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성경을 읽고, 쓰고, 묵상합니다.
안동교구설정 40주년을 준비하는 과정으로 신자들의 영적 성장을 위하여 기도와 성경읽기, 그리고 전교를 실천사항으로 제시 했습니다.
여기에서 저는 지구 봉사자 교육 성경읽기 부분에 교육을 받고 여러분에게 전달하고자 합니다. 제가 이 자리에 선 것은 신부님이나 수도자가 아닌 평신도 입장에서 성경에 대해 나눔을 하면 공감대를 형성하기 쉽지 않을까 합니다. 모쪼록 이 시간 여러분이 성경 안에서 하느님을 만나는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기쁘고 떳떳하게” 라는 우리 교구의 구호는 신앙에서 힘을 얻고, 신자로서 자부심을 가지고 살자는 권유이기도 합니다.
신자들이 하느님 말씀인 성경 안에서 살아계신 하느님을 만나고, 하느님과 대화하는 직접적인 체험으로 하느님의 힘을 받아
‘신앙 따로, 생활 따로’인 우리 신앙 현실을 극복하고, 한 걸음 더 나아가 신앙의 성장을 향해 나아가도록 도와주는 것이 이번 교육의 목표입니다.
저는 22년 전 세례를 받고 본당 공동체(레지오, 반장, 구역장)의 일을 할 때에는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쉽게 지치고 힘이 들었지만 성경 공부를 하면서 많은 깨달음 속에 말씀이 나에게는 힘이 되었고, 위로가 되어 일상의 삶이 행복했습니다.
그때 그 시절에는 아이들도 어리고 본당에 성경 공부하는 그룹이 없어서 개인적으로 성 바오로 딸 수도회에서 체계적으로하는 시청각통신성서를 접했습니다.
신약 공부할 때 요한복음 3,30절 “그분은 커지셔야 하고 나는 작아져야 한다.” 는 말씀이 자신을 많이 겸손하게 만들었고 그리스도화 시켰습니다. 지금도 이 말씀이 인생의 좌우명으로 삼고 생활하면서 노력하고 있습니다.
미국 링컨 대통령도 기도와 믿음으로 매일 성경 묵상하며 감사의 삶을 사신분이십니다. 일찍이 가족파산, 사업실패, 주의회 의원낙선, 약혼녀 사망, 병원입원을 하면서 시편 34,5절 “주님을 찾았더니 내게 응답하시고 온갖 두려움에서 나를 구하셨네” 이 말씀에 힘을 받아 배운 것은 없지만 실패와 두려움을 극복하고 확고한 믿음 안에서 1860년 미합중국의 대통령이 되어 어렵고 힘든 노예해방을 승리로 이끌었습니다. (그래서 시편34,5절을 링컨의 그리스도라 하기도 하고, 지금도 미국에 있는 링컨대통령 박물관에 가면 성경책 시편34,5 책갈피가 너들 너들 까만 손때가 묻어 있다 합니다)
이렇듯 말씀은 언제나 현재 자신이 서 있는 자리와 앞으로 찾아가야 할 삶의 자리를 앞서서 보여주며, 부정적이었던 사고가 긍정적으로 변화되어 감사 찬미할 줄 아는 신앙인으로 거듭 자라고 있습니다.
그리스도교 신앙생활은 한 마디로 하느님과 우리의 인격적인 관계, 인격적인 만남, 내면화된 관계가 생활로 드러나는 영적 생활입니다.
성경은 우리와 대화하기 위해 우리를 부르시는 하느님의 말씀입니다. 창세기에 기록되어 있듯이 천지창조 후 아담과 대화하셨고, 그리고 아브라함의 부르심이 있듯이 하느님은 우리에게 먼저 말을 거시고, 우리와 함께 사시기 위해 당신 자신을 스스로 낮추시어 우리에게 찾아 오셨음을 우리가 알고 받아들이는 데서 하느님과 함께 살아가는 신앙생활이 시작됩니다.
여러분은 하느님을 만나고 싶고, 체험하고 싶을 것입니다.
