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의 이름을 묻다
언젠가 처음 용눈이오름을 올랐을 땐 말할 수 없이 좋아 눈물이 났다.
그때는 가을이었다 .
초원의 부드러운 곡선과 시원한 전망, 가축들이 한가로이 풀을 뜯는 목가적인 초원의 풍경,
무덤과 오름이 자연스럽게 어울리고……, 그야말로 제주에서만 느낄 수 있는 독특한 정취가 그대로 살아 있었다.
그후 제주를 찾을 때마다 용눈이오름을 찾았고, 그때마다 다른 풍경과 감동으로 '삽시간의 황홀'을 느꼈다.

눈이 부시게 하늘이 바다처럼 펼쳐졌다 .
얼마나 큰 황홀인가
하늘이 바다가 되는 이 장관을 ^^








다른 오름을 더욱 돋보이게 하는 오름
제주가 우리나라 땅인 것은 분명 축복이다. 제주의 풍부한 녹지, 아름다운 자연과 독특한 문화가
한반도와 전혀 다른 양상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제주를 가장 제주답게 하는 것 중의 하나가 오름이다.
오름은 대대로 제주 백성들에게 집 뒷산, 마소를 키우는 일터, 그리고 무덤이었다.
그래서 '제주 사람은 오름에서 태어나 오름으로 돌아간다'는 말도 있다.
오름이란 제주도에 산재해 있는 기생 화산을 말하며 그 어원은 '오르다'의 명사형에서 나왔다.
제주에는 대략 368개의 오름이 있다.
그 많은 오름은 각각 독특한 개성과 아름다움을 품고 있어 우리를 행복하게 한다.
그중에서 용눈이오름은 가장 유명하다.
제주시 구좌읍은 용눈이오름을 포함하여 오름의 랜드마크 다랑쉬오름, 동거믄오름, 높은오름, 앞오름(아부오름), 당오름 등
수많은 명봉을 품고 있어 오름 1번지로 통한다.
용눈이오름은 송당~수산간 16번 도로가 구좌읍과 성산읍을 교차하는 경계에 남북으로 누워있다.
그 이름은 세 개의 굼부리(분화구)가 용의 눈을 닮았다고 해서, 혹은 '용이 누워있다(龍臥岳)' 또는 '용이 논다(龍遊岳)'는
말에서 나왔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 용눈이오름은 산처럼 솟은 것이 아니라 비스듬히 누워있는 오름이다.








길을 따르면 곧 나지막한 구릉에 올라선다.용눈이 오름의 여름은 풀들의 고향이다.
바람이 부는데로 360도 회전을 하며 사방 팔방 자신들의 존재감을 드러낸다 .
그 모습 뒤로 두 봉우리가 마치 여인의 가슴처럼 봉긋 솟았고, 그 품 안에 무덤 하나가 자리 잡았다.
사방으로 드넓게 펼쳐진 잔디밭 뒤로 시원하게 전망이 뚫린다.
능선에 올라붙으면 신기하게도 봉우리 뒤편에 숨어 있던 두 개의 봉우리가 나타난다.
따라서 용눈이오름은 높낮이가 제각각인 네 봉우리가 서로 부드럽게 이어져 있는 형상이다.
그 가운데 제법 큰 굼부리(화구)가 형성돼 있는데, 물이 고여 있지는 않다.



능선에 오르면 굼부리를 따라 시계반대 방향으로 한 바퀴 돌게 된다.
첫 번째 봉우리에 오르면 비로소 용눈이오름 전체 형태가 눈에 들어온다.
네 봉우리를 중심으로 부챗살처럼 여러 가닥의 등성이가 사방으로 흘러내린 것이다.
또한 곳곳에 알봉을 거느리고 있어 용눈이를 걷다보면 정상이 어딘지,
지금 걷고 있는 위치가 어딘지 꼭 미궁에 빠진 기분이 든다. 너울너울 걸어 두 번째 봉우리에 닿으면
동쪽으로 성산일출봉 일대가 멋지게 펼쳐진다. 세 번째 봉우리는 좀 떨어져 있어 내려갔다가 올라야 한다.
이곳이 용눈이오름의 가장 높은 봉우리지만, 그것을 느낄 수도 없고 중요하지도 않다.
용눈이오름은 보는 장소에 따라 네 봉우리 중 어느 곳이든 정상 역할을 한다.
그래서 부드러운 수많은 곡선을 발견할 수 있다. 곡선은 그 자체만으로도 아름답지만,
주변 오름들과 어우러질 때 더욱 빛을 발한다. 특히 용눈이의 곡선(능선) 너머로 다랑쉬오름,
한라산 등이 올라와 있는 풍경은 특이하면서 감동적이다.
이런 식으로 용눈이오름의 곡선은 다른 오름을 풍경의 중심으로 만든다.
이것이 용눈이오름의 미덕이자 독특한 아름다움이다.




용눈이오름을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사람이 사진작가 김영갑 씨다.
그는 스무 살 청년 시절 도 닦는 마음으로 10년만 보내자는 생각으로 제주에 들어왔다.
그러나 제주의 오름과 바람, 구름에 매혹되어 2005년 루게릭병으로 사망할 때까지 제주를 떠나지 못했다.
병과 사투를 벌이며 사진에 열정을 불태운 그의 일생은 참으로 감동적이다.
누구도 주목하지 않았던 제주 오름에서 흐르는 바람과 구름 등을 즐겨 사진에 담았고,
"꼭꼭 숨어 있는 제주도의 속살을 엿보려면 온몸으로 바람을 느끼고 이해해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런 그가 가장 좋아하고 즐겨 담았던 곳이 바로 용눈이오름이다.
그는 이곳에서 "사진은 1초도 안 되는 시간 안에 승부를 거는 처절한 싸움이다.
한번 실수하면 그 순간은 영원히 오지 않는다. 특히 삽시간의 황홀은 그렇다."는 유명한 말을 남기기도 했다.



정상에서 부드럽게 이어진 네 번째 봉우리 까지 닿으면
아! 감탄과 감동이 밀려오면서 김영갑 씨가 이야기한 '삽시간의 황홀'의 떠올라
한동안 걸음이 멈춰진다.
용눈이 오름에 올랐다면 세상을 잠시 잊고 제주가 전해주는 바람의 이야기를 듣자 .
그리고 그문에 걸리지 않는 바람의 유연함을 마음에 담자 .
아무리 바람소리가 크다고 해도 놀라지 말자 .
우린 이미 바람의 노래를 들을수있는 마음의 음표가 만들어지지 않았는가 .
자연을 변주하는 여행의 이름으로 용눈이 오름은 오늘도 예술이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