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님
2024.8.21.수요일 성 비오 10세 교황(1835-1914) 기념일
에제34,1-11 마태20,1-16
기본소득제의 원조
“착한목자 주 그리스도 예수님”
“주님은 나의 목자,
아쉬울 것 없어라.”(시편23,1)
2000년 전통의 가톨릭교회의 자랑은 역대 교황들이요 무수한 성인들일 것입니다.
어느 종교에서도 발견할 수 없는 유구한 전통의 반영입니다.
지금 제266대 프란치스코 교황에 앞서 오늘 기념미사를 봉헌하는 제257대 성 비오10세 교황입니다.
역대 교황마다 얼마나 큰 분투의 노력을 다해 교황직을 수행했는지 그들의 행적에 감탄하게 됩니다.
오늘 기념하는 성 비오 10세도 참 탁월한 교황이었습니다.
교황이기 이전에 주님을 닮은 참목자였습니다.
옛 분원장 시절, 30년이 지난 지금도 장상의 충고를 잊지 못합니다.
“장상이기 이전에 목자(牧者)임을 잊지 말라”는 것이며, 목자처럼 형제들을 섬기고 돌보라는 충고였습니다.
성 비오 10세 교황의 감동적인 생애를 대략 나누고 싶습니다.
성인은 “모든 것을 그리스도 안에서”(에페1,10)라는 사목표어에 따라 교황직을 시작합니다.
우체국장의 아들로 태어난, 가난한 가정 출신인 비오 10세는 항상 자신의 출신을 잊지 않으려고
“나는 가난하게 태어났고, 가난하게 살았으며, 가난하게 죽고 싶다.”라고 할만큼 가난을 사랑하였습니다.
성인의 매일 일과만 봐도 얼마나 부지런한 사목자인지 잘 드러납니다.
하루의 일과는 매일 일정했으니, 오전 4시에 일어나서 6시에 미사를 집전하고, 8시 정각 바티칸 궁전 2층에서
개인적인 연구와 사사로운 알현이 있었습니다.
큰 책상 중앙에는 ‘성 요한 마리아 비안네 신부’와 ‘잔 다르크’ 성상이 놓여 있었습니다.
정오에는 공식 회견을 열었고, 1시에는 측근들과 함께 점심식사, 그리고 잠시동안의 휴식을 취합니다.
저녁식사는 오후 9시에 이루어졌고, 그 이후에도 밤이 깊을 때까지 다시 일했다 합니다.
성 비오 10세는 어린이들을 각별히 사랑했고 성직자와 평신도의 종교적 삶을 쇄신시키기 위해 힘썼으며
특히 미사성제의 경우 그러했습니다. 성찬례의 대미를 장식하는 영성체에 대해 “하늘나라를 향한
가장 짧고 안전한 길”이라고 유난히 강조했으며, 성체에 대한 존경심으로 후대 신자들에게
“성체의 교황”이라는 명예로운 호칭도 지녔다 합니다.
비오 10세는 가톨릭 신자가 영성체를 자주 할 수 있도록 배려하고 어린이 첫영성체 나이를
기존의 10-12세에서 7세까지 낮추어 영성체를 쉽게 해주는 결단을 내렸습니다.
이 결정이 내려지기 전까지 많은 신자들은 아무리 경건한 사람이라도 보통 한달에 한두번 정도
영성체를할 뿐이었고, 많은 이가 대축일 때에만 영성체를 했습니다.
비오 10세의 치세중 가장 걱정거리는 가톨릭 신앙에 큰 위협이 되었던 근대주의와 상대주의로 철학, 신학,
성경주석에도 그 사상이 침투해 있었습니다.
이신론과 불가지론, 무신론에 이르게 한 근대주의를 “모든 이단의 총집합”이라고 규정지었으며
참으로 교회를 수호하기 위해 총력을 다한 사목자의 삶이었습니다.
교황님의 다음 말씀도 인간에 대한 깊은 통찰에 기인함을 봅니다.
“교회에서 사도직의 가장 큰 장애물은 신자들의 소심함이라기 보다는 비겁함입니다.”
교황은 생전에 기적을 많이 일으켜 살아있는 성인으로 대접받았고 미래를 내다보는 예지력도 있어,
“1914년이 가기전에 전쟁은 일어날 것이다.” 말했고, 전쟁을 막고자 노력을 기울였으니 허사가 되었고,
대적하기 위해 각자의 고국으로 돌아가는 신학생들에게는 눈물을 흘리며,
“그대들이 고백하는 신앙에 걸맞는 모습을 보여 주십시오, 그리고 전쟁터에서는 애긍심과 동정심을
잊지 마십시오.” 당부했다 합니다.
