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중국 청나라의 4대 황제인 성조(聖祖)의 연호(年號). 이를 본떠 성조를 강희제(康熙帝)라고도 한다. 그의 재위 기간인 1662년부터 1722년까지 쓰였다.
서울특별시 종로구 신문로에 있던 궁궐. 1616(광해군 8)년에 지어 ‘경덕궁’이라 하던 것을 1760(영조 36)년에 경희궁으로 고쳤다. 국권 강탈 후 1910년에 일본인이 모두 헐고, 이건(移建)하였다.
[역사] 대한 제국기, 마지막 임금인 순종(純宗) 때의 연호. 1907년부터 1910년까지 사용되었다.
서울특별시 중구 광희동에 있는 조선 시대의 성문. 사소문(四小門)의 하나로, 1396(태조 5)년에 건립하였고 서소문(西小門)과 함께 시체를 내보내던 문이며, 지금의 것은 1975년에 개축한 것이다.
[인명] 우리나라의 항일 독립운동가(1861~1922). 자는 응구(應九), 규동(奎東)이고 호는 의암(義菴)이다. 동학을 천도교로 개칭하고 제3대 교주를 지냈다. 민족 대표 33인으로, 삼일 운동 때 체포되었으며 보성(普成), 동덕(同德) 등의 학교를 인수하는 등 교육, 문화 사업에도 힘썼다.
[인명] 중국 청나라의 제4대 황제(1654~1772, 재위 1661~1722). 이름은 현엽(玄燁)이고 묘호는 성조(聖祖)이다. 문무를 장려하였으며, 운하를 정비하고 조세를 감면하여 제국의 기초를 확립하였다. 중국 역대 황제 중에서 재위 기간이 61년으로 가장 길다. 러시아의 남하를 막기 위하여 네르친스크 조약을 맺었고, 예수회를 중심으로 한 선교사들로부터 서양의 학문과 기술을 도입하게 하였으며 문화의 발전에도 기여하였다.
[인명] 우리나라의 시인․소설가(1901~?). 호는 회월(懷月), 송은(松隱)이다. 《장미촌》, 《백조》 따위의 동인으로 활동하였고 탐미적, 낭만주의적 시인으로 출발하여, 한때 카프(KAPF)의 대변자로 활약하다가 1934년에 순수 예술로 전향하였다. 6․25 전쟁 때에 납북되었다. 시, 소설, 평론의 모든 분야에 걸쳐 활동하였으며 작품으로는 시 <유령의 나라>, 소설 <사냥개>, <전투> 따위가 있다.
[인명] 군인․정치가(1917~1979, 재임 1963~1979). 호는 중수(中樹)이다. 1961년에 육군 소장으로 5․16 군사 정변을 주도하여 최고 권력 기관인 국가 재건 최고 회의 의장이 되었으며, 1963년에 예편하여 민주 공화당 총재로 제5대 대통령에 취임하였다. 1972년에 10월 유신(維新)을 단행하였고, 1979년 9대 대통령 재임 중에 중앙정보부장의 총격으로 사망하였다.
[인명] 우리나라의 국어학자․시인(1896~1989). 호는 일석(一石)이다. 서울 대학교 교수, 학술원 부회장 등을 지냈다. 국어학 및 국문학 발전에 기여하였고, 특히 우리말 연구에 많은 업적을 남겼다. 저서로는 《국어학 개설》, 《한글 맞춤법 통일안 강의》 등이 있고, 작품으로는 시집 《박꽃》 따위가 있다.
창덕궁의 편전(便殿). 인정전(仁政殿)의 동쪽에 있는, 정면 11칸과 측면 5칸의 단층 팔작지붕 익공집으로 임금이 평소 집무를 보던 곳이다. 창덕궁 창건 때 세웠으나 임진왜란 등을 거치면서 여러 차례의 화재로 소실되었고, 1834년에 재건된 건물도 1917년의 화재로 불에 타 없어졌다. 현재의 것은 1920년에 세워져 오늘에 이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