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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사 왜 이순신장군을 전라좌수사로 임명하였습니까?
종필 추천 0 조회 1,646 12.03.02 09:19 댓글 26
게시글 본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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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12.03.02 09:48

    첫댓글 그런데 아무리 이순신 장군이 경상 우수사나 좌수사가 되더라도 왜놈들 1진 막기는 힘들지 않았을까요? 지형이 유리한것도 아니고 수적으로 우세한것도 아니니
    하지만 무기랑 함선 침몰시키고 도주한 원레기보단 낫겠지만 말이죠

  • 12.03.02 09:57

    그런데 확실히 경상도수군이 병신이긴 했어요. 원래라면 메뉴얼대로 부산진에서 농성하면서 시간 끄는 사이에 좌수사 박홍이 수군 집합시켜서 거꾸로 역포위해서 적을 공격해야하는데 이새끼는 머뭇거리다 부산진 함락되니까 달랑 "부산진이 함락되었습니다" 장계 한장 올리고 토껴버리니... ㅡ.ㅡ 적어도 메뉴얼대로 제대로 싸웠더라면 지더라도 내륙지방에 제대로된 방어선을 구축할 시간이라도 벌었을텐데...

  • 12.03.02 10:04

    그럼 경상좌수사가 이순신이였으면 부산진은 함락 되긴 커녕 오히려 역정벌 나갔을것 같네요 ㅋㅋ

  • 12.03.02 12:09

    상륙하고 부산포 날라가는 건 막을 수 없죠.
    대신 똥침을 맛깔나게 날려서 뒷통수가 근질거리게 해 북상을 못하게 하거나 아니면 동래성에 결집해(조선의 1차 방어선은 동래성이였습니다. 부산진은 최전방 초소지 방어선은 아니죠.) 올라갈때 애로사항을 꽃피게 만들 수는 있겠지요.

  • 12.03.02 09:51

    님이 말한대로 너무나 파격승진이었기 때문이죠. 종6품 현감에서 채 몇개월 사이에 군수, 첨사, 수군절도사로 승진했으니 삼사에서는 당연히 비리의혹, 특혜의혹으로 난리가 났습니다. 그런데 왕이 그 유명한 "나는 순신을 잘 안다. 공연한 말로 그를 더 이상 흔들지말라"라고 답하면서 무마시킵니다. 그리고 같은 정3품 수군절도사라도 경상, 전라 그 외에 충청 경기 모두 그 규모나 관할권한이 다르지요. (경상이 제일 큽니다) 우리야 충무공이 대단한걸 알지만 그때 사람들이야 기껏해야 오랑캐 몇 번 막고 한 번은 패할뻔하기 까지해서 백의종군까지 한 현감나부랭이를 떡하니 남해의 1/4을 지키는 군대의 우두머리로 삼았으니 ㅎㅎ..

  • 12.03.02 09:52

    당시로서는 전라도 절도사로 임명한것도 무리수로 보였을텐데 경상도는 거의 불가능했죠 ㅋㅋ

  • 12.03.02 10:06

    전라도는 나름 다 발탁승격이었던듯 우수사 이억기도 보면 30대 초반의 지금으로 보면 완전 애송이 ㄷㄷㄷ

  • 12.03.02 12:29

    근데 이억기는 종친 버프라... ㅋㅋ. 그리고 전라 우수사는 청요직이 아니었죠...

  • 12.03.02 12:51

    엇 종친버프면 왕족이었나요? 그리고 청요직은 뭐죠?

  • 12.03.02 15:02

    이억기는 전주이씨이지요. 그리고 청요직은 고관대작으로 가는 직위,출세가 보장된 직위를 뜻합니다. 예를 들어 문관의 정6품 이조정랑이 청요직중 하나지요.

  • 12.03.02 13:17

    ㄲㄲ 후임자를 놔두고 키배와 현피가 일어났던 이조정랑 말입니까 ㄲㄲㄲㄲ

  • 12.03.02 14:32

    ㅎㅎ 전랑자리가 당하관이긴해도 참판바로 밑인데다 이조전랑은 실제 인사권에 영향력을 깨나 미치는 자리라 청요직 중의 청요직이엇죠

  • 12.03.02 12:52

    어떻게 보면 전라좌수사로 있었던게 다행일수도... 경상좌수사로 일본군 선봉에 타격을 입히더라도 2군 가토, 3군 구로다 , 4군 시마즈 계속해서 오는데 결국 물량이 안되서 막지 못하고 장렬하게 전사라도 해서 이후는 막을사람이 없어 그냥 조선 멸망해버렸다가 되면 오히려 최악의 결과일듯 이순신장군 성품으로 봐서는 충분히 죽을때까지 싸우고도 남으실분

  • 12.03.02 18:51

    사실 경상도 쪽 바다는 조선수군에게 불리하고 일본수군에게 유리한 해역이라 원균이 싸움을 피한것 까지는 이해가 되는데.... 문제는 보존도 못하고 버리고 지만 튀었다는게 문제죠 ㄷㄷ.... 이순신 장군이 경상우수사나 좌수사가 되더라도 초전에 막기는 힘들었을겁니다. 다만 전력을 이끌고 전라 우수영이나 좌수영쪽으로 이동하셔서 해군에의 한 반격을 좀 더 이른시기에 개시하셨겠죠.

