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우한에서 코로나가 발생하자 ‘남의 나라 이야기’라고 나는 눙쳤다.
우리나라에서 첫 환자가 발생했을 때도‘강 건너 불 보듯’했다.
급기야 대구에서 집단으로 환자가 발생하고 나서야 은근히 신경이 둥개었다.
그러니까 내 말은 그때만 해도 코로나와 나는 생면부지여서 별 볼일 없으리라 치부했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그때부터 내가 평생을 공들여 쌓아놓은 씨줄 날줄처럼 종으로 횡으로 촘촘하게 짜인 그물코 같은 집합적인 인간관계가 아노미 상태로 접어들기 시작했다.
-3월 모임은 코로나로 4월로 미룹니다-
주당들 모임에서 온 문자다. 그런데 4월이 5월 되드니 6, 7월도 연기란다. 어떤 모임은 유니크 하면서도 살벌한 문자까지 날렸다.
-모임을 무기한 연기합니다. 살아있으라! 회원은 살아있으라!-
서른 살도 못 살고 죽은 시인 기형도의 시 ‘비가2-붉은 달’의 마지막 연 ‘3’의 그 유명한 구절
‘우리는 모두가 위대한 혼자였다. 살아 있으라, 누구든 살아 있으라’
을 패러디한 모양새다. 나의 인간관계 그물코가 무지렁이의 손사래에 허망하게 날아가는 거미줄 꼴이었다. 시인 정현종은 ‘사람들 사이에 섬이 있다’고 했는데 그 섬에 모여 허리끈 풀기는 글렀다. 허방에 발을 디딘 끈 떨어진 뒤웅박 신세랄 가.
그 많은 모임들이 줄줄이 사탕처럼 모임을 취소하던 5월 초 어느 새벽녘이었다. 눈을 뜨자 나는 프란츠 카프카의 소설 ‘변신’이 떠올랐다. 그 소설은 다음과 같은 문장으로 시작된다.
‘그레고르 잠자는 어느 날 아침 불안한 꿈에서 깨어났을 때, 자신이 잠자리 속에서 한 마리 흉측한 해충으로 변해 있음을 발견했다.’
그랬다. 모세혈관처럼 꼬불꼬불 굽어 도는 미로 같은 골목길을 꿈속에서 밤새 헤맨 탓인가. 잠에서 깨어났을 때 나는‘혼자’란 것을 뼈저리게 느꼈다. 나는 그대로 누어 ‘나는 혼자다’ 가만히 외어보았다. 살면서 누구나 한 번쯤은 내가 누군지 질문할 때가 있다고 했는데 나는 이 나이에 혼자란 것을 새삼 절감했다. 집에서도 말이다. 희붐한 새벽 그루잠이 들기 전만 하여도 부엌에서 달그락거리던 아내의 존재를 느꼈는데 온 집안이 적막강산이다. 아내는 집 안에 있는 장애인(팔십 넘으면 모두 장애인 아닌가)은 나 몰라라 버려두고 봉사활동이 무슨 특권인양 365일 깔축없이 집을 나선다. 내가 운동중독이듯 봉사도 중독성이 있는가보다.
나는 천정을 멀뚱거리며 지나온 세월을 빨래처럼 햇살에 널어본다. 어쩌면 지난 모든 순간이 가슴 저리고 아름다웠지만 부지불식간에 이제는 혼자라는 것을 일러주었다. 나는 또다시 혼자란 것에 대해 오만가지 생각에 빠져 들었다. 먼저 요즘 한창 유튜브를 달구고 있는 70대 유튜버 박막례 아줌마의
“남한테 장단 맞추고 살지 말어. 너 하고 싶은 대로 북 치고 장구 치다 보면 그 장단에 맞추고 싶은 사람들이 와서 춤추는 거여.”
그녀 특유의 구수하게 툭툭 던지는 솔직한 입담이 떠오르는가하면, 올해로 여든다섯 살이 된 이근후·이화여대 명예교수의 ‘어차피 살 거라면, 백 살까지 유쾌하게 나이 드는 법’이란 책에서
“더 이상 불필요한 일과 소중하지 않은 사람들에게 시간과 체력을 낭비하지 말고, 가장 먼저 자기 자신을 챙기면서 사세요.”
라는 충고가 솔깃했다. 그런가하면 영화 "곡성"에서 김환희(효진역)양이 했던 유명한 대사도 나를 찔끔거리게 했다.
“뭣이 중헌디! 뭣이 중허냐고!! 뭣이 중헌지도 모름서!!!”
그랬다. 나는 무엇이 중한지도 모르면서 살아왔는지도 모른다.
나는 잠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외로움과 고독을 적극적으로 즐기는 시대! 일명 ‘조모’(JOMO·joy of missing out)의 시대 아닌가. 어쩌면 동티나지 않게 살아온 그물코 같은 인간관계에서 벌써 전부터 벗어나고 싶은 욕망이 내재한 탓인지도 모르겠다. 가슴 저리고 아름답던 시절은 다 흘러가버렸지만 지금까지 살아온 관성에서 일탈하고 싶어졌다. 마초같이 왜골스럽고 천둥벌거숭이 같이 부박했던 지난 세월에 안녕을 고하자. 거지같은 놈의 세상은 미친놈 널 띠듯 굿판을 벌리지만, 얼마 남지 않은 인생을 '아싸'가 될지언정 혼자만의 순간들을 최대한 만끽하는 것도 괜찮지 싶었다. ‘거리두기’가 아니라 ‘퍼스널 스페이스’를 두고 지금 이 순간부터 마음 가는 대로 살자.
