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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릉중자(於陵仲子)
오릉에 살던 중자라는 뜻으로, 지나친 청렴은 인륜을 벗어난다는 교훈을 비유하여 이르는 말이다.
於 : 어조사 오(方/4)
陵 : 언덕 릉(阝/8)
仲 : 버금 중(亻/4)
子 : 아들 자(子/0)
마음이 맑고 깨끗하며 탐욕이 없는 것이 청렴결백(淸廉潔白)이다. 예부터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본받아야 할 대표적인 덕목이었다. 많은 사람을 기리고 우러른 것도 그렇지 못한 더 많은 이를 가르치기 위함이겠다.
이들 중 중국에선 하늘과 신과 나와 그대가 안다는 사지(四知)의 양진(楊震)이나 백성의 생활을 위해 아욱을 뽑고 베틀을 내다버린 발규거직(拔葵去織)의 공의휴(公儀休)는 첫손에 꼽힌다. 우리나라서도 청백리(淸白吏)가 217명이나 나왔다. 그런데 정도가 지나쳐 전국시대(戰國時代) 제(齊)나라 진중자(陳仲子)엔 극찬을 하는가 하면 그렇지 못하다고 폄하하기도 한다.
‘맹자(孟子)’의 등문공(滕文公) 하편에는 장수 출신의 광장(匡章)이 진실로 청렴한 선비가 진중자라며 예를 드는 것이 나온다. 그가 산동(山東)성 부근의 오릉(於陵)이란 곳에 살 때 사흘을 굶어 눈이 보이지 않고 귀도 들리지 않았는데 우물가에 벌레 먹은 자두를 주워 먹고 기력을 찾았다고 했다. 어조사 어(於)는 지명일 때 ‘오’가 독음이라 한다.
맹자가 이 말을 듣고 그렇게 청렴한 사람이 되려면 집에서 살고 곡식을 먹어서는 안 되며 마른 흙을 먹고 사는 지렁이가 되어야 가능하다고 말한다. 진중자는 손수 짚신을 짜고 부인은 길쌈을 해서 곡식과 바꾸니 그렇지 않다고 광장이 반박하자 맹자는 설명을 덧붙인다.
제나라에서 대를 이어 벼슬을 한 집안의 진중자는 형이 벼슬을 하여 받는 봉록이 많아 의롭지 못하다고 그곳서 살지 않았다. 형에게 보내 온 거위를 어머니가 요리하자 모르고 먹은 그는 토해 버렸다. 맹자가 평한다. ‘어머니가 주는 것은 먹지 않으면서 아내가 주는 것은 먹었고(以母則不食 以妻則食之/ 이모즉불식 이처즉식지), 형의 집에서는 살지 않으면서 오릉에서는 살았다(以兄之室則弗居 以於陵則居之/ 이형지실즉불거 이오릉즉거지).’ 이것은 지조를 지키지 못한 것이 되고 아무리 고귀한 목표라 해도 인간의 기본을 벗어난 것이니 추구할 것이 못된다고 본 것이다.
북송(北宋)의 학자 범조우(范祖禹)도 집주(集註)에서 같은 의미로 비판한다. 사람이 위대한 까닭은 인륜이 있기 때문인데, ‘중자는 형을 피하고 어미를 떠나서(仲子避兄離母/ 중자피형리모), 친척과 군신과 상하가 없다(無親戚君臣上下/ 무친척군신상하)’고 했다. 이는 인륜을 저버린 것인데 어찌 청렴이라 할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우리의 천재시인 김삿갓은 가난한 형편에 훌륭한 시도 돈 받고 팔았으니 ‘오릉땅 진중자의 지나친 청렴은 따르지 않으리(莫作於陵意太廉/ 막작오릉의태렴)’ 하며 ‘즉음(卽吟)‘에서 노래했다. 진중자의 도가 넘는 청렴은 물론 따를 수도 없지만 청렴이 무엇인지 모르는 공직자가 있어서는 더 안 되겠다.
滕文公下(등문공하) 10 陳仲子(진중자)
匡章(광장): 광장이
曰陳仲子(왈진중자): 진중자를 이르기를,
豈不誠廉士哉(기불성렴사재): "어찌 진실로 청렴한 선비가 아니리오
居於陵(거오릉): 오릉에 거처할 적에
三日不食(삼일불식): 사흘 동안 먹지 못하여
耳無聞(이무문): 귀에 들리는 것이 없었으며
目無見也(목무견야): 눈에 보이는 것이 없었는데
井上有李螬食實者過半矣(정상유리조식실자과반의): 우물가 오얏나무에 굼벵이가 반 이상 먹은 열매가 있었거늘
匍匐往將食之(포복왕장식지): 기어가서 그것을 주워먹어
三咽然後(삼인연후): 세 번을 삼킨 연후에
耳有聞(이유문): 귀에 들리는 것이 었었으며
目有見(목유견): 눈에 보이는 것이 있었습니다."
孟子曰(맹자왈): 맹자께서 말씀하시기를,
於齊國之士(어제국지사): "제국의 선비 중에
吾必以仲子爲巨擘焉(오필이중자위거벽언): 내 반드시 중자를 거벽(巨擘: 학식이나 어떤 전문 부분에서 남달리 뛰어난 사람)으로 여기겠다
雖然(수연): 비록 그러나
仲子惡能廉(중자악능렴): 중자가 어찌 청렴일 수 있으리오
充仲子之操(충중자지조): 중자의 지조를 채우려면
則蚓而後可者也(칙인이후가자야): 지렁이가 된 뒤에 가능 할 것이니라
夫蚓(부인): 대개 지렁이는
上食槁壤(상식고양): 위로 마른 흙을 먹고
下飮黃泉(하음황천): 아래로 누런 물을 마시나니
仲子所居之室(중자소거지실): 중자가 거처하는 집은
伯夷之所築與(백이지소축여): 백이가 지은 집인가?
抑亦盜跖之所築與(억역도척지소축여): 또 한 도척이 지은 집인가?
所食之粟(소식지속): 먹는 바의 곡식은
伯夷之所樹與(백이지소수여): 백이가 심은 것인가?
抑亦盜跖之所樹與(억역도척지소수여): 또한 도척이 심은 것인가?
是未可知也(시미가지야): 이것은 알 수 없는 것이로다."
曰是何傷哉(왈시하상재): 광장이 말하기를, "이 어찌 문제가 되겠습니까?
彼身織屨(피신직구): 저 자신이 신을 짜고
妻辟纑(처벽로): 아내가 길쌈하여
以易之也(이역지야): 그것으로써 바꾸는(곡식) 것입니다."
