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여성시대 겨울소취
내용이 좋아서 가져왔어 참 글을 잘쓰는 작가인 듯
지금 블로그 정리하다
예전에 쓰다 만 글을 발견했는데,
지금까지도 비슷한 내용의 메일이 계속 오기 때문에
이 글로 답변을 드려볼까 합니다.
글이 미완인 점 양해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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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제가 요 몇 년 사이
진로에 대한 고민을 담은 메일을
정말 많이 받았습니다.
쉽게 답장을 드리기 어려운 사안이기도 하고,
단순히 긴 글을 쓸 시간이 없기도 하고,
근본적으로 저한테 자격이 없다는 생각때문에
답변을 거의 못 드렸는데,
오늘은 용기를 내서,
해당 고민을 보내주신 모든 분들께
저의 답변을 적어보고자 합니다.
메일을 주신 분들은
대부분 만화가 지망생분들이지만,
본질적으로는
'안정적인 직업'과
'불안정하지만 꿈꾸는 직업' 중
주로 후자에 속하는 직업에 대한
진로가 고민이라는게 정확하겠지요.
만화가를 포함한 이런 유의 직업들은
도전하는 기간에도 불안하고,
데뷔를 해도 생활이 될지 불안하고,
계속 이 직업을 유지할 수 있을지도 불안한,
그야말로 불안의 늪 같은 직업인데요,
사실 제 경우에는,
만화 지망생 시절부터 지금까지
전혀 아무 생각이 없었고, 지금도 없습니다!
놀랍게도 불안 제로!입니다.
그건 제가
천. 재. 국. 민. 만. 화. 가라서가 아니라,
그냥 정말 아무 생각이 없기 때문입니다.
일단 저는 여러모로
실력이 대단찮은 작가는 아닙니다만,
나름 작가로서 정말 큰 장점이 있다면,
스스로가 별거 아닌 인간이란 걸
전혀 개의치 않는다는 점입니다.
정확히는
제가 그냥 보통의 인간인 게 너무나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세계 인구가 몇십억이고,
그중에 특출 난 천재는 많아야 몇백 명 정도일까요?
물론 반대로 특별히 운이나 재주가 없는 사람도 있겠죠.
하지만 대부분은 그냥 보통 사람이고,
그러니 저도 당연히 그냥 보통 사람이라는 게,
전혀 놀랍거나 슬프거나 실망스럽지 않다는 이야기입니다.
천재는 신이 점찍은 사람이고,
그런 만큼 천재의 생애엔
어떤 임무나 의무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저 보통 인간인 제겐
아무런 의무도 없지요.
그러니 저는 만화를 그리는 행위 자체에서
행복감을 느끼면 그만인 것입니다.
특별한 사람이 아니라서 슬픈 것이 아니라,
평범한 사람이라서 자유로운 것입니다.
많은 분들의 메일을 읽어보면,
이런 류의 직업에 도전했다가 실패했을 경우에 대한
두려움이 크게 느껴지는데요,
일단 그 두려움의 근원이 어디인지부터
생각해 보시는 것이 좋습니다.
자신의 주변에
도전이 실패했을 때
비웃거나 조롱하는 성향의 사람이
존재할 확률도 있고,
자신에게 과도한 기대를 해서
해당 기대치 이하는 상대적으로 깔보고 있다는
신호를 주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내지는 주변에 저런 악의를 가진 사람이 없더라도,
자신을 확실하게 믿고 지지해 주는 사람이 없다면,
그 역시 쉽게 용기를 내기가 어렵습니다.
그래서
저도 마찬가지고,
많은 책이나 강의 등에서
'자기 자신을 스스로 믿어줘야 한다!'
-라는 말을 하는데요,
사실 자기만의 믿음으로 버티기엔,
주변 사람들의 탄탄한 응원을 받는 사람과는
감정적 자원에서 차이가 나는 것은 사실이지요.
하지만 그럼에도 저것이
최후이자 최강의 수단인 것도 사실입니다.
반대로 말하면,
그래도 나만큼은 나를 믿어줄 수 있다는 게,
모든 인간에게 공평하게 나눠진 선물인 것이지요.
그리고 여기에서,
'날 믿는다'라는 것은,
"나는 잘났어! 나에겐 숨겨진 재능이 있어!
나는 반드시 잘 될 거야! 나는 해낼 수 있어!"
가 아니라,
"나는 내가 행복해하는 것을 찾아낼 수 있고,
나는 내가 원하는 만큼 노력할 수 있고,
나는 내가 행복해하는 일을 행복할 때까지만 할 수 있고,
나는 내가 실패하거나 싫어졌을 때, 언제든 다른 일에 도전할 수 있어."
-라는 걸 믿는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도전이라는 것은
자신이 선택할 수 있을 때도 있지만,
운명이 강제로 도전하게 만드는 경우도
비일비재합니다.
피한다고 피할 수 있는 게 아니란 거죠.
1. 가장 잘하면 인정받고 성공하는 경기장.
2. 그냥 내가 행복하면 되는 경기장.
중에 2번을 선택하면 인생이 심플해집니다.
정확히는 1번이 2번의 부속품일 뿐이란 걸 알아야 하죠.
저는
격투기 세계 챔피언도,
대형 로펌의 변호사도,
할리우드 톱스타도,
진심으로 원하지 않습니다.