그러자 존재 자체가 한없이 홀가분해졌다. 말도 안 되지만 말이 될 것 같기도 했다. 말해 양수경의 노랫말처럼 ‘차가운 유혹’이었다. 나는 혼자만의 고독을 내 편으로 만들며 나 자신과 즐기기로 했다.
멈추면 보이는 것이 참 많다 했는가. 잃는 게 있으면 얻는 것도 있었다. 촘촘하게 짜인 그물코를 훌훌 벗어던지자, 나는 맨드라미 홀씨처럼 홀가분해졌다. 맨드라미의 꽃말처럼 ‘헛된 장식’에서 벗어나자 맷돌 굴릴 일도 없었다. 지금까지 갇혀있던 ‘파놉티콘’에서 해방된 기분에 발이 땅에 닿지 않았다. 그날따라 베베를 앞세워 산을 오르자 모든 것들이 빛이요 바람, 숨결이 되어 내 곁을 지켜주었다. 자연계의 사물이 새롭고 명료하게 다가왔다. 젊은 날 즐겨 외운 구상의 ‘마음의 눈을 뜨니’라는 시의 구절이 절로 흘러나왔다.
이제사 나는 눈을 뜬다.
마음의 눈을 뜬다.
…
무심히 보아 오던 마당의 나무,
넘보듯 스치던 잔디의 풀,
아니 발길에 차이는 조약돌 하나까지
한량없는 감동과 감격을 자아낸다.
…
코로나 덕분에 자연을 다시 찾듯 나도 찾았다. 혼자서도 얼마든지 멋 떨어지게 살아갈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톤 텔레헨의 어른을 위한 동화‘고슴도치의 소원’에서 고슴도치가 한 말을 나도 중얼거려보았다.
“괜찮아! 나에겐 내가 있잖아?”
살다보면 사무치게 외로운 순간도 찾아오겠지만 때로는 외로움과 적막함이 인생의 상비약이라 하지 않는가. 남은 생을 오로지 나 자신을 위해 봉사하기로 작정했다. 나보다 더 좋은 친구가 어디 있다고…!
“고독이 항상 마이너스인 것은 아니야. 사람은 외로움 속에서 자신과의 대화를 반복하며 끊임없이 성장하지”
모모코 할머니의 중얼거림이 현해탄을 건너왔다. 하긴 그랬다. 김정희도 제주에서 귀양살이 하면서 고적을 달래기 위해 세한도를 그리며 추사체를 완성하였고, 정약용도 귀양지에서 많은 저서를 남기지 않았나. 나도 이제 뭘 하나 할 거나…!
각설하고, 7월에는 김항구 회장과 정화진 총무가 용단을 내려 21일 대구동기모임을 가졌다. 코로나 중인데도 29명이 모여 성황을 이루었다. 모두들 더 강건해 보였다. 회장이 모두 건강해 고맙다면서 백만 원을 쾌척하는 바람에 분위기는 더욱 ‘업’ 되었다. 반갑고 좋았다. 역시 동기가 최고였다! 우리 동기 모두가 마법사임을 나는 안다. 우리가 흘러간 삶 속에서 해 낸 수많은 일이 ‘해리 포터’마법의 또 다른 이름 아닌가. 그래도 가슴 한 쪽에는 여한이 남아있지? 친구야, 노벨 문학상을 받은 가수 밥 딜런의 ‘바람만이 아는 대답’처럼 사람은 얼마나 많은 길을 걸어봐야 진정한 인생을 깨닫게 될까?
첫댓글 29명의 건아들 모두 마스크 잘 쓰고 다니지?
참 반갑다 모두가 건강한게 모두가 모일수 있다는게
29명은 결석도 않하나 보다 부럽다 그리고 기쁘다
모세는 80이 되어서 지도자의 길을 갔다. 70대까지 뭣이 중헌디 모르고 살았다.
이제부터 남은 인생 꿈을 꾸며 시간과 체력을 아껴 유쾌하게 살아보세.
시간이 지나면 모든 것은 해결된다고 했던가.
방콕, 집콕 생활도 6개월이 지나가면서 적응이 되어가는가 보네.
코로나가 곧 끝날것 같지는 않고,
이젠 이런 생활이 앞으로 계속될 것만 같네.
작은 행복 론
김 이대
함박꽃이 필 때
막 핀 꽃을 보며
떠나지 못하는 그리움에 잠긴다
이렇게 고운 빛깔이 세상에 있다는 것
산다는 건 작은 그리움과 만나는 일이다
스치고 지나가는 낯선 사람들 속에서
유난히 눈에 들어오는 얼굴이 있다
이렇게 마주치는 얼굴이 있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행복한 일이다
세상은 그리움으로 가득하다
산기슭의 떡 갈나무 잎을 볼 때도
그리울 때가 있다
너는 어디서 와서 지금 이 시간에 만나게 되는지
시골길에 서 있는 푸른 포플러
양지쪽에 올라 온 봄 풀
한여름 밤 하늘에서 쏟아지는 별
잠시 왔다가 떠나가는 수 없는 그리움들
올 때는 언제나 작은 그리움으로 설레게 했다
언어이면서 언어가 아닌 곳에 닿고자 하는 것이 시라 했던가
시인은 우렁찬 체구지만 덩치 답지않게 소소한 것들을 노래한다.
동네 마을의 당산나무처럼 온갖 것을 품에 품고 느긋하게 바람을 맞는다
품에 들어 온 그애들과 지극한 밀어를 나누고 사랑을 주고받으며 위로를 얻는다
'잠시 왔다가 떠나가는 수 없는 그리움들
올 때는 언제나 작은 그리움으로 설레게 했다'
앞으로 또 얼마나 만나고 이별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