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밤님과 Jude님과 만났을 때, 영화 얘기를 하다가 제가 감동 깊게 본 영화로 '화양연화'와 '男과 女'를 말했었지요.
인생에서 가장 행복하고 아름다운 순간이라는 뜻을 가진 '화양연화'라는 제목이 그저 맘에 들었고, 여주인공 장만옥의 화려한 듯 단아한 의상과 절제된 분위기가 좋았습니다. 양조위의 우수에 젖은 듯한 표정 연기도 좋았고 …
'남과 여' 의 흑백 촬영이 사실은 예산 절감 때문이었는데 뜻밖에도 최고의 미학적 효과를 거두었다는 얘기도 이번에 인터넷에서 알았습니다.
영화를 보기 전에, 혹은 보고 나서 인터넷에 실린 영화평이나 감상들을 읽어 보면 영화에 대한 이해가 더 깊어지는 것 같기에 인터넷에 소개된 한 영화 평을 소개합니다.
퍼온글
<화양연화>
이 영화의 핵심 이미지는 '조금 느린 움직임'과 냇킹콜의 '음악'이다. 그 느낌, 얼핏 스쳐 지나가는 느낌들의 포착, 바로 그것이다. 복잡한 거리 3미터 앞에서 불현듯 마주친 독특한 감정을 지닌 듯한 이성과 아주 짧게 눈이 마주친 후 닿을락 말락 어깨를 스치며 지나칠 때의 느낌, 그 느낌으로 <화양연화>를 봐야 한다. 그런데 만약 그 느낌이란 것이 다시 만질 수 있는 것이라면, 만약 상대의 감정을 구체적으로 알아채 버린다면, 감당할 수 없는 감정의 격앙으로 우리는 까무러쳐 버릴 것이다. 감독 왕가위는 '아름다운 불륜의 감정'을 찰나의 이미지에 담아 우리를 자유로운 감정의 숲으로 인도한다. 그 숲 속에는 왕가위의 정밀한 설계도가 있었고, 또 그 설계도 아래에는 너무 많이 알아 버린 영화적 지식으로부터 튀어나온 영감이 자리하고 있었다.
1962년 홍콩. 여행사 직원 첸(장만옥)과 신문사 편집장 차우(양조위)는 이웃한 두 집으로 같은 날 이사를 온다. 왕가위 영화가 늘 그렇듯이, 우연이 영화의 출발이 되는 셈이다. 여느 영화와 마찬가지로 상투적인 설정이긴 하지만 우연을 정말 운명적인 것으로 느끼게끔 할 수 있기 때문에 왕가위는 다른 감독과 갈라설 수 있는 것이다. 무엇이? 섬세하게 감정을 꿰뚫는 이미지의 예리한 포착, 그것들을 차곡차곡 쌓기, 그리고 그 위에다 음악을 덧칠하는 것. 물론 그것으로 끝나지는 않는다. 그는 그것을 다시 해체하여 서사를 다시 재구성한 후 이야기와 감정의 리듬을 잡는다.
첫 만남은 적어도 표면적으로는 감정 없는 만남이다. 일상적인 분주함, 곁에 있지만 실제로는 부재하는 결혼한 상대와 같이 사는 모습이 그것이다. 여기에서 퇴근하는 차우와 혼자 먹을 국수를 사기 위해 내려가는 첸은 가파른 골목 계단에서 수없이 어깨를 스치며 마주친다. 숨이 멎을 듯한 이미지들의 넘쳐남!
두 번째 시퀀스. 둘은 각자의 남편과 아내가 서로 선물을 주고받는 애인 사이라는 것을 확인한다. 그래서 하는 수없이 둘은 같이 식사를 하지만 "절대 잘못돼선 안돼요."라고 다짐한다. 둘은 이해할 수도 없고 용납할 수도 없는 감정에 휩싸인다. 그 순간 우리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담배 연기와 그만큼 가장 쓸쓸한 뒷모습을 보게 된다.
세 번째 시퀀스. 이제 배신당한 두 남녀 사이로 행복한 시간이 스며든다.
네 번째 시퀀스. 배신한 상대와 헤어지기 위한 연습을 하고, 또 둘의 관계에 대한 소문이 진동한다. 자신들은 남들과 다르다고 생각했지만 그래봤자 불륜이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인정한다.
