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하늘에 태양이 밝게 빛난다. 그리고 환하게 웃어준다. 우리의 여행을 반겨주다니 나의 마음도 한결 부드러워진다. 귀여운 연인의 얼굴에 희색이 만연하다. 그러나 지금 이 순간 마음속에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사실은 궁금할 필요도 없다. 알고 싶으면 물어보면 그만인걸, 남자가 쫀쫀하게 생색내려고 폼을 잡다니 치사하게................ 어디를 갈까 고민할 필요도 없다. 누구나 알고 있는 관광 코스면 그만이다. 그리고 그 이상도 이하도 없다. 시간이 허락하는 범위라면 그것이 전부가 아닐까.
거기에서 누가 고가의 맛있는 음식으로 식사를 하고 어떤 수준의 호텔을 선택 할 것 인지다. 나는 지금 어떤 길을 가고 있는가? 나의 잠재능력까지 총 동원하여 노력하고 있다. 가는 곳마다 한번 씩이라도 전통요리 식사를 준비하고 그렇지 않으면 특선을 찾아간다. 주머니 사정을 너무나 잘 알면서도 거절한번 하지 않는 나의 연인, 귀여운 아내, 오히려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얄미운 사람, 여기에 언제 또 다시 올지 모르는 절호의 기회라고 약을 올리기까지 한다. 그냥 웃어넘기자 나도 의미 없는 웃음으로 응답을 하자.
우리가 쉴 수 있는 호텔 또한 어떠한가. 거의가 다 일반적으로 이야기하는 그 지역의 가장 분위기 있는 호텔로 예약되어 있다. 인생의 계급장을 줄줄이 달고서 순간적인 기회를 이용한 여행이면서도 한창 피어나는 꽃망울들의 밀월여행을 흉내를 내는 것이 조금은 거추장스럽고 쑥스럽기는 하지만 그래도 재미가 쏠쏠하다. 누가 보아도 가슴이 부풀고 나도 저런 때가 있었는가 하는 부러움의 대상은 아닐지라도 지나온 과거의 힘겨운 날들 속에서 아등바등 하루살이의 허우적거림의 회한을 한꺼번에 토해내는 튀는 듯한 모습이 나타나지 않음은 다행이리라
쓸데없는 이야기는 그만두고 관광이나 하자. 로마에 왔으면 바티칸을 그냥 지나칠 수가 없지, 성스러운 의미를 지닌 전 세계 가톨릭의 총 본산, 미켈란젤로의 피에타 상으로 유명한 베드로 성당, 넓디넓은 광장, 세계 3대박물관 중의 하나인 바티칸 박물관, 미켈란젤로의 불후의 명작 ‘최후의 심판’과 ‘천지창조’, 라파엘로의 ‘아테네 학당’ 의 예술작품이 있는 시스티나 예배당 등 바티칸에 대하여는 너무나 잘 알려져 있다보니 쓸 것이 업네그려.
로마 시내로 나가보자, 그리고 편안하게 한번 구경하자. 죽어나는 것이 있다면 사람이 아니라 돈이 죽어날 따름이다. 태양이 작열하는 무더운 여름날 아스팔트 위 열기는 사람을 녹인다기보다는 숨이 턱까지 차올라 헐떡거린다. 구경을 한답시고 이곳저곳을 터벅터벅 진땀 뺄 일이 무엇인가. 여기까지 왔으니 기분 한번 내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로마 시내에는 관광객을 위하여 편하게 구경할 수 있는 선택 관광이 있다. 최신형 메르세데스 벤츠 승용차로 구석구석을 누비며 안내를 하고 내릴 때도 탈 때도 기사가 문을 열어주고 사진도 찍어준다. 우리에게 하는 자세도 상전을 대하듯 정성을 다한다. 늘씬하고 잘생긴 백인의 기사 아저씨 조그마하고 볼품없는 동양인 부부에게 굽실거리는 모습을 보노라면 역시 돈이 최고라는 것을 다시 한번 실감나게 한다.
