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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꼬는 그의 음성에 속이 뒤틀려지는데 엉신이가 나를 보며 말한다.
“만난 적 있는 놈이야?”
놈이라는 말에 또 발정 난 듯이 얼굴이 빨개지는 놈을 보니 어이가 없어서 비웃음을 날리며 놈을 바라보았다.
“응, 여전히 그 덩치는 산만하네. 팔뚝도 요란하고 말이야.”
그 날 빠진 머리카락이 얼마나 아까웠는데……얼마나 아팠는지 넌 모를 거야.
표정관리를 못하고 그만 인상이 굳어지는데 건물을 막 나오던 연이 언니가 내게 소리를 지른다.
“악! 너 거기서 빨리 안 내려와? 무슨 짓이야! 내 아름다운 자동……차가……응?”
그리고 연이 언니의 옆에서 같이 걷고 있던 최현 역시 웃다가 앞에 자신의 동료가 있자 무슨 일인가 싶어서 연
이 언니와 같이 다가온다. 덩치 큰 놈과 연이 언니가 가까워질수록 언니의 표정은 점점 굳어지고 최현은 밝은
미소를 보이며 놈의 어깨를 친근하게 친다.
“어이, 어디 있었냐? 찾아 다녔다고. 곧 중대발표를 할 예정이라서 말이야.”
하지만 최현의 밝은 목소리도 싸늘한 분위기에 묻히자 최현은 당황하며 나와 언니를 번갈아 보더니 자신의 동료에게 말한다.
“무슨 일이야? 왜들 이렇게 심각해?”
두목의 물음에도 아무 말을 안 하는 놈은 그저 나를 째려보기만 하는데 그 모습에 화가 난 연이 언니는 놈의 멱살을 잡는다.
“이 곳에서 다 만나네. 다시는 못 만날 줄 알았는데……그때 그렇게 치고 가니까 좋았냐? 어때? 여기서 한 번 더 뜰까?”
이미 흥분 할대로 흥분을 해버린 언니의 모습에 적지 않게 많이 당황하는 최현은 언니를 말리고 엉신이는 이제 사태를 파악했는지 놈에게 다가간다.
“네가 그때 얘랑 쟤 괴롭힌 놈이냐?”
점점 어둠으로 들어가는 심각한 분위기에 당황하는 것은 오직 최현 한 명뿐이며 좀만 더 말싸움을 하면 이제는
폭력까지 가할 놈의 눈빛에 기분이 더 나빠진다. 미안해하는 마음가짐이 조금도 없는 저런 사악한 놈 같은 건
봐주고 싶어도 봐줄 수가 없어.
“하지만…….”
저런 놈과 싸우면 같은 놈으로 취급받기에 그럴 수가 없어.
천천히 차에서 내려와 놈에게 다가가는 엉신이의 손을 잡아 그의 걸음을 멈추게 했다.
“지금은 타이밍이 좋지가 않아. 다음에 정식으로 한판 붙지.”
그렇게 엉신이를 잡은 손에 힘을 주며 놈을 무시하고 건물 안으로 들어가려는데 뒤에서 연이 언니의 오랜만에
들어보는 강아지 같은 목소리가 들린다.
“이대로 그냥 돌아가지만 다음에 이런 식으로 또 만나면 그땐 가만두지 않을 거야. 그리고 최현 너 동료 관리
좀 잘하라고! 정말이지, 그때 그렇게 공격을 할 필요까진 없었잖아? 많이 아팠다고! 흥.”
약간 툴툴거리면서 나와 엉신이 쪽으로 걸어오는 언니의 발자국 소리에 잠깐 걸음을 멈추는데 이번에는 최현의 목소리가 우리들을 자극시킨다.
“어떻게 된 건지는 모르겠는데 곧바로 회의 소집할 거야. 다른 곳으로 튀지 말고 2층 회의실로 와야 한다.
뭐 이건 회의가 아니라 중대발표니까 의견 같은 건 존중하지 않겠지만 말이야. 어찌되었든 간에 오늘의 주인공
은 너희니까……빠지지 마라.”
이번에도 자기는 쿨 하다는 듯이 말하는 최현은 동료를 데리고 먼저 건물 안으로 들어선다.
언제는 연이 언니가 좋다면서 언니를 놔두고 동료를 먼저 생각하는 것을 보면 의리는 있네.
그래도 왠지 언니가 초라하게 느껴진다. 어느새 최현을 바라보다가 우리 쪽으로 오는 걸음이 늦어진 언니의 눈동자에는 투명한 눈물이 맺혀있었고 당황한 나는 언니에게 다가갔다.
“언니를 싫어하는 건 아닐 거야. 그저 동료를 생각하는 마음이 깊은 것뿐일 거야.”
아무 말도 하지 않는 언니의 옆에서 위로를 해주는 말을 건네는데 언니는 애써 웃으며 아무렇지 않다면서 눈물
을 닦고 당당하게 내 손을 잡는다. 그리고 엉신이를 무시하고 걸어 나가다가 엉신이를 바라보며 입을 연다.
무슨 말을 하려고…….
“바보, 네 여자 친구 내가 잡고 있다? 그렇게 계속 있을 거야? 나도 같은 여자라고 질투 안 느끼나본데 남자들은……흥이다. 흥!”
역시 방금 전 최현에게서 받은 충격에 엉신이에게 화풀이를 하는 언니를 보니 살짝 웃음이 나왔다.
언니, 왜 이렇게 귀여운 거야.
“그러지마, 언니. 엉신이 화나면 무서워.”
“아아. 하긴 저자식이 한 성깔 하지.”