曰仲子(왈중자): 맹자께서 말씀하시기를, "중자는
齊之世家也(제지세가야): 제나라의 세가(世家: 여러 대를 이러 가며 나라의 중요한 지위에 있어 특권을 누리거나 세록을 받는 집안)이다
兄戴蓋祿(형대개록): 형, '대'가 합땅에서 받는 녹이
萬鍾(만종): 만종이었는데
以兄之祿(이형지록): 형의 녹은
爲不義之祿而不食也(위불의지록이불식야): 의롭지 않은 것이라 하여 먹지 않았으며
以兄之室(이형지실): 형의 집을
爲不義之室而不居也(위불의지실이불거야): 의롭지 않은 집이라 하여 거처하지 않았으며
辟兄離母(벽형이모): 형을 피하고 어머니를 떠나
處於於陵(처어어릉): 오릉에 거처하였다
他日歸(타일귀): 후 일 집에 돌아가니
則有饋其兄生鵝者(칙유궤기형생아자): 그 형에게 산 거위를 선물한 자가 있었거늘
己頻顣曰惡用是鶂鶂者爲哉(기빈축왈악용시역역자위재): 찡그리며 말하기를, '이 거위를 어디에 쓴단 말이오?' 하였는데
他日(타일): 다른 날에
其母殺是鵝也(기모살시아야): 그 어머니가 이 거위를 잡아서
與之食之(여지식지): 그에게 주어 먹었는데
其兄自外至曰是鶂鶂之肉也(기형자외지왈시역역지육야): 그 형이 밖으로 부터 돌아와서 말하기를, '이것은 거위 고기이다' 하니
出而哇之(출이왜지): 밖에 나가서 그것을 토해 버렸다
以母則不食(이모칙불식): 어머니가 하면 먹지 아니하고
以妻則食之(이처칙식지): 아내가 하면 먹었으며
以兄之室則弗居(이형지실칙불거): 형의 집에서는 거처하지 아니하고
以於陵則居之(이어능칙거지): 오릉에 거처하니
是尙爲能其類也乎(시상위능기류야호): 이것은 오히려 능히 그무리가 되는 것이 아니겠는가?
若仲子者(약중자자): 중자 같은 자는
蚓而後充其操者也(인이후충기조자야): 지렁이가 된 후에 그 지조를 채울 수 있느니라."
중자(仲子) 즉, 진중자(陳仲子)는 제나라 사람으로 본명이 진정(陳定), 字가 자종(子終)으로 전국시대 제나라의 유명한 사상가였다. 학식이 깊어 제나라 왕이 직하학궁에서 강학해 주기를 요청했던 사람이며 그의 제자들을 오릉학파라고 부르기도 했다. 그는 제나라 대부, 초나라 국상(國相)으로 초빙되었으나 거부하고 오릉(於陵)으로 들어가 살았다. 오릉(於陵)은 산동성(山東省) 추평현(鄒平)으로 지금의 치박시(淄博市) 부근이며 於陵(어릉)이라 적어놓고 오릉이라 부르는 이유는 중국인들이 오릉(於陵)이라고 읽기 때문이며 주자의 맹자집주에서도 於音烏라고 ‘오’로 읽도록 되어 있다.
진중자는 오릉에 거주할 적에 3일 동안 먹지 못하여 귀에는 들리는 것이 없으며 눈에는 보이는 것이 없었는데 우물가에 벌레가 반 넘게 파먹은 오얏 열매가 있어 기어가서 가져다가 먹을 정도로 청렴하다는 평을 당시 세간으로부터 받고 있었다. 이에 제나라의 장수였던 광장(匡章)이 맹자에게 진중자가 참으로 청렴한 선비라고 일컫자 맹자는 위 우언을 활용하며 진중자를 비판했다.
오릉중자(於陵仲子)
맹자孟子 등문공滕文公 하 6.10
어찌 인륜이 없으면서 청렴한 사람이 될 수 있겠는가
匡章曰: 陳仲子, 豈不誠廉士哉. 居於陵, 三日不食, 耳無聞, 目無見也. 井上有李, 螬食實者過半矣, 匍匐往將食之, 三咽, 然後耳有聞, 目有見.
제나라의 장수 광장(匡章)이 말했다. "진중자(陳仲子)는 어찌 진실로 청렴한 선비가 아니겠습니까? 오릉(於陵)에 살 때에 사흘을 먹지 못하여 귀가 들리지 않고, 눈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우물가에 있던 오얏나무에는 벌레먹은 열매가 반이 넘었는데, 진중자는 기어가서 떨어진 오얏을 주워 먹고 세 번을 삼킨 후에 귀에 들리는 것이 있고 눈에 보이는 것이 있게 되었다고 합니다."
孟子曰: 於齊國之士, 吾必以仲子為巨擘焉. 雖然, 仲子惡能廉. 充仲子之操, 則蚓而後可者也.
맹자가 말했다. "제(齊)나라 선비 중에서 나는 반드시 진중자를 여러 손가락 중의 엄지손가락으로 여기오. 비록 그렇다 해도 중자가 어떻게 청렴한 사람일 수 있겠소? 중자가 추구하는 그런 지조를 충족시키려면 지렁이가 되고 나서야 가능할 것이오.
夫蚓, 上食, 下飲黃泉. 仲子所居之室, 伯夷之所築與. 抑亦盜跖之所築與. 所食槁壤之粟, 伯夷之所樹與. 抑亦盜跖之所樹與. 是未可知也.
지렁이는 위에서 마른 흙을 먹고 아래에서는 땅 속의 흐린 물을 마십니다. 중자가 사는 집이 백이(伯夷) 같은 현자가 지은 집인지, 아니면 도척(盜跖)과 같은 도적이 지은 집인지, 그가 먹는 곡식이 백이가 기른 것인지, 아니면 도척이 기른 것인지, 이것은 알 수 없는 것이오"
曰: 是何傷哉. 彼身織屨, 妻辟纑, 以易之也.
광장이 대답했다. "그것이 무슨 문제가 되겠습니까? 그는 손수 신발을 짜고 아내는 길쌈을 해서 곡식과 바꿉니다."
曰: 仲子, 齊之世家也. 兄戴, 蓋祿萬鍾, 以兄之祿為不義之祿而不食也, 以兄之室為不義之室而不居也. 辟兄離母, 處於於陵.
