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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여성시대* 차분한 20대들의 알흠다운 공간 원문보기 글쓴이: 하트든말티즈
출처 : 여성시대 하트든말티즈
때는 1464년, 명나라.
정통제가 사망하고 열아홉살의 태자 주견심이 그 뒤를 이어 황제로 즉위함. 이 사람이 성화제임.
황위에 오른 성화제는 태자 시절부터 총애하던 연인 만정아를 황후로 책봉하려고 갖은 애를 썼지만 태후와 대신들은 기를 쓰고 반대함.
그도 그럴 게 만정아는 궁녀였고, 무엇보다 성화제보다 열아홉 살이나 연상이었음. 당시 시대 상을 고려하면 엄마나 다름 없음. 성화제의 어머니이자 정통제의 귀비였던 태후가 만정아보다 두 살 어리니까 그냥 엄마 맞음.
그럼 이 젊은 황제는 왜 엄마 뻘인 궁녀를 그렇게 총애하고 황후로 책봉하려고까지 했을까?
1449년, 토목의 변이라는 사건이 있었음. 쉽게 말하면 몽골이랑 명나라랑 전쟁했는데 명나라가 짐. 진 걸 넘어 명나라의 황제인 정통제가 포로로 잡혀버림.
정통제가 포로로 잡히자 명나라 황실은 당황함. 대신들은 급한 대로 정통제의 이복 동생을 황제로 옹립하고 북경을 사수하는데, 이 동생이 경태제임.
명나라 군대는 이듬해인 1450년에 몽골 군대를 크게 물리 치고 화의를 체결했고, 몽골은 정통제를 아무 조건 없이 석방함. 하지만 명나라 조정에는 이미 어엿한 황제가 있었음. 권력의 맛을 봐버린 경태제는 풀려난 형에게 황위를 돌려주는 대신 이름 뿐인 태상황 직위를 주고 남궁에 유폐시켜버림.
황제가 바뀌었으니 태자도 바뀜. 정통제의 장남이자 미래의 성화제인 주인공은 폐위 당하고 마찬가지로 유폐되는데, 이때 성화제의 나이 세 살이었음.
남궁의 얼마나 사정이 열악했는지 정통제의 황후가 삯바느질을 해야 할 정도였음. 어린 성화제의 목숨도 덩달아 위태로워지는데, 성화제의 할아버지인 선덕제의 후궁이 연민을 느꼈는지 목숨 걸고 어린 성화제를 보살핌.
이후 조정은 정통제 파 vs 경태제 파로 나뉘어 치열하게 대립하고, 경태제가 병으로 앓아누우면서 정통제가 다시 즉위함. 아버지가 황제가 됨에 따라 성화제도 다시 태자가 되는데 이때 성화제의 나이 11살이었음. 즉 세 살부터 열한 살까지 무려 8년을 공포와 혼란 속에 보낸 거임.
만정아는 성화제가 폐태자이던 시절부터 그의 곁을 지켜온 유모였음. 성화제는 유폐에서 풀려난 후에도 (황궁의 엄격한 법도 탓에) 생모와 거의 교류하지 못했는데, 만정아에게 많이 의지하고 애정을 느끼다가 성애적인 감정으로 발전했다고 함. 만정아는 미래의 황제인 태자의 환심을 사면 평생 부귀영화를 누릴 거라고 생각해서 적극적으로 태자를 공략했다고 하고.
이것만 보면 무슨 개소린지 모를 일임.
그래서 명나라 사서를 참고해서 깊게 캐해를(?) 해보면 이럼.
일단 성화제는 상당히 유약한 황제였음. 저런 유년기를 보냈으니 당연함. 낯선 사람 만나는 걸 싫어했고, 경연 때도 말 한 마디를 안 해서 수업을 듣는 건지 안 듣는 건지조차 모를 수준이었음. 당대에는 경연이 끝나면 스승과 식사를 하는 게 관례였는데, 성화제는 “식사하시라” 한 마디 외에는 입을 열지 않을 정도로 유약했음.
반대로 만정아는 여장부 타입이었음. 경국지색 소리 들을 만큼 대단히 아름다운 여인은 절대 아니었고, 사서에 남은 기록에 따르면 용모가 남자 같고 목소리가 큰 타입이었음. 오죽하면 성화제의 생모가 불가사의하다고 표현하며 “대체 그 여자 어디가 그렇게 예뻐서 승은을 많이 내리느냐?” 물어보고 “만정아가 대체 어디가 예쁘냐. 너는 왜 그 여자한테서 헤어나오질 못하느냐?” 책망까지 할 정도.
(심하게 이해가 안 됐나 봄...반복적으로 물어보신 거 보면...)