“뭐라고?”
언니의 말에 인상을 쓰면서 화를 내는 엉신이를 보니 웃겨서 언니와 같이 키득거리는데 엉신이가 짜증난다는 듯이 머리를 헝클더니 혼자서 건물 안으로 들어간다.
“어? 엉신아, 같이 가!”
그래도 내가 자기를 생각하면서 달려오니 기분은 좋은지 표정이 점점 좋아진다.
엉신이 역시 너무 귀여워.
그렇게 엉신이의 손에 팔을 끼며 걷는데 연이 언니는 내게서 손을 떼고 투덜거린다.
“역시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건가. 아……외롭다.”
“피식, 넌 나한테 안 돼.”
“누가 뭐래니?”
나를 사이에 두고 티격태격하는 엉신이와 언니는 어린아이처럼 행동을 하고 우리는 천천히 2층 회의실을 향해 걸어갔다. 걸어가는 내내 계속 말싸움을 하는 언니와 엉신이 때문에 정신이 산만해져서 힘들었지만 그래도 참고
회의실까지 무사히 도착했다. 그러자 언니의 표정이 점점 안 좋아지더니 한숨을 쉰다.
“나 들어가기 싫어졌어.”
갑작스러운 언니의 말에 눈을 동그랗게 뜨고 언니를 바라보는데 얼굴을 손으로 가리며 괴로워하는 언니의 모습이 보인다.
“사실 나는 제3자고……주인공은 너희니까……무엇보다도 지금은 그 자식 얼굴을 보고 싶지가 않아.”
아까 최현이 자기보다 동료를 생각해서 그러는 건 아니겠지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그럴 거라는 생각에 표정관리가 제대로 안 되는데 옆에 있던 엉신이가 언니의 어깨를 세게 친다.
“아, 아프잖아! 왜 때려!”
“바보가 바보같이 구니까 그렇지! 너 같은 바보한테 바보라는 소리 들었으니까 불쾌해서 그런다.”
“이게 정말! 끝까지 소심하게 굴 거야?”
“어. 그럴 거야. 이딴 대접 받기 싫으면 빨리 들어가.”
여전히 변하지 않은 2% 부족한 엉신이의 소심한 복수에 살짝 웃는데 언니가 엉신이의 말에 넘어가서 회의실 문을 당당하게 열고 들어간다.
엉신아, 너 혹시 이럴 걸 알고 미래를 예측하고 말한 거야?
새로운 모습을 봤다는 듯이 엉신이를 바라보는데 엉신이가 이것쯤은 별것도 아니라면서 어깨를 으쓱거리고 회의
실로 들어간다. 약간 얄밉게 느껴졌지만 그래도 내가 다 뿌듯해져서 나도 으쓱거리며 뒤따라서 회의실을 들어갔
다. 회의실에 발을 디디자 바로 느껴지는 따가운 시선에 그저 어색한 웃음을 날리며 비어있는 의자에 앉는데 어
느새 먼저 앉고 최현을 노려보고 있는 언니의 모습에 웃음이 나와서 키득거렸다.
“정말 심하게 삐졌나봐. 연이 언니 이럴 땐 나보다 어리다니까. 완전 중학생이야.”
그렇게 엉신이의 귓가에 대고 키득거리는데 앞에서 나의 웃음소리가 거슬렸는지 언니의 시선을 피하며 나를 바라보는 최현이다.
뭐야, 왜 저런 눈으로 날 바라봐?
“아주 일찍 잘 모였나보네. 그럼 회의 아닌 중대발표를 여기서 발표하겠다.”
이를 악 물며 나를 무섭게 바라보는 최현의 눈동자에 기분이 점점 나빠진다.
옆에 있던 엉신이 역시 기분이 나빴는지 나대신 최현을 째려본다.
이건 평화로운 중대발표를 할 시간에 어울리지 않는 분위기인데 이러다가
안 좋은 쪽으로 이야기가 전개되는 거 아니야?
조금은 초조해진다.
“지금 내 기분이 상당히 안 좋으니까 잡담은 안 하고 본론으로 들어가겠다.”
말끝마다 딱딱하게 인상을 쓰며 말하는 놈의 얼굴에 상당히 불쾌하고 초조해지지만 용기를 내고 천천히 입을 열
었다. 주변의 조폭들은 전에 한번 보고 다시 보는 얼굴이라는 것을 늦게 알았는지 입을 벌리며 나를 경계한다.
“좋아. 나도 상당히 이런 대접 받는 거 내키지 않아. 빨리 빨리 초스피드로 진행하자고.”
어깨를 살짝 으쓱거리며 그나마 밝은 미소를 보여주었는데 내 미소에 쓰러지는 몇 명의 인간이 보인다.
이걸 목적으로 보인 미소는 아닌데 나를 더 나쁘게 보는 최현의 모습과 옆에서 인상을 쓰는 엉신이가 보인다.
어쩌지, 엉신이 화난 건가? 아니, 그보다 최현의 표정이 정말 가관이야.
이건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인 것 같다.
“저기……그런 눈으로 나를 바라보지 말아줘.”
“잡담은 안 하기로 했을 텐데?”
“아, 그랬었지.”
“어. 그랬어.”
“응.”
갑자기 어색해져서 옆으로 고개를 돌리고 엉신이를 바라보는데 엉신이는 계속 인상을 쓰며 최현을 노려보고 있
다. 역시 화났나 보다. 살짝 걱정을 하는데 잊고 있었던 연이 언니의 존재에 다시 눈을 반짝이며 언니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언니는 기분이 조금 좋아졌는지 아니면 삐지는 연기를 하는 게 힘들었던 건지 처음과는 다르게
눈에 힘을 풀고 최현을 바라본다. 그리고 입이 열리는 언니의 모습이다.
