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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5월 19일 부활 제6주간 금요일
<그 기쁨을 아무도 너희에게서 빼앗지 못할 것이다.>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6,20-23ㄱ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20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는 울며 애통해하겠지만 세상은 기뻐할 것이다.
너희가 근심하겠지만, 그러나 너희의 근심은 기쁨으로 바뀔 것이다.
21 해산할 때에 여자는 근심에 싸인다. 진통의 시간이 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이를 낳으면, 사람 하나가 이 세상에 태어났다는 기쁨으로 그 고통을 잊어버린다.
22 이처럼 너희도 지금은 근심에 싸여 있다. 그러나 내가 너희를 다시 보게 되면 너희 마음이 기뻐할 것이고,
그 기쁨을 아무도 너희에게서 빼앗지 못할 것이다.
23 그날에는 너희가 나에게 아무것도 묻지 않을 것이다.”
불확실한 세상을 잘 살기 위해서
1970년대 영국의 BBC 방송에서 하버드 대학교의 존 케네스 갤브레이스는 어려운 경제학을 '불확실성의 시대'라는 강의로 아주 쉽게 설명하였고, 그 때문에 큰 명성을 얻었습니다. 불확실성의 시대는 그 당시에 아주 큰 반향을 불러 일으켰고 사회의 큰 이슈가 되었습니다. 그는 20세기의 경제를 불확실한 상황에서 전혀 예측할 수 없기 때문에 적합한 해결 모델을 찾을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 지금도 경제학뿐만 아니라 정치, 경제, 사회에서 아무도 최적 해를 구할 수 없는 것은 사실입니다. 물론 전에도 그랬지만 변화의 가속도가 붙어 있는 현재는 최적해 모델을 더욱 찾기 힘들어졌습니다.
사실 앞날을 미리 알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고 하느님만이 아실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많은 정보와 여러 가지 상황을 토대로 예측하거나 전망하는 것은 가능할 것입니다. 그것이 비록 사실과 다르다고 할지라도 예측과 전망은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며, 우리는 예측과 전망을 통해서 우리의 방향을 정해야 합니다. 그 예측과 전망에 대하여 예수님은 성경 전체를 통해서 강조하시고 계십니다. 표징을 보고 하느님을 깨닫고, 하느님의 가르치심을 알라고 하십니다. 우리가 지금처럼 살면 안 된다고 말씀하시고 지금을 보면 앞을 훤히 알아볼 수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회개하고 새사람이 되라고 강조하여 말씀하십니다.
첫 째로 이러한 불확실한 현세에서 우리는 예측과 전망만으로 살아가려니 걱정되고 근심이 떠나질 않습니다. 우리는 그러면 무엇을 근심하고 걱정하나요? 우선 다가올 미래가 어떻게 될지 모르기 때문에 근심하고 두려워합니다. 오늘 제자들과 같이 예수님께서 떠나신다는 사실로 미래를 전혀 알지 못하기 때문에 두렵고, 불안해서 근심하고 걱정합니다. 우리는 내일을 걱정하면서 오늘을 삽니다. 아무도 미래를 알 수 없기 때문에 현재 돌아가는 상황을 접하면서 미래를 예측하거나 전망해보면 더 걱정되는 것도 사실입니다.
둘째로 우리는 어떤 상황이나 여건, 환경에 대하여 확신이 없기 때문에 두렵고 불안해합니다. 그래서 자신이 없고 근심과 걱정이 많은 것입니다. 돈이나 건강 때문에 우리는 지금도 걱정하고 있습니다. 병을 앓고 있으면 그 병에 대하여 나을 것이라는 확신이 없기 때문에 걱정하고 불안합니다. 그리고 당장 돈이 없기 때문에 돌아오는 카드빚을 갚을 수 없기 때문에 우리는 걱정하고 있습니다. 또 한편으로는 자신의 능력으로 해결할 수 없음을 비관하고, 초라하게 느껴져 불안과 근심 걱정에 가속도가 붙는 것입니다.
셋째로, 관계에서 오는 근심 걱정이 있습니다. 인간관계와 하느님과의 관계입니다. 사랑하는 사람과의 관계 때문에 불안하고 걱정합니다. 하느님과의 관계도 신앙 안에서 걱정됩니다. 믿음이 없기 때문에 걱정되고 전적(全的)으로 의탁(依託)이 없기 때문에 불안이 가중되고, 신뢰가 없기 때문에 근심과 걱정이 되는 것입니다. 특히 인간관계로 걱정이 태산과 같고 돈 문제도 근심과 걱정을 만드는 가장 큰 원인이 되고 사랑과 우정도 배신과 무관심으로 근심과 걱정을 만듭니다.