만정아는 눈치가 빨라서 이런 태자의 비위를 귀신 같이 맞춰줬음. 성화제는 금의위&동창 두 호위 기관으로도 안심을 못 해서 서창을 따로 뒀는데, 유년 시절로 인한 불안감이 컸다고 추측할 수 있음. 사서 중 만정아의 기록을 찾아보면 “풍만하고 근육이 있었다. 매번 황상이 외부로 나갈 때면 전투복을 입고 칼을 차고 좌우에 시립해 있었다.” “황제가 매번 밖으로 나갈 때면 만정아가 무장을 하고 앞장서서 달려갔다.” 라는 구절이 있음.
성화제는 위에 썼듯 부모와 단절당한 채 불안정하기 짝이 없는 어린 시절을 보냈는데, 아마 만정아는 이 시절 태자가 거의 유일하게 의지하고 안정감을 느끼는 상대였던 것으로 추정됨. 위태로운 유년기로 인해 시시때때로 치미는 불안을 해소해줄 수 있는 사람, 즉 일종의 구원 같은 사람.
여하튼!
성화제는 즉위 초기 차분하고 너그러운 황제였지만 만정아 이야기만 나오면 눈깔이 돌아가곤 했음....하지만 아무리 황제라도 만정아를 황후로 책봉하는 건 에바였음.
열아홉살과 서른여덟살은 현대 기준으로 봐도 이해하기 힘든 나이차이임. 더군다나 만정아는 성화제의 생모인 태후보다 나이가 많음. 이거슨...기묘한 패륜...
결정적으로, 성화제에겐 자식이 없었음. 성화제는 명나라 최초의 서자 출신 황제이기도 해서 정통성을 확보하는 게 시급했는데, 서른여덟살은 현대 기준으로도 노산임. 황제의 가장 큰 의무가 후계 생산이란 걸 고려할 때 마흔에 가까운 만정아를 황후로 책봉하는 건 삼진에바였음.
만정아를 황후로 책봉하려는 계획이 대신들과 태후의 격렬한 반대 때문에 수포로 돌아가자 꿩 대신 닭으로(?) 귀비 첩지를 내리고 총애함.
대신들이 “폐하께서는 아직 나이가 젊은데 아직 자식이 없습니다. 어찌 종묘사직의 대계를 한 사람(만귀비)에게 의존하여 많은 자손을 두어 국가의 근본을 튼튼하게 하고 민심을 안정시킬 생각을 하지 않으십니까.”라고 간언할 정도로 만귀비만 봤음. 이런 총애를 등에 업은 만귀비는 자연스럽게 황궁의 실세가 되는데...
황후 오씨의 눈에는 그게 몹시 거슬렸음. 사극 좀 본 여시들이라면 알겠지만 내명부의 규율은 꽤 엄격한 편인데, 만귀비는 자기 상전인 황후도 막 대했음(....)
빡친 황후는 만귀비의 기강을 잡기 위해 뺨을 때리는데, 만귀비는 냅다 울면서 황제한테 달려감.
만귀비는 의외로 황후 자리를 욕심 내지 않았음. 오히려 자기한테 과분하다는 식의 태도를 보였고, 성화제는 그에 따라 죄책감을 느꼈음. 존나 고단수임.
안 그래도 황후로 삼지 못해 미안하던 참인데 황후가 만귀비 뺨을 때렸다? 눈깔 돌아감. 성화제는 극대노하며 “내가 황후를 폐위하지 않으면 사람이 아니다!!!!”라고 선언함. 매일 보는 경연관이랑도 대화를 거의 나누지 않을 만큼 유약한 황제가 저럴 정도면...문자 그대로 극대노임.
결국 오황후는 황후가 된 지 한 달만에 쫓겨남. 성화제는 이참에 만정아를 황후 삼으려고 했지만 태후가 “나이도 넘 많고 출신도 미천하다”며 격렬하게 반대해서 왕씨가 새로 황후가 됨. (조선이든 명나라든 엄연한 유교 국가고, 따라서 태후가 저렇게까지 반대하면 아무리 황제라도 자기 뜻을 밀어붙이기 힘듬. 정치라면 모를까 엄연히 내명부의 일이기 때문에 황후 책봉에 관해서는 태후의 입김이 더 세다고 해도 과언은 아님. 태후 무시하고 막나가면 연산군 광해군 루트 타는 것)
성화제는 당연히(?) 황후를 사랑하지 않았고, 동침한 횟수도 손에 꼽음. 왕황후는 본 게 있어서인지 평생 조용히 살며 허수아비 황후로 남음.