“최현, 너 나한테 할 말 없어?”
얼굴에 대놓고 드러나지는 않았지만 표정관리를 하려고 애쓰는 언니의 모습이 언니가 입을 열 때마다 조금씩 드
러났다. 그런 언니의 표정과 말투에 나를 바라보던 눈을 언니 쪽으로 옮기는 최현은 눈에 힘을 풀고 다시 자신
의 동료들을 바라본다.
“이제부터 저 여잔 내가 찜했으니까 건들지 마.”
턱으로 연이 언니를 가리키면서 말하는 최현의 얼굴은 부끄러웠는지 서서히 자홍빛을 띄고 자신의 우상 이였던
두목이 연이 언니를 좋아한다고 하니 조폭들은 깜짝 놀라며 언니를 바라본다. 언니 역시 갑작스럽게 벌어진 상
황에 당황하면서도 얼굴이 붉어지는 게 부끄럽다는 티가 팍팍 난다. 로맨틱해진 상황에 조금 부럽지만 그래도
아까와는 다르게 좋아진 분위기에 기분이 좋아진다. 엉신이도 기분이 좋을거라고 생각하면서 고개를 다시 옆으
로 돌렸는데 엉신이의 표정은 여전히 그대로다.
따로 무슨 안 좋은 일이라도 있는 거니? 아니면 아까 내가 지은 미소 때문에 그러는 거야?
최현의 날카로운 시선은 사라졌는데도 엉신이의 표정은 여전히 날카롭다. 엉신이의 기분을 풀어주기 위해서 천
천히 엉신이의 손을 아무도 모르게 잡았다. 내 손의 촉감이 자신에게 느껴졌는지 나를 바라보는 엉신이는 내 눈
빛을 읽는다.
“아무래도 내가 너를 화나게 한 것 같다는 느낌이 지워지지가 않아서…….”
작은 목소리로 진심이 담기도록 엉신이와 눈을 마주치며 말했다.
“그래서……지금 당장 화를 풀게 해주고 싶어서……그런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이런 쪽으로는 머리가
잘 돌아가지 않는 나라서 정말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그저 이렇게 잡아줄 수밖에 없어.”
엉신이를 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나……잘못한 거야?”
떨리면 안 되는데 마지막에 목소리를 떨고 말았다. 심장처럼 떨려서 미치겠다. 그렇게 로맨틱한 분위기 사이에
서 유일하게 긴장하고 떨리는 나와 엉신이의 체온 그리고 마음이 다른 무엇과는 다르게 빛난다.
“말해줘. 잘못한 거면 내가 어떻게 해야 잘하는 건지 알려줘.”
엉신이의 대답을 기다리는데 천천히 엉신이가 내 손을 잡고 나를 끌어안는다.
두근두근.
최현과 언니가 주인공 이였던 로맨틱한 분위기에서 어느새 나와 엉신이가 주인공이 되어버렸고 조폭들은 어이가
없다는 듯이 우리를 바라본다. 그리고 엉신이의 크고 따뜻한 목소리가 들린다.
“네 목소리. 네 마음만 들려주면 돼……. 그게 내 심장을 울릴 수 있으니까.”
……. 아무것도 생각나지가 않는다. 그저 멍하니 엉신이의 목소리와 마음을 들을 수밖에 없다.
“그리고……이렇게 들을 수 있으니까 잘못한 거 하나도 없어.”
미치겠다. 살짝 고개를 들어서 엉신이를 바라보았다.
“나도……. 나도……엉신이 네 목소리, 마음만 있으면 돼. 그것만 있으면……이렇게 웃을 수 있으니까.
내게는 벼엉신이라는 행복이 제일 행복하니까.”
고개를 숙여서 엉신이의 품에 얼굴을 묻었다. 그렇게 몇 초간의 시간이 지나고 따가운 최현의 목소리가 들린다.
“지금 장난 하냐? 아주 영화를 찍네, 찍어.”
주머니를 뒤적거리면서 담배와 라이터를 꺼내는 최현은 입에 담배를 물고 피기 시작하더니 팔짱을 끼는 거만한
자세를 취한다. 그리고 나와 엉신이에게 손짓으로 떨어지라는 표현을 한다. 나와 엉신이의 사이를 방해한 최현
이 밉고 싫었지만 천천히 엉신이에게서 떨어졌다.
“잡담은 안 하기로 처음에 말했을 텐데 먼저 잡담에 응한 나 때문에 시간이 지체되었다.
동료들과 새애끼 외 2명은 잘 들어라. 지금 이 순간부터 우리는 하나의 동료이다.
그러므로 우리 조직은 새애끼의 간호를 할 것이며 그녀를 위협하는……. 하.”
잘 말하다가 한숨을 쉬며 담배를 끄는 최현은 천천히 일어나더니 회의실 문을 향해서 입을 연다.
“신의비를 가만두지 않겠다.”
최현의 시선에 설마하면서 고개를 돌렸는데 회의실 문 앞에는 검은 옷을 입으면서 내가 쓰러질 때 멀리서 지켜
보고 있던 사람이 서있다. 깜짝 놀라서 벌떡 일어나는데 최현이 의미심장한 미소를 보이며 여전히 거만한 포즈
로 검은 옷을 입은 사람에게 말한다.
“라고 발표는 이미 했는데……어쩌지?”
