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https://www.fmkorea.com/6113004601
독자 여러분, 지금부터 다음과 같은 상황을 상상해 보자.
여러분이 악마가 나오는 오컬트 영화를 보고 돌아오는 길이다.
여러분은 방금 본 영화가 물론 허구라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나, 영화를 함께 본 친구 여시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이번 영화는 정말 진짜 같았어!
세상에 악마는 정말로 존재하고
감독이 그 악마를 찍어온 거지??
그렇지 않아, 여시야.
세상에 악마 같은 게 어디 있니?
악마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아.
정말...?
ㅇㅇ 헛소리 하지 말고 밥먹으러 가자
이럴 수가...!
이런, 여러분은 방금 '사실 산타는 없거든'과 동급의 말을 했다.
엑소시스트를 꿈꿨던 페페의 장래희망이 무너지는 상황.
이러다간 초록색 개구리 친구와 절교할 위기이다.
엇 어떡하지
이제는 '악마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주장을 반박해야 하는 상황.
우정을 위해 '악마의 증명'을 꺼내든다.
여시야, 미안, 내가 다시 한 번 생각해 보니,
악마는 실제로 존재할 수도 있을 것 같아.
왜냐하면 악마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걸 증명할 수 없으니까.
그치만 내가 울면서 생각해 보니,
살면서 악마를 본 적이 한 번도 없어!
악마를 보았다면 악마가 존재한다는 게 증명된다는 셈인데,
그렇지 않다는 건 악마가 없다는 말 아닐까?
ㄴㄴㄴㄴ 잘 생각해 봐, 악마가 어디 숨어 있을 수도 있어.
마리아나 해구 어딘가에 숨어 있을 수도 있고,
히말라야 산맥 사이에 숨어 있을 수도 있고,
안드로메다 은하에서 우리를 향해 광속으로 오는 중일 수도 있어.
너가 우주의 모든 곳을 다 살펴보고 악마가 없는 걸 확인했어?
그건 아니지?
그치?
악마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은 불가능하니,
어딘가 존재할 가능성이 남아 있단 거야!
이렇게 여시의 꿈을 지켜주었다.
'A가 존재한다'는 가설은 확실히 증명할 수 있다.
하지만 'A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가설은 확실히 증명할 수 없다.
차은우 씨처럼, '있는데 못 찾은 거임'이라고 말하면 장땡이기 때문.
이를 중세 유럽에서는 '악마의 증명'이라고 불렀다.
증명 이름에 악마가 나오고, 내용도 또한 이러하니,
누군가가 종교적인 이유로 비꼰 거 아닌가 싶을 수도 있지만...
의외로 '악마의 증명'은 주로 법조계에서 사용되는 용어였다.
예컨대, 여러분이 검사이고,
피고인은 살인사건을 저지른 혐의가 있다.
이때 만약 여러분이 법정에서 이렇게 말한다면,
그 재판은 조지게 될 것이다.
피고인은 2023년 X월 X일에 살인을 저질렀습니다!
피고인이 그때 그곳에 있었다고 어떻게 증명할 수 있습니까?
그러니까 이딴 소리를 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그럼 그때 거기에 없었다고 어떻게 증명할 수 있습니까?
피고인이 거기에 있었는데 마침 투명 망토를 뒤집어써서
아무도 못 보는 사이에 피해자를 살해한 거라면?
(...Mㅊ ㅅ낀가?)
아니면, 이런 경우가 있을 수도 있다.
피고인, 사건이 일어난 X월 X일에,
피고인을 본 사람이 아무도 없습니다.
그때 어디에 있었죠?
우리 피고인은 옷장 속 통로를 통해
반나절은 이세계로 가 마왕을 토벌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나머지 반나절은 스즈메가 문단속한 문을
다시 잘 잠겼나 확인하고 있었다고 하더군요.
무슨 씹덕소리시죠, 변호인?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시나요?
애니 좀 그만 보십시오.
아니라고 말할 수 있습니까?
본 사람이 아무도 없어서 거짓이라는 걸 증명 못 하는데?
그렇다. 재판이 아니라 개판이 될 것이다.
그래서 현실에서는 피고인의 혐의를 검사가 입증해야 하고(입증책임)
그렇지 못한다면 피고인은 무죄가 된다.(무죄추정의 원칙)
증명하지 못하는 주장을 씨부려봤자 혐의 입증에는 아무 의미가 없다.
즉, 정상적인 법정의 모습에서는...
재판장님, CCTV가 녹화한 당시 현장 상황을 보아주십시오.
분석 결과 저 사람의 걸음걸이는 피고인과 99% 일치합니다.
또한 체격, 뺨에 난 흉터 역시 동일하고,
녹화 화면 속 옷이 피고인의 집에서 발견된 것으로 보아,
피고인이 당시 현장에서 피해자를 살해한 것으로 보입니다.
검사는 이런 식으로 피고인이 현장에 있었음을,
그리고 피고인이 범죄를 저질렀음을 직접 증명할 것이고,
아닙니다! 재판장님. 당시 피고인은 지방으로 출장 중이었습니다!
알리바이(현장부재증명)가 확실합니다.
변호인은 이런 식으로 피고인이 다른 곳에 존재했음을 증명함으로써
검사의 주장을 반박할 수 있다.
그러니 만약 누군가가 악마가 존재한다고 우긴다면,
존재하지 않음을 증명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악마가 존재하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섬나라 일본을 보여주도록 하자.
-끝-
첫댓글 막줄ㅋㅋㅋㅋㅋㅋㅋㅋㄲㅋ 고마워! 이렇게 재밌게 얘기하니까 쏙쏙 들어오네
오 재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