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https://www.fmkorea.com/6123124174
지식의 전달은 기본적으로 어휘를 바탕으로 합니다.
글이 사용되기 전부터 인간은 언어로 지식을 전달했기에,
글도 마찬가지로 언어의 영향,
더 나아가 어휘의 영향을 강하게 받습니다.
다만 말에서의 발음이 글에서는 철자로 바뀌었을 뿐이죠.
이때 어휘는 단어, 연어, 관용어, 속담 등을
모두 포함하는 개념입니다.
그냥 우리가 쓰는 모든 말이
어휘에 포함된다고 보시면 편합니다.
아기가 말을 배우듯,
우리는 어휘를 어딘가에서 배워야 합니다.
그러나 어휘력에는 사람마다 차이가 있습니다.
사람마다 무슨 어휘를 모르는지
스스로도 정확하게 알 수 없고,
관심에 따라 타인이 모르는 어휘를
나는 알고 있을 수도 있으며,
아무리 학교가 교육기관이라지만
모든 어휘를 가르쳐 줄 수도 없는 노릇이니까요.
그래서 모두들 국어 시간에 배우셨을,
'배경지식에 따라 정보 수용에는 차이가 있다'라는 말이
나오는 것입니다.
또한, 글은 자신의 정보를 타인에게 전하는 수단입니다.
'홀란드 못생겼다'라는 글도
홀란드의 외모뿐 아니라, 사회의 미적기준,
'내가 그렇게 생각한다'라는 정보도 타인에게 알려주죠.
심지어 혼자서 보려고 쓴 글도 일단 남이 읽으면
자신의 정보를 어느 정도 전달해 줄 수 있습니다.
'안네의 일기'가 좋은 예시가 되겠군요.
학자들은 지식을 얻는 과정 속에서,
그 과정 자체에 대한 공감능력이 강화된다는 것에
동의하고 있습니다.
'똑똑해질수록 싸패가 안 된다는 말인가?'가 아닙니다.
우리의 공감능력이 정상이라는 가정 하에,
우리가 공부하는 과정 속에서 겪는 어려움을
타인도 마찬가지로 겪을 거라 여긴다는 것이죠.
조악한 예시를 들자면, 아이에게 구구단을 가르칠 때
왜 손가락을 사용하거나 사과, 장난감 등의 예를 들까요?
아이가 처음 배우는 구구단을 어려워 할 거라는 걸
이미 우리는 알고 있기 때문이죠.
그래서 보통 지식을 온전히, 완벽히 이해한 사람일수록
무엇이 이해하기 어려운지 잘 알고,
독자가 이걸 전혀 모를 수도 있음을 잘 알기 때문에
글을 쉽게 쓸 수 있습니다.
물론, 학문적 정확성을 해치지 않는다는
단서 정도는 있어야 합니다.
동로마의 상속제를 쉽게 설명하는 글이라고 해서
'아나톨리아 반도 반장선거'라고 쓰시면 안 됩니다.
지식이 완벽하지 않다면 글을 쉽게 쓰는 건 어렵습니다.
독자를 배려하지 않아서 그러는 게 아닙니다.
완벽히 알지 못하는 사람도 뭐가 어려운지는 압니다.
다만 '쉽게 쓴다'는 것 자체가 '어휘를 대체한다'는 의미인데,
어려운 어휘와 지식은 그 자체가 길고 복잡한 뜻을 응축하고 있어서
완벽히 대체하지 않으면 오히려 전달하려는 지식이 왜곡됩니다.
왜곡된 글을 쓰는 건 어려운 글을 쓰는 것보다 더 나쁘죠.
그래서 자신이 아는 한도 내에서
최대한 독자를 배려하면서도 정확하게 쓸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니 독자 여러분께서는 앞으로 어려운 글을 발견하시면,
'어휴 이새끼 글 ㅈㄴ 어렵게 쓰네'라는 당연한 반응과 함께
'저런... 아직 완벽한 지식이 아닐 수도 있겠구나...'
라는 마음을 가지고 토론을 시작합시다.
물론 어렵게 쓴다고 해서 다 무식한 것도 아닙니다.
당장 대학교 강의만 들어봐도 아시듯,
분명 교수님들인데 어렵게 말씀하시는 분도 많죠?
어려운 점에 공감하는 것과 실천하는 건 다른 문제이기에...
독자를 배려해서 쉽게 쓰는 건 결국 글 쓰는 사람 마음임ㅋㅅㅋ
(+)
물론 전문가들은 ㅈㄴ 어렵게 씁니다.
근데 이건 박사님들이 싸패라서 그런 게 아니라,
예상 독자가 같은 박사인 전문가 지식인이니까요.
논문과 같은 글들은 지식과 정의가 매우 엄밀해야 합니다.
일반인이 배경지식 없이 이해하기 어려운 내용은
아무리 쉽게 써도 여전히 어렵습니다.
그렇다고 L을 설명하는데 A,B,C,D,E... 전부 설명할 수도 없고요.