마치 의비와 대화를 나누는 최현의 모습에 온 몸이 떨리기 시작한다. 그리고 천천히 검은 옷을 입은 사람의 비
웃음소리가 들리고 쓰고 있던 모자를 빼며 고개를 들어서 입을 여는 빛애의 모습이 보인다.
“빛, 빛애야!”
“어쩌긴 뭐가 어째. 여기서 죽어야지.”
소름끼친다. 그날 그렇게 헤어지고 다시 만난 건 오늘이 처음인데 빛애는 나를 신경 쓰지 않고 숨겨두었던 권총
을 꺼내서 최현을 가리킨다.
“안 돼! 그만해! 빛애야, 나……나를 봐봐. 이건 정말 아니잖아.”
빛애가 총을 꺼내자마자 조폭들과 최현 또한 권총을 꺼냈고 그렇게 총을 겨누는 싸움을 시작하려는 분위기가 조성된다.
이건 내가 원하던 게 아니야!
“그만해. 이건 정말 아니야. 내가 생각하던 그런 게 아니야! 난 나쁜 마음이 있는 게 아니야.
빛애야, 그만해. 제발. 왜 나를 이렇게 고통스럽게 하는 거야?”
총을 겨눈 이 상황을 어떻게든 바꿔야겠다는 생각에 혼란스럽게 말을 하는데 언제 일어났는지 엉신이가 내 옆에
서 내 손을 꽉 잡아준다. 그리고 천천히 나의 말에 자극을 받았는지 빛애가 총을 내게로 겨눈다.
“죽이지 못한 게 후회스러워.”
너한테 그런 소리 듣고 싶지 않아…….
천천히 눈에 눈물이 맺힌다.
“아직도 의비는 너 같은 걸 생각한다는 게 불쾌해서 너를 지금 죽이고 나도 죽고 싶어!”
빛애가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다. 너무 혼란스럽다.
“너 같은 건! 왜 존재하는지 모르겠어! 빨리 저세상으로 가란 말이야!”
탕탕-!
쨍그랑!
몸이 떨린다. 나의 머리카락을 스쳐 지나간 총알이 뒤에 있던 창문을 통과해서가 아니라 내게 총을 쏘아버린 빛
애의 행동에 두렵고 무서워서 몸이 떨린다. 최현이 빛애가 방아쇠를 당기는 순간 총을 쏘지 않았더라면 지금쯤
난 정말로 빛애의 말처럼 저세상에 갔을지도 모른다. 최현의 총알이 빛애의 총을 겨냥해서 총이 바닥에 떨어지
고 빛애는 나처럼 몸을 떨기 시작한다.
“답답해! 미칠 것만 같아! 내가 이토록 목숨 걸면서 사랑하는데! 좋아하는데! 왜 나는 안 되는 거야?
왜 밤마다! 이런 인생이 싫다고! 가고 싶다고! 너의 곁으로 가고 싶다고 말하는 거냐고!
그것도 잔인하게 내 앞에서 어떻게 그런 소리를 할 수가 있냐고!”
무서워서 눈물이 흐르는데 빛애는 슬퍼서 눈물을 흘리고 있다. 의비가 나를 그리워한다고 울부짖으면서 고통스
러워하는 빛애의 모습이 보인다. 내 눈앞에 있는 상황이 마치 예전의 내 모습을 그대로 보는 것 같아서 심장이
떨리기 시작한다. 온 몸도 같이 떨린다. 그때의 난 그래도 옆을 보면 나를 안아주는 엉신이가 있었는데 빛애에
게는 아무도 없다. 지금도 그때당시에도 이렇게 고통스러워했을 텐데도 빛애를 위로해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어쩐지 나……무지 나쁜 짓을 저지른 것 같아.
“정말 짜증나! 싫어! 이젠 나도 지쳤다고! 그런데도! 지쳤는데도 계속 의비를 향하는 내 마음이 정말 더 짜증
나고 싫어서 이 심장이 멈췄으면 좋겠다고 느껴! 새애끼! 날 죽여. 네 손으로 나를 죽여줘. 애끼야, 제발…….”
그렇게 눈물을 흘리며 주저앉는 애끼의 곁으로 천천히 다가가는데 엉신이가 나를 잡은 손을 놓지 않는다.
난 알고 있어. 이런 마음이 얼마나 고통스럽다는 것을 말이야. 그래서……그래서 더더욱 빛애를 혼자 두게 하고 싶지가 않아.
엉신이의 손을 다른 한 손으로 천천히 떨어트렸다.
“나 지금 빛애에게 가지 않으면 괜찮지 않을 거야. 그러니까 지금 내가 가는 길에는 괜찮아. 괜찮다고 생각해.”
정말로 괜찮아. 빛애의 이 마음은 진심이라는 것을 아니까. 설령 내게 일부러 보이는 거짓된 마음이라고 하더라
도……난 슬퍼하는 빛애의 모습을 안본 척 넘어갈 수가 없어. 그건 정말 친구로서의 의리가 아니라고 생각해.
마지막까지 난 빛애를 친구로 볼 거니까.
걱정하는 엉신이의 눈을 피하고 빛애에게 다가가 손을 내밀었다.
“난 너를 죽일 수가 없어. 의비나. 너나……나를 죽일 수 있을지 모르겠는데 난……끝까지 너희를 못 죽일 거야.
친구라고 생각하니까. 그러니까……그만 어둠에서 나와 줘. 내 손을 잡고……우리 행복해지자.”
천천히 눈물이 볼을 타고 흐르기 시작한다. 여전히 고개를 숙이며 바닥에 주저앉아서 내 손을 잡지 않는 빛애는
내 말이 우스웠는지 눈물을 흘리며 소름끼치고 잔인하게 웃는다.