넷째로 심리적으로 안정을 찾지 못해서 불안이 불안을 만들고, 위협이나 폭력에 대하여 공포감이 생겨서 두려움이 근심과 걱정을 만듭니다. 학대를 당하는 많은 사람들이 특정 사람이나 환경에 강한 불안감을 갖고 근심과 걱정을 하게 됩니다. 나무도 송곳으로 한 곳을 계속해서 찔러서 상처를 주면 송곳을 가지고 나무에 접근하는 사람만 보아도 심한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합니다. 스트레스는 신체적인 병을 만들기도 하고 강박관념이나 정신병을 만들기도 합니다. 우울증은 심한 정신병으로 몰고 가기도 하고 대인기피증을 유발하기도 하고 불면증은 저녁시간만 되면 괴롭혀서 습관적으로 수면제를 먹어야 잠들 수 있게 합니다. 이렇게 정신적인 스트레스를 통해서 불안을 유발하고 근심과 걱정을 만듭니다.
오늘 복음에서 제자들은 예수님을 잃을까봐서 불안하고 근심 걱정에 휩싸여 있습니다. 그런데도 예수님은 근심하고 걱정하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이제 부활하시면 그 근심은 기쁨이 되고 아무도 빼앗아 갈 수 없는 기쁨이 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주님의 말씀에 다시 희망을 두고 살아야합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지금 당장은 암담하고 근심과 걱정으로 밤을 지새우며 지금 봉착되어 있는 이 어려움을 어쩌겠습니까? 비록 지금은 노심초사(勞心焦思)하지만 해결의 실마리는 주님께서 가지고 계십니다. 당신의 거룩하신 부활을 통해서 우리의 근심 걱정을 모두 없애 주십니다. 비록 지금 처참하게 죽을지라도 다시 당신처럼 부활하리라는 그 희망을 주시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바로 희망의 부활시기이이고 따지고 보면 일 년 내내 부활시기를 살고 있는 셈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미약한 인간이어서 자꾸만 걱정하고 근심할 때 성령께 온전히 의탁하고 그냥 하느님의 처분만 기다리는 자세로 살아야 할 것 입니다. 나이가 들면서 더욱 그래야 하고 제아무리 근심하고 걱정해도 우리가 할 수 있는 한계가 정해져 있고, 그 한계에 미치지 못하는 나약한 인간의 존재를 인식하고 할 수 있는 한 최선의 노력을 하고 나머지는 하느님께 맡겨야 합니다.
주님! 쓸데없이 노심초사하면서 당신 앞에서 걱정하고 근심하는 저희를 불쌍히 보시고, 용기를 내서 당신께 온전히 의탁하고 당신을 따르게 하소서. 걱정하거나 근심한다고 잘 풀리는 일 없음을 일찌감치 깨닫고, 당신의 부활로 모든 실마리를 풀고 저희 마음을 기쁨으로 바꿔주소서, 그리고 그 기쁨을 언제나 한량없이 간직하며 살게 하소서. 주님!
<이 도시에는 내 백성이 많다.>
▥ 사도행전의 말씀입니다. 18,9-18
바오로가 코린토에 있을 때,
9 어느 날 밤 주님께서는 환시 속에서 그에게 이르셨다. “두려워하지 마라. 잠자코 있지 말고 계속 말하여라.
10 내가 너와 함께 있다. 아무도 너에게 손을 대어 해치지 못할 것이다. 이 도시에는 내 백성이 많기 때문이다.”
11 그리하여 바오로는 일 년 육 개월 동안 그곳에 자리를 잡고 사람들에게 하느님의 말씀을 가르쳤다.
12 그러나 갈리오가 아카이아 지방 총독으로 있을 때,
유다인들이 합심하여 들고일어나 바오로를 재판정으로 끌고 가서,
13 “이자는 법에 어긋나는 방식으로 하느님을 섬기라고 사람들을 부추기고 있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14 바오로가 입을 열려고 하는데 갈리오가 유다인들에게 말하였다.
“유다인 여러분, 무슨 범죄나 악행이라면 여러분의 고발을 당연히 들어 주겠소.
15 그러나 말이라든지 명칭이라든지 여러분의 율법과 관련된 시비라면,
스스로 알아서 처리하시오. 나는 그런 일에 재판관이 되고 싶지 않소.”
16 그러고 나서 그들을 재판정에서 몰아내었다.
17 그러자 모두 회당장 소스테네스를 붙잡아 재판정 앞에서 매질하였다.
그러나 갈리오는 그 일에 아무런 관심도 두지 않았다.
18 바오로는 한동안 그곳에 더 머물렀다가,
형제들과 작별하고 프리스킬라와 아퀼라와 함께 배를 타고 시리아로 갔다.
바오로는 서원한 일이 있었으므로, 떠나기 전에 켕크레애에서 머리를 깎았다.
