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크레인 바퀴에 깔린 산의 신음을 듣던 날 파 던져진 늙은 나무뿌리가 뱀처럼 나를 휘감는 꿈을 꾸었다. 홍수에 곤충들의 집이 부서져 붉은 물결에 둥둥 떠내려가고 있었다. 산의 무릎이 온전히 파헤쳐지고 속살과 힘줄이 깊숙이 드러났지만, 누구도 산의 가슴에 대해 생각해 보지 않는다.
- 새 아파트가 대단지로 들어서면 땅값이 올라가겠지, 로또를 맞았어,
흰 이빨을 드러내고 웃는 얼굴 여럿을 보았다.
교통 편리한 중심가 아파트에 살았다. 자동차 헤드라이트가 밤새워 질주하고 클랙슨 소리를 종일 듣는 날이 잦았다. 깊은 잠을 자지 못했다. 쿵 둔한 소리에 저만치 나가떨어지는 멧돼지의 꿈틀거림 다시 뒤차의 바퀴가 꿈틀거림 위로 지나가는 것을 보았다. 걸레처럼 너털너털한 죽음을 본 후 심장이 빨리 뛰다가 느리게 뛰다가 했다. 귀에 이명이 생겼다. 자동차 엔진소리와 매미 울음소리가 주야로 귀에서 들렸다. 이비인후과에서 기계 소리는 일절 듣지 못하게 했다. 집 안 냉장고 돌아가는 소리까지도 해롭다 했다.
산자락 깊숙이 세운 변두리 아파트를 물색해 이사했다. 차 달리는 소리가 거의 들리지 않는 최대한의 도심의 끝자락, 나로서는 최선의 방법이었고 활동 반경에서 최대한 먼 거리였다. 별의 유전자를 가진 별의 자식이기 전에 내가 동물이나 또는 곤충, 식물의 일부처럼 생각되었다. 결국 산의 파괴범으로 동참한 꼴이 되었지만, 어쨌든 이명은 사라지고 심장이 안정을 찾았다. 산이 은혜를 베푼 것이다.
별의 원소와 우리가 일치한다면 지구가 원 밖으로 우리를 절대 밀어 떨어뜨리지 않으리라 믿어도 될까? 백야 아닌 백야, 눈부신 빛이 꺼지지 않는 빛, 속에 사는 물고기들은 밤이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는 줄 알겠지, 산란의 시기도 짝짓기의 시기도 잃어버릴지 모른다. 모든 시름을 내려놓는 폭신한 밤, 어미 품 같이 아늑한 밤, 가난한 벙어리 엄마는 도로 옆 가로등이 설치되고부터 자기네 밭이 농사가 되지 않는다고 근심한다. 가지도 고추도 두 개의 머리를 가진 기형이 난다는데, 그렇게 슬픈 존재로 만들어도 되는 권리를 우리는 누구에게 부여받았을까?
고압이 윙윙거리는 전선 위에 가지를 얹고 있는 가로수 수척한 몰골이다. 피복이 벗겨진 전선위에 앉아 노는 새, 발가락이 없다. 저리도 위험한 덫이 또 있을까? 그들은 비참함을 우리에게 하소연 하지도 따지지도 않는다. 어느 날 소리 없이 떠나버리는 것으로 답할 것이다.
자연은 고로쇠나무의 눈물, 자연은 사살된 멧돼지의 묘지, 자연은 닭 내장, 돼지 내장이 썩어 흐르는 하천, 포크레인이 제왕처럼 숨통을 옥죄는 곳이 우리의 유일한 별이 라면 유전자의 원소가 같은 우리가 별의 자식이라 말할 수 있을까?
관광객을 실어 나르다가 허리뼈가 내려앉아 죽음을 맞이한 파타야 짐꾼 코끼리, 수컷 병아리는 태어나자마자 분쇄기에 들어가 먼지도 묻지 않는 죽음을 맞이하는데 죽을 때 까지 기억은 노랗게 살아있다고, 우리는 신이 죽은 자리를 대신 차지한 선택받은 천사일까?
꽃을 수정하는 벌이 사라지면 인간도 사라진다는 말이 있다. 벌레도 곤충도 모두 제 몫의 할 일과 책임과 필요성을 지니고 태어난다. 먹이 사슬에서 도태되고 사라지는 것은 자연이 알아서 조절했다. 밀렵이 심한 코끼리가 상아가 없이 태어나기도 하고 인간의 아이들이 속눈썹을 길쭉하게 달고 나와 매연을 피하고자 한다면, 자연이 우리의 분신임을 확인해 주는 것 같지만, 이는 자연에 역행하는 유전자가 변이하는 과정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매장해도 사람보다 더 오래 사는 비닐, 플라스틱, 우리의 첨단 기술이 낳은 질기고 실용적인 걸작품, 세계 아름다운 100대 해수욕장 중 하나인 해변에도 존재감을 여지없이 과시하고 깊은 골짜기 수려한 암석에도 목을 감아 안고 숨통을 죄며 존재감을 드러낸다. 비닐봉지와 나일론 끈의 위력. 생물이든 무생물이든 가리지 않는 살육의 능력, 거대한 플라스틱 산이 강변에도 해변에도 태어났다. 썩지 않는 것들로 배를 채운 돌고래와 바닷새, 플라스틱 빨대를 얼굴에 장식처럼 꽂은 거북, 우리는 우리를 스스로 자해하고 있지나 않은가 생각해 본다.
인간은 돌아 갈 때도 자연에게 전부를 맡긴다. 자연은 죽음까지 발효시켜 부드럽고 푹신한 흙으로 품고 안아준다. 자연은 우리의 영원한 지붕이다.
온실가스로 인한 온난화, 토네이도, 허리케인, 노아의 방주처럼 쏟아지는 빗줄기로 파괴되고 붕괴되는 극지의 사람들과 동물들, 무분별한 개발로 서식지를 잃어 멸종해 가는 동식물들, 지구별은 우리에게 끝없이 SOS를 보내고 있다. 우리는 우리를 더 이상 잃어서는 안 될 것이다. 지구를 연인처럼 껴안고 지키는 만큼 자연은 우리의 튼튼한 지붕이 되어 사랑하고 보호해 줄 것이다.
대구출생 시인시대등단 2021년 대구문화재단 경력 예술인 지원 수혜 대구문인협회회원, 서울사이버대학 문예창작학과 졸업 2021년 시집 『기린과 부츠』 천년의 시작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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