“새애끼, 아직도 정신 못 차렸어? 나 너랑 친구 할 마음 따윈 없다니까?
설령 내가 너랑 손을 잡았다고 해도 잡을 수 없는 게 현실이야. 그게 나와 의비가 이어진 실이니까.
그걸 끊을 수는 없어. 난 의비를 좋아하니까……사랑하니까 그럴 수 없어.”
사랑하고 좋아하기에 불행한 방향을 택하는 빛애다. 여전히 마음속에는 내게 미안한 마음이 조금이라도 없는 것
처럼 행동하고 나쁘게 대하지만 내가 엉신이와 연이 언니를 다시 만났을 때 옆에서 나를 지켜준 그것만큼은 진
심 이였을 테니까. 그 마음만큼은 애초에 꾸민 짓 같은 건 아니니까. 그때처럼 싸늘하지만 마음은 따듯한 게 빛
애니까.
이렇게 심한 말을 해도 믿을 수가 없다. 그 말을 믿지 못하고 반대로 믿게 된다. 상처는 받지만 그래도 빛애에
대한 믿음이 조금이라도 남아있는지 빛애의 말이 거짓이라고 부정한다. 아빠를 살인해서 증오를 해도 모자를 친
구인데……친구도 아니 여야 하는 건데……사람 마음이 뜻대로 되지가 않는다.
괴롭다. 나……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아빠, 아빠가 마지막에 내게 했던 말이……머릿속에서 지워지지가 않아.
그 아이를 믿지 말라는 아빠의 마지막 당부가……그 말을 하려고 죽기 직전에 힘겹게 입을 열었는데……믿으면
안 되는 걸까? 아빠, 믿지 말아야 하는 거야? 그 아이 빛애를……정말 믿으면 안 되는 거야? 빛애에 관한 모든
것을 믿으면 안 되는 거야? 대답해줘. 아빠라면 어떻게 할 거야? 하……. 내게서 소중한 아빠를 잃게 만들어 버
린 장본인인데……난 이렇게 한심하기 짝이 없는 생각을 하고 있어. 남들이 보고 들으면 쓸데없는 생각이라며
시간 낭비나 하지 말라고 하겠지. 그런 상황에서는 당연히 증오를 하고 복수를 해도 모자를 판이라며 판을 치겠
지. 그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나를 밀어주겠지. 하지만 난……사랑해서 불행을 택하는 빛애가 안타깝게 느껴져.
아빠를 살인할 때 고통스러웠을 마음을 생각하면 정말……아빠만큼 아팠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서 내 가슴이 너무 아파.
천천히 고개를 숙이고 떨어지는 눈물에 눈을 질끈 감았다.
“사랑하면! 불행도 같이 짊어지는 거야? 사랑하면! 원래 그 사람의 행복을 바라는 게 정상 아니야?
이건 사랑이 아니야! 내가 보기엔 그저 어린애들 장난이라고!”
찰싹-.
뺨을 맞은 통증이 나지 않았는데 고개는 돌아가 있고 내 정신은 멍해진다.
그리고 앞에는 일어서서 많이 화가 난 표정을 지으며 눈물을 머금고 내게 소리를 지르는 빛애가 보인다.
“네가 뭘 안다고 지껄이는 거야? 넌 의비의 사랑을 매번 받았잖아! 맨 날! 그것도 지금까지! 하루도 빠짐없이!
의비의 머릿속에는 내가 아니라 너로 가득 차 있었어! 그런 네가 알기나 해? 이런 내 마음! 네가 아팠던 그 한
순간은 아픔이 아니야! 내게 있어선 그게 어린애들의 장난 이였던 거라고! 나한테 그딴 소리 지껄이지 마.
불쾌해서 역겨워!”
심한 소리를 들어버렸다. 하지만 나도 빛애에게 상처를 주었다. 주변에서 빛애의 심한 말에 화가 나서 인상을
쓰며 빛애에게 화를 내는 사람이 많았지만 아무것도 신경이 쓰이지 않는다. 그저 지금 이 상황이 빛애와 나 단
둘만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역겨우면……평생 역겨워 해도 되니까……나 좋아해달라는 말 안할 테니까. 나 좋게 봐달라는 말 안할 테니
까. 그런 거 애초에 바라지도 않았으니까! 그냥……네 마음만 행복해졌으면 좋겠어. 편해졌으면 좋겠다는 말이
야! 의비도 빛애 너도! 왜 내 옆에 있으면서 불행해하는 거야? 아니, 한 번도 행복해한 적이 없어? 나랑 같이
있는 동안! 그저 지루하고 짜증나고 귀찮기만 했냐고! 난 그때 너무 행복했어. 처음으로 친구가 생겨서……
기쁘고 좋았단 말이야!”
이젠 모르겠다. 누가 잘한 거고 누가 잘못한 건지……누가 잘못된 거고 누가 잘된 건지……정말 모르겠다.
그저 앞에 있는 빛애의 모습이 내 눈에는 슬퍼 보일 뿐이다. 하지만 빛애는 눈물을 흘리면서 천천히 미소를 짓는다.
“난 너랑 있는 단 한순간도 행복해한 적이 없었어. 그저 지옥일 뿐 이였다고! 의비 옆에서 알짱대는 네가 너무
짜증나고 역겨웠어! 그래서 네가 의비한테서 상처를 받았을 땐 엄청 즐거웠다지?”
심장이 따끔따끔하다.