맹자가 말했다. "중자는 제나라에서 대를 이어 벼슬을 해온 집안의 사람으로 그의 형 대(戴)가 개(蓋) 지역에서 나는 수확을 봉록으로 받는 것이 만 종(鍾)이나 되오. 그런데 형이 받은 녹(祿)이 의롭지 못하다고 해서 그것을 먹지 않고, 형이 사는 집이 의롭지 못하다고 해서 그곳에 거처하지 않았고. 그래서 형을 피하고 어머니를 떠나서 오릉에 산 것이오.
他日歸, 則有饋其兄生鵝者, 已頻顣曰, 惡用是鶃鶃者為哉. 他日, 其母殺是鵝也, 與之, 食之, 其兄自外至, 曰, 是鶃鶃之肉也. 出而哇之.
언젠가 형의 집에 돌아왔는데 마침 어떤 사람이 그의 형에게 살아 있는 거위를 선물로 보내오자, 이맛살을 찡그리며 '이 꽥꽥거리는 것을 어디에 쓸 것인가?'라고 했소. 그뒤 어느 날 그의 어머니가 그 거위를 잡아서 그에게 먹였소. 그때 마침 형이 밖에서 돌아와서는 '이것이 꽥꽥거리는 거위 고기이다'하자, 중자는 밖으로 나가서 그것을 토했다고 하오.
以母則不食, 以妻則食之, 以兄之室則弗居, 以於陵則居之. 是尚為能充其類也乎. 若仲子者, 蚓而後充其操者也.
어머니가 주는 것은 먹지 않으면서 아내가 주는 것은 먹었고, 형의 집에서는 살지 않으면서 오릉에서는 살았는데, 이러고도 오히려 그가 지조를 완벽하게 관철시켰다고 할 수 있겠소? 중자 같은 사람은 지렁이가 되어야만 자신의 지조를 다 관철시킬 수 있을 것이오."
맹자는 진정한 청렴함이란 세속을 부정하고 떠나서 은거하면서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고 본다. 사람이 금수가 아닌 이상 사람들을 떠나서는 어떤 이상도 추구할 수 없다는 것이다. 맹자는 진중자가 당시 불의를 서슴지 않고 저지르는 사람들과는 다르다는 점에서 일단은 어느 정도 긍정적인 평가를 하면서도, 그가 부모 자식간의 관계나 형제간의 관계를 부정하면서까지 추구한 청렴함이라는 지조는 잘못된 것임을 비판하고 있다.
하늘이 내린 것과 땅이 기르는 것 중에 오직 사람이 크다. 사람이 큰 까닭은 인륜이 있기 때문이다. 중자가 형을 피하고 어머니를 떠나 친척도 없고 군신과 상하도 없으니, 이는 인륜이 없는 것이다. 어찌 인륜이 없으면서 청렴한 사람이 될 수 있겠는가?
사소한 의로움을 지킨 중자
孟子曰: 仲子, 不義與之齊國而弗受, 人皆信之, 是舍簞食豆羹之義也. 人莫大焉亡親戚, 君臣, 上下. 以其小者信其大者, 奚可哉.
(맹자왈: 중자, 불의여지제국이불수, 인개신지, 시사단사두갱지의야. 인막대언망친척, 군신, 상하, 이기소자신기대자, 해가재)
맹자가 말했다. "중자는 의로운 것이 아니면 제나라를 주더라도 받지 않을 것이라고 사람들 누구나 믿고 있지만, 그가 행한 것은 밥 한 그릇과 국 한 사발을 의롭지 않다고 거절하는 정도의 사소한 의로움이다. 사람에게 있어서 친척과 군신 그리고 상하 간의 의리를 망각하는 것보다 큰 죄는 없다 그가 사소한 의로움을 지켰다고 해서 제나라를 주는 것과 같은 큰 경우에도 그렇게 할 것이라고 믿는 것이 어찌 옳은 일이겠는가?" (孟子 盡心 上)
중자는 진중자로, 제나라의 청렴한 인물이다. “등문공 하”(6.10)에 진중자의 행적과 그에 대한 맹자의 비판이 상세하게 제시되어 있다. 맹자가 친척과 군신 그리고 상하의 도리를 부정했다고 비판한 것은 중자가 그의 형이 제나라의 경으로 있는 것을 수치스러워해 형과 어머니를 떠나 홀로 살았기 때문이다.
진중자(陳仲子)는 등문공하편 마지막에 길게 언급된 적이 있다. 맹자가 비판한 사람이다. 그는 제나라 사람으로 본명이 진정(陳定), 字가 자종(子終)으로 전국시대 제나라의 유명한 사상가이다. 직하학궁에서 강의했다. 그의 형이 대부로 봉록이 만종에 이르렀으나 그것을 불의하다 여겨 형과 어머니를 피했고 제나라 대부. 초나라 국상(國相)으로 초빙되었으나 거부하고 오릉(於陵)으로 들어가 살았다. 그래서 그를 오릉자종(於陵子終)이라 부르기도 한다. 진중자가 제나라를 준다해도 받지 않는다는 사람들의 믿음은 그가 대부나 국상도 거부했기 때문일 것이다. 맹자에게는 진중자는 그런 작은 의리(불의하면 나라를 주어도 거부하는)를 앞세워 부모 형제의 천륜을 어기는 사람인 셈이다.
맹자의 눈에는 진중자는 청렴함에 대한 기준을 잘못 잡아 인간의 기본도리를 해치는 경지에 이르게 되었고 그런 잘못된 기준에 맞추려면 흙을 먹고 사는 지렁이가 되어야 비로소 가능하다고 비판했다. 즉, 아무리 고귀한 목표라 해도 그것이 인간의 기준을 벗어나면 비록 그 뜻이 의롭다 한들 의(義)가 인(仁)을 해쳐 중용을 지키지 못한 것이 된다는 것이다.
중국 북송 때 유명한 석학이었던 범씨(范氏: 范祖禹) 역시 ‘하늘이 낳고 땅이 기르는 것에 오직 사람이 가장 크니, 사람이 위대한 까닭은 그 인륜(人倫)이 있기 때문이다. 중자(仲子)는 형을 피하고 어미를 떠나서, 친척(親戚)과 군신(君臣)과 상하(上下)가 없으니 이는 인륜이 없는 것이다. 어찌 인륜이 없이 청렴이라 할 수 있겠느냐?’(주자, 맹자집주 상) 라고 하여 진중자에 대한 맹자의 비판에 그 뜻을 같이 했다.
맹자가 이 우언을 얘기할 때와 지금은 많은 시간이 흘렀고 시대상황에 따른 사회 배경이나 사람들의 의식구조에도 차이가 클수 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나 정치와 사회의 폐단을 바로 잡는다는 미명 하에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도리도 잊어버리는 경우가 심심치 않게 들리는 지금의 우리나라 상황에서 맹자가 이 우언을 통해 전하고자 하는 바를 한 번 쯤은 새겨 봐야 할 것이다.