영화 ‘냉정과 열정사이’ 의 배경이며, 단테의 ‘신곡’으로 하여금 이태리 표준어의 중심이 된 도시, 미켈란젤로의 생애가 살아 숨쉬는 피렌체, 어떤 곳이기에 궁금하다 못해 이리도 마음이 급한가. 빨리 가보자. 흰색과 분홍색 그리고 연록색의 대리석으로 지어진 아름다운 꽃의 성모 마리아 성당, 로렌초 기베르티가 27년 동안 파고 새긴 끝에 10면의 정교한 양각을 완성 제작한 금박으로 부조를 새긴 산 조반니 세례당의 ‘천국의 문’, 지오토 종탑, 단테의 생가, 단테의 기념비가 큼직하게 서 있는 산타크로체 성당 등
9살의 단테가 8살의 베아트리체를 만나 첫눈에 반했다는 아르노 강의 다리 중에 가장 오래된 몬테베키오 다리, 이곳 출신으로 르네상스 시대의 조각가이자 금세공 예술가인 벤베누토 첼리니, 다리의 중간에 위치한 첼리니의 흉상아래 울타리에는 연인들의 사랑을 약속하는 수많은 자물쇠들이 가득하다. 두 사람의 운명적인 만남이 있었던 이 곳에서 사랑을 맹세하는 이태리의 젊은 연인들, 로맨틱하고 낭만적으로 느껴져야 할 풍경이 나에게는 안타까움을 더해 주는 것은 어떤 연유에서 일까?
이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화가 중에 한사람이라는 의미를 넘어서 신에 대한 사랑을 최고의 작품으로 표현하고자 하였던 한 예술가 미켈란젤로, 23살의 젊은 나이에 완성한 로마 최고의 조각으로 뽑힌 ‘신이여 자비를 배푸소서’의 뜻을 지닌 ‘피에타’, 6살이 되던 해에 그의 어머니 프란체스카는 세상을 떠난다. 피에타에는 어머니에 대한 애정과 그리움이 표현되고 순결한 여인은 이 세상 순결하지 못한 삶을 사는 여인들 같은 노화의 운명을 겪지 않기에 아들의 처참한 죽음을 안고서도 성모 마리아의 모습을 영원한 젊음과 아름다움의 상징으로 남기면서 나에게 피에타란 최고의 조각이기에 앞서 이겨내야 할 상대이며 내 인생의 어머니 같은 작품이라고 진술하고, 자연을 만든 위대한 조물주는 그 어디에도 이름을 새기지 않았건만 ‘하잘 것 없는 조각상에 나의 이름을 새기다니 부끄럽다.’ 라는 말을 남기면서 앞으로는 어떤 작품에도 이름을 새기지 않겠다고 다짐을 한 그의 조각품, 마리아의 두른 어깨띠에 “피렌체인 미켈란젤로 제작” 서명을 한 유일한 작품 ‘피에타’ 그리고 ‘천지창조’ ‘최후의 심판’ ‘다비드 상’ 등의 엄청난 작품들이 있음에도 화가보다는 조각가로 불리길 원했던 미켈란젤로.
피렌체의 재벌가문 메디치 家나 로마 교황의 끝없는 요구에도 언제나 자유와 정의를 추구하며 싸워온 그의 괴로운 심경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자작詩와 자신이 남긴 편지들. 그의 예술은 인생의 고뇌와 분개와 우울들이 신앙의 미적 형상화로 나타났으며 초인적인 억센 의지력에 의해 달성된 것이 아닐까? 그러면서도 피에타의 군상들(피렌체 대성당, 팔레스토리나, 몬다니니)이 모두 미완성으로 끝나긴 하였지만 힘없이 쓰러지는 그리스도를 슬퍼하며 부축하는 성모마리아의 생생한 끌 자국에는 끝없는 고뇌의 영혼이 영원의 휴식을 추구하는 그의 만년의 심경이 나타나는 듯 비장하기까지 하다. 고향 피렌체를 그리워하면서도 한번도 향수를 달래보지 못한 신이내린 천재 예술가, 예술의 늪에 빠져 89세의 생을 마친 비운의 미켈란젤로, 다시 한번 그의 생애를 기웃거려본다.