“그러면 그때! 왜 의비가 나를 그리워한다는 식으로 말했어? 그 날! 내가 총 맞았던 날! 일부러 의비의 모습을
보이게 하려고 영화를 보자고 했던 날! 그때 이런 말했잖아. 의비는 나를 그리워해서……슬픔을 잊고 싶어서!
나를 잠깐 잊고 싶어서 공포영화를 선택한 거라고 말했잖아! 그건 다 뭐야? 연극 이였던 거야?”
잊고 있었던 아픈 기억이 새록새록 다시 떠오른다.
“그때도 모르고 넌 지금도 아무것도 몰라! 의비가 너 때문에 얼마나 울었는지 알아? 그 슬픔을 바라보는 내가
가슴이 더 찢어지는 줄 알았어! 그래서 그땐 어쩔 수 없었어. 내 가슴을 찢으면서까지……의비가 행복하길 바랐
으니까……. 기회를 줬던 것뿐 이였어."
끝까지 의비를 위해서 자신을 희생하는 빛애를 보니 가슴이 답답해진다. 소중하다고 여겼던 친구가……한 명뿐
이였던 친구가 자신의 몸과 마음을 망가트리는 것을 보니 슬퍼진다. 더 이상 빛애의 말을 들으면 서로가 괴로울 뿐이다.
“최현, 우리 이제 동료……맞는 거지?”
고개를 숙이고 빛애를 바라보지 않으며 떨리는 목소리로 천천히 말했다.
“빛애를……방에 가둬줘.”
“뭐? 너 방금 뭐라고 했어? 날 가둬? 미쳤어? 새애끼! 차라리 나를 죽여!”
내 말에 멱살을 잡으며 소리를 치는 빛애의 눈에는 분노와 증오 그리고 슬픔의 감정이 섞여있다.
최현은 아무 말 없이 그저 고개를 끄덕이며 자신의 동료들에게 지시를 내린다.
“내가 왜 여기에 왔는지 알아? 너를 죽이려고 왔어! 그러니 너도 나를 적으로 보고 죽이란 말이야!
너한테 사과 같은 거할 마음 따윈 없어! 사과를 하라고 하면 차라리 죽는 게 나아!
저승에서도 하기 싫은 사과를 이승에서까지 해야 할 의무는 내게 없어!”
천천히 최현의 지시에 주변이 분주해지기 시작하고 조폭들은 빛애에게 다가간다.
“빨리 취소해! 날 가두라던 그 말을 취소하란 말이야! 나한테 오지 마! 오지 말라고 개새끼들아!”
어느새 빛애의 눈에는 눈물이 사라지고 증오와 분노만이 남아있다. 그리고 빛애의 양팔을 붙잡는 조폭들의 모습이 빛애와 함께 보인다.
“놓으라고! 새애끼! 당장 말 취소 안 하면 가만두지 않겠어! 저주할 거야! 죽어서도 지옥 끝까지 따라갈 거라
고! 네가 뭘 원하는지는 모르겠지만 네가 바라는 대로 흘러가도록 놔두지는 않을 거야!”
내가 바라는 건……너와 의비의 행복과 그리고 사과인데……어쩐지……정말 네 말을 들으면 그 말은 못들을 것
같아. 어렸을 때부터 내가 바라는 것은 무엇이든지 이루어졌는데 이번에는 왠지 이루어지지 못할 것 같아. 그래
서 슬픈 것 같아. 아마 그렇겠지? 새로운 경험이 어색해서……그래서 슬픈 것일 거야. 아니면 빛애랑 의비의 옛
모습이 그리워서……내가 슬픈 걸까?
조금씩 시야에서 빛애의 소리치는 모습이 사라져간다. 귓가에는 내 이름을 연신 부르는 빛애의 목소리가 들렸지
만……난 들을 수가 없어서 눈물이 흐른다.
“미안……미안, 빛애야. 정말……미안해.”
눈을 감고 쓰려오는 가슴을 진정시키려고 노력해보아도 가슴은 계속 아파온다.
정말 모르겠어. 내가……지금 하는 짓이 잘하는 짓인지……모르겠어.
조금씩 내가 부셔지는데 아까부터 계속 내 옆을 지켜주고 있던 엉신이가 나의 어깨를 감싸준다. 엉신이의 떨림이 느껴진다.
“괜찮아. 잘 될 거야. 그러니까 그렇게 아파하지 마.”
더 이상 길게 말하지 않는 엉신이는 그저 나를 세게 안아줄 뿐이다.
그 따뜻함이 몸까지 스며들어와 가슴이 울적해진다.
“엉신아……나 모르겠어. 정말 잘한 건지……. 이게 맞는 건지…….”
가슴이 너무 아프고 심장이 고통스러워서 숨도 제대로 쉬어지지가 않는다.
“잘한 거야. 언젠가 그 애도 네 마음을 알아차릴 거야.”
그렇게 따스한 목소리로 나를 위로해주는 엉신이에 의해 마음이 편안해지는 반면 빛애의 생각에 괜히 불안해진다.
확실한 믿음이 생기지가 않는다. 그래도 엉신이에게 피해를 끼칠 수는 없어서 미소를 보였다.
“응, 고마워…….”
눈을 감고 다시 뜨면 아침이 되는 것처럼……우리에게 달라지는 건 아무것도 없는 걸까?
빛애야, 그런 거니? 너의 마음은 어느 쪽이야? 정말 나한테 잔인하게 말하던 것이 너의 마음이야? 그런 거라면
난 이제 무엇을 해야 하는 거야? 너희를 위해서 다짐했는데……그 다짐은 어디로 가게 되는 거야? 헷갈려…….