작은 청렴을 큰 절개라 할 수 없다
맹자(孟子)가 말했다. "중자(仲子)는 의롭지 않는 일이라면 제(齊)나라를 통째로 주어도 받지 않으리라고 사람들이 믿는데, 이는 밥 한 그릇과 국 한 대접의 국을 버리는 정도의 의(義)이다. 사람에게 부모형제를 사랑하는 것이나, 군신(君臣)에게 상하(上下)가 없음보다 큰 것이 없는데, 작은 것으로서 큰 것으로 믿으니 이 어떻게 옳으냐?"
중자(仲子)가 설사 의(義)롭지 않게 제(齊)나라를 준다면 반드시 받지 않으리라고 말하면서, 제(齊)나라 사람이 모두 그 어진 것(賢)을 믿지마는, 나는 이를 작은 청렴(小廉)이라고 생각한다. 형(兄)을 피하고, 어미를 떠나며, 임금의 녹(祿)을 먹지 않으니, 인도(人道)의 큰 윤리(倫理)가 없어서 죄(罪)가 이보다 클 수 없다. 어찌 작은 청렴(小廉)함을 큰 절개라고 믿어 어질다(賢)고 하겠는가.
盡心章句(진심장구) 上 三十四章
孟子曰: 仲子, 不義與之齊國而弗受, 人皆信之, 是舍簞食豆羹之義也.
맹자가 말했다. “중자는 옳지 않은 방법으로 제나라를 주어도 받지 않을 것이라고 사람들이 모두 믿지만, 이것은 한 그릇의(대그릇) 밥과 한 그릇의 콩국을 버리는 정도의 의미일 뿐이다.
人莫大焉亡親戚 君臣 上下. 以其小者信其大者, 奚可哉.
사람에게 친척을 사랑하지 않고, 군·신의 상하를 버리는 것만큼 큰 것이 없다. 작은 것으로 큰 것을 믿는다면 어찌 옳겠는가?”
仲子, 陳仲子也. 言仲子設若非義而與之齊國, 必不肯受.
중자(仲子)는 진중자(陳仲子)이다. 중자는 의롭지 않게 제나라를 준다하면, 반드시 받지 않을 것 이라는 말이다.
齊人皆信其賢, 然此但小廉耳. 其辟兄離母, 不食君祿, 無人道之大倫, 罪莫大焉.
제나라 사람 모두가 어질다고 믿으므로 이것은 단지 작은 청렴일 뿐이다. 형을 버리고, 어미를 떠났고, 임금의 녹을 받지 않고, 사람의 도리의 큰 윤리가 없으니, 그 죄가 이렇게 클 수가 없다.
豈可以小廉信其大節, 而遂以爲賢哉.
어찌 작은 청렴으로 큰 절개를 믿을 수 있으며, 따르는 것이 현명할 것인가?
진중자(陳仲子)는 의리에 어긋나는 일이라면 그에게 온 제(齊)나라를 주어도 그가 받지 않으리라는 것을 사람들이 모두 믿고 의심하지 않는다. 그러나 내가 보기에는 이것은 밥 한 그릇과 국 한 대접을 받지 않는 조그만 의리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사람에게는 인륜도덕의 관계를 끊어버리는 것보다 더 큰 죄는 없다. 그런데 이제 진중자(陳仲子)는 형을 피하고 어머니를 떠나서 살 뿐 아니라, 또 친척(親戚)과 군신(君臣)과 아래 웃사람의 윤리관계까지 끊어버린 사람이다. 세상 사람들이 그의 작은 의리만 보고, 잃어버린 큰 것을 보지 못하면서 도리어 그를 의로운 사람이라고 믿으니 어떻게 옳다고 하겠느냐?
청렴은 자기 수양의 마음가짐에서 시작된다
청렴이란 모든 사람에게 해당되고 쓰이는 말이지만 청렴한 생활을 한 관리에게 붙여주는 호칭인 '청백리'는 청렴, 근검, 도덕, 인(仁)의 모든 조건을 갖추어야 주어지는 이름이었다.
즉, 조선시대 청백리라고 하면 살아생전 청렴결백하고 근검하고 도덕적으로 큰 흠결이 없으며 공무를 수행함에 있어 사사로운 이익이나 청탁을 취하지 않고 직책을 이용하여 갑질을 하거나 힘없는 백성들 을 탄압하지 않으며 인자하고 나라에 충성하고 부모에 효도하여 다른 관료들에게 귀감이 될 수 있는 사람으로 죽은 후에 의정부에서 추천하여 선정한 관리들이었다.
조선시대 500년 동안 단 217명만 가질 수 있었던 명예로운 호칭이었으며 지금도 지자체 또는 기관단위에서'청백리 공무원'및 '청백리상'등의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오리 이원익(1547~1634)은 조선시대 대표적인 청백리로 알려진 관리이다. 조선 중기 임진왜란의 국난을 맞아 삼도제찰사, 영의정 등을 역임하며 국난을 극복하는 데 기여하였으며 전후민생안정을 위해 대동법을 시행하는 등 실질적이고 개혁적인 공직생활을 하셨고. 영의정으로 여섯 차례나 지내셨지만 검소하고 소탈한 삶으로 백성들의 칭송을 받아 청백리로 선정되었다.
팔순이 넘는 나이까지 평생 초가 두칸에 일반 평민들하고 같이 생활하면서 새끼꼬고 가마니짜고 가축도 기르며 살았기에 마을사람들은 모두 대감이 양반인줄 몰랐다고 한다. 마을 촌장까지도 대감이 영의정을 지낸 정승이란 사실을 모르고 있다가 암행어사가 마을에와 오리 이원익 대감을 찾아 큰절을 올리는 모습을 보고서야 그제서야 촌장도 대감을 알았다고 할 정도로 소탈하고 청빈하게 살았다는 일화는 오늘날의 공무원들에게도 많은 교훈을 주고 있다.
한 평생을 '근검'을 기본으로 생활하신 이원익의 삶에서 나는 청렴은 작지만 우리 스스로의 마음 가짐에 달려있다고 생각한다. 일상의 검소함에서 시작하여 사적인 욕심에 대해선 자기 자신을 다스릴 수 있어야 한다. 끊임없는 자기 수양을 통해 스스로 떳떳할 수 있는 데 더 큰 가치를 두어야 한다. 그리고 수많은 노력을 통해 자기를 다스릴 수 있어야 분노할 일이 있어도 참아내며 스스로 해결하는 힘을 기를 수 있는 것이다.
