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男性有故 - 小夜 ▒
지난날 농촌에서는
아들을 낳았을 때 문간에 고추를 단 금줄을 내걸었다. 고추란
이렇게 예로부터 남성(男性)의 상징으로 자주 등장했다.
아담과 이브가 금단(禁斷)의 열매를 따먹으면서 비롯된
고추의 남성화는 곧 인류역사의 시작이었고
인간만사 흥망성쇠에서 빼놓을 수 없는 화두(話頭)였다.
그것의 강약(强弱)과 대소(大小)에 따라 무수한 담론(談論)과
야화(夜話)가 난무했고 그것을 어디서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역사가 뒤바뀌고 인생이 달라졌다. 자고로
사람들이란 강한 그것을 희구했고 큰 그것을 갈구했는데,
과연 크고 강한 것만이 능사였을까.
고추란 크고 매워야 제격인데,
좋은 것만 입맛대로 다 갖출 수 없으니 인간사에
오만가지 애환이 뒤따르고 세상이 요지경인 것이다.
고추도 고추 나름이다. 크고 맛도 좋은
금상첨화(錦上添花)형이라면 더할 나위가 없겠지만,
작고 맛도 없는 설상가상(雪上加霜)형도 있는 법이다.
그뿐이 아니다.
크지만 맛이 없는 유명무실(有名無實)형도 존재하고,
작지만 맛은 좋은 천만다행(千萬多幸)형도 있다.
그런데 그것들이 나름대로는 다 쓰임새가 있고 임자가 있고
또 해야 할 역할이 있다는 것이다.
잘난 사람 잘난 대로 살고
못난 사람 못난 대로 사는 세상은 그래서 재미있는 것이다.
옛 성현의 말씀이
'낙이불음 애이불비'(樂而不淫 哀而不悲)라고 했다.
'즐기면서도 지나치지는 말며 애달퍼도 슬퍼하지는 말라'는
뜻으로, 고추에 비유하자면 '크다고 잘난 체해서도 안 되고,
작다고 애달파 할 일도 없다'는 것이다.
과유불급(過猶不及)이라 했다.
무엇이든 지나치면 미치지 않은 것만 못한 것이다. 자칭
'무림의 고수'라 거들먹거리다가도 울타리 하나만 벗어나면
쭈그렁밤송이 신세를 면치 못하는 게 인생사이다.
의미심장한 예가 하나 있다.
중국 고대의 변강쇠 노애의 이야기이다.
오동나무 수레바퀴를 걸어 돌릴 정도로
강건한 남성을 자랑했던 그는 진왕 정(政·후일의 진시황)의
어머니 장양태후와 노골적인 불장난에 빠져 연년생으로
두 아들까지 낳으며 한때 부귀영화를 누렸다.
칼을 잘못 쓰면 칼로 망하는 게 세상 이치인 것이다.
진왕 정의 생부였던 천하의 대상(大商) 여불위는 색정녀였던
장양태후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노애라는 강남(强男)을
내시로 변장시켜 태후전에 밀어넣었고, 그때부터 시작된
두 사람의 불륜행각은 세인의 눈을 피해 수도인 함양에서
200리 떨어진 옹주성으로까지 옮겨가며 불타올랐다.
그러나 고삐 풀린 노애의 변강쇠 놀음과 권력욕은 기어이
반란으로 비화되며 두 아들이 자루 속에 갇혀 맞아 죽었으며
자신 또한 능지처참의 극형을 당했다. 이뿐만 아니라
장양태후는 유폐되었다가 겨우 죽음을 면했으나
여불위까지 자살을 하는 역사의 비극으로 막을 내렸다.
무림의 최고수들은
강건함보다는 유연성을 지니고 있기 마련이다.
태풍에 거목이 쓰러질지언정
버들가지는 절대로 부러지는 법이 없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노벨문학상 후보로도 여러 번 물망에 올랐던
고은 시인이 어느 문학강연에서 했던 말이 생각난다.
"최고의 파쇼는 겸손이다!"
고추(男性)와 관련된 외국 Y담을 하나 더 덧붙인다.
영국과 프랑스 및 스페인의 왕이
친선 교류를 위해 이탈리아 로마의 원형경기장에 모였다.
그런데 남성에 관한 한 자신만만했던 프랑스왕과 스페인왕이
왕의 남성 크기로 국력을 테스트해 보자는 제의를 했다.
여왕이 다스리는 영국을 은근히 깔보기 위한 작전이기도 했다.
각국에서 온 귀족과 관중들의 환호와 박수 속에 먼저 스페인
국왕이 무대 위로 올라와 바지를 내리자 'Viva Espania'
(스페인 만세)라는 연호가 경기장을 가득 메웠다.
뒤이어 프랑스 왕이 등장했고, 왕의 남성에 압도당한
관중들은 'Vive la France'(프랑스 만세)를 외치며 열광했다.
마지막은 영국 왕의 차례, 여왕이 나설 수가 없는 일이어서
대신 여왕의 부군이 마지못해 걸어나왔다.
그리고는 겸손하게 자신의 남성을 공개했는데,
순간 경기장에 찬물을 끼얹은 듯 침묵이 흘렀다.
잠시 후 여기저기서 터져나오는 탄식이
"God save the Queen!"(신이여 여왕을 지켜주소서)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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