축일5월 19일 성 첼레스티노 5세 (Celestine V)
신분 : 교황
활동 연도 : 1209/10-1296년경
같은 이름 : 셀레스틴, 첼레스띠노, 첼레스띠누스, 첼레스티누스, 켈레스티노, 켈레스티누스, 코일레스티노, 코일레스티누스
교황 성 코일레스티누스 5세(Coelestinus V, 또는 첼레스티노)는 이탈리아 중부 몰리세(Molise)의 산탄젤로 리모사노(Sant’Angelo Limosano)라는 마을에서 소작농인 안젤로 안젤레리오(Angelo Angelerio)와 마리아 레오네(Maria Leone)의 아들로 태어나 피에트로 델 모로네(Pietro del Morrone)라는 이름을 얻었다. 아버지가 사망한 후 그는 들에서 일했지만, 그의 영성 생활에 큰 영향을 끼친 어머니는 그가 단지 농부나 양치기가 되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그는 17살 때 몬타가노(Montagano) 인근 파이폴리(Faifoli)에서 베네딕토회 수도원에 입회해 수도승이 되었다.
그는 더욱 고적한 생활을 동경해 1231년경 아브루치(Abruzzi) 광야에서 은수 생활을 시작했다가, 사제가 되려고 자신의 움막을 떠나 1234년경 로마(Roma)에서 사제품을 받았다. 그는 몇 년 동안 술모나(Sulmona)의 모로네(Morrone) 산에 있는 한 동굴에 머물면서 은수 생활을 원하는 이들과 공동체를 이뤄 지도하다가, 몰려드는 군중들을 피해 1245년경 제자들과 함께 접근이 더 어려운 마이엘라(Maiella) 산 깊은 곳으로 가서 생활했다. 하지만 제자들이 늘어남에 따라 그는 처음에 만들었던 모로네 산의 공동체, 이미 당시에는 수도원을 발전한 곳으로 되돌아와야만 했다. 그는 매우 엄격한 규칙을 적용했음에도 불구하고 원장으로 선출되었다. 그가 설립하고 훗날 그의 이름을 따서 첼레스티누스회로 불리는 은수자 공동체는 1264년 교황 우르바누스 4세(Urbanus IV)에 의해 인가되었고, 교황 그레고리우스 10세(Gregorius X) 때 성 베네딕투스의 규칙을 따르는 수도원으로 설립 인가를 받았다.
교황 니콜라우스 4세(Nicolaus IV, 1288-1292년 재위)의 선종 후 정치적 알력 때문에 2년간의 교황직 공백 기간이 발생했을 때, 이미 80에 가까운 고령의 은수자인 그는 교황 선출을 위해 페루자(Perugia)에 모인 추기경들에게 위협적인 언사로 새 교황을 즉각 선출하지 못하면 하느님의 진노를 피하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어찌 된 영문인지 추기경들은 당시 고령에다 병든 그를 새 교황으로 선출했다. 더 오래 교황직을 공석으로 둘 수 없어서 그는 선거 결과를 받아들였고, 주교품을 받고 이틀 후인 1294년 8월 29일 아브루초(Abruzzo) 지방 아퀼라(Aquila)의 산타 마리아 디 콜레마지오(Santa Maria di Collemaggio) 성당에서 코일레스티누스 5세라는 이름으로 교황좌에 올라 혼란하던 교회의 방향을 바로 잡고자 노력했다.
그러나 행정 실무 경험이 전혀 없던 성 코일레스티누스 5세는 주어진 직무를 수행하기에 자신이 너무나 부족하다는 것을 느꼈다. 자신의 무능함과 건강상의 이유로 그는 더는 교황직을 수행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나서, 교황에게 스스로 물러날 권리가 있다는 마지막 교령을 발표하고 재임 5개월여만인 1294년 12월 13일 교황직을 사임했다. 그는 스스로 교황직을 사임하고 자신의 수도원을 되돌아간 최초의 교황이 되었다. 베네데토 카에타니(Benedetto Caetani) 추기경이 그를 승계해서 보니파티우스 8세(Bonifatius VIII)라는 이름으로 교황좌에 올랐으나, 선임자의 높은 인기가 수많은 지지자를 만들어 그를 복위시키려는 운동으로 번졌다. 그러자 후임 교황은 성 코일레스티누스 5세를 아나니(Anagni) 근교의 푸모네 성(城)에 감금했다. 예전의 은수 생활로 돌아가고자 했던 성 코일레스티누스 5세는 결국 그 뜻을 이루지 못하고, 푸모네 성에서 외부와의 접촉이 차단된 채 첼레스티누스회의 두 수사와 함께 생활하다가 1296년 5월 19일 종기로 인한 감염으로 선종했다. 그의 시신은 우선 페렌티노(Ferentino)에 묻혔다가, 1317년에 그가 교황으로 즉위했던 산타 마리아 디 콜레마지오 성당으로 이장되었다. 그는 1313년 5월 5일 교황 클레멘스 5세(Clemens V)에 의해 증거자로 시성되었다.
오늘 축일을 맞은 첼레스티노 5세 (Celestine V) 형제들에게 주님의 축복이 가득하시길 기도드립니다.
야고보 아저씨
첫댓글 아멘
감사합니다. 이배근 가브리엘 형제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