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22일 오후 명륜동에 있는 통일문제연구소에서 백기완 선생을 만났다. 백기완 선생은 인터뷰 요청을 하는 메일을 보시고, ‘정치 이야기라면 다른 분들이 많을 텐데, 그리고 별로 이야기 하시고 싶지 않다. 그리고 두번째로 <서프라이즈, 인터뷰, 칼럼…> 등 아주 작은 편지글에 쓰인 외래말도 거슬린다. 세 번째로 요즈음 젊은이들이 내 말 듣겠냐’고 하시면서 그래도 댓거리(대담)를 원하느냐고 되물어오셨다.
그래서 오히려 그런 이유 때문에라도 더 말씀을 해주셔야한다고 설득을 했고, 만난 자리에서도 ‘서프라이즈라는 이름이 마음에 안든다. 만나야될 사람들은 아닌 것 같다’는 말씀을 하셨다.
“우리의 말과 옛 이야기는 단순한 말과 이야기가 아니라 인류문화의 위대한 경지입니다. 그것이 영어로 바뀌어 가는 과정을 세계화라고 하는 것은 우리 문화를 죽이는 폭력을 감싸는 뻔뻔스러운 범죄입니다”라는 말씀을 하신 적이 있는 백기완 선생은 미 제국주의 문화침략의 첨병인 영어를 우리 젊은이들이 너무 무비판적으로 사용하고 있다고 개탄하시면서 신자유주의라는 부정확한 명칭 대신에 ‘미 금융제국주의’라는 말을 사용해야한다고 말씀하셨다.
평생을 통일운동에 바친 백기완 선생은 통일은 노나메기 벗나래 세상을 만드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노나메기란 말 그대로 너도 일하고 나도 일을 하고 그래서 너도 잘 살고 나도 잘 살되, 착하고 어질고 깨끗하고 올바르게 잘 사는 세상이라고 설명했다.
백기완 선생은 1933년 황해도 은율 구월산 밑에서 태어나서 젊은 날엔 농민운동, 나무심기운동, 빈민운동을 했고, 1967년 백범사상연구소를 세우셨다. 그 후 1984년 통일문제연구소로 이름을 바꾸었으며, 1990년 전노협 고문, 1987년과 92년 민중대통령 후보로 출마했으며, 계절마다 내는 책 <노나메기>를 발행하고 있다.
저서로는 <항일민족론>, <백범어록>, <통일이냐 반통일이냐>, <장산곶매 이야기>, <우리겨레 위대한 이야기>, 시집으로 <이제 때는 왔다>, <젊은날>, <백두산 천지> 외 다수가 있다.
백기완 선생은 ‘서프라이즈 그랬는데, 그거 좀 고치면 안되겠습니까?’라는 말씀을 몇 번이나 하시면서 인터뷰 내내 때로는 수십만의 청중들 앞에서 웅변을 하듯이, 때로는 어린 손자에게 애정어린 회초리를 드는 엄한 할아버지처럼, 또 때로는 손자를 달래는 자상한 할아버지처럼 격정적으로 인터뷰에 응해주셨다.
신자유주의가 아니라 금융제국주의
지승호(이하 지) - CBS와의 인터뷰에서 “12~13년 전에 매를 맞은 고문 후유증이 나빠져 왔고, 오래 살 것 같지 않아요”라고 하신 말씀을 듣고 마음이 아팠는데요. 요즘 건강은 어떠십니까?
백기완(이하 백) - 나 같은 사람이야 건강이랄게 있습니까? 죽기 아니면 살기죠. 죽기 아니면 살기라니까요.
지 - 특별히 아프신데는 없으시구요?
백 - 박정희, 전두환한테 매 맞은 생채기가 지금도 이따금 도져서 고생을 하는 편이죠.
지 - 거기에 대해서 지금도 사과하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다는 표현을 하신 적이 있으신 것 같은데요.
백 - 나 한 개인을 들먹이는 것 같지만,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일당들이 나 같은 사람한테 그 무지막지한 막심, 폭력을 우리말로 막심이라고 하거든요. 막심을 휘두른 것은 이 땅의 진짜 민주주의와 진짜 민중이 주도하는 해방통일운동을 막심으로 때려 잡은 한 실례가 되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이쪽에 대한 청산문제는 한 개인이 용서하고 안하고 할 문제가 아니라 역사적으로 청산해야 될 문제라고 생각되거든요. 그런데 청산 안되고 지금도 그들이 큰 소리 팡팡 치는 것은, 그리고 지금까지 이른바 보수반동들에 의한 정치 행태라는 것은 역사의 진보를 끊임없이 파괴해온 것이지, 단순한 정치행태가 아니었다고 이렇게 잘라서 말하고 싶습니다.
지 - 선생님께서 말씀하신 “우리의 말과 옛 이야기는 단순한 말과 이야기가 아니라 인류문화의 위대한 경지입니다. 그것이 영어로 바뀌어 가는 과정을 세계화라고 하는 것은 우리 문화를 죽이는 폭력을 감싸는 뻔뻔스러운 범죄입니다”는 얘기를 듣고, 일상생활에서 이런 저런 외국어를 많이 쓰는 걸 부끄럽게 생각하고, 반성하게 되었습니다. 세계화, 신자유주의의 거센 물결 속에서 우리 정신문화를 지키는 게 상당히 어려운 상황 아닙니까? 그걸 지키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한다고 생각하십니까?
백 - 물음이 참 좋군요. 그런데 젊은 지 선생, 내가 그 물음에 대해서 딴지를 좀 걸어도 화 안내시겠지?(웃음)
지 - 네. 좋은 가르침주시기 바랍니다.
백 - 신자유주의라는 말은 오늘의 역사적 현실을 평가하는 과학적인 말이 못되죠. 신문장이들이 만든 말이에요. 신자유주의 그러지 말고, 금융제국주의 그래야 되고, 금융제국주의는 곧 미국의 금융제국주의라고 말하는 것이 가장 과학적일 것 같습니다. 그런데 미국의 금융제국주의가 한 독점자본의 형태, 그것의 착취구조를 물리적으로 옹호하겠다고 하면 그것은 군사적인 제국주의 이렇게 말하기도 하지만, 요즘은 또 문화적으로 공격을 해오거든요.
그 가운데서 빼어나게 우리들의 가슴을 아프게 하는 것은 미국말(영어)이죠. 거 지선생 적지도 말고, 녹음을 꺼도 좋아, 방송국 이름을 서프라이즈 그랬는데, 그거 좀 고치면 안되겠수. 왜냐하면 그 낱말 하나가 바로 미 금융제국주의의 문화적인 침해상황이거든요. 침투해서 해를 주는 상황이라는 말입니다. 제국주의 그 자체죠. 그런데 젊은이가 제 말 듣겠수.(웃음)
지 - 적극적으로 건의를 해보겠습니다.(웃음) 저도 미국의 행위를 누구 못지 않게 싫어하는 사람 중의 하나인데도 선생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알게 모르게 문화적인 공격에 노출되어 있으면서 거기에 대해 느끼지 못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럴 때일수록 선생님 같으신 분이 자각을 시켜주셔야 할 것 같습니다. 지난 5월에 우리 말과 글의 아름다움과 겨레의 얼을 담은 책 ‘장산곶매 이야기’ 증보판을 출간하셨는데요. 반응은 어떤가요?
백 - 지선생. 거기에 대한 내 말을 맺기 앞서 우리 젊은 지선생이 한 얘기를 하나만 더 말하고 넘어가도 되겠죠. 지선생 자신도 미국을 싫어한다는 말을 하니까 정말 고맙수. 그런데 미국을 싫어하고 좋아하고, 좋아하고 싫어하는 문제는 그렇게 추상적으로 표현하는 것보다도 목숨과 목숨 아닌 것과의 싸움이라는 차원에서 봐야 되리라고 생각합니다. 미국을 싫어한다는 것은 몹시 정서적인 표현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미국은 지금 목숨이 아니거든요.