저도 세례를 받고 성경을 잘 모를 때는 전례의 흐름에 그냥 따라 갈려니 앞이 캄캄했고, 신부님의 강론말씀을 잘 알아듣지 못해 답답했지만 통신성서를 공부하면서 많은 도움을 받아 귀가 조금씩 열리기 시작했습니다. 성령께서는 우리가 성경을 펼칠 때마다 문자로 씌어진 성경을 살아계신 하느님의 말씀으로 알아듣도록 우리의 마음을 열어주시며, 하느님의 말씀에 합당한 응답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십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한 권의 책이 아니라 하느님의 현존을 드러내는 말씀으로서 하느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 보십시오. 그러면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말씀을 건네시면서 우리를 대화로 부르십니다. 이 부르심에 응답하고 하느님과 대화하기 위해 성경을 펼칠 때, 하느님은 우리에게 친구처럼 말씀하시며, 우리와 모든 것을 나누시기 위해 우리의 생활 속으로 들어오십니다. 성경 안에서 하느님과의 만남이 친밀해 질수록 우리의 마음은 조금씩 하느님의 마음을 닮게 되고, 하느님의 눈으로 모든 것을 볼 수 있을 만큼 하느님과 일치하게 될 것입니다.
또 여러분 중에는 하느님을 만나고는 싶으나 성경읽기는 내키지 않은 분도 계실 것입니다. 시간과 장소가 마땅치 않거나 컨디션이 좋지 않은 등 이유는 많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정말 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 법을 피해가면서도 하려고 하는데, 성경읽기는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정말 하느님을 만나고 하느님과 대화하기를 바란다면 조용히 하던 일을 멈추고 성경을 펼치면 우리는 수천 년 동안 우리에게 하고 싶어 하신 하느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고, 그분이 얼마나 우리를 사랑하시는지 알게 될 것입니다.
세상사람 가운데 그 누구도 우리에게 말하기 위해 몇 년씩 기다리는 사람은 없습니다. 약속시간을 몇 분만 넘겨도 말하고 싶지 않은 마음이 드는 게 사람인데, 하느님은 수천 년, 아니 이 세상이 생기기 전부터 우리에게 하고 싶은 말씀을 간직하고 기다리십니다. 하느님의 인내를 더 이상 시험하려 하지 말고 이제 성경을 펼치고 말씀을 들으려는 마음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여기에서
첫째로 성경을 읽습니다.
가톨릭 교회 안에서 전해는 전통적인 성경읽기의 방법은 ‘거룩한 독서 (Lectio Divina)라고 하는데 12세기경 카르투시오 수도승 귀고 2세가 체계화 했다고 합니다.
그에 따르면 성경읽기는 네 가지 단계, 즉 독서, 묵상, 기도, 관상의 단계로 나아가야 합니다.
미사 전반부를 구성하는 말씀의 전례가 두 개의 독서와 복음 낭독 외에도 응송과 강론, 보편지향기도 등을 포함하여, 이 안에는 거룩한 독서의 네가지 요소 독서, 묵상, 기도, 관상이 모두 들어있습니다.
그러면,
성경을 읽기 전 먼저 마음을 성령께 기도를 청하여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도 세례 받으실 때 성령이 예수님 위에 머무셨듯이
마태3,17 (이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
성경 안에도 머무시는 성령을 통해서만 성경은 살아 있는 말씀이 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레지오 시작기도에도 ‘오소서 성령이여~ ’ 이렇게 성령을 청하듯 성경 읽기를 시작하기 전에 “오소서 성령님, 저희에게 오소서. 저희에게 오시어 저희의 마음과 눈과 귀를 열어 주소서...”
이렇게 기도를 청합니다.
성령의 도움을 청하면서 읽기 때문에 성경읽기를 거룩한 독서라고 합니다.
그래서 성경을 읽는 올바른 방법은 지식이나 상상력 또는 감정을 활용하는데 있지 않고, 성령의 도움을 청하고 성령이 이끄시는 대로 자신을 맡기고 따라가는 데 있습니다.