결국, 청렴하기 위해선 지나친 사적 욕심을 버리고 자기를 다스릴 줄 아는 데서 시작해야 거센 바람에도 흔들리지 않듯 주위 환경에 휘둘리지 않을 것이다.
청렴은 개인 기업 국가의 핵심 경쟁력
세익스피어의 '베니스의 상인'이라는 희곡을 보면 못된 유대인 고리대금업자를 재판관이 통쾌하게 혼내 주는 장면이 나온다. 고리대금업자는 채무자의 살 1파운드를 요구하지만 재판관은 피 한 방울도 흘리지 않고 1파운드의 살을 가져가라고 판결한 것이다. 그러나 이 판결이 끝난 후 이어지는 장면은 더욱 흥미롭다.
채무자는 재판관의 명판결에 감사해 하면서 10Kg 정도의 금을 사례금으로 지급하려 한다. 재판관은 이를 사양하지만 그 대신에 채무자가 가지고 있던 반지를 요구한다. 재판관의 이런 행위를 부패라고 볼 수 있을까? 세익스피어는 ‘수고비’와 ‘성의 표시’라는 용어를 사용했지만 뇌물이라는 말은 쓰지 않은 것을 보면 부패라고 보지는 않은 듯하다. 하지만 오늘날의 관점에서 보면 이러한 행위는 부패로 볼 여지가 충분히 있다.
위의 사례는 우리나라에서 '공직 부패란 과연 무엇일까?'라는 질문을 던지게 만든다. 먼저 우리나라의 부패 정도를 측정한 각종 지표들을 살펴보기로 하자. '국제투명성기구'의 2013년 '부패인식지수'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55점으로 177개국 중 46위이다. 2010년 39위를 차지한 이후 3년 만에 7계단 떨어졌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가입한 34개국 중에는 27위로 하위권을 벗어나지 못했다.
또 국민권익위원회가 2013년 시행한 부패인식도 조사 결과를 보면 국민의 54.3%가 "공직사회는 부패했다"고 대답했다. 이 조사 결과는 지난 10년 간 큰 변화 없이 그대로 유지돼 왔다. 이것은 우리나라 국민들이 공직사회가 부패했다고 인식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반면 국제투명성기구에서 2013년 국내 1,500명을 대상으로 뇌물 제공 경험을 조사한 '국제부패지수'에 따르면 5% 미만만이 "뇌물 제공 경험이 있다"고 응답했다.
이는 전 세계 평균인 25%보다는 매우 낮은 수치이다. 국민권익위의 조사에서도 뇌물 제공 경험이 있는 시민의 비율 역시 매우 낮으며 공무원의 경우 "공직사회가 부패했다"고 응답한 비율은 3% 미만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것은 실제 부패 경험은 크지 않음을 보여 준다고 할 수 있다.
공직사회 윤리에 대한 시민들의 기대 수준 높아져
이처럼 공직부패에 대한 인식과 실제 경험 간의 차이, 그리고 시민과 공무원의 인식 차이는 우리나라 공직부패 문제 해결을 위한 많은 시사점을 던져 준다.
첫째, 시민들의 공직사회에 대한 윤리적 기대 수준이 매우 높아졌다는 점이다. 뇌물을 받거나 불법행위를 하는 고전적 부패의 개념을 넘어서 투명하고 공정하게 정책을 만들고 시민을 위해 봉사하는 행정서비스를 제공하는 수준의 공직윤리를 기대하고 있는 것이다. 즉 공직자들에 대하여 청렴(integrity)의 윤리를 기대하면서 직무 관련성이나 대가성이 없는 알선·청탁 행위도 부정한 행위로 간주하는 국민들이 늘어나고 있다.
둘째, 공직자의 청렴에 대한 높아진 기대 수준은 강력한 법과 제도에 따른 처벌 중심의 반부패 정책의 한계를 보여 주고 있다. 정부는 지난 20년 동안 공직자 재산공개, 금융실명제, 부패방지법 제정, 공무원행동강령 제정, 부패방지위원회(현 국민권익위원회) 설치, 공익신고자보호제도 도입 등 무수히 많은 법과 제도를 시행하였고 나름대로 결실을 거두어 왔다. 하지만 공직자들의 청렴에 대한 획기적인 인식의 전환이 없이는 윤리적 기대 수준이 높아진 국민과 공직자의 인식 차이는 좁혀지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셋째, 공직자의 청렴에 대한 인식의 전환은 공직의 본질적 가치에 대한 성찰에서 출발할 필요가 있다. 최근 정년 보장, 여유로운 시간, 금전적 보상 등과 같은 외재적인 동기 때문에 공직을 선택하는 대학생들이 늘어나고 있다. 다산 정약용은 목민심서 율기(律己)편에서 “청렴은 지방관(수령)의 본래 직무로 모든 선(善)의 원천이며, 모든 덕(德)의 근본”이라고 하였다. 공직이라는 자리가 국민을 위해 봉사하는 어려운 자리라는 사실을 망각하고 직업 안정, 명예, 부를 달성할 수 있는 방편으로 공직을 선택하는 사람들에게 시민들이 존경과 신뢰를 보내기는 쉽지 않다.
넷째, 청렴이 공직자의 핵심적인 가치라는 공직자의 인식 전환 못지않게 민간의 부패에 대한 반성 역시 필요하다. 뇌물과 청탁을 받는 공직자의 다른 한편에는 이를 제공하는 기업인들과 시민 역시 존재한다. 국민권익위원회가 조사한 2010년도 청소년 부패인식도 조사 결과에 따르면 “불법으로 10억 원을 주면 감옥을 가더라도 받겠다”라고 응답한 비율이 무려 21%나 되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성숙한 시민의식이 존재하지 않는 사회에서 부정부패는 공무원만의 문제가 아니라 시민사회 전체의 문제이다.
청렴은 불편한 게 아니라 경쟁력이 된다.
다섯째, 청렴은 불편하고 힘든 것이 아니라 이제 경쟁력이 되고 있다. 다산은 “욕심이 큰 사람은 반드시 청렴하려 한다. 사람이 청렴하지 못한 것은 그 지혜가 짧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국내적으로는 관행에 따라 불법적으로 업무를 처리하다가 곤욕을 치르고 있는 한국수력원자력의 사례가 그렇고, 각종 인사 청문회에서 과거의 불법행위로 곤욕을 치르고 있는 사회 지도층의 사례가 그렇다. 국제적으로도 유엔의 반부패협약이 170여 개 국가에 의해 비준되면서 리베이트와 뇌물을 경쟁력으로 생각하던 다국적 기업들이 점점 더 설 자리를 잃고 있다.