남의 목숨을 침탈해서 잡어 먹어야만 자기 목숨을 이어가는 것으로 미루어보아 미국은 목숨이 아닌 겁니다. 개념이 금방 다가오는 낱말을 하나 꾸어다 쓰자고 하면 반생명이야, 그러니까 미국을 싫어한다고 하는 것은 반생명에 대한 생명의 아우성이고, 저항이거든요.
그래서 그런 앞뒤의 사정을 잘 헤아려서 정서적으로 말할 땐 말해도 좋지만, 조금 더 알맹이 있게 말하면 좋겠다는 얘긴데, 이거 뭐 이러다가 기사 못나가겠어요. 자꾸 젊은이가 하는 얘기에 늙은 놈이 딴지나 걸고.(웃음) 이왕 만났으니까 하는 거예요. 이제 그런 것은 정말로 미국을 싫어하고 좋아하고 이런 사람들에게 꼭 들려줘야될 얘기입니다. 그 다음에 다시 한번만 물어주세요. 장산곶매 책에 관해서.(웃음)
지 - 지난 5월에 우리 말과 글의 아름다움과 겨레의 얼을 담은 책 ‘장산곶매 이야기’ 증보판을 출간하셨는데요. 출간하신 의의와 반응 같은 것은 어떻습니까?
백 - 장산곶매 이야기는 내가 네 살, 다섯 살, 여섯 살, 일곱 살 요 때에 우리나라는 일본제국주의 식민지 지배 밑에서 얼마나 빼앗겼는지 저녁이 되도 땟거리가 없어서 맹물만 끓여서 맹물만 마실 때거든요. 그런데 배고프다고 자꾸 울면 우리 엄마가 달랠 길이 없으니까 해주던 얘기예요. 왜놈 제국주의가 드리운 캄캄한 밤을 내리까는 민중정서의 하나로 장산곶매 얘기를 해줬어요.
그 뒤 8.15 해방이 되고, 나는 공부를 해보겠다고 서울로 왔지만, 공부하기 힘들어서 길거리에서 뜨내기로 살았거든요. 그때 다른 애들은 다 학교 다니면서 좋은 얘기를 많이 해요. 희랍 신화도 얘기하고, 기독교 믿음에 서려 있는 얘기들도 하고, 타잔 영화 얘기도 하고, 뭐 근사한 얘기들 많이 하는데, 나는 학교를 못 다니니까 아는 게 있어야지, 그래서 동네 애들하고 어울려서 이런 저런 얘기할 때 나는 장산곶매 얘기를 했죠.
서울에 공부하러갔지만, 가난하다는 이유 때문에 내 앞이 안보여, 그 어둠을 까는 방법의 하나로 우리 어머니가 들려주시던 해방의 정서, 장산곶매 얘기를 들이대면 서울 뒷골목의 꼬마들이 날 보고 ‘참 그 이야기의 뜻 한번 근사하다’고 그랬는 줄 아세요? ‘에이 이 무식한 새끼야, 다 썩어 문드러진 우리 얘기를 왜 하느냐’고 하면서 군밤을 줘서 매도 맞고 그랬죠.
그러다가 세월은 흘러서 나도 어른이 돼서 장가도 들고, 애들도 낳고 그랬을 때 우리 애들이 먹을 것을 사달라고 칭얼거려요.
그런데 아비란 것이 땡전 한푼 있어야지, 그렇다고 소리 지를 수도 없고. 그래서 하는 수 없이 우리 아이들한테 들려주던 얘기가 바로 장산곶매 얘기야, 그걸 한 십이삼년 전에 매를 맞은 고문 후유증이 너무 (끈)심해서 그 얘기를 기록으로 남기지 못하고 죽을 것 같더라구요.
그래서 아픈 몸을 이끌고, 장산곶매 이야기라고 상하권으로 두권을 냈었죠. 그런데 요즘 보니까 조금 시간을 갖고 빼먹었던 것을 다시 집어넣고 제대로 정리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걸 정리했는데, 우리 지선생도 장산곶매 이야기 못봤지.
지 - 예. 아직 못봤습니다.
백 - 아무도 안 사봐. 근데 ‘공꼬’로는 못주겠어.(웃음)
지 - 사서 읽고, 다른 사람들한테도 권하겠습니다. 장산곶매 얘기의 줄거리를 몇 마디로 요약하면 어떤 얘기입니까?
백 - 거 왜 사람이 배고프면 들에 가서 날짐승, 들짐승을 잡죠. 그걸 사냥이라고 그러지 않습니까? 그런데 장산곶매 얘기는 사냥 얘기가 아니라 멱치기 이야기입니다. 멱치기는 자기보다 약한 짐승을 잡아먹는 것이 아니에요.
그건 사냥이고, 멱치기는 아주 못된 놈, 힘이 세다고 남을 괴롭히는 놈, 그놈하고만 목숨 걸고 싸우는 걸 멱치기라고 합니다. 장산곶매 이야기는 바로 힘이 세다고 남을 괴롭히고, 남을 잡아먹는 못된 놈, 그것을 우리말로 탈쇄영로라고 하거든요. 쳐들어온 적군이죠. 탈쇄영로와 목숨을 걸고 싸우는 얘기가 바로 장산곶매 이야기예요.
두 번째로 장산곶매 얘기는 우리 민중 정서가 가장 돋보이게 서려 있는 겁니다. 장산곶매는 멱치기를 떠나기 전날 밤 딱딱하고 부리질을 합니다. 입으로 뭔가를 까는 걸 부리질이라고 그래요. 뭘 까느냐 하면 자기 둥지를 까는 거거든요.
요새말로 하면 자기 집을 까부수는 거죠. 왜냐하면 멱치기를 떠날 때는 목숨을 걸어야 돼, 자기 집에 대한 애정, 그리움, 어려운 말로 얘기하면 집착 같은 것을 갖고 있으면 온몸으로 멱치기를 못해, 그래서 자기 집을 부시는 거야, 그리고 나쁜 놈과 싸우러 떠나가는 거거든요. 그런데 자기 집을 부시는 소리가 딱딱 그래, 그런데 이렇게 장산곶매가 멱치기를 떠나기 앞서 부리질을 할 때 장산곶 둘레(주변이라는 말은 한문 표기예요)에 있는 사람들이 다 잠을 안자고 일어나서 자기 가슴을 치지 않으면, 방바닥이라도 쳐요. 다시 말하면 자기 뚱속, 자기 욕심을 깨버리는 거야, 욕심을 깨는 거지, 그리하여 장산곶매가 새녘이 터오기 전에 새벽이란 시간을 얘기하는 거고, 새녘이라고 하는 것은 곳을 얘기하는 거예요. 밝아오는 동쪽 하늘을 새녘 그러거든요. 내가 무슨 얘기를 하는건지 모르겠다.(웃음)
아무튼 새녘이 터오기 전에 장산곶매가 떠나가면 다 일어나서 ‘와, 와’ 하고 추임새를 해주거든, 추임새란 얼러준다는 거예요. ‘장산곶매여 나가 싸워서 이기고 돌아오라’고. 그러면 장산곶매는 떠나가면서도 그냥 가지 않고, 캉캄한 밤하늘을 딱딱 까면서 가는거야, 딱딱 까면서 가, 그래서 밝은 빛을 어리게 하고서 떠나가거든.