만화가 아닌 분야에선
무슨 업적과 영광을 누리든,
저한테는 전혀 행복이 아니에요.
그냥 집에서 돈가스 먹고 만화 그리는 게
세계 1위 챔피언 되기보다 행복합니다.
지금은 100세 시대인데요,
만약 50대 시대면 어떻게 사실 건가요?
만약 30대 시대라면?
만약 삶이 1년 남았다면?
남은 시간이 부족하다고 느낄수록,
인생에서 진짜 중요한 게 무엇인지 선명해집니다.
반대로 말해도,
무려 100년이나 살아야 하는데,
적극적으로 행복하게 살지 않으면
인생에서 싫은 부분이 너무 길지 않나요?
물론 젊은 분들은
그냥 그때가 그런 걸 혼란해할 시기인 게 맞습니다.
20대의 선물이 젊음이라면,
20대의 형벌은 불안이지요.
하지만,
자기 스스로가 그냥 보통의 인간이며,
그것이 나 혼자 한 단계 하락한 게 아니라,
사실은 모두가 보통 사람이라는 걸 받아들이고,
보통사람만이 가진 무한한 자유와
가능성을 즐기면 무척 편안해집니다.
보통 사람이란
약하고, 어리숙하고, 잘 모르고, 잘 못하고,
그다지 아는 게 없는 사람입니다.
사실 우린 누구나, 일평생,
거의 모든 면에서 그렇습니다.
저는 만화만 10년 넘게 그렸는데
아직도 만화를 잘 모릅니다.
그러니 다른 분야는 말할 것도 없지요.
말 그대로 만화 하나 겨우겨우 그리고,
그 외에는 그냥 엉망진창인 인간입니다.
그리고 바로 그 대부분 엉망이라는 점이
보통사람의 특징이죠.
세계 운동 1짱이면서, 외모 1짱이면서,
IQ 1짱이면서, 성격도 1짱인 사람은,
요즘엔 만화에도 안 나온답니다.
그럼에도 사람들이 보통사람을 조롱하는 것은,
자기가 잘났고 보통사람이 하찮아서가 아니라,
단지 조롱하는 사람의 내면이 불안하기 때문입니다.
정말 아무 의미도, 가치도 없는 말이지요.
책상에서 연필 떨어지는 소리랑 다를 게 없습니다.
그냥 무의미한 어떤 소음이죠.
그래서
'도전할까요? 말까요?'
라는 질문의 답변은
당연히 '하세요'입니다.
늙은이들이 젊은이들한테
왜 자꾸 도전하라고 하냐면,
95%의 확률로
그냥 무책임해서 그런 게 맞습니다만,
그렇다고 그 말이
아주 틀린 것은 아닙니다.
도전이란 건
마치 실패라는 핸디캡이 따라붙는 것 같지만,
사실은 선명도란 선물이 따라붙는 것입니다.
이게 무슨 말이냐 하면,
만약 자신이 원하는 일에 도전하지 않고,
그냥 다른 직업을 가지게 된다면,
일평생 꿈에 대한 막연한 동경을
등에 업고 살아야 합니다.
기회가 있을 때 꿈에 뛰어들어
자신이 정말 좋은지 싫은지 행복한지 아닌지를
확실하게 확인해야,
자신의 인생에
쓸데없는 미련의 짐이 없습니다.
좋을'수도' 있고,
나쁠'수도' 있다.
를
'난 이게 좋아.'
'난 이게 싫어.'
로 바꾸는 것이죠.
인생이라는 지뢰 찾기 게임에서
그냥 몆 칸 깐 것뿐이에요.
Q : 하지만 그러다가
경제적인 위기를 맞이하면 어쩌죠?
A : 경제적 궁지에 몰려있거나, 몰리게 되면,
일단 경제적 위기를 해결하세요.
위기가 아닐 땐 도전하고,
위기일 땐 잠시 멈추면 됩니다.
그러다 위기가 지나가면
또 도전하면 되죠.
그러다가 질리면
그만두면 됩니다.
이것이 바로 보통인간의 특권인 자유죠.
전 세계 달리기 1등은
올림픽 때 반드시 경기에 나가야 하지만,
랑또는 올림픽 열리든 말든,
동네 놀이터에 놀러 가도 된답니다?
금메달은 없지만 그네는 탈 수 있죠.
랑또에겐 랑또만의 행복이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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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까지 쓰다가 지쳐서 그만둔 것 같은데,
아무튼 대충 뭔 얘기인지 아시리라 믿습니다.
이런 종류의 직업에 뛰어들고 싶은 분들에 한해서
하는 이야기이고,
제 개인적인 견해이자,
그저 지구인 중 한 명의 생각일 뿐이니,
그냥 참고만 하시기를!
그럼 다시 블로그 정리하러
가보겠습니다!!
여러분 왕 사랑!!
우리 존재 화이팅!!!
https://naver.me/FoHUAHN1
첫댓글 너무 좋은 글이다..
나는 나만의 행복이 있어요
랑또여.. 날 왜 울ㄹㅣ시나요
글이 너무 좋다.
랑또 말 잘해 ㅠ
좋은 글
지나가던 보통이 감동 받네요..
너무 철학적으로 좋은글인걸..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