황제가 이렇게나 만귀비에 미쳐 있으니 만귀비는 승승장구하고, 1466년 황제의 아들을 낳음. 성화제의 첫 아이였음. 성화제는 미친듯이 기뻐하지만 이 아이는 요절함.
이제 만귀비의 나이 어느덧 마흔임. 만귀비가 건강한 아이를 낳을 가능성은 0에 수렴한다고 봐야함. 처음이자 마지막 아이를 일찍 보내버린 만귀비는 화와 슬픔에 빠져버림.
하지만 성화제는 아직 젊었고, 무엇보다 황제였음. 뒤를 이을 태자를 낳아야만 했음. 대신들도 허구한 날 상소를 날려댐. 하지만 이미 돌아버린 만귀비는 눈에 뵈는게 없었고, 다른 후궁이 아이를 가지면 냅다 낙태약을 먹여 죄 다 유산시켜버림.
그러던 중 현비가 1469년에 운 좋게(?) 황제의 아들을 낳는데, 만귀비는 유일한 태자마저 바로 독살해버림. 그렇게 성화제는 후계 없이 나이가 들어감.
1467년, 성화제의 나이도 어느덧 서른. 성화제의 머리를 빗겨주던 태감 장민이 성화제 앞에 엎드리더니 사실 황제의 아들이 있다고 고백함.
사연인 즉 기씨라는 후궁이 우연히 성화제의 눈에 띄어 하루 시침을 들고 회임했는데 만귀비의 명으로 낙태 약을 가져온 궁녀가 동정심을 느껴 약을 안 먹였고, 기씨가 무사히 황제의 아들을 낳았다는 거임. 기씨는 만귀비의 보복이 두려워서 태감한테 아이를 주며 “어차피 만귀비가 아이를 죽일 것이니 그냥 버려달라”고 부탁했는데, 장민이 몰래 6년 간 황궁 밖에서 아이를 기르다가 후사가 시급해지니까 ‘이쯤 되면 만귀비도 어쩌지 못하겠지’하고 성화제한테 고해성사를 했던 것.
후사 걱정이 컸던 성화제는 즉시 이 아이를 데려와 태자로 삼고 기씨에게 비 첩지를 줌. 물론 만귀비는 이 애도 죽이려고 했지만 이러다 나라 망한단 걸 직감한 태후가 태자를 자기 처소로 데려감.
아무리 만귀비라도 황실 최고 웃어른인 태후까지 어떻게 할 수는 없었음. 만귀비는 최후의 보복인듯 태자의 생모인 기씨를 독살해버렸고, 목숨 걸고 태자를 지켜왔던 태감 장민은 기씨가 죽은 직후 자기 최후를 예감하고 자살함. 다만 이후로는 다른 후궁이 임신하든 말든 신경 안 쓰고 내버려뒀다고 함.
성화제는 만귀비의 저런 패악을 몰랐느냐? 놀랍게도 다 알았음. 태자를 독살한 것도 알았고 기씨를 죽인 것도 알았고 그냥 다 알았음. 애초에 만귀비를 벌하라는 상소도 지겹게 올라왔고, 어머니 태후조차 “너는 왜 대체 그 여자 치마폭에서 벗어나지 못하느냐” 한탄했음.
하지만 성화제는 단 한 번도 만귀비를 벌하지 않았음. 추측하건대 벌하지 않은 게 아니라 벌하지 못한 게 아닌가 싶음. 공포로 점철된 유년 시절부터 평생을 함께했으니 아마 만귀비는 성화제한테 어머니이자 누나이자 연인이자 자기 모든 것이었을 거고, 유일한 아이를 잃어버린 것에 대한 연민 & 황후로 책봉해주지 못한 죄책감도 있었을 테고.
여하튼 성화제는 평생 만귀비를 싸고 돌았음. 만귀비가 누굴 죽이면 후하게 장례를 치러주라고 지시하고 묵인했고, 무슨 상소가 올라오든 만귀비를 끝까지 보호했음.
심지어 하루는 만귀비가 (태후궁에서 지내는) 태자를 폐위하라고 울고 불고 난리를 쳤는데, 그것도 알겠다고 함. 때마침 대지진이 일어나서 신하들이 “님아ㅠㅠ죄 없는 태자 전하를 폐하려고 하니까 하늘이 노하신 거임ㅠㅠ정신 차리셈ㅠㅠ” 간언해서 겨우 넘어감.
이렇게 성화제의 보호를 받으며 평생 호의호식했지만 그런 만귀비에게도 죽음이 찾아옴.