인터넷의 특정한 글이 너무 길고 전문용어가 많고 어렵다면
이 박사용 글을 그대로 따 온 것도 하나의 이유일 수 있습니다.
물론 아는 게 많아보이는 사람도 글을 어렵게 쓰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1. 독자도 이 정도는 알 거라 생각했는데 아니었거나
2. 일부러 똑똑한 척 하려고 어렵게 쓰거나
3. 아는 게 없는데 대충 있어보이는 말로 무식을 가리려는 경우입니다.
댓펌
ㅡㅡ
다른사람이 이해할 수 있는 수준을 파악하는 것도 능력이라 봄
요즘애들은 아날로그 시계 볼줄 모르네 ㅉㅉ, 조식이 뭔지 몰라? 보다
아 이게 많이 안쓰게 되었구나 라는 걸 받아들이는 게 진짜 지식인인 듯
ㅡㅡ
박사님들 일반인용 책쓸땐 또 재밌게 쓰는걸 봐선
내 머릿속 > 출력A > 다듬기 > 대충 요약본 > 다듬기 > 대충 함축시킨 전문가용 > 다듬기 > 대충 학생용 > 다듬기 > 일반인용 > 다듬기 > 재밌는 일반인용
이란 과정이 힘든거 아닐까 하는 추측이 듬
ㅡㅡ
사실 그런데 "과정 자체에 대한 공감능력"과 그를 통한 쉬운 글쓰기에 대해서는 약간은 의문부호가 붙는 부분도 있지 않나 생각은 합니다. 일례로 이건 예전에 제가 학부시절 때 어느 교수님이 해 주셨던 말씀인데, "한국에서는 사람이 살다 보면 본인의 지적 수준과 유사하게 주변 사람들이 채워지고 저 반대쪽의 세상은 바라볼 수 없게 되는데, 군대는 이 장벽을 한순간에 무너뜨리기 때문에 학자로서 그 의미는 있던 시간이었다" 라고 언급하신 적이 있었습니다. 물론 교수님이 하신 이야기이니만큼 좀 된 이야기긴 합니다.
요컨대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단어는 아닙니다만 앞서 국평오에 관해 언급하는 댓글들이 많던데, 해당 비유를 그대로 적용하면 다양한 학문적, 학술적 배경지식을 (그 볼륨의 측면에서) 어렵지 않게 풀어낼 수 있는 사람들은 본인도, 주변인도 5등급, 혹은 그 이하의 등급이 없거나 드물 가능성이 꽤 있다고 보기 때문에(어렵지않게 상위 등급을 받아낼 수 있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보편성과 약간은 괴리가 있게 되는 글쓰기를 하게 되는 것이 아닌가 정도로는 개인적으로 여겨지네요.
ㅡㅡ
무슨 책 읽은게 좋음?
모든 책은 읽으면 도움이 됩니다. 독서라는 건 책을 쓴 작가의 어휘 속에 빠지는 활동이거든요.
때로는 다른 장르를 맛보시는 게 좋아요! 추리랑 SF가 나쁘다거나 수준이 떨어진다는 건 아니지만, 공유하는 설정이 비슷하기에 문체나 어휘도 일정한 풀 안에서 놀 수밖에 없습니다. 다만 흥미가 썩 가지 않으신다면 억지로 읽으실 필요는 없습니다.
아기도 엄마 아빠 말 따라서 옹알이하지, 책상에 앉혀두고 마 니 오늘 기역에서 히읗까지 배우라 알긋나 하면 싫어하잖아요? 어른도 똑같습니다.
ㅡㅡ
전문지식은 쉽게 설명이 불가하다고 생각함
대다수의 대중들은 그 전문지식의 기초지식 조차 없으니
다만 대다수가 맛보기만 아는 지식이라면 글을 잘 쓰는게 훨씬 수월할 것 같음. 일단 어느정도 알고 있다는 전제가 있으니
그래서 석학 교수들이 글로 설명을 잘 못한다. 이건 안맞다고 봄. 그 지식을 함유하는 사람은 최소한 어느정도 지식을 갖춘 사람이다라는게 어쩌면 당연한 전제이기 때문이라고 봄.
맞아요. 전공생들은 일단 대학 수준의 지식을 갖고 있을 거라는 믿음이 있으니까요.
근데 어렵다고요 교수님 으아아아
첫댓글 아침부터 되게 좋은 글이다. 고마워
박사님이 싸패라서 그런 게 아니라….ㅋㅋㅋ
글이 너무 재밌다ㅋㅋㅋㅋ나는 책은 잘 안보고 이런저런 강의를 많이 듣는편인데 어휘력을 위해서 책도 봐야겠다
이 글 쓴사람도 똑똑하고 유쾌하다..! 재밌어..!
똑똑한사람들이 말도잘하고 글도잘쓰는것같아
난 이제 학창시절보다 기초지식 떨어지고 밈과 도파민에 뇌가 절여져서 단어도 생각안나.. 매일 스무고개챌린지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