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움과 사랑의 섬, 남해!
벌써 17년 전 2007년 이른 봄 일이다. (사단법인) 우리 땅 걷기에서 <남해트레일>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남해 섬을 엿새 동안 걸었었다. 삼천포에서 창선대교를 지나 남해 대교에 이르는 길을 걷겠다고 공지를 하자, 35명 정도가 모였었다.
저녁에 삼천포에서 집결하여 닷새 동안 버스도 없이 무거운 짐을 지고 비를 맞으며 걸었던 그 길, 그 길이 아스라하게 떠오를 때가 있다. 도보 답사의 백미는 누가 뭐래도 장거리 도보 답사이기 때문이다. ‘사흘 동안을 같이 걷고 잠을 자고 밥을 먹으면 삼년을 같이 산 것이나 다름없다’는 옛말이 있지 않은가?
하물며 5박 6일 동안을 두 반로 천천히 걸었으니 남해 섬의 해안길이 얼마나 가슴 깊이 각인 되었겠는가?
창선면 가인리를 지나면서 나라 안에서 제일 넓게 펼쳐진 고사리 밭에 놀랐고, 섭개에서 작양리로 가던 그 길의 아름다움에 놀라기도 했다.
아름다운 남해 섬을 두고 수많은 사람들이 글을 남겼다. 그 중에 권맹손權孟孫은 “자라 등에 구름 걷히니 신선 사는 삼신산 가깝고, 바람이 고래 같은 물결 일으켜 만리까지 아득하네” 라는 시를 지었고, 김조金銚는 “파도 소리에 길손 깜짝 놀라는데, 신기루는 어느 새 불가에 생겼구나.”라는 시를 지었다.
정이오鄭以吾 남해의 형승을 두고 다음과 같은 글을 지었다.
“ 남해현은 바다 복판에 있는 섬으로서, 진도珍島. 거제巨濟와 함께 솔밭처럼 우뚝하다. 토지가 비옥하고 물산이 번성하여 국가에 도움이 되는 것이 적지 아니하다. (중략)
이 고을은 하늘 남쪽에 있는 훌륭한 지역으로서, 해산海産의 풍족함과 토산土産의 풍부함이 나라 쓰임에 필수必須되는 것이야. 그리고 진도와 거제를 부흥하는 것도 또한 기대할 수 있다.“
수많은 시인 묵객들이 글을 남긴 남해에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언제나 가고 싶어 하는 남해 금산과 상주 해수욕장, 그리고 물건리 방조림이 있다. 그뿐인가, 이곳 남해로 유배를 와서 <화전별곡(花田別曲>을 지은 자암(自菴) 김구(金絿)의 자취가 남아 있고, 조선 영조때 사람인 유의양(柳義養)은 1년 남짓한 유배기간에 한글로 남해풍물을 묘사한 <남해견문록(南海見聞錄)>을 남기기도 했다. 그리고 남해에서 1킬로미터쯤 배를 타고 건너면 닿는 자그마한 섬 노도로 유배를 왔던 사람이 서포(西浦) 김만중(金萬重)이었다.
고전문학 작품뿐만이 아니라 소설가 서정인은 남해금산을 배경으로 <산>이라는 작품을 지었고, 이성복은 <남해 금산>이라는 아름다운 시를 지었다.
또한 남해대교 부근에는 이순신 장군의 최후의 접전지인 명량해전의 장소이고 이락포에서 최후를 맞이한 곳이 바로 남해다.
이처럼 아름다운 자연 풍광과 역사 유산이 풍부한 남해를 어찌 사랑하지 않을 수 있으랴. 그래서 오래 전부터 남해를 가기 전날이면 첫사랑의 연인을 만나러 가는 것처럼 가슴이 설레어 한 숨도 못자기도 했다.
그런 장점을 많이 가진 남해 바닷길을 걷고 보니 너무 아름다운 길들이 많아, 문체부에 문화생태 탐방로로 지정해 줄 것을 요구했고, 그 뒤에 <남해 바래길>이 만들어져 많은 사람들이 찾고 있다.
그 뒤로도 여러 차례 걸을 때마다 인상 깊었던 길은 남해 상주 해수욕장에서 노도가 보이는 대량으로 가는 길, 거세게 부는 바람 속에 걸었던 그 길이 얼마나 아름다웠던지,
2023년 가을, 이틀간 걷고 돌아온 남해 바래 길이 다시 그립다.
2023년 10월 30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