(컴퓨터에 영원한 도움의 성모님 수도회에 성서와 함께에 클릭하면 100일간 성경읽기가 나옵니다.) 이 방법도 활용하면 좋습니다.
둘째로 성경쓰기 입니다.
저희들은 너무 산만한 삶을 살고 있고, 또 너무 바쁘게 움직입니다. 그러므로 자신을 집중 시키는 데는 성경쓰기가 필요합니다.
가장 이상적인 성경쓰기는 한자 한자 가슴에 새기시듯이 봉헌하는 마음으로 말씀을 생활 속에서 실천하면서 내 인생노트에 쓰는 것입니다.
2000년도 영세한 76세 할머니의 성경쓰기에 대해 말씀 드리겠습니다. 이 할머니는 우리 레지오 단원 어머니이신데 영세를 받고부터 곧장 성경쓰기를 시작하다 보니 성경내용이 참 황당하고
(성경속 황당한 이야기는 창세기에 나오는 다말이야기 - 다말은 주님의 뜻을 실천하기 위해 종족번식으로 시아버지와 동침을 하는 이야기며, 동태복수법이야기 - 눈이 죄를 지어면 눈알을 빼버리고, 손이 죄를 지어면 손가락을 잘라 버리라고 하는 말씀) 하느님은 사랑이신데 이렇게 심한 말씀이 이해가 안되어 성경쓰기가 싫었지만 그래도 계속 쓰다 보니까 인생의 전반에 걸친 삶을 들려주는 것 같아 성경쓰기가 행복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인생에 용서하기 힘든 사람이 있었는데 성경쓰기를 꾸준히 하면서 형님을 용서하기에 이르렀다는 말씀이었습니다. 인생을 살아가면서 전반부 젊은 시절에는 빛을 향하여 가지만 후반에 들어서는 어둠속에 있는 빛을 받아들이면서, 하느님의 뜻이 무엇인지 오묘한 진리를 찾을 수 있다 하셨습니다.
그래서 성경쓰기를 어렵게 생각하지 마시고 각자의 지향을 넣어서 봉헌하는 마음으로 꾸준히 쓰는 습관을 드려야 하겠습니다.
(Good News에 들어가 성경쓰기 부분에 클릭하면 워드로 성경쓰기도 있습니다. 쓰다보면 성경쓰기하면서 타자연습도 되고 일석 이조가 되겠지요)
셋째로 성경을 묵상해봅니다.
말씀을 되새김질하고 곱씹고, 말씀을 자기 것으로 만드는 활동이 묵상입니다. 소, 염소, 양 같은 동물들도 되새김질 하듯이 말씀을 되새김질 할 때 진정한 우리의 양식이 될 수 있습니다.
루가1,28 은총이 가득한 이여, 기뻐하여라. 주님께서 너와 함께 계시다. 라는 가브리엘 천사의 방문하는 말에 성모님께서는 몹시 놀랐고, 그리고 인사말이 무슨 뜻인가 곰곰이 생각하면서 그 말씀을 가슴속에 깊이 간직했습니다.
레지오 단원들은 묵주기도를 하면서 이 소절의 묵상이 잘 되지만 일반 신자들은 묵상이 어렵고 기도만 될 것입니다.
그렇지만 한 소절이라도 생각하면서 되씹어 보면 묵상이 익숙해 질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이 저절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보다 더 적극적인 도전이 따르며, 부단한 노력이 필요합니다.
베드로 사도는 ‘성경의 어떤 예언도 제멋대로 해석해서는 안 된다’고 가르치면서 성경에 대한 올바른 해석이 교회의 교도권에 맡겨져 있음을 분명히 하였습니다.
여기에서 여호와 증인은 아직도 성경 단어 한 소절을 두고 제멋되로 해석을 하여 천주교 신자들을 유혹하고 있습니다.