난 이 얘기가 너무나 좋아서 이것을 요즘 젊은이들, 요즘 이 땅을 살아가는 사람들, 이를테면 미 금융제국주의의 침해를 받아서 꼼짝 못하고 있는 그 사람들한테 미 제국주의가 드리운 캄캄한 밤하늘을 까는 부리질을 하자고 장산곶매 이야기를 들이대는 겁니다. 그런데 아무도 안 읽어. 쌍놈의 새끼들 말이야, 안 읽어도 좋다고 그래. 썩어 문드러진 서구의 신화, 썩어 문드러진 종교적인 관념의 세계나 읽고 썩어 문드러지라고 그래. 그렇게 써. 안쓸테면 관두고.(웃음)
국보법은 우리끼리 죽자고 싸우자는 법
지 - 얼마전 리영희 선생님, 한완상 선생님 등과 함께 국가보안법 폐지 선언문을 낭독하셨는데요. 아직도 우리 사회에서 국가보안법 폐지에 반대하는 국민들도 많고, 대체입법이나 보완입법을 주장하는 사람들도 많은데요. 선생님께서는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백 - 국가보안법은 당장 폐지해야 되는 거야, 그런데 국가보안법을 폐지하자는 사람도 있고, 폐지해서는 안된다고 하는 사람도 있잖아요. 나는 그런 역사적인 상황을 인정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일제 때 일본제국주의 식민지 지배 밑에서 엄청나게 죽음을 강요받지 않았습니까? 그때 일본제국주의의 앞잡이인 친일파민족반역자가 있었다니까.
그들이 비록 조선 사람이지만, 진짜 조선 사람입니까? 껍질만 조선 사람이지. 국가보안법을 폐지해서는 안 된다고 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 한 역사적 상황이라고 하더라도 나는 그런 상황을 인정하지 못한다는 겁니다. 왜정때 일본제국주의의 앞잡이도 있었으니까. 그러면 ‘선생님은 국가보안법을 폐지해야 된다는 것에 대한 어떤 입장을 가지고 있느냐?’고 되물을 수도 있잖수. 그렇게 되묻지 않을래?(웃음) 관둘까요? 내 입장도 한두마디 얘기해야지.
지 - 예. 선생님 입장은 어떤건가요?(웃음)
백 - 국가보안법은 지금까지 통일하자는 사람들, 미 제국주의를 몰아내고 미 제국주의의 앞잡이들을 청산하고자 하는 사람들을 탄압하자고 하는 단행법이었어요. 그리고는 잘못된 정권을 비판하면 올바른 비판을 학살, 작살, 말살하고자 하는 흉기로서 국가보안법을 써먹어왔습니다. 그러니까 반인륜적인, 반인권법인 까닭에 당장 없애야죠. 그런데 그것은 일반적인 논리구요.
나는 며칠전 리영희 선생하고 같이 기자들을 모아놓고 얘기하는 자리에서 ‘다른 분들이 다 말하는데 뭐 나까지 말하냐, 난 그냥 앉아만 있겠다’고 했는데, 그랬더니 오충일 목사가 자꾸만 얘기하라고 해서 할 수 없이 얘기를 했어요.
좋은 얘기는 다 리영희 교수를 비롯해서 여러분들이 얘기했으니까 다른 사람이 얘기안한 부분만 내가 얘기하고 싶다고 해서 얘기한 것이 이거예요. 국가보안법은 분단의 현실을 법제화한 거예요. 분단이라고 하는 것은 기본적으로 미국의 대한반도 침략인데도 그걸 법제화한 거야, 그러니까 여기에는 뭐가 있냐 하면 아무 것도 없고, 민족의 실체가 없어요. 침략당한 분단의 현실만 있는 거예요. 그래서 이것은 민족허무주의의 소산이라고 그랬습니다. 그러니까 당장 없애야 한다는 거야.
두 번째로 국가보안법은 갈라져 사는 우리끼리 죽기 살기로 싸우는 것을 옳다고 법으로 규정한 거야, 전쟁상태를 법제화한 것이야, 이런 법은 지구상에 없어요. 히틀러 때의 단행법도 이런게 없었어, 뭇솔리니 때도 이런 게 없었고, 일본제국주의 시대에는 있었어. 치안유지법이라고.
그것을 더욱 개악시킨 것이 국가보안법이야, 전쟁상태를 법제화한 단행법이 정말 자연법 정신에 맞는 것이고, 인륜에 맞는 것이고, 인류문화사적인 차원에서 정당한 겁니까? 정당하지 않아요. 그래서 당장 없애야한다고 말했어요. 그런데 어느 신문, 방송에서도 그 얘기를 딱 끄집어내는 사람들이 없어요.
내가 생각하는 것을 깊이 생각하지 못하는 것 같다는 생각도 좀 해봤어요. 지선생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모르겠지만, 국가보안법에 대한 내 생각은 당장 없애야 되는데, 그런 뜻을 다른 사람들은 잘 얘기 안하는 측면에서 얘기하자면 그렇다는 거지요.
지 - 9월 9일에 국가보안법 폐지에 반대하는 원로 1500명이 시국선언을 발표하지 않았습니까? 선생님께서는 이 일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백 - 지선생도 원로라고 하는데, 원로라는게 뭐예요?
지 - 신문에 그렇게 나오니까.
백 - 신문용어에 기대서 글을 쓰거나 말을 하는 것은 안 좋은 것 같아요. 거기에 나온 이름을 가만히 보니까 이상하데요. 군사독재 치하에서 군사독재를 떠받들던 사람들이 그리 많아, 나이가 든 것뿐이지 사실상 군사독재가 반동적인 독재였다고 하면 그것에 동조한 사람들 아닙니까?
그런 사람들이 지금 말할 수 있는 건지, 저는 원로라고 생각하고 싶지도 않고, 말할 자격이 없다고 생각해요. 국가보안법을 폐지하자는 얘기는 국가보안법을 우리들에게 강요했던 사람들, 이를테면 얼마 전까지 국가보안법 폐지해서는 안 된다고 얘기했던 사람들, 그 사람들도 모두 역사의 뒤안으로 몰아내야 될 과제를 아울러 안고 있다고 생각을 해요. 내 얘기가 틀렸어?(웃음)
친일 청산해야 민생문제 해결돼
지 - 맞습니다. 결국 자이툰 부대의 추가 파병이 이루어졌는데요. ‘북핵 문제, 경제 문제 등을 생각하면 현실적으로 파병할 수 밖에 없었다’는 불가피론도 있지만, 그 외 많은 사람들은 명백한 침략전쟁에 우리 군을 파병한 것은 잘못된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는데요. 선생님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백 - 노무현 정권이 태어나서 가장 잘못한 것이 있다면 이라크 침략 전쟁에 동조한 거예요. 그건 잘못한 겁니다. 노무현 정권이 태어나면서 뭐라고 했습니까? ‘미국한테 할 말은 하는 대통령이 되겠다’고 해서, ‘야, 다른 역대 대통령과는 좀 다르겠구나’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미국한테 할말을 하려고 그러면 ‘이라크 침략전쟁은 1차 세계대전, 2차 세계대전을 일으켰던 제국주의 세력의 재판 아니 그보다 더 악독한 침략전쟁이니 미국이여 당장 침략 전쟁을 집어치워라’라고 말하는 것이 미국한테 할 말을 하는 거라고 생각되는데, 그걸 안하고 거기서 요청하는데로 파병을 했더라구요.
지 - 친일 반민족 행위 진상규명법을 둘러싸고 여야가 대립하고 있습니다. 한나라당에서는 열린우리당이 민생은 외면한 채 과거에 집착하고 있다고 비난하고 있는데요. 열린우리당 의원 중에서도 친일파 조상이 있다는 보도들도 나오고 있지 않습니까? 선생님께서는 이 상황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백 - 친일파 민족반역자의 청산 문제는 시효가 없는 거예요. 때가 없어요. 8.15 해방직후에 했어야 되는데, 그때 못했으니까 지금이라도 해야 돼. 민생문제 해결할 생각은 아니하고, 친일파 민족 반역자 청산 문제만 얘기한다고 하는 것은 말이 성립이 안되는 얘기예요.