다섯 번째. 싱가폴에 사는 차우를 찾아온 첸은 전화가 연결되자 전화를 끊는다.
여섯 번째. 1966년 홍콩. 첸은 옛 집을 통채로 전세내고 얼마 후 차우가 이전에 살던 옆집을 찾아온다. 하지만 둘은 만나지 못하고 스쳐간다. '이제 거기 남은 것은 아무 것도 없다'고 말하면서. 1967년 캄보디아. 차우는 크메르 왕국의 비밀을 담은 앙코르와트 석조 건물 구멍에 마음 속의 비밀을 불어넣고 진흙으로 봉한다. 하지만 그 흙에도 풀은 난다. 끝이다. 끝나 버린 것이다. 하지만 과연 사랑은 그렇게 끝날 수 있는 것일까?
대부분의 멜로 드라마들은 그 결말을 연기하는 지연 전술에 의존한다. 하지만 <화양연화>는 반복과 시간의 건너뜀이라는 독특함을 선택한다. 첸과 차우의 부딪힘 또는 만남은 사건의 별다른 동기가 되지 않으면서도 계속 반복되고, 스토리가 취하고 있는 시간은 어떤 때는 아주 밀도있게 구성되지만, 대부분은 띄엄띄엄 건너뛴다. 하지만 이것은 부자연스러운 것이 아니라 영화가 '하고자 하는 말'에 가장 어울리는 꼴이다. 차우의 작업실인 호텔 2046호에 처음으로 들어설 때의 첸의 모습과 그 미장센, 가장 설레는 심정이면서도 그만큼 무료하게 보이는 첸의 이미지 등이 그 반복과 시간의 건너뜀을 메우는 동시에 서사의 감정을 정당하게 강화시킨다.
왕가위는, 논리적 개연성을 뛰어넘은 이미지들의 결합만으로도 무협의 정신 세계와 애절한 사랑을 극대화시킨 <동사서독>의 그것보다는 친절하고 구체적으로 이미지의 노래를 부른 것이다. 예컨대, 첸과 차우는 헤어지는 연습을 한다. 카메라는 약간 대각선으로 이동하고, 프레임은 느려진다. 그리고 어느 순간에 카메라는 멈추고 동시에 첸은 자신의 팔로 다른 팔을 감싼다. 물론 이것은 순진한 불륜 남녀의 헤어지는 연습 장면이다. 하지만 그 잔인하지만 가공된 시간은 실제로 살아나고, 스크린 바깥으로 튀어나온다. 그렇게 왕가위는 다시 <아비정전>으로 돌아가서 <해피 투게더>까지 비행한 것이다.
하지만 영화만으로 모든 것을 다 보았다고 할 수는 없다. <화양연화>의 시작 타이틀과 엔딩 타이틀은 붉은 바탕에 큰 흰 글씨로 열고 닫는다. 이것은 <해피 투게더>부터 시작된 것이다. 그 전에는 흰 바탕에 검은 글씨였다. 중국집 간판같은 그 타이틀은 그의 강렬한 변화를 예고하는 것임과 동시에 자기 문화에 대한 자긍을 말한다. 부언하자면, 그는 과거 또는 사랑의 초심에 뿌리를 두고 현재를 넘어선 미래의 영화를 만들어가고 있는 것이다. 물론 누군가는 이 영화에 들어있는 퇴행적 정서와 그 특유의 방식을 문제삼을 수 있을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초심을 유지하면서도 가장 앞선 영화적 방식으로, 그것도 대중 영화라는 제도 속에서, 헤쳐 나가는 <화양연화>는 왕가위의 또다른 대표작임에 틀림없을 것이다.
첫댓글 우리나라 외출이란 영화가 이영화의 아류작쯤 되겠네요.. 얼마전 보았던 "말할 수 없는 비밀"이란 영화도 홍콩영화 였어요. 주권륜 인가 하는 스믈 여덟의 감독 주연 피아노연주 다 해버린 미남 배우 와 미소녀 여배우 않보셨으면 한번 보세요.. 조금 하이틴 로맨스물 이긴해도.. 어른들도 보시면 좋아하실것 같아요. 굉장히 서정적이죠.. 아름답고 20년을 뛰어넘는 시공간의 만남.. 낭만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