요즈음 우리를 유혹하는 일들이 참 많이 있죠? 다빈치 코드가 그렇고. 예수의 무덤이 그렇고, 도올 김용옥의 허무맹랑한 낭설 ‘구약페기론’ 여기에서 차동엽 신부님께서는 “검증 안된 신학의 가설 퍼뜨리는 건 룰 위반”이라고, 구약은 돌판에 새겨진 법과 관계가 있고, 신약은 사람의 마음에 새겨지는 법과 관계가 있다고 반박했습니다. 이런 일들을 소화시킬려면 성경을 읽어야 합니다.
미사에 참석하기 전에 미리 그날의 본기도, 독서와 복음을 읽어 본다면 말씀의 전례를 더 잘 이해할 수 있고 하느님의 말씀이 생생하게 살아 있음을 체험할 수 있을 것입니다.
성경이 살아계신 하느님의 말씀으로 체험되는 첫 번째 표시는 말씀을 들을 때 자신의 삶에 대한 진정한 반성을 하게 되고 감사하는 마음이 생기고나면, 하느님이 우리와 함께 계심을 알 수 있습니다.
여기에서 저는 출애굽을 읽으면서 모세와 파라오 그리고 나 이렇게 묵상했습니다. 결혼생활 후 제 광야는 시작되었고, 딸아이 둘을 키우면서 아이들에게 내 새끼라 함부로 명령어, 지시어를 남용하여 이 또한 아이들이 사춘기를 접어들면서 반항아로 만들어 버린 것 같아, 반성하면서 자녀들에게 대화로서 풀어가며 기도를 많이 했습니다. 신앙은 선택이 아니라 유산으로 물려주기 위해 하느님께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로마의 어릿광대에 ‘깍지 낀 손’과 나란히 함께 모아 ‘기도하는 두 손’의 비유가 나옵니다. 깍지낀 손은 아무런 공간도 없어 폐쇄된 관계이고, 나란히 함께 모아 기도하는 손은 행복한 부부의 두 손이라 했습니다. 기도하는 두 손처럼 부부의 손으로 아이들에게 신앙을 유산으로 물려주기 위해 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아이들은 아무리 바빠도 주일미사를 빠지지 않습니다. (우리가 여기에서 영세를 받고 얼마까지는 기도하는 두 손이 하느님을 향하여 올라가는데 어느정도 신앙생활에 익숙해 지면서 자만과 교만으로 깍지낀 손으로 변화되는 우리네 모습입니다)
예수님께서도 매일 매일의 바쁜 공 생활 안에서 틈만 나시면 한적한 곳으로 가셔서 기도하셨습니다. 마르코 1,35절 “다음날 새벽 아직 캄캄할 때, 예수께서는 일어나 외딴 곳으로 나가시어 그곳에서 기도하셨다.” 이것은 하루 일과를 하시기 전에 먼저 당신이 하셔야 할 일들에 대해 아버지와 논의 하셨던 것입니다.
저는 20년 전 레지오 단원으로 등록되어 행동단원으로 활동하면서 기도는 하느님을 알아가는 가장 이상적인 길이며, 통로임을 깨달았습니다. 교본 33장 레지오단원의 의무에도 나오듯 갈라 3,20절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사시는 것입니다.’ 말씀처럼 단장으로부터 레지오 활동을 배당받으면 활동을 하기 전 기도를 하면서 시작합니다. 그러면 성모님과 함께 동행함을 느낌니다.
예수님께서 외딴 곳으로 가셔서 기도하셨듯이 저도 일상 속에 잠시 멈추어 고요와 침묵 속에 주님의 뜻을 헤아려 봅니다.
기도는 자신의 존재이유와 삶에 대한 목적, 그 방향을 제시 받고, 삶을 더욱 풍요롭게 해 주시고 불완전한 나의 마음 안에 무한하신 당신의 손길을 느끼고 체험할 수 있는 유일한 길입니다.