1487년, 만귀비는 사소한 트집을 잡아 궁녀를 매질하다가 그대로 쓰러져 사망함. 젊어서부터 뚱뚱해서 혈압이 높았는데 환갑 가까운 나이까지 매일 울화를 터뜨리며 사니 몸이 어찌 버티겠음;;
성화제는 깊은 슬픔에 빠져 먹지도 마시지도 않고 정치에서도 손을 떼버림. 당시 명나라 황실에는 귀비가 최고 직위였는데, 성화제는 황귀비 직위를 만들고 만귀비에게 황귀비 첩지를 내림.
거기서 멈추지 않고 천수산에 만귀비의 능도 만듬. 천수산은 황제만 묻힐 수 있는 명당 중의 명당이라 대신들 단체로 반대하지만 성화제는 전부 무시하고 천수산에서도 가장 좋은 자리에 만귀비를 묻고 황후의 전유물인 봉관을 부장품으로 함께 묻어줌.
만귀비 장례를 치른 성화제는 그대로 삶의 의욕을 잃어버렸고, “귀비가 세상에 없는데 내가 살아서 무엇하겠느냐...”라며 시름시름 앓다가 그해 9월 만귀비를 따라 감. 이때 성화제의 나이 마흔.
참고로 성화제의 어머니인 주태후는 이후로도 17년 더 살다 갔음. 살아있을 때도 만귀비 타령하며 어머니 속 썩이더니 만귀비 죽자마자 먼저 가버린...진심 패륜 그잡채...
TMI 1
성화제 사후 기씨의 아들인 홍치제가 즉위하는데, 명나라 최후의 성군으로 평가 받는 좋은 황제였음. 효심이 지극해서 만귀비의 일을 조용히 묻음.
또한 홍치제는 그 시대 황제로선 드물게 후궁을 한 명도 안 들였음. 아버지의 사랑꾼 기질을 물려받은건지 아니면 반대로 궁중암투가 징그러워서 그런 건지.
TMI 2
명나라 황제의 어진을 잘 살펴보면...홍치제를 기점으로 얼굴이 갑자기 바뀜
홍치제의 할아버지인 정통제와 아버지 성화제는 복사 붙여넣기 수준으로 닮음. 풍채 좋고 관우 수염이 특징.
반면 홍치제 이후의 황제들은 얼굴이 마른 편이고 수염도 빈약함.
성화제가 만귀비 외에는 깊게 총애한 여인이 없고 잠깐 동침하고 잊어버리는 식인 데다 홍치제의 생모인 기씨는 아예 하룻밤 보내고 까먹었다고 알려져서...홍치제가 사실 성화제의 아들이 아니라는 음모론도 있음.
만귀비 뺨 때렸다가 폐위 당하고 쫓겨난 오황후가 원한을 품고 태감과 결탁해서 명나라 황실의 대를 끊었다던가, 사실 태감 장민이 고자가 아니었고 기씨와 사랑에 빠져 아이를 낳았다던가 등등등등...
뭐 근데 500년도 더 지난 이야기라 답은 아무도 몰?루
- 끗 -
첫댓글 메이 디셈버라는 영화 생각난다... 왜 나이차이많이나는 관계가 한쪽에게 치명적일 스 밖에 없는지 알려주는... 성장할 수 있는 기회를 뺏어버리는 게 제일 잔인한 거 같아
재믹다
와 후루루룩 잘 읽었다!!! 재밌는 얘기 알려줘서 고마워 !! 완전 흥미진진!!
재미따ㅠ
재밌다 이런 사랑도 존재하는구나
만귀비 죽었다고 앓다가 따라죽은게 진짜 신기.. 어느정도의 마음이어야 그게 가능할까
재밌다 진짜 아들 아닐거같긴한데
흥미로와
졸라 재밌다ㅋㅋㅋ 흥미진진함ㅋㅋㅋㅋ
와 존잼ㅋㅋㅋㅋ잘 읽었어 글 고마워여시!
예전에 읽었던 글인데 다시봐도 흥미돋
재밋다...인간이란..
재밌다 와우
명나라판 가스라이팅 또는 순애보이건가ㅋㅋㅋㅋㅋㅋㅋ
와 전투복입고 칼차고 좌우에 시립ㄷㄷ멋잇네..
저 시대 왕가에는 결핍이 워낙 많아서 그럴수도
중간에 핏줄이 바뀐건 맞는거 같아...
와 재밌다....
존잼이다ㅋㅋ
어렸을 때야 그렇다 쳐도 와 진짜 사랑했나 봐
진짜 얼굴이 확 바뀌었네
어떻게 앓다가 따라죽지...? 인간이란 뭘까
저렇게 사랑해도 원나잇을 한거..?
저렇게 남자 애를 죽여도 ㄱㅊ햇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