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만에 섬진강 하구 망덕포구에 갔다. 배알도에 다리가 놓이고, 그 다리를 건너며 바라본 남해 바다는 푸르고 푸르다. 2001년에 섬진강 오백 삼십리를 같이 걸었던 공주의 유재열씨는 망더포구 부근 섬진강의 하구를 거닐 때 말했었지. ‘이 바람이 강 바람이디야, 바닷 바람이디야”
그때 나는 그 망덕포구를 다음과 같이 마무리했다.
“드디어 망덕산 너머로 광양제철이 보인다. 얼마나 오랫동안 나는 저 망덕산과 남해바다를 그리워했던가. “아침 태양 아래 커다란 행복이 하늘 가운데서 흔들거린다... 나는 여기서 소위 영광이 무엇인지 이해한다. - 그것은 무한히 사랑하는 권리를 뜻한다. 세상엔 단 하나의 사랑밖에 존재하지 않는다. 여인의 몸을 껴안는다는 것 그것은 하늘에서 바다로 내려오는 신비한 기쁨을 가슴에 껴안는 일이다. 이 삶을 사랑하며 그것을 자유롭게 말하고 싶다. 그렇지만 사람들이 흔히 이야기하듯이 뽐낼 필요는 없다. 만약 뽐낼 것이 있다면 그것은 이 태양, 이 바다, 젊음으로 고동치는 이 가슴, 소금 냄새나는 이 육신, 애정과 영광이 황색과 적색으로 융합되는 이 무한대한 풍경이다.” 알베르 까뮈가 <티파사의 혼례>에서 아침햇살과 푸른 바다를 노래했던 것처럼 강물과 바다가 합류하는 그 지점에서 정신과 육체를 그 푸른 물살 속으로 들이밀고 싶었다. 망덕산 중앙에는 빨간 지붕을 한 팔각정이 세워져 있고, 망덕산은 왜적의 침입을 경계하기 위하여 망을 보았다고 해서 망덩산으로 부른다고 한다. 산 위에 오르면 한려수도의 여러 섬들이 한눈에 들어오고 정상에는 덕석바위가 있다. 20평쯤 되는 덕석을 깔아 놓은 듯 하게 보이는 망덕산의 어딘가에 조정에 나가 천자를 받드는 천자봉조형의 명당이 있다고 알려져 왔고, 그래서 그 앞바다에 천자를 받드는 배알도가 있기 때문에 요즘에도 풍수지리설을 공부하는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질 않는다고 한다.(...)
오백 삼십 리 섬진강 물길은 첫날 보았던 대로 지금도 푸르지만 그 푸른 물이 여기선 사람의 인체 내에 있는 피의 농도와 같다는 짜디짠 바닷물일 따름이다. 하지만 온갖 질곡의 세월과 모진 풍파를 헤쳐 오면서도 기어이 바다에 와 닿은 섬진강은 그 어떤 고난의 세월이 다시 온다고 할지라도 저렇게 푸르게 흘러 올 것임을 나는 믿는다. 프랑스의 시인 발레리(Poul Valery)가 “끊임없이 새로 시작하는 것”이라고 노래했던 바다는 저렇게 출렁거리고 출렁거리는 물결 위로 김지하 시인의 시 한편이 내려앉았다.
바다
김지하 가겠다 나 이제 바다로 참으로 이제 가겠다 손짓해 부르는 저 큰 물결이 손짓해 나를 부르는 망망한 바다 바다로
없는 것 아득한 바다로 가지 않고는 끝없는 무궁의 바다로 가는 꿈 없이는 없는 것 검은 산 하얀 방 저 울음소리 그칠 길 아예 여긴 없는 것
나 이제 바다로 창공만큼 한 창공보다 더 큰 우주만큼 한 우주보다 더 큰 시방세계만큼 한 끝 간 데 없는 것 꿈꿈 없이는 작은 벌레의 아주 작은 깨침도 있을 수 없듯 가겠다
나 이제 가겠다 숱한 저 옛 벗들이 빛 밝은 날 눈부신 물속의 이어도 일곱 빛 영롱한 낙토의 꿈에 미쳐 가차 없이 파멸해 갔듯 여지없이 파멸해 갔듯 가겠다 나 이제 바다로
백방포에서 가겠다 무릉계에서 가겠다 아오지 끝에서부터라도 가겠다 새빨간 동백꽃 한 잎 아직 봉오리일 때 입에 물고만 가겠다
조각배 한 척 없이도 반드시 반드시 이젠 한사코 당신과 함께 가겠다 혼자서는 가지 않겠다 바다가 소리 질러 나를 부르는 소리 소리 소리의 이슬 이슬 가득 찬 한 아침에 그 아침에 문득 일어서 우리 그날 함께 가겠다 살아서 가겠다 죽어 넋이라도 가겠다 아아 삶이 들끓는 바다, 바다 너머 저 가없이 넓고 깊은, 떠나온 생명의 고향 저 까마득한 화염의 바다
가지 않겠다 가지 않겠다 혼자서라면 함께 가 아니라면 헤어져서라면 나는 결코 가지 않겠다
바다보다 더 큰 하늘이라도 하늘보다 우주보다 더 큰 시방세계라도 화염의 바다라도 극락이라도
세월은 강물처럼 흐르고, 그 사이 유재열씨도 김지하 선생님도 먼 곳으로 가셨고, 강물은 여전히 흐르고 있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