친일파 민족반역자를 청산 못했기 때문에 오늘날 민생문제가 구조적으로 위기에 빠져 들어가고 있는 겁니다. 예를 하나 들어서 박정희가 군사반란을 일으켜서 우리나라의 민족자주적인 경제토대를 몽땅 미국의 독점자본과 일본의 독점자본에 다 넘겨주지 않았습니까?
그때부터 이 땅에는 자주성이 구조적으로 파괴되어 간 것이고, 자주성의 실질인 민중의 삶이 끊임없이 약탈, 박탈, 착취의 구렁텅이로 내몰려졌던 겁니다. 여기서 민생문제가 근본적으로 제기됐는데, 이제라도 친일파 민족반역자를 청산해야지 민생문제가 해결될텐데, 그걸 거꾸로 얘기하는 것은 역사의 진보, 역사의 전진을 가로막는 또 하나의 군사반란이라고 말하고 싶어요. 내 얘기가 틀렸어?(웃음)
가랑잎과 개죽의 차이
지 - 맞습니다.(웃음) 선생님께서는 통일을 위해 한평생을 바치셨는데요. 최근 젊은이들 중에서 일부는 통일이 되는 것보다 통일의 후유증을 걱정하는 사람들도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런 사람들에게 우리가 꼭 통일을 해야하는 이유를 말씀해주실 수 있으십니까?
백 - 가랑잎하고 개죽 하고의 차이를 아세요? 가랑잎은 여름 한때 짙푸러 가지고, 이산화탄소를 마셨다가 산소를 내뿜어서 자연의 재생산 구조를 이룩하는데 이바지하죠. 그러다가 된서리를 맞고 떨어지는 것을 가랑잎 그러지 않습니까?
가랑잎이 떨어지고 나서 아무것도 아니냐고 하면, 구석에 휘몰리다가선 썩어서 다시 한 줌 거름이 됨으로써 자연의 재생산 구조에 또 이바지하거든요. 그래서 예로부터 우리나라 사람들은 ‘선비한테 배우자’ 그따위 수작은 안했다니까, 뭐라고 했냐고 하면 ‘가랑잎한테 배우자’고 했거든요. 멋있는 얘기야, 그런데 똑같은 가랑잎인데, 개죽은 어떤 가랑잎이냐 이거예요.
잎사귀가 나왔다가도 여름 한때를 살지 못하고 떨어져서 썩은 물에 에멱없이 떠내려가서 썩은 웅덩이에서 같이 썩어가는 것을 개죽이라고 그래요. 요새 젊은이들이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자본주의라고 하는 썩어 문드러진 물살에 그냥 에멱없이 떠내려가는 개죽인 것처럼 살고 있는 젊은이들이 너무나 많아, 정신 좀 차리도록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구요.
요새 젊은이들이 통일을 하면 비용도 많이 들고, 이대로 살자고 하는 사람들도 있는데요. 어떻게 해서 우리의 사랑하는 꿈나무 젊은이들이 그런 생각까지 하게 됐느냐 하면 통일의 알짜, 실체가 뭔지를 몰라서 그래요.
통일, 통일하는 사람들 얼마나 고생들 많이 했어, 정말 모두 분단을 최고의 가치로 알고, 분단 속에서 ‘살자, 살자’고 했을 때 ‘아니다. 분단은 침략상황이다. 그러니까 침략 상황을 몽땅 치워버리고, 자주적인 통일을 하는 것이 우리의 삶의 발전이다’고 생각한 이런 사람들이 얼마나 위대한 공헌을 해왔습니까?
그러나 지선생, 내 얘기 꼭 들어. 그렇게 큰 역사의 발전에 이바지를 한 그 분들도 어떤 것이 통일이라고 하는, 통일의 알짜, 실체를 우리들한테 내놓지를 못했어요. 그러니까 젊은이들이 통일은 이러이러한 것이 통일이라는 알짜, 실체를 몰라요. 통일을 추상적인 민족문제로만 보고 있어요.
그러면 통일의 알짜는 뭐예요? 뭐 이거 얘기가 길어지면 안될 것 같으니까, ‘노나메기 세상을 만드는 것이 통일이다’라고 저는 그렇게 생각해요. 노나메기 세상이라는 게 뭐냐, 너도 일하고, 나도 일하고, 그리하여 너도 잘살고, 나도 잘살되 올바로 잘사는 벗나래, 다시 말해 세상을 (세상을 우리 말로 벗나래라고 하거든요) 만드는 겁니다. 친구라는 벗에 세상이라는 나래, 벗이 여기 저기 다 있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이 말을 안써요. 벗나래 좀 쓰세요. 그런 벗나래를 만드는 것이 통일이라 이 말입니다. 노나메기 벗나래를 만드는 것이 통일이라는 말이에요. 여기에 대해서 조금 더 설명해주면 아마 이 땅에 있는 모든 젊은이들이 ‘아, 그것이 통일이냐, 이런 통일은 진짜 해야된다’는 이런 깨우침을 가지리라고 믿습니다. 언젠가 이 노나메기 벗나래에 관해서 정말 우리나라 젊은이들이나 시민대중들한테 말할 기회가 있었으면 좋겠는데, 워낙 찾아오는 사람도 없잖아요. 지선생이 잘못 찾아온거야. 번짓수 잘못 짚었어. 다음부터는 오지도 마.(웃음)
너도 나도 잘살자는게 노나메기
지 - 노나메기는 우리들의 전통적인 살림, 전통적인 정서라고 말씀하셨는데요. 노나메기 사상이라는게 어떤 사상입니까?
백 - 지금 우리가 사는 자본주의 세상은 너도 일하고 나도 일하는 세상이 아닙니다. 그럼 어떤 세상이냐, 노동자, 농민, 도시서민들은 일을 하려고 애를 쓰지만 그래도 못살아요.
그런데 돈놀이하는 사람들, 모라돈이라고 아시오. 독점자본은 일을 안하고, 돈의 이자만 따먹어, 투기를 해서 초과이윤만 따먹어, 이게 독점 자본주의야, 그러니까 너도 일하고 나도 일하는 벗나래를 만든다는 것은 독점자본이 지배하는 착취구조를 없애자는 겁니다.
듣기 싫어? 말을 해봐. 듣기 싫으면 싫다고. 이건 지선생한테 소리지르는게 아니야, 요새 젊은이들한테 할 얘기가 없으니까 늙은이가 내용이 없으니까 목청만 높이는거지.(웃음)
두 번째로 노나메기 벗나래라고 하는 것은 너도 일하고, 나도 일하고 그리하여 너도 잘살고 나도 잘사는 세상을 만들자는 거거든. 너도 일하고 나도 일하고 그래서 너도 잘살고 나도 잘사는 벗나래를 만들자는 거거든.
‘아니 백선생 요즘이야 시장에 가면 물건이 산더미처럼 쌓여있고, 돈만 있으면 자가용도 있고, 돈만 있으면 3000만원짜리 골프채도 있는 판인데, 그러니까 다 잘사는 판인데, 하루에 7만명씩 인천공항을 통해서 외국으로 놀러가는 판인데, 이거야말로 나도 잘살고 너도 잘사는 세상이 아니냐’ 이렇게 말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잘못 보는 거죠.
지금 우리 땅에는 절대 빈곤층이라는 게 있습니다. 일을 할래야 일을 할 수가 없고, 또 일을 해봐야 생활이 안돼요. 먹고 살수 없는 절대빈곤층이 요 몇 년전까지만 해도 15~16%였는데, 지금은 20%야. 아시겠어요?
