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8일 열리는 서울 국제 부동산 세미나에 참석하기 위해 6일 방한한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와튼스쿨의 부동산학과 수잔 왁터 (59)석좌교수는 철저한 시장주의자인 듯했다. 왁터 교수는 이날 기자간담회에서 “되도록이면 정부가 주택시장에 개입하지 말고 민간에게 맡겨둬라”고 거듭 강조했다.
왁터 교수는 2000년 미국 주택도시개발부 차관을 역임하고 현재 연방 주택금융공사 고문으로 활동하고 있는 미국의 대표적인 주택전문가로 꼽힌다.
하지만 미국과는 달리 국토가 좁아 투기자본에 의해 시장이 쉽게 요동칠 수 있는 우리나라에서 과연 시장에 그대로 맡겨둬도 되는 것인지 의문이 생겼다. 시장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상황에서 더욱 그렇다.
하지만 주거안정을 이유로 시장 개입을 밥 먹듯이 하는 우리 정부 당국자들이 귀담아 들을 내용도 많다. 일단 왁터 교수의 말을 들어보자.
금리 인상에도 美주택 경기 활황 이유는
기자는 일단 미국 시장 주택 시장 동향부터 물었다. 올들어 미국 FRB가 두 차례나 금리를 올렸음에도 불구하고 주택시장이 여전히 활황세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원래 주택가격은 금리와 역비례 관계이다.
이에 대해 왁터 교수는 두 가지를 꼽았다.우선 FRB가 금리를 올렸지만 단기금리만 영향을 줬을 뿐 장기금리는 아직 미미하다는 점,또 하나 경기가 회복되면서 소득이 늘어 금리인상의 역효과를 상쇄시켰다는 점이다.
왁터 교수는 ”금리 인상이후 과거보다는 주택가격 상승률이 둔화되고 있는데 약간의 영향은 있는 셈”이라고 말했다.
한국 주택값 많이 안 올라?
왁터 교수는 서울지역을 중심으로 아파트값이 너무 올라 거품논란이 적지 않았는데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최근들어 한국의 주택가격도 많이 오른 것으로 알고 있다”며 “하지만 13개 선진국과 비교할 때 한국의 주택가격 상승률은 낮은 편”이라고 말했다.
서울도 소득이나 물가 상승률을 감안하면 비정상적으로 오른 것은 아니라는 주장이다. 그 근거가 무엇이냐는 질문에 왁터교수는 “지난 1997년∼2003년 주택가격 통계로 이야기 한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 집값 상승 원인은
왁터 교수는 서울 집값이 급등해 서민들의 주거안정이 위협받고 있다는 지적에 대해 “대도시의 주거문제는 단지 서울만의 현상이 아니다. 세계 여느 국가의 대도시도 서울과 같은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서울 집값을 세계화·정보화 과정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말하자면 서울에 오면 산업 생산성이 높아지기 때문에 수요가 늘어 서울 주택값이 상승할 수 밖에 없다는 논리다.
그는 “지식 정보화시대라고 해도 도시의 집적된 기반시설을 이용하기 위한 수요가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며 “오히려 신경제시대엔 지식경제의 센터로서 도시의 가치는 더 커진다”고 말했다.
그는 행정수도 이전에 대해선 부정적인 의견을 피력했다. 인위적인 수요 창출을 위한 신도시 건설은 세계적으로 성공한 사례가 없다는 것이다.
그는 서울 집값을 안정시키기 위한 방법으로 주택공급을 늘리는 방법 이외엔 다른 묘책이 없다고 강조했다. 주택 수요가 있는 곳에 집이 원활하게 지어질 수 있도록 해줘야 한다는 논리다.
외국 자본,한국빌딩 사들이는 이유
왁터 교수는 최근 외국자본들이 한국 빌딩시장에 많이 진출하고 있는데 그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두 가지를 꼽았다.
우선 한국경제가 침체되고 있다고 하지만 미국이나 유럽에 비해 성장률이 높아 업무용 부동산의 수요가 늘 것으로 보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왁터 교수는 “하지만 공급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다 보니 장기적으로 볼 때 수익성을 맞출 수 있는 것으로 판단하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또 자산의 위험 분산 차원에서 고도성장을 하고 있는 아시아 부동산 시장에 관심을 돌리고 있는 점도 한 요인이라고 분석했다.
정부,주택시장에 더이상 간섭 말라?
왁터교수는 가격이나 거래규제를 통한 수요 억제는 ‘언발에 오줌누기’에 불과할 뿐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지난 2000년 초 정보기술(IT) 거품으로 주식값이 폭등할 때 미국 그린스펀 연방준비이사회 의장이 한 발언을 빌어 시장 개입은 더 큰 부작용만 초래할 뿐이라고 강조했다.
당시 그린스펀은 주식시장에 왜 개입하지 않느냐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정부가 민간보다 잘 할 수 없다. 민간보다 시장에 대한 정보를 잘 모르기 때문이다.”
왁터교수는 또 “주택과 같은 자산시장에 개입할 경우 정책 효과를 보기 위해선 시차가 존재하기 때문에 때를 놓치는 경우가 많다. 이 때문에 개입은 안하는 게 좋다”고 말했다.
시장에서 값 상승 신호가 나타나면 민간에서 먼저 반응(공급 확대)을 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정부가 개입하면 오히려 이런 반응을 느리게 할 뿐이라고 왁터교수는 말했다.
그는 또 “주택시장 안정을 위해 정부가 개입할 경우 단기적으로 집값은 잡을 수 있을 지 모르지만 업체들의 적정 수입이 보장 안돼 투자(주택 공급)를 하지 않을 것”이라며 “주택연관산업까지 희생돼 결국 내수침체를 깊게 할 뿐”이라고 지적했다.
정부가 할 수 있는 일은 공급의 탄력성을 높이기 위해 택지공급을 확대하는 일이라고 그는 지적했다.
미국 주택정책은 도대체 뭔가
왁터 교수는 “미국에선 주택가격이 많이 오르는 도시의 지역 언론은 주택가격에 많은 관심을 보인다”며 “전국 언론은 주택가격을 별로 다루지 않는다”고 말했다.지역 언론의 이슈도 사람들이 집을 사야 하나,아니면 말아야 하나에 있다는 것이다.
왁터교수는 “전국 언론이든,지역언론이든 정부에게 주택가격을 안정시키라고 압박을 가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왁터 교수는 “주택가격에 대한 정부의 대응도 한국과는 다르다”며 “한마디로 주택가격의 안정은 미국 연방정부나 지방 정부의 주택정책의 목표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주택가격은 시장에서 수요와 공급의 작용에 의해 결정되며 정부가 가격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수 없다고 믿기 때문이라고 왁터교수는 덧붙였다.정부의 주택정책 목표는 세제지원을 통해 자가보유율을 높이는 데 있다고 그는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