  • 12.03.03 03:34

    음....
    아무리 이순신이였던들 .... 발렸을듯 ㅠㅠ

  • 12.03.03 10:24

    당시 조선 정부는 이전에 발생했던 왜란들이 풍요로운 전라도 지역에 집중되어 있었기 때문에 왜군이 제주도, 전라도 지역으로 공격할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 12.03.03 11:09

    왜구와 일본정규군을 구분못하는거 보면 얼마나 당시 조정이 정세에 어두웠나 알수 있네요

  • 12.03.03 15:40

    아뇨 신숙주의 해동제국기등을 보면 일본에 대한 이해가 어느정도 깊었습니다. 사실 고려말부터도 일본이 무로마치 막부 아래로 통일되지 못했다는 것을 인식하고 '왕 대 왕'으로 외교가 행해지는 동아시아의 관례와는 달리, 일본 지역 유력자들에게도 직접 사신을 보내서 교섭을 행했습니다. (물론 무로마치 막부에 대해서도 외교는 했지만) 다만, 이전까지 일본은 '약탈'을 하러 왔지 '정복'을 하겠다고 한 적이 없었죠.(뭐 그네들의 신공황후의 신라정벌은 그냥 웃어넘기고요) 당연히 '부유한' 곡창지대로 공격이 올 것으로 예상하는 것이 상식적이었죠.

  • 12.03.03 15:44

    고려말 왜구는 만단위까지 바라보는 거대 세력이였습니다. 그런 세를 가지고도 전라도를 노렸으니 당연히 이번에도 전라도쪽이 아닐까 생각하는 건 당연한 일입니다.

  • 12.03.04 10:26

    찰목합//애초에 중앙집권화된 조선과 달리, 오히려 일본이야 말로 왜구와 정규군 구분이 없습니다. 아니, 애초에 정규군 자체가 없다고 할 수 있는 집단입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 휘하의 영주들의 군대모임입니다. 전형적인 중세국가의 모습이고요.

  • 12.03.03 19:53

    9급을 4급으로 오렸는데 4급중에서도 짱자리 줄수잇겟나요 ㅋㅋ

  • 12.03.04 19:41

    확실히 당시 5품계를 한 번에 뛰어 넘는 벼락인사를 한 의도가 궁금하네요. 반대도 무진장 심했다던데. 선조의 예측력인가요 아님 이순신이 줄을 잘 탄건가요?
    요즘 시선으로 보면 딱봐도 낙하산 인사인데 ㄷㄷ

  • 12.03.04 23:30

    당시 일본의 침입을 예상했기 때문에 북방에서 조금 이름난 장수들을 발탁해서 남쪽방어선을 보강했고 여기에는 선조의 강력한 후원이 있었기때문에 가능했습니다.

  • 12.03.05 07:30

    아무리 정세가 위급하다지만 5계급 상승은 정말 파격이고 지금의 군계급에 대입하면 말단 대위가 중장으로 뛰는 것과 같은 파격이죠.반대가 극심했던 것도 당연한 일입니다.그런데 이순신의 부임은 좀 정치적인 부분이 많이 관여된 것 같습니다.임명했다 취소했다 인사가 거의 파행이라 할 정도로 오락가락했으니까요.그와중에도 결국 전라좌수사로 부임될 수 있었던 것은 유성룡의 힘이 제일 컸고 그 다음이 유성룡을 믿은 선조겠죠.이런 식의 인사는 그 당시 당파싸움의 한 면이라고도 볼 수 있지 않을까요.

  • 12.03.05 09:00

    전쟁준비의 일환으로 볼 수 있습니다. 북방에서의 활동으로 인해 백의종군도 치르고 고생도 하셨지만 동시에 조정에서 '이순신 저사람 용맹하고 참 괜찮은 장수인듯' 하는 인식을 사게 해 줬지요. 임란 직전엔 선조가 직접 관직 승진을 관리한 게 아닌가 싶은 생각을 주기도 하고요.

  • 12.03.05 10:03

    북마크 / 그렇지만 꾸준히 새로운 인사를 발굴해 주기적으로 물갈이 해주는게 선조의 정치 방식이기도 했지요. 운도 어느정도는 감안해야 할듯합니다. 군수 쪼가리가 갑자기 포스타가 된 건 그때나 지금이나 파격은 파격인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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