그런데 우리나라에서 잘사는 사람은 얼마요? 이게 한 20%야, 그러니까 잘사는 사람 20%가 우리나라의 80%를 지금 지배하고 있는 겁니다. 우리나라는 이렇다고 쳐요. 미국 잘산다고 하지만, 그것도 잘못 본 거야. 미국에는 병이 나도 병원에 갈 수 있는 딱지가 없는 사람이 많아요.
딱지가 뭐야, 의료보험 카드야, 카드는 CARD야, 왜 그 말을 써요. 딱지 그래야지, 그 카드란 말에 미 제국주의 침략의 마수가 묻어 있어요. 이런 것이 민주주의의 아우성이야, 진짜 양심의 아우성이지, 그렇죠? 그 의료보험 딱지가 없어서 병원에 가지 못하는 사람이 약 4000만명이야, 미국 시민의 비율로 보면 15%야, 그러면 전세계에서 2달러도 못가지고 사는 사람이 얼마나 되는지 아세요? 2불이면 우리나라 돈으로 약 2500원이야, 하루에 그것도 못가지고 사는 사람이 지금 전세계에서 약 30억이야, 앞으로 15년 뒤에는 중국의 가난한 인구는 좀 준다고 하지만, 아프리카의 가난한 인구는 약 1억이 더 늘어난다고 유엔 식량농업기구에서 발표했어요.
지금 이 자본주의, 독점자본이 지배하는 벗나래, 미국의 독점자본이 지배하는 이 벗나래는 너도 나도 일하는 벗나래도 아니고, 그리하여 너도 나도 잘사는 벗나래가 아니야, 배가 고파서 굶어죽는 사람이 하루에 3만 5000명이야, 1년에 1400만이야, 매일 매일 먹을 물을 못 먹어서 목이 말라 죽는 다섯 살 미만의 어린아이가 하루에 5000명씩 나와, 돈이 없고 쌀이 없어서 굶어죽는 것이 아니라 목이 말라 죽는 애가 하루에 오천명씩 나온다니까.
이건 너도 나도 잘사는 세상이 아니잖아. 독점자본이 지배하면 그게 안돼. 그래서 기본적으로 독점자본이 지배하는 세상은 불평등한 사회고, 그나마도 독점자본이 지배하는 세상은 몇 사람 잘사는 것 같아도 올바로 잘 살지 못해. 앞으로 25년만 있으면 남극의 얼음덩어리와 북극의 얼음덩어리가 거의 다 녹아내린다면서. 최소한 알프스에 있는 만년 얼음덩어리는 다 녹아내린대. 25년만 있으면. 왜 그래, 이산화탄소 같은 것을 많이 배출시켜서 대기가 오염되어 있잖아.
그래서 공기가 따뜻해져서 그런거야, 거 왜 그런거야, 간단한 거 아닙니까? 자연의 질서를 파괴하는 물질을 초판부터 거두어야 할텐데, 이윤생산 때문에 이윤생산의 모순 때문에 돈만 벌려고 환경파괴물질을 자연에 그냥 내버리거든, 방기를 해서 그런 거야, 이윤생산의 모순이 자연의 질서를 깨뜨리고 있어요.
그래서 25년뒤에는 알프스의 만년얼음덩어리가 녹아나고, 남북극의 얼음덩어리가 녹아서 바닷물의 온도가 달라지고, 해수면의 흐름이 달라지고 그래서 비가 오는 데가 있고, 안 오는 데가 있고, 폭풍이 부는 데가 있고, 안부는 데가 있고, 이 지구가 망하게 되어 있어요.
잘 살되 올바로 잘 살지 못하잖아, 돈이 이 세상을 지배하는 것은 올바로 잘 사는 세상이 못된다는 겁니다. 사람의 마음이 사람을 떠받드는 이런 세상을, 이런 벗나래를 만들어야 된다는 것이 우리들의 전통정서 노나메기다 이 말이에요.
이런 것은 코란경에도 없고, 성경에도 없고, 불경에도 없고, 물론 과학적 사회주의에도 없어. 과학적 사회주의에는 너도 일하고, 나도 일하자, 그래서 너도 잘 살고, 나도 잘 살자는 이야기까지는 있어요. 그러나 올바로 잘 살자는 얘기는 우리 전통 정서에 밖에 없으니까 이것을 오늘날 과학적인 이론, 실천적인 이론으로 발전시키자는 것이 노나메기 사상의 기본적인 요구예요. 짧은 시간에 얘기했지만, 그런 겁니다. 이건 꼭 얘기해주세요.
박정희 청산 시대적 과제
지 - 우리가 통일을 위해서 어떤 노력들을 해야한다고 생각하십니까?
백 - 여러 각도인데, 맨 처음에는 통일이 무엇인가를 분명히 제시해야 됩니다. 통일의 알짜, 저는 그것을 노나메기 벗나래를 만드는 거라고 얘기하고 있고, 또 이 분단을 최고의 가치로 체제화하는 일체의 법률과 제도를 청산하고 극복해야합니다. 첫째는 국가보안법 없애야 해요. 둘째는 모든 경제 활동을 시장경제에 맡기자고 하는 잘못된 논리를 극복해야 됩니다.
지금 시장경제를 반대하면 국가보안법에 걸리잖아요. 그런데 시장경제를 그대로 이행하는 나라는 이 지구상에는 없어요. 미국도 시장경제가 아니잖아요. 금리를 올렸다가 내렸다가 하는 것은 미국의 권력이 하는 것이지, 시장경제가 아니잖아. 그렇다면 금리도 시장에 맡겨야 될 거 아냐, 미국에 종속적인 나라, 미국의 한 주로 편입되어 있는 이 남쪽 땅에서만 시장경제, 시장경제하지, 전 세계에서 눈 좀 뜨고 있는 경제학자들은 시장경제라는 말을 안 써요.
시장경제를 이렇게 편법으로 도입할 수는 있어도 절대적인 경제원리로 채택하는 나라는 없어요. 미국도 그렇지 않잖아, 시장경제를 최고의 가치로 법률, 제도화한 것 이것을 청산해야 합니다. 세 번째로 제도적인 것이 있어요. 문화교육입니다. 미국의 썩은 문드러진 문화를 무제한으로 수입하는데, 이거 잘못된 겁니다.
미국의 썩어 문드러진 문화가 들어오는 것은 다 옳다는 거 아닙니까? 학교에서도 먹고 놀고 이런 것은 다 좋다는 거 잖아요. 좀 반대하고 비판하는 의식적인 교양을 가지면 쓸데없는 거라고 그러잖아요. 그것이 한 문화적인 현상으로만 있는 것이 아니라 제도적인 조건으로 있어지고 있거든요. 이 세가지를 없애야 되고, 그 다음에 내가 인적 청산을 얘기할 게요.
길게 얘기 안 하갔어, 친일파 민족 반역자는 청산해야 됩니다. 상징적인 친일파 민족반역자는 누구냐, 며칠전에 충북대학교에서 가서 얘기했어요. 이완용, 송병준은 친일파 민족반역자라는 것을 다 알아요. 근데 그건 조선왕조 말엽에도 권력가였어요.
권력가들이 새로운 권력인 일본제국주의에 빌붙었거든, 두 번째로 최남선, 이광수 같은 지식인이요, 상당한 의식분자들이 변절을 해서 친일을 한 것은 뿌리를 샅샅이 청산해야 됩니다. 세 번째로는 일본이 한반도를 자기네 식민지로 지배하던 역사적 계기를 한일합방, 일한합방이라고 하잖아요. 그 뒤에 태어난 세대의 친일망국행위입니다.