부패의 영어 어원은 함께(cor)와 파멸하다(ruptus)가 결합된 말이다. 한자로 부패는 썩어서 무너져 내린다는 의미이다. 부패는 나라를 파멸하게 할 뿐 아니라 개인이 이루어낸 온갖 공적도 무너뜨리게 된다. 명재상으로 칭송받던 황희 정승도 세종실록에 기록된 뇌물수수, 매관매직 등의 비리가 밝혀지면서 최근에 비판을 받기도 한다. 다시 다산은 말한다. “뇌물은 누구나 비밀스럽게 주고받지만, 한밤중에 한 일도 아침이면 드러난다.”
싱가포르에서는 뇌물사건에 연루된 공무원에 대해서 그 실명과 얼굴을 신문을 통해 공개하고 이를 엄히 처벌함으로써 사회적 처벌과 법적 처벌을 함께 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청렴하지 못한 공직자는 언젠가는 받게 될 역사적, 사회적, 법적 처벌의 무거움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이러한 점들을 고려한다면 청렴은 개인과 기업, 국가의 핵심적인 경쟁력의 하나라고 할 수 있다.
우리 사회의 부정부패를 척결하지 않고는 선진국으로 나아갈 수 없다. 데일리한국이 지난 8월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우리나라가 선진국이 되기 위해 어떤 개혁이 가장 필요한가?'라고 질문해 두 가지씩 꼽으라고 한 결과 '부정부패 척결'이라고 대답한 사람이 37.2%로 '정치개혁'(43.0%)에 이어 두 번째로 많았다. 공직사회와 시민사회의 부정부패를 척결하고 청렴한 사회를 만들어야 우리의 국격을 높일 수 있다.
마지막으로 시민사회는 공직자의 청렴에 대해 극단적인 관점도 경계해야 된다. 사람에 대한 평가는 '그 사람이 저지른 잘못에 바탕을 두는' 부정적 접근과 '그 사람이 성취한 업적에 바탕을 두는' 긍정적 접근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일부 부패한 공직자의 문제를 가지고 공직사회 전체를 부정적으로 보고 정부를 불신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맹자의 진중자(陳仲子) 편에 보면 진중자는 형의 녹을 불의하다고 하여 먹지 않고, 형의 집을 의롭지 않은 집이라고 해서 살지 않았으며 지나치게 결백한 삶을 살았다. 이에 대해 맹자는 조그마한 결백을 위해 모든 유혹을 거부하는 진중자의 청렴은 지렁이의 청렴이지 사람의 청렴으로 보기 어렵다고 했다.
공직사회가 우리나라에 기여하고 있는 것을 전면 부정한 채 도덕적 근본주의에 입각하여 관료 때리기를 계속하게 되면 진정한 청렴이 아니라 형식적인 청렴에 그칠 수 있다. 우리는 '베니스의 상인'의 예처럼 무엇을 청렴으로 볼지에 대해 세대 간, 계층 간 인식의 차이가 있을 수 있음을 인정하면서 공직자와 시민의 청렴 수준을 높여가는 노력을 함께 해나가야 할 것이다.
▶️ 於(어조사 어, 탄식할 오)는 ❶상형문자로 扵(어)의 본자(本字), 于(어)는 간자(簡字)이고, 烏(까마귀 오)의 옛 글자의 약자이다. 까마귀의 모양을 본떠, 음을 빌어 감탄사, 관계, 비교를 나타내는 어조사로 쓰인다. ❷상형문자로 於자는 '~에'나 '~에서'와 같은 어조사로 쓰이는 글자이다. 於자는 方(모 방)자와 仒(구결자 어)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仒자는 한문 문장에 구두점을 찍는 용도로 쓰이는 글자로 아무 의미도 지니지 않았다. 게다가 於자는 方자와는 아무 관계가 없다. 於자의 금문을 보면 烏(까마귀 오)자에 仒자가 결합하여 있었기 때문이다. 於자는 본래 까마귀가 내는 소리에 빗대어 '아아'라는 뜻으로 만들어진 글자였다. 그러나 본래의 의미는 얼마 쓰이지 않은 채 지금은 다양한 '어조사'로만 쓰이고 있다. 烏자는 해서에서부터 方자로 바뀌었다. 그래서 於(어)는 (1)한문 투의 문장에서 장소를 표시하는 말이 얹히어에서의 뜻을 나타내는 말 (2)성(姓)의 하나 등의 뜻으로 ①어조사(~에, ~에서) ②기대다, 의지하다 ③따르다 ④가다 ⑤있다, 존재하다 그리고 ⓐ탄식하다(오) ⓑ아아(감탄사)(오) ⓒ까마귀(오)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까마귀 오(烏)이다. 용례로는 이제야 또는 여기에 있어라는 어시호(於是乎), 마음속 또는 주로 ∼에 꼴로 쓰이는 어심(於心), 벌써나 어느새는 어언(於焉), 가운데가 되는 정도라는 어중(於中), 바둑판에서 배꼽점을 중심으로 한 부분을 어복(於腹), 거의 중간쯤 되는 데를 일컫는 말을 어중간(於中間), 부인이 예장할 때 머리에 얹는 다리로 만든 커다란 머리를 일컫는 말을 어유미(於由味), 어 다르고 아 다르다는 뜻으로 같은 내용의 말이라도 말하기에 따라 사뭇 달라짐을 일컫는 말을 어이아이(於異阿異), 이렇게 하거나 저렇게 하거나 어쨌든을 일컫는 말을 어차어피(於此於彼), 어느 사이인지도 모르는 동안에를 일컫는 말을 어사지간(於斯之間), 썩 흡족함을 일컫는 말을 어량족의(於良足矣), 자기 분수에 만족함을 일컫는 말을 어분족의(於分足矣), 온갖 일을 일컫는 말을 어천만사(於千萬事), 그때를 한창으로 함을 이르는 말을 어사위성(於斯爲盛), 그것으로 만족함을 일컫는 말을 어사족의(於斯足矣), 알지 못하는 동안에 어느덧을 일컫는 말을 어언지간(於焉之間), 푸른 색이 쪽에서 나왔으나 쪽보다 더 푸르다는 뜻으로 제자가 스승보다 나은 것을 비유하는 말을 청출어람(靑出於藍), 제나라와 초나라 사이라는 뜻으로 약한 자가 강한 자들 사이에 끼여 괴로움을 받음을 이르는 말을 간어제초(間於齊楚), 가마솥 속에서 논다는 뜻으로 생명이 매우 위험한 상태에 놓여 있음을 이르는 말을 유어부중(游於釜中), 지극히 선한 경지에 이르러 움직이지 않는다는 뜻으로 사람은 최고의 선에 도달하여 그 상태를 유지함을 이상으로 해야 함을 이르는 말을 지어지선(止於至善), 즐거움은 언제나 걱정하는데서 나온다는 말을 낙생어우(樂生於憂), 뭍에서 배를 민다는 뜻으로 고집으로 무리하게 밀고 나가려고 함을 이르는 말을 추주어륙(推舟於陸), 혀가 칼보다 날카롭다는 뜻으로 논봉의 날카로움을 이르는 말을 설망어검(舌芒於劍), 백성은 신의가 있을 때에 안정된다는 뜻으로 백성은 신의에 의해서만 잘 다스려진다는 말을 민보어신(民保於信), 먼저 곽외부터 시작하라는 뜻으로 가까이 있는 사람이나 말한 사람부터 시작하라는 말을 선시어외(先始於隗), 스스로 목매어 도랑에 익사한다는 뜻으로 개죽음을 비유해 이르는 말을 경어구독(經於溝瀆) 등에 쓰인다.
