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주 토요일마다 아버지 면회를 다니면서 언제나 보는 같은 건물 같은 사람들 모든 것이 변함 없었는데 한번 위문음악회를 개최한 후부터 갑자기 많은 것이 변했다. 우선 마주치는 사람들, 예를 들어 간이상점 에 근무하는 재소자들 그리고 특히 복도에서 마주치는 교도관들의 눈빛이 많이 부드러워진 것이었다. 말이 교도소고 교도관이지 일제시대의 감옥소 간수와 같은 것이라 나는 그들을 보면 주눅부터 들어 조심하느라 눈부터 내리 깔았다. 그들은 자주 내게 말까지 건내서 속으로 떨면서도 티를 안내려고 조심조심하며 대답을 하곤 하였다. 그들은 위문음악회에서 나의 사회보는 말과 내용이 상당히 인상적이라 감동을 받았다는 것인데 그래도 그들에 대한 나의 선입관은 변함이 없었다.
그런데 한번은 한 교도관이 다음주 일요일에 서울에서 한번 만나자는 것 아닌가.. 나는 너무도 떨려서 말을 못했는데 내가 거절하면 혹시 아버지께 불이익이 가해질가봐 할 수 없이 승락을 하였다. 일견해서 그는 나보다 키가 클락말락하였고 20대인데도 벌써부터 몸이 좀 뚱뚱해져 있어 그런 점이 오히려 나를 안심하게 했다. 그런 악조건에 설마 내게.. 하는 이상한 안도감이.
그 다음 주 서울에서 본 그는 평상복에 평상인이라 좀 마음이 놓였는데 그는 나의 경계심을 누그려 뜨리려 그랬는지 자신이 다니는 야간대학원의 한 클래스 메이트 여학생을 데리고 나왔다. 그녀는 직업군인이라는데 평상복인데도 그냥 씩씩한 거의 중성적인 느낌으로 말도 시원시원하게 잘하여 마음이 편했다. 그들은 모두 낮에는 직업인이었지만 미래의 꿈을 위해 주경야독으로 밤엔 석사학위을 따려 온힘을 쏟고 있었다. 식사를 하며 그들은 소주도 잘 마셔 나중엔 취해서 밤길을 걸으며 팔장을 끼며 내가 모르는 유행가들을 불러댔는데 그 교도관은 두 여인 사이에서 우리의 팔장을 끼고 걸어가 나는 곤혹스러웠다. 우리가 팔을 잡을 정도의 사이란 말인가. 그 때 나는 알 수 있었다. 그는 취한 척하며 내게 대한 어떤 격정을 표출하고 있었다는 것을. 그리하여 두번 째 또 만남을 제의했을 때 나는 거절할 수 밖에 없었다. 또 가만 생각하니 이제 아버지는 '사회자의 아버님'이란 호칭으로 교도소내 어딜가도 존경을 받고 계셔 어느 누구에도 불이익을 당하진 않으실 거라는 자신감도 생겨 있었고.
그런데 그 날 그는 교도소 재소자들에 대해 얘기하던 중 한 의사분을 언급했는데 성은 김씨 였는데 이름은기억이 안난다. 그 분은 교도소내 발생하는 많은 환자들을 헌신적으로 치료해 주는 대단한 인격적이고 따뜻한 분이시라 내가 상당히 존경하는 분이셨는데 그 간수는 내게 '그분은 국제간첩'이니 가까이 하지 말라'는 것이었다.
나중에 아버지가 출옥하시고난 후 나는 아버지께 그분이 정말 국제간첩이었는지 여쭈어 보았다. 아버지는 그것은 첨부터 완벽한 조작이었다, 좌익이라고 지목하던 어떤 이의 집앞에 있는 그를 포착한 사진을 제시하며 이래도 부인할 테냐 하며 심한 고문을 해댄 것이었다. 그분은 좌우 이념을 떠나 누구든 환자들을 정성껏 치료해 주었으니 그의 죄는 히포크라테스의 정신을 실천한 것 뿐이었다.
아버지 말씀은 50년대 전쟁이후 완전 폐허가 되어 가장 후진국이 돼버린 한국에서 세계에서도 최첨단을 걸었던 분야는 정보분야였으니 그것은 미국 정보부의 최고 기술이 고대로 수입되었던 결과였다고. 다른 방에서 나누는 대화를 원격으로 들을 수 있는 기술은 물론이고 사진조작은 사건조작을 위해 흔히 쓰이던 방법이었는데 한국에선 그런 기술은 듣도 보도 못한 것이라 어떻게 항의도 못하고 그것은 판결에 그대로 채택되었다한다. (나는 그런 기술을 우리가 미국에서 수입한 것이 아니라 미국이 들어와 바로 썼던 주체적 역할이었다고 본다.)
이 김박사 생각이 갑자기 난 것은 몇일 전 푸틴과 김정은이 평양에서 정상회담을 가진 후 소셜미디어 에서 두 사람의 사진이 화제가 된 것을 본 순간이었다. 두 사람이 맥주을 마시며 미녀들에게 둘러 쌓인 가운데 활짝 웃고있는 영락없는 사진이라 그런가보다 했는데 실은 AI로 생성한 가짜 이미지라는 것이다. 그것도 남한에서 조작된 게 아니라 세계의 네티즌들이 만든 두사람이 즐겁게 회전목마를 타는 모습 등등이었으니 참으로 세월의 무상함을 느낀다. 요즘같으면 김박사를 그런 사진조작으로 국제간첩을 만들진 못했을 것이다 싶으면서도 그럼 또 다른 더 진화된 기술을 썼을 거란 생각도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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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산비탈 기억의 다락방을 잘 보고 갑니다........
내가 기억하는 이 작은 것이라도 치매라는 나의 머릿속에서 완전히
사라져 버리기 전에 남겨두어야 겠다는 생각이 들어 이 글을 씁니다.
다음 회에서 계속됩니다.
독립,통일, 애국, 민주를 위한 투사들을 때려잡는데
이골이 난 놈들이 무엇인들 조작 못할까요
딸은 아버지의 정신을 이어 받는 것 같아요~
언니는 아버지로 부터 존경심을 배우신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기억을 남길 수 있음이 조상님의 은총이지 않을까요?
언니 ~아무 쪼록 인연의 장에서 피어나는 감사인 것 같아요,.
자식이라고 다 부모의 정신을 이어받는 건 아니라는 걸 주위에서
많이 보고 있자나.. 정부 언론 학교교육 사회 등의 집요한 세뇌로.
멀리 갈 것도 없이 정주 특전사 아들 또 예비군인 내 사위만 보아도..
요즘 같으면 유치한 사진조작이 아니라 아예 머릿속에 칩을
설치해 조종한다던지 아니면 그냥 원격 조종만으로도..
@산비탈양 오랜만에 글을 올리시네요~
요즘같으면 원격 조종만으로...ㅎㅎ
재미있는 표현이네요.^^
설마 바이든도 누군가에게?🙄
그냥 웃자고 하는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