그 대표적인 인물이 박정희입니다. 청산해야 됩니다. 또 청산해야 될 것이 있어요. 친일파 민족반역자는 친미파 민족반역자라니까. 친미파 민족주의자도 청산하고자 하는 우리 민족의 소박한 요구가 대중화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야 됩니다. 나 같은 사람 얘기 아무도 안듣잖아요.
내가 한겨레 신문의 주주야, 내가 그런데도 친일파 민족반역자 청산하자, 아울러 친미파 민족반역자도 청산하고자 하는 내 얘기를 아무도 취재를 안해요. 아무도 안해, 똑같거든. 아 그건 좀 이르다고. 이르고 늦고가 없다니까. 오늘 아침 한겨레 신문에 내 책 ‘백기완의 통일 이야기’ 광고 나온 것 좀 봐요. 한번 읽어보라니까. 그 책 내용이 요약이 되어 있다니까.
지 - 74년 <유신헌법철폐 100만명 서명운동>을 주도하셔서 긴급조치 1호에 의해 구속되셨고, 79년
백 - 또 하나 있지. 권양 성고문 사건 폭로대회를 내가 주도했거든. 대회장이 함석헌, 문익환, 계훈제, 박형규, 백기완, 김대중, 김영삼이 이렇게 대회장인데, 목숨을 걸고 대회장에 나온 사람은 나 하나였어. 아무도 이 얘기를 안해.(웃음) 그걸 주도하고서 7개월을 도망다니다가 잡혔어요.
그때 내가 왜 도망 다녔는지 알아. 그것뿐이 아냐. 그 날이 뭔고 하니 권양 성고문 사건 진상폭로대회거든, 권양 성고문 사건 진상규명을 위해서 폭로대회를 주관했다고 날 잡으러 다녀서 7개월 도망 다니고, 우리 큰 딸은 지금 성공회대 교수하고 있는데, 노동해방운동한다고 잡으러 다녀서 2년을 도망 다니고, 둘째딸은 감옥에 있고, 우리 집안을 몽땅 경찰이 와서 지키는데, 경찰차 7대가 지키고 있을 때가 있었어요. 나는 유명인사도 아니고, 권력을 노리는 정치꾼도 아닌데 말이야.
7개월 도망 다니다가 내가 잡혔을 때 몸무게가 40kg도 안됐어요. 검사실에서도 잡아넣기 힘들다는 말이 있었는데, 그런데 청와대에서 전화하대. 그게 86년도야, 전두환이겠지, ‘그 새끼 악질이니 잡아넣으라’는 소리가 전화를 통해 들리더라구. 눈이 펄펄내리는 밤이야. 1986년도 12월쯤 됐을 거야. 무척 추웠어, 내가 걸어도 못들어가고 들것에 실려서 감옥 문에 들어가면서 그랬어. ‘대머리 야이 쌍시옷, 니이미 쌍시옷’이라고 그랬어.
그랬더니 교도관이 뭐라고 하는지 알아. ‘점잖은 선생님께서 어떻게 그런 쌍소리를 하세요?’ 그래서 “야 너 약올라봐. 전두환이 물러나라는 말로는 성에 안 차, 전두환 쌍시옷 물러가라고 해야지‘라고 대답했어. 그 추운 겨울에 나를 이 책상보다 조금 더 큰 독방에 집어 넣더라구. 그게 86년도 겨울이야. 그게 내가 세 번째 감옥 갈 때야.
지 - 그런 고난의 세월을 살아오신 분으로서 박근혜 대표의 국가정체성 문제제기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백 - 글쎄 박정희가 5.16 군사반란을 일으켜놓고도 국가정체성 그랬거든, 그런데 박근혜라는 사람이 뭐하는 사람이지?(웃음)
박근혜 씨가 뭐하는 사람이지?
지 - 지금 한나라당 대표 아닙니까?(웃음)
백 - 한나라당이라는 당이 아직도 있나?(웃음) 나 이거 정말. 국가정체성은 이 분단의 현실을 국가주의적으로 귀결지은 것을 국가정체성으로 보면 안돼. 분단의 현실을 타파하고자 하는, 그래서 자주적인 민족해방을 하고자 하는 뜻이 서려 있는 이것이 진짜 이 땅의 수만년의 역사적 전통에 빛나는 국가정통성이라니까.
언론기관들은 국가 정통성의 역사적 의미를 분명히 가려줘야돼. 그러니까 박근혜 씨가 하는 국가정체성이라는 말은 역사적으로 봐서 아무 의미도 없는 반동성만 있다고 나는 그렇게 생각하고 싶어요.
지 - 아직도 선생님이 쓰신 ‘껍데기를 벗고서’ 같은 책이 법원에서 인정하는 대표적인 이적 표현물로 되어 있는 상태인데요.
백 - 그렇게 되어 있어요? 84년도인가 85년도에 나온 책인데.
지 - 얼마전 신문기사를 보니까 그 책이 포함되어 있더라구요.
백 - 전두환 때인데, 참 부드럽게 쓴 건데... 그때 내가 병원에 갈 돈이 없었어요. 84년인가 몸이 아파도 약도 못먹을 땐데, 내가 전두환한테 매를 맞고 14번을 입원했어요. 한번 입원하면 길면 3개월이고, 짧아야 한달이야, 14년 동안을 입원했는데, 처음에는 우리 동지들이 병원비도 보태주더니, 내가 하도 지겹게 병원에 입원하니까 나중에는 보태주지도 않더라구.
그때 동아일보에서 언론자유운동을 하다가 쫓겨난 정동익 선생이라고 있어요. 그 양반이 무슨 아침이라고 하는 출판사를 했던가 그래요. 거기서 원고도 없는데, 인세를 미리 줬어요. 그래서 그걸 가지고 한약도 먹고, 병원도 가고 그랬어. 그걸 다 썼어. 그런데 책을 못써줬어. 머리가 띵해서 글을 못쓰겠어요. 그래서 아마 어떻게 어떻게 해서 출판사에서 어느 정도 팔 수 있게 할려고 쓴게 ‘껍데기를 벗고서’일거야.
지 - 선생님께서는 민중후보로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신 적이 있으신데요. 지금 보면 노무현 대통령에게 상당한 기대를 걸었는데, 많이 실망한 부분이 있는데요. 어떻게 보면 그게 개혁세력의 한계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민중을 대표하는 정치세력, 예컨대 지금의 민주노동당 정도의 지향을 가진 정치세력이 집권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고 보십니까? 있다면 그 시기는 언제쯤이라고 보십니까?
백 - 나는 이런 역사적 관점을 갖고 있거든요. 이를테면 선거를 전제로 한 민주질서 밑에서 의회 진출을 많이 하면 집권할 수 있는 조건이 마련되는 것이 아닙니까? 그런 식으로 집권했던 외국의 여러 정당들의 예를 더듬어보면 독점자본주의의 잘못을 극복하는데, 아무 이바지를 못하고, 그냥 독점자본주의 체제에 동화되어 가더라구요.
영국의 노동당이 그랬고, 독일의 사민당이 그랬고, 일본의 사회당도 그랬습니다. 그래서 나는 지금 이 땅에 노동당이라고 하는 게 있긴 하지만, 의회주의를 통해서 집권할 수 있는 계기는 세월이 흐르면 오겠죠.
그렇지만 20세기의 역사적인 질곡을 아주 처참하게 강화하고 있는 미국의 금융제국주의를 해체하는데 이바지할 것 같지는 않아요. 민주노동당 젊은이들한테 이런 얘기를 해주고 싶은데, 그 젊은이들이 내 말을 듣나요? 조금 더 깊이 있게 미국의 금융제국주의의 세계지배를 비판하고, 청산극복하기 위한 노선을 바로 잡았으면 좋겠다는 이런 생각을 해봐요. 그런데 그렇게 생각해봐야 요새 젊은이들 각자가 다 천재니까 남의 얘길 듣습니까?