▶️ 陵(언덕 릉)은 ❶형성문자로 뜻을 나타내는 좌부변(阝=阜; 언덕)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글자 夌(릉)으로 이루어졌다. 큰 언덕의 뜻이다. 음(音)이 靈(령)과 비슷하므로 신령을 모신 작은 언덕, 능의 뜻이 되고 또 凌(릉)과 통하여 능가하다의 뜻으로 쓰인다. ❷상형문자로 陵자는 '언덕'이나 '무덤', '오르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陵자는 阜(阝:언덕 부)자와 夌(언덕 릉)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그런데 갑골문에서는 단순히 언덕 위로 오르는 사람만이 그려져 있었다. 그래서 陵자의 본래 의미는 '오르다'였다. 하지만 후에 陵자는 높은 언덕을 뜻하게 되었고 소전에서는 발을 그린 夊(천천히 걸을 쇠)자가 더해지면서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그래서 陵(릉)은 ①큰 언덕 ②능, 무덤 ③가벼이 여기다 ④업신여기다 ⑤범(犯)하다 ⑥넘다 ⑦오르다 ⑧불리다 ⑨물에 담그다 ⑩능이하다(凌夷; 차차 쇠하다) ⑪짓밟다 ⑫험(險)하다,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언덕 구(丘), 언덕 애(厓), 언덕 원(原), 언덕 구(坵), 언덕 파(坡), 언덕 강(堈), 언덕 안(岸), 언덕 강(崗), 언덕 애(崖), 언덕 구(邱), 언덕 판(阪), 언덕 아(阿), 언덕 고(皐), 언덕 부(阜), 밭두둑 롱(壟), 메 산(山), 큰 산 악(岳),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물 하(河)이다. 용례로는 능과 묘를 일컫는 말을 능묘(陵墓), 능을 지키는 벼슬아치를 능관(陵官), 능이 있는 곳을 능소(陵所), 임금이 능에 거동함을 능행(陵幸), 능의 이름을 능호(陵號), 능에 딸려 있는 논을 능답(陵畓), 능을 만들거나 고치는 역사를 능역(陵役), 침범하여 넘음을 능월(陵越), 업신여기어 깔봄을 능멸(陵蔑), 남을 업신여기어 욕보임을 능욕(陵辱), 파도를 헤침이나 파도 위를 건넘을 능파(陵波), 언덕이나 나직한 산을 구릉(丘陵), 임금의 묘를 왕릉(王陵), 산과 언덕을 일컫는 말을 산릉(山陵), 언덕이나 작은 산 따위를 강릉(岡陵), 옛 능을 일컫는 말을 고릉(古陵), 능을 받들어 보살핌을 봉릉(奉陵), 높은 언덕이 변하여 깊은 골짜기가 되고 깊은 골짜기가 높은 언덕으로 변한다는 뜻으로 세상일이 극심하게 뒤바뀜을 이르는 말을 능곡지변(陵谷之變), 높은 지위에 오르고자 하는 욕망을 일컫는 말을 능운지지(陵雲之志), 머리 몸 손 발을 자르는 극형을 일컫는 말을 능지처참(陵遲處斬), 이 세상을 떠난 별천지를 이르는 말을 무릉도원(武陵桃源), 아랫사람이 윗사람을 능가하여 윗사람의 권위가 땅에 떨어진다는 뜻으로 세상이 어지러움을 이르는 말을 하릉상체(下陵上替) 등에 쓰인다.
▶️ 仲(버금 중)은 ❶형성문자로 뜻을 나타내는 사람인변(亻=人; 사람)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中(중)으로 이루어졌다. ❷회의문자로 仲자는 ‘버금’이나 ‘중간’이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仲자는 人(사람 인)자와 中(가운데 중)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中자는 ‘가운데’나 ‘중간’이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仲자는 이렇게 ‘중간’이라는 뜻을 가진 中자에 人자를 더한 것으로 ‘중간사람’이라는 뜻으로 만들어졌다. 仲자는 본래 형제 중에 ‘둘째’를 뜻하기 위해 만든 글자였다. 형제가 많은 집안에서는 둘째가 형과 아우를 중재하는 역할을 한다. 그래서 지금의 仲자는 ‘중간’이나 ‘중재하다’라는 뜻으로 더 많이 쓰이고 있다. 그래서 仲(중)은 맏이와 막내의 사이에 태어난 아이의 뜻으로 ①버금(으뜸의 바로 아래) ②둘째 ③가운데, 중간,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버금 아(亞), 버금 부(副), 버금 차(次)이다. 용례로는 둘째형을 중형(仲兄), 제3자가 당사자 사이에 들어 분쟁을 조정하여 해결하는 일을 중재(仲裁), 제3자로써 두 당사자 사이에서 어떤 일을 주선하는 일을 중개(仲介), 가을이 한창일 때라는 뜻으로 음력 8월을 달리 이르는 말을 중추(仲秋), 중간에서 혼인이 이루어지도록 하는 일을 중매(仲媒), 물품이나 권리 등의 사고파는 일을 매개해 주고 영리를 얻는 일을 중매(仲買), 남의 둘째 형을 높여 일컫는 말을 중씨(仲氏), 둘 사이에서 일을 주선하는 사람을 중보(仲保), 둘째 아버지를 중부(仲父), 중재하는 사람을 중재인(仲裁人), 상거래의 중개를 하는 사람을 중개인(仲介人), 다른 사람의 의뢰를 받고 상행위를 대리하여 그에 대한 수수료를 받는 일을 전문으로 하는 사람을 중개사(仲介士), 타인을 위한 상행위의 대리 또는 중개를 하여 생기는 수수료의 수득을 목적하는 영업을 중개업(仲介業), 국제 분쟁을 중개하는 제삼국을 중개국(仲介國), 국제간의 쟁의를 중재하는 중립적인 나라를 중재국(仲裁國), 중개한 데 대한 삯을 중개료(仲介料), 중매를 업으로 하는 상인을 중매인(仲買人), 중매를 업으로 하는 상인을 중매상(仲買商), 중보를 맡아 하는 사람 곧 그리스도를 중보자(仲保者), 중추의 맑고 밝은 달을 중추월(仲秋月), 음력 팔월 보름의 좋은 날이라는 뜻으로 추석을 달리 이르는 말을 중추가절(仲秋佳節), 누구를 형이라 아우라 하기 어렵다는 뜻으로 형제인 장남과 차남의 차이처럼 큰 차이가 없는 형세를 일컫는 말을 백중지세(伯仲之勢), 형제의 차례를 나타내는 말로 伯은 맏이 仲은 둘째 叔은 셋째 季는 막내를 일컫는 말을 백중숙계(伯仲叔季), 공자가 다시 태어났다는 뜻으로 공자에 버금갈 정도로 현명함을 이르는 말을 중니재생(仲尼再生), 짝을 지어 다니며 직업적으로 중매를 하는 사람 또는 그런 중매를 일컫는 말을 쌍동중매(雙童仲媒) 등에 쓰인다.