교황은 1914년 제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자 공포와 우울증 상태에 빠졌고 그해 뇌졸중으로 선종하니
한평생 예수님을 닮은 착한목자 교황으로서 최선을 다한 삶이었습니다.
오늘 복음은 “선한 포도밭 주인의 비유”입니다. 여기 나오는 포도밭 주인은 바로 착한목자 주님을 상징합니다.
착한목자 예수님을 통해 그대로 드러나는 착한목자 하느님입니다.
오늘 제1독서 에제키엘서는 온통 에제키엘 예언자들 통하 악한 목자들에 대한 착한목자 하느님의
격렬한 분노의 표출로 가득합니다.
“불행하여라, 자기들만 먹는 이스라엘의 목자들! 너희는 양들에게 원기를 북돋아 주지 않고
아픈 양을 고쳐 주지 않았으며, 부러진 양을 싸매 주지 않고 흩어진 양을 도로 데려오지도,
잃어버린 양을 찾아오지도 않았다.
오히려 그들을 폭력과 강압으로 다스렸다...나 이제 그 목자들을 대적하겠다.
나 이제 양떼를 찾아서 보살피겠다.”
비단 교회지도자들뿐 아니라 작금의 위정자들에게 그대로 해당되는 말씀입니다.
아 정말 이제 나라의 지도자들, 위정자들이 민생을 챙기며 착한목자영성을 살아야 할 절박한 시점에
이른 것 같습니다.
먹고살기 힘들다는 절박한 아우성으로 가득한 세상입니다.
오늘 복음의 포도밭 선한 주인은 착한목자의 모범이 됩니다.
그는 결코 유능한 사업가 비즈니스맨이 아닌 착한 목자입니다.
포도밭 선한 주인은 일꾼들의 일한 시간과 양에 관계없이 모두에게 하루 한 데나리온 일당을 나눠줍니다.
분명 선한 주인은 일꾼들의 내적사정을 충분히 고려했을 것입니다.
일하고 싶어도 일할 기회도 일거리도 없는데 딸린 많은 식솔들의 가장들임을 생각했음이 분명합니다.
그대로 자비롭고 너그러운 착한목자 주님의 모습입니다.
착한목자 주님이야말로 요즘 회자되는 기본소득제의 원조임을 깨닫습니다.
기본소득제도는 국가 또는 지방자치제가 모든 구성원 개개인에게 아무 조건없이 정기적으로 지급하는
소득입니다.
앞으로 보편적인 빈곤화로 인해 조만간 실현되리라 봅니다.
얼마전 좌절된 ‘전국민 25만원 민생회복지원금’도 일종의 기본소득제에 속합니다.
“억강부약 대동세상, 먹사니즘”을 주장한 모정치인의 이상도 오늘 복음의 정신과 일맥상통합니다.
강자의 욕망은 절제시키고 약자의 삶은 보듬으며, 모두가 어울려 평등하게 사는
보편복지가 실현된 세상이요, 2000년부터 쓰인 ‘먹고사는 게 최고 가치’라는 조어가 먹사니즘입니다.
착한목자 주님의 뜻을 헤아리지 못한, 제 분수를 모르고 월권한 철부지 일꾼의 항변에 대한
선한 주인의 통쾌한 반응이 복음의 옹졸한 일꾼은 물론 우리의 회개를 촉구합니다.
“당신 품삯이나 받아서 돌아가시오. 나는 맨 나중에 온 이 사람에게도 당신에게처럼 품삯을 주고 싶소.
내것을 가지고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없다는 말이오?
아니면, 내가 후하다고 해서 시기하는 것이오?”
날마다 주님의 이 거룩한 미사은총이 우리 모두 착한목자 주님의 자비하시고 너그러운 마음을 닮게 합니다.
모두가 똑같이 받아 모시는 하나의 성체가 기본소득의 원형을 보여줍니다.
“주님,
제 한평생 모든 날에,
은총과 자애만이 따르리니,
저는 오래오래, 주님 집에 사오리다.”(시편23,6). 아멘.
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님
가톨릭사랑방 catholicsb
첫댓글 아멘.
아멘
아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