일상의 삶 안에서 잠시 멈추어 생각하면서 성체조배를 하는 습관을 길들여 보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개인적인 생각입니다만, 젊은 시절 성체 조배하는 습관이 길 들여 지면 나이가 들어서도 주님과 함께 대화하고 성체 조배하는 것이 습관이 되어 외롭지 않습니다. 지난해 대세를 받고 하늘나라로 가신 시어머님도 하느님과 대화하면서 기도하는 습관이 되지않아 요셉과 제가 방문하면 아들 손을 잡고 하루가 지업어 우짜고! 빨리 안죽어 우짜고! 이렇게 우시면서 하소연했습니다.
어머니 묵주기도하세요! 하면 금방 장독대에 가서 묵주기도를 하시지만 또 돌아서면 우짜꼬! 하면서 한숨이었습니다. 정말 이 부분은 자식으로서 어떻게 도와드릴 수가 없었어요!
저는 프란치스코 재속회 회원인데 재속회에 나오시는 할머니,할아버지의 얼굴표정을 보면 참 행복하고 아름답게 늙어가시는 걸 볼 수 있습니다. 은빛 할아버지,할머니의 모습은 굵은 돋보기를 끼고항상 손에는 묵주를 들고 기도하고 공부하면서 활동하는 모습이 편하게 보였습니다. 통계청 자료에도 보면 종교생활 하는 노인들은 인생의 만족도가 높다고 나왔습니다.
이렇게 습관을 길들이다 보면 아침 시간 눈을 뜨자마자 그 자리에서 먼저 성호를 긋고 하루를 주님께 봉헌하면서 기도를 청하게 됩니다.
마치는 말
성경은 한 권의 책으로서가 아니라 살아계신 하느님의 말씀으로서 우리가 성체를 공경하듯이 성경을 공경하는 마음을 가지도록 부탁드리고 싶습니다.
밀떡이 성찬의 전례를 통하여 성체로 변하듯이 성경도 말씀의 전례를 거치고 나면 하느님의 말씀으로 변합니다. 그래서 --
미사가 끝나면 성체를 감실에 모시고 성체조배를 드리는데, 성경은 책장이나 집안의 다른 물건들과 섞여 잊혀 진다면, 어떻게 우리가 하느님께 합당한 공경을 드린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성경이 책꽂이의 장식품, 진열품으로 전락해서는 안되겠지요! 성체조배를 하듯이 성경을 기도하는 자리에 모시고 하루에도 몇 번씩 펼치고 말씀의 전례를 통해 하셨던 말씀이나 오늘 내게 새롭게 하실 말씀을 들으려고 귀를 기울이려는 마음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사담입니다만, 요즘 인기 있는 무지개 원리 저자 차 동엽신부님 말씀에 따르면 성경책을 침대 머리맡에 두고 자면 수맥이 차단 된다고 하셨습니다. )
아무리 친한 사이라도 오랫동안 말을 않고 지내면 멀어지는 것처럼, 우리도 성경을 멀리 함으로써 하느님과 멀어 집니다. 성경을 펼치고 하느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며 내적인 대화의 시간을 가질 때 우리 가운데 계시는 하느님을 언제나 새롭게 체험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미사에 참석하고, 자리에 앉아 성경을 펼칠 때마다 하느님께서 나에게 무엇을 말씀하시려는지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성경을 읽고, 쓰고, 묵상함으로써 하느님의 말씀 안에서 하느님을 체험하고, 하느님의 마음과 눈으로 볼 수 있는 신앙인으로 여러분 모두 성장하시길 희망 하면서,
저는 언제나 성경 말씀 속에 기도하며 살아가겠습니다.
제가 성경봉사자로 교육을 받고 많은 시간 성경공부를 하면서 여러 가지 체험을 여러분에게 나누고 싶었지만 긴장을 하다 보니 생각만큼 표현을 다 못한 것 같습니다. 부족하지만 끝까지 함께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영광송으로 마치겠습니다.
첫댓글 주님 말씀속에서 겸손하게 살아가는 젬마자매님의 아름다운 모습이 감동적입니다^^
별무늬님 고맙습니다. 주님 안에 더욱 작아지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말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