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의 살아가는 이야기
나뭇잎 배
석야 신웅순
1970년대 중반, 나는 고향에서 초등학교 선생을 했다. 6,7학급의 자그마한 학교였다.
학교 앞에는 작은 개천이 흐르고 개천 너머엔 넓은 들이 펼쳐져 있었다. 여름 들녘은 초록 물결이요 가을 들녘은 황금물결이다.
해마다 가을이면 학교 간 군경연 음악합창경연대회가 있었다. 나는 아이들을 데리고 ○○초등학교로 예선에 참가했다. 불렀던 곡은「나뭇잎 배」였던 것 같다.
내가 재직했던 초등학교에 풍금 두 대가 있었는데 건반 한 두 개 정도는 이빨이 빠져있었다. 화음과 박자는 감으로 때웠다. 학교의 명예를 걸고 나는 아이들과 열심히 합창 연습을 했다.
그날 아침 들녘은 그늘 한 점 없었다. 가을 땡볕에 한 시간 정도 걸었다. 아이들은 지쳐있었다. 학교 교사 귀퉁이 여기저기서 다른 학교 아이들의 합창 소리가 들려왔다. 우리도 나무 밑에서 예행연습을 했다.
최선을 다했으나 본선에는 그만 들지 못했다.
돌아오는 발길은 무거웠다. 하늘에서 쏟아지는 오후의 가을볕은 유난히도 따가왔다. 벼알이 톡톡 익어가고 있었다. 아쉬웠는지 아이들은 삼삼오오 짝을 지어 반항하듯 동요를 불러재켰다.「초록바다」,「과꽃」,「오빠 생각」……. 아이들의 노래소리는 하늘 높이 올라가 들녘 끝까지 퍼졌다.
오후의 가을 들녘은 유난히도 멀었다. 황금물결 위로 종이배처럼 떴다 잠겼다하는 먼 산과 개천 그리고 미루나무들. 학교에 도착할 때까지 아이들은 목이 쉬도록 노래를 불렀다. 어느새 아이들은 내 시야에서 아득히 멀어져 갔다.
퇴근길에는 삼거리 주막집이 있었다. 동료 선생과 쉬었다가는 마음을 풀고 가는 곳이다. 해는 뉘엿뉘엿 지고 있었다. 노을을 마시던 그 때의 텁텁한 막사발 막걸리를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그 때 그곳을 생각하며 썼던 오래 전의 졸시이다.
언제나 고향 저녁이었다.
자주 비도 내리고
가끔 눈도 온다
사람들의 눈물도 더러 있다.
적막도 있다
때때로 타동네 노을도
마중 나와 있다
- 신웅순의 「주막집」
해가 서산에 지면 이내 어둠이 찾아왔다. 터벅 터벅 자전거를 끌고 갈 때면 갈대밭 사이로 저녁 바람이 서늘했다. 이름 모를 산새 소리가 적막을 깼다.
세월은 그 둑길로 읍내를 지나 일찌감치 장항선 열차를 탔다. 서울로 얼마간 있다 여기까지 나와 함께 왔다. 반세기가 걸렸다.
빈 술잔 마른 안주 남루 가슴 비벼가며
주거니
받거니
세월
인생 나 셋
우리는
어느 회억의 역
지나고 있을까
- 신웅순의 「진눈깨비」
육십이 다 되었을 아이들이다. 지금 어디서 무얼 하며 살고 있을까. 고향의 감나무, 앵두나무, 살구나무, 개복숭아는 있을까.
내가 근무했던 학교는 오래 전에 폐교되었다. 지금은 아이들의 목소리만 남아 해마다 예제서 풀포기로 돋아나고 있으리라.
세월은 나뭇잎 배였다.
-2024.5.18. 여여재, 석야 신웅순의 서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