의비가 나를 좋아한다고 말하는 빛애 너의 말이 진심이라면……나 의비에게 또 어떻게 대해야 하는 건지도 모르
겠어. 이제는 더 이상 의비가 나를 좋아한다고 고백해도……그런 말을 들어도 흔들릴 것 같지 않은데……빛애
너한테 그런 말을 들었을 때도 심장은 아무런 반응을 하지 않았으니까. 내 심장은 엉신이를 바라보고 있어서 그
랬을 테니까. 그래서 나 또한 그런 말에 대해서는 아무런 말을 해줄 수가 없는데 어쩌면 좋을까.
눈물을 닦고 엉신이에게서 떨어져서 팔짱을 끼며 벽에 기대어서있는 최현을 바라보았다.
“귀찮은 일 시켜서 미안해.”
내 말에 그저 담배를 꺼내 무는 최현이다. 그리고 천천히 주위를 둘러보며 남아있는 조폭들에게 말했다.
“너희도 고마워……그리고 이런 나를 재수 없게 생각하지만 겉으로 표현할 수 없는 이름 모를 덩치 큰 놈한테
말해두는데 이번에는 내가 그냥 넘어갈게. 그러니까……태클 걸지 말고 가만히 있어줘.”
그렇게 혼란스러운 상태에서 허공을 바라보며 말을 하는데 최현이 입을 연다.
“누구한테 하는 말인지 알 것 같네. 내가 이들을 대표해서 말하는데……앞으로 새애끼한테 태클 거는 놈은 나
한테 반죽음이다. 그러니 잘들 행동해. 아까 칠팔이 너 쟤랑 무슨 안 좋은 일 있는 것 같은데 복수하려는 마음
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접도록 해.”
칠팔이……아마도 내가 생각하고 내가 태클 걸지 말라고 했던 덩치 큰 놈의 이름인가 보다.
최현의 말을 이어서 뒤로는 연이 언니의 목소리가 들린다.
“여기서 이렇게 멍하니 있으면 안 돼. 은빛애가 잡혔으니……조만간 신의비도 이곳에 올 확률이 있어.
그러니까 서둘러야 애끼가 안전할 수 있어.”
나의 안전이라……. 이제는 그런 거 바라지도 않는다.
아까 빛애의 모습을 보면서 느꼈어. 빛애는 자신의 안전 같은 건 생각하지도 않고 행동을 한다는 것을. 그래서
그 모습으로부터 강인함과 그리고 타인을 생각하는 따뜻한 마음이 보였어. 비록 그 타인이 나는 아니지만……몇
명에게는 피해를 줄 수 있겠지만 오히려 난 도움을 받는 쪽보다는 행동하는 쪽이 낫다고 생각했어.
한 걸음 한 걸음……천천히 회의실 문을 향해서 걸어가고 어느새 도착해버린 문에 문고리를 잡았다.
“안 지켜줘도 나는 괜찮아. 이젠……지켜달라는 소리 안할 거야. 이제는 내 소중한 사람들을 지켜달라는 말을
하고 싶어. 그러니까 나도 행동할 거야. 이제는 말로만 하지 않고……행동으로 실천할 거야.”
불안하고 떨리고 흔들렸지만 문고리를 잡은 손에 힘을 주고 문을 열었다.
“이제 가자. 여기에는 볼일이 없어졌어.”
애써 지어지지 않는 미소를 힘겹게 지으며 회의실 안에 있는 엉신이를 포함한 모든 사람에게 말했다. 동시에 많
은 동료들이 웃으며 회의실 문 밖을 향해서 뛰기도 하고 걷기도 한다. 그들이 나를 지나 회의실 밖으로 나오자
회의실 안에는 엉신이와 최현 그리고 연이 언니만이 남아있다.
“뭐해? 빨리 가자. 안 그러면 늦어버릴지도 몰라.”
웃으며 말하는 내 모습에 더 걱정하는 표정을 짓는 그들 중 언니는 내 웃음에 반응하듯이 같이 웃어주며 힘차게 말한다.
“좋았어! 애끼가 용기를 냈는데 나이 많은 우리가 주눅들 수는 없지! 가자, 얘들아.”
언니의 웃음 또한 나를 위한 웃음이라는 것을 알기에 더 이상 거짓된 웃음을 날릴 수 없어진다. 그래서 이번에
는 행복의 길을 향한 첫걸음이라고 생각하며 밝게 미소를 지어보였다. 그리고 밝은 언니의 말에 피던 담배를 비
벼 끄고 언니와 함께 문을 향해서 걸어오는 최현은 담배를 버리지 않고 손에 꽉 쥐더니 내 앞에 다다랐을 때 내
손에 담배를 올려놓는다.
“왜…….”
“네가 버려.”
“뭐? 잠깐만! 최현! 기다려!”
최현을 향해서 소리를 쳤지만 최현은 손을 올리며 인사를 할뿐 언니와 함께 서서히 멀어져간다.
어느새 회의실 밖으로 나온 많은 조폭들도 최현이 나오니까 흩어지기 시작한다.
저들을 동료라고 여기기엔 내가 고생을 많이 해야 할 듯싶어.
한숨을 천천히 쉬는데 아직 회의실 밖으로 나오지 않은 단 한사람.
엉신이가 생각나 고개를 급하게 세우자 빳빳이 들어졌다.
“엉신아…….”
시야에 들어온 엉신이의 눈과 표정은 여전히 밝지 않고 나를 걱정하는 표정이다.
그런 표정을 지으면……내가 웃을 수가 없잖아.
“난 괜찮다니까……왜 계속 그렇게 있어. 이제 그만 우리도 걸어 나가자.”