지 - “노동자들이 국회에 들어가서 떠들게 된 거 잘 된 거에요. 군소리 할 거 없어요. 그러나 노동운동은 변혁 운동이요. 역사를 바꾸는 운동입니다. 그 운동이 국회에서 해결될 수는 없는 겁니다”라고 말씀하셨는데요. 지금 말씀하신거하고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는 것 같은데요.
백 - 뭐 똑같은 얘기지.
일하는 사람이 주인되는 세상으로
지 - 말씀하신 것처럼 민주노동당이 있긴 하지만, 집권을 하기 위해서는 타협을 해야 될 거고, 여러 가지 어떻게 보면 변화를 하게 될텐데, 그런 것 없이 구체적으로 선생님께서 말씀하시는 미국의 금융제국주의를 극복하려면 우리가 어떤 노력을 해야한다고 보십니까? 선생님 말씀에 공감하지만, 방법적인 면에서 굉장히 힘들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거든요.
백 - 막 월남에서 북폭이 재개되던 것이 1968년도거든요. 미국의 깡패같은 대통령이 북폭을 재개할 때 세계 모든 신문 방송은 북쪽 베트남은 완전히 불바다가 됐다, 이제 숨쉴 곳은 깊이 깊이 두더지처럼 들어간 땅굴 속 밖에 없다, 밝은 한낮으로는 못 나온다, 거기서 결국은 질식해서 혁명정신은 사라질 것이라고 그랬거든.
그런데 월남 사람들은 그렇지 않았던 모양이야. 땅굴에서도 끊임없이 밝음을 확인하면서 싸워왔고, 1968년 북폭이 재개되고, 얼마 안있어서 승세가 바뀌면서 1969년도서부터 월남전에 대한 미국의 패배적인 감정은 전미국을 휩쓸었거든요.
지금 미국의 금융제국주의가 압도적으로 전세계를 찍어 누르고 있는 것 같아도 그래서 그걸 청산하는 것이 아득한 것 같아도 안 그렇습니다. 전세계 양심의 목소리는 더 거세져 가고 있고, 맑은 마음, 착한 마음의 행동반경은 나날이 넓어가고 있고, 그것의 과학성은 매일 매일 조직화되고 있고 그렇지 않습니까?
다만 우리 땅이 조금 늦는 것 같은데, 그건 아마도 잘못된 분단체제 때문입니다. 국가보안법으로 우리를 찍어 누르고, 냉전수구반동세력들이 큰 소리 치고, 8.15 해방 직후에 친일파 민족반역자를 청산을 못한 것이,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일당들을 청산하지 못한 또 한번의 범죄를 저지른 겁니다.
그 전두환, 노태우가 감옥에 있을 때 감옥에서 내놓으면서 뭐라고 했어요. ‘나는 개인적인 보복을 원치 않는다’, 전두환, 노태우가 감옥에 있는 것은 개인적인 보복이 아니었잖아요. 역사적 청산이었죠.
그런데도 우리 대중들은 그 말에 무슨 의미가 있지 않느냐 하면서 헷갈리다 보니까 오늘날 다시 친일반역자와 그 후예들이 큰소리치는 세상이 되어버렸다 이 말입니다. 그런 반역적인 힘이 한 세력으로 조직화되어서 지금 우리를 괴롭히고 있지 않습니까? 이 땅에 재벌들이란 또 뭡니까? 친일파 민족반역자들의 후예요. 나아가서는 5.16 군사반란이 있은 다음에 형성된 재벌들입니다. 전두환때 약자를 강탈해서 배가 부른 재벌들이요, 그 다음에 김영삼, 김대중 민간 정부 밑에서도 각종 특혜를 받아서 배를 불려온 사람들이 재벌 아닙니까?
그런데 재벌 청산이라는 말 아무도 안해요. 너도 나도 마음 놓고 기업할 수 있는 세상을 만들자고만 하고, 그러나 양심이 마음 놓고 살 수 있는 세상, 마음 놓고 일할 수 있는 세상, 일하는 사람이 주인인 세상을 만들어야 된다는 것은 인류의 보편적인 염원이거든요.
그런데도 인류의 보편적 염원까지도 타살하는 요새 권력자들, 지배계층들, 돈 많은 사람들의 폭언, 망언을 볼 때 이제야말로 친일파 민족반역자, 친미파 민족반역자, 썩어문드러진 세력들을 아울러 청산하는 계기를 꼭 잡아야 된다고 나는 그렇게 주장을 하고 있죠.
지 - 지금 우리 국민들 사이에서는 박정희 신드롬이라는 말이 몇 년전부터 나돌았고, 투표를 하면 젊은이들한테도 가장 존경하는 대통령으로 박정희가 꼽히고 있고, 간혹 ‘전두환 시절이 경제적으로 더 좋았다’는 말도 가끔 들리지 않습니까?
백 - 그런 얘기는 털끝만큼도 이해해줄 필요가 없을만큼 잘못된 생각들이에요. 그런데 그런 잘못된 생각이 떠돌게 된 까닭은 어디에 있느냐 그겁니다. 친일파 민족반역자, 친미파 민족반역자, 부패세력을 청산하는 것이 역사의 발전이라고 하는 대원칙을 세우지 못했거든요. 누구 탓할 것도 없이 너도 나도 그랬습니다.
김영삼 전대통령은 전두환, 노태우와 짜고 대통령을 하고, 김대중 씨는 5.16 군사반란의 주역 김종필과 짜고 대통령을 하고, 또 요새 노무현도 썩어문드러진 보수반동적인 세력하고 연결이 돼서 정치적인 권한을 쥐다가 보니까 이게 지금 친일파 세력, 친미파 세력, 부패 세력이 권력 내부에도 있고, 권력 밖에도 있고, 이 사회 체제의 중심부에 자리잡고 있어요.
여기서 오는 일종의 패배감이 ‘박정희 때가 나았다. 차라리 전두환 때가 나았다’고 하는 허무주의적인 정서를 갖게 만들지 않았느냐 하는 생각이 들어요. 그래서 허무주의하고 맞싸울 수 있는 노나메기주의를 일반화시킬 수 있는 계기를 쟁취하자는 겁니다.
신문방송에서 노나메기 얘기를 좀 하도록 하자는 거예요. 한 놈도 노나메기에 마주해(대해) 취재하는 놈 없고, 물어보는 놈도 없어. 마음 놓고 기업할 수 있는 세상이란 뭐요. 제국주의 침략을 마음놓고 할 수 있는 세상을 만들자는 것과 똑같은 얘기예요. 동의어야.
정의는 앞만 보고 나가야한다
지 - 요즘 정치권은 전반적으로 어떻게 보십니까?
백 - 글쎄 뭐. 정치권 얘기하니까 이런 사람도 있고, 저런 사람도 있지만, 정치권 그러면 지금 우리나라에 정치인 없잖아요. 사기꾼은 있어도. 사기 협잡은 있어도 정치는 없잖아요. 그래서 그렇게 물으면 그렇게 대답하고 말랍니다.
지 - 선생님 앞으로 계획하고 계시는 것은 있으십니까?
백 - 나는 죽기 전에 노나메기 벗나래를 이룩할 수 있는 조그만 텃밭을 만들고서 내 자연적인 목숨을 다해야 되지 않느냐 이런 생각이에요. 이번에도 장산곶매 이야기가 좀 팔렸으면 그걸 가지고 노나메기 문화관을 만들어 볼려고 그랬더니 우리 지선생도 안사봤다고 하는데, 누가 사보겠어요?(웃음)
지 - 꼭 사서 읽겠습니다.