영어로 베니스라고 하는 베네치아, 물위에 떠있는 이색적인 수상도시. 우리에게 얼른 떠오르는 세계3대 영화제 중의 하나 베니스 영화제, 100년이 못가서 바다 밑으로 가라앉을 거라는 도시, 로마, 피렌체와 더불어 이탈리아의 가장 유명한 관광지 중의 하나인 베네치아. 6세기 말에는 12개의 섬에 취락이 형성되어 리알토 섬이 중심이 되고 그후 베네치아 번영의 심장부 구실을 한다. 지금은 베네치아 만 안쪽의 석호위에 흩어져있는 118개의 섬들이 400여개의 다리로 이어져 있는 ‘물의도시’
베네치아의 역사는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 6세기 경 이민족에 쫓긴 롬바르디아의 피난민이 만(灣)의 기슭에 마을을 형성한데서 시작되며 처음 비잔틴의 지배를 받으면서 급속히 해상무역의 본거지로 성장하여 무역의 중심지가 되고 도시공화제 아래 독립적 특권을 행사하며 동부지중해 지역과의 무역으로 얻은 경제적 번영으로 이탈리아에서 가장 부강한 도시로 성장한다. S자형의 대운하가 시가지 중앙을 관통하고 출구 쪽의 운하기슭에 장대한 산마르코 광장이 자리한다.
베네치아를 방문하는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있는 유적들, 이민족이 침입해 왔을 때 베네토 지방의 오랜 고유의 전통을 육지에서 섬으로 도망하여 가져온 문화인의 자취, 그렇기 때문에 고대 두칼레궁의 인쇄본에서나 아직까지 현존하고 있는 비잔틴 양식의 아취들, 해안의 화물창고, 성 마르코 대성당의 벽 구조와 초기의 모자이크 장식, 예술과 경제발전을 동일시한 고딕시대의 사람들은 두칼레 궁, 카도르(황금궁)에서나 그 외의 다른 건물에서도 지금까지 볼 수 있는 육중한 규모와 순수한 동양적 원형의 조각과 건축적 장식에서 보는 것처럼 명실상부한 세계의 지배자로서 자신을 인정하고자 하는 것처럼 보인다.
처음에는 바다를 정복하면서 나중에는 교황도 황제도 그들의 이상적 패권을 부여하지 못한 유일한 요소인 바다를 넘나들면서 세계를 위해서가 아니라 자기 자신을 위하여 실현한 세계의 역사가 서서히 베네토 지방을 소모시켜간다. 기둥의 양식과 육중함 그리고 절도성이 이 도시의 환상적인 균형을 깨뜨리기도 하는 성 마르코 광장, 소 광장, 대운하를 따라 줄지어 서있는 건축물에서 르네상스 시대의 사람들은 그 당시까지 그들을 지배했고 초기의 동화과정에서 문화의 바탕을 마련하게 해준 로마전통에 재 연결시키면서 물의 한계를 극복한다.
18세기의 베네토 지방은 역사를 만드는 주역도 담당하지 않았지만 역사에 끌려가지도 않는다. 물 한가운데서 호젓이 생활하며 극장, 놀이, 동네의 길과 광장에서 그의 이웃들과 더불어 생활하고 한편으로는 산업혁명과 정치혁명 등 세계를 지배하는데 취지를 둔 어떠한 유형의 투쟁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초연하며 살아간다. 그리고 현재 역시 비록 마찬가지의 인간의 척도라 하더라도 상이한 기준을 가지고 그들의 역사를 이어가는 모습일 것이다.
이제 그만하고 오스트리아 인스부르크로 가보자.
첫댓글 미켈란젤로의 조각품과 그림을 보는듯하다 친구의 해박한 지식이 곁들여있기에 더욱더 실감이 난다 고마워 ..
이태리 구경 잘했다...내는 언제 가볼똥 못 가볼똥 똥이 두덩거리따만은...근데 니는 출장간다카디마는 이리 놀러만 댕갰나???
니 오늘 잘 걸렸다. 나는 맨날 가봐야 산넘어 댕기는데, 니는 산 넘고 바다건너 나는 생각지도 못하는데를 왔다갔다 안했나? 니 약 고마 올리레이............
이글을 읽어면서 누구에게 뻥을 칠 생각을 하니 저절로 신이 나는구나..........서울 안가본 사람이 가본사람을 이긴다고 다든데.....ㅎㅎ
지리한 일상속에서 긴 여정의 글을 보노라리 정말 부럽네요...스거만았고요!!!
맨날 멀대같이 생긴 숫늠들 댓글만 보다가 이쁜 여인들 글보마 뿅가서 정신을 못차리는데 거기다가 수고했다고 칭찬까지 하마 나는 뒤집어진다. 이럴때는 우야만 좋을꼬?