엉신이를 바라보며 애써 슬픈 마음을 드러내지 않으려고 하는데 엉신이가 나의 심장을 자극시킨다.
“정말 괜찮아?”
왜 그런 질문을 하는 거야……. 괜찮다고 했는데도……그런 질문을 하면 내가 꼭 안 괜찮은 것 같잖아.
“응. 난 괜찮아. 정말 괜찮아.”
괜찮다고 생각한다. 아까까진 아팠지만 이제는 행복의 길을 걸어야할 차례니까……괜찮다고 생각한다.
“……내가 보기에는 괜찮아 보이지 않는데…….”
이번에도 엉신이에게 내 마음을 들킬까봐 심장이 크게 뛰기 시작한다.
엉신이의 눈을 보면 다시 울어버릴 것 같아서 고개를 숙이는데 엉신이가 내 앞으로 다가온다.
엉신이의 발소리가 점점 크게 들릴수록 내 고개는 깊게 숙여진다.
그렇게 엉신이의 발자국 소리가 멈췄을 때 엉신이는 바로 내 앞에 있다.
“괜찮다는데 계속 그러니까 내가 거짓말하는 것 같잖아.”
여전히 고개를 숙이며 말을 하는데 내 말에 대답을 하지 않는 엉신이는 손을 천천히 올리더니 내가 빛애에게 맞
았던 뺨에 가져다댄다. 엉신이의 체온이 뺨에서부터 느껴지자 빛애에게 맞았던 뺨이 화끈거리기 시작한다.
“왜 그래. 나 정말…….”
“괜찮아보이지가 않아.”
정말 괜찮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엉신이의 따뜻한 체온이 느껴지고 그 체온에 화끈거리는 뺨에 괜히 눈물이 흐른다.
“내 앞에서는 애써 강한 척 하지 않아도 되는데…….”
천천히 엉신이가 나를 안아준다. 강한 척이라는 말에 눈물이 더 많이 흐른다.
엉신아, 어째서 나는 강한 척을 하지 않으면 안 되는 걸까? 강한 척을 할 수밖에 없는 인생일까?
나 전생에 무슨 죄를 지은 걸까? 너무 괴롭고 힘들어서……쓰러질 것만 같아. 나를 내가 진정시키고 일으켜낼
수가 없어. 그게 또 힘들어서……너무 힘들어서 괴로워. 그런데 있지. 나……울지 않기로 약속했는데……강해지
기로 약속했는데……의비랑 빛애를 위해서라도 강해지려고 했는데……나한테 있어서 그런 약속은 약속이 아니었
나봐. 마음속의 다짐은 그저 물이 흐르는 것처럼 아무 것도 아닌 것 이였나 봐. 원래 그런 것처럼……내 의지대
로 되지가 않나봐. 혼란스러워. 정신이 없어. 산만해. 온 세상이 온통 암흑에 빠진 것 같아. 아니면……나 혼자
암흑에 빠진 걸까? 그래서 나 혼자 허우적거리며 빠져나오지 못하는 걸까? 그렇다면……정말로 나 혼자 암흑에
빠진 거라면 난 어떻게 해야 하는 거야? 나도 밝은 세상으로 나오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 거야? 가르쳐줘. 가르
쳐줘, 엉신아. 나 혼자서는 모르겠어. 이제부터가 시작이라며 외치는 내 마음이 가짜인 것만 같아서 두려워. 무서워…….
엉신이의 손을 세게 잡았다.
“가자. 이제 이곳에서 볼일은 다 끝났어.”
나 이곳에서의 슬픈 일은 잊고 싶어서 여기에 계속 있고 싶지가 않아. 내게 강한 척이라고 말했잖아.
내가 강한 척을 해서 조금이라도 강해질 수 있다면……그냥 강한 척하고 살았으면 좋겠어.
슬프고 외롭고 힘들겠지만 내가 강해지기 위한 수련이라면 슬퍼할 거야. 외로워할 거야. 그래야 내가 바라던 강
함이 내게 돌아올 테니까. 그렇게 엉신이의 손을 잡고 회의실을 빠져나가는데 엉신이의 목소리가 내 귓가를 자극한다.
“너 지금……도망가는 건 아니지?”
도망이라……또 심장이 뭉클해진다. 가슴이 짜릿해진다.
“응. 이게 도망이라면……난 평생 암흑에서 빠져나올 수 없을지도 몰라.
그래서 도망 같은 건 하고 싶어도 하지 않을 거야. 이 정도 각오는 해야지 내가 정말로 강해질 수 있으니까.”
흔들리려는 목소리를 집어삼키며 당당한 목소리를 냈다. 당당하게 말할 때마다 가슴은 뭉클거리며 아팠지만 참
을 수밖에 없다. 그리고 흘렸던 눈물을 닦고 엉신이에게 웃어보였다.
“그러니까 그런 슬픈 말하면 마치 내가 거짓인 것처럼 느껴지잖아.
난……애써 이런 내 모습이 나 자신이라고 생각하며 말을 하는데 그렇게 말하면……
나도 내가 아닌 것처럼 느껴져서 불안하단 말이야.”
이제는 더 이상 울지 않겠다고 약속하지는 않을 거야. 그 약속을 지킬 자신이 없으니까. 지켜도 지키는 게 아닐 테니까.
마음속으로는 매번 울고 있을 거라는 것을 나는 잘 아니까 이제는 그런 약속은 하지 않을래.
내 말에 아무 말도 하지 않는 엉신이에게 천천히 입을 열었다.
“나 빛애를 만나고 싶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