백 - 불경, 성경만 보지 마세요. 그것만 갖고는 안됩니다.
지 - 마지막으로 해주실 말씀은 없으십니까?
백 - 내 마지막으로 시 하나 읊어줄게. 푸념이라는 시, 헛소리라는 시야.
“그때 나도 흙탕물에 뛰어들지를 말고
살살 마른 자리로 빠졌더라면
아 그때 나도 꺾인 두 무릎일망정 얌전하게 꿇고서
고개를 조아렸더라면 배는 탔을거고 살아도 죽었을거고
노을이 깃든 이제야 내 손바닥 위에 올려진 내가 보이는 듯 한데
아 둘레는 왜 이리 어두운가
뛰어노는 아이들의 밤을 가르는 소리 들리네“
얼마전 지하철 파업노동자들이 7000명 모였어. 그날 밤에 가서 격려 연설을 하면서 내가 이런 얘기를 했어. 여러분 정의는 꼭 승리한다는 말을 지금도 믿고 있죠? ‘네’ 그래요. 정의는 꼭 승리하는데, 현실적으론 정의가 눈에 보이게 승리한 것은 보기가 좀 힘들었죠.
그런데도 정의는 꼭 승리한다고 우리는 믿고 살지 않습니까? 왜 우리는 그것을 철학처럼 믿고 살까요? 간단합니다. 간단해요. 정의는 한 발자욱이라도 뒤로 물러서면 지는 겁니다. 정의는 그냥 앞만 보고 나가야 됩니다. 파업노동자 여러분 앞만 보고 나가십시오. 반드시 이깁니다. 그리고 내가 마지막으로 푸념이라는 시를 읊어줬어
“그때 나도 흙탕물에 뛰어들지를 말고
살살 마른 자리로 빠졌더라면
아 그때 나도 꺾인 두 무릎일망정 얌전하게 꿇고서
고개를 조아렸더라면 배는 탔을 거고 살아도 죽었을 거고
노을이 깃든 이제야 내 손바닥 위에 올려진 내가 보이는 듯 한데
아 둘레는 왜 이리 어두운가
뛰어노는 아이들의 밤을 가르는 소리 들리네“
이러면서 내가 울고 내려왔어요. 그런데 중요한게 있어, 배는 탔을거고, 이 전두환 일당들한테 꺾인 두 무릎일망정 얌전히 꿇고서 고개를 조아렸더라면 배는 탔을 거고, 그러나 살아도 죽었을 거고, 이게 시야. 배를 타고 강은 건넜을 거야, 그러나 그렇게 살았어도 난 죽었을 거라는 거야, 이게 시야, 제일 핵심이야. 아마 세상을 살아가면서 보니까 그 구절이 딱 떠오르더라구.
배는 탔을 거고, 살아도 죽었을 거고, 아 이걸 시로 꾸미자고 해서 쓴 게 이거야, 입으로 쓴 거야, 글로 안썼어. 나는 시를 입으로 써. 그리고 다음 판에 글로 옮기는 거지. 인터뷰란 말도 마음에 안들어, 댓거리란 말이 있잖아. 주고 받는 거야. 핸드폰이라는 말도 영국에서도 작은 전화 그러잖아. 손 전화 그래도 좋은데, 우리는 꼭 핸드폰이라고 하잖아. 서프라이즈 가서 좀 얘기를 해줘요. 이름을 바꿀 순 없냐고.
지 - 혹시 저희 매체에 연재를 해주실 생각은 없으십니까?
백 - 이렇게 내가 써놓은 시를 읊고, 시를 쓴 마음을 몇마디 곁들여 주고 이런 걸 하면 어떨까? 한번 연구해봐요. MBC에서도 문화특강을 한 적이 있는데, 진행하던 여자도 울고, 사진 찍던 사람도 울고, PD도 울어서 촬영이 중단됐었어요. 근자에 썼던 시가 있는데, 간이역이라고, 간이역이라도 갈거나 하는 시가 있어. 사람들의 정서 세계를 슬쩍 건드려주면서 사람들을 바뀌게 해야 할 것 같아. 자본주의 체계는 일정한 사고 체계를 갖지 못하게 하잖아.
주고받는 것이 그냥 기분이고, 한때의 즐거움이고 이런 걸로 인간을 껍데기로 만들잖아. 문화적으로 타격을 주고, 예술적으로 어떤 새로운 감흥을 주는 게 없어. 우리 축구장에 가보면 꼭 파이팅 그러잖아. 그 말은 지구상에는 없어.
미국놈들도 안쓰고, 영국놈들도 안쓰는데. 그런 엉터리말이 어디 있어? 내가 세계축구대회를 할 때 그랬거든, 몇 번 방송에도 나갔는데, ‘파이팅’ 그러지 말고 우리 말로 ‘아리아리’ 그러자고 했거든. ‘아리아리랑 쓰리쓰리랑 따당땅따두당 뚜당땅따두당’ 그럴 때 쓰는 아리아리야. 없는 길은 찾아가고, 그래도 길이 없으면 길을 만들면서 가자는 것이 아리아리거든.
끊임없이 가는 얘기야, 끊임없이 길을 만들면서 가자는 거지. ‘파이팅’, 누굴 죽이자는 얘기 아니야? 얼마전에 팔십이 넘은 노인네들이 전국노래자랑에 나와서 자기네하고 친한 사람이 노래자랑에 나왔는데, 1등 먹으라고 ‘파이팅’ 그러더라구. 지금 정서가 다 이상해졌다니까. 문화예술적인 얘기도 좀 할 생각을 해. 정치 그래봐야 정치도 아닌 사기꾼들의 장단에 놀아나서는 안돼. 지금 정치가 어디 있어? 사기꾼들 사기 치는 거 밖에 더 있어?
지 - 그래서 저도 정치만 변해서는 사회가 변하지 않고, 사회구성원들이 의식이 변할 때 그만큼 사회가 변한다고 믿고 있습니다. 그래서 선생님같은 분들이 좋은 말씀을 많이 해주셔야할 것 같습니다.
백 - 나하고 친한 친구가 프레시안도 만들었어. 이근성, 여기도 늘 놀러와. 젊은 날에 나와 같이 감옥도 들락날락한 친구인데, 중앙일보 그만두고, 프레시안을 만들어가지고 요즘 젊은이들을 앞세우고 자기는 뒤에서 도와주는데, 그 친구들도 그런 얘기 어떠냐고 해서 ‘시간이 없다’고 하고 말았는데, 요새 하도 젊은이들이 개죽이 되어가고 있기 때문에 내가 하는 이야기예요. 개죽 이야기도 얼마나 극적인 이야기야. 가랑잎이 되어야지, 왜 개죽이 되면 되겠느냐는 이 이야기야,
지 - 그러면 제가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백 - 서두르지는 마. 지금 나는 능력이 없어. 건강도 그렇고. 그냥 그렇다는 얘기야. (뒤에 있는 그림을 가리키면서) 근데 이거에 대해서는 왜 안물어봐? 이게 임옥상이 그린건데, 양아치 부시라는 그림이야, 그러니까 부시는 깡패도 못되고 사람의 뒷통수나 까는 양아치 부시, 부시방한 반대집회 준비를 여기서 했는데, 우리 신문기사에는 한다는 말도 안나왔고, 했다는 말도 안나왔어요. LA 타임스에는 나왔는데, 우리는 한 줄도 안나왔어. 그걸 보면서 우리 언론에 또 한번 절망했지.
첫댓글 신자유주의=금융,군사,문화제국주의... 보안법폐지, 친일청산, 통일과 노나메기, 손전화, 아리아리, 프레시안... 들꽃님, 좋은 자료 고맙습니다. 아리아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