또는 훈시하는 말을 훈화(訓話), 가르치어 보임을 훈시(訓示), 가르치어 타이름 또는 그런 말을 훈유(訓諭), 가르치고 타일러 착하게 함을 훈화(訓化), 글방에서 아이들에게 글을 가르침을 훈학(訓學), 가르쳐 길러냄을 훈육(訓育), 어린아이나 처음 배우는 이에게 글을 가르침을 훈몽(訓蒙), 가르치고 깨우치고 훈계함을 교훈(敎訓), 집안 어른이 그 자녀들에게 주는 교훈을 가훈(家訓), 학교의 이념을 간명하게 표현한 표어를 교훈(校訓), 학급의 교육 목표를 나타낸 가르침을 급훈(級訓), 엄격한 가르침이나 교훈을 고훈(苦訓), 한자의 우리말 새김을 자훈(字訓), 뜻글자의 음과 뜻을 음훈(音訓), 자혜로 가르침 또는 자비로운 가르침을 혜훈(惠訓), 뜰에서 가르친다는 뜻으로 아버지가 자식에게 사람의 도리를 가르치는 것을 이르는 말을 과정지훈(過庭之訓), 시와 예의 가르침이라는 뜻으로 자식이 아버지에게서 받는 교훈이라는 말을 시례지훈(詩禮之訓), 아버지가 아들에게 하는 교훈을 이르는 말을 의방지훈(義方之訓), 예수가 갈릴리 호숫가에 있는 산 위에서 그리스도 인으로서 갖추어야 할 덕에 관하여 행한 설교를 이르는 말을 산상수훈(山上垂訓), 세상을 깨우치고 사람들을 타이름을 이르는 말을 경세훈민(警世訓民), 자식을 위하여 황금을 남기느니보다 경서 한 권을 가르치는 것이 나음을 이르는 말을 일경지훈(一經之訓) 등에 쓰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