▶️ 子(아들 자)는 ❶상형문자로 어린 아이가 두 팔을 벌리고 있는 모양을 본뜬 글자로 아들을 뜻한다. 지금의 子(자)라는 글자는 여러 가지 글자가 합쳐져 하나가 된 듯하다. 지지(地支)의 첫째인 子와 지지(地支)의 여섯째인 巳(사)와 자손의 뜻이나 사람의 신분이나 호칭 따위에 쓰인 子가 합침이다. 음(音)을 빌어 십이지(十二支)의 첫째 글자로 쓴다. ❷상형문자로 子자는 '아들'이나 '자식'이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子자는 포대기에 싸여있는 아이를 그린 것이기 때문에 양팔과 머리만이 그려져 있다. 고대에는 子자가 '아이'나 '자식'이라는 뜻으로 쓰였었다. 그러나 중국이 부계사회로 전환된 이후부터는 '남자아이'를 뜻하게 되었고 후에 '자식'이나 '사람', '당신'과 같은 뜻이 파생되었다. 그래서 子자가 부수로 쓰일 때는 '아이'나 '사람'이라는 뜻을 전달하게 된다. 그래서 子(자)는 (1)아주 작은 것을 나타내는 접미어 (2)신문(新聞), 잡지(雜誌) 따위 간행물(刊行物)의 어느 난을 맡은 기자(記者)가 자칭(自稱)할 때 쓰는 말 (3)십이지(十二支)의 첫째 쥐를 상징함 (4)자방(子方) (5)자시(子時) (6)글체에서, 그대의 뜻으로 쓰이는 구투(舊套) (7)글체에서, 아들의 뜻으로 쓰이는 말 (8)민법상에 있어서는 적출자(嫡出子), 서자(庶子), 사생자, 양자(養子)의 통틀어 일컬음 (9)공자(孔子)의 높임말 (10)성도(聖道)를 전하는 사람이나 또는 일가(一家)의 학설을 세운 사람의 높임말, 또는 그 사람들이 자기의 학설을 말한 책 (11)자작(子爵) 등의 뜻으로 ①아들 ②자식(子息) ③첫째 지지(地支) ④남자(男子) ⑤사람 ⑥당신(當身) ⑦경칭(敬稱) ⑧스승 ⑨열매 ⑩이자(利子) ⑪작위(爵位)의 이름 ⑫접미사(接尾辭) ⑬어조사(語助辭) ⑭번식하다 ⑮양자로 삼다 ⑯어리다 ⑰사랑하다 따위의 뜻이 있다.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여자 녀/여(女), 어머니 모(母), 아버지 부(父)이다. 용례로는 아들과 딸의 높임말을 자녀(子女), 며느리 또는 아들의 아내를 자부(子婦), 아들과 사위를 자서(子壻), 아들과 손자 또는 후손을 자손(子孫), 아들과 딸의 총칭을 자식(子息), 남의 아들의 높임말을 자제(子弟), 십이시의 첫째 시를 자시(子時), 밤 12시를 자정(子正), 새끼 고양이를 자묘(子猫), 다른 나라의 법률을 이어받거나 본떠서 만든 법률을 자법(子法), 모선에 딸린 배를 자선(子船), 융통성이 없고 임기응변할 줄 모르는 사람을 일컫는 말을 자막집중(子莫執中), 자애로운 어머니의 마음을 일컫는 말을 자모지심(子母之心), 듣고 본 것이 아주 좁고 고루한 사람을 일컫는 말을 자성제인(子誠齊人), 자식은 아비를 위해 아비의 나쁜 것을 숨긴다를 이르는 말을 자위부은(子爲父隱), 여자가 친척 아닌 남자를 일컫는 말을 외간남자(外間男子), 오륜의 하나로 아버지와 아들 사이의 도는 친애에 있음을 이르는 말을 부자유친(父子有親), 효자는 날을 아낀다는 뜻으로 될 수 있는 한 오래 부모에게 효성을 다하여 섬기고자 하는 마음을 이르는 말을 효자애일(孝子愛日), 풀잎 끝의 이슬 같은 천자라는 뜻으로 덧없는 대장으로 강도의 수령을 뜻하여 일컫는 말을 초두천자(草頭天子), 군자의 세 가지 즐거움이라는 뜻으로 첫째는 부모가 다 살아 계시고 형제가 무고한 것 둘째는 하늘과 사람에게 부끄러워할 것이 없는 것 셋째는 천하의 영재를 얻어서 교육하는 것을 이르는 말을 군자삼락(君子三樂), 죽은 자식 나이 세기라는 뜻으로 이미 지나간 쓸데없는 일을 생각하며 애석하게 여김을 일컫는 말을 망자계치(亡子計齒), 나라를 어지럽게 하는 신하와 어버이를 해치는 자식 또는 불충한 무리를 일컫는 말을 난신적자(亂臣賊子) 등에 쓰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